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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 하나님의(印)과 짐승의 표(表)-(2)-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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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6-12 02:00 조회1,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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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 II

                               (06월 17일 (안) / 일몰: 오후 7시 56분) 


<기억절(記憶節)>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 


<서언(緖言)>

○.계시록 예언(豫言)의 말씀은 짐승의 세력(勢力)에 대하여 교황권(敎皇權)은 적(敵) 그리스도의 역할(役割)로 진리(眞理)를 왜곡(歪曲)시키며, 그는 정치 세력(政治勢力)과 결탁(結託)하여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키는 자들이 사회 통합(社會統合)과 유익(有益)에 해(害)를 끼치는 자(者)로 취급하여 박해(迫害)나 핍박(逼迫)과 시련(試鍊)을 가(加)할 것이다, 

즉 “짐승의 표(表)” 예언은 시대(時代)를 거슬러 올라가는 불경건(不敬虔)한 종교적(宗敎的) 박해(迫害) 사슬의 마지막 고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압력(壓力)에 굴복(屈伏)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信賴)하며 따르는 성도(聖徒)들이 하나님의 인(印)을 받을 사람들이다.


○.종말(終末)의 때에 우리는 분명히 한 쪽을 선택(選擇)해야 할 것이다. 어린양 되시는 구주(救主) 예수 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율법(律法)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 될 것인가. 이 선택은 결코 누가 대신해줄 수 없으며 반드시 본인이 한쪽을 선택해야 함을 명심하자, 특히 짐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도(聖徒)들을 괴롭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恩惠)와 승리를 바라보며 인내(忍耐)함으로 끝까지 이겨낼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계명(誡命)을 지키며 오직 예수 믿음만으로 우리의 구속주(救贖主)이시며 중보자(仲保者) 되심을 굳게 믿는 성도들이 됩시다.

 

(06월 11일) (일)  <죽게 되었던 상처(傷處)>


(Q)~(계시록 13:12) 절의 “죽게 되었던 상처(傷處)가 나은지라”의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무슨 뜻이며 이 예언의 성취(成就) 여부(與否)는?


(A)~역사적(歷史的)으로 A.D 538년부터~예언적 기간이 끝나는 A.D 1798년에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던 교황권(敎皇權)이 그 자리에서 추출(抽出)됨으로 (다니엘서 9:24~27절)의 70 이레의 예언 성취와 (계시록 13:5절과 12절)의 예언들이 정확히 성취(成就)되었다.

<(성경의 연·월·일 계산법 (민수기 14:34 절, (에스겔 4:6절), (다니엘서 9:24~27절)의 70이래 해석 참조)>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勢力)”은 세계적인 “거짓 예배의 체제(體制)”를 상징(象徵)한다. 


(06월 12일) (월)  <배교(背敎)하는 일>


(Q)~(살후 2:3~4절, 9~12절)에서 바울이 예언하는 적(敵)그리스도인 짐승을 식별(識別)하는 표(表)와 (다니엘서 7장)의 작은 뿔과 (계시록 13장~14장)의 짐승으로 등장하는 행위(行爲)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일들을 수행(遂行)하는가?


(A)~다니엘과 바울과 요한이 말하는 마지막 때에 배도하는 종교의 탈을 쓴 체제가 등장할 것을 예언(豫言)하는바, 적(敵)그리스도인 짐승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서 “배교(背敎)하는 일” “불법(不法)의 사람” “큰 기만자(欺瞞者)” “작은 뿔”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妥協)하고” “인간의 전통(傳統)을 복음으로 둔갑(遁甲)시키며, ‘성경의 진리(眞理)에서 멀어진 종교 체제(宗敎體制)를 일컬어서 ”배교(背敎)하는 일을“하는 것 등을 말한다. 사탄의 대리자인 적(敵) 그리스도인 짐승의 본질은 자기를 경배(敬拜)하게 하려는 것으로,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무시(無視)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도 여전히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망각(忘却)하지 말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06월 13일) (화)  <사탄의 최후(最後) 전략(戰略)>


(Q)~ 사탄의 최후전략(最後戰略)으로 마지막 전략(戰略)은 어떻게 진행(進行)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계시록 17:12~14절, 다니엘서 7:20 절 참조)


(A)~지난 과거역사(過去歷史)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 시대에 자행(恣行)했던 국가의 권력과 결합(結合)된 교회(종교(宗敎)의 권위(權威)야말로 인간의 생명존중(生命尊重)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聖徒)로 인하여 자신들의 목적과 계획의 방해자(妨害者) 및 사회의 안정(安定)과 보호(保護)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과거(過去)에 폭정(暴政)을 답습(踏襲)할 것이 ”사단의 최후 전략(戰略)“임을 예언해 주시고 있다. 이러으로 우리는 남은 자손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구체적(具體的)으로 알 수는 없지만 어떠한 일이 닦아오더라도 깨어 영적(靈的)으로 준비(準備)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06월 14일) (수)  <짐승의 표(表)> 


(Q)~”짐승의 표(表)“는 어디에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짐승의 표(表)”를 받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區分)하는 두 가지 특징(特徵)은 무엇인가? (계시록 14:9절 14:12 절, 신명기 6:8절, 신명기 11:18 절) 참조


(A)~”짐승의 표(表)“는 이마나 손에 찍힌다. 이마는 양심(良心), 이성(異性), 판단력(判斷力)이 있는 마음을 상징(象徵)하지만, 반대(反對)로 ”손(手)“은 행동(行動)과 행위(行爲)를 상징(象徵)한다. ”한 무리“는 짐승에게 경배(敬拜)하고, 또 “한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誡命)의 넷째 계명인 안식일(安息日)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로 구분(區分)이 된다. 성경의 예언은 미래에 세계적인 급격한 정치적(政治的)으로 사회적(社會的)으로 종교적(宗敎的)으로 도덕적(道德的)으로 변화(變化)가 강력(强力)하게 요구(要求)될 것인데 그 변화(變化)에서 ”일요일준수(日曜日遵守)가 강요(强要)될 것이며 그것이 “짐승의 표(表)”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에 의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는 반사회적(反社會的)인 자로 몰려 핍박(逼迫)과 박해(迫害)를 받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다니엘과 같이 충성(忠誠)을 다할 것이다.


(06월 15일) (목)  <안식일(安息日) 시험(試驗)>


(Q)~”짐승의 표(表)“인 ”일요일(日曜日)”과 하나님의 넷째 계명(誡命)인 ”안식일 계명(安息日誡命)”에서 “다른 아홉 가지”의 계명(誡命)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출애굽기 20:8~11절) 참조


(A)~”짐승의 표(表)“인 ”일요일(日曜日)“ 사람의 권위(權威)로 상징(象徵)하는 모든 사람이 쉬는 날로 ”쉼의 날“과 ”SUN 태양신(太陽神)”을 나타날 뿐이지만, ”안식일(安息日)“은 십계명중에 중심에 있으며, 세 가지 요소(要素)가 포함되어 있다. 넷째 계명에는 진품인장(眞品印章)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인장주인(印章主人)의 이름이 있으며, “주 너의 하나님” (출 20:10). 

(둘째), 인봉(印封) 하는 자의 칭호(稱號)가 있다.

      "지으신"(출 20:11) 여호와, 또는 창조주(創造主)가 있고, 

(셋째), 인봉(印封) 하는 자의 영토(嶺土)가 표시(標示)된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출 20:11).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와 주권이 담겨 있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인(印)을 받는 것이다. 


○. 안식일(安息日) 의의(意義) 

  1. 창조(創造)의 기념(記念) 창 2:1-3, 출 20:11)

  2. 인류(人類)의 행복(幸福) (막 2:27-28, 창 2:3)

  3. 성별(聖別)의 표(表) (겔 31:13, 16), (출 31:12-14, 16)

  4. 구속(救贖)의 표(表) (신 5:15, 겔 20:20) 

  5. 만물(萬物)의 주권자(主權者)는 하나님이심을 상기(想起)시켜 주기 위(爲)하여 (출 20:11, 시 111:4)

  6.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경배(敬拜)하도록 하기 위하여 (출 20:8, 사 66:23, 출31:17)

  7. 우상숭배(偶像崇拜)에서 보호(保護)하기 위하여 (레 26:1-2)

  8. 언약관계(言約關係)의 표징(表徵) (출 31:16-17)

  9. 충성(忠誠)의 시금석(試金石) (출 16:23-30) (계 14:12) 

 10. 시간(時間)의 성소(聖所) (사 58:12-14)

 11. 하늘 안식(安息)을 맛보는 것입니다. (히 4:1- 히 4:9-11)







******<말미부록(末尾附錄)>**************





○.<법률(法律)>

인간(人間) (계시록 2:9, 13, 15절; 6:8, 12, 15절 )과 

신성(神性) ( 스 7:12, 14, 21, 25, 26) 모두에 사용되는 아람어 다트) 


○.<법(法)>

인간의 법은 권위(權威)를 가진 자들에 의해 마음대로 변경되고 그러한 변경은 예언의 주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나님의 법을 언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교황권이 신성한 법을 바꾸려고 노력했는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성경에 계시가 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수많은 교리와 관행을 도입한 초기 기독교 세기의 대배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대담한 변화는 매주 예배일의 문제였습니다. 배교(背敎)한 교회는 일요일 예배 도입에 책임이 있음을 거리낌 없이 인정하며 그러한 변경을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G.C 446) 


○.사제(司祭)를 위한 권위 있는 교리 문답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즉 종교를 배반한 교회]는 지혜로 안식일 기념을 '주님의 날'로 옮기도록 정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교리서, Donovan 번역, 1829년 에드. 358쪽). 

이 교리 문답은 이 대공 의회의 명령에 따라 작성되었으며 교황 비오 5세의 후원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신약 시대 내내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로 일곱째 날을 지켰다(참조 행 17:2 주석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의 전환은 AD 150년 이전에 시작되어 약 3세기 동안 계속된 점진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일요일 준수에 대해 역사적으로 최초로 언급한 내용은 바나바의 서신 ( 15장 )과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명 ( 67장 )에 나오는데, 둘 다 AD 1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둘 다 안식일 준수를 비난하고 일요일. 일요일이 "주의 날"이라는 확실한 최초의 언급은 외경인 베드로의 복음서 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Micellanies ,v. 14), 2세기 말경. 


○.AD 132~135년 Bar Cocheba의 유대인 반란 이전에 로마 제국은 유대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기독교를 유대교 종파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반란의 결과로 유대인과 유대교는 불신을 받았습니다. 뒤이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이 유대인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음 3세기 동안 기독교 저술가들이 안식일 준수를 "유대화" 로 반복해서 언급하고, 기독교인이 일요일을 성스러운 날로 준수했다는 역사적 언급이 유대 반란 이전에는 없었다는 사실은 그 시기를 가리킨다. 서기 135~150년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의 신성함을 주일의 첫날에 붙이기 시작한 때입니다.


○.그러나 일요일 준수는 안식일 준수를 즉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동반하고 보완하는 것입니다. 수 세기 동안 기독교인은 양일을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3세기 초에 터툴리안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조금 후에 외경인 사도 헌법 (ii. 36)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과 주일 축제를 지키라”라고 권고했습니다.

4세기 초까지 일요일은 공식적으로 안식일보다 더 선호되었습니다. 그 시대 최고의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는 시편 92편에 대한 주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첫째가는 것이요, 유대인의 안식일보다 더 존귀한 것이니라.”


○.일요일에 대한 우선권을 표명한 가톨릭교회의 첫 공식 조치는 4세기 라오디게아 공의회에서 취해졌다. 이 공의회 제29조는 “기독교인은 토요일[안식일]에 유대 교화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그날에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날을 특별히 존중할 것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만 있으면 그날에는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교인으로 드러나면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차단될 것입니다.” 이 공의회는 안식일 예배를 규정했지만, 그날을 일하는 날로 지정했습니다. 일요일 준수를 명하는 최초의 교회법인, 이 율법은 안식일 준수를 피하는 이유로 유대교화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안식일 준수에 대한 엄중한 명령은 많은 사람이 그날에도 여전히 "유대교화"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4세기와 5세기의 저술가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관행에 대해 거듭 경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약 400년경에 크리소스톰은 많은 사람이 여전히 유대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따라서 유대 화하고 있음을 관찰했습니다.


○. 당대의 기록은 또한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 있는 교회들이 일요일 준수를 장려하는 데 주로 책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서기 440년경에 교회 역사가 소크라테스는 "비록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가 매주 안식일에 성스러운 신비를 기념하지만,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어떤 고대 전통 때문에 이 일을 중단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교회 역사 v. 22 ). 거의 같은 시기에 Sozomen은 "콘스탄티노플과 거의 모든 곳의 사람들이 안식일과 안식일에 함께 모입니다. 이 관습은 로마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절대 지켜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 가지 사실이 분명합니다.

 (1) 기독교인 사이의 일요일 신성함의 개념은 주로 그들을 유대인과 동일시하여 박해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 관행을 피하려는 그들의 노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 로마 교회는 일찍이 일요일을 선호하는 경향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초대 교회에서 안식일을 희생시키면서 일요일에 부여된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은 로마의 점진적인 권력 상승과 밀접하게 유사합니다.

 (3) 마지막으로, 로마의 영향력이 만연하여 일요일 준수를 교회법의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마리아 숭배, 성인과 천사 숭배, 형상 사용, 성령을 위한 기도와 같은 다른 많은 관습과 마찬가지로 일요일 준수가 교회법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죽은. 일요일의 신성함은 로마 주교가 교회에 도입한 다른 비성경적인 관행과 같은 기초 위에 있습니다.


○.때와 때와 때를 나누는 것.

여기서 "시간"으로 번역된 아람어 'iddan '은 ch에도 나온다. 4:16, 23, 25, 32. 이 구절들에서 '잇단'이라는 단어는 의심할 바 없이 "일 년"을 의미한다 (참조 4:16 주석 ). 역시 '잇단' 에서 유래한 "때"로 번역된 단어는 마소라 학자들에 의해 복수형으로 지적되었지만,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단어가 쌍수로 지적되었어야 하므로 "두 번"을 의미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나누다"로 번역된 단어 pelag 는 "절반" 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RSV는 "한 때, 두 때, 그리고 반 때"라는 번역이 더 적합합니다. 


○.이 같은 기간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평행 예언들과 비교하면, 그러나 다른 명칭을 사용하여 관련된 기간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12:14에서 그 기간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되어 있다…. 동일한 기간이 앞 장에서 “천 이백육십 일”( 계12:6 )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됩니다. 계11:2, 3 에서 “천이백육십 일”이라는 표현은 “사십이 개월”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세 때 반의 기간은 42개월과 같고, 다시 1260일과 같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12개월 또는 360일을 나타냅니다. 이 기간은 예언적 해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60일 또는 30일로 된 12개의 달로 된 예언적 해를 가변 길이(29일과 30일로 된 달이 모두 있는)의 태음력인 유대 달력 연도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365일의 태양력 연도(Vol. II, pp. 111, 112 참조). 예언적 해는 예언적 360일을 의미하지만, 예언적 날은 태양년을 의미합니다. 


○.이 구분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360일 예언적 해는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입니다. 그러므로 360일은 문자적인 날이 아니라 예언적인 날입니다. Num. 14:34 및 겔. 4:6, 상징적 예언에서 하루는 문자적인 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언적 해 또는 “때”는 문자 그대로 360년을 나타내며, 이와 유사하게 1260년이나 2300년 또는 다른 예언적 날수는 문자 그대로의 실제 햇수(즉, 태양에 의해 제어되는 계절에 의해 표시되는 완전한 태양년)를 의미합니다…. 각 태음력의 일수는 가변적이었지만, 유대인의 달력은 이따금 한 달을 추가하여 수정되었습니다(참조 제2권, 104면). 햇수는 항상 같은 수의 자연 태양년과 같습니다.


○.연일 원칙의 타당성은 이 방법으로 계산된 다양한 예언, 특히 1260일과 70 이레의 정확한 성취로 입증되었습니다. 문자적으로 3년 반이라는 기간은 법왕 권에 관한 1260일 예언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연일 원칙에 의해 그 기간이 1260년으로 연장될 때 그 예언은 독특한 성취를 맞이하게 됩니다.


○.1790년 7월, 30명의 로마 가톨릭 주교가 프랑스 혁명 정부 지도자들 앞에 나타나 프랑스 성직자들을 교황의 관할권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이 정부에 직접 책임을 지게 하는 법안에 항의했습니다. 만일 혁명의 지도자들이 “우리 선조들의 경건과 국가의 모든 법률에 따라 유지되고 1,200년 동안 최고였던 종교를 제외하고” 모든 종교를 자유로이 남겨두려고 한다면 그들은 물었습니다. 국교?” (A. Aulard, 기독교와 프랑스 혁명, p. 70).


○.작은 뿔의 예언적 기간은 동고트족이 로마 포위 공격을 포기하고 아리우스의 통제에서 해방된 로마의 주교가 533년 유스티니아누스 칙령의 특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게 된 AD 53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 교황청 ” (참조 8절 주석 ). 정확히 1260년 후(1798), 이탈리아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눈부신 승리로 교황은 프랑스 혁명 정부의 손아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저것“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가능하다면 로마 교회의 일치 중심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군과 계몽된 정치가의 가장 두드러진 자질을 당신의 인격으로 통합하는 당신은 그것이 실행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목표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 Ibid. , p. 158). 이러한 지시와 나폴레옹의 명령에 따라 Berthier는 프랑스 군대와 함께 로마에 입성하여 교황의 정치적 통치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교황을 포로로 데려가 프랑스로 데려가 망명 중에 사망했습니다.

1798년의 교황권의 전복은 교황권의 점진적인 쇠퇴와 관련된 긴 일련의 사건들의 절정과 또한 1260년의 예언적 기간의 종결을 표시합니다. 


○.(요한계시록 13:1, 2, 11). 소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

 큰 붉은 용, 표범 같은 짐승, 어린 양 같은 뿔을 가진 짐승의 상징 아래 특히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그분의 백성을 박해하는 데 관여할 지상 정부들이 요한에게 제시되었습니다. 전쟁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된다. 거룩한 여인과 그녀의 자녀들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백성은 소수로 크게 대표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남은 자만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요한은 이들에 대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The Signs of the Times, 1899년 11월 1일)


○.곧 이해(理解)하게 될 것

 계시록 14장은 가장 깊은 관심을 끄는 장입니다. 이 성구는 모든 의미에서 곧 이해될 것이며, 계시자 요한에게 주어진 기별은 분명한 말로 반복될 것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4년 10월 13일).


○.(계시록 14:6-12) 세 천사(天使)의 정체(正體)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이르는 능력으로 두 번째 오십니다. 이 사건을 위해 인간을 준비시키기 위해 그분은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을 보내셨습니다. 이 천사들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권능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Letter 79, 1900).


○.(계시록 14:6-12 (요한계시록 18:1-5) 충성(忠誠)스러운 회사

 교회들은 계시록 18장에 묘사된 대로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의 메시지가 주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의 원칙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4:6-10 인용됨]

 명백히 온 세상이 짐승의 표를 받은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무리를 보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라고 그는 선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원고 92, 1904).


○.(계시록 14:6-12 많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임

 하나님의 파괴적인 심판의 시간은 진리가 무엇인지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시간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부드럽게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그분의 손은 여전히 ​​구원을 위해 내밀어져 있고 들어가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처음으로 진리를 듣는 많은 사람이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6년 7월 5일).


○.최종 분쟁(最終忿爭)의 실제(實際) 문제(問題)

 [요한계시록 14:9, 10인용] 짐승의 표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무서운 위협을 피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관심을 위한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짐승의 표와 그의 형상이 무엇인지 아는 데 관심이 없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표와 정반대입니다. [출애굽기 31:12-17인용.]

 안식일 문제는 온 세상이 참여하게 될 대쟁투의 쟁점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4-10 인용됨]이 전체 장은 반드시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입니다. [요한계시록 13:11, 15-17 인용됨] (원고 88, 1897).


○.(계시록 14:9-12 짐승의 표는 무엇인가?

 요한은 주의 첫날을 지킴으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구별되는 백성을 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날의 준수는 짐승의 표이다. (Letter 31, 1898).


○.(계시록 14:9-12 (요한계시록 13:16, 17) 짐승의 표에 대한 경고

 셋째 천사의 기별이 세상에 보내어져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나 그의 형상의 표를 이마와 손에 받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였느니라. 이 표를 받는다는 것은 짐승이 한 것과 같은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동일한 생각을 옹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를 받는 모든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라.”….

 진리의 빛이 너희에게 나타났거든 넷째 계명의 안식일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말씀에 일요일 준수의 근거가 없음을 나타내거늘 너희가 여전히 거짓 안식일을 고수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성일이라 부르시는 안식일에 너희는 짐승의 표를 받는도다. 이것은 언제 발생합니까? 일요일에 노동을 쉬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명령에 순종할 때, 성경에 일요일이 보통 일하는 날 외에 다른 날이 아님을 알면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인을 거부합니다.

 우리가 이마나 손에 이 표를 받으면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양심적으로 주의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 찍혀 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897.7.13.).



○.(계시록 14:9-12 삶과 죽음의 질문(質問)

 이 메시지는 앞의 두 메시지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큰 소리로 주어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즉, 성령의 능력으로. 이제 모든 것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 기별이 주는 감동은 그것이 선포되는 진지함과 엄숙함에 비례할 것이다(원고 16, 1900).


○.(계시록 14:9-12 (1~4절) 보이는 표식(表式)이 아님

 대쟁투의 결과에서 두 진영이 전개되는데,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는 자들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자들, 즉 “아버지의 이름이 그들의 이름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이마.” 이것은 눈에 보이는 표시가 아닙니다(The Signs of the Times, 1899년 11월 1일).


○. (계시록 18:1-18; 데살로니가후서 2:7-12) 불의(不義)의 신비(神祕)를 경계(警戒)하라  

셋째 천사의 기별은 우리가 이 지구 역사의 끝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거룩한 사업을 맡은 자들을 위협하는 위험을 내게 제시하셨다. 그들은 이 메시지가 전 세계에 가장 중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하여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큰 역할을 하는 죄악의 신비를 어떻게 경계해야 하는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강국들에 의한 외적인 행진이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그분의 백성을 박해한 것으로 구별된 사람들의 사악한 성격과 유혹적인 영향력을 요한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박해하는 세력이 되기 위해 높은 지위에서 떨어진 신비한 바벨론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 권세의 진노 대상이 된다[요한계시록 18:1-8 인용](원고 135, 1902).


○.(계시록 14:9-12 테스트 시간으로 문제가 명확해집니다.

 성령의 역사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오직 진리를 믿는 자들이 진리로 성화 되고, 높고 거룩한 원칙에 따라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그것을 짓밟는 자들 사이에 분계선을 높고 고상한 의미로 보여주는 것을 봄으로써만 경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발아래.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과 가짜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 사이의 차이를 상징합니다.

 시험이 오면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일요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진리를 들은 후에 이날을 계속해서 거룩하게 여기는 사람들인 때와 법을 변경시키려고 생각한 죄악의 사람 서명을 지니고 있습니다(편지 12, 1900).


○.(계시록 14:9-12 드라마의 마지막 막

 진실을 거짓으로 대체하는 것이 드라마의 마지막 막이다. 이 대속이 보편적으로 될 때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법이 하나님의 법보다 높을 때, 이 땅의 권세들이 사람들에게 주일의 첫날을 지키도록 강요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가 왔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가 그의 위엄으로 일어나시고 땅을 심하게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 거민들의 죄악을 벌하기 위해 그분의 자리에서 나오실 것입니다(리뷰 앤드 헤럴드, 1901년 4월 23일).


○. (요한계시록 19:1-4; 계시록 7:2, 3; 계시록 13:13, 16; 출애굽기 31:13-17; 데살로니가후서 2:3, 4) 지구의 역사. 사탄은 자신을 신으로 만들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인간의 양심을 지배할 권리를 가진 자로 나타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 제도를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의 자리에 세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쓴다. 죄의 사람의 관할 아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정에 완전히 반대되는 거짓 표준을 높였습니다. 각 안식일 제도에는 그 저자의 이름이 있으며, 각각의 권위를 나타내는 지울 수 없는 표시입니다. 주일의 첫날은 거룩함의 입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노력하는 죄의 사람의 생산물입니다.


○.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정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13, 17, 16 인용됨]

 이처럼 충성스러운 자와 불충 성스러운 자가 구별됩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자 하는 자는 넷째 계명의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참 안식일 대신 사람이 만든 제도를 받아들인 불충 성스러운 자들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구별하는 표시입니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01년 4월 23일)


“하나님께서는 짙은 어두움으로 인간으로서의 당신의 아들이 당하는 마지막 고민을 가리셨다.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를 본 모든 사람은 그분의 신성을 확신했다. 한 번 인간에게 보였던 그 얼굴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가인의 얼굴이 살인자로서 그의 죄를 나타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얼굴은 무죄와 침착과 자비심이 충만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분의 고소자들은 하늘의 인(印)에 주의하지 않았다. 조롱하던 군중들이 고뇌의 긴 시간 내내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으나 이제 그분은 자비스럽게도 하나님의 외투로 가리워지셨다.”(소망, 754)



○.“하나님께서는 그 동일한 선지자를 통하여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사 8:16)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의 율법의 인은 넷째 계명에서 발견된다. 십계명중 넷째 계명만이 율법을 주신 분의 이름과 직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 넷째 계명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심을 선포하고 그 어느 사람보다도 가장 존경과 예배를 받을 권리가 그분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계명 외에는 누구의 권위로 이 율법이 반포되었는지 십계명에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법왕권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이 변경되자 율법에서 인(印)이 제거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넷째 계명을 창조주의 기념 혹은 그분의 권위의 표로 올바른 위치에 회복시키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쟁투, 451)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마쳐지면 세상의 죄인들을 위한 자비의 탄원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사업을 다 이루었다. 그들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행 3:19)르는 “늦은 비”(호 6:3)를 받았으므로 그들 앞에 있는 시련의 때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지상에서 돌아온 한 천사는 그의 일이 마쳐진 것을 보고한다. 마지막 시험이 이미 세상에 주어졌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것이 입증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7:2)을 받았다. 그때 예수 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중보 사업을 그치신다. 그분께서는 손을 들어 큰 음성으로 “되었다”(계 16:17)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계 22:11)고 엄숙히 선언하시자 온 하늘의 천사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는다. 생사 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지워 없애셨다. 주님 백성의 수효는 찼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는 바야흐로 구원의 후사들에게 주어지고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통치하시게 된다.”(쟁투, 6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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