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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게하시: 과녁에서 벗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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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0-12-10 11:43 조회8,95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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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6분

기억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신 13:4).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창 39:4~6, 왕하 4~5장, 8:1~6, 렘 9:23~24, 요 13:1~17, 딤전 6:10.

게하시는 종이었다. 그는 단순한 종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던 엘리사의 종이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부르셔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필하며 자신의 사역을 준비하도록 하셨다(왕상 19:16). 수년간 엘리사는 엘리야를 섬기며 선지자란 무엇인지 보고 배웠다. 엘리야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고, 바야흐로 엘리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왕하 2:11). 그의 사역은 엘리야처럼 격정적이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감화력은 먼 곳까지 영향을 미쳤다. 게하시는 엘리사와 같이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 곁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선지자와 함께 일하는 세월 동안 그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번 주에 그토록 많은 특권과 기회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실패자가 돼버린 게하시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곁길로 감으로써 중요한 것과 지엽적인 것을 분간치 못하는 자들에게 좋은 예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학습 도우미
| 핵심 본문 | 왕하 5:26~27
| 학습 목표 |
⊙ 깨닫기 : 사역을 배우기 위해 게하시가 누렸던 특권과 그것을 실천하는 데 실패했던 사실들을 살펴본다.
⊙ 느끼기 : 게하시와 같은 미래의 지도자가 자신을 만족시켜려는 삶으로 돌이켰을 때, 하나님의 입장에서 실망과 상실감이 어떠했을지 생각한다.
⊙ 행하기 : 하나님의 백성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잘 활용하기로 다짐한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일생의 기회
A. 선지자 엘리사의 수련생으로 봉사한다고 생각해보라. 엘리사를 섬기면서 게하시는 어떤 비범한 경험과 믿음의 가르침을 갖게 되었는가? 그런데 왜 게하시는 이런 기회로부터 오는 유익을 누리는 데 실패하였는가?
B. 이기심 때문에 게하시는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이런 처벌은 합당한 것이었는가?

02. 느끼기: 잃어버린 기회들
A. 엘리사의 이타적인 봉사의 모본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게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받들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했다. 게하시의 탐욕은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각인시키고자 했던 하나님에 관한 교훈을 어떻게 손상시켰는가?

03. 행하기: 섬기기로 결심함
A. 지금 우리는 지구 역사 가운데 어느 시대보다 섬기는 지도력을 배울 수 있는 기회와 모본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최고의 교사이자 역할 모델이신 그리스도의 견습생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B. 믿음은 자신을 섬기려는 유혹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하는가?

요 점: 이타적인 봉사를 보고, 섬기는 법을 배울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게하시는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기로 선택하였다.


일요일 12월 12일 종의 정신

1. 다음 성경절을 읽고 종들이 하는 일을 나열해 보십시오. 창 24:2~4, 39:4~6, 눅 14:17, 17:7~8, 행 2:18.
[창24:2~4]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3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39:4~6]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눅14:17]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눅17:7,8]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행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답: 종은 오직 주인의 필요를 채우고, 그의 뜻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 봉사해야 했다.

종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필요, 소원, 안락을 포기하고 누군가의 삶에 완전히 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종은 주인의 계획과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주인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때로 종은 기별을 전하고, 누군가와 동행하며, 그 사람을 위해 일하고, 하찮은 일들을 처리한다. 또 어떤 때에는 재정과 집안일을 관리한다. 그러나 종은 항상 자신이 아닌 주인의 일에 치중한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종이었다. 선지자의 종이 된다는 것은 흔치 않은 특권이었다. 그것은 하찮은 노동 이상을 의미했으며 일종의 견습 과정이었다. 엘리사도 종으로서 엘리야를 섬겼다(왕상 19:19~21). 선지자의 일이 비록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존되어 있지만, 선지자와 함께 봉사하는 특별한 기간은 선지자 지망생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을 발전시키는 데 유익하였다. 엘리야를 섬기는 동안 엘리사는 자아를 포기하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미래의 사역을 위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자격은 없었다. 게하시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우리는 그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종의 정신은 구약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도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꺼이 종이 되고자 하는 정신이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셨다(막 9:35).

2. 요 13:1~17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은 지도력과 종의 정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요13:1~17]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답: 주님은 누가 더 높은지 싸우는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써 지도자는 모든 사람을 기꺼이 섬기는 사람이라는 교훈을 가르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분의 치료 사역에도 함께 했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 일하기에는 준비가 미비했다. 그들은 즐거이 이론을 배우고 예수님과 교제하기를 기뻐했지만, 자아를 포기하고 겸손히 서로를 섬길 준비는 여전히 부족했다.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현저한 특색의 하나는 그분의 자아 부정과 자선(慈善)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오지 않으셨다. 그분은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셨으며, 이것이 그분의 양식이요 음료였다. 우리는 구주의 모본을 따름으로써 그분과 거룩한 교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날마다 그분의 품성을 모방하고 그분의 모본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축복이 될 것이며, 현세에서는 자신을 위하여 만족을, 내세에서는 영원한 상급을 얻을 것이다.”(교회증언 4권, 227)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여러 측면으로 계시한다. 하나님을 왕으로 그의 사람을 백성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의 백성을 자녀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그의 백성을 종으로, 등등. 이런 표현들은 창조주와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양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 주종 관계로 나타낸 것은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이 최선임을 인식시키고 그 뜻을 행하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좋은 상태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하기고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신 분의 뜻을 따르는 것보다 더 완전하고 확실하고 안전한 길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성경에 계시된 구원의 도리를 올바르게 깨달아 알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임을 알게 된다. 그분의 뜻대로 하는 것이 최대의 행복임도 알게 된다.

교훈: 크든 작든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아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의 마음을 주님께 배워야 한다.

월요일 12월 13일 곁에서 배움

좋은 교사는 모본과 예를 통해 가르치며, 학생들로 하여금 배운 것들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엘리사는 바로 그런 유형의 교사였다.

1. 왕하 4:8~17을 읽으십시오. 이야기 속에서 게하시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떤 기회를 주고 있습니까?
[왕하4:8~17]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15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가로되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돌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답: 게하시는 엘리사와 수넴 여인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하면서 여인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엘리사에게 조언해 주었다. 이런 방식으로 엘리사는 게하시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살피고 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의 통로로서 훈련시키고 있었다.

수넴 여인의 이야기 앞에는 여인과 관련된 또 다른 기적 이야기가 나온다. 왕하 3:1 ~7에서 엘리사는 한 과부의 부채를 해결하고 그녀의 두 아들이 노예로 팔려가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런 다음 엘리사는 수넴으로 향한다. 성경 시대의 여인에게는 일반적인 지위가 주어졌을 텐데 기이하게도 성경 기자는 한 기혼녀를 “귀한 여인”이라 칭하였고, 그녀의 남편 이름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남편이 아내의 요청에 따라 손님방을 짓고, 나이가 많았지만 추수를 감독할 만큼은 건재했다는 정도이다. 이야기의 전반부에 엘리사는 게하시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엘리사는 여인을 불러오도록 게하시를 보냈다. 그리고 게하시를 통해 감사를 표현했다. 게하시는 여인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관찰하여 알아채는 수완을 발휘했다. 엘리사는 게하시가 이적을 주도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일 년 뒤에 기적의 아이가 태어났다.

2. 왕하 4:18~31을 읽으십시오. 이전 이야기에서 봤던 것과 비교해서 여기서 게하시의 태도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왕하4:18~31]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19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21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23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26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28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30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31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답: 게하시는 눈에 보이는 상황에만 집착하고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적의 아이는 소년이 되었다. 게하시는 여전히 엘리사의 종이었지만, 감각이 예전 같지 않았다. 여인은 도착하자마자 그를 지나쳐 엘리사의 발을 붙들었다. 게하시는 그녀를 떼어놓으려고 애썼다. 그는 수넴여인의 “무례함”만을 주목했다. 왜냐하면 이는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어긋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25~27절). 그는 엘리사처럼 그녀의 깊은 절망감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 것
“젊고 경험 없는 교역자들은 이런 경험 있는 하나님의 종들과 관련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일을 함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책임을 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선지자와 왕, 223)

<부가설명>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현장 교육으로 후계자의 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게하시의 후계 교육은 그리 진전이 없어 보인다. 교과 저자의 말대로 그는 일의 내면을 살피는 혜안이 모자랐던 것 같다. 사건의 겉만 보게 되면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사물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주관하실 때 가능한 것이다. 성령이 주관하게 하기 위하여서는 철저히 자아를 부정해야 한다. 자아 부정은 종의 기본 조건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종으로 칭해질 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히 자아가 죽은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종인가? 자주자인가?

교훈: 이타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아픔을 헤아릴 수 있는 섬세한 마음을 주신다.

화요일 12월 14일 믿음의 질문

1. 왕하 5:1~19을 읽고 다음의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왕하5:1~19]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5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16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17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9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 이스라엘 왕은 왜 그렇게 반응하셨습니까? 그의 반응은 이성적이었습니까? 비이성적이었습니까? 그는 어떻게 되는 것을 정말 두려워했습니까?

답: 전쟁의 빌미를 만드려는 트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별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반응이다. 이것을 빌미로 아람이 전쟁을 걸어올 곳을 두려워하였다.

․ 엘리사의 명령에 나아만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는 그런 반응의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그의 반응은 어떤 면에서 편지를 보고 분노했던 이스라엘 왕의 반응과 유사합니까?

답: 선지자가 자기의 기대에 맞도록 자기를 올바르게 대우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강을 말하면 아람의 강물이 요단 강물보다 맑고 좋다고 말했다. 역시 비 이성적이었다.

․ 12절을 읽으십시오. 나아만 장군이 사용하고 있는 논리는 무엇입니까? 그는 어떤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까?

답: 강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논리의 근거로 말한다. 그는 엘리사의 말이 하나님을 대언한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 기적이 일어난 뒤에 나아만은 엘리사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일컬었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까?

답: 당신의 종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깨달았을 때에 즉시 시인하고 굴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어떤 사례도 받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아무 것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까?

답: 그는 이웃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의 실권자에게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게 하려고 하였다.

․ 17~19절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나아만의 요청과 그에 대한 엘리사의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나아만이 그의 주인인 왕이 신당에 경배하러 갈 때에 자기를 동반하게 될 때 일어날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의 처지를 이해하신다고 한 것 같다. 그것이 나아만이 하나님을 따르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선교의 핵심은 사랑임
“이타적 봉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악을 행하는 자를 개혁시키는 일에 있어서 칼이나 공의의 법정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일을 할 것이다. 칼이나 공의의 법정은 범법자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기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선교사는 그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 때때로 견책 때문에 굳어지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아질 것이다.”(치료봉사, 106)

<부가설명> 나아만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하는 길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사로잡혀간 작은 여자 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큰일을 하셨다. 그 소녀는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잘 배웠을 것이다. 그는 나아만의 아내에게 아주 신임을 받는 하녀였을 것이다. 주모의 마음을 얻은 하녀였다. 나아만은 그 아이의 말을 신뢰하고 왕을 움직였고, 엘리사에게 나아갔다. 엘리사는 그를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말만 전했다. 마음의 투쟁 끝에 그 비합리적인 것 같은 엘리사의 말을 따랐다. 그의 부하의 말대로 어렵고 비싼 일을 하라고 했으면 기꺼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쉽고 허술해 보이고 믿어지지 않는 값싼 일을 하라 하니 역정을 내면서 자기 나라 강이 더 좋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굴복했을 때 그는 어린아이의 살갗과 같은 새 피부를 얻었다.
하나님의 복음은 쉽고 값싸게 보인다. 인간이 비싸고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면 자기의 공로가 들어가기 때문에 기꺼이 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구원에 인간의 공로가 결코 낄 수 없다는 것을 늘 가르치신다. 그러나 인간을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런 마음이 바로 자아가 살아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값싸고 쉬운 그 길을 가면 새 사람이 된다. 일곱 번 물에 잠그고 나왔을 때 그는 어린아이의 살갗처럼 되었다. 침례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의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노력으로 이렇게 되려고 하지 않는가.

교훈: 우리의 이타적인 봉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거둔다.

수요일 12월 15일 게하시의 타락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토록 많은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성경의 인물들은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나아만 장군이 치료되는 믿지 못할 장면이 게하시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을 뿐 아니라, 어떤 사례도 거절하는 주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 정도면 게하시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1. 왕하 5:20~27을 읽으십시오. 게하시는 일단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합리화시켰습니까? 게하시의 생각 속에는 애국심이나 민족적 편견이 얼마나 내포되어 있습니까?
[왕하5:20~27]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 내려서 맞아 가로되 평안이냐 22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 후 25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26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답: 우리는 게하시에게서 배타적인 정신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인에게 이런 무조건적인 봉사와 은혜를 베풀 이유가 없다고 여긴 것 같다. 또한 그는 가난한 스승과 다른 제자들을 위해서 자신이라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켰을 것이다.

성경에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땅의 소유는 위험하다는 경고로 가득하다. 이런 경고는 직접적으로 부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가 문제시 하는 것은 소유한 물질의 양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탐욕과 싸우려면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우리는 소유의 개념을 고치고, 그것들을 하나님께 맡길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물질적 소유뿐 아니라 시간도 일관성 있게 바침으로 우리의 가치관을 지켜야 한다. 물질을 사랑하면 삶의 진정한 사명과 목적을 보지 못해 결국에는 영원한 멸망에 빠지고 만다.
게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지만 자리를 뜨자마자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고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이는 자신을 속일 정도로 우리의 심령이 부패했다는 강력한 예증이다.
반면 나아만은 게하시에게 아주 후한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몇 가지 의구심을 가지고 돌아갔을 것이다. 특히 그의 두 종이 돌아와 게하시에게 나타난 이상한 증상을 보고했을 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게하시의 탐욕은 엘리사가 새로운 회심자에게 심어주기를 원했던 증거들을 방해하고 있었다.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은 게하시가 어떤 짓을 했는지 엘리사에게 알려주셨다. 그로서 그의 사역과 생애는 쓸모없게 되었다.

사심 없이 봉사할 수 있는 비결
“충실한 청지기는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것이요, 그의 앞에 있는 유일한 목표는 세상의 지대한 필요이다. 그는 진리의 기별이 이웃뿐만 아니라 먼 지방까지도 전파되어야 함을 인식할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정신을 품을 때 진리에 대한 사랑과 진리를 통해 얻는 성화의 힘이 탐욕과 지나친 욕심과 각종 부정직을 몰아낼 것이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83)

<부가설명> 게하시의 행동은 엘리사가 마음을 다해 증거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파괴하는 행위였다. 나아만이 그의 하인의 보고를 들었을 때 그 좋은 선지자 밑에 있는 하인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아만이 받은 좋은 감화를 상당히 소멸시키지 않았을까? 이 후의 나아만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하나님의 사람의 하인에 대하여 많은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가 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후에 교인들의 마음과 생활 태도로 그를 낙심하게 한 일은 없을까? 특히 뉴스타트 집회를 통하여 얻은 사람들이 기성 교인들의 식생활의 이중성을 알았을 때 어떤 느낌을 가질까? 우리는 때때로 자기도 모르게 게하시의 논리에 빠지고 게하시의 행동을 하지 않는지 잘 살펴볼 것이다.

교훈: 우리의 사역이 이기적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 대가 없이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헌신을 아끼지 않는 하나님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목요일 12월 16일 과거의 영광으로 살아감

1. 왕하 8:1~6에서 우리는 게하시에 대한 마지막 기사를 봅니다. 이전에 엘리사의 종이었던 게하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왕하8:1~6]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3 칠 년이 다 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미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가로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고한지라 왕이 저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가로되 무릇 이 여인에게 속한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답: 엘리사와 함께 있었던 것을 경력으로 삼아 게하시는 왕의 모사로서 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넴 여인의 아들을 되살렸던 큰 이적이 있은 지 수년이 흘렀다. 게하시의 문둥병은 그렇게 흉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왕궁에서 일하고 있었다. 엘리사의 종이었던 게하시는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있다. 그는 엘리사와 그의 이적을 떠벌리며 자신이 엘리사와 일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시기와 맞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 기자는 수넴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자 게하시가 그녀의 아들이 되살아났던 이야기를 했던 시점을 정확히 말하고 있다. 게하시의 떠벌림을 이용해서 수넴 여인을 돕게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였다. 수넴 여인은 이제 과부가 된 것처럼 보인다. 남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그런 일 때문에 남자가 아닌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는 법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아들이 장성하기까지 가문을 책임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년의 가뭄동안 그녀는 외국에서 거주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점이 많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르다.

2. 어떤 관계가 정말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렘 9:23~24 참조.
[렘9:23,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답: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어떤 인간의 지혜와 용맹과 부도 자랑할 것이 못 된다.

이렇게 해서 게하시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아쉬운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엘리사에게 잘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뒤를 이을 만한 훌륭한 선지자가 되거나 선지자 학교의 지도자나 교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때 선지자와 함께 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게하시는 역사를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저 과거 속에서 살아갈 뿐이었다.

탐심으로 기회를 잃지 말라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했더라면 능히 할 수 있었을 사업에 대하여 잠자고 있다. 자아 희생의 참 정신은 세상이 오해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복음의 실재와 능력을 위한 논증이 될 것이다. 그러면, 풍성한 축복이 교회 위에 부어질 것이다.”(증언보감 1권, 561)

<부가설명>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히10:39) 이 말은 믿음으로 전진하라는 말이다. 게하시는 뒤로 물러가서 사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과거에 좋았던 것을 기억하고 현재가 좋지 않은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가 가장 좋은 상태인 사람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이 아니겠는가.

교훈: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과거에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금요일 12월 1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높고 거룩한 특권을 받았던 자가 겪은 이 경험이 가르치는 교훈은 실로 엄숙하다. 게하시의 행동은 경이로운 빛을 받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업에 호감을 나타냈던 나아만의 행로에 장애물을 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하시가 행한 기만은 변명을 할 여지가 없다. 그는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가 되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그의 동료들로부터 격리되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잠 19:5). 사람들은 저희 악한 행위를 인간의 안목에서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게하시는 엘리사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게하시가 나아만에게 한 말과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장면의 세세한 부분까지 나타내 보이셨다.”(선지자와 왕, 25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의 삶에서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 나타나는 징후는 무엇입니까? 돈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돈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미치는 재물의 지배력에 관하여 십일조와 헌금이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사업과 헌금하는 일이나 구제하는 일이 부담이 될 때 자신을 점검해봐야 한다. 십일조와 헌금은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믿고 생활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2. 목요일 교과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교과반에서 나눠봅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쉽게 놓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생명을 얻고 더욱 얻는 문제이다. 게하시의 안목이 될 때 그렇게 된다.

3. 게하시는 어떻게 자신의 속임수를 감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고 있었고, 대단한 기적들도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주인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숨겼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을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게하시는 가난한 선지자의 생도들을 도운 다는 소위 합리화의 논리를 마음에 생각해 두었다. 우리는 성경의 원리와 합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할 때 그럴듯한 논리를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일에 상당히 익숙한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4. 왕하 5:17~19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림몬의 신당에서 절하는 문제에 관하여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이해를 구했던 사실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그리고 어떤 경우에 이 교훈을 핑계로 삼지 말아야 할까요?
* 아직도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그가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면 아람의 군대장관 자리를 떠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기본 원리에 맞지 않는 일을 도모하면서 나아만의 경우를 핑계로 삼으면 안 된다.

5. 다른 이들을 섬기는 실제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 성경의 가르침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강필운님의 댓글

강필운 작성일

항상 감사합니다..

김성민님의 댓글

김성민 작성일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무궁화님의 댓글

무궁화 작성일

감사합ㄴㅣ다 큰 은혜를 받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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