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창조와 타락(질문, 대답, 부가설명)0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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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2-01 23:44 조회9,171회 댓글3건본문
2월 9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분
기억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연구 범위: 창 3:1~15, 마 4:3~10, 골 2:20~23, 요 3:17, 계 14:6~7.
제럴딘(Geraldine)이라는 여자 인물이 나오는 코미디가 있었다. 한번은 그녀가 목사의 아내로 등장하여 매우 비싼 새 드레스를 입고 집에 들어왔다. 그녀의 남편(동일한 코미디 배우가 연기함.)은 화가 났다.
그러자 제럴딘은 날카롭게 반응하였다. “악마가 이 드레스를 사도록 날 꼬드겼어요! 나는 드레스를 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악마가 나를 계속 괴롭혔다고요!”
우스갯소리이다. 그러나 이 세상 또는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은 사탄이 절대 웃음거리가 아님을 보여 준다.
어떤 사람들에게 악마는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고대의 미신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경은 확실하다. 사탄은 패배한 원수이지만(계12:12, 요일 3:8 참고), 아직도 지구에서 활동하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최대한 큰 피해를 입히기로 작정한 존재이다.
아직 그의 공격을 받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승리를 주장하기 위해, 우리는 이번 주에 사탄의 최초 공격과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들을 살펴볼 예정이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인류를 향한 사탄의 첫 공격을 탐구하고, 에덴에서 하와가 겪은 유혹과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겪은 유혹의 역학 관계를 분석한다.
2. 느끼기: 우리의 의견과 경험이 말씀과 분명한 충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고 신뢰한다.
3. 행하기: 나의 견해나 지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기로 결심한다.
A.
2. 뱀의 유혹에 대응한 하와의 실패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뱀과 대화를 나눈 것이다. 하와는[사실 뱀과 대화를 나눌 때는 여자는 하와라는 이름이 없었다. 그냥 여자였다.(5과 화요일 문제를 보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더한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조심해야 한다. 하와가 자기 생각을 더했다고 하는 것은 신학자들의 해석이지 성경의 설명은 아니다. 다음 증언을 읽어보라.
[“동산 한가운데 생명나무 가까이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가 당신께 대한 그들의 순종과 믿음과 사랑의 담보물이 되도록 특별히 계획하셨다. 이 나무를 두고 주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한 나무 외에는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자유로 먹을 것이나 만일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저희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살아남는 이들, 22)]
[하와는 감탄과 호기심을 가지고 금단의 나무 열매를 주목하고 있었다. 하와는 나무가 심히 아름다운 것을 보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듯 단호하게 저 나무 열매를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금하셨는지에 대해서 추론하고 있었다. 이때가 사단의 기회였다. …… 유혹자는 금과(禁果)를 따서 하와에게 건네주었다. 하와는 손에 그 실과를 받아들었다. 그 때에 유혹자는 ‘그대가 그 실과를 만지면 죽을 테니 만지지 말라고 하는 금령을 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그 실과에 손을 대거나 손에 쥐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먹는데 있어서도 해나 죽음에 대한 느낌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하와는 하나님께서 불쾌해 하시는 즉각적인 표적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대담해졌다.”(살아남는 이들, 32~34)]
우리는 성경과 증언을 잘 읽어야 한다. 학자들의 해석은 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과 증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이 문제에 스스로 속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죄송합니다.)
3. 아담과 하와와 달리 예수께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 오직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4. 우리에게 닥칠 유혹과 시험을 이기려면 어떤 영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말씀을 항상 상고하고 기억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필요하다. 언제나 그것이 말씀과 일치하는 지 분별해야 한다.
B.
1. 혼낼 일도 혼내지 않는다면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자녀에게 그렇게 하리라 생각합니까?
※ 무관심하거나 익애(溺愛) 때문일 것이다.
2.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서 그대는 어떤 사실을 깨닫습니까?
※ 자비와 용서가 먼저 있고 훈계와 심판이 뒤따랐다.
3.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심판과 은혜와 복음은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 은혜와 복음을 주시고 그것을 거절할 때 심판이 이르는 관계이다.
4. 어떻게 하면 우리가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서리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요?
※ 예수 안에 있고 그분을 떠나지 않으면 된다.
결론: 사탄의 공격은 유혹하는 과정에 어떤 역학 관계가 있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와로 하여금 금지된 나무에 대한 그녀의 자각과 그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 일종의 부조화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러한 갈등을 처리하는 하와의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유혹에 대처할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잘못 대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날(일) 2월 3일
뱀은 훨씬 간교하였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1. 창 3:1을 읽어 보라. 뱀의 모습을 한 사탄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그와 같이 묘사의 진실성이 어떻게 이 한 성경절에서 제시되었는가?
[창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답: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가로 묘사되었다. 이런 묘사는 뱀이 여자에게 한 질문으로 사실임이 드러났다.
<원문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안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지?”라고 물었다.>
2. 마 4:3~10과 창 3:1을 비교해 보라. 사탄은 예수님에게 어떤 유사한 계략을 시도하였는가? 그런데 왜 그것이 실패하였는가? 우리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공격에 대처하신 방법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어떤 식으로 사탄은 우리 에게 비슷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가?
[마4:3~10]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답: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했는데, 먹는 것과, 뛰어내리는 것과, 사단에게 절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을 자랑으로 시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고 할 줄 알아야 한다.
<부가설명>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을 만큼 탐스럽다고 한 것은 오늘날 인간이 당하는 유혹의 도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먹는 것과 보는 것과 알고자 하는 것으로 시험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한 것이다.(요일2:16) 사람들은 이 유혹에 거의 무방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 밖으로 한 발짝도 내어놓으면 안 된다.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했는데, 동물로서 뱀을 묘사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간교하다는 말은 지혜가 있다는 뜻이지, “간교”라고 번역한 것이 사람의 간사하고 교활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단의 상태이지 피조물인 뱀 자체의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교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아룸”인데 영리하다, 슬기롭다는 뜻이다. 아직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 자체가 나쁜 의미로 간사하고 교활했다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타락 후에 모세가 이 글을 쓸 때에 옛 뱀 곧 사단의 상태를 그렇게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그것이 타락 전의 상태에서 기록한 것인지, 타락 후의 상태를 기록한 것인지, 그 기록된 현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뜻을 찾아야 실수하지 않는다.
교훈: 사탄은 교묘한 방법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도록 우리를 유혹한다.
둘째날(월) 2월 4일
여자와 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1. 창 3:2~3을 읽어 보라. 여자는 뱀에게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그녀는 어떤 실수를 범했는가?
[창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원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이다>
답: 여자는 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직하게 대답했다.
<이 문제는 서론부의 A, B 질문에서 A의 첫 번째 질문에 대답했다.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2. 마 15:7~9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을 덧붙이는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어떻게 훈계하셨는가? 마 15:7~9을 계 22:18, 골 2:20~23과 비교해 보라. 우리 생각에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해 줄 규정들을 만드는 데에는 어떤 위험성이 있는가?(23절)
[마15:7~9]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계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골2:20~23]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답: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은 오류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계명을 만드는 것이며, 따르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성경과 신앙에 관련하여 어떤 규정을 만들더라도 성경의 내용과 사상에 절대로 일치해야 한다. 아주 조심해야 한다.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성경과 일치할 때 규정으로 정해야 한다.
<그러나 교과 저자는 창3:3에 여자가 대답한 말을 하나님이 하지 않은 말을 보태서 하나님의 말이라고 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위의 성경구절을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여자가 뱀에게 한 대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보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정직하게 그래도 대답했다. 서론 생각할 문제 A 1번에 대답한 증언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라.>
3. 우리는 어떤 식으로 여기서 경고한 것들을 따를 위험이 있는가? 성경의 원칙에 기초한 표준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적용하는 표준과 규정이 우리를 곁길로 인도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대의 답을 가지고 안교반에서 토론하라.
답: <부가설명> 우리의 표준은 오직 성경이다. 그런데 성경구절을 인용하였다고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마귀는 시험의 광야에서 예수님께 성경구절을 사용하여 유혹하였다. 성경구절을 사용하지만 성경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성경적이라는 말은 성경의 관통하는 일관된 사상과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구원위 복음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도 조심해서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구제와 희생과 넘치게 베푸는 인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은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핵심이다. 이것이 빠진 도덕적 선행과 구제와 희생과 인정은 도덕적 사랑이기는 해도 성경이 말하는 근본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아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적 사랑에 속아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인 줄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 사상으로 성경을 바르게 읽고 깨닫고 표준을 정하고 규정을 예비해야 한다. 성경적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인간적으로 아무리 선하고 희생적이고 넘치는 인정을 베푸는 것이라고 신앙 규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훈: 뱀의 꼬임에 넘어간 여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를 죄로부터 지켜 주지는 못했다.
<밑줄 친 부분은 성경적으로 바른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교과 저자가 착각한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한 것이다. 부가설명을 잘 살펴보라.>
셋째날(화) 2월 5일
근거에 의해 속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1. 창 3:4~6을 읽어 보라. 아담과 하와를 실패로 이끈 원칙은 무엇인가? 우리도 어떤 유혹이든지 잘 대처하려면 그들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창3:4~6]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답: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실패로 이끈 원칙이다. 거기에다가 사람의 정서의 움직임에 의지를 맡겼다. 우리는 철저하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지시한 대로만 순복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부가설명>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창2:9) 창조주께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창조하셔서 사람들이 좋은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정서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정서를 주신 것이다.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봤을 때, 동산 안에 다른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에서 느낀 것과 같은 정서적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려한 나무를 보면서, 먹어도 된다고 한 나무를 볼 때 가졌던 정서감을 발동시킨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하지 말라고 한 명령이 나의 정서감을 자극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정서를 제동해야 한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정의를 통하여 사람은 행동하는데, 대체적으로 정이 사람의 행동을 끌고 다닌다. 죄의 후손들은 더더욱 그렇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도 정서의 움직임을 하나님의 명령보다 우선시 한데서 죄가 들어왔거든 하물며, 죄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더 그렇겠는가? 그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했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정서(감정)의 지배를 성경적 이성과 의지로 극복하는 것이 예수님의 생명력, 곧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삶이다.
교훈: 최초의 인류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판단에 기초한 근거를 가지고 금지된 열매를 먹기로 결심하였다.
넷째날(수) 2월 6일
에덴에 임한 은혜와 심판 제1부
“네가 어디 있느냐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창 3:9, 11, 13).
1. 반대로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첫 번째 선포 즉, 그분의 첫 번째 선언문을 보면 하나님은 뱀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그리고 그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창 3:14~15 참고).
[창3:14,15]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답: 뱀을 저주하시고 배로 다니고 흙을 먹고 살게 될 것이며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상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2.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지 정죄하려는 것이 아님을 항상 묵상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죄는 우리로 하여금 그런 중대한 진리를 어떻게 보지 못하게 하는가? 다시 말해 죄는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가?
답: 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섭고 흉포한 하나님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애틋한 하나님의 사람을 보지 못하게 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언제나 은혜와 구원을 먼저 공포하신다. 그리고 그 베푸시는 은혜와 구원을 거절하면 거절했기 때문에 당연히 닥치는 사망의 결과를 심판과 형벌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죄인 되어 사단의 사상에 푹 젖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거절했기 때문에 자연히 닥쳐오는 결과를 하나님의 작위적인 형벌이라고 오해하며, 그것 조금 잘못했다고 그런 벌을 줘? 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 그것은 자기가 잘못해서 사망의 늪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그 노력을 거절하고 늪에 빠져 죽으면서 건지려고 노력한 사람이 자기에게 밧줄을 제대로 던지지 않아서 늪에서 죽게 내버려뒀다고 원망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죽는 것은 그를 건지려고 노력한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교훈: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이 내리신 첫 번째 조치는 구원의 소망을 주시는 것이었다. 복음이 제시된 다음에 심판이 이어졌다.
다섯째날(목) 2월 7일
에덴에 임한 은혜와 심판 제2부
1. 창조, 복음, 심판의 주제는 성경의 앞부분뿐 아니라 뒷부분에도 등장한다. 계 14:6~7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은 창세기 첫 세 장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가? 다시 말해서 이 성경절에 어떤 유사한 사상이 나타나는가?
[계14:6,7]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답: 복음, 심판, 형벌(결과)이라는 순서가 동일하다.
<부가설명> 성경의 목적. 곧 하나님의 목적은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든지 살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고전15:22) 그 사망 집행이 잠시 유예되어 있는 호흡하는 기간 동안 여자의 후손인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련한 구원의 길에 들어서라는 복음을 먼저 선포하신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자체가 심판이 된다고 말씀해주신다.(요3:17~21) 그래도 하나님의 이 사랑과 은혜를 거절하면 그 결과는 스스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사람의 처지에서 표현하면 형벌이 된다. 그것은 자취(自取)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이 조금 잘못했는데, 하나님께서 무섭게 형벌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는 사단의 술책에 동조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그 오해가 사실인 것처럼 표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교훈: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 책이 모두 창조를 이야기하고 심판을 말하지만 심판이 은혜를 앞서지는 못한다.
여섯째날(금) 2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의 시조에게 식물을 주셔서 인류가 이를 먹도록 계획하셨다.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에덴동산에는 죽음이 없을 것이었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228).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이기적인 율법으로 나타낸다. 그는 우리 인간이 그 율법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우리 시조(始祖)의 타락과 거기에 따른 모든 재난의 책임을 조물주에게 지우고 사람들로 하나님을 죄와 고통과 사망의 창시자로 여기도록 만든다. 예수께서는 이런 기만을 폭로시키실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4).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택한 죄의 참혹한 결과 가운데 그대로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은 구속(救贖)을 암시하고 있었다. 인류의 첫 조상이 듣는 가운데 공표된 이 선언은 그들에게 구속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가시와 엉겅퀴, 수고와 슬픔 그리고 죽어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흙에 대해 듣기 전에 먼저 희망을 가지게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사탄에게 굴복함으로 잃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교육, 2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월요일 마지막 질문에 대한 그대의 답으로 돌아가십시오. 우리는 어떤 종류의 규정을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께서 정죄했던 사람들이 되게 할 수 있습니까? 동시에 성경에 계시된 진리의 원칙을 더 잘 따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 여러 가지 규정을 만들 수 있다. 새벽기도 안 나오면 믿음이 없다든지, 채식을 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든지, 등등. 우리는 오직 기록된 말씀을 바르게 깨닫도록 기도하고 성경을 성경적으로 이해하도록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께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성경을 깨닫는 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➋ 하와는 너무도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 대신 자신의 감각을 신뢰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행하기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 지금 우리는 죄로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롬8:21, 엡4:22)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썩어질 씨로 태어나서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것이 자연적이 생리현상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쉽게 그렇게 된다.
➌ 성경의 자명한 의미를 궁극적으로 파괴하지 않고서 우리의 기원에 대하여 서로 상충되는 견해를 조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타락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얻기 위해 창조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것은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어떤 주장도 성경과 일치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인정하려고 성경과 조화시키려고 할 때에는 성경의 명백한 기록을 파괴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오늘날 인류의 죄악을 도덕적으로나 다른 종교적으로 올바른 설명을 할 방도가 없다.
➍ 어떤 문화권에서는 문자적인 마귀의 개념을 어리석게 봅니다. 반면 어떤 곳에서는 죄와 악령의 힘에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그대는 어떤 문화 속에 있습니까? 그대가 속한 사회의 경향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투쟁의 실체를 다룰 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 오늘날 거의 모든 문화 활동이 영혼불멸설에 기초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상영되는 드라마나 영화가 그렇고 그 사상은 스크린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하여 무제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나타난 사실을 믿음으로 이런 문제를 대해야 한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으나, 균형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를 믿고 그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한영국님의 댓글
한영국 작성일'여자'와 '하와'에 관계된 구속사적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이미 언급을 하셨다지만 듣지 못해서 무척 궁금합니다. 제 연락처는 <a href=mailto:ylm1333@hanmail.net>ylm1333@hanmail.net</a>입니다.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이규용님의 댓글
이규용 작성일
안녕하세요?
평소에 교과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월요일 부분은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하나님께서는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하셨습니다
그런데 3장3절은 하와의 주장같은데 원문은 다르다고 하시니..
창세기 2장17절의 바른 해석이 중요한거 같습니다
엄기화님의 댓글
엄기화 작성일
목사님, 저도 그 부분이 읽어도 읽어도 매우 혼돈스럽습니다. 인용하신 살아남는 이들의 문구가 앞부분( 이 나무를 두고 주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과 연이은 뒷부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한 나무 외에는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자유로 먹을 것이나 만일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저희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거 같은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동산 한가운데 생명나무 가까이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가 당신께 대한 그들의 순종과 믿음과 사랑의 담보물이 되도록 특별히 계획하셨다. 이 나무를 두고 주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한 나무 외에는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자유로 먹을 것이나 만일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저희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살아남는 이들, 22)]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