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과 창조가 완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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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01-13 22:38 조회4,64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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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 3과 창조가 완성됨
1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1분
기억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도입)
지난 과에서 우리는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생명의 원천의 창조에 해당하는 제 1차 창조를 살펴보았다. 제 3과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만유의 생명의 원천인 첫째 날의 빛의 창조와 넷째 날의 이 생명의 빛을 담아 놓은 큰 그릇인 태양과 작은 광명인 달과 별들의 탄생 태양계의 출현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궁창의 공간에 새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물속에 다니는 어족을 만드시고 사람과 짐승을 만들어 창조의 완성인 제 2 창조를 살펴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이미 상당수가 비과학적이며 문서적으로 모순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구와 땅위의 초목보다 태양과 달, 별 등이 나중에 창조 되었다고 언급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태양 없이 땅위의 초목이 자랐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이며, 이미 현대 과학으로 지구의 연령은 45억년정도이며, 은하계에 있는 별들 중 최고의 연령을 가지고 있는 별들 중에는 150억년 이상 되는 별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 범위: 창 1장, 시 8:3, 롬 8:19~22, 레 11:14~22, 창 2:1~3, 막 2:27~28.
첫째날(일) 1월 13일
해, 달, 별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부가해설>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창조의 넌센스에 대답을 지난 시간에 약간 다루었는데, 첫째 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는 것과 넷째 날의 해, 달, 별의 창조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
지난 과에서도 설명하였듯이 하나님께서는 일월성신을 넷째 날 만드신 이유는 인간의 물(物)의 태양신이나 달신 숭배를 금하고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드신 더 근본적인 생명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자 빛을 첫째 날에 창조하셨다. 하루의 24시간의 개념은 이미 하늘의 모든 별들의 중심인 북극성이 자리 잡고 있고, 바로 가까이에 북두칠성이 있는데 이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24시간을 두고 한 바퀴씩 돌면서, 하늘의 뭇별을 이끌고 있는 형국을 천문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이미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별들의 중심으로 뭇별들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서 가장 막내가 되는 태양계를 만드셨는데, 그 태양계의 모든 별들을 거느리고 태양계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하여 북극성 주변을 지구가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 즉 태양계는 북극성 주변을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첫째 날인 밤과 낮은 이 태양계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북극의 하나님의 보좌(사 48:12-13, 시 48:1-2))를 중심한 북극성의 북두칠성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개념이 지구에서 시작된 시간에 이미 너무나 오랜 시간 앞서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24시간이라는 시간의 밤과 낮의 개념이 큰 광명과 작은 광명인 해와 달의 시간에 의존하지 않아도 밤과 낮으로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시간의 개념이 나타나 있다. 태양과 달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 만드신 빛의 성질을 모아 이 땅을 비추는 큰 그릇과 작은 그릇에 불과하다. 태양을 바라볼 때, 대 태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그 분은 빛으로 옷을 입음처럼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시 104:2). 우리가 그 창조의 순서를 바라보면 시편 기자가 시편 104편 2절에 말씀한 사실을 깊이 사색해 보아야 한다.
[시104:2]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 첫째 날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은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신 형국이시다. 창조주 예수께서 생명의 원천적인 빛을 세상에 드러내신 행위를 자신이 옷을 입음처럼 옷을 입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둘째 날 하늘을 휘장같이 치신 모습,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신 형국을 보여주신 창조의 순서와 일치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여러분께서는 지난 2과의 공과에서 제가 언급해 드린 빛의 성질을 여러분들께 과학적인 설명을 통해 알려드린 말씀을 잘 참조하여 보시기 바란다. 빛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언제나 현재 뿐으로서 그 질량과 무게가 0인 유일한 그 어떤 것도 이 속도를 따를 수 없는 신비한 것이 빛이다. 태양과 달도 주께서 옷을 입음처럼 빛을 입으신 그 놀라운 창조의 경이로운 빛의 속성을 가두어 놓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창조주이신 그분의 창조를 말씀하시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하루가 밤과 낮으로 이루어진 이 사실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사실에 기초해서 이해해 보자. 첫째 날의 빛과 어두움이 어떻게 나누어지겠는가? 구약성경 욥기 26:7절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라는 말씀에 의하면, 지구는 공간에 매달려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형의 태양과 달과 함께 지구역시 구형이라는 분명한 예시이다. 욥기 26:10절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He described a circle upon the face of the waters)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수면에 둥근 경계를 그으셨으되...”이다. 이사야 40:21,22절에서도 구형의 지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는 땅 위 궁창(the circle of the earth)”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잠언 8:27절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a circle on the face of the deep)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에서도 원(circ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둥근 지구임을 말하고 있다(NKJB, NASB). 만일 바다를 공중에서 바라본다면 수평선은 둥글게 보일 것이다. 이러한 둥근 수평선은 욥기 26:10절에서도 나타나 있다. 물 표면이 둥글다는 것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둥근 지구에 대한 증거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여기 욥기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인들 이전 세대가 그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욥기 26:10절은 빛이 끝나는 곳에 어둠이 시작됨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구형을 가진 지구에서의 낮과 밤을 말하고 있다. 지구가 원의 상태가 되면 빛과 어두움은 자연스럽게 경계가 생겨난다. 이미 존재해 있는 빛을 따라 자전하면 이 지구는 빛과 어두움을 자전의 각도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욥기 26장 10절과 잠언 8장 27절에 보면 바다의 수평선이 원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바다의 수평선이 둥글다는 사실은 희랍인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증명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희랍인 보다 훨씬 전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말한 것 이다. 더구나 이사야 40장 22절에 보면 지구가 둥근 원인 것이 보다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욥기 26장 10절에는 빛이 끝나는 곳에서 어두움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둥근 지구 위에서의 낮과 밤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고 땅을 공간에 다시며"[욥26:7] 과거에는 지구가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집트의 천문학자 톨레미가 제안한 이론 때문에 생긴 것인데 그는 지구가 태양계의 고정된 중심이며 별이나 그 외 혹성들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16C 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는 혹성의 운동과 지구의 회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연구 결과는 뉴톤의 연구 결과와 함께 혹성 운도에 관한 대부분의 현대적 개념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회전함은 물론 둥글라는 견해를 지지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데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둥근 지구에서 빛과 어두움은 각기 그 경계로 나누어져 보일 수밖에 없다. 자전하는 지구의 각도에 따라 지구는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빛을 볼 수도 어둠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교훈: 넷째 날 이루어진 태양의 창조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둘째 날(월) 1월 14일
공중의 새와 수중 동물의 창조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 1:21).
도입)
창세기 1장 20절에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하셨는데 이 때 물들이란 바다와 육지의 물을 다 포함한다. 그리고 21절에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했다. 바다와 육지의 물에 사는 모든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신 것이다. 오늘날 진화론에서는 고래가 육지에 사는 동물이 진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는 바다에 사는 동물이 진화하면서 육지에 사는 동물이 되었는데 그 중에 어떤 것이 더 진화하면서 다시금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이론일 뿐이지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도 너무나 모순되는 말이다.
부가해석)
어찌 바다의 물고기가 진화하면서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가 생겨나겠으며 또다시 다리가 사라지고 지느러미가 생겨나면서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설령 겉모습은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고 해도 물에 살던 동물이 육지로 나오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구조와 기능의 변화가 있어야 하겠는가? 그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해도 결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화론은 확률이라고 하는 개념과 오랜 시간이라고 하는 두 가지 도구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예를 들어, 물고기가 순간에 진화하여 육지에서도 살 수 있는 동물이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잘 믿지 않으니 진화론에서는 오랜 세월 즉 우리 사람으로서는 사실 측정할 수 없는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물고기가 하나하나 변하여 마침내 육지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확률적으로 너무나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런 일도 가능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억측인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만약 물고기가 진화하여 육지에서 살 수 있는 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만 생긴다고 해서 금방 물고기가 육지에 나와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에서 호흡하며 살던 것이 육지에서 호흡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기관들도 다 함께 변해야 한다. 이 밖에도 물고기가 육지에서 살 수 있는 형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몸의 전체적인 구조를 비롯하여 변화되어야 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들이 따로따로 일어나서는 안되고 한꺼번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가 먼저 생긴 이후에 다음으로 다른 부분들이 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지느러미가 사라지면서 다리가 생겨날 때 동시에 호흡 기관도 아가미에서 폐로 바뀌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생식 기관의 구조도 물에 적응된 구조에서 육지에 적응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환경에 적응하며 번식할 것이다.
호흡의 종류
<아가미 호흡과 폐호흡을 하는 동물들은 혈액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호흡기관과 조직세포로 운반해 준다. 그러나, 기관 호흡의 경우는 기관이 직접 조직세포와 닿아 있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운반에 혈액이 관여하지 않는다.>
종류별 호흡기관
그렇지만 설령 이러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해도 여전히 문제점은 남아 있다. 변화되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제대로 된 지느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느러미도 다리도 모두가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러니 생각만 해도 너무나 불안정하고 이상한 형태의 동물들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발견함으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욥 12:7-10>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교훈: 창조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정교하게 설계된 다양한 동물로 공중과 물을 채우셨다.
셋째날(화) 1월 15일
육상 동물의 창조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24).
도입)
다섯째 날 만드신 바다 생물과 하늘의 새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땅에 사는 동물들 역시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완전한 모습으로 만드신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땅에 사는 동물들이 처음에는 바다에 사는 동물들로부터 진화되었다고 한다. 바다 동물이 진화하여 육지 동물이 되고 그 중에 일부가 진화하여 새가 되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진화하여 포유류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진화론의 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는 앞서서 충분히 비유 들어 설명 드렸는데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동안 진화론에서 주장해 왔던 내용들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점점 밝혀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증거물들이 너무나 빈약하고 그것들 또한 확실한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가해석)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중간 화석이라는 것이다. 중간 화석이란 진화되고 있는 중간 단계의 형태를 보여 주는 화석을 말한다. 만약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바다 동물이 진화하여 육상 동물이 되었다면 분명 그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여러 형태의 동물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발견되는 화석들 중에는 당연히 이러한 동물들의 화석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예를 들어,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대신 다리가 생겼다면 화석 중에는 지느러미와 다리의 중간 형태의 것을 가진 동물도 있어야 할 텐데 이런 형태의 동물 화석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또한 육상 동물이 진화하여 새가 되었다면 이때에도 역시 다리가 사라지면서 대신 날개가 생겨난 형태의 동물이 화석으로 발견되어야 하는데 이런 화석들 또한 발견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화론에서는 나름대로 중간 화석이라고 주장하면서 몇 가지 화석들을 제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진화의 중간 단계를 설명하는 화석이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더욱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대로라면 온전한 형태를 갖춘 동물의 화석보다는 오히려 진화의 중간 단계에 있음으로 불완전한 형태의 동물 화석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한 예를 든다면 물고기가 도마뱀이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중간 단계는 수없이 많지요? 오랜 세월 동안 수십 수백 단계가 될지도 모르는 수많은 중간 단계들을 거치면서 물고기가 도마뱀으로 진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고기나 도마뱀의 화석보다는 진화하는 중간 단계에 있는 동물들의 화석이 훨씬 더 많이 발견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화론에서는 A라는 종류의 동물이 진화하여 B라는 종류의 동물이 되었다고 할 때 A가 전부 진화하여 B가 되는 것이 아니다. A가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하면서 그 중에 가장 우수한 것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최종적으로 B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A가 B로 진화하는 과정에는 A도 아니고 B도 아닌 중간 단계에 있는 여러 형태의 동물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겠지요? 따라서 화석 중에는 이런 중간 단계 동물들의 화석도 수없이 발견되는 것이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결국 진화론에서는 마치 진화에 확실한 증거인 것처럼 주장해 왔던 화석이 이제는 역으로 진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반증 자료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처음에 화석들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진화론을 주장해 나갈 때는 진화론자들도 앞으로는 많은 중간 화석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는 있지만 그들이 예상했던 중간 화석들은 나오지 않자 그들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교훈: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하여 다양한 육상 동물을 창조하셨다.
넷째날(수) 1월 16일
창조가 끝남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도입)
일주일 제도는 의례히 있어 왔던 것도, 우연히 만들어진 것도 아님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7일 제도는 성경에서 비롯되었다. 성경 이외의 어떤 곳에서도 일주일 제도에 대한 기원과 역사를 찾아볼 수 없다. 3일장, 5일장, 10일장과 같이 시장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경제 리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성경 속에서만 7일 제도에 대한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가장 완전한 시간 시스템을 주셨는데 그것이 7일 제도이다.
<부가해석>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을 파괴하고 다른 시스템을 인간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성경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말살시키려는 의도로 일주일 제도와 안식일 제도를 없앤 적이 있었다. 1793년 10월, 일주일을 10일로 정하는 새로운 주일 제도를 법으로 정하면서 교회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금했다. 그 법을 어기면 높은 벌금과 가혹한 처벌로 다스렸다. 그러나 1805년 10일 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7일 안식일 제도는 다시 복원되었다. 러시아의 스탈린도 기독교를 말살시키고 또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이중의 효과를 위하여 1929년 10일을 일주일로 정하는 새로운 주일 제도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지쳐서 병들기 시작하는 바람에 1940년에 다시 7일 주일 제도로 되돌아간 적이 있다. 그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인류는 7일 제도를 지켜 오고 있다.
엘우드 멕클러스키 생리학 박사(ElwoodMcCluskey, Ph.D.) - 생체 리듬 전문가
사람의 몸은 놀랍게도 ‘7일 리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현대 의학은 밝혀내고 있다.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면, 사람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최상의 상태로 재출발할 수 있지만, 이를 어기고 10일까지 일을 한다면 이틀을 쉬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0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의학이 밝혀낸 결과이다.7일 주기는 사회적 습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내부에 잠재된 생체 리듬의 결과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향식(Top-down) 현상이 아닌 상향식(Bottom up)현상인 것이다. 즉 인체의 가장 하부 조직인 여러 미세 세포들이 7일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몸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호르몬, 적혈구, 혈압, 소변의 양과 성분, 면역 체계, 심장 박동 등 미세조직들이 모두 7일 리듬을 갖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말라리아 환자나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임상적 상태가 신비한 7일 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의료계에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교훈: 창조를 끝내고 제칠일에 쉬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을 인간에게 주셨고,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되게 하셨다.
다섯째날(목) 1월 17일
문자적 하루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도입)
창조의 하루가 문자적인 24시간인가?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인간의 하루의 생체의 리듬이 바로 밤과 낮에 적응하여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해답은 저절로 될 것이다.
부가해설)
우주와 지구와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신 창조주께서는 그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워 놓으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몸 안에도 질서 있고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기능을 만들어 놓으셨다. 모든 인간은 잠을 잤다가 깨어나는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밤과 낮의 사이클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신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과 과정들은 밤 또는 낮의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신체의 어떤 기능이 가장 활발하게 발휘될 때부터 그 다음 주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5시간이다. 이렇게 신체 내에서 하루를 주기로 이루어지는 생체 리듬을 썰케디언(circadian)이라고 부른다. 밤과 낮의 사이클은 몸 안에 있는 시계의 시간을 조정하며,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인체의 기능들이 24시간의 주기에 맞추어서 활동하게 된다.이처럼 정확한 시간에 인체 기능이 이루어짐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은 무엇인가? 하루 24시간 동안, 각 시간대마다 서로 다른 기능들이 정확하고 조화 있게 이루어짐으로써, 신체는 미리 이러한 리듬에 맞추어서 여러 가지 기능과 과정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신체의 리듬을 연구하는 과학도로서, 나는 창조주의 놀라운 지혜와 솜씨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인체의 리듬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생활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규칙적인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일어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 기도 시간 등등.우리의 생활 스타일과 패턴이 신체가 가지고 있는 “규칙적인 시간”과 조화 있게 이루어져야만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 안에 생리학적인 시계를 넣어두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먹고 마시며 자는 시간이 몸과 정신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복 주시기 위해서 구별해 놓으신 제7일은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진리도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위대한 진리와 원칙을 십계명 중에 넣어 두신 것이다.
교훈: 창조 주간의 하루는 성경이 표현한 그대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자적 24시간이다.
여섯째날(금) 1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앞서 말했듯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하루로 계수 되었고, 확인되었다. 그날들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 이외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식적인 방법은 없다. 어떤 이들은 시 90:4, 벧후 3:8을 들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천 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결론은 그 성경절이 제안하는 바가 아니며, 그날들이 수백만 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자들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만약 창세기의 하루가 훨씬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면, 사람들은 6일 동안 창조된 생명체들의 순서에 맞는 화석 기록의 순서를 찾으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화석은 셋째 날 창조된 나무들이어야 할 것이고, 그다음은 수중 동물과 공중을 나는 동물들이어야 할 것이며, 마지막은 첫 번째 육지 동물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그런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 수중 동물이 식물보다 앞에 나타나고, 육지 동물들이 하늘을 나는 동물보다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최초의 과일나무와 다른 화목 화석은 이 모든 화석 후에 등장한다. 인간 화석이 가장 나중에 나타난다는 사실만 유일하게 유사한 점이다.
“창조의 하루하루는 그 뒤에 잇단 모든 날처럼 저녁과 아침으로 되었다고 거룩한 기록은 선언한다”(부조와 선지자, 112).
1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1분
기억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도입)
지난 과에서 우리는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생명의 원천의 창조에 해당하는 제 1차 창조를 살펴보았다. 제 3과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만유의 생명의 원천인 첫째 날의 빛의 창조와 넷째 날의 이 생명의 빛을 담아 놓은 큰 그릇인 태양과 작은 광명인 달과 별들의 탄생 태양계의 출현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궁창의 공간에 새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물속에 다니는 어족을 만드시고 사람과 짐승을 만들어 창조의 완성인 제 2 창조를 살펴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이미 상당수가 비과학적이며 문서적으로 모순에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구와 땅위의 초목보다 태양과 달, 별 등이 나중에 창조 되었다고 언급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태양 없이 땅위의 초목이 자랐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이며, 이미 현대 과학으로 지구의 연령은 45억년정도이며, 은하계에 있는 별들 중 최고의 연령을 가지고 있는 별들 중에는 150억년 이상 되는 별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 범위: 창 1장, 시 8:3, 롬 8:19~22, 레 11:14~22, 창 2:1~3, 막 2:27~28.
첫째날(일) 1월 13일
해, 달, 별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부가해설>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창조의 넌센스에 대답을 지난 시간에 약간 다루었는데, 첫째 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는 것과 넷째 날의 해, 달, 별의 창조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
지난 과에서도 설명하였듯이 하나님께서는 일월성신을 넷째 날 만드신 이유는 인간의 물(物)의 태양신이나 달신 숭배를 금하고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드신 더 근본적인 생명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자 빛을 첫째 날에 창조하셨다. 하루의 24시간의 개념은 이미 하늘의 모든 별들의 중심인 북극성이 자리 잡고 있고, 바로 가까이에 북두칠성이 있는데 이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24시간을 두고 한 바퀴씩 돌면서, 하늘의 뭇별을 이끌고 있는 형국을 천문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이미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별들의 중심으로 뭇별들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서 가장 막내가 되는 태양계를 만드셨는데, 그 태양계의 모든 별들을 거느리고 태양계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하여 북극성 주변을 지구가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 즉 태양계는 북극성 주변을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첫째 날인 밤과 낮은 이 태양계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북극의 하나님의 보좌(사 48:12-13, 시 48:1-2))를 중심한 북극성의 북두칠성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개념이 지구에서 시작된 시간에 이미 너무나 오랜 시간 앞서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24시간이라는 시간의 밤과 낮의 개념이 큰 광명과 작은 광명인 해와 달의 시간에 의존하지 않아도 밤과 낮으로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시간의 개념이 나타나 있다. 태양과 달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 만드신 빛의 성질을 모아 이 땅을 비추는 큰 그릇과 작은 그릇에 불과하다. 태양을 바라볼 때, 대 태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그 분은 빛으로 옷을 입음처럼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시 104:2). 우리가 그 창조의 순서를 바라보면 시편 기자가 시편 104편 2절에 말씀한 사실을 깊이 사색해 보아야 한다.
[시104:2]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 첫째 날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은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신 형국이시다. 창조주 예수께서 생명의 원천적인 빛을 세상에 드러내신 행위를 자신이 옷을 입음처럼 옷을 입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둘째 날 하늘을 휘장같이 치신 모습,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신 형국을 보여주신 창조의 순서와 일치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여러분께서는 지난 2과의 공과에서 제가 언급해 드린 빛의 성질을 여러분들께 과학적인 설명을 통해 알려드린 말씀을 잘 참조하여 보시기 바란다. 빛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언제나 현재 뿐으로서 그 질량과 무게가 0인 유일한 그 어떤 것도 이 속도를 따를 수 없는 신비한 것이 빛이다. 태양과 달도 주께서 옷을 입음처럼 빛을 입으신 그 놀라운 창조의 경이로운 빛의 속성을 가두어 놓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창조주이신 그분의 창조를 말씀하시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하루가 밤과 낮으로 이루어진 이 사실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사실에 기초해서 이해해 보자. 첫째 날의 빛과 어두움이 어떻게 나누어지겠는가? 구약성경 욥기 26:7절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라는 말씀에 의하면, 지구는 공간에 매달려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형의 태양과 달과 함께 지구역시 구형이라는 분명한 예시이다. 욥기 26:10절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He described a circle upon the face of the waters)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수면에 둥근 경계를 그으셨으되...”이다. 이사야 40:21,22절에서도 구형의 지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는 땅 위 궁창(the circle of the earth)”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잠언 8:27절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a circle on the face of the deep)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에서도 원(circ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둥근 지구임을 말하고 있다(NKJB, NASB). 만일 바다를 공중에서 바라본다면 수평선은 둥글게 보일 것이다. 이러한 둥근 수평선은 욥기 26:10절에서도 나타나 있다. 물 표면이 둥글다는 것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둥근 지구에 대한 증거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여기 욥기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인들 이전 세대가 그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욥기 26:10절은 빛이 끝나는 곳에 어둠이 시작됨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구형을 가진 지구에서의 낮과 밤을 말하고 있다. 지구가 원의 상태가 되면 빛과 어두움은 자연스럽게 경계가 생겨난다. 이미 존재해 있는 빛을 따라 자전하면 이 지구는 빛과 어두움을 자전의 각도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욥기 26장 10절과 잠언 8장 27절에 보면 바다의 수평선이 원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바다의 수평선이 둥글다는 사실은 희랍인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증명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희랍인 보다 훨씬 전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말한 것 이다. 더구나 이사야 40장 22절에 보면 지구가 둥근 원인 것이 보다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욥기 26장 10절에는 빛이 끝나는 곳에서 어두움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둥근 지구 위에서의 낮과 밤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고 땅을 공간에 다시며"[욥26:7] 과거에는 지구가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집트의 천문학자 톨레미가 제안한 이론 때문에 생긴 것인데 그는 지구가 태양계의 고정된 중심이며 별이나 그 외 혹성들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16C 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는 혹성의 운동과 지구의 회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연구 결과는 뉴톤의 연구 결과와 함께 혹성 운도에 관한 대부분의 현대적 개념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회전함은 물론 둥글라는 견해를 지지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데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둥근 지구에서 빛과 어두움은 각기 그 경계로 나누어져 보일 수밖에 없다. 자전하는 지구의 각도에 따라 지구는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빛을 볼 수도 어둠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교훈: 넷째 날 이루어진 태양의 창조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둘째 날(월) 1월 14일
공중의 새와 수중 동물의 창조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 1:21).
도입)
창세기 1장 20절에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하셨는데 이 때 물들이란 바다와 육지의 물을 다 포함한다. 그리고 21절에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했다. 바다와 육지의 물에 사는 모든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신 것이다. 오늘날 진화론에서는 고래가 육지에 사는 동물이 진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원래는 바다에 사는 동물이 진화하면서 육지에 사는 동물이 되었는데 그 중에 어떤 것이 더 진화하면서 다시금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이론일 뿐이지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도 너무나 모순되는 말이다.
부가해석)
어찌 바다의 물고기가 진화하면서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가 생겨나겠으며 또다시 다리가 사라지고 지느러미가 생겨나면서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설령 겉모습은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고 해도 물에 살던 동물이 육지로 나오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구조와 기능의 변화가 있어야 하겠는가? 그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해도 결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화론은 확률이라고 하는 개념과 오랜 시간이라고 하는 두 가지 도구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예를 들어, 물고기가 순간에 진화하여 육지에서도 살 수 있는 동물이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잘 믿지 않으니 진화론에서는 오랜 세월 즉 우리 사람으로서는 사실 측정할 수 없는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물고기가 하나하나 변하여 마침내 육지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확률적으로 너무나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런 일도 가능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억측인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만약 물고기가 진화하여 육지에서 살 수 있는 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만 생긴다고 해서 금방 물고기가 육지에 나와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에서 호흡하며 살던 것이 육지에서 호흡하기 위해서는 외부적인 기관들도 다 함께 변해야 한다. 이 밖에도 물고기가 육지에서 살 수 있는 형태로 변하기 위해서는 몸의 전체적인 구조를 비롯하여 변화되어야 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들이 따로따로 일어나서는 안되고 한꺼번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가 먼저 생긴 이후에 다음으로 다른 부분들이 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지느러미가 사라지면서 다리가 생겨날 때 동시에 호흡 기관도 아가미에서 폐로 바뀌어야 하며 또한 동시에 생식 기관의 구조도 물에 적응된 구조에서 육지에 적응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환경에 적응하며 번식할 것이다.
호흡의 종류
<아가미 호흡과 폐호흡을 하는 동물들은 혈액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호흡기관과 조직세포로 운반해 준다. 그러나, 기관 호흡의 경우는 기관이 직접 조직세포와 닿아 있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운반에 혈액이 관여하지 않는다.>
종류별 호흡기관
그렇지만 설령 이러한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해도 여전히 문제점은 남아 있다. 변화되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제대로 된 지느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느러미도 다리도 모두가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러니 생각만 해도 너무나 불안정하고 이상한 형태의 동물들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발견함으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욥 12:7-10>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교훈: 창조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정교하게 설계된 다양한 동물로 공중과 물을 채우셨다.
셋째날(화) 1월 15일
육상 동물의 창조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24).
도입)
다섯째 날 만드신 바다 생물과 하늘의 새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땅에 사는 동물들 역시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완전한 모습으로 만드신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땅에 사는 동물들이 처음에는 바다에 사는 동물들로부터 진화되었다고 한다. 바다 동물이 진화하여 육지 동물이 되고 그 중에 일부가 진화하여 새가 되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진화하여 포유류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진화론의 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는 앞서서 충분히 비유 들어 설명 드렸는데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 동안 진화론에서 주장해 왔던 내용들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점점 밝혀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증거물들이 너무나 빈약하고 그것들 또한 확실한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가해석)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중간 화석이라는 것이다. 중간 화석이란 진화되고 있는 중간 단계의 형태를 보여 주는 화석을 말한다. 만약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바다 동물이 진화하여 육상 동물이 되었다면 분명 그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여러 형태의 동물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발견되는 화석들 중에는 당연히 이러한 동물들의 화석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예를 들어,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대신 다리가 생겼다면 화석 중에는 지느러미와 다리의 중간 형태의 것을 가진 동물도 있어야 할 텐데 이런 형태의 동물 화석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또한 육상 동물이 진화하여 새가 되었다면 이때에도 역시 다리가 사라지면서 대신 날개가 생겨난 형태의 동물이 화석으로 발견되어야 하는데 이런 화석들 또한 발견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화론에서는 나름대로 중간 화석이라고 주장하면서 몇 가지 화석들을 제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진화의 중간 단계를 설명하는 화석이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더욱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대로라면 온전한 형태를 갖춘 동물의 화석보다는 오히려 진화의 중간 단계에 있음으로 불완전한 형태의 동물 화석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한 예를 든다면 물고기가 도마뱀이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중간 단계는 수없이 많지요? 오랜 세월 동안 수십 수백 단계가 될지도 모르는 수많은 중간 단계들을 거치면서 물고기가 도마뱀으로 진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고기나 도마뱀의 화석보다는 진화하는 중간 단계에 있는 동물들의 화석이 훨씬 더 많이 발견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화론에서는 A라는 종류의 동물이 진화하여 B라는 종류의 동물이 되었다고 할 때 A가 전부 진화하여 B가 되는 것이 아니다. A가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하면서 그 중에 가장 우수한 것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 최종적으로 B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A가 B로 진화하는 과정에는 A도 아니고 B도 아닌 중간 단계에 있는 여러 형태의 동물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겠지요? 따라서 화석 중에는 이런 중간 단계 동물들의 화석도 수없이 발견되는 것이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결국 진화론에서는 마치 진화에 확실한 증거인 것처럼 주장해 왔던 화석이 이제는 역으로 진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반증 자료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처음에 화석들을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진화론을 주장해 나갈 때는 진화론자들도 앞으로는 많은 중간 화석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고는 있지만 그들이 예상했던 중간 화석들은 나오지 않자 그들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교훈: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하여 다양한 육상 동물을 창조하셨다.
넷째날(수) 1월 16일
창조가 끝남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도입)
일주일 제도는 의례히 있어 왔던 것도, 우연히 만들어진 것도 아님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7일 제도는 성경에서 비롯되었다. 성경 이외의 어떤 곳에서도 일주일 제도에 대한 기원과 역사를 찾아볼 수 없다. 3일장, 5일장, 10일장과 같이 시장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경제 리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성경 속에서만 7일 제도에 대한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가장 완전한 시간 시스템을 주셨는데 그것이 7일 제도이다.
<부가해석>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을 파괴하고 다른 시스템을 인간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성경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말살시키려는 의도로 일주일 제도와 안식일 제도를 없앤 적이 있었다. 1793년 10월, 일주일을 10일로 정하는 새로운 주일 제도를 법으로 정하면서 교회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금했다. 그 법을 어기면 높은 벌금과 가혹한 처벌로 다스렸다. 그러나 1805년 10일 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7일 안식일 제도는 다시 복원되었다. 러시아의 스탈린도 기독교를 말살시키고 또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이중의 효과를 위하여 1929년 10일을 일주일로 정하는 새로운 주일 제도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지쳐서 병들기 시작하는 바람에 1940년에 다시 7일 주일 제도로 되돌아간 적이 있다. 그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인류는 7일 제도를 지켜 오고 있다.
엘우드 멕클러스키 생리학 박사(ElwoodMcCluskey, Ph.D.) - 생체 리듬 전문가
사람의 몸은 놀랍게도 ‘7일 리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현대 의학은 밝혀내고 있다.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안식하면, 사람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최상의 상태로 재출발할 수 있지만, 이를 어기고 10일까지 일을 한다면 이틀을 쉬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0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의학이 밝혀낸 결과이다.7일 주기는 사회적 습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내부에 잠재된 생체 리듬의 결과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향식(Top-down) 현상이 아닌 상향식(Bottom up)현상인 것이다. 즉 인체의 가장 하부 조직인 여러 미세 세포들이 7일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몸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호르몬, 적혈구, 혈압, 소변의 양과 성분, 면역 체계, 심장 박동 등 미세조직들이 모두 7일 리듬을 갖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말라리아 환자나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임상적 상태가 신비한 7일 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의료계에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교훈: 창조를 끝내고 제칠일에 쉬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을 인간에게 주셨고,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되게 하셨다.
다섯째날(목) 1월 17일
문자적 하루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도입)
창조의 하루가 문자적인 24시간인가?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인간의 하루의 생체의 리듬이 바로 밤과 낮에 적응하여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해답은 저절로 될 것이다.
부가해설)
우주와 지구와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신 창조주께서는 그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워 놓으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몸 안에도 질서 있고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기능을 만들어 놓으셨다. 모든 인간은 잠을 잤다가 깨어나는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밤과 낮의 사이클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신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과 과정들은 밤 또는 낮의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신체의 어떤 기능이 가장 활발하게 발휘될 때부터 그 다음 주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5시간이다. 이렇게 신체 내에서 하루를 주기로 이루어지는 생체 리듬을 썰케디언(circadian)이라고 부른다. 밤과 낮의 사이클은 몸 안에 있는 시계의 시간을 조정하며,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인체의 기능들이 24시간의 주기에 맞추어서 활동하게 된다.이처럼 정확한 시간에 인체 기능이 이루어짐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은 무엇인가? 하루 24시간 동안, 각 시간대마다 서로 다른 기능들이 정확하고 조화 있게 이루어짐으로써, 신체는 미리 이러한 리듬에 맞추어서 여러 가지 기능과 과정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신체의 리듬을 연구하는 과학도로서, 나는 창조주의 놀라운 지혜와 솜씨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인체의 리듬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생활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규칙적인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일어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 기도 시간 등등.우리의 생활 스타일과 패턴이 신체가 가지고 있는 “규칙적인 시간”과 조화 있게 이루어져야만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 안에 생리학적인 시계를 넣어두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먹고 마시며 자는 시간이 몸과 정신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복 주시기 위해서 구별해 놓으신 제7일은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진리도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위대한 진리와 원칙을 십계명 중에 넣어 두신 것이다.
교훈: 창조 주간의 하루는 성경이 표현한 그대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자적 24시간이다.
여섯째날(금) 1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앞서 말했듯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하루로 계수 되었고, 확인되었다. 그날들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 이외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식적인 방법은 없다. 어떤 이들은 시 90:4, 벧후 3:8을 들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천 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결론은 그 성경절이 제안하는 바가 아니며, 그날들이 수백만 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자들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만약 창세기의 하루가 훨씬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면, 사람들은 6일 동안 창조된 생명체들의 순서에 맞는 화석 기록의 순서를 찾으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화석은 셋째 날 창조된 나무들이어야 할 것이고, 그다음은 수중 동물과 공중을 나는 동물들이어야 할 것이며, 마지막은 첫 번째 육지 동물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그런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 수중 동물이 식물보다 앞에 나타나고, 육지 동물들이 하늘을 나는 동물보다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최초의 과일나무와 다른 화목 화석은 이 모든 화석 후에 등장한다. 인간 화석이 가장 나중에 나타난다는 사실만 유일하게 유사한 점이다.
“창조의 하루하루는 그 뒤에 잇단 모든 날처럼 저녁과 아침으로 되었다고 거룩한 기록은 선언한다”(부조와 선지자,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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