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12-09 21:53 조회5,383회 댓글1건첨부파일
- 제11과 그리스도인의 생활.hwp (24.5K) 178회 다운로드 DATE : 2012-12-09 21:53:40
본문
제11과 그리스도인의 생활
MT: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예상 질문) 그리스도인이란 어떠한 사람입니까? 당신은 선한 청지기입니까?
알렉산더 황제 밑에는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이 황제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자 하루는 황제가, 병사 알렉산더의 천막을 찾아갔습니다. 황제는 알렉산더에게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네", 그러자 황제는 알렉산더에게 "황제인 내가 자네에게 명령하네, 자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자네의 생활 태도를 바꾸게."
“우리의 자매, 일꾼, 보호자, 동역자, 사랑하는 자, 권속, 함께 갇힌 자, 형제, 성도” 이 아름다운 이름은 바울이 27명의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각자에게 붙여준 호칭들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20) 목사, 장로, 집사라는 호칭과 교회의 회장, 교장, 부장, 수석 등의 직함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과는 다릅니다. 나의 호칭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는 “그리스도인 생활론”의 나머지 부분들을 살펴봅니다.
【연구 핵심 키워드】♣ 요약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시간을 조절하여 활용하십시오. ♣
전반부, <일-화> 청지기 직분의 사명과 책임
(일) 왜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인가? (예수남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십자가의 값으로 사셨음)
(월) 십일도 제도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모든 소유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충심의 표)
(화) 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가? (이타적인 정신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증거임)
후반부, (수-목) 부부 관계 및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사명과 책임
(수) 결혼 제도의 신성한 목적은 무엇인가? (부부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진수를 경험)
(목)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로 주님의 정신을 실현)
■일요일■ 청지기 직분 [고전 3:21-4:2]
【질문과 토의1】왜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인가? 왜 청지기 직분이 중요한가?
★귀띔: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십자가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하늘에 모든 것(독생자)을 퍼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반드시 생애에서 사랑의 열매로 화답하게 된다.
[도움해설] 청지기는 신앙과 삶은 별개이고 하나님과 나는 다르며 주님 것과 내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것을 주님과 주님의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청지기의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사명과 책임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이 친히 하시는 것과 같이 그런 방법으로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의 관심사가 최고의 관심사가 되고 주님의 뜻이 자기의 뜻이 됩니다. 청지기의 지위는 아무나 누리며 기질 수 없는 존엄한 것입니다. 왜냐면 주께서 그를 사랑하사 무한한 보혈의 값을 치르시고 구속하여 하늘의 대사로 신임하신 까닭입니다. 청지기란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을 모방하여 삶을 통해 드러내고 높여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을 위임 받은 관리자일 뿐이지 소유주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위탁물들을 정당하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하나님께 지고 있음.
◆청지기 직분은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주님의 자애로운 품성을 계발하도록 주신 특권임.
◆청지기 직분은 철학과 이론이 아니라 생애의 전 국면이 망라되어 있는 그리스도인 생활 법칙이며 참된 종교적 체험에 불가결한 요소임.
◆청지기 직분은 참된 믿음과 충성에 대한 시금석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수 없으며, 각자 받은 양쭝에 따라 심판받고, 악한 청지기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음.
[청지기의 본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눅 12:33)라.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눅 14:13),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어 주어라.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라.”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사 58:6, 7, 10)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필요 이상은 위탁물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은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고 다른 사람의 자녀들은 빵을 위해 애걸하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실생활에 필요한 재물 이상의 것은 인류에게 선을 베풀고 복을 끼쳐 주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위탁된 것이다.”-실교, 371
적용) 올바른 청지기의 삶이 진정한 재림 신앙입니다. 슬프게도 하나님의 선물을 남용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필요 이상 넓고 크고 비싼 집과 쌓아놓은 땅과 재물, 고가 외제차와 고급자동차, 가구와 의복, 과다한 자녀 교육비, 과소비 여행과 오락 레저 식비 등.(선물을 주신 분보다 현세적인 것들에 집착하고 사랑하며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스스로 우상숭배자요 배도자임을 증거함). 하인이 두 주인 즉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눅16:13).
요점)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람들을 섬기는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월요일■ 십일조: 적은 돈 [느10:38~39]
【질문과 토의2】십일도 제도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 기원은 언제인가?
★귀띔: (1)선악과와 십일조 제도는 같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성별되었음. (2)두 제도는 하나님은 모든 소유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순종과 사랑의 시금석임.
[도움해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첫 청지기인 아담과 하와에게(창1:28, 2:15), 만물의 소유주요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신 자신을 끊임없이 기억하도록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순종과 사랑의 시금석으로 성별하여 주셨습니다. 저들의 생명과 행복은 이 명령과 율법을 믿음과 충성심을 다하여 존중할 때에만 보장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룰을 깨고 타락하자 선악과 대신 십일조와 헌물 제도를 도입하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모든 선하고 온전한 선물의 근원이시며(약 1:17)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이심(신 8:18)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새로운 선악과입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은 적은 것이지만 이 작은 원칙의 순종과 충실 여부에 따라서 우리의 영생의 문제가 크게 좌우될 만큼 중대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한 개의 선악과와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류가 모두 죽게 되었으나 한 분 그리스도의 희생과 순종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타락한 인류와의 관계와 우주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드려진 십일조였습니다.
◆십일조의 특별한 제도는 하나님의 율법처럼 영속하는 원칙 위에 세워졌으며, 안식일처럼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된 것이므로 폐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음.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말 3:10)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지, 감사하는 마음이나 너그러운 사람에게 하는 호소가 아님.
◆주께서 신자의 의무와 사랑의 척도로서 십일조와 헌금을 규정해 놓으셨으며, 이를 규칙적, 체계적으로 이행하기를 바라심.
◆회심한 모든 사람들은 십일조와 헌금을 위한 하나님의 요구에 관하여 빛을 받아야 함.
◆가난한 사람으로 조직된 교회라도 십일조 제도를 분명히 가르치고 기꺼이 택하여야 함.
◆신자들이 하나님의 것을 바치는데 충실하다면, 온 세상이 복음 전도에 문호를 열 것임.
◆사단은 십일조와 헌금의 의무를 게을리 하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할 때 매우 기뻐함.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회개치 않은 자는 하는 하늘 금고를 잃어버림, 의무에 충실해야 기도가 가납됨.
◆중대한 십일조 제도를 백성에게 가르치는 것이 목사와 장로들과 직원들의 의무임.
[십일조는 순종의 표] “나는 십일조 제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 생각에 얼마나 미미하게 보이는가! 그 평가는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희생을 수학적인 법칙과 시간과 돈과 사랑으로 재고자 하는 노력은 얼마나 헛된가! 그리스도를 위한 십일조이다!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른 것에 대해 얼마나 미미한 기부이며 부끄러운 보상인가!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의 십자가로부터 조건 없는 순종을 요구 하신다”-교증4권,119.
요점) 십일조는 우리가 받은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충성과 순종의 표로서 요구하십니다.
■화요일■ 자신에 대한 책임감 [마22:39 요12:25]
【질문과 토의3】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가? 무슨 의미인가?
★귀띔: (1)이타적인 정신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증거임. (2)자신의 구속적 가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가치와 비례함.
[도움해설] ‘나’가 누구입니까? 우리의 자아와 존재적 가치는 무아적인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자아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나’의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갈 2:20)한 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열매는 예수님처럼 사는 삶을 소망하게 되는 성화입니다. 이기적인 삶이 이타적으로 바뀌고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그분을 위해 살기를 원하며,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부르심에 주의를 기울여 예수님의 품성과 사랑을 반사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살아갑니다. 마음속에 주님이 거하시는 사람의 생애에서는 영적 생명의 조수(潮水)가 흘러 나갑니다. 이웃의 필요라는 밭고랑에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던지고 주기 위하여 살고 봉사하기 위해 자아를 바칩니다. 하늘의 자아 보존과 사랑, 영생의 법칙은 자아 희생의 법칙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
[도움예화] 경북 안동시의 임후남 할머니는 같은 동네 선천적 시각 장애인 유점희 씨를 30년간 돌보고 있는데, 가족보다 소중한 세상에 둘도 없는 ‘이웃사촌’이 된 것은 ‘앞을 못 보는 유씨가 딱하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마을의 결혼한 새댁인 유씨가 시각 장애인인 것을 알고 그 때부터 식사준비와 청소, 빨래는 물론 밭일까지 도우며, 심지어 아이를 낳자 양육도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병원이나 잔칫집, 교회에 갈 때도 언제나 안내해 주었다고 합니다. 알콜 중독 남편이 돌아갔을 때도 옆을 지키며 친정어머니 역할도 해주고, 큰 아들이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을 때도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만 따로 잘 뿐 매일 함께하여 모녀지간보다 더 가까워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발병까지 한다고 하여 유씨가 대구에 있는 둘째 아들 집에서 지내는 것도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호강 한 번 시켜드리고 싶은데 늘 도움만 받는 입장이라 아쉽다.”는 유씨 말에 “천국 가면 그때 갚으라.” 얘기하며 서로 환하게 웃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본보기이며 진정한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인] “이기심과 냉정한 형식주의는 사랑의 불길을 거의 꺼버렸으며 품성을 향기롭게 할 은혜를 쫓아 버렸다. 그분의 이름을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가정에서, 이웃 사이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남의 유익을 위하여 실제적으로 자아를 희생하지 않는 한, 우리가 무엇을 공언하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DA, 504
요점) 참으로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며 그분의 품성을 반사합니다.
■수요일■ 그리스도인의 결혼 [엡5:28]
[도움예화] “어떤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축하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랑과 신부는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식순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랑 신부들을 지켜보는 하객들도 모두 즐겁고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하객들 중의 한 부부가 데리고 온 꼬마 아이가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불쑥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결혼이 뭐지?" 그 엄마는 어린 아이가 결혼에 대해서 묻는 것이 조금은 의외였지만 웃는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어서 하는 거란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면 싸우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잘못에 대해 감싸주고, 또 모든 힘든 일을 나누어서 도와주게 되지." 그러자 꼬마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결혼한 것이 아니구나.”
【질문과 토의4】왜 혼인을 귀히 여겨야 하는가? 결혼 제도를 세우신 신성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귀띔: (1)결혼은 인류의 순결과 행복을 수호하고 사람의 사회적 필요를 채워 주며 육체적·지적·도덕적 본성을 향상시킴, (2)결혼 관계를 하나님과 구속받은 백성과의 사랑의 관계를 상징하여 영광스럽게 하셨음.
[도움해설] 한해 12만쌍 이혼, 이혼자녀 10만명. 오늘날 한국 사회의 한 단면도입니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며 결혼은 장난이 아닌데 이혼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지 오래전 일이고 시간이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예전에는 외도나 폭력이 이혼 사유였다면 현대인들은 단순히 성격차이, 대화단절, 애정상실, 낭비와 사치, 등등이 주요한 이혼사유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결혼관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이혼 사회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풍조는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의 원칙마저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첫 결혼을 집례하시고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신성한 원칙들이 인정되고 순종될 때에만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축복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
[결혼의 정의] “이성 간의 두 성인은 친밀하고 지속적인 사적 관계를 공유하기로 언약하며, 서로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고, 목표를 한데 모으는 유대감, 항구성, 신실함과 신뢰감이란 특징을 지닌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성스럽게 보존되어야 한다.”(창2:21~25 말2:14 엡5:28 참고) 교과 본문,156p
◆결혼하는 자들은 이생에서는 결코 졸업할 수 없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결혼의 침소를 범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결혼 서약을 깨뜨리거나 취소시킬 수 없다.
◆혼인의 결연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사랑은 그 가장 긴밀한 결합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받아야 한다.
[결혼과 구속] “신구약을 막론하고, 결혼 관계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곧 그분께서 갈바리의 희생으로 구속한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호적이고 거룩한 연합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산상보훈 p.64
요점) 오늘날 결혼 제도는 여러 도전 앞에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결혼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성한 제도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
■목요일■ 그리스도인의 행위 [약5:14]
【질문과 토의5】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가?
★귀띔: (1)세상에 속하지는 않으면서 사회적, 직업적 관계를 맺어야 함. (2)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로 주님의 정신을 실현함.
[일상적인 삶의 세 영역의 생활 방식과 행위]
◆고용인(주)과 피고용인의 관계(약 5:4~6, 엡 6:5~9).
→고용주와 피고용주는 성경의 원칙과 근로 기준법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국민의 의무(롬 13:1~7).
→성경 말씀의 원칙 하에서 국법에 명시한 국민의 의무와 규범에 솔선수범하여야 합니다.
◆사회적 책임(사 61:1~3, 마 25:31~46).
→그리스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당하지 않도록,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여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은둔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불신자들과 동화시키는 그런 자들과의 관계를 금하셨다. 우리는 저들 가운데서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한다...그러나 우리는 은둔적인 생애를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을 세상 사람들에게 행하여야 한다.”―복교,394
적용)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어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요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이상 사회적 의무나 책임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선물을 베푸시고,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특징짓는 이타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 즉 물질적 자원, 가족, 사회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분의 자애심을 반사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MT: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예상 질문) 그리스도인이란 어떠한 사람입니까? 당신은 선한 청지기입니까?
알렉산더 황제 밑에는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이 황제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자 하루는 황제가, 병사 알렉산더의 천막을 찾아갔습니다. 황제는 알렉산더에게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네", 그러자 황제는 알렉산더에게 "황제인 내가 자네에게 명령하네, 자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자네의 생활 태도를 바꾸게."
“우리의 자매, 일꾼, 보호자, 동역자, 사랑하는 자, 권속, 함께 갇힌 자, 형제, 성도” 이 아름다운 이름은 바울이 27명의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각자에게 붙여준 호칭들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20) 목사, 장로, 집사라는 호칭과 교회의 회장, 교장, 부장, 수석 등의 직함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과는 다릅니다. 나의 호칭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는 “그리스도인 생활론”의 나머지 부분들을 살펴봅니다.
【연구 핵심 키워드】♣ 요약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시간을 조절하여 활용하십시오. ♣
전반부, <일-화> 청지기 직분의 사명과 책임
(일) 왜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인가? (예수남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십자가의 값으로 사셨음)
(월) 십일도 제도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모든 소유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충심의 표)
(화) 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가? (이타적인 정신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증거임)
후반부, (수-목) 부부 관계 및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사명과 책임
(수) 결혼 제도의 신성한 목적은 무엇인가? (부부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진수를 경험)
(목)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로 주님의 정신을 실현)
■일요일■ 청지기 직분 [고전 3:21-4:2]
【질문과 토의1】왜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인가? 왜 청지기 직분이 중요한가?
★귀띔: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십자가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하늘에 모든 것(독생자)을 퍼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반드시 생애에서 사랑의 열매로 화답하게 된다.
[도움해설] 청지기는 신앙과 삶은 별개이고 하나님과 나는 다르며 주님 것과 내 것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것을 주님과 주님의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청지기의 신성하고 자랑스러운 사명과 책임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이 친히 하시는 것과 같이 그런 방법으로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의 관심사가 최고의 관심사가 되고 주님의 뜻이 자기의 뜻이 됩니다. 청지기의 지위는 아무나 누리며 기질 수 없는 존엄한 것입니다. 왜냐면 주께서 그를 사랑하사 무한한 보혈의 값을 치르시고 구속하여 하늘의 대사로 신임하신 까닭입니다. 청지기란 그리스도의 사랑의 품성을 모방하여 삶을 통해 드러내고 높여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을 위임 받은 관리자일 뿐이지 소유주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위탁물들을 정당하고 올바르게 사용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하나님께 지고 있음.
◆청지기 직분은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주님의 자애로운 품성을 계발하도록 주신 특권임.
◆청지기 직분은 철학과 이론이 아니라 생애의 전 국면이 망라되어 있는 그리스도인 생활 법칙이며 참된 종교적 체험에 불가결한 요소임.
◆청지기 직분은 참된 믿음과 충성에 대한 시금석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수 없으며, 각자 받은 양쭝에 따라 심판받고, 악한 청지기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음.
[청지기의 본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눅 12:33)라.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눅 14:13),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어 주어라.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라.”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사 58:6, 7, 10)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필요 이상은 위탁물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은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고 다른 사람의 자녀들은 빵을 위해 애걸하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실생활에 필요한 재물 이상의 것은 인류에게 선을 베풀고 복을 끼쳐 주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위탁된 것이다.”-실교, 371
적용) 올바른 청지기의 삶이 진정한 재림 신앙입니다. 슬프게도 하나님의 선물을 남용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필요 이상 넓고 크고 비싼 집과 쌓아놓은 땅과 재물, 고가 외제차와 고급자동차, 가구와 의복, 과다한 자녀 교육비, 과소비 여행과 오락 레저 식비 등.(선물을 주신 분보다 현세적인 것들에 집착하고 사랑하며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스스로 우상숭배자요 배도자임을 증거함). 하인이 두 주인 즉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눅16:13).
요점)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람들을 섬기는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월요일■ 십일조: 적은 돈 [느10:38~39]
【질문과 토의2】십일도 제도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 기원은 언제인가?
★귀띔: (1)선악과와 십일조 제도는 같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성별되었음. (2)두 제도는 하나님은 모든 소유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순종과 사랑의 시금석임.
[도움해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첫 청지기인 아담과 하와에게(창1:28, 2:15), 만물의 소유주요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신 자신을 끊임없이 기억하도록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순종과 사랑의 시금석으로 성별하여 주셨습니다. 저들의 생명과 행복은 이 명령과 율법을 믿음과 충성심을 다하여 존중할 때에만 보장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룰을 깨고 타락하자 선악과 대신 십일조와 헌물 제도를 도입하셨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모든 선하고 온전한 선물의 근원이시며(약 1:17)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이심(신 8:18)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새로운 선악과입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은 적은 것이지만 이 작은 원칙의 순종과 충실 여부에 따라서 우리의 영생의 문제가 크게 좌우될 만큼 중대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한 개의 선악과와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류가 모두 죽게 되었으나 한 분 그리스도의 희생과 순종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타락한 인류와의 관계와 우주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드려진 십일조였습니다.
◆십일조의 특별한 제도는 하나님의 율법처럼 영속하는 원칙 위에 세워졌으며, 안식일처럼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된 것이므로 폐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음.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말 3:10)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지, 감사하는 마음이나 너그러운 사람에게 하는 호소가 아님.
◆주께서 신자의 의무와 사랑의 척도로서 십일조와 헌금을 규정해 놓으셨으며, 이를 규칙적, 체계적으로 이행하기를 바라심.
◆회심한 모든 사람들은 십일조와 헌금을 위한 하나님의 요구에 관하여 빛을 받아야 함.
◆가난한 사람으로 조직된 교회라도 십일조 제도를 분명히 가르치고 기꺼이 택하여야 함.
◆신자들이 하나님의 것을 바치는데 충실하다면, 온 세상이 복음 전도에 문호를 열 것임.
◆사단은 십일조와 헌금의 의무를 게을리 하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할 때 매우 기뻐함.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회개치 않은 자는 하는 하늘 금고를 잃어버림, 의무에 충실해야 기도가 가납됨.
◆중대한 십일조 제도를 백성에게 가르치는 것이 목사와 장로들과 직원들의 의무임.
[십일조는 순종의 표] “나는 십일조 제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 생각에 얼마나 미미하게 보이는가! 그 평가는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희생을 수학적인 법칙과 시간과 돈과 사랑으로 재고자 하는 노력은 얼마나 헛된가! 그리스도를 위한 십일조이다!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른 것에 대해 얼마나 미미한 기부이며 부끄러운 보상인가!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의 십자가로부터 조건 없는 순종을 요구 하신다”-교증4권,119.
요점) 십일조는 우리가 받은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충성과 순종의 표로서 요구하십니다.
■화요일■ 자신에 대한 책임감 [마22:39 요12:25]
【질문과 토의3】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가? 무슨 의미인가?
★귀띔: (1)이타적인 정신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증거임. (2)자신의 구속적 가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가치와 비례함.
[도움해설] ‘나’가 누구입니까? 우리의 자아와 존재적 가치는 무아적인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자아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나’의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갈 2:20)한 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열매는 예수님처럼 사는 삶을 소망하게 되는 성화입니다. 이기적인 삶이 이타적으로 바뀌고 더 이상 자신이 아닌 그분을 위해 살기를 원하며,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부르심에 주의를 기울여 예수님의 품성과 사랑을 반사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살아갑니다. 마음속에 주님이 거하시는 사람의 생애에서는 영적 생명의 조수(潮水)가 흘러 나갑니다. 이웃의 필요라는 밭고랑에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던지고 주기 위하여 살고 봉사하기 위해 자아를 바칩니다. 하늘의 자아 보존과 사랑, 영생의 법칙은 자아 희생의 법칙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
[도움예화] 경북 안동시의 임후남 할머니는 같은 동네 선천적 시각 장애인 유점희 씨를 30년간 돌보고 있는데, 가족보다 소중한 세상에 둘도 없는 ‘이웃사촌’이 된 것은 ‘앞을 못 보는 유씨가 딱하다’는 게 전부였습니다. 마을의 결혼한 새댁인 유씨가 시각 장애인인 것을 알고 그 때부터 식사준비와 청소, 빨래는 물론 밭일까지 도우며, 심지어 아이를 낳자 양육도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병원이나 잔칫집, 교회에 갈 때도 언제나 안내해 주었다고 합니다. 알콜 중독 남편이 돌아갔을 때도 옆을 지키며 친정어머니 역할도 해주고, 큰 아들이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었을 때도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만 따로 잘 뿐 매일 함께하여 모녀지간보다 더 가까워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발병까지 한다고 하여 유씨가 대구에 있는 둘째 아들 집에서 지내는 것도 포기하고 말았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호강 한 번 시켜드리고 싶은데 늘 도움만 받는 입장이라 아쉽다.”는 유씨 말에 “천국 가면 그때 갚으라.” 얘기하며 서로 환하게 웃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본보기이며 진정한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인] “이기심과 냉정한 형식주의는 사랑의 불길을 거의 꺼버렸으며 품성을 향기롭게 할 은혜를 쫓아 버렸다. 그분의 이름을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대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가정에서, 이웃 사이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남의 유익을 위하여 실제적으로 자아를 희생하지 않는 한, 우리가 무엇을 공언하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DA, 504
요점) 참으로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며 그분의 품성을 반사합니다.
■수요일■ 그리스도인의 결혼 [엡5:28]
[도움예화] “어떤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축하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신랑과 신부는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식순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랑 신부들을 지켜보는 하객들도 모두 즐겁고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하객들 중의 한 부부가 데리고 온 꼬마 아이가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불쑥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결혼이 뭐지?" 그 엄마는 어린 아이가 결혼에 대해서 묻는 것이 조금은 의외였지만 웃는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어서 하는 거란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면 싸우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잘못에 대해 감싸주고, 또 모든 힘든 일을 나누어서 도와주게 되지." 그러자 꼬마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결혼한 것이 아니구나.”
【질문과 토의4】왜 혼인을 귀히 여겨야 하는가? 결혼 제도를 세우신 신성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귀띔: (1)결혼은 인류의 순결과 행복을 수호하고 사람의 사회적 필요를 채워 주며 육체적·지적·도덕적 본성을 향상시킴, (2)결혼 관계를 하나님과 구속받은 백성과의 사랑의 관계를 상징하여 영광스럽게 하셨음.
[도움해설] 한해 12만쌍 이혼, 이혼자녀 10만명. 오늘날 한국 사회의 한 단면도입니다. 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며 결혼은 장난이 아닌데 이혼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지 오래전 일이고 시간이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예전에는 외도나 폭력이 이혼 사유였다면 현대인들은 단순히 성격차이, 대화단절, 애정상실, 낭비와 사치, 등등이 주요한 이혼사유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결혼관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이혼 사회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풍조는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의 원칙마저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첫 결혼을 집례하시고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신성한 원칙들이 인정되고 순종될 때에만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축복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
[결혼의 정의] “이성 간의 두 성인은 친밀하고 지속적인 사적 관계를 공유하기로 언약하며, 서로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고, 목표를 한데 모으는 유대감, 항구성, 신실함과 신뢰감이란 특징을 지닌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성스럽게 보존되어야 한다.”(창2:21~25 말2:14 엡5:28 참고) 교과 본문,156p
◆결혼하는 자들은 이생에서는 결코 졸업할 수 없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결혼의 침소를 범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결혼 서약을 깨뜨리거나 취소시킬 수 없다.
◆혼인의 결연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사랑은 그 가장 긴밀한 결합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받아야 한다.
[결혼과 구속] “신구약을 막론하고, 결혼 관계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곧 그분께서 갈바리의 희생으로 구속한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호적이고 거룩한 연합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산상보훈 p.64
요점) 오늘날 결혼 제도는 여러 도전 앞에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결혼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성한 제도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
■목요일■ 그리스도인의 행위 [약5:14]
【질문과 토의5】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하는가?
★귀띔: (1)세상에 속하지는 않으면서 사회적, 직업적 관계를 맺어야 함. (2)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로 주님의 정신을 실현함.
[일상적인 삶의 세 영역의 생활 방식과 행위]
◆고용인(주)과 피고용인의 관계(약 5:4~6, 엡 6:5~9).
→고용주와 피고용주는 성경의 원칙과 근로 기준법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국민의 의무(롬 13:1~7).
→성경 말씀의 원칙 하에서 국법에 명시한 국민의 의무와 규범에 솔선수범하여야 합니다.
◆사회적 책임(사 61:1~3, 마 25:31~46).
→그리스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당하지 않도록,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여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은둔에서 벗어나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불신자들과 동화시키는 그런 자들과의 관계를 금하셨다. 우리는 저들 가운데서 나와서 따로 있어야 한다...그러나 우리는 은둔적인 생애를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을 세상 사람들에게 행하여야 한다.”―복교,394
적용)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어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요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이상 사회적 의무나 책임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선물을 베푸시고,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특징짓는 이타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 즉 물질적 자원, 가족, 사회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분의 자애심을 반사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댓글목록
박금하님의 댓글
박금하 작성일
"안식일학교 교과를 일반 학교 과목보다
완전하지 못하게 배워야 한다는 이유는 조금도 없다.
안식일학교 교과는 분명히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으므로 어느 무엇보다 더 잘 배워야 한다."
(증언보감 2 p.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