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용서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요나)(질문, 대답, 부가설명)05/11/13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6과 용서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요나)(질문, 대답, 부가설명)05/11/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5-04 07:31 조회8,292회 댓글0건

본문

5월 11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1분


    기억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욘 2:9).

    연구범위: 욘 1~4장, 시 139:1~12, 사 42:5, 계 10:6, 마 12:39~41, 대하 36:15~17.

    중심 사상: 요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보다 훨씬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평범치 않은 하나님의 사자 요나의 일화는 성경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임박한 멸망을 알리러 요나를 니느웨로 파송하셨다. 그는 과연 이방인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해 주실지 의심하였다. 참선지자로서 요나는 하나님의 계획이 니느웨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도망하려고 했던 것이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계획을 능가하는 힘에 의하여 요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요나의 설교를 듣고 성 전체가 기별을 받아들여 회개하였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과 유다가 거부했던 방식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요나는 중요한 교훈을 많이 배웠다. 요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편협하고 고집스런 선지자를 어떻게 인내하며 가르치시는지 그리고 진정한 은혜와 자비와 용서란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 우리가 우리와 신념과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의 접근 방식의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2. 느끼기 :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의 품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복종하는 것임을 인정한다.
3. 행하기 :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온유와 사랑의 태도로 대한다.

A.
2.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심정이 어땠으리라고 생각합니까?
※ 엄청 두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요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그대는 어떤 교훈을 배웠습니까?
※ 하나님은 자기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의 종을 그 일에 종사하도록 이끄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4. 우리가 저항하지 말고 꼭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말해 봅시다.
※ 성경이 계시한 모든 말씀들은 저항할 사항이 아니다.
B.
2. 요나가 탄 배의 선원들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까?
※ 폭풍우로 하여 요나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을 받아들여 그를 바다에 던졌을 때 알게 되었다. 요나가 비록 부정적이었지만 그는 창조주 하나님 우주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3. 니느웨 백성에 대한 요나와 하나님의 입장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은 구원을 기뻐하시고 요나는 자기의 자존심을 중하게 여겼다. 하나님은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셨고, 요나는 하나님이 자기 마음 같기를 바랐다.
4. 우리가 편견 없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할 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모든 일에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특히 구원사업에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결론 하나님은 선원들, 니느웨 백성들 그리고 선지자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모든 사람에게 심지어 최악의 죄인들에게 열려 있고, 국경을 초월하며, 인간의 이해와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첫째날(일) 불순종하는 선지자(욘 1장)
5월 5일

  “그러나 요나가…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 1:3).

1. 시 139:1~12을 읽어 보라. 여기에 우리를 위한 어떤 근본 기별이 있는가? 이 근본적인 진리를 우리 안에 어떤 종류의 정서를 일으키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도 보신다. 우리는 항상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가? 아니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잊어버리게 되는가? 또는 그런 생각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신다는 사실에 항상 주의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다르게 살게 될까?
[시139:1~12]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답: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는 사람 개개인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에게 무엇을 숨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열려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다고 여기실 사언행(思言行)으로 사는 것이 행복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사람의 잘못을 잡아내려고 살피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 하나님과 직결되어 있다. 우리의 사언행이 요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바로 하나님의 컴퓨터에 입력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동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하나님은 각 개인의 마음을 창조하셨고 그 마음은 하나님의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각 사람에게 파견한 파수꾼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일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시33:15 쉬운 성경) “사람들의 마음을 몸소 빚어 주신 분이시라, 사람이 하는 일 모르는 것이 없으시다.”(공동번역) 그것은 사람들은 양심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잘못할 때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셔서 창조주께서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 무시하면 마침내 양심은 화인을 맞아서 잘못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파렴치한이 된다. 우리의 생각까지 다 아시는 그분의 눈앞에 모든 것이 벌거벗을 것처럼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히4:1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솔직하게 생활하도록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였다. 그분의 뜻을 행하기 싫어 하나님을 피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둘째날(월) 내키지 않는 증언
5월 6일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욘 1:15~16).

1. 1:9절에서 요나는 자신이 경외하는 여호와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했는가? 여호와에 대한 설명에서 중요한 사실은 무엇인가?(계 14:7, 사 42:5, 계 10:6 참고)
[욘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계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사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계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답: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했다. 그는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부가설명> 성경의 하나님은 그 이름이 여호와이시며 곧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를 창조하신 창조조이시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해야 할 이유를 계시할 때에 항상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존재의 근본이시다. 그분이 안 계시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그분은 우리에게서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그래서 우주에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사45:5)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이 계시하는 대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그 사실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을 생활에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제7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깨달음과 이런 정신으로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토요일 교인이 되고 말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폭풍을 통해 도망하는 요나를 놓지 않으셨고, 그 과정에서 선원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바다의 주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날(화) 요나의 시
5월 7일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배 속에 있으니라”(욘 1:17).

1. 요나 2장은 요나의 시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그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이 장에서 우리는 어떤 영적 원리를 배워야 하는가?
[욘2:1~10]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답: 요나는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으나 4장에서 보면 올바르게 깨달은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만민의 구주시라는 교훈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부가설명> 요나가 자기를 물에 던지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주실 것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요나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거역하는 니느웨를 구원하시겠다는 뜻을 강력히 요나에게 알리시는 메시지로 삼았을 수 있다. 그런데 요나는 자기의 구원은 감사하면서 니느웨의 구원에 대하여서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제조건은 있다. 회개하는 것이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그것을 적은 것이 2장의 요나의 시이다. 그는 구원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으며 그분께 속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것을 우리가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KJV에서 큰 물고기를 고래라고 번역한데서 문제가 야기 되었다. 고래의 목은 가늘어서 사람 같은 큰 덩치를 삼킬 수 없다고 한다. 고래상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큰 물고기는 고래가 아니고 물고기이다. 원어는 “다그 가돌”이다. 말 그대로 큰(가돌) 물고기(다그)이다. 고기 종류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교훈: 하나님은 물고기 배 속에서 회개의 기도를 올린 요나를 구원해 주셨고 그는 자비와 용서를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넷째날(수) 성공적인 사명 완수
5월 8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욘 3:4~6).

1. 마 12:39~41과 대하 36:15~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회개의 중요성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는가?
[마12:3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대하36:15~17]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16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답: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가설명> 사람은 누구나 회개해야 한다. 많은 교인들이 회개를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회개를 올바르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회개의 근본은 창조주를 떠난 사실, 창조주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창조주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가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나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도 그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생활했다면 그것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성경이 계시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그는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르는 사람이다.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기도해도 그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을 부르짖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진정으로 회개하자. 그럴 때에만 생명을 얻게 된다.(행11:18)

  교훈: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기별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은 회개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멸망을 경고하게 하신 목적이었다.


다섯째날(목) 용서받았지만 용서 못하는
5월 9일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3~4, 11).

1. 요나 4장을 읽어 보라. 요나는 어떤 중요한 교훈들을 배워야 했는가? 그의 위선적 태도는 어떻게 드러났는가?
[욘4:1~1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답: 요나는 2장에서 기도할 때에 자기의 구원을 감사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을 구원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고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는 니느웨의 멸망을 외쳤는데 구원되는 것을 보고 화를 내었다. 그가 외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지 그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가 화를 내는 일을 통하여 그의 일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2. 요나의 실수를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편견은 복음 전파에 얼마나 해로운가?

답: 우리는 요나와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너그러운 생각이라고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구주를 보내시고 회개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사랑과 자비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실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구원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오해는 모든 호흡하는 인류가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호흡하고 사고(思考)하고 활동하고 엄청난 문명을 건설할지라도 창조주의 안목에는 죽은 자들일 뿐이다.(마8:21,22, 고전15:22, 엡2:1 참고) 그런 죽은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뜻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또는 율법적으로 또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성경의 계시와는 전혀 상관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들이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그 상태대로 끝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멸망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 안에서 멸망된 그 상태대로 끝나는 것일 뿐이다. 이 멸망을 면하고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구원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 그것은 멸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아무리 성인이라도 예수 없이는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이 도덕적 선행이나, 어떤 종교를 신봉하여 득도하고 성불해도 그것이 그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오직 창조주와 구원의 주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분 앞에 나와서 그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분이 주시는 생명을 받지 않으면 인간의 선행이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학자들은 요나서를 분석하기를 1장은 요나가 하나님을 떠나 도망가는 장. 2장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장. 3장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장. 4장은 하나님보다 앞서가는 장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분석이다. 우리는 어느 장에 있는가?

  교훈: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도 구원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하여 자신의 편견을 버려야 했다.


여섯째날(금)
5월 1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그분께 도움을 호소할 수 있는 귀한 특권을 가진다. 장소가 얼마나 부적합한가는 상관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귀는 그의 외침에 열려 있다. 아무리 황량하고 캄캄한 장소라 할지라도 그곳은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에 의해 실제적인 성전으로 바뀔 수 있다”(재림교회 성경주석 8권, 726).
  “그는 니느웨를 아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 성읍을 경고하여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였다. 비록 예언한 사건은 성취되지 않았을지라도 경고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을 성취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은 이방인 중에 나타났다”(선지자와 왕, 272~27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요나서는 천연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계신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연재해로 그대의 친구가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는 천연계를 파괴하고 인명을 앗아가는 재해를 보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천연계를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에게 설명하겠습니까?
※ 천연계의 재난은 천연계의 순환 중에 생기는 현상이다. 어떤 것은 사람이 천연계를 지나치게 훼손했기 때문에 생기는 수도 있다. 사람이 그렇게 할 줄 아는 것처럼 사단도 천연계의 재난을 활용할 줄 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구원의 사자로 살리기 위하여 천연계를 사용했지만 사단은 욥의 자녀들을 죽이기 위하여 천연계를 사용하였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에 천연계의 순환은 처음 창조하였을 때의 상태에서 변질 되었다. 그 변질된 상태에서 우리는 천연계의 재난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창조주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부활의 아침에 재난이 결코 일어나지 않은 천연계를 만날 것이다. 새 하늘 새 땅이다.

2. 요나서의 마지막 절을 읽어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온 세상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우게 됩니까?
※ [욘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믿는 자만 구원받을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구원받기를 거절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4:10) “우리가 모든 사람의 구주이시요, 특히 믿는 사람의 구주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므로, 우리는 수고하고 전력을 다합니다.”(새번역)

3. 마 18:21~35의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용서를 취소하고 종을 감옥에 가두었던 화난 임금과 하나님을 비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용서를 취소하시는 분입니까? 어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그런 분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스스로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그 용서를 거두실 것이다. 이 종은 자기의 용서를 악용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인 증거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태도가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비유는 하나님이 용서를 취소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4. 세속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은 사람이 산 채로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간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예수님은 그 이야기의 사실성을 증언해 주셨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를 비춰 볼 때, 세계에 대하여 반초자연적 견해는 얼마나 편협하고 제한적입니까?
※ 그런 생각은 하나님께서 천연계의 법칙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창조주시오 자존자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의 뜻에 합당할 때에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하시고자 하시면 어떤 일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다.”(시115:3 새번역)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개역)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