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말하는 증인들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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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10-22 01:00 조회48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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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말하는 증인(證人)들
(10월 26일 (안) / 일몰: 오후 5시 40분)
<기억절(記憶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제4과 초점 & 맥(脈)>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말하는 증인들을 요한은 몇 명을 등장시킨다..
⑴.침례 요한의 증언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묘사(描寫)하여 구약(舊約)의 제사제도(祭祀制度)를 가리키는 언약(言約)을 성취(成就)하실 그분(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증언(證言)하며
⑵.하나님의 어린양이란 바로 구약의 제사제도(祭祀制度)를 가리키는 언약의 성취하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증거하고 있으며 이는 요한복음의 목적을 알 수가 있고
⑶.요한의 두 제자인 안드레와 요한이 메시아를 만난 과정과 확신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언하며
⑷.빌립과 나다나엘의 이야기로 빌립은 믿음이 부족하였을뿐더러 편견(偏見)에 사로잡혀있는 나다나엘을 신뢰와 우정으로 인하여도 예수님을 만나게 하므로 이후 예수님을 보는 편견에서 올바로 예수님의 메시아를 증언하며
⑸.이스라엘의 존경받는 교사이자 신혜드린의 부유한 의원 니고데모도 영적무지(靈的無知)에서 거듭남을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확신하는 증언자가 되었다.
⑹.요한은 오늘 등장시키는 증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바로 구약성경이 약속한 메시아이심을 증거 한다.
10월 20일(일) 침례(浸禮) 요한의 증언(證言)
(Q)~침례(浸禮) 요한은 어떠한 사람이며, 자신의 사역(使役)과 사명(使命)을 어떻게 설명하였는가? (요한복음 1:19~23절)
(A)~㈎. 메시아의 강림을 오랫동안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일어났다. 연로한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용하고 거룩한 생애에서 그 당시의 악하고 흑 안 한 시대 가운데 한 별과 같이 믿음의 빛이 비쳐 나왔다. 이 경건한 부부에게 한 아들이 약속되었는데 이 아들은 “주 앞에 먼저 가서 그 길을 예비”할 자이었다.
㈏. 성령(聖靈)이 사가랴에게 임하자 그는 자기 아들의 사명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말로 예언하였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가서 그 길을 예비(豫備)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赦)함으로 말미암는 구원(救援)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안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 “예수와 침례 요한은 친척간(親戚間)이었고 그들 출생의 환경으로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서로 직접 대면해 본 적이 없었다.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생애(生涯)하였고 요한은 유대 광야(廣野)에서 생애했다. 이 두 사람은 크게 다른 환경 가운데서 다 은둔생활(隱遁生活)을 하였으므로 피차(彼此) 교통한 일이 없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섭리가 명하신 것이었다. (소망97)
⑴.요한은 여호와의 사자로서 나가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사상(思想)에 새 방향을 제시(提示)해야 했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 신성성(神聖性)을 인식(認識)시키고 하나님의 완전한 의(義)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야 했다.
⑵.그러한 기별자(奇別者)는 거룩해야 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居)하실 성전(聖殿)이 되어야 했다. 그는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건전한 체력과 정신적·영적 능력을 갖춰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식욕(食慾)과 정욕(情欲)을 지배할 필요가 있었다.
⑶.그는 광야(廣野)의 바위나 산(山)들처럼 주위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설 수 있도록 자기의 모든 능력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하였다.
⑷.침례 요한의 시대에는 재물에 대한 탐욕과 사치와 과시에 대한 사랑이 널리 퍼져 있었다. 관능적(官能的)인 쾌락(快樂), 먹고 마시는 잔치가 육체의 질병(疾病)과 쇠퇴(衰退)를 일으키고 영적지각(靈的知覺)을 흐리게 하고 죄에 대한 감각(感覺)을 무디게 만들었다.
⑸.“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광야(廣野)에서 살도록 지시(指示)하신 것은 그를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감화(感化)로부터 보호(保護)하여 특별한 사명(使命)을 위하여 그를 준비시키려 하심이었다. (소망 150)
⑹.“침례 요한 자신의 극기(克己) 생애 원칙은 메시아의 왕국의 원칙이었다. 요한은 이런 모든 것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원칙(原則)과 소망(所望)에 얼마나 어긋나는 것인가를 잘 알았다. (소망 217)
⑺.선구자(先驅者)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남김없이 마셔야 했던 그 잔(盞)을 마시고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소망, 217)
⑻.침례 요한은 빛이 아니지만, 빛에 대해 증거(證據)하고,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準備)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요 1:6~8)
⑼.침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며 그분의 증인으로서 사람들을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한 메시아의 증인(證人)이라고 말했다.
⑽.침례 요한의 교훈(敎訓)은 이 시대(時代)를 위한 주님의 사업에 진정으로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증거(證據)가 돼야 할 결정적인 기별을 갖게 될 것이다”. (증언 8권, 9).
10월 21일(월) 하나님의 어린 양
(Q)~침례(浸禮)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선포(宣布)를 하며,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진술(陳述)한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요?. (요한복음 1:29~37, 마가복음 10:45, 로마서 5:6, 베드로전서 2:24)
(A)~유대력의 첫째 달 14일, 곧 1500년간의 장구(長久)한 세월에 걸쳐 유월절(踰越節) 양(羊)을 잡아 오던 바로 그달 그날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를 잡수신 후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당신의 죽음을 기념하는 그 의식(儀式)을 제정(制定)하셨다. 바로 그날 밤에 그분께서는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위하여 악(惡)한 자들의 손에 붙잡히셨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요제의 곡식단이 표상한 실체(實體)로써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전 15:20), 곧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形體)와 같이 변(變)케 하” (빌 3:21) 실 분으로서, 또한 모든 의인의 모본(模本)으로 부활(復活)하셨다. (쟁투 399)
⑴.침례(浸禮)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羊)”으로 진술(陳述)한 것은 요한복음의 목적(目的)을 뒷받침하는데, 그것은 메시아의 사역(使役)과 본질(本質)에 대한 새로운 이해(理解)를 가져오는 것이다.
⑵.예수님는 실제로 희생제도(犧牲制度)의 약속(約束) 성취(成就)가 될 것이며, (창세기 3:15)에서 처음 주어진 구속주(救贖主)의 약속(約束)을 실행(實踐)함을 의미(意味)한다.….
⑶.예수께서 침례(浸禮)를 받으실 때 요한이 그분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지적(指摘)했을 때, 메시아의 사역(使役)에 새로운 빛이 비춰졌다. (소망, 136)
⑷.하늘은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조건에 일치되는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다.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속죄 제물로 주셨다. 그대들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되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4T 625)
⑸.가장 우선적(優先的)이고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救主)로 제시(提示)하여 영혼을 녹이며 굴복(屈伏)하게 하는 것이다. 청중들에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을 제시(提示)하지 않고서는 어떤 설교(說敎)나 어떤 성경공부(聖經工夫)도 주어지지 말아야 한다. 모든 참된 교리(敎理)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모든 교훈(敎訓)은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힘을 받는다. (6T 53)
⑹.우리는 지상(地上)에 하나님의 사업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옹호(擁護)하고, 구주(救主)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으로 높이는 데 있어서 우리가 개인적(個人的)으로 어떠한 역할(役割)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9T 81)
⑺.구주(救主)께서는 그대들이 많은 영혼을 불신(不信)의 흑암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데려올 구원(救援)의 복음을 제시(提示)할 수 있게 해주는 은혜와 능력을 갖추고 언제나 그대들 곁에 계신다. 죽어가는 자들을 찾아가라. 그들의 주의(注意)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으로 이끌라. (그리스도인 문서선교 310)
⑻.우리는 지상(地上) 하나님의 사업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옹호하여 구주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요 1:29)으로서 높이는 데 있어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6T 32)
⑼.구원(救援)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 행함을 의지(依支)하던 것을 모두 버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온전히 신뢰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쟁투 255)
⑽.침례 요한이 메시아를 어린양으로 선포(宣布)한 것은 구원자(救援者)로서 제사제도(祭祀制度)가 가리키는 언약(言約)을 성취(成就)할 분이신 메시아를 증거(證據) 하는 요한복음의 목적(目的)을 뒷받침한다.
10월 22일(화) 요한의 두 제자(弟子)
(Q)~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증언(證言)을 들은 두 제자(弟子)는 누구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요한복음 1:35~39)
(A)~침례(浸禮) 요한의 두 제자, 즉 복음서 기자 안드레와 요한은 이미 요한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전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생님이 그들 앞에 서 계신 위대한 선생님인 예수님께 주의를 돌렸을 때, 그들은 그분을 믿고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안드레와 요한은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이고 판단적일 수 있었지만, 그들은 성령의 확신을 믿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침례(浸禮) 요한의 반박할 수 없는 진실성과 진실성을 신뢰했을 것입니다. (성경적 증언.)
⑴.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침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제자는 안드레(요 1:40)와 요한이었다. (요 1:37) (둘 중의 하나는 시몬의 형제 안드레였고 다른 하나는 전도자 요한이었다.)(소망 138)
⑵.“이튿날 두 제자가 곁에 서 있을 때 요한은 다시 예수께서 사람들 가운데 계신 것을 보았다. 요한의 얼굴은 다시 보이지 않는 분에게서 오는 영광으로 환하여졌다. 이어 그는 이렇게 외쳤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 말은 제자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요한을 떠나서 예수를 찾으러 갔다. 둘 중의 하나는 시몬의 형제 안드레였고 다른 하나는 전도자 요한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최초의 제자들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충동에 움직여 그들은 예수를 따랐다. 이는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기를 간절히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소망, 138)
⑶.요한이 그의 두 제자에게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宣布)한 것은 그들을 예수에게로 보내고자 함이었다. 이는 그리스도 앞에서 겸손해진 침례 요한의 신앙자세(信仰姿勢)를 잘 나타낸다(요 3:30).
⑷.그들(침예 요한의 제자)은 그의(예수님) 곁에 앉아서 그의 교훈을 들으려 했다. 그는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말한다.
⑸.현명(賢明)하고 깨우치게 하는 정신(精神)으로 예수를 따르게 하는 가장 강하고 거의 사로잡을 듯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요한이지만, 예수만이 죄를 짊어지신다.
⑹.침례 요한은 자기 제자 중 두 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중 하나인 안드레가 그의 형제를 찾아 그를 불러 구주께로 인도하였다. 빌립은 부름을 받자 나다나엘을 찾으러 나갔다. (소망 141)
⑺.두 제자는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침례 요한과 함께 있었다. 요한은 선언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36). 두 제자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구약(舊約)의 예언(豫言)을 성취(成就)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기별(奇別)을 들었다.
⑻.예수께서 침례 요한의 기별을 성취(成就)하신 분이며, 따라서 침례 요한보다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이해(理解)한 두 제자는 예수를 따르기 위해 요한을 떠났다.
⑼.“요한과 안드레가 제사장(祭司長)들과 관원(官員)들의 불신(不信) 정신을 갖고 있었더라면 예수의 발아래서 배우는 자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⑽.침례 요한이 전도할 때 성령의 부르심에 반응하였던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하늘 교사의 음성을 알아보았고 그분을 가리켜 메시아라고 증언하기 시작했다. 즉 요한복음 전체에서 강조되는 점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혀서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10월 23일(수) 빌립과 나다나엘
(Q)~빌립과 나다나엘의 믿음의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편견(偏見)의 해소(解消)도 신뢰(信賴)와 우정(友情)으로 극복(克服)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선교(宣敎)와 전도(傳道)에 활용하며 자신에게 적용(適用)할 교훈(敎訓)은? (요한복음 1:43~51)
(A)~㈎.“빌립은 나다나엘을 불렀다. 나다나엘은 침례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지적할 때에 무리들 가운데 있었다. 나다나엘은 예수를 보자 실망하였다. 수고와 빈곤(貧困)의 흔적(痕迹)을 지닌 이 사람이 과연 메시아일까? 그러나 나다나엘은 예수를 거절(拒絶)하기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요한의 기별(奇別)이 그의 마음에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소망, 139)
㈏. 편견(偏見)은 사람의 진정(眞正)한 가치(價値)를 보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만든다. 빌립은 아마도 이런 편견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법은 고상(高尙)한 철학적(哲學的), 신학적논증(神學的論證)이 아니라 자신이 진리(眞理)를 직접 경험(經驗)하도록 초대(招待)하는 것임을 알고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초대하여 직접 만나게 하였다. 신뢰와 우정은 편견을 치유(治癒)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⑴.벳새다 출신(出身)이었던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혹(疑惑)을 품고 어느 정도 선입견(先入見)에 빠져 있기는 했지만, 나다나엘은 진리를 찾는 정직(正直)한 욕구(慾求)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나왔다. 이제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의 믿음은 자기를 예수께로 인도한 자(빌립)의 믿음을 능가(凌駕)했다. (소망, 140)
⑵.빌립은 그분을 모세와 선지자가 기록한 분으로 소개하면서 “나사렛 예수”라는 호칭을 덧붙였다. 그러나 나사렛이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나다나엘은 거부감을 나타냈다.
⑶.나다나엘은 나사렛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대해 편견(偏見)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변방(邊方)에서 결코 왕(王)이 나올 리가 없을 것이라고,
⑷.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단순(單純)하게 말했다. “와서 보라.” 나다나엘은 그대로 따랐다. 그는 가서 보았고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영접(迎接)했다.
⑸.나다나엘의 심중을 꿰뚫는 통찰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또 한 번 고양(高揚)된다. 결국, 나다나엘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요 1:49 절),
⑹.“나다나엘은 빌립이 불렀을 당시 조용한 숲속에 물러가서 요한이 선포(宣布)한 말과 메시아에 관한 예언(豫言)들을 명상(冥想)하고 있었다. 그는 요한이 선언(宣言)한 그분이 구속 주(救贖主)시라면 자기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祈禱)하였다. (소망, 139)
⑺.성령이 그에게 임하셔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위하여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확신시켰다. (소망, 139)
⑻.““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는 기별은 나다나엘에게 자기의 기도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으로 보였다. (소망, 140)
⑼.그러나 빌립은 아직까지도 흔들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의심(疑心)을 품은 말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덧붙였다. (소망, 140)
⑽.“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다나엘은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소망, 140)
◎. 빌립에 대한 신뢰(信賴)와 우정(友情)이 나다나엘이 가진 편견(偏見)보다 더 강(强)했다는 사실을 주목(注目)하여 생각해 보라.
10월 24일(목) 니고데모의 증언(證言)
(Q)~니고데모는 어떠한 사람이며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알고 있었으며, 예수님께 어떤 책망으로 충격적인 질문에 이후(以後) 거듭남의 삶으로 증언(證言)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요한복음 3:1~21)
(A)~㈎. “니고데모는 유대 나라에서 책임 있는 높은 지위(地位)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고등교육(高等敎育)을 받았으며 비범(非凡)한 재능(才能)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회의 영예로운 의원(議員)이었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의 교훈에 감동하였다. 그는 부자(富者)요 유식(有識)하고 명예(名譽)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초라한 나사렛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다. 구주(救主)의 입에서 나온 교훈들은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으며 그는 이 놀라운 진리에 대하여 더 많이 배우기를 원(願)하였다.”(소망, 167)
㈏.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를 모함함으로 그 조상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으며 그 결과로 새로운 재앙이 나라에 임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니고데모도 이런 생각에 동감이었다. 산헤드린 회의에서 예수에 대해 취해야 할 조치를 강구하고 있을 때 니고데모는 주의와 자제를 조언했다. 만일 예수께서 진실로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면 그의 경고를 거절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제사장들은 감히 이 권고를 무시하지 못했으며 얼마 동안은 구주께 대항하는 공공연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소망, 167~168)
⑴.니고데모는 자기는 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구주(救主)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놀랐던 것이다. 그는 그 비유(譬喩)의 말을 자기 자신에게 밀접하게 적용하는 것에 화가 났다. 바리새인의 교만(驕慢)이 진리를 탐구하는 자의 정직(正直)한 욕망(欲望)과 싸웠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관원(官員)이 된 자기의 지위(地位)를 존중하지 않으시고 평소처럼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⑵.니고데모는 놀라서 침착성을 잃고 풍자(諷刺)가 가득 섞인 말로 그리스도에게 대답하였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예리(銳利)한 진리가 양심을 찌를 때에 많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니고데모도 육(肉)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聖靈) 일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의 마음속에는 신령한 것에 반응하는 것이 없었는데 이는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 되기 때문이다.
⑶.구주(救主)께서는 논쟁(論諍)을 논쟁으로 대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엄숙(嚴肅)하고도 조용한 위엄(威嚴)을 가지시고 손을 드시면서 더욱 확신하고 진리를 강조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聖靈)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⑷.니고데모는 그리스도께서 물로 침례를 받을 것과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을 새롭게 할 것을 언급하시는 말씀임을 알았다. 그는 자기가 지금 침례 요한이 예언하던 분 앞에 있음을 확신하였다.
⑸.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육(肉)으로 난 것은 육(肉)이요 성령(聖靈)으로 난 것은 영(靈)이니.” 본래 사람의 마음은 악(惡)하다. 그러므로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까 하나도 없”(욥 14:4)다. 어떤 인간의 발명품(發明品)이라도 죄(罪)지은 영혼을 위한 치료제(治療劑)를 발견할 수 없다.
⑹.니고데모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 뜻을 예증하시기 위하여 바람을 사용하셨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는 예수의 말씀을 들은 이래로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을 열심히 연구했다. 연구하면 할수록 이분이 바로 오시기로 되어 있었던 바로 그분임을 더욱 굳게 확신하게 되었다. “(소망, 168)
⑺.예수님의 말씀은 곧 니고데모가 명백한 진리의 말씀에 화를 내는 대신 영적으로 무지한 자신에 대하여 깊은 겸손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교훈을 암시했다. 그리스도께서 매우 엄숙한 위엄으로 말씀하셨으나 표정과 목소리에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셨으므로 니고데모는 자기의 수치스러운 형편을 깨달았을 때도 성내지 않았다.
⑻.인간의 판단으로는 니고데모의 생애는 외롭고 존경할 만한 것이었으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때 그는 자기의 마음이 부정하고 생애가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⑼.예수께서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니고데모는 감람산 상의 교훈 곧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교훈을 기억하였다. 그 은밀한 회견에서 비쳐오는 빛이 갈바리 위의 십자가를 환히 비췄으며 니고데모는 예수가 세상의 구주임을 보았다.
⑽.이제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므로 그분에 대한 그들의 애착심을 더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제자들 자신도 예수님의 추종자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고 있을 때 요셉과 니고데모는 그들을 돕기 위하여 담대히 나아왔다. 이때야말로 부자요 존경받는 이들의 도움이 크게 필요한 때였다. 돌아가신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제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부와 세력이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적의로부터 제자들을 잘 보호해 주었다.”(소망, 773)
◎. 어떤 신앙(信仰) 안에서 자라거나 믿음의 유산을 가진 것이 구원(救援)을 보장(保障)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셨고 그에게 거듭남이 필요하다 말씀하셨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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