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아모스)(질문, 대답, 부가설명)0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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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4-27 20:17 조회8,830회 댓글0건본문
5월 4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25분
기억절: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하시리라”(암 5:14).
연구범위: 암 5:1~15, 히 5:14, 사 5:20, 암 7:10~17, 암 9:11~15, 행 15:13~18.
중심 사상: 아모스는 여호와를 구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성실하였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의 존귀와 높임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으셨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순종의 길로 행했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을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셨을 것이다.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고 모세는 말하였다.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열국은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라고 말할 것이다(신 26:19, 28:10, 4:6). 그러나 그들의 불충실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계속적인 역경과 굴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28).
이번 주에 우리는 계속 아모스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그 백성들에게 죄에서 떠나 유일한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셨는지 볼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생명과 사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아모스는 이 둘 사이에 엄연한 차이점을 보여 줄 것이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 하나님이 우리가 선을 행하기 바라신다는 점과 그분을 구하고 그분의 참된 가치를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임을 깨닫는다.
2. 느끼기 : 악은 재난을 부르며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지만 선은 우리의 감정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3. 행하기 :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삶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간구한다.
A.
1. 세상이 죄를 권장하고 선을 조롱하는 예가 있다면 이야기해 봅시다.
※ 요즘 대표적인 것이 소위 다원주의 신앙 사상과 동성애에 대한 태도이다.
2.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러울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기록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굴복하고 말씀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야 한다.
3.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선지자의 호소는 어떤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하라는 것이다.
4.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결심은 무엇입니까?
※ 결심은 별로 힘이 없다. 우리는 정말 말씀에 굴복해야 한다.
B.
2.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 그들은 의식만 그럴 듯 했지, 생활이 없었다고 평가하셨다.
3. 아모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생활하는 것이었다.
4. 재림을 통해 성취될 약속을 믿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재림교회가 가르치는 말씀대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결론: 공허한 의식들과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행들은 만족을 주지 못할 뿐더러 우리를 하나님 또는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로 이어 주지도 못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길만이 참된 삶을 가져다줍니다.
첫째날(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
4월 28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암 5:15).
1. 암 5:14~15을 읽어 보라. 우리는 어떻게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할 수 있는가?(히 5:14, 롬 12:9, 잠 8:36)
[암5:14,15]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롬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잠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답: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받을 때 선악을 분변할 수 있다. 잠언은 지혜를 구하라고 한다. 진혜는 선악을 구별할 수 있게 한다.
2.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 5:20에는 어떤 경고가 있는가?
[사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답: 선악을 거꾸로 안식하는 세상에 대한 경고이다. 가치의 전도(顚倒)에 대한 책망이다.
<부가설명> 악을 선처럼 여기는 일이 생길 때에는 언제 그럴듯한 이유와 합리성이 마련된다. 가장 강한 영향은 문화적 영향이다. 그 지역 문화가 그렇게 되어 있으면 그런 문화에 젖은 사람들은 그 문화가 행하는 선하지 못한 행사를 절대로 선하지 못하다고 느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 옛날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은 그 지방의 문화 때무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미리 경고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18:2~4) 그리스도인이 처하여 살고 있는 사회의 문화는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한국교회는 유교와 불교문화에 상당히 많이 젖어 있다. 교인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그 영향을 생활하고 있다. 요즘 재림교회는 동성애에 대하여 너그럽다. 또 여성 목사 안수 문제도 완전히 문화적 압력이다. 옛날에는 그런 문제가 제기되지도 못했다. 물론 그때는 또 그때 문화 때문이었다. 우리는 레위기의 권고대로 애굽 문화도 아니고 가나안 문화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문화를 창달해야 한다. 그래야 악은 선하다고 하지 않고 선을 악하다고 하지 않는다.
교훈: 멸망을 목적에 두고 이스라엘이 선택해야 할 길은 단 한 가지, 하나님께 돌아오되 죄를 버리고 선을 행해야 했다.
둘째날(월) 일상적인 종교
4월 29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3~24).
1. 암 5:23~24, 호 6:6, 마 9:13, 시 51:17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우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여기서 말하는 원칙들을 어떻게 우리의 영적 생활에 직접 적용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도 여기서 경고하는 죄를 범할 수 있는가? (이런 영역에서 쉽게 자기를 기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암5:23,24]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답: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인애를 베푸는 삶을 원하신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며 사람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불쌍히 여기는 삶을 구하신다.
<부가설명>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 곧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두 가지로 계시하고 있다. 하나는 예식을 갖추어서 하는 예배이다. 공중 예배나 가족 예배나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어떤 형식이든지 순서를 갖추고 정해진 예법을 따라 하는 예배이다. 다른 하나는 생활예배이다. 로마12:1에 말한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합리적 예배가 바로 생활예배를 가르친다. 나는 이 두 예배를 예식예배와 생활예배로 구분하여 표현한다. 위의 성경구절들은 생활예배의 원리를 나타낸다.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동정하고 도와주고 봉사하고 사랑과 자비를 생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런 생활예배를 엿새 동안 계속 하다가 안식일에 예식예배에 임하는 것이다. 그때 부르는 찬양노래와 악기로 연주하는 찬양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그러나 생활예배를 전혀 하지 않고 예식예배에 임하여 찬양하고 연주하는 것은 거짓이 된다는 것을 이 구절들은 계시하고 있다.
교훈: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자들은 종교의 형식에 몰두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에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기를 바라신다.
셋째날(화)
4월 30일
선지자가 되라는 부르심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암 7:12).
1. 암 7:10~17을 읽어 보라. 여기에 어떤 비슷한 유형이 보이는가? 성경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또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 모든 경우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암7:10~17]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16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답: 벧엘의 금송아지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모함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못하도록 공갈하고 정치적 위협을 하였다. 아합 왕 때에 미가야 선지자도 이런 위협을 받았고,(왕상22장 참고) 예레미야도 이런 위협과 배척을 받았다.(렘26장, 38장 참고)
<부가설명> 어느 시대나 평안을 예언하는 사람들이 환영을 받았던 것 같다. 백성들의 이런 마음이 거짓 선지자를 양산하게 하였다. 또 정반대 경우도 있다. 소위 경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로움을 과시하는 모습으로 성경에 기록된 경고와 위협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외친다. 이것도 전체적으로 성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역시 거짓 경고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경고를 받는다. 이것이 정로이니 이리로 가라는 그 음성을 잘 들어야 한다.(사30:21) 그래서 우리는 학자 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구하여야 한다.(사50:4,5) 그래서 성령으로 인도되는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바르게 분변하고 정로를 따라 진리대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교훈: 아모스는 유다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북방 이스라엘에 가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왕과 귀족들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넷째날(수) 최악의 기근
5월 1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답: 사람들이 자기 이기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별하여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에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근에 빠지는 것이다.
<부가설명> 어느 시대나 이런 경우가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특히 이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심각한 시대인 것 같다. 성경책은 부지기수로 출판되고 해설 성경이 홍수 같고 주석 책들도 엄청나게 많이 간행되지만 바른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드물다. 다 문화와 세상 학문과 철학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종교학과 철학으로 만들어서 나타내고 있으며, 사단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그 원리 위에서 해설하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옳은 것이 있기는 하겠지만 전체적 의미로는 거짓을 증거하는 출판물들이고 그런 사랑을 기초로 하여 전파되는 강론들은 거짓 선지자의 목소리가 된다. 우리는 정말 겸손하게 오직 성경으로 성경을 깨닫는 원칙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서 정로를 따라 믿음 생활하도록 주님께 굴복하자.
교훈: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하게 거부해 왔던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한 심판은 하나님의 침묵이다. 그때는 그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게 된다.
다섯째날(목) 유다의 폐허가 복구됨
5월 2일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암 9:11~12).
1.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리라는 아모스의 약속은 어떻게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인가?(눅 1:32~33, 행 15:13~18 참고)
[눅1:32,33]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행15:13~18]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속죄를 이루셨으며 재림하셔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온전히 성취된다. 시간적 관점이나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성경의 예언들은 쓸모없어 보인다. 예언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모든 육체는 들의 풀과 같고 그 영화는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 중에 구체적으로 성취되지 않은 역사적 예언이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런 것이 있었었을 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 예언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면 다 성취돈 것임을 믿을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때 모든 예언이 성취된다. 우리는 그때 거기서 주님을 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예언이 성취된 것을 그때 감격과 감사로 보게 될 것이다.
교훈: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고 이방인들까지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여섯째날(금)
5월 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입장은 우리가 받은 빛의 분량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활용하는 여하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이 분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이방인들은 큰 빛을 받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은 하나, 그 빛을 무시하고 그들의 일상생활로써 자신들의 고백을 부인하는 자들보다 더 유리한 형편에 있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23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지금은 성경이 금하는 행위나 생활방식, 태도 또는 가치를 수용하는 시대입니다.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게 여기는 조류가 거세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의 문화적 경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년 동안 그대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는 수치스럽게 여기고 금기시했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노출되거나 표현되어서 오히려 괜찮게 보이거나 최소한 더이상 나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이런 인식의 변화는 그런 행동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악을 선으로 여길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반대로 사회의 어떤 긍정적인 변화들이 예수님의 삶에서 나타난 사랑과 용납의 정신을 더욱 가깝게 실현하는 방향으로 교회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 문화압력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런 문화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합당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요즘은 여자들이 거의 나체에 가깝도록 노출해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과시하는 것이 되었고, 사람들이 수치를 느끼게 하는 단어들을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는다. 동성애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시대가 되었고, 재림교회 내에서도 괜찮게 여기는 풍조가 팽배하다. 유전자 탓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그 유전자가 바로 죄로 변질된 유전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그 유전자가 고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오직 진리의 말씀에 의하여 판단하고 회개로 이끄는 자비와 사랑으로 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말해보자.
2. ‘말씀의 기근’에 대하여 좀 더 묵상해 보십시오. 말씀의 기근은 어떻게 생깁니까? 하나님이 진리를 숨기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백성들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입니까? 토론해 보십시오.
※ 당연이 하나님은 말씀을 공개해놓으셨다. 공개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 안목으로 해석하고 강론하기 때문에 진리가 메마르게 된 것이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성경이 제시한 원리에서 결코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된다.
3. 많은 빛과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이런 놀라운 진리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것일까요?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어진 진리들은 교회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과 남을 대하는 태도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에게 위탁된 진리를 우리는 어떻게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행함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행함은 진리의 말씀을 세상에 가장 올바르게 드러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연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더욱 풍성한 생명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말씀이 생명의 능력이 되어 우리를 이끌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몰:오후 7시 25분
기억절: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하시리라”(암 5:14).
연구범위: 암 5:1~15, 히 5:14, 사 5:20, 암 7:10~17, 암 9:11~15, 행 15:13~18.
중심 사상: 아모스는 여호와를 구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성실하였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의 존귀와 높임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으셨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순종의 길로 행했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을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셨을 것이다.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고 모세는 말하였다.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열국은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라고 말할 것이다(신 26:19, 28:10, 4:6). 그러나 그들의 불충실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계속적인 역경과 굴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28).
이번 주에 우리는 계속 아모스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그 백성들에게 죄에서 떠나 유일한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셨는지 볼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생명과 사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아모스는 이 둘 사이에 엄연한 차이점을 보여 줄 것이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 하나님이 우리가 선을 행하기 바라신다는 점과 그분을 구하고 그분의 참된 가치를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임을 깨닫는다.
2. 느끼기 : 악은 재난을 부르며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지만 선은 우리의 감정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3. 행하기 :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삶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간구한다.
A.
1. 세상이 죄를 권장하고 선을 조롱하는 예가 있다면 이야기해 봅시다.
※ 요즘 대표적인 것이 소위 다원주의 신앙 사상과 동성애에 대한 태도이다.
2.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러울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기록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굴복하고 말씀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야 한다.
3.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선지자의 호소는 어떤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활하라는 것이다.
4.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결심은 무엇입니까?
※ 결심은 별로 힘이 없다. 우리는 정말 말씀에 굴복해야 한다.
B.
2.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 그들은 의식만 그럴 듯 했지, 생활이 없었다고 평가하셨다.
3. 아모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생활하는 것이었다.
4. 재림을 통해 성취될 약속을 믿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재림교회가 가르치는 말씀대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결론: 공허한 의식들과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행들은 만족을 주지 못할 뿐더러 우리를 하나님 또는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로 이어 주지도 못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길만이 참된 삶을 가져다줍니다.
첫째날(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
4월 28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암 5:15).
1. 암 5:14~15을 읽어 보라. 우리는 어떻게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할 수 있는가?(히 5:14, 롬 12:9, 잠 8:36)
[암5:14,15]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롬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잠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답: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받을 때 선악을 분변할 수 있다. 잠언은 지혜를 구하라고 한다. 진혜는 선악을 구별할 수 있게 한다.
2.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 5:20에는 어떤 경고가 있는가?
[사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답: 선악을 거꾸로 안식하는 세상에 대한 경고이다. 가치의 전도(顚倒)에 대한 책망이다.
<부가설명> 악을 선처럼 여기는 일이 생길 때에는 언제 그럴듯한 이유와 합리성이 마련된다. 가장 강한 영향은 문화적 영향이다. 그 지역 문화가 그렇게 되어 있으면 그런 문화에 젖은 사람들은 그 문화가 행하는 선하지 못한 행사를 절대로 선하지 못하다고 느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 옛날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은 그 지방의 문화 때무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미리 경고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레18:2~4) 그리스도인이 처하여 살고 있는 사회의 문화는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한국교회는 유교와 불교문화에 상당히 많이 젖어 있다. 교인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그 영향을 생활하고 있다. 요즘 재림교회는 동성애에 대하여 너그럽다. 또 여성 목사 안수 문제도 완전히 문화적 압력이다. 옛날에는 그런 문제가 제기되지도 못했다. 물론 그때는 또 그때 문화 때문이었다. 우리는 레위기의 권고대로 애굽 문화도 아니고 가나안 문화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문화를 창달해야 한다. 그래야 악은 선하다고 하지 않고 선을 악하다고 하지 않는다.
교훈: 멸망을 목적에 두고 이스라엘이 선택해야 할 길은 단 한 가지, 하나님께 돌아오되 죄를 버리고 선을 행해야 했다.
둘째날(월) 일상적인 종교
4월 29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3~24).
1. 암 5:23~24, 호 6:6, 마 9:13, 시 51:17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무엇에 대해 말하는가? 우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여기서 말하는 원칙들을 어떻게 우리의 영적 생활에 직접 적용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도 여기서 경고하는 죄를 범할 수 있는가? (이런 영역에서 쉽게 자기를 기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암5:23,24]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답: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인애를 베푸는 삶을 원하신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며 사람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불쌍히 여기는 삶을 구하신다.
<부가설명>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 곧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두 가지로 계시하고 있다. 하나는 예식을 갖추어서 하는 예배이다. 공중 예배나 가족 예배나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어떤 형식이든지 순서를 갖추고 정해진 예법을 따라 하는 예배이다. 다른 하나는 생활예배이다. 로마12:1에 말한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합리적 예배가 바로 생활예배를 가르친다. 나는 이 두 예배를 예식예배와 생활예배로 구분하여 표현한다. 위의 성경구절들은 생활예배의 원리를 나타낸다.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동정하고 도와주고 봉사하고 사랑과 자비를 생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런 생활예배를 엿새 동안 계속 하다가 안식일에 예식예배에 임하는 것이다. 그때 부르는 찬양노래와 악기로 연주하는 찬양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그러나 생활예배를 전혀 하지 않고 예식예배에 임하여 찬양하고 연주하는 것은 거짓이 된다는 것을 이 구절들은 계시하고 있다.
교훈: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자들은 종교의 형식에 몰두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에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기를 바라신다.
셋째날(화)
4월 30일
선지자가 되라는 부르심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암 7:12).
1. 암 7:10~17을 읽어 보라. 여기에 어떤 비슷한 유형이 보이는가? 성경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또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 모든 경우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암7:10~17]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16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답: 벧엘의 금송아지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모함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못하도록 공갈하고 정치적 위협을 하였다. 아합 왕 때에 미가야 선지자도 이런 위협을 받았고,(왕상22장 참고) 예레미야도 이런 위협과 배척을 받았다.(렘26장, 38장 참고)
<부가설명> 어느 시대나 평안을 예언하는 사람들이 환영을 받았던 것 같다. 백성들의 이런 마음이 거짓 선지자를 양산하게 하였다. 또 정반대 경우도 있다. 소위 경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로움을 과시하는 모습으로 성경에 기록된 경고와 위협을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외친다. 이것도 전체적으로 성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역시 거짓 경고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경고를 받는다. 이것이 정로이니 이리로 가라는 그 음성을 잘 들어야 한다.(사30:21) 그래서 우리는 학자 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구하여야 한다.(사50:4,5) 그래서 성령으로 인도되는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바르게 분변하고 정로를 따라 진리대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교훈: 아모스는 유다 출신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북방 이스라엘에 가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왕과 귀족들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넷째날(수) 최악의 기근
5월 1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답: 사람들이 자기 이기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별하여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에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근에 빠지는 것이다.
<부가설명> 어느 시대나 이런 경우가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특히 이 시대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심각한 시대인 것 같다. 성경책은 부지기수로 출판되고 해설 성경이 홍수 같고 주석 책들도 엄청나게 많이 간행되지만 바른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드물다. 다 문화와 세상 학문과 철학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종교학과 철학으로 만들어서 나타내고 있으며, 사단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그 원리 위에서 해설하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옳은 것이 있기는 하겠지만 전체적 의미로는 거짓을 증거하는 출판물들이고 그런 사랑을 기초로 하여 전파되는 강론들은 거짓 선지자의 목소리가 된다. 우리는 정말 겸손하게 오직 성경으로 성경을 깨닫는 원칙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서 정로를 따라 믿음 생활하도록 주님께 굴복하자.
교훈: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하게 거부해 왔던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한 심판은 하나님의 침묵이다. 그때는 그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게 된다.
다섯째날(목) 유다의 폐허가 복구됨
5월 2일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암 9:11~12).
1.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리라는 아모스의 약속은 어떻게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인가?(눅 1:32~33, 행 15:13~18 참고)
[눅1:32,33]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행15:13~18]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속죄를 이루셨으며 재림하셔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온전히 성취된다. 시간적 관점이나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성경의 예언들은 쓸모없어 보인다. 예언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모든 육체는 들의 풀과 같고 그 영화는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 중에 구체적으로 성취되지 않은 역사적 예언이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런 것이 있었었을 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 예언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면 다 성취돈 것임을 믿을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때 모든 예언이 성취된다. 우리는 그때 거기서 주님을 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예언이 성취된 것을 그때 감격과 감사로 보게 될 것이다.
교훈: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고 이방인들까지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여섯째날(금)
5월 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입장은 우리가 받은 빛의 분량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활용하는 여하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이 분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이방인들은 큰 빛을 받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은 하나, 그 빛을 무시하고 그들의 일상생활로써 자신들의 고백을 부인하는 자들보다 더 유리한 형편에 있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23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지금은 성경이 금하는 행위나 생활방식, 태도 또는 가치를 수용하는 시대입니다.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게 여기는 조류가 거세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의 문화적 경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년 동안 그대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는 수치스럽게 여기고 금기시했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노출되거나 표현되어서 오히려 괜찮게 보이거나 최소한 더이상 나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이런 인식의 변화는 그런 행동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악을 선으로 여길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반대로 사회의 어떤 긍정적인 변화들이 예수님의 삶에서 나타난 사랑과 용납의 정신을 더욱 가깝게 실현하는 방향으로 교회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 문화압력은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런 문화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합당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요즘은 여자들이 거의 나체에 가깝도록 노출해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과시하는 것이 되었고, 사람들이 수치를 느끼게 하는 단어들을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는다. 동성애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시대가 되었고, 재림교회 내에서도 괜찮게 여기는 풍조가 팽배하다. 유전자 탓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그 유전자가 바로 죄로 변질된 유전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그 유전자가 고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오직 진리의 말씀에 의하여 판단하고 회개로 이끄는 자비와 사랑으로 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말해보자.
2. ‘말씀의 기근’에 대하여 좀 더 묵상해 보십시오. 말씀의 기근은 어떻게 생깁니까? 하나님이 진리를 숨기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백성들의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입니까? 토론해 보십시오.
※ 당연이 하나님은 말씀을 공개해놓으셨다. 공개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 안목으로 해석하고 강론하기 때문에 진리가 메마르게 된 것이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성경이 제시한 원리에서 결코 한 발짝도 물러서면 안 된다.
3. 많은 빛과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이런 놀라운 진리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것일까요?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어진 진리들은 교회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우리의 삶의 방식과 남을 대하는 태도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에게 위탁된 진리를 우리는 어떻게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행함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행함은 진리의 말씀을 세상에 가장 올바르게 드러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연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더욱 풍성한 생명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말씀이 생명의 능력이 되어 우리를 이끌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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