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요엘)(질문, 대답, 부가설명)0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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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4-12 10:35 조회8,859회 댓글0건본문
4월 2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2분
기억절:“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연구범위: 욜 1장, 욜 2:28~29, 행 2:1~21, 욜 2:31~32, 롬 10:13, 마 10:28~31.
중심 사상: 하나님은 위기의 때에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영적인 부흥과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신다.
아모스와 호세아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선지자 요엘은 남방 유다를 초토화시켰던 메뚜기 재앙과 극심한 가뭄 속에서 “크고 두려운” 심판의 징조를 보았다(욜 2:31). 고강도, 대규모 위기에 직면하여 그는 유다 백성들에게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메뚜기 떼를 하나님의 군대라고 불렀으며 그것들을 통하여 불충실한 이스라엘에게 미칠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았다.
요엘은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비하면 메뚜기 재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심판이 여호와께 신실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다시 말해, 심판이 아무리 혹독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구원과 구속이 될 것이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 여호와의 날이 정죄 또는 구원을 경험하는 심판의 날임을 깨닫는다.
2. 느끼기 : 여호와의 날을 기쁨이 넘치는 구원의 날로 맞이하도록 서로 격려한다.
3. 행하기 :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닫고, 그분과 동행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재림의 날을 준비시킨다.
A.
2. 백성들은 메뚜기 재앙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했습니까?
※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임을 깨달아야 했다.
3.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4. 늦은 비 성령을 받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 날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B.
2. 재난을 당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소망을 주셨습니까?
※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모든 것이 풍성히 회복될 것을 약속하셨다.
3. 하나님의 백성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한다는 것이다.
4.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웃에게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주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 신자 개개인이 다 예수님의 산 동영상으로 다가가야 한다.
결론: 종말적인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에게는 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첫째날(일)
4월 14일
국가적 재앙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1. 욜 1:1~12을 읽어 보라. 유대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욜1:1~12]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8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같이 할지어다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곡식이 진하여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의 연고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
답: 대 메뚜기 재앙이 닥쳐서 모든 농작물이 사라지게 되었다. 결과로 유대에 기쁨이 사라졌다.
2. 신 28:3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유다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신28: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심을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답: 유다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있다.
<부가설명> 1과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징계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그 음성은 처절하다. 정말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이 곡하고 농부들이 울부짖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자비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단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그렇게 왜곡시킨 것이다. 하기사 그렇게 알아버리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아오기보다는 적대감을 키운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이 화가 나서 무섭게 형벌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가. 신명기 28장이나 레위기 26장에 기록된 재난의 선포는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안타깝고 간절한 절원이라는 것을 읽고 들어야 한다. 1과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성경 문자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상을 들어야 한다. 문자만을 읽으면 문자는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자는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다.(고후3:6) 우리는 의문(문자)로 하지 않고 영으로 행해야 한다.(롬7:6)
교훈: 평화와 번영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불어닥칠 엄청난 재난을 요엘은 메뚜기 재앙으로 묘사하였다.
둘째날(월) 나팔을 불라!
4월 15일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욜 1:14).
1. 욜 1:13~20을 읽어 보라. 요엘은 백성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상황은 이례적이었지만 호소는 구약과 신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요엘은 백성들에게 어떻게 호소하였는가?
[욜1:13~20]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송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라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5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16 식물이 우리 목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 생축이 탄식하고 소 떼가 민망해 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밭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답: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들과, 모든 백성이 함께 모여 금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부르짖는 기도회를 하라고 호소한다.
<부가설명> 사람이 올바른 신앙으로 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생명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메뚜기 떼가 덮쳐서 곡식을 먹어치우는 현상은 인간의 생명력이 고갈된 사실을 표상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생명을 활력 차게 할 수 있는 양식이 없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다.(요6:53) 이것은 계속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지 않으면 생명이 고갈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회개의 부르짖음은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요소들을 내어놓고 고쳐주시도록 부르짖는 호소이다. 우리는 날마다 이 영적 생명력을 고갈시키면서 살고 있지 않는가? 탕자가 아버지에게 받는 재물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생명력을 상징한다. 탕자는 그것을 허랑방탕 하는데 소비하였다. 그가 생명력이 다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돼지우리에 있었다. 우리는 지금 돼지우리에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돼지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지? 정말 통회해야 할 때이다.
교훈: 요엘은 백성들이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셋째날(화) 선물로 부어지는 하나님의 영
4월 16일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1. 욜 2:28~29과 함께 행 2:1~21를 읽어 보라.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행2:1~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답: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이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에 성령 강림하시는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였다.
<부가설명> 우리교회에서 요엘서는 말세에 대한 예언서로 잘 알려진 것 같다. 3장에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 있고, 2장에는 늦은 비에 대한 예언이 있으며, 천연계 징조에 대한 예언도 있다. 우리교회는 특별히 늦은 비에 대하여 강조한다. 성경에서 비는 성령을 표상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비가 성령을 나타낸다는 표현이 직접적으로는 없다. 성경에는 배에서 솟아나는 샘이나 흘러나는 강물이 성령을 표상한다고 기록하였다.(요7:37~39) 비와 물은 같은 성질이기 때문에 원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사야 32:15절은 비가 성령을 표상한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위에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데, 결과는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밭은 삼림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광야가 밭이 되게 하고 밭이 삼림으로 변하게 하기 위하여 위에서 부어지는 것은 비다. 그런데 부어주는 것은 성령인데, 변하는 것은 천연계라고 했다. 이 말씀은 비가 성령을 표상하는 비유적 표현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으로 이해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늦은 비 이른 비는 팔레스타인 기후를 이해해야 바르게 알게 된다. 거기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는 기후이다. 우기가 시작되는 때가 가을이다. 그래서 가을에 오는 비를 이른 비라 하고 우기가 끝나는 때가 봄이다. 그래서 봄비를 늦은 비라고 한다. 가을에 밀과 보리를 심고 여름에 거둔다. 봄에 오는 비는 추수를 위하여 곡식을 익게 하는데 기여하는 비이다. 그래서 교회에 움돋고 싹트게 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이른 비라고 하고 역사의 종말에 추수 때에 추수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늦은 비라고 하는 것이다. 늦은 비 성령이 아니고 이른 비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이른 비 역사와 성령의 늦은 비 역사가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른 비가 온 후에 가물다가 늦은 비가 오는 것이 아니다. 이른 비부터 늦은 비까지는 계속적으로 비가 오는 기간이다. 그래서 우기라고 한다. 오순절부터 역사의 종말까지 성령께서 계속 역사하신다. 그래서 일곱 교회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권고하신 것이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늦은 비의 역사를 이루도록 주관하실 것이다. 늦은 비의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날마다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야만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는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에 성취되었고, 마지막 시대에 더욱 크게 성취될 것이다.
넷째날(수)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함
4월 17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1.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두려워하는 반면, 의인들은 주님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가? 궁극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사 25:9, 욜 2:32, 행 2:21, 롬 10:13 참고)
[사25: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욜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답: 의인들은 구원의 기쁨으로 영접할 것이다. 차이점은 의인들은 세상에 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들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한 시간은 오늘이라는 하루뿐이다. 그냥 하루이다. 그 하루만 성령의 인도대로 살면 된다. 내일은 없다. 내일 아침에 내가 눈을 뜨면 그날은 또 오늘일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이라 일컫는 매일”(히3:13)라고 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성령의 역사로 말하고 봉사하고 생활할 때 그 하루하루가 이어지면서 역사의 종말을 맞을 때 성령의 늦은 비 역사가 일어나는 시점에서 그 역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를 성령의 역사로 생활하지 않다가 그날 늦은 비 역사에 참여하기를 기해하는 것은 전혀 운동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어떤 경우에 힘이 솟아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그날 정녕 기쁨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으려면 오늘 하루 성령의 인도대로 생활하면 된다. 오늘 하루인데 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잖은가.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것이다.
교훈: 주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은 그분을 따르고, 그분의 통치를 선포하고, 그분의 구원을 알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다섯째날(목) 환난날의 피난처(욜 3장)
4월 18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욜3:16).
1. 마 10:28~3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재앙 중에서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주어지는가?
[마10:28~3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답: 참새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머리털까지 잘 보존되도록 하실 약속을 주셨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약속하셨다.
<부가설명> 그래도 우리는 두려워한다. 아직 지체 가운데 있는 연약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그 인식이 없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약속의 말씀으로 굳게 서야 한다. 우리의 생명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면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생명의 능력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사망은 생명에게 삼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5:4) 생명력이 날마다 풍성하게 되는 경험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망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3,4)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그분의 편에 굳게 서는 자들에게는 환난날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여섯째날(금)
4월 1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으로써 성경 시대에 흔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요엘서 전체 주제에 들어맞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게 거룩하며, 의로우시다. 그리고 그분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이스라엘 나라와 만백성의 역사가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 모든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영원이라는 대 주제는 진리가 도외시되는 상상의 신앙과 말과 형식만의 신앙 이상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흥과 개혁을 요구하신다. 성경 말씀, 오직 성경만을 설교단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그 능력을 상실하였으므로 그 결과로 우리는 영적 생애의 저하만을 볼 따름이다. 오늘날의 많은 설교 중에는 양심을 일깨워 주고 영혼에 생기를 가져다주는 신적인 현현이 없다. 청중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고 말할 수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위하여 부르짖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말하게 하라. 유전과 인간의 이론과 금언만을 들어온 자들로 하여금 영혼을 새롭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라”(선지자와 왕, 6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큰일들을 앞두고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요엘은 어떤 방식으로 중요한 기별을 전하
고 있습니까?
※ 회개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라고 전한다.
2. 요엘서를 한 번에 읽고 다음의 질문에 답하십시오. 요엘의 기별은 어디까지 당시의 세대
에 적용하고, 어디까지 미래에 적용해야 합니까?
※ 내 생각으로는 엄격하게 그렇게 구별할 사항으로 보이지 않는다. 당시의 사정이 곧 말세에 일어날 사실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3. 요엘은 하나님이 여러 종류의 복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의 예언은 물
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구별합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구별하고 있나요?
※ 물질적 복과 영적 복을 명확하게 구별한다는 것과 이상한 일이다. 물론 세상의 재물을 풍부하게 누리게 하는 것도 복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
4. 대쟁투에 대한 이해는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끔찍한 환난과 재난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 재난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망의 세력이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고 이 사망의 골짜기의 세력은 마귀가 잡고 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간섭해주시기 때문에 그날까지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5. 위의 인용문에서 ‘상상의 신앙’이란 어떤 뜻일까요? 우리의 신앙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어
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상상의 신앙이란 생각으로만 하는 신앙이고 생활과 행동실천으로 드러나지 않는 죽은 신앙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고백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으면 상상의 신앙을 하는 것이다.
일몰:오후 7시 12분
기억절:“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연구범위: 욜 1장, 욜 2:28~29, 행 2:1~21, 욜 2:31~32, 롬 10:13, 마 10:28~31.
중심 사상: 하나님은 위기의 때에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영적인 부흥과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신다.
아모스와 호세아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선지자 요엘은 남방 유다를 초토화시켰던 메뚜기 재앙과 극심한 가뭄 속에서 “크고 두려운” 심판의 징조를 보았다(욜 2:31). 고강도, 대규모 위기에 직면하여 그는 유다 백성들에게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메뚜기 떼를 하나님의 군대라고 불렀으며 그것들을 통하여 불충실한 이스라엘에게 미칠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았다.
요엘은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비하면 메뚜기 재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심판이 여호와께 신실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다시 말해, 심판이 아무리 혹독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구원과 구속이 될 것이다.
※ 학습 목표
1. 깨닫기 : 여호와의 날이 정죄 또는 구원을 경험하는 심판의 날임을 깨닫는다.
2. 느끼기 : 여호와의 날을 기쁨이 넘치는 구원의 날로 맞이하도록 서로 격려한다.
3. 행하기 :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닫고, 그분과 동행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재림의 날을 준비시킨다.
A.
2. 백성들은 메뚜기 재앙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했습니까?
※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임을 깨달아야 했다.
3.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4. 늦은 비 성령을 받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 날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B.
2. 재난을 당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소망을 주셨습니까?
※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모든 것이 풍성히 회복될 것을 약속하셨다.
3. 하나님의 백성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한다는 것이다.
4.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웃에게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주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 신자 개개인이 다 예수님의 산 동영상으로 다가가야 한다.
결론: 종말적인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에게는 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첫째날(일)
4월 14일
국가적 재앙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1. 욜 1:1~12을 읽어 보라. 유대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욜1:1~12]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 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8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같이 할지어다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곡식이 진하여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의 연고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
답: 대 메뚜기 재앙이 닥쳐서 모든 농작물이 사라지게 되었다. 결과로 유대에 기쁨이 사라졌다.
2. 신 28:3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유다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신28: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심을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답: 유다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고 있다.
<부가설명> 1과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징계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그 음성은 처절하다. 정말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이 곡하고 농부들이 울부짖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자비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단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그렇게 왜곡시킨 것이다. 하기사 그렇게 알아버리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아오기보다는 적대감을 키운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이 화가 나서 무섭게 형벌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가. 신명기 28장이나 레위기 26장에 기록된 재난의 선포는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안타깝고 간절한 절원이라는 것을 읽고 들어야 한다. 1과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성경 문자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상을 들어야 한다. 문자만을 읽으면 문자는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자는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다.(고후3:6) 우리는 의문(문자)로 하지 않고 영으로 행해야 한다.(롬7:6)
교훈: 평화와 번영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불어닥칠 엄청난 재난을 요엘은 메뚜기 재앙으로 묘사하였다.
둘째날(월) 나팔을 불라!
4월 15일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욜 1:14).
1. 욜 1:13~20을 읽어 보라. 요엘은 백성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상황은 이례적이었지만 호소는 구약과 신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요엘은 백성들에게 어떻게 호소하였는가?
[욜1:13~20]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송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라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5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16 식물이 우리 목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 생축이 탄식하고 소 떼가 민망해 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밭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답: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들과, 모든 백성이 함께 모여 금식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부르짖는 기도회를 하라고 호소한다.
<부가설명> 사람이 올바른 신앙으로 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생명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메뚜기 떼가 덮쳐서 곡식을 먹어치우는 현상은 인간의 생명력이 고갈된 사실을 표상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생명을 활력 차게 할 수 있는 양식이 없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다.(요6:53) 이것은 계속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지 않으면 생명이 고갈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회개의 부르짖음은 생명력을 고갈시키는 요소들을 내어놓고 고쳐주시도록 부르짖는 호소이다. 우리는 날마다 이 영적 생명력을 고갈시키면서 살고 있지 않는가? 탕자가 아버지에게 받는 재물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생명력을 상징한다. 탕자는 그것을 허랑방탕 하는데 소비하였다. 그가 생명력이 다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돼지우리에 있었다. 우리는 지금 돼지우리에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돼지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지? 정말 통회해야 할 때이다.
교훈: 요엘은 백성들이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셋째날(화) 선물로 부어지는 하나님의 영
4월 16일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1. 욜 2:28~29과 함께 행 2:1~21를 읽어 보라.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행2:1~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답: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이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에 성령 강림하시는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였다.
<부가설명> 우리교회에서 요엘서는 말세에 대한 예언서로 잘 알려진 것 같다. 3장에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 있고, 2장에는 늦은 비에 대한 예언이 있으며, 천연계 징조에 대한 예언도 있다. 우리교회는 특별히 늦은 비에 대하여 강조한다. 성경에서 비는 성령을 표상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비가 성령을 나타낸다는 표현이 직접적으로는 없다. 성경에는 배에서 솟아나는 샘이나 흘러나는 강물이 성령을 표상한다고 기록하였다.(요7:37~39) 비와 물은 같은 성질이기 때문에 원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사야 32:15절은 비가 성령을 표상한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위에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데, 결과는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밭은 삼림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광야가 밭이 되게 하고 밭이 삼림으로 변하게 하기 위하여 위에서 부어지는 것은 비다. 그런데 부어주는 것은 성령인데, 변하는 것은 천연계라고 했다. 이 말씀은 비가 성령을 표상하는 비유적 표현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으로 이해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늦은 비 이른 비는 팔레스타인 기후를 이해해야 바르게 알게 된다. 거기는 건기와 우기로 나누는 기후이다. 우기가 시작되는 때가 가을이다. 그래서 가을에 오는 비를 이른 비라 하고 우기가 끝나는 때가 봄이다. 그래서 봄비를 늦은 비라고 한다. 가을에 밀과 보리를 심고 여름에 거둔다. 봄에 오는 비는 추수를 위하여 곡식을 익게 하는데 기여하는 비이다. 그래서 교회에 움돋고 싹트게 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이른 비라고 하고 역사의 종말에 추수 때에 추수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늦은 비라고 하는 것이다. 늦은 비 성령이 아니고 이른 비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이른 비 역사와 성령의 늦은 비 역사가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른 비가 온 후에 가물다가 늦은 비가 오는 것이 아니다. 이른 비부터 늦은 비까지는 계속적으로 비가 오는 기간이다. 그래서 우기라고 한다. 오순절부터 역사의 종말까지 성령께서 계속 역사하신다. 그래서 일곱 교회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권고하신 것이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늦은 비의 역사를 이루도록 주관하실 것이다. 늦은 비의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날마다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야만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는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에 성취되었고, 마지막 시대에 더욱 크게 성취될 것이다.
넷째날(수)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함
4월 17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1.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두려워하는 반면, 의인들은 주님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가? 궁극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사 25:9, 욜 2:32, 행 2:21, 롬 10:13 참고)
[사25: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욜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답: 의인들은 구원의 기쁨으로 영접할 것이다. 차이점은 의인들은 세상에 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들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한 시간은 오늘이라는 하루뿐이다. 그냥 하루이다. 그 하루만 성령의 인도대로 살면 된다. 내일은 없다. 내일 아침에 내가 눈을 뜨면 그날은 또 오늘일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이라 일컫는 매일”(히3:13)라고 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성령의 역사로 말하고 봉사하고 생활할 때 그 하루하루가 이어지면서 역사의 종말을 맞을 때 성령의 늦은 비 역사가 일어나는 시점에서 그 역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를 성령의 역사로 생활하지 않다가 그날 늦은 비 역사에 참여하기를 기해하는 것은 전혀 운동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어떤 경우에 힘이 솟아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그날 정녕 기쁨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으려면 오늘 하루 성령의 인도대로 생활하면 된다. 오늘 하루인데 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잖은가. 그래서 예수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것이다.
교훈: 주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은 그분을 따르고, 그분의 통치를 선포하고, 그분의 구원을 알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다섯째날(목) 환난날의 피난처(욜 3장)
4월 18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욜3:16).
1. 마 10:28~3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재앙 중에서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주어지는가?
[마10:28~3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답: 참새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머리털까지 잘 보존되도록 하실 약속을 주셨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약속하셨다.
<부가설명> 그래도 우리는 두려워한다. 아직 지체 가운데 있는 연약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동안 그 인식이 없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약속의 말씀으로 굳게 서야 한다. 우리의 생명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면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생명의 능력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사망은 생명에게 삼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5:4) 생명력이 날마다 풍성하게 되는 경험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망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3,4)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그분의 편에 굳게 서는 자들에게는 환난날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여섯째날(금)
4월 1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으로써 성경 시대에 흔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요엘서 전체 주제에 들어맞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게 거룩하며, 의로우시다. 그리고 그분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이스라엘 나라와 만백성의 역사가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 모든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영원이라는 대 주제는 진리가 도외시되는 상상의 신앙과 말과 형식만의 신앙 이상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흥과 개혁을 요구하신다. 성경 말씀, 오직 성경만을 설교단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그 능력을 상실하였으므로 그 결과로 우리는 영적 생애의 저하만을 볼 따름이다. 오늘날의 많은 설교 중에는 양심을 일깨워 주고 영혼에 생기를 가져다주는 신적인 현현이 없다. 청중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고 말할 수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위하여 부르짖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말하게 하라. 유전과 인간의 이론과 금언만을 들어온 자들로 하여금 영혼을 새롭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라”(선지자와 왕, 6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큰일들을 앞두고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요엘은 어떤 방식으로 중요한 기별을 전하
고 있습니까?
※ 회개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라고 전한다.
2. 요엘서를 한 번에 읽고 다음의 질문에 답하십시오. 요엘의 기별은 어디까지 당시의 세대
에 적용하고, 어디까지 미래에 적용해야 합니까?
※ 내 생각으로는 엄격하게 그렇게 구별할 사항으로 보이지 않는다. 당시의 사정이 곧 말세에 일어날 사실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3. 요엘은 하나님이 여러 종류의 복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의 예언은 물
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구별합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구별하고 있나요?
※ 물질적 복과 영적 복을 명확하게 구별한다는 것과 이상한 일이다. 물론 세상의 재물을 풍부하게 누리게 하는 것도 복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
4. 대쟁투에 대한 이해는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끔찍한 환난과 재난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 재난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망의 세력이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고 이 사망의 골짜기의 세력은 마귀가 잡고 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간섭해주시기 때문에 그날까지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5. 위의 인용문에서 ‘상상의 신앙’이란 어떤 뜻일까요? 우리의 신앙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어
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상상의 신앙이란 생각으로만 하는 신앙이고 생활과 행동실천으로 드러나지 않는 죽은 신앙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고백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으면 상상의 신앙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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