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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순종 : 부흥의 열매(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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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7-26 01:33 조회8,2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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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39분

연구 범위
마 26:69~74, 행 5:28~32, 행 6:3~10, 행 9:1~9, 빌 2:5~8.

기억절 :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4~5).

부흥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 예는 1904년 웨일즈의 부흥에서 볼 수 있다. 에번 로버츠와 그의 친구들은 성령의 부어 주심을 열렬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보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연구하며 믿음을 전하였다.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이 부어졌고, 삶은 변화되었다. 6개월 동안 웨일즈 지방에서 십만 명의 회심이 일어났다. 부흥의 결과는 전국에 걸쳐 나타났다. 온종일 수천 명의 사람이 기도하러 교회로 몰려들었다. 거칠고 입이 험한 석탄 광부들이 친절하고 예의바른 신사로 변화되었다. 심지어 석탄을 운반하던 조랑말들조차 광부들이 더 이상 욕을 하지 않아 새로운 명령을 익혀야 했다. 마음의 회심이 삶의 변화와 순종으로 이어졌다. 반박할 수 없는 참부흥이란 이런 것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순종하는 삶에 허락된 성령의 부어 주심과 부흥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다.
➋ 느끼기 : 모든 신자가 변화된 삶을 살도록 죄를 깨닫게 하고, 회심하게 하고,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임재 속에 즐거워한다.
➌ 행하기 : 예수께서 계시하신 뜻에 일치하게 생활하면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A.
❶ 가정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무엇을 바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 가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❷ 사람들이 바라는 부흥과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어떻게 다릅니까?
※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성경이 제시한 원칙대로 교회가 순복하는 것이다.
❸ 부흥을 경험한 개인이나 교회는 어떤 면에서 지금과 확연하게 달라질까요?
※ 그리스도를 높이고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❹ 부흥에 근접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것들에 대하여 성령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까?
※ 성경이 제시하는 원칙에 언제나 긍정적 반응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B.
❶ 부흥하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는 무엇이 다를까요?
※ 말씀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과 인간의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 다르지 않을까?
❷ 개인과 교회의 부흥에 있어서 순종은 얼마나 중요한 요소입니까?
※ 순종은 건강한 지체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몸인 교회도 건강하지 않게 된다.
❸ 예수님이 보여 주신 순종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 요5:19과 30절과 8:28을 찾아 읽어보면 대답이 있다. 또 갈2:20과 빌2:13을 읽으라.
❹ 어떻게 하면 우리도 예수님이 보여 주신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굴복시킬 때 건강한 지체노릇을 하게 된다.

결론 : 부흥은 언제나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성령의 부어 주심은 생애에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언하며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분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지만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소생시키고 변화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날(일) 변화된 삶
7월 28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
라”(행 5:32).

부흥의 결과는 단지 예수님과 가까워진 것 같은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이라기보다는 변화된 삶이다. 성경의 기자들도 때로는 예수님이 매우 가깝게, 때로는 멀게 느껴졌다. 하늘을 날듯이 기분이 좋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즐거워할 때가 있는가 하면 그분이 가까이 계심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은 부흥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부흥의 결과는 변화된 삶이다. 부흥의 열매는 감정이 아니라 순종이다. 이는 오순절 이후 제자들의 삶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1. 십자가 이후, 부활 이후 그리고 오순절 이후 베드로의 반응들을 분석해 보라. 그대는 무엇을 알게 됐는가? 십자가, 부활 그리고 오순절 사건은 각각 베드로의 태도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십자가 이전에 베드로의 반응
[마26:69~74]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 아주 겁이 많고 비겁하였다. 예수를 저주하며 부인하는 자리까지 이르렀다.
부활 이후에 베드로의 반응
[요21:15~19]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였다. 동시에 동료의 삶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의 반응
[행5:28~32]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 두려움 없이 유대인 당국자들 앞에서 담대히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고 깨우쳐주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베드로의 삶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그 사건은 베드로를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신자에서 믿음이 충만하고 순종하는 제자로 변화시켰다. 한때 경솔한 말과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던 베드로가 이제는 믿음과 용기와 전도 열성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 이는 믿음과 순종으로 주께 굴복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수 있는지 보여 주는 훌륭한 예이다.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확실한 역사적 사건을 증거로 보여주시면서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죽은 자 중에서 부활하시므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고 기록하였다.(행17:31)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만 하고 부활하지 않았으면 예수를 믿을 증거를 주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을 수밖에 없는 분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낸다. 그래서 성경의 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확인하고 예수를 믿는 믿음이 굳세어지고 참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그는 순교자적인 믿음으로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도 부활의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믿고 진정한 변화를 이루도록 믿음을 더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체험적 증인이 되도록 복 주시기를 바란다.

교훈 : 부흥의 결과는 예수님과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믿음에 충만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변화된 삶이다.


둘째날(월) 순종의 큰 대가
7월 29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스데반의 생애는 믿음과 순종의 대가를 보여 준 초기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1. 다음 말씀에서 스데반은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행 6:3~10, 7:55.
[행6:3~10]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답: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되었다.

제자들은 성령 충만을 입고 이타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들의 믿음은 순종으로 이어졌다. 영적 투쟁이 맹렬했다. 그러나 때마다 구주이신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은 돌에 맞거나, 투옥되거나, 화형을 당하거나 조난을 당하였다. 그들의 순종에는 종종 매우 큰 대가가 따랐다. 대부분의 제자가 순교를 당하였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장문의 설교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하였다. 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그리고 솔로몬의 경험을 설명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불성실함과 대조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묘사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고 성령의 감화를 거역한 잘못을 지적하면서 설교의 결론을 맺었다(행 7:51~52).

2. 그의 증언으로 인하여 스데반에게 어떤 일에 벌어졌는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신실함의 대가에 대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행 7:54~60)
[행7:54~60]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답: 스데반을 돌로 쳐 죽게 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이 이 땅에서 평강과 번영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죽는 순간까지 그의 사명에 충실했다. 우리가 다 순교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령 그런 부르심을 받을지라도 우리는 주께 충성하여 물러서지 않고 스데반처럼 끝까지 신실하게 믿음의 편에 남아있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언젠가 주를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가설명> 예수를 믿고 생활한다는 것은 세상에 번영과 세상이 말하는 그런 복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닫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순교자들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스데반 역시 그렇다. 우리는 예수 믿고 복 받읍시다라고 말하는 말을 듣고 그 복을 이 세상에서 형통하게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 잘못 해석하고 그런 의식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다가 생활에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난다. 신명기 28장의 축복의 선언을 세상적인 것으로 해석하기 쉽다.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상의 핵심은 미래적인 것이며, 천국적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 축복의 일부를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핵심은 영원한 나라의 복된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산업도 빼앗기고 스데반처럼 목숨도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 부활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스데반처럼 담대히 예수님을 믿고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심령들이 교회를 채울 때에 부흥이 되고 개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교훈 : 부흥을 경험하고 성령의 충만을 입은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주께 순종하며 때로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셋째날(화) 성령께서 우리를 놀라게 하실 때
7월 30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3~5).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면서도 자신은 광신도에 맞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 다메섹에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갑자기 그에게 나타나셨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겪은 바울의 경험은 그의 인생뿐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켰다.

1. 행 9:1~9에서 바울의 회심을 다룬 기사를 읽어 보라. 주님은 왜 이 경험 직후에 그를 아나니아에게 보내셨는가?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행9:1~9]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답: 예수께서 직접 사울을 만나셨다. 그러나 다음에는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만나라고 하셨고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만나서 침례를 주라고 하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친히 조직하게 한 교회의 권위와 직능을 가르쳐주는 조처였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빛과 경험에 대해 지상에서 그분이 인정하시는 제자들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이시므로 그들이 근심할 때에 마음 아파하신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인간의 계몽과 구원을 위하여 당신께서 정하신 방법을 존중히 여기시어 당신께서 세상의 빛의 통로로 만드신 교회로 죄인들을 인도하신다.
무지한 죄과와 편견 가운데서 사울이 그가 핍박하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를 받았을 때에 그는 세상의 빛인 교회와 직접 교통하도록 조치되었다”(사도행적, 122).

2. 예수님은 어떻게 아나니아를 놀라게 했는가? 구주의 지시에 따르기 위해 아나니아는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했는가?(행 9:10~16)
[행9:10~16]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답: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만나서 안수하고 침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아나니아는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순복하였다.

<부가설명> 소위 교회에 무교회주의가 있다. 이것은 일본의 사상가요 종교가인 우찌무라 간조(내촌감삼)의 주장이다. 즉 조직된 교회에 속하지 않고 오직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속하여 예수를 믿으면 된다는 사상이다. 그가 이런 사상을 부르짖은 것은 당시의 정치적 교회적 상태와 관련이 있겠지만 성경적 사상은 아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셨고 그 교회가 예수의 몸이며 예수는 친히 머리가 되시고 모든 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된 사람은 다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에 속해야 한다. 교회와 상관없이 하나님과만 바른 관계를 가지면 된다는 사상은 얼핏 그럴 듯 하게 여겨지지만 전혀 성경적이 아니다. 그것은 지체가 몸에 붙지 않고 스스로 생존하겠다는 것과 같다. 결국 그는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 땅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동시에 진리의 기둥과 터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하는 기관이다. 교회와 관계를 끊으면 결국 자신이 스스로 교회가 되려는 것과 같다. 조심해야 한다.

교훈 : 초기 기독교가 큰 선교 부흥을 일으킨 배경에는 사람의 예측을 뛰어넘는 성령의 갑작스러운 개입과 신자들의 순종이 있었다.


넷째날(수) 성령의 부르심에 민감하게 반응함
7월 31일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행 26:19). 사울은 봉사의 생애를 살면서 성령의 인도와 책망과 지도와 능력을 받았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봤던 하늘의 이상을 설명하였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사역의 목적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행 26:18)기 위한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1. 성령의 인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메섹 도상의 이상에 대한 사도 바울의 반응에는 어떤 중요한 점이 있는가? 성령의 부르심에 대한 바울의 반응과 아그립바 왕의 반응을 대조해 보라(행 26:19~32).
[행26:19~32]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답: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일어났던 사건으로 성령의 인도에 즉각즉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하여 예수께 굴복하였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마음에 일어나는 성령의 감동과 음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울과 정반대로 아그립바 왕은 성령의 음성에 굴복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과 이기적인 욕망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라는 성령의 설득과 투쟁하였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5~36).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순종하여 따르고 진리의 빛 가운데 행하면, 그분은 계속 더 큰 빛과 진리를 보여 주신다. 그에 반하여 우리가 성령의 설득을 거부하고 그분을 거절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욱 굳어지게 될 것이다.

2.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성경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슬픈 말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도 어떻게 그와 비슷한 태도를 품고 있을 위험성이 있는가? 예를 들어 주와 동행하는 삶에서 우리가 취하는 타협은 어떻게 아그립바의 말에서 나타난 동일한 정신을 드러내는가?

답: 우리가 자기 생각을 따라 성경의 지시와 교훈을 바르게 실행하지 않으면 아그립바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마르시온이라는 사람은 성경을 자기 사상으로 취사선택하였다. 자기 사상에 맞는 것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맞지 않는 것은 버렸다. 이렇게 자기 생각에 맞는 말, 자기 취미와 일치하는 내용만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을 마르시온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예외 없이 얼마간의 마르시온주의자일 수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생활태도에서 그럴 수 있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 말이 많으나 적으나 성경이 교훈하고 지시하는 것은 순복하는 것이 바울이 취한 태도이다. 우리도 그런 태도로 말씀에 임해야 한다. 비로 내가 연약해서 말씀대로 순복하는데 실패를 해도, 생각과 태도에 그런 사소한 말씀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다. 내 생활이 말씀대로 잘 안 되는 것과, 마르시온적 사상을 가지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교훈 :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할수록 더 큰 영적 유익이 따르지만, 그분의 음성을 거절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다섯째날(목) 성령에 이끌리는 순종
8월 1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성령은 예수님의 생애의 모든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침례를 받고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에 성령과 권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마 1:20, 3:16~17, 행 10:34~38). 그리스도는 평생 동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요 8:29, 히 10:7).

1. 빌 2:5~8을 읽어 보라. 예수님에 대한 이 구체적인 묘사에 따르면 성령으로 충만한 삶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가?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답: 자기를 낮추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데 전적으로 굴복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며 본체이셨던 분이 자신을 비워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와 특권을 버리고 대신 종이 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종이셨다. 그분은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빌 2:8)셨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한 예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원하여 복종하며 겸손하게 굴복하는 생애이며, 기도하는 심령으로 사역과 봉사에 바쳐진 생애이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보고자 하는 열렬한 소망으로 불타는 생애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한 신약 교회의 신자들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롬 1:5)했다고 선언하였다. 반면 불신자들은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롬 2:8)랐다.

2. 롬 6:15~23에서 바울은 “죄의 종”과 “의의 종”이라는 대조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롬 8:12~17에서는 “종의 영”과 “양자의 영”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하나님과의 만남, 믿음, 죄와의 투쟁, 하나님의 영접에 대한 그대의 경험에 비춰 볼 때에 이러한 용어들은 어떤 의미인가?
[롬6:15~23]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8:12~1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답: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요8:34) 죄의 종 된 사람은 의에 대하여 자유하다. 이 말은 의를 행할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똑 같이 의의 종이 된 사람은 죄에 대하여 자우하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받은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죄에 대하여 자유 하지만 또한 하나님이 두려워서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은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고 참된 자유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결국 우리는 무엇인가에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죄에, 그분을 안 후에는 의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의에 대한 순종에도 종의 마음으로 하는 순종과 아들의 마음으로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순종하는 사람 편에서 순종을 이해하려고 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순종하는 사람의 노력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순종하는 사람의 노력과 상관없다. 사람은 두 종류의 지체로 존재하게 되어 있다. 하나는 죄의 지체이고(롬6:6, 7:23)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다.(롬12:4,5) 죄의 몸의 지체이면 죄의 몸이 시키는 대로 그 지체는 움직인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이 원리를 죄의 종, 의의 종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면 순종은 지체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순종했다고 자랑할 것이 없다. 손이 건강하게 기능을 수행했다고 머리나 몸통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2:19)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일 뿐이기 때문에 건강한 지체로서 자기 기능을 수행하면 그것이 순종이다.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교회의 지체로서의 교인들의 관계를 나타낸다. 이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면 순종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게 될 것이다.

교훈 :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애의 모본이 되셨다.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다 그 같은 정신으로 순종의 생애를 산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8월 2일

“영생으로 가는 길의 출입문에 하나님은 믿음을 두신다. 그리고 모든 길을 따라 빛과 평화와 자원하는 순종의 기쁨을 줄지어 놓으신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높은 부르심의 표를 자신 앞에 간직한다. 그 상급이 항상 목전에 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명령은 성령 안에 있는 의와 기쁨과 평화이다”(In Heavenly Places, 183).

“성령의 약속은 어떤 시대나 어떤 족속에게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거룩한 감화가 세상 끝 날까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오순절 때부터 지금까지 보혜사 성령은 자신을 주님과 그분의 사업에 온전히 바친 모든 사람과 함께하셨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게 성령은 권고자로, 성결케 하는 자로, 인도자로 그리고 증인으로 함께 하셨다. 신자들이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할 때 그들은 구속주의 사랑과 그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더욱 힘 있고 분명하게 증언하게 되었다. 박해와 시련의 오랜 세기를 통하여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에 성령의 임재를 크게 누렸으며 세상에서 이적과 기사를 베푸는 자들로 섰다. 그들은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 구속하시는 사랑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냈다”(사도행적, 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행 5:1~11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는 이 놀랍고도 조금은 두려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그들이 자신의 행동 때문에 그 같은 심각한 결과를 맞이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사도행전 5:1~11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약속한 것에 대하여서 정직하고 신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며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에 대하여 정직하지 못한 결과를 맞았는데, 지체가 지체노릇 하기를 그쳤기 때문에 몸에서 떨어져나간 것이다.

➋ 목요일 소지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떻게 자신을 비우셨는지에 관한 내용을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원칙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합니까? 특히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적으로 부흥과 개혁을 추구할 때에 이 같은 자기 부정과 죽음이 매우 중요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 우리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께 굴복시켜야 한다. 자기를 부정하고 오직 주님의 일을 크게 하려는 정직한 마음으로 교회 일에 임하면 교회가 부흥하고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➌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운명을 가르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 토의해 보십시오.
※ 말이 적거나 많거나 진리를 들으면 곧 긍정적인 반응을 할 때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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