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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창조와 도덕성(질문,대답, 부가설명)0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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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1-26 00:12 조회9,39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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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57분

기억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연구 범위: 창 2:16~17, 창 1:26~28, 약 3:9, 행 17:26, 잠 14:31, 마 5:44~48, 계 20:11~13.

사람들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대헌장’(1215년)에서부터 ‘프랑스 인권 선언’(1789년)과 각종 유엔 선언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상이 발전하였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얻는 권리이다(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남는다. 어떤 권리들을 말하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권리는 변경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변경되는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이런 권리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일부 국가에서는 20세기까지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다(아직도 없는 나라가 있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어떻게 한 정부가 자기 백성들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
이는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이번 주에 우리가 공부할 인간의 기원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창조가 기독교 윤리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탐구한다.
2. 느끼기:  창조에 기초한 도덕성과 진화에 기초한 도덕성의 차이를 경험한다.
3. 행하기: 특별히 권한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아적인 봉사의 삶을 사는 법을 배운다.

A.
1. 어떤 면에서 인간이 맹수보다 훨씬 잔인합니까?
※ 인간은 동족을 살해하고 자기의 이익을 구한다. 맹수들은 동족을 죽이는 일이 극히 드물다. 동물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서만 공격한다. 사람은 부유한데로 더 부유하기 위하여 공격한다. 정말 가장 무서운 맹수이다.
2. 인간의 도덕성과 관련하여 창조론과 진화론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진화론은 적자생존, 자연도태를 주장하기 때문에 도덕은 쓸데없다. 도덕을 강조하는 이유는 피차 손해를 적게 보자는 이기심의 발로일 뿐이다. 창조론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사랑이 도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성경의 창조론은 어떤 도덕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까?
※ 한 아버지의 형제된 자녀들의 사랑과 부모에 대한 감사와 공경이다.
4. 그대는 창조론에서 배운 도덕적 책임을 어떻게 실천하기로 결심하겠습니까?
※ 예수 안에서 받은 그 생명이 드러나는 방식이 선이요 사랑이다. 그렇게 드러나야 한다.

B.
1.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존엄성 등을 얼마나 보장하고 있습니까?
※ 도덕론과 법률로 보장하려고 하지만 인간 마음이 죄 자체이기 때문에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처처에 살인과 강도와 강간과 폭력이 난무한다.
2. 이런 차원 높은 개념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까?
※ 차원 높은 도덕은 오직 사랑이신 창조주로부터 나온다.
3. 사회적 진화 개념으로 도덕성을 설명하는 데는 어떤 모순이 따른다고 생각합니까?
※ 약육강식과 적자생존과 자연도태를 주장하는 진화론으로 진정한 도덕성을 설명할 수 없다. 참으로 도덕성을 말한다면 그것은 돌연변이일 뿐이다. 그리고 1번에서 말했듯이 자기의 안전을 지키려는 이기심이 출발점이다. 그래서 도덕이 자기의 안전과 욕심을 보장하지 못할 때는 폭력과 살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4. 창조론적 가치를 사회 속에 더 많이 반영하려면 교회 또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실천할 필요가 있을까요?
※ 예수님이 생활하신 자아 희생과 사랑의 봉사가 보편화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 인간 기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중대한 도덕적 의미를 지닙니다. 창조 윤리는 선과 악의 고정된 기준과 신념을 고취하고, 우리로 하여금 권한 아래에 있는 자들을 섬기며 돌보도록 요구합니다.


첫째날(일) 1월 27일
창조주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1. 창 2:16~17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아담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가? 그 명령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답: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으라.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2. 시 95:6~7, 시 100편을 읽어 보라.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존성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런 의존성은 특별히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하여 우리에게 어떤 의무를 자동적으로 지우는가?
[시95:6,7]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7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시100:1~5]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답: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사람을 기르시는 분이시다. 목자가 양을 기르듯이 그렇게 사람을 친히 돌보시고 양육하신다. 그분을 떠나서 사람은 존속할 수 없다.

<부가설명> 대체적으로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사람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것 같다. 본 교과 저자도 창2:16,17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는 지극히 제한적인 것임을 전제해야 한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기까지는 사람의 의가 결코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데 무슨 의지가 있겠는가. 사람은 중립지대에 서서 생명과 사망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없다. 생명과 존재에 한하여서는 사람은 철저히 자유도 없고 선택도 없다. 이것은 평범한 진실인데 유의하지 않는다. 성경의 복음을 이해하는 데는 이 평범한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으면 소위 자유의지라는 논리에 속아서 사람의 죄와 구원을 사람의 자유의지의 선택에 돌리게 된다. 우리교회 안에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엄청난 오류이모 전혀 다른 복음이다. 생명과 존재는 창조주께서 선택하신 것이고 그렇게 선택된 사람은 창조주의 이 선택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하는 선택뿐이다. 이것을 흔히 말하는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창조주의 선택을 수용하든지 거절하는지 그것뿐이다. 이것은 주어진 상태에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 것이지, 그 상태를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에게 의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존재와 생명이 자기의 의지로 자유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를 선택한 분을 의지하지 않으면 존재와 생명은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피조물은 철저히 창조주에게 의존되어 있다. 그분을 떠나면 그는 없어진다.

교훈: 하나님은 우리를 손수 만드시고 사랑하시며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의지해야 하며 당연히 그분의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다.


둘째날(월) 1월 28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1. 창 1:26~28을 읽어 보라. 동물에게 부여되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는 어떤 특별한 속성이 부여되었는가?
[창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답: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통치권이 부여되었다.

2. 창 9:6과 약 3:9을 읽어 보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사상과 도덕성의 개념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창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약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답: 창조주께서 당신의 존귀한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창조주의 고귀한 작품을 훼손하면 책임을 지게 된다.

<부가설명> 사람의 예를 들어 말한다면 심혈을 기우려 창작한 작품을 파손하면 파손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창작한 사람의 소비한 재정과 시간과 모든 노력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노작(勞作)이다. 그것을 훼손하는 것은 창조주의 일을 파괴하는 것이다. 훼손한 사람이 어떻게 책임을 면하겠는가. 여기에 인간의 도덕성의 기초가 있다.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이나 자연도태 등의 진화론적으로는 이런 책임성을 물을 수 없다. 진화론은 그 발상 자체가 철저히 비도덕적이며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래서 진화론을 신봉하는 오늘날 사회가 폭력적이며 비도덕적이고 파괴적이다. 우리는 창조주, 생명과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잘 드러내는 삶을 이루어가야 한다.

교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 속에는 도덕성의 개념이 강력하게 내포되어 있다.


셋째날(화) 1월 29일
한 혈통으로 창조됨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행 17:26).

1. 행 17:26을 읽어 보라. 바울은 모든 인류의 형제됨을 어떻게 창조 이야기와 결부시키는가? 마 23:9과 비교해 보라.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마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답: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지으셨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인류의 한 아버지시다. 인류는 먼저 태어났든지 나중 태어났든지 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옇제들이다.

<교과에 창2:23에 아담이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지은 것처럼 나타난다. 이것은 저자가 착각한 것 같다. 여기서는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여자”라고 지었다. 하와라고 지은 것은 창3:20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선언을 들은 다음에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복음적 구속적(救贖的) 의미가 있다. 이 문제는 내가 여러 곳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더 논하지 않는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2. 잠 14:31과 22:2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도덕성 사이의 관련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잠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잠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답: 사람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창조주를 존중할 때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부가설명> 이미 월요일 부가설명에서 말한 사실이 다시 반복되어 질문으로 나왔다. 월요일 부가설명에서 작가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과 그것을 대하는 감상자의 태도를 말하면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말하였다. 감상자가 작가의 작품을 훼손한다면 작가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그 작가의 원수가 있다면 아마도 고의적으로 작품을 훼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나 천연계에 파괴를 행하는 것은 바로 창조주를 공격하는 사단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단은 창조주를 공격하여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자기 때가 얼마 못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때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으로 사람과 천연계를 파괴하여 창조주에게 고통을 가하려고 한다. 이미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최대의 고통을 가했다. 그래도 그는 패배하였다. 아직도 그의 때가 있으니까 그의 때가 끝날 때까지 그 일을 지속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파괴와 멸시에 사단의 이런 공작이 있다는 것을 간파할 필요가 있고 그의 공작에 동조하지 않아야 한다.

교훈: 모든 민족이 한 조상의 후손이라는 성경의 진리는 인간이 모두 평등하며 존엄하다는 도덕을 가르친다.


넷째날(수) 1월 30일
우리 창조주의 품성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5).

1. 마 5:44~4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며, 그분의 품성을 우리가 어떻게 반사하도록 제안하는가?
[마5:44~4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답: 하나님은 도덕적 선악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처럼 그리스도인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품으로 다가가야 한다.

2. 눅 10:29~37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또다시 무엇을 말하며, 그것이 인성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하는가?(빌 2:1~8 참고)
[눅10:29~37]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빌2:1~8]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답: 하나님은 인종의 차별 없이 자비로우시다는 것을 가르치고 우리도 누구에게든지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는 본을 친히 보이셨다.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시되 종의 형상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인간을 섬기셨다. 그것이 도덕의 모델이다.

<부가설명> 창조주께서는 피조물의 도덕적 선악의 관계없이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 창조주께서 공급하지 않으면 피조물은 잠시라고 존속할 수 없다. 즉 생존을 유지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가 생명력을 주어서 생존하게 한 피조물이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게 하려고 독생자까지 보내셨다. 일단 사람이 생존하는 동안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도 그때까지 창조주께서는 모든 필요를 충분히 공급하신다. 햇빛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모든 천연계와 자원이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는 창조주께서는 사랑으로 푸짐하게 공급하시고 재물 얻을 능력도 공급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런 봉사를 깨달아야한다. 그리고 그들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같이 자비한 모습으로 생활해야 한다.(눅6:36)

교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개념 속에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아닌 평화와 배려의 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다섯째날(목) 1월 31일
도덕성과 책임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0~31).

1. 앞에서 우리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전했던 바울의 설교를 살펴보았다(행 17:16~31 참고). 그가 사용했던 논리를 추적해 보라.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보라. 그가 내린 결론은 특별히 세상의 기원과 도덕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중요한가?

답: 바울은 창조하신 사실에서 시작해서 심판하시는 사실을 말함으로 설교를 끝마쳤다. 심판은 사람이 행한 대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성과 직결되는 것이다.

2. 계 20:11~13과 마 25:31~40을 읽어 보라. 도덕성과 직접적으로 관련하여 이 말씀 속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계20:11~13]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마25:31~40]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답: 이 말씀들은 다 그들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계시하신 말씀이다. 교과 저자는 이 말씀들이 도덕적 선행에 대한 것으로 이해하고 질문을 했다.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

3. 심판의 실재성과 확실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그런 심판에 대하여 확신을 갖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과 구원의 약속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우하는 그 대우를 받을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엄청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생활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쉽게 분별되지 않는다. 신상필벌 사상이나, 권선징악 사상은 근본적인 성경 사상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도덕론적 복음, 도덕론적 구원관에 의하여 신학이 만든 사상인 것처럼 보인다. 성경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성경은 행위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 된 사실을 전제로 하고 하시는 말씀이다. 죽은 자는 썩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못한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행할 뿐이다.(엡4:22) 그래서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 되면 예수님의 생명이 생활하는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당신의 일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 내가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 일을 하신 분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에 자기가 일한 기억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도덕과 복음을 올바르게 분변해야 한다. 우리는 생명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는 도덕적 노력은 이방 종교가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예수 이름으로 불교교인 노릇을 할 것이다.

교훈: 인간의 성경적 기원뿐 아니라 마지막 날의 심판은 우리의 도덕적 책임을 상기시킨다.


여섯째날(금) 2월 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성경에 따르면 아담은 하나님이 특별히 흙으로 창조한 첫 번째 인류이다. 도덕성의 기원은 아담의 기원에서 찾을 수 있다. 도덕성에 대한 성경의 개념은 인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아담을 첫 번째 인류로 인식하는 것은 어떤 화석이 아담 또는 인류의 조상일 가능성을 반박한다. 그렇다면 이런 화석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인류 화석은 정상적인 지성을 가졌지만 오늘날 인류와 같지 않은 성장 특성을 가진 인류의 모습일 가능성이 있다. 둘째, 그 화석들이 당시 생활 방식 또는 환경적 중압감 내지 다른 요인으로 인하여 퇴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탄이 창조 세계를 직접적으로 타락시키려 했던 시도의 결과일 수 있다. 그밖에 그것들이 형태학상 유사할 뿐 인류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저마다 선호하는 설명이 다를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어림짐작으로 독단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화석은 ‘5억만 년 전 중국산’ 식의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지 않는다. 과학자마다 견해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지구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화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하여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지만, 그런 해석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결국 해석에 불과할 뿐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인류에 도덕적 질서를 부여한 창조주가 없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도덕관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도덕적 표준을 준수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사람이 무엇을 바탕으로 도덕법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요? 그것들이 생길 가능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 속에는 어떤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까?
※ 이 문제는 어느 요일 부가설명에서 말하였다. 창조주 없는 도덕은 자기 존재 보존을 위하여 장치한 이기적 장치이다. 최대한으로 손해 보지 않기 위하여 마련한 공동 장치이다. 그런데 강한 자가 그 도덕을 따르면 자기 이익을 챙기지 못하겠다고 생각되면 폭력을 쓴다. 그때 약한 자가 주장하는 도덕논리는 전혀 힘이 없다. 역사가 그것을 증거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생명이 될 때에만 진정한 도덕이 그 생명에서 샘솟게 되는 것이다.

➋ 창조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안락사나 인간 복제나 낙태 등과 같은 현안을 바라보는 관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요?
※ 최대한 생명을 존중하고 창조주의 하신 일을 보존하는 정신으로 이런 것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창조주께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➌ 다하우에 있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관광 안내를 하는 한 자원봉사자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말로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말은 다윈의 이론이 다하우와 같은 비극을 초래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유추에는 어떤 분명한 논리가 있습니까? 또는 그런 사고에는 어떤 식의 문제점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 진화론의 약육강식 논리나 적자생존 논리가 나치의 악행을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고에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죄인이 된 사실을 간과하는 문제점이 있다. 독자들이 더 좋은 답이 있는지 생각하여 답하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박정욱님의 댓글

박정욱 작성일

목사님 귀한 해설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한글 파일로 올려주시면 더더더 감사하겠습니다~!!^^

김명호님의 댓글

김명호 댓글의 댓글 작성일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글 파일로 올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제가 모르겠습니다. 제 이메일로 가르쳐주시면 좋겠네요.
<a href=mailto:sdamkim@hotmail.com>sdamkim@hotmail.com</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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