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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교회 : 의식과 의례(질문, 대답, 부가설명)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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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2-11-24 01:25 조회8,0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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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안식일
일몰 : 오후 5시 14분

기억절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연구 범위 : 마 28:19~20, 롬 6:3~8, 요 13:1~17, 마 26:26~28, 고전 11:24~26

중심 사상 : 하나님은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의식들을 제정하셨다.

많은 사회에서 때로 ‘통과 의례’라고 불리는 신고식을 치른다. 어떤 사회에서는 통과 의례가 삶의 단계를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성인식은 사춘기 즈음에 치러진다.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모든 성인식에는 젊은이들이 생산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공동체 중심의 개인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하려는 목적의식이 있다. 그 과정에서 소년과 소녀는 어른의 방식을 배운다.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를 보여 준다.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개인의 신앙적 헌신을 공식화하는 특별한 의식이 있다. 이런 신성한 행위들은 공동체 내의 참여 의식과 유대감을 확인할 뿐 아니라 각 개인이 공동체의 신실하고 생산적인 일원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은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바치는 헌신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게 해 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는 세 가지 의식, 즉 침례, 세족 예식 그리고 성만찬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침례, 세족 예식, 성만찬으로 상징화된 영적 변화와 진리를 설명한다.
➋ 느끼기 :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예식들의 신성한 본질을 개인적으로 경험한다.
➌ 행하기 : 침례, 세족 예식, 성만찬식에서 공동체적인 신앙 표현에 참여한다.

A.
❷ 교회에서 행하는 예식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 복음을 예식으로 설명하고 참여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❸ 우리가 세족 예식과 성만찬에 빠지지 말고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용서와 그의 몸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을 고백하고 확인하고 복음을 체험하는 예식이기 때문이다.
❹ 성만찬을 더욱 의미 있게 거행하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 성실하게 참여하고 그 의미를 더 깊이 인식하고 실천하도록 할 것이다.

B.
❷ 가톨릭의 성례전과 우리의 예식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 그들의 성례는 그것 자체가 속죄가 되고 그 예식이 구원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성경과 다르다.
❸ 성만찬과 재림의 소망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님의 죽으심이 재림을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소망의 기쁨을 준다.
❹ 교회 예식을 통해 배운 교훈들을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 겸손한 생활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기능을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

결론 : 침례, 세족 예식, 성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예식으로서 그분의 고난을 나누고,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받아들이며, 봉사와 헌신의 삶을 나누는 상징들입니다.

첫째 날(일) 11월 25일 신성한 의식의 명칭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1. 마 28:19~20, 요 13:14, 고전 11:23~26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신성한 행위를 “예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사상을 얼마나 지지하고 있는가?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고전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답: 예식이라는 말의 영어가 ordinance인데 이것은 “제정하다(to ordain)”라는 말에서 나온 명사이며 그것은 예수께서 제정하셨기 때문에 “제정한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하였다. 위의 성경구절들은 예수께서 친히 명하여 제정된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들이다.

<부가설명> 교회들에는 예전(禮典)들이 많다. 특히 카톨릭에는 엄청 많다. 교과에서 말한 것처럼 7성례전이 있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명절을 만들어 지키는 것도 예전에 속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인가?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부활절, 어떤 곳에서는 오순절도 절기로 지킨다. 이렇게 교회가 정하여 지키는 것들도 교회절기들이며 그 절기에 맞는 예전들이 있는 것 같은데, 필자의 무지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구약성경에는 일곱 절기가 있고, 성소봉사가 있다. 절기와 성소봉사에는 복잡한 예식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신 후에 그런 모든 예식으로 수행한 표상들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그런 예전들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 친히 명하시므로 교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예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침례, 세족례, 성만찬 예식이다. 이 예식들은 구속의 역사(役事)를 모든 신자들에게 현재에 적용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예수를 믿는 신자들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예식들이다.

교훈 : 예식이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신성한 행위들을 말한다. 그것은 믿음과 충성에 대한 상징이지만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날(월) 11월 26일 침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3).

1. 대부분의 교회가 세례를 행한다. 그것이 성경적인가?
[엡4: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마3: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행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답: 이 구절들은 침례가 하나라고 가르치며, 또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다고 가르친다. 이 말에는 침례 형식도 하나라는 의미와 그 형식이 물에서 올라오는 형식임이 포함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머리에 물을 바르는 세례와 물속에 잠그는 침례 중에 하나만이 성경적이다.

<부가설명> 개신교에서는 세례라 하고 천주교에서는 영세라고 하는데, 요즘도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이 말은 헬라어 바프티스마를 번역한 것이다. 침례라 한다고 원어가 다른 것은 아니다. 똑 같은 바프티스마를 침례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번역된 단어 자체에 문제를 두는 것은 바른 인식은 아니다. 그것을 수행하는 실제적 방법이 어떠냐하는 것을 논해야 한다. 세례라고 말하면서 물에 잠갔다가 올라오는 방법으로 한다면 그 단어가 문제될 것은 없다. 세례라 하고 머리에 물을 바르는 것으로 방법을 삼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고 세례라는 말이 그렇게 형식과 의미가 고정되어버렸기 때문에 물속에 잠그는 방법으로 예식을 행하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침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어 자체도 침례가 성경적이며 옳은 것이 되었다. “올라온다.”는 말은 헬라어 아나바이노 인데, “올라가다  ‘일어나다,  기어오르다, 오르다, 자라다, 솟아나다, 나타나다”등의 뜻이다. 이 말은 분명히 물에 들어갔다가 솟아나오는 것을 가리킨다. 성경의 바프티스마는 그렇게 행하였다. 침례는 하나이다. 침례는 예수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롬6:3) 죽었다는 것은 호흡이 완전히 멈출 때 확인된다. 물속에 들어갈 때에만 예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올바르게 표상한다. 그리고 물에서 나올 때 부활을 올바르게 표상한다. 그러므로 이 예식은 침례로 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교훈 : 성경적인 침례 예식은 새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의 연합의 상징으로서 후보자의 회개, 믿음의 경험, 성경 연구를 중요시한다.

셋째 날(화) 11월 27일 겸손 예식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1. 눅 22:24~27을 읽어 보라(마 18:1, 20:21 참고). 제자들이 아직 모르는 중대 진리는 무엇이었는가?
[눅22:24~27]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마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답: 제자들은 천국이 섬기는 자의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고, 이 세상의 지배 논리로 천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2. 우리는 요 13:1~17에서 성찬식의 일부인 세속예식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요13:1~17]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답: 천국은 섬기는 자의 나라라는 것과 선생과 주님이 되신 분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본을 통하여 천국의 실상을 나타내 보이셨다. 지극한 겸손이 천국 민의 본성이라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낮추심에 대하여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얼마나 실감나게 알고 있겠는가. 바울은 빌립보2:5~8절에서 그분의 낮추심에 대하여 설파하고 우리도 그분과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위의 성경구절들도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마태 20:28절에서는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로 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천국은 서로 섬기는 곳이기 때문에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고 화목이 있다. 이 땅에서 이런 정신이 생활이 된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천국이었다.

교훈 : 예수님은 왜곡된 세상에서 참진리가 무엇인지 겸손 예식을 통해 가르치셨다. 우리는 그와 같은 정신으로 성만찬에 참여해야 한다.


넷째 날(수) 11월 28일 주의 만찬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1. 마 26:26~28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행하도록 당부하신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을 상징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답: 떡과 포도즙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행할 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속죄의 은총을 찬양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것은 의미를 드러내는 예식이기 때문에 상징인 것이다.

2. 고전 11:24~26을 읽어 보라. 십자가에 대한 어떤 중요한 교리적 진리가 여기에 있는가?
[고전11:24~26]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답: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가르쳐준다. 그것은 곧 대속의 진리이다. 성만찬 예식을 행할 때마다 우리 주님의 대속의 희생을 기억하고 속죄 받은 은혜와 기쁨을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성만찬은 어디까지나 기념이다. 우리가 기념식을 행할 때 기념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전에 있었던 사건, 사실을 생각하며 그 의미를 적용하는 상징적 예식인 것이다. 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 곧 우리 사망의 대속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예식인 것이다. 이것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을 참으로 믿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신앙고백 예식이다.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성만찬에 불참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희생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을 파괴하는 일이다. 우리는 결코 그런 태도를 스스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교훈 : 성만찬은 구약의 유월절을 대체한 예식이다. 우리는 떡과 포도즙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그 은혜에 속한 공동체가 된다.


다섯째 날(목) 11월 29일 재림의 소망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1.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여기에 어떤 위대한 소망이 제시되었는가?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답: 성만찬 예식은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가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예식이라고 계시한다.

2. 재림 없이 그리스도의 초림이 어떤 쓸모가 있겠는가?

답: 예수님의 재림이 없으면 구원사업은 실패가 된다. 예수님은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되는 것이다. 재림으로 주님의 구원사업은 완성된다.

3. 마 26:2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답: 예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과 식탁에서 친밀하게 교제하실 것을 나타낸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간절히 기다리시겠다는 친밀한 약속을 볼 수 있다.

<부가설명> 재림이 없으면 구원은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재림을 위한 발판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은 하늘에서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고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시기 위한 것이다.(요16:8~10) 그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모든 성도들을 데려가서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나누실 때 십자가의 공효가 온 우주에 확증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림하신다. 재림이 없으면 구원이 완성되지 않고 시작만 하고 실패한 사업이 된다. 재림하시고 천년기가 지나고 다시 지상으로 오셔서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처음에 창조하셨던 목적을 온전히 이룰 때에 구원사업은 완결되는 것이다. 십자가는 이것을 위하여 굳건한 발판을 놓은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재림을 위한 준비인 것이다.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우리는 재림을 기쁨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이것은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이 소망을 생생하게 간직하도록 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하여 다같이 모일 때는 언제나 어떻게 “예수께서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하신 것을 자세히 말하곤 하였다. 환난 가운데서도 그들은 주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희망으로 위안을 받았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는 생각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귀중하였다. 이것들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 강권하는 힘이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기억에 새롭게 간직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하시고자 이 예식을 제정하셨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우리 영혼과의 연합이 있을 수 없다. 형제와 형제 사이의 연합과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굳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만큼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효험있게 만드는 것은 없다. 우리가 즐거움으로 그분의 재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분의 죽으심 때문이다.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의 소망의 중심이다. 그 위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고착시켜야 한다.”(소망 659)

교훈 : 성만찬은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과 재림의 때에 완성될 구원의 절정 사이에서 우리에게 큰 약속과 확신과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여섯째 날(금) 11월 3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 교리 28, 제15장~제18장

“침례는 가장 거룩하고 중요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그 의미에 관하여 철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침례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애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침례를 받도록 부당하게 재촉해서는 안 된다. 부모와 자녀들은 다함께 그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교회증언 6권, 93).

“유월절은 뒤로 이스라엘 자손의 해방을 가리켰고, 앞으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문설주에 뿌려진 피는 속죄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하였으며, 죄 많은 인간이 사탄의 권세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최종적인 구원을 얻으려면 그 피의 공로에 끊임없이 의지해야 함을 상징하였다”(The Spirit of Prophecy, vol. 1, 20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세족예식에서 그대가 다른 이의 발을 마지막으로 씻어준 때가 언제입니까? 왜 이 의식이 중요합니까?
※ 세족예식한 때에 발 씻어준 것은 서로 이야기할 내용이다. 세족예식은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는 예식이고 예수님의 용서를 감사하며 기억하는 예식이며, 서로 용서하는 정신을 실천하는 예식이다.

➋ 벧전 3:20~21을 읽어 보십시오. 침례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베드로가 사용한 비유는 무엇입니까?
[벧전3:20,21]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 노아 홍수이다. 이것은 새로운 창조를 나타내는 사건이다. 죄가 관영했던 세상과 사람들이 물로 죽임을 당하고 노아와 그 식구들로 말미암아 인류가 새로 시작하게 된 것 같이 죄인 사람이 죽고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침례이다.

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오해를 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식인습관입니다. 그 오해는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3~56).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이와 같은 말씀의 영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요6:57)

➍ 성만찬식의 공동체적 측면을 더 자세히 토론해 보십시오. 그대의 교회는 성만찬을 통해서 내적으로 교인들끼리 그리고 외적으로는 지역 사회에 대하여 우리의 의무가 무엇이라고 이해합니까?
※ 서로 이야기해보자.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된 사실을 확인하며, 하나된 정신으로 재림의 소망을 지역사회에 증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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