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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개혁 : 성장하고 변화하려는 자발성(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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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8-31 02:31 조회8,485회 댓글0건

본문

9월 7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3분

연구 범위
요일 2:1~9, 빌 2:12~14, 마 26:31~35, 요 20:24~29, 눅 15:11~21, 요 5:1~14.

기억절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6~7).

오순절 전에 제자들은 상당한 영적 부족을 느꼈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희미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룩한 은혜로 감동을 받은 후, 그들의 심령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무너졌다. 그렇게 그들은 부흥과 개혁을 경험하였다.
부흥이란 깊은 영적 갈망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써 우리의 영적 욕구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부흥이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이전에 예수님을 몰랐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안일한 상태에서 벗어나라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그것은 성경의 가치에 따라 삶을 재점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께 자신을 맡기라고 권유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자신의 영적 생애에서 성장과 변화를 경험했던 신약 신자들의 삶을 연구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십자가 전후에 보인 제자들의 태도를 비교하고 개혁적인 변화를 찾는다.
➋ 느끼기 :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 투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소망을 갖는다.
➌ 행하기 :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고 그분께 완전히 굴복하는 생애를 살기로 결심한다.

A.
❷ 예수님을 가까이할수록 그대가 느끼는 품성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 예수께서 사람을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주려고 하신 그런 정신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❸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어떤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을까요?
※ 탕자는 아버지 집에 돌아가기를 열망하게 되었다. 우리도 아버지 집에 있어야할 줄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부흥이요 개혁이다.
❹ 영적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투쟁을 해야 합니까?
※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하여지기 때문에 기도하고 말씀 상고하여 깨닫고 굴복해야 한다.

B.
❷ 영적 변화는 우리의 의지와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과정이 필요합니까?
※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❸ 영적 변화에 있어서 베드로와 도마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 자기의 결심과 의지를 버리고 전적으로 예수님께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성령께 완전히 굴복시킬 때 예수께서 그의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우리를 변하게 한다.
❹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가 행동으로 옮겨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38년 된 환자의 반응이 필요하다.

결론 : 제자들의 삶은 그리스도인 삶 속에 존재하는 투쟁의 현실을 증언합니다. 영적 투쟁 없이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개혁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것과 다른 습관과 태도를 포기하기로 결심할 때에 일어납니다.


첫째날(일) 자라게 하는 은혜
9월 1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제자들의 삶은 예수님과 동행함으로써 변함없는 영적 성장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당시에 그들의 태도와 행동은 주님의 애정 넘치는 품성을 반영하지 못했다.

1. 눅 9:51~56과 마 20:20~2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야고보와 요한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눅9:51~56]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마20:20~28]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답: 복수하려는 마음과 높은 지위를 탐하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야고보와 요한은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시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의 기별을 선포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심각한 성격적 단점에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품성을 더 완전하게 드러내고자 갈망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태도에 변화와 개혁이 있기를 열망했다. 성장과 변화는 기독교 신앙의 한 부분이다.

2. 요일 2:1~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요한에게 어떤 큰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가? 이 성경절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요일2:1~9]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답: 예수께서 행하시는 것 같이 요한도 행하려는 사람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것 같이 자기도 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우리 삶에 정말 부흥과 개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영적 성장에 대하여 낙담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낙담하고 영적으로 실패하며, 구원받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생길 때, 어떤 약속에 따라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실패할지라도 구원의 확신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가?

답: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시는 주님의 약속과 친히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로 예수께서 행하게 해 주시는 은혜의 약속을 믿음으로 굳게 서 있어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육적인 자아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육적인 자아는 아담 안에서 태어난 인생을 뜻한다. 그것은 썩어질 씨로 태어났기 때문에(벧전1:23) 썩어져가는 구습을 행하는 존재이다.(엡4:22) 이것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자이다.(롬13:14) 이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내 안에서 살아주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시는 그 일을 내가 할 수밖에 없고, 예수께서 하지 않는 일은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깨닫는 말씀에 마음을 주고 말씀에 굴복하자. 그러면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교훈 : 심각한 성격적 결함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품성이 변화된 제자들처럼 우리도 부흥과 개혁을 통해 성장과 변화를 소망할 수 있다.


둘째날(월) 선택의 능력
9월 2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2~14).

변화는 선택의 순간에 이르고, 개혁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우치는 성령의 능력에 굴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키기로 선택할 때에 일어난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의지를 강요하거나 조정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신다. 그분의 영은 우리의 사고에 영감을 주고, 우리의 마음에 가책을 느끼게 하며, 우리가 옳은 일을 하도록 권유하시지만, 성령의 호소에 반응하는 결정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1. 빌 2:12~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은혜 안에서 자라기 위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바울의 말은 무슨 뜻인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빌2:12~14]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답: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려고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굴복할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능히 행하도록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아직 이루시지 않은 일을 우리가 활용하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그분이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 삶 속에 이루신 은혜와 능력을 활용하기로 결심할 수 있다.
“유한하고 죄 많은 인간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룰 때에 그의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자신의 선하신 기쁨을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과의 협력 없이는 일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며, 자신을 그리스도의 학교에 있는 적합하고 적극적인 학생의 위치에 두어야 한다. 그에게 대가 없이 부여된 은혜를 받아들일 때에 생각과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모든 무거운 죄를 내려놓도록 결심하게 할 것이며, 그의 심령은 충만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Fundamentals of Christian Education, 134).
개혁은 성령께서 그분의 뜻과 조화롭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굴복하기로 결심할 때에 일어난다. 우리가 그러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긍정적이고 영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이기적인 생각도 거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불건전한 습관과 은밀한 방종을 기이한 방법으로 낚아채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단지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고 무엇이 옳은지 확신시키신다. 그리고 결정은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가 결정할 때마다 그분은 우리의 결정을 강하게 하신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부가설명>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이해한다. 이 권면은 칭의 이후에 오는 성화의 과정에서  신인협동(神人協同)의 차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구원의 확증은 얻었지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의 증거들을 실증하며 살아가야 함을 뜻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연합적인 차원에서 이해한다. 바울은 2:4절에서 이미 개인적인 삶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이 구절 이하에서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교회 전체의 집합적, 공동체적 권면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다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구원에 있어서 “개인”과 “교회”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계속해서 성숙해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나아가야 한다(엡4:1-6). 그리고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이미 받은 구원을 확실하게 하는 방법에 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늘 굴복하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할 때에 우리 안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일하신다.


셋째날(화) 확신과 의심
9월 3일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4).

1.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베드로의 태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마26:31~35)
[마26:31~35]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답: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철저히 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아에 대한 신뢰가 강한 것이 문제이다.

베드로는 마귀의 계략을 이겨 낼 재간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사탄의 유혹에 맞서고자 했다. 그는 너무 자신만만하여 다가오는 위기를 알아채지 못했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한 여종의 질문에 당황하여 그는 자신의 주인을 부인하고 말았다(마 26:69~75). 앞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예수님은 그의 영적 상태를 날카롭게 분석하였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의지함으로써 주로부터 멀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는 (내게) 돌이킨 후에”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영적 각성이 필요했다. 그는 태도를 바꿔야 했다. 그는 개혁이 필요했다.

2. 요 20:24~2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도마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말해 주는가?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해야 하는가?
[요20:24~29]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답: 도마는 들리는 이야기에 대하여 스스로 확인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고 굴복해야 한다.

베드로와 도마에게 뚜렷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즉 그들은 인간의 관점으로 믿음에 접근하였다. 베드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리고 도마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을 믿으려 했다. 그들은 불완전한 인간적 판단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오순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변화된 베드로는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했고, 오순절에 3천 명이 침례를 받았다(행 2:41). 그는 자신에게 앉은뱅이를 치료할 능력이 없지만 예수님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행 3:2~9). 관리들이 그의 입을 막고자 했지만,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
베드로는 새사람이 되었다. 도마 역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도마는 복음을 전하러 배를 타고 인도에 갔다고 전해진다. 그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가 오순절 이후에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고 했던 베드로처럼 우리는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부가설명> 사람은 죽음 앞에 너무나 무력하다. 이 세상에 아담의 씨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또한 출생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런 것을 사람들은 운명(運命)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가 강한 줄로 착각한다. 이 착각이 때때로 엉뚱한 장담을 하게 한다. 또 세상이 워낙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충일하기 때문에 스스로 확인을 하면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속이는 세상에서 확인하는 그것까지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성경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만이 세상을 이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믿는다는 헬라어 ‘피스튜오’는 맡긴다는 의미도 있다. 자아를 전적으로 예수님께 맡기자. 그러면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된다.

교훈 : 우리는 자신의 힘과 판단력을 의지할 때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개혁이란 자신을 믿는 태도를 버리고 오직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넷째날(수) 돌아가려는 결심
9월 4일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 15:20).

1. 눅 15:11~21을 읽어 보라. 탕자의 어떤 구체적인 태도와 행동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는가? 이 비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흥과 개혁의 원리는 무엇인가?
[눅15:11~2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답: 탕자는 현재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버지 집의 넉넉한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리라고 결심하였다. 또 아버지를 만나 어떻게 말할 것도 연습하였다. 그리고 곧 일어나 아버지 집을 향하여 걸어갔다.

부흥은 여러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든지 빠져서는 안 될 요소가 있다. 부흥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이 알고 싶은 주린 심령이다. 개혁은 변화와 성장으로 이끄시는 성령께 반응하는 선택이자,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포기하는 선택이다. 탕자는 돼지우리와 아버지의 잔치 자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 젊은이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을 만큼 집을 그리워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가슴앓이 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이와 같은 가슴앓이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개혁과 부흥을 갈망하게 한다.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대한 이와 같은 그리움이 삶의 변화를 수용하도록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그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 사죄할지 미리 계획하였다. 그는 분명 그것을 반복하여 연습했을 것이다.

2. 눅 15:18~19에서 그의 말을 읽어 보라. 20~24절에서 아버지가 그의 말을 어떻게 가로막았는지 읽어 보라. 이런 개입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그리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보여 주는가?
[눅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15:20~24]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답: 종들에게 최고의 대접을 하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그의 말을 막았다. 지극한 사랑을 들어낸다. 아들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눈에서 멀어질 수는 있어도 마음에서는 멀어질 수 없었다. 아버지의 눈은 매일 지평선을 응시하며 아들을 기다렸다.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동기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분을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고 싶은 소망이다.
아들이 돼지들과 함께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을 때에 그 보다 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부흥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찢어질 때에 일어난다. 개혁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우리가 반응하기로 결심할 때 일어난다.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키는 부정적인 태도, 습관, 사고 그리고 감정들을 포기하기로 결심할 때에 일어난다.

<부가설명>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잘못하면 벌하시는 분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이미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눈을 부라리는 아버지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안식일에 자녀들에게 안식일이 어떻게 재미있고 기다려지는 날이 되도록 가르쳤는가. 일상생활에서 무섭게 살피는 눈앞에 주눅이 들도록 표현하지는 않았는가. 어쩌면 우리 재림성도들은 아버지께 성실히 하면서 기쁨을 모르는 맏아들 같은 정서로 신앙생활하지는 않는가. 그 아들은 성실했지만 의무로 생활하지 않았을까? 그 아들에게는 즐거움이 없었던 것 같다. 재림성도들은 믿음으로 사는 즐거움이 넘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속히 벗어나야 진정한 부흥과 개혁을 맛볼 것이다.

교훈 : 부흥과 개혁은 하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에서 시작된다.


다섯째날(목) 행동하는 믿음
9월 5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 5:8~9).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서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분은 병든 영혼을 치유하실 수 있는 더 큰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해 병든 몸을 치유하셨다. 그분은 비뚤어진 사고와 마음을 고치시고자 하는 그분의 큰 바람을 증명하시려고 비뚤어진 팔과 다리를 고쳐 주셨다. 예수님의 기적은 어떻게 믿음을 활용하는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그리고 성장과 변화에 대한 유용한 교훈을 가르친다.
믿음의 힘을 보여 주는 예수님의 가장 확실한 실례는 베데스다 연못에 있었던 병자에게 일어난 기적이다. 그 사람이 질병을 앓은 지는 38년이 되었다.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는 가난과 고통과 비참함으로 살아갈 운명처럼 보였다.

1. 요 5:1~14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고 질문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오랫동안 병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이라면 낫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은 어떻게 대답하였는가?(요 5:7)
[요5:1~14]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 대 12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답: 예수님의 질문은 그 환자가 물이 동하는 것과 그를 그곳에 넣어줄 사람에 대한 생각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자기 평소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대답에 관계없이 그에게 일어나 자리를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변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의 변명을 가지고 논쟁하지 않으셨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그 병자가 자신의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말씀에 따라 행할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다행히도 그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자 결심하자마자 그는 건강을 찾았다. 예수님이 주시는 치유의 선물은 그분의 말씀 속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분의 선언을 성취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동반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질문은 그 사람이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게 하기 위하여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대답과 상관없이 예수님은 그를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이 환자를 고치시는 것으로 말씀에 따를 마음만 먹으면 능히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하신 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또 안식일에 고치심으로 안식일이 회복하는 날임을 보여주셨다. 안식일에 행하는 모든 것은 사람을 죄에서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건강의 회복도 포함된다. 감정의 회복, 관계의 회복, 하나님과 더 돈독한 관계의 발전, 이런 것들이 안식일에 있어야 할 일들이다. 안식일에 세상적인 것, 육적인 것을 지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안식일에 지나치게 경직된 삶도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가장 확실하게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다. 사랑은 대하는 사람들을 살려주는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훈 : 부흥과 개혁을 정말 바란다면 우리는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것을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반응하며 행동해야 한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9월 6일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인간의 협력이 없이 인간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기를 이기는 위대한 일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지 말 것이다. 또한 그대들이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한 이후에 예수님께서 그대들을 도우실 것이라고 말하지도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시지 않는 한, 우리들은 발자국마다 걸려 넘어질 것이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며 무가치한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와의 협력만이 승리를 의미한다.… 인간의 편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거나 전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성공적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할 것을 가르치라”(가려 뽑은 기별 1권, 38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약속을 주장할 때, 그리스도인 삶에 성장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다음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요일 1:7~9, 빌 4:13, 약 1:5~8, 롬 8:31~39) 어떻게 하면 그대는 이 약속들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이 약속들이 그대의 삶 속에서 실현되려면 그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요일1:7~9]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약1:5~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롬8:31~3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기록된 말씀대로 믿으면 된다. 우리의 의지를 예수님께 드리고 중풍환자처럼 일어서려고 하자. 그러면 주께서 일으킬 것이다.

➋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사상에 대하여 더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비추었을 때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해 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 때문에 떨어야 할까요?
※ 두려워하는 것은 주신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마음이고, 떨리는 것은 세상이 그것을 빼앗아가려고 최대의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예수님께 굴복해야 한다.

➌ 베드로처럼 이전에 하나님께 진심으로 약속했지만 약속에 따라 행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그와 같은 실수를 통해 어떤 교훈을 배웠습니까? 성경에 따르면 우리로 하여금 약속대로 승리를 얻게 하는 원리들은 무엇입니까?
※ 각자 생각해보자. 승리를 얻게 하는 것은 예수께 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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