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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요엘)[매단원의이해돕는도입과부가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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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04-12 06:20 조회5,0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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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3과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요엘)

4월 20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12분


    기억절:“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연구범위: 욜 1장, 욜 2:28~29, 행 2:1~21, 욜 2:31~32, 롬 10:13, 마 10:28~31.

    중심 사상: 하나님은 위기의 때에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영적인 부흥과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신다.

서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를 섬겨 순종하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실 때는 자연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여 기름진 하나님의 축복이 역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는 자연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배반하여 인간의 살아가는 삶이 피폐해진다. 하나님을 멀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결과는 자연의 저주였다. 그들의 모든 산업은 황폐해졌다.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나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를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하게 가득 채워 주시되 땅의 기름진 것과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채워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실 때 제 2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출 20:4)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우상과 자기를 위하게 되면 필연코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을 더 위했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나에게 유익이 될까?를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그들은 혹심한 재앙으로 인하여 고통 속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회개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넘치는 축복을 허락할 것임을 약속하신다. 1:1에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고 하였다. 부두엘의 아들인 요엘은 유다의 선지자였다. 그는 3가지 주요한 목적을 가지고 본서를 기록하였는데, 첫째는 죄에 대한 유다의 심판 예고, 둘째는 그들의 마음을 회개시키기 위함, 셋째는 이 세상 역사가 "주의 날"의 사건에서 정점을 이루게 될 것임을 알리는 내용이다. 당시의 환경은 메뚜기의 재앙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었다. 요엘은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신자들에 의해서 배척을 받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수용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초신자보다 오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더욱이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아모스와 호세아와 동시대 사람이었던 선지자 요엘은 남방 유다를 초토화시켰던 메뚜기 재앙과 극심한 가뭄 속에서 “크고 두려운” 심판의 징조를 보았다(욜 2:31). 고강도, 대규모 위기에 직면하여 그는 유다 백성들에게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메뚜기 떼를 하나님의 군대라고 불렀으며 그것들을 통하여 불충실한 이스라엘에게 미칠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았다.
  요엘은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비하면 메뚜기 재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심판이 여호와께 신실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다시 말해, 심판이 아무리 혹독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구원과 구속이 될 것이다.

  결론: 종말적인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에게는 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첫째날(일)
4월 14일
국가적 재앙

  “팥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도입)
요엘 1장 4절은,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었으며,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었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팟종이, 메뚜기, 늦, 황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네 번이나 연속적으로 먹히고 있는 이 자연적 재해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근본적인 기별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는 십재앙에서도 나타났고 하나님의 심판에는 늘 그래왔듯이 인간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나일강이 피가 되고,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재앙 등의 초자연적인 재난을 통해 애굽의 백성들에게 삶에 막대한 불편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저들의 생명을 아껴보아 저들의 삶의 불편으로 끝났으나 그 심판이 끝났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 그 심판의 강도를 높이시어 저들의 일상적인 삶의 불편에서 이제는 경제적인 커다란 타격이 될 악질과 독종, 그리고 우박, 심지어 메뚜기를 동원해 저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과 소유물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오는 자연재해들이 눈앞에서 일어나게 하시어 참 하나님의 권능을 보게 하여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생명을 아껴보시어 사람이 죽는데 까지 나아가는 것을 최후까지 보류하셨다. 그러나 저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는 저들에게 궁극적으로 마지막으로 심판하신 것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과 생축과 짐승의 첫째 되는 생명을 취하시어 사람의 생명이 죽고 사는 심판이 일어나게 하셨다.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심에도 애굽 백성들 전체를 쓸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오직 각 가정의 장자만을 취하여 가시어 오직 상천하지의 참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애굽의 온 가정에 알리셨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애굽의 백성들에게도 오직 장자만을 취하여 가심으로 사람의 생명을 아끼셨다. 자연적 재해가 극심한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경고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궁극적으로는 생명까지 잃게 될 생명의 심판, 저들의 목숨이 보장될 수 없는 심판, 즉 저들이 그 결국 죽음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음을 보게 하시는 징조인 것이다.

  욜 1:1~12을 읽어 보라. 유대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농경사회에서 살고 있는 선지자는 농부들이 곡식과 과일 소출 격감에 경악하리라고 예견한다. 생태계의 파괴는 여러 해 국가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다. 식량이 고갈되고, 숲과 음지가 사라질 뿐 아니라 토양의 침식이 우려된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의 어떤 과목은 열매를 맺기까지 20년이 필요하다. 사실 단기간의 회복이 불가능하도록 농경지와 숲을 파괴하는 것은 토벌군이 벌이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신 28:3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유다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요엘은 재앙의 강도와 총체성을 묘사하기 위해 4종류의 다른 단어로 메뚜기를 설명한다.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는 가뭄 피해보다 훨씬 심각하다. 모든 곡식이 시들어 농부들이 먹을 것도, 팔 것도 없을 뿐더러 심을 종자마저 남지 않는다. 그와 같은 대규모 재난은 후손들에게 들려줄 수는 있으나 조상들에게 들어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될 것이었다. 이전에 유사한 재앙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선지자는 또한 포도, 곡식, 기름과 같은 이스라엘 땅의 주요 생산물이 파괴될 것이라고 선언한다(신 14:23, 18:4). 밀과 보리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중요한 곡식이다. 성경에서 포도와 무화과는 약속의 땅에 허락한 하나님의 복과 풍요와 안녕을 상징한다(왕상 4:25, 미 4:4, 슥 3:10). 자기 소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쉬는 모습이야말로 평화와 번영의 목가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죄로 인해 닥칠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위협을 받고 있다.

부가적용)
첫째 날의 도입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 네 가지 해충의 피해를 말씀을 하신 후에 욜1:6애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데 이는 궁극적으로 유다 백성이 침략을 받을 것을 경고하고 바로 이 이족들에게 유다가 철저히 유린당하여 잡아먹히게 될 실제적인 전쟁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다고 한 바로 이 사자는 누구를 의미하고 있는가? “이스라엘은 흩어진 양이라 사자들이 그를 따르도다 처음에는 앗수르 왕이 먹었고 다음에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뼈를 꺾도다”(렘 50:17) 고 하였는데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이족 다른 나라의 백성들이 올라오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팟종이 메뚜기와 늦과 황충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네 번에 걸쳐 다른 이족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게 될 것을 미리 예언하여 두셨는데 우리가 이미 다니엘서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그리고 스가랴 1장의 네 뿔에 예언된 대로, 네 단계들 안에 있는 이 해충들의 역사를 우리는 이미 보아 알 수 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슥1:18-19)라고 스가랴는 말하고 있다.  메뚜기의 다른 종류의 네 단계는 다니엘 2장의 네 부위에서 나타난 거대한 우상의 형상과 다니엘 7장의 네 짐승과 스가랴 1장의 네 뿔과 일치하고 있음을 본다. 팟종이는 바벨론 제국을 말하고, 메뚜기는 메대-바사 제국을 말하며, 늣은 헬라 제국을 말하고, 황충은 로마 제국을 의미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훈: 평화와 번영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불어닥칠 엄청난 재난을 요엘은 메뚜기 재앙으로 묘사하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우리가 지속적인 평화와 안녕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추수 절기에는 기쁨이 넘쳤다(시 4:7, 사 9:3). 이스라엘의 땅은 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분께 속해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 신실한 청지기이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 적용 |
그대가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고 싶다면 무엇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이스라엘의 구제책-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위한 구제책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을 끌어들인 죄악을 떠나 전심으로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 7:13, 14)는 보증이 주어졌다”(선지지와 왕, 128)

    기도
  하나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행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고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 잘못을 회개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말씀으로 보여 주신 모든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겠습니다.

둘째날(월) 나팔을 불라!
4월 15일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욜 1:14).
  
도입)
하나님께서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고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여 다시금 축복으로 이끌려는 선지자의 의도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재앙에 대한 요엘의 기본적 시각은 파멸을 의미하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유도하는 회개의 기회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이 무섭고 가공할수록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간절해진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요일 1:14절의 본문은 재앙을 여호와의 큰 날과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절). 이는 당시에 임했던 심판의 의미를 종말론적으로 확장하여 장차임할 미래의 두려운 심판의 날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심판은 민족전체의 회개를 요청하고 있다(14절). 선지자는 농부와 포도원지기 그리고 제사장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성전으로 모여 성회를 선포하고 금식하며 부르짖으라고 명령하신다. 요엘 선지자는 단지 범죄한 개인에게만 통회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족적 회개를 말한다. 한 민족으로서 그 백성들이 모두 나와서 자신의 범죄와 함께 민족적 범죄에 대하여 연대 책임을 느끼고 함께 울 것을 권고한다. 이렇듯 요엘의 시대에 재행되었던 이스라엘의 죄과는 모든 백성이 함께 슬퍼해야 할 민족적 범죄였다.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눈앞에 외부의 적들의 침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실까?” “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생존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을까?” 요엘은 메뚜기 재앙이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해하는 통찰을 제시한다고 확신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감하에 1장에서 국가적 위기와 그 땅의 영적 상황을 연결시킨다. 메뚜기 떼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마저 남기지 않았다. 출 29:40과 민28:5~8에 기록된 지시에 따르면 곡식과 음료도 매일의 제사에 포함되어야 했다. 제사의 중단은 심각한 것이었다. 이는 백성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 주는 경고가 되어야 했다. 제사를 드릴 기회의 상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파기를 상징했다. 그러나 그밖의 여러 선지자들과 달리 요엘은 백성들의 잘못을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대신 이스라엘의 의원께서 처방하신 치유책을 숙고하는 데 훨씬 많은 관심을 두었다.
  욜 1:13~20을 읽어 보라. 요엘은 백성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상황은 이례적이었지만 호소는 구약과 신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요엘은 백성들에게 어떻게 호소하였는가?
  선지자는 전국적인 기도와 금식을 선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을 깊이 성찰하고 죄를 버리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라고 영적 지도자들에게 촉구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새로운 믿음과 경험으로 나아온다. 그리하여 이 재난은 백성들을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기회로 인도한다.

부가적용)
우리는 이 시대의 죄악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느끼고 함께 부르짖어야 한다.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모든 사람의 회개를 촉구했다. 자신이 직접 행한 죄가 아니라고 해서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의 완전한 황폐 속에서도 주께 부르짖는 요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전혀 소망이 없는 절망의 끝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한다. 기도는 절망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엘의 심판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우리도 여호와의 최후심판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종국적 심판은 영원하고 완전한 파멸을 수반한다. 우리는 그날을 기억하며 날마다 깨어 근신해야 한다. 요엘은 이스라엘에 임한 재앙을 영적 각성의 계기로 삼았다.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임한 고통과 환난에 대해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영적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교훈: 요엘은 백성들이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하나님이 천연계를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 마음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천연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며, 그분의 거룩한 목적에 그것을 활용하는 천연계의 하나님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재해를 당할 때 요엘은 백성들에게 옷을 찢기보다 마음을 찢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향해 열라고 말한다.
| 적용 |
그대는 지금 어떤 문제 때문에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참회할 필요가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단호한 책망의 음성이 필요함- “오늘날도 단호한 책망의 음성이 필요하나니 이는 통탄할 죄악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났기 때문이다. 불신은 신속히 퍼지고 있다. …나팔은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분명하고 날카로운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찢지 아니한다”(선지자와 왕, 140).

    기도
  아버지, 벌써 누더기가 되어야 할 이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씻을 수 없는 과오와 결점으로 가득한 저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옵소서. 정결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자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셋째날(화) 선물로 부어지는 하나님의 영
4월 16일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도입)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과 환난의 의미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인생이 살아가는 삶의 전쟁, 즉 광야와 같은 생활을 의미한다. 이 땅은 사망의 땅이며 사는 삶이 전쟁과 같은 삶이다. 우리가 앉은 땅은 사망의 그늘이 덮인 땅(시 107:10)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신약의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에 적용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 2:17-27)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고통 받고 고난 속에 갇힌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이는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표상하고 있다.

욜 2:28~29과 함께 행 2:1~21를 읽어 보라.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베드로는 주께서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요엘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셨다고 선언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 속에서 초자연적인 신적 개입의 가시적 증거로서 성령뿐 아니라 천지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큰 날의 사건과 직접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성령께서 특별히 나타나실 것을 약속하셨다(욜 2:28). 이 예언은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 사업을 마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남으로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9).
요엘에 따르면 회개의 결과로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고 이로써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며 파괴가 아닌 하나님의 복과 선물이 주어진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창조 세계가 회복되고, 나라가 압제자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특별한 봉사를 위해 선택하신 자들의 머리에 기름을 붓듯이 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백성에게 부어진다. 성령은 받는 자에게 능력의 선물이 되어서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사업을 감당하게 해 준다(출 31:2~5, 삿 6:34). 하지만 이 시대에 성령의 나타나심은 더욱 광범위할 것이다. 역사의 위대한 순간에 하나님을 찾는 모든 이에게 구원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나이와 성과 계급과 관계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부어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의 백성이 다 선지자 같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분의 영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던 모세의 바람이 성취될 것이다(민 11:29).

부가적용)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하는 이 고난은 육을 가진 모든 인생 삶의 핍절함, 곧 썩어질 운명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희망의 기별이 있는데 바로 썩지 아니할 영원한 구원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을 주신 성령의 약속이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1-5) 성령의 약속은 인간이 육신의 삶, 곧 낮은 몸(빌 3:21)을 입고 궁극적으로 썩어질 몸으로 이 땅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실 구원의 새 약속 성령의 약속은 우리의 썩어질 육신의 몸에서 썩지 아니할 영원한 새로운 신령한 몸, 즉 새 옷을 입혀 주실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는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에 성취되었고, 마지막 시대에 더욱 크게 성취될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재능과 능력만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사명을 품었으나 자신의 무지와 무능력을 깨닫고 철저하게 깨진 사람의 심령에만 허락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깨어짐입니다.

| 적용 |
성령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는 그대에게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늦은비- “그리스도인들은…허락된 축복들을 받기 위하여 믿음으로 구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그 축복들을 받게 될 것이다. 사도시대에 있었던 성령의 강림은 이른비였으며 그 결과는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늦은비는 더욱 풍성할 것이다”(영문 시조, 1914년 2월 17일).

    기도
  아버지,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로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버지의 자녀로, 천국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함
4월 17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1~32).

도입)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 모두는 멸망의 대상일 뿐이다. 아무도 자기 의와 공로를 보이며 심판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다. 암 9:2-3절에서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 숨더라도 우리의 죄는 드러날 것이고, 무엇으로도 죄를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이 피할 길은 오직 여호와께만 있다. 욜 2:32절을 보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대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고 이들이 바로 남은 자가 될 것이다.

  태양이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현상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는 초자연적인 징조로 이해해야 한다. 성경 시대에 많은 이방 나라에서는 천체를 신으로 숭배하였으나 모세는 이를 금지하였다(신 4:19). 이런 관점에서 요엘은 여호와께서 심판 중에 임하실 때 이방의 우상들이 사라지리라고 예언한다. 욜 3:15을 보면 하늘의 별들이 힘을 잃고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가 모든 것을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두려워하는 반면, 의인들은 주님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가? 궁극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사 25:9, 욜 2:32, 행2:21, 롬 10:13 참고)

  성경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다.’는 표현은 단지 자신을 주의 추종자로 여기거나, 그분의 약속을 주장한다는 뜻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주님이 세상을 위해 행하신 일과 그분에 대하여 증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 12:8).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분의 선하심과 은혜를 선포하셨다(출 33:19, 34:5). 시편 기자도 신실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만민에게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알리라고 요구한다(시 105:1). 같은 단어들이 선지자 이사야가 지은 구원의 노래에도 나온다(사 12:4).

부가적용)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종교적 열심이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다고 해도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와 은혜가 강같이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형식일 뿐이다. 우리의 신앙에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원칙을 가지고 계시고 반드시 그대로 행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암 9:10절을 보면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는 말을 하는데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신앙을 근거 삼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심판과 상관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 죄인 아닌 자가 없고, 모든 죄인은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대로 시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생명의 길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예수님에게만 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신자의 죽음으로 간주하고 넘어가신다. 이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남은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의와 행함에 대해서는 십자가의 은혜를 훼방하는 죄로 반응할 뿐이다. 이것이 심령에 하나님의 의가 강같이 흐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세상에 남겨 놓고자 하시는 신자이다.

  교훈: 주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은 그분을 따르고, 그분의 통치를 선포하고, 그분의 구원을 알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에게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따라서 주의 이름을 선포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복음의 전령이 되라는 의미와, 세상 백성들에게 일러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업적과 품성을 보게 하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하나님의 관대한 구원의 선물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 적용 |
그대는 어떤 방식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복음의 초청을 모든 사람에게-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다 찾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는 동안 우리는 여러 민족을 접하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경고를 받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구주 예수님은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시지 상류층이나 일개 특정 민족만을 위한 선물이 아니다. 뜻만 있으면 누구든지 생수를 거저 마실 수 있다. …복음의 초청은 만방으로 다 들어가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14절)”(하늘, 60).

    기도
  내게 구원을 주신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불러 봅니다. 그 이름에 나의 소망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귀한 이름을 자랑하고 노래할 때에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해 주시옵소서.

다섯째날(목) 환난날의 피난처(욜 3장)
4월 18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욜3:16).

도입)
시48:1-3절에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에게는 누구에게나 환난이 찾아온다.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환난을 그 스스로 피해갈 수 없다. 인생의 가장 큰 환난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우리의 요새요 피난처는 하나님이시다. 이 시편과 요엘서에서 말씀하시는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신 분이 누구이겠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성경이 곧 나에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하신 것처럼 궁극적인 여호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사자의 포효와 비교한다(욜 3:16, 암 1:2, 3:8). 성경에서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지상 보좌의 위치를 가리킨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원수를 벌하시고 동시에 승리를 기다리는 그분의 백성들을 옹호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재창조하실 때에 그분과 승리의 기쁨을 나눌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최후의 심판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는 죄와 악이 존재하고 그 세력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든 형태의 생명을 말살할 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은 악의 반대편에 계신다. 요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편에 있는지 자신의 삶을 점검하도록 요구하는 이유는 심판 날에 화를 피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 10:28~3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재앙 중에서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주어지는가?
  주님은 믿음으로 인내하는 자들을 붙드신다. 그분은 이 땅에 파멸을 가져오실 것이다(욜 3:1~15). 그러나 그의 백성들은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을 보호해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16절). 그분은 그들에게 보증의 말씀을 주셨다. 그의 위엄과 자비는 그분이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분은 의인이 다시는 수치를 당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욜 2:27).

부가적용)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희생을 드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죽을 형편, 심판의 형편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대신해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저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 모든 심판이 이를 때 자신들의 피난처가 되실 그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서 저들은 평화와 안정과 구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이 이르게 된 것은 자신들의 생명의 보증이 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다른 신들, 우상에게 나아갔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의 피난처요 요새는 하나님,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훈: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지만 그분의 편에 굳게 서는 자들에게는 환난날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환난날에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했습니까?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요엘서는 변화된 세상에 대한 이상으로 끝마치는데, 그때 새 예루살렘, 즉 용서받은 백성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앞에서 한 강물이 흘러 나온다(욜 3:18~21). 이 예언의 기별은 우리에게 성령 안에 행하며, 전적인 신앙을 추구하고, 아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르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신실한 백성의 마음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내주하는 임재의 약속을 주장한다.

| 적용 |
그대가 피난처 되시는 예수님께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할 이유를 적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자신의 상태를 점검함-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상태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위험을 깨달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피난처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상처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치료를 받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실물교훈, 158).

    기도
  아버지, 저를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 주시고, 짐승의 나라에서 어린양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지막 큰 시험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아버지를 붙잡아 야곱처럼 승리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섯째날(금)
4월 1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으로써 성경 시대에 흔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요엘서 전체 주제에 들어맞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게 거룩하며, 의로우시다. 그리고 그분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이스라엘 나라와 만백성의 역사가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 모든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영원이라는 대 주제는 진리가 도외시되는 상상의 신앙과 말과 형식만의 신앙 이상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흥과 개혁을 요구하신다. 성경 말씀, 오직 성경만을 설교단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그 능력을 상실하였으므로 그 결과로 우리는 영적 생애의 저하만을 볼 따름이다. 오늘날의 많은 설교 중에는 양심을 일깨워 주고 영혼에 생기를 가져다주는 신적인 현현이 없다. 청중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고 말할 수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위하여 부르짖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말하게 하라. 유전과 인간의 이론과 금언만을 들어온 자들로 하여금 영혼을 새롭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라”(선지자와 왕, 6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큰일들을 앞두고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요엘은 어떤 방식으로 중요한 기별을 전하고 있습니까?
  2. 요엘서를 한 번에 읽고 다음의 질문에 답하십시오. 요엘의 기별은 어디까지 당시의 세대에 적용하고, 어디까지 미래에 적용해야 합니까?
  3. 요엘은 하나님이 여러 종류의 복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의 예언은 물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구별합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구별하고 있나요?
  4. 위의 인용문에서 ‘상상의 신앙’이란 어떤 뜻일까요? 우리의 신앙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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