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제사(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0/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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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10-10 22:30 조회9,209회 댓글0건본문
10월 19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0분
기억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연구 범위 : 창 3:9~21, 출 12:21~27, 레 2:1~3, 창 22:1~19, 레 17:10~11, 빌 4:18.
전체 복음의 중심에는 제사 개념이 있다. 성경에서 ‘제사’라는 말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다’ 또는 ‘무엇을 드리다’라는 개념을 묘사한다. ‘제물’ 또는 ‘제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까이 나아가거나 무엇을 드리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같은 뜻의 그리스어는 ‘선물’이란 뜻을 포함하며 제물을 드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제물이라는 뜻의 영어 ‘오퍼링(offering)’도 ‘선물을 바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오페레(offerre)’에서 유래했다. 제사라는 뜻의 영어 ‘새크리파이스(sacrifice)’는 라틴어 ‘사체르(sacer: 거룩한)’와 ‘파체레(facere: 만들다)’의 합성어로서 어떤 사물을 신성하게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신자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몇 가지 제사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나 제사를 요구하셨으며 지금도 그 요구가 계속되고 있음을 볼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제물을 제공하셨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제사 제도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제사를 통해 죄의 심각성과 구원을 위해 지불한 끔찍한 대가를 이해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제사 제도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매일 묵상한다.
A.
❷ 에덴동산에서 드려진 첫 번째 희생 제사에서 아담과 하와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죄를 처리하기 위한 무한한 희생과 그들의 죄가 엄청난 사실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❸ 구약의 여러 제사 제도는 어떤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사람들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죄를 속하기 위하여 대속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목적이 있었다.
❹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쳐야 할까요?
※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언하신 새 생명으로 생활하면 될 것이다.
B.
❶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유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 생활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생각, 언어, 행동 등등.
❸ 아브라함이 경험한 ‘여호와이레’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사실과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감복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도록 자신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❹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한다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결론 : 구약의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당한 희생적 죽음의 다각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묘사합니다.
첫째 날(일) 첫 번째 제사
10월 13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1. 창 3:9~21을 읽어 보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창3:9~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답: 아담 부부를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속죄의 길을 약속하시고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 즉 지상 성소였던 동산에서 살면서 창조주와 직접 교제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의 첫 번째 죄는 거의 해결 불가능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야기했다. 하나님은 그 같은 신뢰의 파기에 대처하실 방법을 이미 계획하셨고 판결을 내리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구세주에 대한 소망을 제공하셨다(창 3:15).
“아담과 하와는 죄수로서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서서, 범죄가 초래한 선고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이 될 수밖에 없는 수고와 슬픔의 생활이나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고를 듣기 전에 그들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말씀들을 들었다. 비록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최후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66).
하나님은 선고를 마치신 후 즉시 그들의 벌거벗음과 수치를 가리기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주심으로 그들에게 승리의 궁극적 기초가 무엇인지 보여 주셨다. 물론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우리는 무죄한 동물이 이 일을 위해 죽어야 했고, 그것이 일종의 제사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행 3:21).
문제의 장본인에게 의복을 제공했던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광야 성막에서 드렸던 제사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장했던 것처럼 에덴에서 제공된 의복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선의를 보증했다.
인간 역사의 초기부터 제사는 죄를 범한 인류가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제사 제도가 예표하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태초에 아담 부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힐 때 그 짐승을 누가 잡았는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밭는다. 그것은 아담 부부가 잡았다. “아담에게 있어서 첫 희생 제사는 가장 고통스러운 의식이었다. 그의 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을 취하기 위해 들려져야만 하였다. 그는 이 때 죽음을 처음으로 목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었더라면 사람이나 짐승이 죽는 일이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무죄한 동물을 희생 제물로 죽이면서 그는 자기의 죄가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떨었다”(부조와 선지자 67) 이것은 성경의 일관된 계시와 일치한다. 성소봉사에서도 제물은 자사를 드리는 사람이 잡았고 그 피는 제사장이 받아서 봉사하였다. 어린양으로 표상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죄인인 사람이다. 죄인이 희생 짐승을 잡는 것은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구주가 자기의 죄로 인하여 대신 죽어주시는 것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시조 아담 부부는 하나님이 주신 영생하는 생명은 선악과를 먹자마자 잃었다. 그것이 벌거벗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들은 원래 빛을 입고 있었다.(시8:5, 부조 45, 57) 빛의 옷은 영생의 생명이 겉으로 나타나는 상태이다. 생명이 빛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요1:4) 그들에게 주신 영생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을 둘렀던 빛의 옷이 사라졌다. 벌거벗을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었지 자발적으로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주께서는 그들에게 생명을 회복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대신 죽게 하시는 구속의 섭리를 주시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이 생명을 얻도록 하였고,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는데, 그것이 인간의 수명이고 육체의 생명이며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 사람들은 이 기간을 정말 유효하게 사용해야 한다.
교훈 :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제공된 가죽옷은 한 동물의 죽음을 암시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최초의 제사가 되었다.
둘째 날(월) 제물의 종류
10월 14일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레 7:37).
구약 시대에 신자들은 여러 경우와 개인 사정에 따라 제물을 가지고 왔다. 그들이 드릴 수 있도록 허용된 제물에는 정결한 동물, 곡류, 음료 등이 포함되었다. 동물 제사는 성전 봉사에서 가장 오래된 요소로서 제사장 봉사와 함께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러니 희생 없는 종교 생활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1. 다음의 성경절은 어떤 종류의 제사를 설명하고 있는가? 출 12:21~27, 레 2:1~3, 출 25:2~7, 레 4:27~31.
[출12:21~27]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레2:1~3]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출25:2~7]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5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레4:27~31]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8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30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답: 유월절 어린양 제사, 소제 제사, 성소 건설에 드린 예물들, 속죄제사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제사 제도를 수립하셨다. 이것이 여러 종류의 상황, 즉 감사, 기쁨과 축하의 표현, 선물, 용서를 구하는 탄원, 회개의 간구, 헌신의 상징과 배상의 의미로 제물을 바치게 했던 이유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사는 번제(레 1장), 소제(레 2장), 화목제(레 3장), 속죄제(레 4장), 속건죄(레 5:14~6:7)였다. 처음 세 제사는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로서 우리와 우리의 소유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번제는 제물을 드리는 이의 전적인 헌신을 상징한다. 소제는 음식이나 가축이나 무엇이든 우리의 모든 물질적 소유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상징한다. 화목제는 참여하는 사람이 제물의 일부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제사였다.
그리고 나머지 두 제사는 의무적으로 드리는 제사였다. 이 제사들은 비록 잘못의 결과가 따를지라도 그 잘못이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상기시켰다. 속죄제로 불리는 정결 제사는 의식적 부정이나 죄로 인한 도덕적 부정을 인식한 이후에 드리는 제사였다.
<부가설명> 성소봉사에서 드리는 제물들은 전적으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의 봉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제사종류가 다양한 것은 사람들이 사유함을 받아야할 내용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또 구주께 드려야할 헌신의 다양성도 나타낸다. 제물은 교과에 있는대로 희생 제물이 되는 짐승들이 있고, 곡식이 있고, 액체도 있다. 교과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체제물도 있는데 분향하는 것이다. 제물은 고체, 액체, 기체가 다 사용되었다. 이런 제사들 중에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는 사람이 죄를 사함 받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제사이다. 속죄제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를 속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속건제는 그리스도인 생활 중에 허물진 것들을 사유하는 것을 나타내며, 화목제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기쁨을 나타내는 것을 제사이다. 그래서 제사 드린 사람이 제물에 함께 참여하는데 그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 제사장이 차지하는 부분 제물 드린 식구들이 차지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용서받은 죄인이 함께 친교 하는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외에 번제는 교과에 있는 대로 헌신을 소제는 소유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인데, 소제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으나 여기서 말할 계제가 아닌 것 같다.
교훈 : 하나님은 백성들이 다양한 이유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에게 가까이 나아오도록 제사 제도를 수립하셨다.
셋째 날(화) 모리아에서의 제사
10월 15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1. 창 22:1~19을 읽어 보라. 아브라함은 제사에 대하여 무엇을 깨달았는가?
[창22:1~19]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답: 제사는 여호와이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속죄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의 삶에는 항상 하나님의 약속이 동반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땅에 대한 약속, 후손에 대한 약속, 복을 주겠다는 약속,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 그리고 이스마엘을 돌보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아브라함의 제사는 언제나 이러한 약속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창세기 22장에서 그는 아무 약속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있는 약속인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아브라함은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동시에 복음의 실재를 그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함이었다. 그 무서운 시련의 어두운 날 동안 그가 참은 고통은 그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무한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구속하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려고 허락되었다. 어떤 다른 시험도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영혼의 고통을 아브라함에게 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내주셨다”(부조와 선지자, 154).
아브라함은 제사에 관하여 두 가지 본질적인 원칙을 이해하였다. 첫째,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구원의 도구인 참제물을 가져올 수 없다. 제물을 제공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의미의 “여호와이레”로 칭함으로써 이 원칙을 기념하였다. 둘째, 제사는 대속적이라는 사실이다. 제물은 이삭의 생명을 구했다. 숫양은 이삭을 “대신하여”(창 22:13) 희생되었다. 하나님이 준비한 그 동물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 53:6~7, 행 8:32).
<부가설명>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에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희생하신다는 것을 보았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드리는 희생제물이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구주의 희생을 표상하는 것임을 잘 가르쳐주셨다. 모리아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이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 어린양이라는 말은 창22:7에 처음 나오는데, 이삭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는 말이다. 신약에서 어린양이라는 말은 요1:29에 처음 나오는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창22:7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다. 구약은 신약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은 다 여호와이레이다. 여호와께서 준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베푸는 그 속죄의 초청에 즐겁게 응하면 된다. 얼마나 쉬운 것인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훈 : 모리아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한 숫양으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넷째 날(수) 생명으로 생명을 대신함
10월 16일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1. 레 17:10~11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피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셨는가?
[레17:10,11]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답: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한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피도 먹지 말라고 지시하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것을 금지하신 흥미로운 이유가 나타난다. 피는 생명을 대표한다. 그래서 희생 제물의 피를 인간의 생명을 위한 대가로 삼으셨다. 생명을 상징하는 피로 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대신하여 숫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던 모리아산에서 이러한 대속의 원칙이 분명해졌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했던 하나님의 법적 요구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다.
창세기 22장처럼 하나님은 속죄의 수단을 준비할 사람은 자신임을 보이셨다. 히브리어로 보면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레 17:11)에서 ‘내’가 강조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속죄물을 준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이런 개념은 희생 제도가 있는 다른 종교의 개념과 다르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의 진노를 달래는 방법을 아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한 임재로 나아올 수 있도록 수단을 제공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친히 대속에 필요한 피를 제공하신다.
2. 삼상 15:22과 미 6:6~8을 읽어 보라. 제사 제도에는 어떤 위험성이 있는가?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미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답: 제사 자체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제사 자체가 죄를 속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사죄는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 자체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행할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제사 제도로 우리의 마음을 대체하려고 의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는 제사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열어야 한다. 만약 제사가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 관계의 표현이며 모든 제사는 더 큰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관점을 놓친다면, 우리는 희생 제사가 마치 속죄를 이루는 자동 장치로 오인하기 쉬울 것이다.
제사 외에 하나님이 정말 바라는 것은 우리 마음이 그분께로 가는 것이다(시 51:16~17).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거짓 경건으로 위장한 백성들을 일관성 있게 책망하며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고 요구하였다(미 6:6~8, 사 1:10~17 비교).
<부가설명> 성경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를 생각나게 한다고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3,4)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제물을 드릴 때 그들은 참된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죄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죄 없는 대속물이 필요하며 그 대속물은 피를 흘려 죄인들의 죄를 속하는데, 그것은 생명을 속하는 것이다.(레17:11) 이 계시는 죄가 생명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말씀이다. 많은 경우 죄가 도덕적 행위에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사람의 죄는 생명과 관련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대속하는 생명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피를 흘려 돌아가셔야 했고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속하는데, 곧 생명을 속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하신 것이다.
교훈 : 구약 성경은 생명을 상징하는 피가 생명을 속할 수 있다는 개념을 가르친다. 그런데 모든 제물의 피는 우리의 대속주이신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했다.
다섯째 날(목) 오늘날의 제사, 산 제물
10월 17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더 이상의 동물 제사는 필요 없지만, 신약 성경은 다른 종류의 제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 다음의 성경절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롬 12:1~2, 빌 4:18, 히 13:15~16, 벧전 2:5.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히13:15,16]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벧전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몸을 산 제사로 드리며, 구제와 헌금, 헌물로 제사를 드리고, 찬미의 제사를 항상 드리고,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제사 제도에 사용되었던 용어는 하나님께 온전히 성별된 삶을 산다는 의미의 초기 기독교 개념을 설명하는 데 잘 맞았다. 사실 바울은 자신의 순교에 관하여 생각하면서 자신을 ‘전제(奠祭: a drink offering)’로 묘사하였다(빌 2:17, 딤후 4:6). [우리 번역에는 관제(灌祭)라고 되어 있다. 같은 뜻이다]
2. 롬 12:1이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교훈을 우리 삶에 나타내야 하는가?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답: 자기의 인격과 생활과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산 제물”이란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적 존재의 변화와 함께 육체의 봉헌을 포함한다(롬 12:1~2).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유일의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한다. 롬 12:1~11의 설명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제물이시요 구원의 방편이신 그리스도를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닮도록 호소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이해하면 하나님께 생애를 구별하고 사랑으로써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과 자아의 욕망을 굴복시키는 것만이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희생에 합당한 반응이다.
결국 영적, 교리적 진리에 대한 이해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의 삶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삶의 모든 면이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진정한 헌신을 표현해야 한다. 참예배란 내적, 영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타적인 봉사의 행위도 포함한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 생각해 보라.
<부가설명> 산 제물이 무엇인지는 롬12:2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들이라고 생각한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21) 이 말씀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교훈 : 구약의 희생 제도는 종결되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반응으로써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날(금)
10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천사들까지라도 구속의 오묘,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늘의 사령관께서 범죄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온 하늘 존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이 명령이 성취되는 매 단계를 주시하였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라는 이삭의 물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을 때,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막 죽이려는 찰나 그의 손이 멈추어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양이 이삭 대신에 드려졌을 때, 바로 그 때 구속의 신비 위에 빛이 비쳤으며, 천사들도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놀라운 준비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5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의 발은 그분의 길을 걸을 것이고, 우리의 입술은 진리를 말하며 복음을 전할 것이고, 우리의 혀는 치유를 가져오고, 우리의 손은 넘어진 자를 일으키며 요리, 청소, 타이핑, 수리와 같은 일상적인 일을 수행할 것이고, 우리의 팔은 외롭고 사랑받지 못한 자들을 끌어안을 것이며, 우리의 귀는 고통 받는 자들의 외침을 들을 것이고, 우리의 눈은 겸손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다.” - John Stott, Romans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1994), 322. 이 인용문은 “산 제물”의 의미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자아가 죽어야만 이렇게 살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이 인용문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사신 그 방법대로 살아야 하고 살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➋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희생 제도를 보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을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보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의 목적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구별된 생애를 살므로 다른 이에게 사랑의 봉사를 베푸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빛을 받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소유한 위대한 진리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여기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까?
※ 선한 봉사를 베푸는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행위주의에 빠지고 성취주의에 빠지게 된다.
➌ 모리아산에서 있었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좀 더 묵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 이야기가 실망과 고민을 일으키는 논란의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이 이야기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감정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아브라함처럼 실제로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책임지신다는 사건인데,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아들이라고 드려야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이 사건의 본의를 놓치지나 않았는지요?
일몰:오후 5시 50분
기억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연구 범위 : 창 3:9~21, 출 12:21~27, 레 2:1~3, 창 22:1~19, 레 17:10~11, 빌 4:18.
전체 복음의 중심에는 제사 개념이 있다. 성경에서 ‘제사’라는 말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다’ 또는 ‘무엇을 드리다’라는 개념을 묘사한다. ‘제물’ 또는 ‘제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까이 나아가거나 무엇을 드리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같은 뜻의 그리스어는 ‘선물’이란 뜻을 포함하며 제물을 드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제물이라는 뜻의 영어 ‘오퍼링(offering)’도 ‘선물을 바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오페레(offerre)’에서 유래했다. 제사라는 뜻의 영어 ‘새크리파이스(sacrifice)’는 라틴어 ‘사체르(sacer: 거룩한)’와 ‘파체레(facere: 만들다)’의 합성어로서 어떤 사물을 신성하게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신자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몇 가지 제사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나 제사를 요구하셨으며 지금도 그 요구가 계속되고 있음을 볼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한 제물을 제공하셨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제사 제도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제사를 통해 죄의 심각성과 구원을 위해 지불한 끔찍한 대가를 이해한다.
➌ 행하기 :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제사 제도의 목적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매일 묵상한다.
A.
❷ 에덴동산에서 드려진 첫 번째 희생 제사에서 아담과 하와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죄를 처리하기 위한 무한한 희생과 그들의 죄가 엄청난 사실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❸ 구약의 여러 제사 제도는 어떤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사람들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죄를 속하기 위하여 대속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목적이 있었다.
❹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쳐야 할까요?
※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언하신 새 생명으로 생활하면 될 것이다.
B.
❶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유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 생활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생각, 언어, 행동 등등.
❸ 아브라함이 경험한 ‘여호와이레’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사실과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감복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도록 자신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❹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한다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결론 : 구약의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당한 희생적 죽음의 다각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묘사합니다.
첫째 날(일) 첫 번째 제사
10월 13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1. 창 3:9~21을 읽어 보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창3:9~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답: 아담 부부를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속죄의 길을 약속하시고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 즉 지상 성소였던 동산에서 살면서 창조주와 직접 교제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의 첫 번째 죄는 거의 해결 불가능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야기했다. 하나님은 그 같은 신뢰의 파기에 대처하실 방법을 이미 계획하셨고 판결을 내리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구세주에 대한 소망을 제공하셨다(창 3:15).
“아담과 하와는 죄수로서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서서, 범죄가 초래한 선고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이 될 수밖에 없는 수고와 슬픔의 생활이나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고를 듣기 전에 그들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말씀들을 들었다. 비록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최후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66).
하나님은 선고를 마치신 후 즉시 그들의 벌거벗음과 수치를 가리기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주심으로 그들에게 승리의 궁극적 기초가 무엇인지 보여 주셨다. 물론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우리는 무죄한 동물이 이 일을 위해 죽어야 했고, 그것이 일종의 제사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행 3:21).
문제의 장본인에게 의복을 제공했던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광야 성막에서 드렸던 제사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장했던 것처럼 에덴에서 제공된 의복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선의를 보증했다.
인간 역사의 초기부터 제사는 죄를 범한 인류가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제사 제도가 예표하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부가설명> 태초에 아담 부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힐 때 그 짐승을 누가 잡았는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밭는다. 그것은 아담 부부가 잡았다. “아담에게 있어서 첫 희생 제사는 가장 고통스러운 의식이었다. 그의 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을 취하기 위해 들려져야만 하였다. 그는 이 때 죽음을 처음으로 목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었더라면 사람이나 짐승이 죽는 일이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무죄한 동물을 희생 제물로 죽이면서 그는 자기의 죄가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떨었다”(부조와 선지자 67) 이것은 성경의 일관된 계시와 일치한다. 성소봉사에서도 제물은 자사를 드리는 사람이 잡았고 그 피는 제사장이 받아서 봉사하였다. 어린양으로 표상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죄인인 사람이다. 죄인이 희생 짐승을 잡는 것은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구주가 자기의 죄로 인하여 대신 죽어주시는 것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시조 아담 부부는 하나님이 주신 영생하는 생명은 선악과를 먹자마자 잃었다. 그것이 벌거벗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들은 원래 빛을 입고 있었다.(시8:5, 부조 45, 57) 빛의 옷은 영생의 생명이 겉으로 나타나는 상태이다. 생명이 빛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요1:4) 그들에게 주신 영생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을 둘렀던 빛의 옷이 사라졌다. 벌거벗을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었지 자발적으로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조주께서는 그들에게 생명을 회복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대신 죽게 하시는 구속의 섭리를 주시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이 생명을 얻도록 하였고,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는데, 그것이 인간의 수명이고 육체의 생명이며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 사람들은 이 기간을 정말 유효하게 사용해야 한다.
교훈 :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제공된 가죽옷은 한 동물의 죽음을 암시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최초의 제사가 되었다.
둘째 날(월) 제물의 종류
10월 14일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레 7:37).
구약 시대에 신자들은 여러 경우와 개인 사정에 따라 제물을 가지고 왔다. 그들이 드릴 수 있도록 허용된 제물에는 정결한 동물, 곡류, 음료 등이 포함되었다. 동물 제사는 성전 봉사에서 가장 오래된 요소로서 제사장 봉사와 함께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러니 희생 없는 종교 생활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1. 다음의 성경절은 어떤 종류의 제사를 설명하고 있는가? 출 12:21~27, 레 2:1~3, 출 25:2~7, 레 4:27~31.
[출12:21~27]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레2:1~3]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출25:2~7]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5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레4:27~31]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8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30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답: 유월절 어린양 제사, 소제 제사, 성소 건설에 드린 예물들, 속죄제사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이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제사 제도를 수립하셨다. 이것이 여러 종류의 상황, 즉 감사, 기쁨과 축하의 표현, 선물, 용서를 구하는 탄원, 회개의 간구, 헌신의 상징과 배상의 의미로 제물을 바치게 했던 이유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사는 번제(레 1장), 소제(레 2장), 화목제(레 3장), 속죄제(레 4장), 속건죄(레 5:14~6:7)였다. 처음 세 제사는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로서 우리와 우리의 소유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번제는 제물을 드리는 이의 전적인 헌신을 상징한다. 소제는 음식이나 가축이나 무엇이든 우리의 모든 물질적 소유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상징한다. 화목제는 참여하는 사람이 제물의 일부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제사였다.
그리고 나머지 두 제사는 의무적으로 드리는 제사였다. 이 제사들은 비록 잘못의 결과가 따를지라도 그 잘못이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상기시켰다. 속죄제로 불리는 정결 제사는 의식적 부정이나 죄로 인한 도덕적 부정을 인식한 이후에 드리는 제사였다.
<부가설명> 성소봉사에서 드리는 제물들은 전적으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의 봉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제사종류가 다양한 것은 사람들이 사유함을 받아야할 내용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또 구주께 드려야할 헌신의 다양성도 나타낸다. 제물은 교과에 있는대로 희생 제물이 되는 짐승들이 있고, 곡식이 있고, 액체도 있다. 교과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체제물도 있는데 분향하는 것이다. 제물은 고체, 액체, 기체가 다 사용되었다. 이런 제사들 중에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는 사람이 죄를 사함 받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제사이다. 속죄제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를 속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속건제는 그리스도인 생활 중에 허물진 것들을 사유하는 것을 나타내며, 화목제는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기쁨을 나타내는 것을 제사이다. 그래서 제사 드린 사람이 제물에 함께 참여하는데 그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 제사장이 차지하는 부분 제물 드린 식구들이 차지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용서받은 죄인이 함께 친교 하는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외에 번제는 교과에 있는 대로 헌신을 소제는 소유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인데, 소제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으나 여기서 말할 계제가 아닌 것 같다.
교훈 : 하나님은 백성들이 다양한 이유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에게 가까이 나아오도록 제사 제도를 수립하셨다.
셋째 날(화) 모리아에서의 제사
10월 15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1. 창 22:1~19을 읽어 보라. 아브라함은 제사에 대하여 무엇을 깨달았는가?
[창22:1~19]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답: 제사는 여호와이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속죄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의 삶에는 항상 하나님의 약속이 동반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땅에 대한 약속, 후손에 대한 약속, 복을 주겠다는 약속,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 그리고 이스마엘을 돌보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아브라함의 제사는 언제나 이러한 약속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창세기 22장에서 그는 아무 약속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있는 약속인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아브라함은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동시에 복음의 실재를 그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함이었다. 그 무서운 시련의 어두운 날 동안 그가 참은 고통은 그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무한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구속하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려고 허락되었다. 어떤 다른 시험도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영혼의 고통을 아브라함에게 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내주셨다”(부조와 선지자, 154).
아브라함은 제사에 관하여 두 가지 본질적인 원칙을 이해하였다. 첫째,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구원의 도구인 참제물을 가져올 수 없다. 제물을 제공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의미의 “여호와이레”로 칭함으로써 이 원칙을 기념하였다. 둘째, 제사는 대속적이라는 사실이다. 제물은 이삭의 생명을 구했다. 숫양은 이삭을 “대신하여”(창 22:13) 희생되었다. 하나님이 준비한 그 동물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 53:6~7, 행 8:32).
<부가설명>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에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희생하신다는 것을 보았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드리는 희생제물이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구주의 희생을 표상하는 것임을 잘 가르쳐주셨다. 모리아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이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 어린양이라는 말은 창22:7에 처음 나오는데, 이삭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는 말이다. 신약에서 어린양이라는 말은 요1:29에 처음 나오는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창22:7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다. 구약은 신약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은 다 여호와이레이다. 여호와께서 준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베푸는 그 속죄의 초청에 즐겁게 응하면 된다. 얼마나 쉬운 것인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훈 : 모리아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미리 준비한 숫양으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넷째 날(수) 생명으로 생명을 대신함
10월 16일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1. 레 17:10~11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피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셨는가?
[레17:10,11]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답: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한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피도 먹지 말라고 지시하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것을 금지하신 흥미로운 이유가 나타난다. 피는 생명을 대표한다. 그래서 희생 제물의 피를 인간의 생명을 위한 대가로 삼으셨다. 생명을 상징하는 피로 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대신하여 숫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던 모리아산에서 이러한 대속의 원칙이 분명해졌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했던 하나님의 법적 요구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다.
창세기 22장처럼 하나님은 속죄의 수단을 준비할 사람은 자신임을 보이셨다. 히브리어로 보면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레 17:11)에서 ‘내’가 강조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속죄물을 준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이런 개념은 희생 제도가 있는 다른 종교의 개념과 다르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의 진노를 달래는 방법을 아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의 거룩한 임재로 나아올 수 있도록 수단을 제공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친히 대속에 필요한 피를 제공하신다.
2. 삼상 15:22과 미 6:6~8을 읽어 보라. 제사 제도에는 어떤 위험성이 있는가?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미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답: 제사 자체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제사 자체가 죄를 속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사죄는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 자체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행할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제사 제도로 우리의 마음을 대체하려고 의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우리는 제사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열어야 한다. 만약 제사가 하나님과 우리의 영적 관계의 표현이며 모든 제사는 더 큰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관점을 놓친다면, 우리는 희생 제사가 마치 속죄를 이루는 자동 장치로 오인하기 쉬울 것이다.
제사 외에 하나님이 정말 바라는 것은 우리 마음이 그분께로 가는 것이다(시 51:16~17).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거짓 경건으로 위장한 백성들을 일관성 있게 책망하며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고 요구하였다(미 6:6~8, 사 1:10~17 비교).
<부가설명> 성경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를 생각나게 한다고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10:3,4)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제물을 드릴 때 그들은 참된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죄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죄 없는 대속물이 필요하며 그 대속물은 피를 흘려 죄인들의 죄를 속하는데, 그것은 생명을 속하는 것이다.(레17:11) 이 계시는 죄가 생명에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말씀이다. 많은 경우 죄가 도덕적 행위에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사람의 죄는 생명과 관련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대속하는 생명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피를 흘려 돌아가셔야 했고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속하는데, 곧 생명을 속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하신 것이다.
교훈 : 구약 성경은 생명을 상징하는 피가 생명을 속할 수 있다는 개념을 가르친다. 그런데 모든 제물의 피는 우리의 대속주이신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했다.
다섯째 날(목) 오늘날의 제사, 산 제물
10월 17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더 이상의 동물 제사는 필요 없지만, 신약 성경은 다른 종류의 제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 다음의 성경절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롬 12:1~2, 빌 4:18, 히 13:15~16, 벧전 2:5.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히13:15,16]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벧전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몸을 산 제사로 드리며, 구제와 헌금, 헌물로 제사를 드리고, 찬미의 제사를 항상 드리고,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제사 제도에 사용되었던 용어는 하나님께 온전히 성별된 삶을 산다는 의미의 초기 기독교 개념을 설명하는 데 잘 맞았다. 사실 바울은 자신의 순교에 관하여 생각하면서 자신을 ‘전제(奠祭: a drink offering)’로 묘사하였다(빌 2:17, 딤후 4:6). [우리 번역에는 관제(灌祭)라고 되어 있다. 같은 뜻이다]
2. 롬 12:1이 우리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교훈을 우리 삶에 나타내야 하는가?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답: 자기의 인격과 생활과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산 제물”이란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적 존재의 변화와 함께 육체의 봉헌을 포함한다(롬 12:1~2).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유일의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한다. 롬 12:1~11의 설명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제물이시요 구원의 방편이신 그리스도를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닮도록 호소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이해하면 하나님께 생애를 구별하고 사랑으로써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과 자아의 욕망을 굴복시키는 것만이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희생에 합당한 반응이다.
결국 영적, 교리적 진리에 대한 이해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의 삶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삶의 모든 면이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진정한 헌신을 표현해야 한다. 참예배란 내적, 영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타적인 봉사의 행위도 포함한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 생각해 보라.
<부가설명> 산 제물이 무엇인지는 롬12:2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들이라고 생각한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21) 이 말씀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교훈 : 구약의 희생 제도는 종결되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반응으로써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 날(금)
10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천사들까지라도 구속의 오묘,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늘의 사령관께서 범죄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온 하늘 존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이 명령이 성취되는 매 단계를 주시하였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라는 이삭의 물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을 때,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막 죽이려는 찰나 그의 손이 멈추어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양이 이삭 대신에 드려졌을 때, 바로 그 때 구속의 신비 위에 빛이 비쳤으며, 천사들도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놀라운 준비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5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의 발은 그분의 길을 걸을 것이고, 우리의 입술은 진리를 말하며 복음을 전할 것이고, 우리의 혀는 치유를 가져오고, 우리의 손은 넘어진 자를 일으키며 요리, 청소, 타이핑, 수리와 같은 일상적인 일을 수행할 것이고, 우리의 팔은 외롭고 사랑받지 못한 자들을 끌어안을 것이며, 우리의 귀는 고통 받는 자들의 외침을 들을 것이고, 우리의 눈은 겸손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다.” - John Stott, Romans (Downers Grove, Ill.: InterVarsity, 1994), 322. 이 인용문은 “산 제물”의 의미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자아가 죽어야만 이렇게 살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이 인용문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사신 그 방법대로 살아야 하고 살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➋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희생 제도를 보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을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보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의 목적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구별된 생애를 살므로 다른 이에게 사랑의 봉사를 베푸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빛을 받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소유한 위대한 진리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여기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까?
※ 선한 봉사를 베푸는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행위주의에 빠지고 성취주의에 빠지게 된다.
➌ 모리아산에서 있었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좀 더 묵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 이야기가 실망과 고민을 일으키는 논란의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이 이야기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감정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아브라함처럼 실제로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책임지신다는 사건인데,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아들이라고 드려야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이 사건의 본의를 놓치지나 않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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