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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질문, 대답, 부가설명)12/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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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2-12-08 08:43 조회8,07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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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안식일
일몰 : 오후 5시 15분

기억절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연구 범위 : 신 8:11~17, 빌 2:3~4, 고전 15:51~52, 계 22:1~5, 마 22:39, 창 2:21~25

중심 사상 : 누구든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만일 누군가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약 2:14, 쉬운성경)
성경은 “바른 교훈(교리)”을 강조한다(딤전 1:10, 딛 2:1~5). 그러나 그 강조의 바탕에는 거룩한 삶이 있다. 이는 성경적 교훈의 진정한 목표가 서로에 대한 책임감에서 표출되는 윤리적인 삶에 있음을 지적한다. 사실 그대가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바른 삶 자체가 바른 교훈인 것처럼 건전한 교훈과 옳은 삶을 연결시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선악의 대쟁투에서 다른 사람에게 구원과 유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구원을 받았다.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도대체 쓸모가 없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어지는 일(문자적으로는 ‘세상에 쓸모가 없을 정도로 하늘의 심령을 갖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하늘은 우리의 본향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직 이 땅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곳에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시간과 재능 그리고 개인적이며 물질적인 자원들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감과 가족과 이웃에 대한 책임감을 요약한다.
➋ 느끼기 :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모본이 가르치는 관대함과 자애심을 헤아린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A.
❷ 왜곡된 자아 사랑과 건강한 자아 사랑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왜곡된 자아 사랑은 이기심이고 건강한 자아 사랑은 자기를 올바른 사람으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예수 안에서 합당한 사람이 될 때에 건강한 자아 사랑을 이룰 수 있다.
❸ 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청지기와 봉사자로 살아야 합니까?
※ 자신의 존재를 비롯하여 자기가 처한 환경과 사용하는 모든 것이 창조주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창조주께 감사하고 그것을 창조주의 뜻대로 관리함으로 창조주를 진심으로 인정하거 신뢰하는 믿음의 삶이 나타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❹ 어떻게 하면 다음 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 이기심 없는 사랑의 봉사하는 정신으로 생활할 때, 기도로 굴복해야 한다.
B.
❷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올바르게 잘 관리해서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살아야 한다.
❸ 우리는 어떤 생각과 책임감을 가지고 결혼 생활과 사회생활을 해야 합니까?
※ 결혼생활은 서로 섬기는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도록하고 그 연장선에서 사회생활도 봉사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❹ 각자가 가족과 직장에서 보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 서로 이야기해보자. 주위에서 자기를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살면 얼마나 좋을까.

결론 :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선물을 베푸시고,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특징짓는 이타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 즉 물질적 자원, 가족, 사회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분의 자애심을 반사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첫째 날(일) 12월 9일 청지기 직분

1. 다음의 성경절을 찾아보라. 각 성경절 마다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라. 나는 이 성경절에서 가르치는 아름다운 진리를 어떻게 내 삶 속에서 드러낼 수 있는가? 이 진리들은 나의 삶의 방식과, 타인과 하나님을 대하는 법과,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신8:11~17]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답: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시인하고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임을 감사하며 경배하는 삶으로 산다.

[빌2:3~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답: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정신을 실천하며 산다.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답: 형제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기 위한 정신으로 생활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인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새 인종이라는 뜻이다. 그 새 인종이 이 세상에 속한 인종들과 함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는 법이 다르고 말하는 법이 다르고 먹고 마시는 것이 다르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낯선 인종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 사람들을 자기들과 같은 인종이 되게 하려고 그들에게 전도하며 봉사하면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표현했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과 생명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님 없이는 잠시라도 존속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런 인식이 그리스도인에게 확고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새 인종이 어떤 존재인지 증거하는 삶을 살아서 그들도 같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생활원칙이다. 아멘

교훈 :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람들을 섬기는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둘째 날(월) 12월 10일 십일조 : 적은 돈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느 10:38~39).

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고전 15:51~52, 계 21:4, 갈 3:13, 엡 1:6~7, 계 22:1~5.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런 약속들은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엡1:6~7]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계22:1~5]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답: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이 주어졌고, 영원한 천국이 주어졌고, 죄의 모든 저주에서 속량되어 완전히 죄 사함을 받았으며,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특권과 행복이 주어졌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영생하는 존재였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애쓸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키기만 하면 되었다. 그 영생을 잃어버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수단, 곧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가지를 번하고 말았다. 그들은 곧 생명을 잃었고 사망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사망에서 다시 생명으로 옮길 길을 마련하지 않았으면 아담 부부는 그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께서 찾아오셔서 그들 대신 당신께서 죽어주시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죽는 것을 유예하여 주셨고 이 유예된 기간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독생자 구주를 믿으면 다시 영생을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 위의 성경구절들은 이 약속의 확실성을 몇 가지 측면으로 계시해주는 말씀들이다. 우리는 이 약속이 확실한 것을 믿고 안다. 아멘.

교훈 : 십일조는 우리가 받은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충성과 순종의 표로서 요구하신다.


셋째 날(화) 12월 11일 자신에 대한 책임감

1. 예수님은 매우 분명하게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마 22:39)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성경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종종 자아에 대한 사랑을 기독교 정신이나 사심이 없는 무아의 정신과 가장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뜻은 무엇인가? 진실한 기독교 신앙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가?

답: 예수께서 결코 참된 자아를 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버리라고 한 자아는 아담 안에서 죽은 육신에 속한 자아이다. 거듭난 자아가 있어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거듭나도록 이끌 수가 있다.

2. 그대는 위에서 예수님이 주신 교훈과 아래의 말씀들을 어떻게 관련시켜 설명하겠는가?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답: 섬길 수 있도록 준비된 자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아이다. 이 마음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버려야 한다.

[고후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답: 이 말씀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사셨던 것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계셨더면 살았을 그런 삶으로 살아야한다는 말이다.

[고전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답: 그리스도인이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생활이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그들을 구원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벧전1:13~16]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답: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거룩한 것이다.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한다는 뜻이 아니다. 간디도 산상보훈을 실행했다. 그가 예수의 교훈을 실천했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이 곧 예수를 믿는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연히 예수를 참으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교훈을 실천한다. 실천한다기 보다는 실천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믿는 사람 속에서 사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운전자가 자동차 안에 안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고백하였다. 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라고도 하였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예수님의 교훈과 위에 적어둔 성경구절이 어떻게 조화되는지 당연히 알게 된다.

교훈 : 참으로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며 그분의 품성을 반사한다.


넷째 날(수) 12월 12일 그리스도인의 결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

1. 결혼의 성경적 정의를 수립하기 위해 다음의 성경절들을 연구하라. 창 2:21~25, 말 2:14, 엡 5:28.
[창2:21~2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말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엡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답: 결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제정한 제도로서 경건한 자녀를 얻도록 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이다.(말2:15) 그러므로 결혼은 하나님께서 증인이 된 결합이다. 그러므로 부부가 한 몸이 된다. 창조의 원리는 원래 부부는 한 몸이었다는 것을 잘 가르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부부가 되게 하셨다. 첫 결혼식의 주례는 물론 창조주께서 하셨다. 여자를 이끌어 남자에게 왔다는 말씀이 그것을 가르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결혼제도를 제정하셨다. 생육의 법칙을 제정하신 것이다. 이 법칙에 의하여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도 존재하는 것이다.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드심으로 실제적으로 일체인 사실을 확인해 주셨다. 그들을 통하여 생육하는 자녀들은 그 자체가 사랑의 존재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죄가 들어와서 이 모든 하나님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담과 여자가 당일에 죽었으면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어졌겠지만, 그러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죽음을 유예하시고 육체의 생명으로 일정기간 세상에 존속하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존속하는 기간에 남녀관계가 쾌락을 위한 범죄의 도구로 타락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원래의 원칙대로 사랑의 가정이 되도록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정 건설의 사명이다. 특히 재림성도들이 이 일을 올바르게 담당해야 한다. 남은 자손의 마지막 사명이 가정 경건의 회복이다. 느헤미야와 말라기를 주의 깊이 살피면 이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교훈 : 오늘날 결혼 제도는 여러 도전 앞에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결혼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성한 제도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

다섯째 날(목) 12월 13일 그리스도인의 행위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

1. 그리스도인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국민으로서의 의무,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성경의 원칙에 대하여 말하라.
[약5:4~6]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6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엡6:5~9]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롬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사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답: 그리스도인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고용주는 고용인을 형제로 대우하고 고용인은 고용주를 주인을 섬겨 피차 섬기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에 대하여서는 모범적인 국민이 되어서 국가의 각종 시책과 져야할 의무를 솔선해서 감당해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국가 시책이 충돌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책임은 봉사이다.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은혜의 손길이 되어야 하고 평소에도 이웃들에게 선한 이웃으로 생활해야 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도 이 세상에서 산다. 이 세상은 죄의 세상이고 모든 제도가 거기에 맞춰서 형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나라들을 맹수로 표상하셨다.(단7장)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마10:16) 이리가 양을 만나면 당연히 잡아먹는다. 그리스도인은 잡혀 먹힐 양 같은 상태로(슥11:4,5 참고) 세상을 사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 조심하는 모습이 고용주와 고용인, 국민으로서의 의무, 사회인으로서의 올바른 생활태도를 보임으로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물론 안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더욱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중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곳과 생활하는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성령의 크시니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주위의 이리를 양이 되도록 중생하는 길로 이끌어야 한다.

교훈 :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이상 사회적 의무나 책임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날(금) 12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8, 제22장, 제23장

“관대함과 자선의 행동은 인간 자녀들의 마음을 부드럽고 동정적이 되도록 해주며,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셔서 당신의 가난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부유하게 되도록 하신 주님을 모방하는 중에 서로간의 관심과 사랑을 격려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십일조 법은 지속적인 원칙 위에 세워졌고, 인간에게 축복이 되도록 고안되었다. 헌금 제도는 탐심이라는 큰 악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졌다”(교회증언 3권, 547).

“만일 어떤 사람에게 건강과 힘이 그의 자본이 된다면, 그는 그것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만일 그가 게으름과 쓸데없는 방문이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면, 그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그 일을 하는 게으른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번영케 하시는 대로 자선(慈善)의 목적으로 저축해 두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자신만을 돌보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의 큰 사업을 도와줌으로 그리스도의 자아부정과 극기와 유용한 생애를 본받도록 요구받고 있다”(교회증언 1권, 32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어떤 국가들에서는 이혼이 너무 만연해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결혼과 이혼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런 문제를 언급할 때 우리는 성경의 분명한 교훈을 어떻게 응용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했다면 사람들은 훨씬 적게 이혼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토론해 보십시오.
※ 성경의 원칙은 불변의 원칙이다. 재림성도들은 이혼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재림성도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도록 아내를 섬기며,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김과 같이 남편을 섬겨야 한다. 결혼은 서로 진정한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연습하고 실천하는 삶을 훈련하는 마당이다. 오늘날 재림교회가 이것을 실천해야 한다. 어떤 재림성도 부부가 어떤 경우로라도 이혼하는 것은 그 밑바닥 깊은 곳에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➋ 십일조의 제반 문제들에 관하여 깊이 묵상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몸담고 있는 기존 교회의 창구 대신 그들이 선택한 자들에게 십일조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태도에는 어떤 큰 위험성이 있습니까?
※ 십일조는 물질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신앙행위이다. 이것은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인데 그것이 곧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오늘날 그것은 교회에 낸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 중에 하나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제도를 따라서 바른 질서대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➌ 교회로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빈궁한 자들을 돌보라는 성경의 모든 훈계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자들은 아무도 이 의무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그들을 돌보는 일을 더 큰 목적에 대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주요 목표와 목적으로 삼는 데에는 어떤 함정이 있을까요?
※ 이웃을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의 생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기의 영예나 사회적 찬사를 기대하는 것이 전혀 없이 생리적 상태로 수행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바리새인의 구제와 봉사가 될 것이다.

댓글목록

김종복님의 댓글

김종복 작성일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좋은 말씀이 나의 마음에 큰 변화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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