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창조가 완성됨(질문, 대답, 부가설명)01/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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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1-10 13:49 조회9,039회 댓글0건본문
1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1분
기억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연구 범위: 창 1장, 시 8:3, 롬 8:19~22, 레 11:14~22, 창 2:1~3, 막 2:27~28.
이번 주 교과는 창조 주일의 마지막 삼 일과 안식일 휴식에 대한 성경의 설명을 되짚어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주로 창 1장과 2장 1~3절에 나오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창조 기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측면은 창조가 여러 날 동안 나누어져 진행된 점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일주일(a week)’이라고 부르는 칠 일간의 시간 주기를 선택하셨을까?
성경을 보면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단서들은 있다. 아마도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을 위해 특별히 떼어 놓은 시간, 즉 안식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일상적인 일에 적합한 기간을 제시하기 위해 주일 제도를 제정하셨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수단으로서 한 주기적인 시간을 떼어 놓으셨을 것이다(막 2:28 참고).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진실한 공급자이며 우리는 그분께 완전히 의존되어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한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전폭적인 돌봄과 목적과 관련된 창조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에 우연의 여지란 있을 수 없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창세기 1장이 역사적인 이야기임을 보여 주는 본문의 증거들을 분석한다.
2. 느끼기: 성경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3. 행하기: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비성경적인 사상의 주입 없이 말씀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A.
2. 하나님이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심으로 모든 종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창조된 것을 드러낸다. 그 모든 종류가 이 지구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다.
3. 창세기 2장에서 제칠일 안식일은 어떤 중요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까?
※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존재관계를 기억하게 하는 날로 주셨다.
4. 창조에 우연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게 합니까?
※ 창조에 우연이 없다는 것은 피조물인 사람이 목적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B.
1. 어떤 경우에 단어 하나, 문구 하나에 따라 해석과 결론이 달라집니까?
※ 종류대로 창조했다는 표현은 단순히 창조했다는 표현과 엄청 다르다. 문구를 세심히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2.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에는 어떤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오늘날 입장에서는 철저히 진화론을 배격하는 표현이다. 처음부터 다양한 생물을 창조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표현이다.
3. 창세기 1장에서의 하루를 문자적 24시간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그때 그들이 지키도록 제칠일을 안식일로 명하시면서 그들이 지키는 안식일 하루와 같은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모세 때의 하루와 창조주간의 하루는 동일한 것이다.
4. 창세기 1장의 하루를 긴 세월로 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까?
※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중심으로 그런 주장이 틀린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결론: 우리가 창조 기사에 접근하는 방식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창세기를 현대 지성인의 구미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법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일요일 중심의 사회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성경의 해석은 인간의 의도에 좌우되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며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첫째날(일) 1월 13일
해, 달, 별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1.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창 1:14~19을 읽어 보라. 창조 넷째 날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창1:14~19]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답: 두 큰 광명체를 만드시고 그것으로 밤과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별들도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현재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로도 별 모순이 없지 않겠는가.
<부가설명> 성경은 분명히 넷째 날에 두 큰 광명체를 만드셨다고 기록하였다.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 그리고 넷째 날에는 밤과 낮을 나누었다고 했는데, 첫째 날 나눈 것과 달라진 것이 없다. 첫째 날에도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고 어두움을 밤이라 하고 빛을 낮이라 했으니 역시 밤과 낮을 나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과 낮은 첫날부터 있었다. 다만 넷째 날에는 두 큰 광명을 만드시고 그것들에게 임무를 주셨다. 큰 광명체는 낮을 주관하게 하고 작은 광명체는 밤을 주관하고 하고 별들도 밤을 주관하게 하신 것이다.(시136:7~9) 넷째 날에 비로소 밤과 낮을 나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성경 본문을 자세히 읽어야 한다. 밤낮을 넷째 날에 나눈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어렵게 된다. 이미 첫날부터 밤과 낮은 나누어졌고, 넷째 날은 그 나누어진 밤과 낮을 주관하는 발광체를 만드시고 그것들이 밤낮을 주관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주야를 나누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태양을 기준으로만 밤낮을 구분한다는 생각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첫째 날에 어둠과 빛을 창조하셔서 어두움이 있고 빛이 있으니 밤낮을 나누는 것이 창조주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현대 물리학적으로 그것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창조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지 않는가. 우리가 성경의 기록으로 과학자를 설득하려는 도로를 하지 않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만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교훈: 넷째 날 이루어진 태양의 창조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둘째날(월) 1월 14일
공중의 새와 수중 동물의 창조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 1:21).
1. 창 1:20~23을 읽어 보라. 문맥 속에 임의성을 암시하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창1:20~2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답: 문맥 속에 임의성(우연성)을 암시하는 표현은 전혀 없다.
2. 위의 내용을 기억하며 마 10:29~3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그대는 어떤 위로를 얻는가?
[마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답: 하나님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을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확신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야 얼마나 더 돌보시겠는가. 염려하지 말고 전적인 신뢰로 생활 것이다.
<부가설명> 창세기 1장에는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말이 10회나 기록되었다. “고정된 종”으로부터 분화되어서 여러 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먼 훗날에 진화론이라는 것이 생겨서 한 고정된 종에서 여러 종이 분화했다는 주장이 나올 것을 미리 보셨을 것이다. 모세에게 창조에 대한 계시를 주실 때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표현을 열 번씩이나 쓰도록 하셔서 모든 종류가 처음부터 창조주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충동으로 그렇게 되었다 해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이런 기록을 믿음으로 깨달아 알아서 흔들림이 없도록 하신 것이다. 창세기의 기록은 진화론적 발상이 들어갈 틈이 전혀 없도록 완벽하게 기록하였다.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주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돌보시는 것이다.
교훈: 창조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정교하게 설계된 다양한 동물로 공중과 물을 채우셨다.
셋째날(화) 1월 15일
육상 동물의 창조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24).
1. 창 6:20, 7:14, 레 11:14~22을 읽어 보라. “그 종류대로” 표현 또는 그에 상응하는 구절은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런 용례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창세기 1장의 그 구절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창6:20]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창7: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레11:14~22] 매와 매 종류와 15 까마귀 종류와 16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7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18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19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니라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21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22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답: 방주에 들어간 생물들이 창조하실 때 종류대로 들어갔으며, 사람들에게 먹을 것에 대하여 명령을 주실 때에도 각각 종류대로 표현하셨다. 종류대로 라는 말씀에는 메뚜기 종류라고 하면 메뚜기 하나만을 뜻하는 것보다 그와 유사한 종족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도 각각 종대로 창조된 것이다.
<부가설명> 창조된 같은 종 안에서는 변종이 가능하다. 더구나 죄가 들어온 후에는 저주를 받아 창조한 것들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더욱 변종이 쉽게 될 것이다.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는 말씀은 창조된 것이 죄로 인하여 변질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롬8:21) 그러므로 죄가 들어와서 죄에 지배를 받는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변질한 것이다. 창조의 법칙이 죄로 인하여 변질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죄인 된 사람이 일정기간 동안 육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질하도록 하신 것이다. 지구의 천연계 법칙이 창조된 그 상태로 있었다면 죄인 된 사람은 결코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변질을 허락하신 것은 사람을 구원하여 원래 생명을 회복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훈: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하여 다양한 육상 동물을 창조하셨다.
넷째날(수) 1월 16일
창조가 끝남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1. 창 2:1~3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하시던 모든 일이 끝났음을 강조하는 1절을 주목하라. 우리가 제칠일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이 성경절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답: 이 말씀은 창조주와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의 기초를 설정하신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없으면 창조주와 사람의 근본적인 관계를 이해하고 유지하게 하는 기초가 없어진다. 제칠일 안식일은 바로 그 관계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경배의 날이다.
2. 하나님은 창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의 삶에서 제칠일을 바치도록 명령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하나님이 쉬셨던 것처럼 우리도 안식일에 쉼으로 하나님과 얼마나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을 나누게 되는가?
답: 안식일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드러내는 표이고 그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창조주를 시인하고 순종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생활이다.
<부가설명> 주일(週日)제도는 창조의 증거이다. 사람들이 인정하든지 않든지 모두 창조의 섭리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창조의 울타리를 사람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 땅에서는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주일이 7일로 된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뚜렷한 증거가 없다. 오직 성경 창세기만이 확실한 기원을 가르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시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생활의 장으로 주셨다는 기록이다. 어떤 사람도 이 기록이 계시한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자기가 자기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우겨도 그것은 스스로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행동일 뿐 그가 그의 부모의 자녀가 아닐 수 없는 것과 같다. 안식일은 그런 날이다. 인정하는 자에게는 창조주가 있고, 자기의 신분이 확실해진다.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창조주를 아버지로 모시는 신분이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스스로 자기 신분을 모르는 자가 된다. 그래서 짐승이 되는 것이다. 주일제도는 사람이 창조주의 울타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활로 증명하게 한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이다.
교훈: 창조를 끝내고 제칠일에 쉬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을 인간에게 주셨고,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되게 하셨다.
다섯째날(목) 1월 17일
문자적 하루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1. 창 1:5, 8, 31을 읽어 보라. 창조의 하루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이 성경절 속에서 하루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자적 24시간이 아니라는 어떤 암시가 있는가?
[창1:5,8,31]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답: 저녁과 아침, 곧 밤과 낮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문자적 24시간이 아니라는 어떤 암시도 없다.
2. 레 23:3을 읽어 보라. 여기에 창조 주일의 모든 칠 일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날과 동일하다는 암시가 어디 있는가?
[레23: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답: 사람이 살고 있는 각 지역에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도록 하신 사실에서 창조 기간의 하루가 오늘과 동일한 하루라는 암시가 있다.
2.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그분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다. 우리가 성경의 창조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언급된 근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없다면, 무엇을 기초로 그분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답: 성경을 기록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해석한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상이다.
<부가설명> 안식일은 단순히 일주일 중의 한 날만이 아니다. 안식일에는 창조주의 창조 확증이 있는 날이다. 창조 확인서와 같은 것이다. 일주일을 7일로 정하신 것도 창조 증거가 되지만, 그 증거에 확인도장을 찍은 것이 안식일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말할 때에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만들과 제 칠 일에 쉬었다는 설명이 들어가는 것이다. 사단은 창조주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반역을 시작하였다. 즉 자기는 창조주와 상관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면 자기 존재는 영원불멸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창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을 교회로 교묘히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 지도자들이 창조 확인서를 인정하지 않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이 비밀을 깨달은 교회의 성도들이다.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새기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그것은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엿새라는 날도 바르게 이해하고 일곱째 날을 거룩히 여길 때 안식일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지키게 되는 것이다.
교훈: 창조 주간의 하루는 성경이 표현한 그대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자적 24시간이다.
여섯째날(금) 1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앞서 말했듯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하루로 계수 되었고, 확인되었다. 그날들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 이외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식적인 방법은 없다. 어떤 이들은 시 90:4, 벧후 3:8을 들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천 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결론은 그 성경절이 제안하는 바가 아니며, 그날들이 수백만 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자들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만약 창세기의 하루가 훨씬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면, 사람들은 6일 동안 창조된 생명체들의 순서에 맞는 화석 기록의 순서를 찾으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화석은 셋째 날 창조된 나무들이어야 할 것이고, 그다음은 수중 동물과 공중을 나는 동물들이어야 할 것이며, 마지막은 첫 번째 육지 동물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그런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 수중 동물이 식물보다 앞에 나타나고, 육지 동물들이 하늘을 나는 동물보다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최초의 과일나무와 다른 화목 화석은 이 모든 화석 후에 등장한다. 인간 화석이 가장 나중에 나타난다는 사실만 유일하게 유사한 점이다.
“창조의 하루하루는 그 뒤에 잇단 모든 날처럼 저녁과 아침으로 되었다고 거룩한 기록은 선언한다”(부조와 선지자, 11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창세기를 비문자적으로 해석해도, 두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창조 행위에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생물의 종들을 위해 공통된 조상 같은 것도 없습니다. 현재 다윈의 진화론에서 비롯된 다양한 주장들은 두 가지 즉, 임의성과 모든 종을 위한 공통의 조상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 창세기와 모순되는 그와 같은 이론에 따르면 어떻게 창세기를 해석할 수 있습니까?
※ 그렇게 주장하면 창세기 1장 2장을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창조주와 창조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➋ 과학을 통해 얻는 모든 유익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단지 인간의 노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 인간의 한계를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미 있는 천연계를 관찰하는 것으로 과학을 시작하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으로 천연계의 시작을 설명할 수 없다.
➌ 과학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최초의 창조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타락한 세계입니다. 우리가 항상 이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오늘날 천연계의 질서와 법칙은 아담의 범죄한 후에 저주받아서 변질된 질서와 법칙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고 연구해서 변질되기 전의 상태를 바르게 아는 것은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는 사상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일몰: 오후 5시 41분
기억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연구 범위: 창 1장, 시 8:3, 롬 8:19~22, 레 11:14~22, 창 2:1~3, 막 2:27~28.
이번 주 교과는 창조 주일의 마지막 삼 일과 안식일 휴식에 대한 성경의 설명을 되짚어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주로 창 1장과 2장 1~3절에 나오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창조 기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측면은 창조가 여러 날 동안 나누어져 진행된 점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일주일(a week)’이라고 부르는 칠 일간의 시간 주기를 선택하셨을까?
성경을 보면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단서들은 있다. 아마도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을 위해 특별히 떼어 놓은 시간, 즉 안식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일상적인 일에 적합한 기간을 제시하기 위해 주일 제도를 제정하셨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수단으로서 한 주기적인 시간을 떼어 놓으셨을 것이다(막 2:28 참고).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진실한 공급자이며 우리는 그분께 완전히 의존되어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한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전폭적인 돌봄과 목적과 관련된 창조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에 우연의 여지란 있을 수 없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창세기 1장이 역사적인 이야기임을 보여 주는 본문의 증거들을 분석한다.
2. 느끼기: 성경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3. 행하기: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비성경적인 사상의 주입 없이 말씀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A.
2. 하나님이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을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심으로 모든 종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창조된 것을 드러낸다. 그 모든 종류가 이 지구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다.
3. 창세기 2장에서 제칠일 안식일은 어떤 중요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까?
※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존재관계를 기억하게 하는 날로 주셨다.
4. 창조에 우연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게 합니까?
※ 창조에 우연이 없다는 것은 피조물인 사람이 목적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B.
1. 어떤 경우에 단어 하나, 문구 하나에 따라 해석과 결론이 달라집니까?
※ 종류대로 창조했다는 표현은 단순히 창조했다는 표현과 엄청 다르다. 문구를 세심히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2.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에는 어떤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오늘날 입장에서는 철저히 진화론을 배격하는 표현이다. 처음부터 다양한 생물을 창조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표현이다.
3. 창세기 1장에서의 하루를 문자적 24시간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그때 그들이 지키도록 제칠일을 안식일로 명하시면서 그들이 지키는 안식일 하루와 같은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모세 때의 하루와 창조주간의 하루는 동일한 것이다.
4. 창세기 1장의 하루를 긴 세월로 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합니까?
※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중심으로 그런 주장이 틀린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결론: 우리가 창조 기사에 접근하는 방식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창세기를 현대 지성인의 구미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법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일요일 중심의 사회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성경의 해석은 인간의 의도에 좌우되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며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첫째날(일) 1월 13일
해, 달, 별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1.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창 1:14~19을 읽어 보라. 창조 넷째 날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창1:14~19]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답: 두 큰 광명체를 만드시고 그것으로 밤과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별들도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현재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로도 별 모순이 없지 않겠는가.
<부가설명> 성경은 분명히 넷째 날에 두 큰 광명체를 만드셨다고 기록하였다.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 그리고 넷째 날에는 밤과 낮을 나누었다고 했는데, 첫째 날 나눈 것과 달라진 것이 없다. 첫째 날에도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고 어두움을 밤이라 하고 빛을 낮이라 했으니 역시 밤과 낮을 나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과 낮은 첫날부터 있었다. 다만 넷째 날에는 두 큰 광명을 만드시고 그것들에게 임무를 주셨다. 큰 광명체는 낮을 주관하게 하고 작은 광명체는 밤을 주관하고 하고 별들도 밤을 주관하게 하신 것이다.(시136:7~9) 넷째 날에 비로소 밤과 낮을 나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성경 본문을 자세히 읽어야 한다. 밤낮을 넷째 날에 나눈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어렵게 된다. 이미 첫날부터 밤과 낮은 나누어졌고, 넷째 날은 그 나누어진 밤과 낮을 주관하는 발광체를 만드시고 그것들이 밤낮을 주관하게 하시는 과정에서 주야를 나누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태양을 기준으로만 밤낮을 구분한다는 생각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첫째 날에 어둠과 빛을 창조하셔서 어두움이 있고 빛이 있으니 밤낮을 나누는 것이 창조주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현대 물리학적으로 그것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창조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지 않는가. 우리가 성경의 기록으로 과학자를 설득하려는 도로를 하지 않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만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교훈: 넷째 날 이루어진 태양의 창조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둘째날(월) 1월 14일
공중의 새와 수중 동물의 창조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 1:21).
1. 창 1:20~23을 읽어 보라. 문맥 속에 임의성을 암시하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창1:20~2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답: 문맥 속에 임의성(우연성)을 암시하는 표현은 전혀 없다.
2. 위의 내용을 기억하며 마 10:29~3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그대는 어떤 위로를 얻는가?
[마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답: 하나님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을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확신을 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야 얼마나 더 돌보시겠는가. 염려하지 말고 전적인 신뢰로 생활 것이다.
<부가설명> 창세기 1장에는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말이 10회나 기록되었다. “고정된 종”으로부터 분화되어서 여러 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먼 훗날에 진화론이라는 것이 생겨서 한 고정된 종에서 여러 종이 분화했다는 주장이 나올 것을 미리 보셨을 것이다. 모세에게 창조에 대한 계시를 주실 때 “각기 그 종류대로”라는 표현을 열 번씩이나 쓰도록 하셔서 모든 종류가 처음부터 창조주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충동으로 그렇게 되었다 해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이런 기록을 믿음으로 깨달아 알아서 흔들림이 없도록 하신 것이다. 창세기의 기록은 진화론적 발상이 들어갈 틈이 전혀 없도록 완벽하게 기록하였다.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주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돌보시는 것이다.
교훈: 창조 다섯째 날에 하나님은 정교하게 설계된 다양한 동물로 공중과 물을 채우셨다.
셋째날(화) 1월 15일
육상 동물의 창조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24).
1. 창 6:20, 7:14, 레 11:14~22을 읽어 보라. “그 종류대로” 표현 또는 그에 상응하는 구절은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이런 용례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창세기 1장의 그 구절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창6:20]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창7: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레11:14~22] 매와 매 종류와 15 까마귀 종류와 16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7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18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19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니라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21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22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답: 방주에 들어간 생물들이 창조하실 때 종류대로 들어갔으며, 사람들에게 먹을 것에 대하여 명령을 주실 때에도 각각 종류대로 표현하셨다. 종류대로 라는 말씀에는 메뚜기 종류라고 하면 메뚜기 하나만을 뜻하는 것보다 그와 유사한 종족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도 각각 종대로 창조된 것이다.
<부가설명> 창조된 같은 종 안에서는 변종이 가능하다. 더구나 죄가 들어온 후에는 저주를 받아 창조한 것들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더욱 변종이 쉽게 될 것이다.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는 말씀은 창조된 것이 죄로 인하여 변질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롬8:21) 그러므로 죄가 들어와서 죄에 지배를 받는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변질한 것이다. 창조의 법칙이 죄로 인하여 변질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죄인 된 사람이 일정기간 동안 육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변질하도록 하신 것이다. 지구의 천연계 법칙이 창조된 그 상태로 있었다면 죄인 된 사람은 결코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변질을 허락하신 것은 사람을 구원하여 원래 생명을 회복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훈: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하여 다양한 육상 동물을 창조하셨다.
넷째날(수) 1월 16일
창조가 끝남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1. 창 2:1~3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하시던 모든 일이 끝났음을 강조하는 1절을 주목하라. 우리가 제칠일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이 성경절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답: 이 말씀은 창조주와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의 기초를 설정하신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없으면 창조주와 사람의 근본적인 관계를 이해하고 유지하게 하는 기초가 없어진다. 제칠일 안식일은 바로 그 관계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경배의 날이다.
2. 하나님은 창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의 삶에서 제칠일을 바치도록 명령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하나님이 쉬셨던 것처럼 우리도 안식일에 쉼으로 하나님과 얼마나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을 나누게 되는가?
답: 안식일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드러내는 표이고 그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창조주를 시인하고 순종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생활이다.
<부가설명> 주일(週日)제도는 창조의 증거이다. 사람들이 인정하든지 않든지 모두 창조의 섭리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창조의 울타리를 사람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존재를 상실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 땅에서는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주일이 7일로 된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뚜렷한 증거가 없다. 오직 성경 창세기만이 확실한 기원을 가르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시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생활의 장으로 주셨다는 기록이다. 어떤 사람도 이 기록이 계시한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자기가 자기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우겨도 그것은 스스로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행동일 뿐 그가 그의 부모의 자녀가 아닐 수 없는 것과 같다. 안식일은 그런 날이다. 인정하는 자에게는 창조주가 있고, 자기의 신분이 확실해진다.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창조주를 아버지로 모시는 신분이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스스로 자기 신분을 모르는 자가 된다. 그래서 짐승이 되는 것이다. 주일제도는 사람이 창조주의 울타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활로 증명하게 한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이다.
교훈: 창조를 끝내고 제칠일에 쉬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을 인간에게 주셨고,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가 되게 하셨다.
다섯째날(목) 1월 17일
문자적 하루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1. 창 1:5, 8, 31을 읽어 보라. 창조의 하루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이 성경절 속에서 하루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자적 24시간이 아니라는 어떤 암시가 있는가?
[창1:5,8,31]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답: 저녁과 아침, 곧 밤과 낮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문자적 24시간이 아니라는 어떤 암시도 없다.
2. 레 23:3을 읽어 보라. 여기에 창조 주일의 모든 칠 일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날과 동일하다는 암시가 어디 있는가?
[레23: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답: 사람이 살고 있는 각 지역에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도록 하신 사실에서 창조 기간의 하루가 오늘과 동일한 하루라는 암시가 있다.
2.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그분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다. 우리가 성경의 창조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언급된 근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없다면, 무엇을 기초로 그분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답: 성경을 기록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해석한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상이다.
<부가설명> 안식일은 단순히 일주일 중의 한 날만이 아니다. 안식일에는 창조주의 창조 확증이 있는 날이다. 창조 확인서와 같은 것이다. 일주일을 7일로 정하신 것도 창조 증거가 되지만, 그 증거에 확인도장을 찍은 것이 안식일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말할 때에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만들과 제 칠 일에 쉬었다는 설명이 들어가는 것이다. 사단은 창조주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반역을 시작하였다. 즉 자기는 창조주와 상관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면 자기 존재는 영원불멸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창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을 교회로 교묘히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 지도자들이 창조 확인서를 인정하지 않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이 비밀을 깨달은 교회의 성도들이다.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새기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그것은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엿새라는 날도 바르게 이해하고 일곱째 날을 거룩히 여길 때 안식일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고 지키게 되는 것이다.
교훈: 창조 주간의 하루는 성경이 표현한 그대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자적 24시간이다.
여섯째날(금) 1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앞서 말했듯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하루로 계수 되었고, 확인되었다. 그날들을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하루 이외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식적인 방법은 없다. 어떤 이들은 시 90:4, 벧후 3:8을 들어 창조 주간의 하루는 천 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결론은 그 성경절이 제안하는 바가 아니며, 그날들이 수백만 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자들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만약 창세기의 하루가 훨씬 오랜 세월을 의미한다면, 사람들은 6일 동안 창조된 생명체들의 순서에 맞는 화석 기록의 순서를 찾으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화석은 셋째 날 창조된 나무들이어야 할 것이고, 그다음은 수중 동물과 공중을 나는 동물들이어야 할 것이며, 마지막은 첫 번째 육지 동물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그런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 수중 동물이 식물보다 앞에 나타나고, 육지 동물들이 하늘을 나는 동물보다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최초의 과일나무와 다른 화목 화석은 이 모든 화석 후에 등장한다. 인간 화석이 가장 나중에 나타난다는 사실만 유일하게 유사한 점이다.
“창조의 하루하루는 그 뒤에 잇단 모든 날처럼 저녁과 아침으로 되었다고 거룩한 기록은 선언한다”(부조와 선지자, 11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창세기를 비문자적으로 해석해도, 두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창조 행위에 우연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생물의 종들을 위해 공통된 조상 같은 것도 없습니다. 현재 다윈의 진화론에서 비롯된 다양한 주장들은 두 가지 즉, 임의성과 모든 종을 위한 공통의 조상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 창세기와 모순되는 그와 같은 이론에 따르면 어떻게 창세기를 해석할 수 있습니까?
※ 그렇게 주장하면 창세기 1장 2장을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창조주와 창조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➋ 과학을 통해 얻는 모든 유익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단지 인간의 노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 인간의 한계를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미 있는 천연계를 관찰하는 것으로 과학을 시작하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으로 천연계의 시작을 설명할 수 없다.
➌ 과학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최초의 창조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타락한 세계입니다. 우리가 항상 이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오늘날 천연계의 질서와 법칙은 아담의 범죄한 후에 저주받아서 변질된 질서와 법칙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고 연구해서 변질되기 전의 상태를 바르게 아는 것은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는 사상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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