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과 증거와 봉사 : 부흥의 열매[교사들을위한강해식성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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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춘호 작성일13-07-20 08:14 조회4,538회 댓글0건첨부파일
- 04제 4과 증거와 봉사.hwp (80.0K) 85회 다운로드 DATE : 2013-07-20 08:14:31
본문
제 4과 증거와 봉사 : 부흥의 열매
7월 27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5분
연구 범위
마 28:19~20, 요 20:21, 행 2장, 행 22:1~14, 요 6:1~11, 행 8:26~38.
기억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도입)
영국 귀족이 인도의 한 영주에게 트럭을 선사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귀족은 영주가 사는 곳을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자기가 보내 준 트럭은 쓰지 않고 한쪽 구석에 세워둔 채, 여전히 소를 부려서 짐을 나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귀족은 트럭에 휘발유를 넣고 소들이 지고 있던 짐을 싣게 하고는 시운전을 해 보였다. 그랬더니 영주는 그제야 트럭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트럭 한 대는 소 수십 마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트럭이 있어도 휘발유가 들어가야 움직이지, 휘발유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휘발유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많다 할지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능력을 더해 주시고 지혜와 지식을 더해 주셔야,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나타나는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 사랑이 넘쳐난다. 표적과 기사가 따른다. 축복의 열매를 맺는다.
*신자들과 반생들이 서로 공부하도록 권합시다.
부흥의 목적은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주를 향한 사랑을 나누고자 열망하는 그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 심령을 채우는 것이다. 참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용서와 능력에 눈을 뜬다. 그분의 사랑에 매료되고 그분의 자비로 말미암아 변화를 경험한 결과 우리는 잠잠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오로지 영적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부흥은 핵심을 놓치고 만다. 또는 부흥이 개인적인 경건의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태도를 키운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흥이 마음의 변화보다 단지 외적인 행위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마음이 변하면 행동도 변한다. 자기중심, 자기만족, 자기찬양은 절대 진정한 부흥의 결과일 수 없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무아적인 관심이야말로 부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고 축복하고자 열망하게 된다. 진정으로 참된 부흥에는 선교와 봉사를 새롭게 강조하는 정신이 따른다.
결론 :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이타적인 삶과 증거는 예수님과 나누는 친밀한 경험의 결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을 구원하려는 미약한 시도보다 훨씬 포괄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삶을 변화시킨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구원하는 은혜의 대사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날(일) 그리스도의 마지막 분부와 약속
7월 21일
교사강해 1)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별로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 신자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헌신은 매우 저조할 뿐이다. 이것은 자신이 크리스천이 아니면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로’고 하신 주님의 대사명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내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수님께서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마 28:19)’고 하셨는데, 이 대사명을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마 28:18)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 이런 점에서 선교의 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에 감사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은 민주주의가 아닌 절대 전제 군주제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우리는 그 절대적인 권세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에 하나님을 포함시키기가 쉽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 우리가 포함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가난, 선교, 순교 그 무엇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 삶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자기들만 돌보라고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고별사는 교회의 사명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의도는 자기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의 빛과 구원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다음의 성경절을 읽고 요약하라. 각 성경절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핵심 소망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마 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막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눅 24:45~49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요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표징이 되어야 했다. 제자들은 사명이 있었고, 전해야 할 기별이 있었으며,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시작한 사업을 계속해야 했다.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되었으므로,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충만과 풍족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의 보고(寶庫)이므로 종국에는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위자들에게’(엡 3:10, 새번역)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사도행적, 9).
부가적용)
美 콜럼비아국제대학교 총장인 조지 머레이 박사(Dr. George Murray)는 “선교는 하나님의 백지 계획서에 먼저 서명부터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약의 권세는 헬라어로 ‘두나미스’다. 다이너마이트도 이 단어에서 유래 됐는데 폭발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는 ‘엑수시아’로 쓴다. 합법적인 권위를 의미한다. 도둑이 가진 총과 경찰관이 가진 총으로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선한 계획과 권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전 세계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리라는 마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길 바란다.
교훈 :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교회를 세우셨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예수님은 전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실까요?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인류의 구원은 예수님의 마음의 짐이다. 사도 바울은 젊은 동료 디모데에게 구주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딤전 2:4)하신다고 편지했다. 베드로도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벧후 3:9)신다고 덧붙였다.
| 적용 |
그대가 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목적 -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그 나라의 원칙을 드러내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분은 그들이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이 원칙을 드러내기 위하여 세상의 습관과 풍습과 관습에서 떠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도록 그들을 그분께로 가까이 이끌고자 하신다”(교회증언 6권, 9).
기도
아버지, 제게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주시고 진리의 빛을 비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를 복음의 도구와 복의 통로로 삼아 주셔서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날(월) 약속을 받음
7월 22일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교사강해 2)
옛날 목회자들에 비해 요즘 목회자들은 많이 배워서 지식이 많다. 하지만 의사가 수술은 잘 했는데 환자는 죽었다는 말이 있듯이 설교는 잘 했는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감동과 변화가 적다. 성령의 능력을 깊이 체험하지 못해 말씀이 생명으로 역사하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신학교에서 사변적인 신학만을 배웠지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도가 부족하면, 생동감 있는 영성의 체험이 부족하게 된다. 학문이 발전할수록 교회의 문이 닫힌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성령을 받아야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 실례이다. 목회자들의 기도와 목회자들의 더 깊은 영적인 체험이 중요하다.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라는 사명은 분명 이 작은 무리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장애는 많고 임무는 막중하였다. 제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명을 완수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인구는 최대 6~7천만으로 추산된다. 사도행전 1장에 따르면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인 제자의 수는 120명에 불과하다.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인 비율은 인구 50~58만 명당 한 명꼴이었다.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막연한 일이었다.
사도행전 2장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의 선교 사명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결과는 놀라웠다. 교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천 명이 회심하였다.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기별이 제국의 벽지까지 전파되었다.
서기 110년경 오늘날 터키 북쪽 해안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역의 총독이었던 작은 플리니우스(Plinius the Younger)는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고 처형하기 위한 재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재판에 회부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회부될 전망입니다. 도시뿐 아니라 지방 촌락까지 이 미신(기독교)에 감염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위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불과 몇 세대 만에 외딴 지역의 모든 계층에 기독교가 침투했음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90년이 흐른 서기 200년경,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법률가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 로마 재판장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서 “모든 도시의 대다수의 시민이 기독교인이다.”라고 자랑하였다.
부가적용)
미래에 비행사가 되기를 소원하는 두 학생이 있었다. 한 학생은 비행사가 되기 위해서 집에서 열심히 종이를 접었다. 다른 학생은 비행사가 되고 싶어서 항공대학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였다. 나중에 누가 비행사가 되었겠는가? 집에서 종이를 접은 학생이 아니라 당연히 항공대학에 가서 학습과 실전을 쌓은 학생이다. 학생들은 미래에 크리스천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 열심히 성경을 바탕으로 한 신앙과 탁월한 학문을 쌓으며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크리스천 교재와 커리큘럼은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위권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하는 수준 높은 교재이다. 특별히 크리스천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세상과 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빛으로 앞서서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미국의 크리스천 대학에서는 세상의 교재와 크리스천 교재를 같이 학습한다. 앞서서 세상을 바른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세상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 가장 탁월한 문화, 신앙, 역사, 학문이 있다. 크리스천은 이러한 세상을 앞서가는 탁월한 학문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교훈 : 영적으로 부흥된 백성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 교회의 역사는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영적 부흥은 열렬한 선교 활동과 어떤 관계일까요?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사도행전은 주를 위해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부흥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영적 부흥은 항상 열정적인 증거로 이어진다. 복음 전파는 변화된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우리가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를수록 그분의 관심은 우리의 관심이 된다. 만약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멀리서 따르고 있으며 개인적인 영적 부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적용 |
그대와 교회의 선교 열의를 고취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기 도
교회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 “오늘날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목적을 세상에 알리고자 당신의 교회를 사용하신다. …많은 곳에서 헌신한 남녀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확실하게 해 준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그들의 빛을 계속 비추이게 할 때 더욱더 많은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된다. 이리하여 이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것이다”(사도행적, 53~54).
기도
아버지, 우리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열의도 부족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우리를 소생시켜 주셔서 사도 교회처럼 선교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개인 간증의 힘
7월 23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교사강해 3)
우리는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많은 건국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단군신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신화 속에는 대부분 과장되거나 있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포장되어 있다. 사람이 아닌 신의 이야기는 대부분 실존론적으로는 가상과 허상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음에 틀림없다. 그 대표적인 예로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다. 그 시대에 사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이를 신의 또 다른 세계라 보는 사람은 거의 드물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너무나 친숙해서 신이라 불리면서도 인간과 거의 닮은꼴에 지나지 않는 그런 모습일 뿐이다. 종교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모든 출발은 신화일 수밖에 없다. 신화란 곧 신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접한 모든 이야기가 상상과 꾸며진 허구에 기초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읽는 사실에 기초한 진정한 신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신의 구원의 사건을 통해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을 사실로 증거 하시면서 진실한 신화, 참 하나님에 대한 참 신화를 접하게 하셨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실체를 나타내시어 제자들 자신들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고백할 수 있는 진정한 신화, 거짓이 없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인간이 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에서 인간의 참 능력은 시작되는 것이다.
종교 의식은 삶을 바꾸는 힘이 거의 없다. 종교적 형식주의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메마르게 한다. 교리만으로는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신약 교회의 힘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생애의 진실성에 기초해 있었다. 제자들의 삶은 연극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자인 것처럼 시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성은 가공된 영성이 아니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그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잠잠할 수 없었다.
바울과 요한이 그토록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공통적인 맥락이 흐르고 있는가?(행 22:1~14, 빌 3:1~7, 요일 1:1~4)
오순절에 제자들은 변화되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기에 성령께서는 그들을 통해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성령이 그들을 위해 중요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또한 그들과 함께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그들의 삶에서 성령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의 삶을 새롭게 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현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여기서 ‘믿다.’라는 말은 그리스어 ‘피스티스’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표면적인 믿음 또는 지적 동의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확고한 믿음 또는 확신에 찬 신뢰를 뜻한다. ‘피스티스’는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역동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을 말한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소하면 그 사랑은 우리 마음에서 넘쳐 주위 사람에게 흐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 어떤 것도 예수의 사랑에 잠긴 마음에서 샘솟는 간증을 대신하지 못한다.
부가적용)
간증은 사실에 기초한 개인적인 체험이며 가감할 수 없는 증거들이다. 이는 자기 체험의 고백이며 하나님께서 이를 증거 하시는 일이다. 믿는 것과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증거 하는 것은 성경의 주된 구성요소와 같다. 성령을 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병 고침을 받은 것에 대하여 간증하고, 위기를 면하게 된 은혜를 간증함으로 예수께 감사해야 한다. 이는 성령이 원하시는 일이며 주님이 요구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간증하는 신앙이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빛에 의해 산 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듯(마 5:14), 성도의 믿음과 착한 행실은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신앙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떠한 이익도 없다(약 2:14). 이는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약 2:17).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라도 스스로 예수 믿는 신분을 알리고 자신이 만난 예수를 증거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어 적극적으로 행할 것을 요구하신다. 신앙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간증하는 신앙운동이 일어날 때 교회가 부흥하고 자신의 신앙이 살아난다.
교훈 :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전파에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과 변화된 삶을 증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개인적으로 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간증이 있습니까?
2천 년이 흐르는 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이 기독교에 반응한 이유는 이 신앙이 살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종교는 의식이나 신학에 갇혀 있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켰고, 심지어 개인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을 강력하게 증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더욱 풍성해진다면 우리는 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적용 |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개인 간증을 아래에 요점만 적어 봅시다.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증인들 - “하나님의 미쁘심을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는 데 있어서 하늘이 선택한 수단이다. 우리는 옛날의 성인들을 통하여 알려진 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효력이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한 증언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 속에 있는 하늘의 능력의 역사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증인들이다”(시대의 소망, 347).
기도
아버지,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증언하는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
7월 24일
교사강해 4)
간증은 예수의 역사하심에 대한 참 증거로서 자신에게 베푸신 큰일을 사실대로 증거 해야 한다(마 12:36~37). 만약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랑삼아 하게 되면 이미 세상에서 그 상을 다 받아버린 것이다(마 6:2). 예수 믿는 사람은 그로 인한 체험을 혼자 독점해서는 안된다. 누구에게나 나누어 줌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행 12:7). 많은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해야 하며(마 10:7, 8),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인해 받은 체험을 성령의 힘으로 간증 할 때만이 그러한 역사가 다시 나타난다(행 10:44~46). 받은 은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막 9:28, 29).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인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모든 신체 기관과 근육과 조직은 운동을 통해 강화되고 활력을 얻는다. 운동을 게을리 하면 면역성이 떨어져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우리가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증언을 게을리할 때, 영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기 원하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믿음은 나누면서 더욱 강화된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믿음을 나누는 삶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주는가?(요
6:1~11)
우리가 믿음을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욱 배가된다. 배가의 법칙은 거룩한 영적 생명의 법칙이다. 주면 커지고, 움켜쥐면 작아진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작을지라도 그것을 다른 이에게 나눌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신다. 우리가 주위에 영적으로 굶주린 자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나누면, 그것은 우리 손에서 배가되어 결국 처음보다 훨씬 많게 된다.
예수님도 처음에는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처음보다 훨씬 많은 양이 남아 열두 바구니에 찼다. 신약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지시는 오해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증언은 부흥의 불씨를 오순절 불길로 일으키는 산들바람과 같다. 기도의 부흥과 말씀 연구가 전도와 봉사를 수반하지 않으면 부흥의 불길은 꺼지며, 숯은 식어 버릴 것이다.
부가적용)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래로 '인생이 무엇이냐?' 즉 인생에 대하여 계속 질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철학에서는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한 철학자가 한 명도 없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스승님! 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사람의 일도 미처 모르거늘 신의 일을 내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또 한 제자가 죽음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생을 아직 모르거늘 어찌 사(죽음)를 알리요'라고 했다. 공자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했기에 스승 중에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생명이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불교계의 거성 효봉 스님이 계셨다. 그 사람은 일제시대 조선인으로서는 따기 어려운 판사직책을 가졌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한 살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형을 집행한 뒤에 진범이 나타났다. 한 마디로 오판을 해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한 것이다. 효봉은 이 일에 양심의 가책이 되어 사표를 내던지고 삼천리강산을 유람했다. 드디어 묘양산에서 삭발을 하고 중이 되어 불도수업이 일취월장하여 드디어 불교계의 거성이 된 것뿐만 아니라 당시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이 효봉스님이 마지막 입적할 때(죽을 때)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던가? '인생은 무(無)다.'라는 외마디를 내뱉었다. 그때 함께 불교수련에 정진하던 친구들은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과연 큰 어른의 마지막 말씀이 다르다.'고 찬탄을 했다고 한다. 無(무)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면 뭐 때문에 고행을 자행하면서 도를 닦는가? 그러나 성경은 무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예수님은 요11: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이 영원히 다시 살 수 있다는 생명의 이야기, 영생의 이야기의 증언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삶이다. 우리의 성경의 지식과 말씀을 나눌수록 커지고 강화될 것이다.
교훈 : 오병이어가 나눌 때 더욱 풍성해졌던 것처럼 믿음은 사용할수록 더욱 강화되고 전할 때 더욱 성장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믿음을 나누는 데 얼마나 적극적입니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른 사실을 말해 줍니다. 소년은 단지 자신의 작은 도시락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5천 명을 만족시키셨습니다. 믿음이 아무리 작고 경험이 특별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전할 때, 주님은 큰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경험이 되고, 더 큰 믿음과 확신으로 남습니다.
| 적용 |
그대의 믿음을 누구에게 먼저 전하겠습니까? 아래에 순서대로 이름을 적어 봅시다.
영감의 교훈 기 도
받고 나눠 줌 -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저희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 아무리 지혜가 많고 아무리 경건한 마음을 가진 자라도 받을 때에만 줄 수 있다. 그들 자신으로서는 영혼의 필요를 조금도 공급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만을 공급할 수 있다. 계속 남에게 나눠 줄 때 우리는 계속해서 받는다. 나눠 줄수록 우리는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 우리는 항상 끊임없이 믿고 의지하고 받고 나눠 줄 수 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370).
기도
아버지, 제게 아직도 믿음을 전할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과 십자가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때에 하나님을 증언할 기회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다섯째날(목) 부흥, 증언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
7월 25일
교사강해 5)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이야기' 또는 '사도들의 전도기록'이란 뜻이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 전하라'는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이것은 주님의 최후의 명령이다. 사도행전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증인'이다. 사도행전 여기저기에 '우리는 증인이다.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도 증인된 자들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주제가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이다. 여기서 증인이란 말은 헬라어로 '마르투스'인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 순교자'로 번역되어 있다. 증인이란 법정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증언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법률용어인데 이 용어가 초대교회 당시에는 성도들이 예수를 전하다가 처형당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순교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죽음을 자원하는 순교자가 된 것'이다. 잠14:25절에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고 했다. 우리는 진실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급성장한 신약 교회의 이야기는 부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했던 교회의 이야기이며, 때마다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증언은 초기 신자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오히려 박해는 복음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예루살렘 교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행 8:4)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빌립과 에티오피아 관리와의 만남이었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무엇을 권했고, 그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행 8:26~38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부흥과 증언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한 천사가 빛을 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빌립을 인도한 것처럼, 오늘날도 천사들은 성령께서 저희 혀를 성화시키고 그 마음을 정련하고 고상하게 하도록 허락하는 일꾼들의 발걸음을 인도할 것이다. 빌립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천사 자신이 에티오피아 사람을 위해 일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인간들이 동료 인간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다”(사도행적, 109).
부흥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기도, 말씀 연구 그리고 증언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열렬하게 그분을 찾고, 진심으로 중보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정신을 가득 채우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전할 때에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진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예기치 않은 문을 열어 주신다.
부가적용)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있었다. 20대에 논문 통과로 박사 학위 심사위원들이 논문을 심사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청혼해 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진찰 결과가 아주 충격적이다. '당신의 생명은 단 15분 남았습니다.' 5분이 지나갔다. 초조했다. 이 때 전보 한 통이 날라 왔다. '억만장자 삼촌이 방금 운명하셨습니다. 재산 상속자는 당신뿐입니다. 와서 재산 상속 절차를 밟으시오' 10분이 남은 인생에게 억만장자는 소용이 없었다. 2분이 또 흘렀다. 이제 8분 남았는데 또 전보가 날라 왔다. 애타게 기다리던 애인이 보낸 전보였다. '당신의 청혼을 승낙합니다.' 이제 12분이 지나고 3분 남았다. 세 번째 전보가 날아왔다.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세 전보는 이 청년이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이었지만 그러나 죽음 앞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영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우리의 죽음의 그늘에서 영원한 삶을 얻는 생명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고 하셨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시급한 영혼이 많이 있다. 오늘 전도하지 않으면 영원한 사망으로 떨어질 영혼들이 많이 있다. 교회가 이 땅위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교회가 교회로써 해야 할 가장 큰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 구원'하는 일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길과 산울가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신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고 하신다. 이상의 말씀들을 보면 '전도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명령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이다. 주님의 부탁이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모든 성도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교훈 : 우리가 부흥을 경험하고 열렬하고 진지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
파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전도의 길을 열어 주신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증언의 기회가 올 때, 그대는 어떻게 하십니까?
증언의 기회를 활용하든지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로 기회를 회피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물론 우리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증언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불편하게 여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피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습관적으로 증언을 기피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크게 각성하고 생활을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적용 |
그대는 현재 누구에게 믿음을 나누기 원하며, 그대가 그에게 다가갈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기를 바랍니까?
영감의 교훈 기 도
오랫동안 고대해 오신 하나님 - “온 교회가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능력에 따라 그분을 위해 일하게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고대해 오셨다.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필요한 분야에 들어가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할 때에, 온 세계는 오래지 아니하여 경고를 받게 될 것이고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될 것이다”(사도행적, 111).
기도
아버지, 그동안 저에게 허락된 무수한 기회를 버린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앞으로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저의 작은 발걸음에 함께해 주셔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7월 27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5분
연구 범위
마 28:19~20, 요 20:21, 행 2장, 행 22:1~14, 요 6:1~11, 행 8:26~38.
기억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도입)
영국 귀족이 인도의 한 영주에게 트럭을 선사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귀족은 영주가 사는 곳을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자기가 보내 준 트럭은 쓰지 않고 한쪽 구석에 세워둔 채, 여전히 소를 부려서 짐을 나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귀족은 트럭에 휘발유를 넣고 소들이 지고 있던 짐을 싣게 하고는 시운전을 해 보였다. 그랬더니 영주는 그제야 트럭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트럭 한 대는 소 수십 마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트럭이 있어도 휘발유가 들어가야 움직이지, 휘발유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휘발유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많다 할지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능력을 더해 주시고 지혜와 지식을 더해 주셔야,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나타나는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 사랑이 넘쳐난다. 표적과 기사가 따른다. 축복의 열매를 맺는다.
*신자들과 반생들이 서로 공부하도록 권합시다.
부흥의 목적은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주를 향한 사랑을 나누고자 열망하는 그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 심령을 채우는 것이다. 참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용서와 능력에 눈을 뜬다. 그분의 사랑에 매료되고 그분의 자비로 말미암아 변화를 경험한 결과 우리는 잠잠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오로지 영적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부흥은 핵심을 놓치고 만다. 또는 부흥이 개인적인 경건의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태도를 키운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흥이 마음의 변화보다 단지 외적인 행위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마음이 변하면 행동도 변한다. 자기중심, 자기만족, 자기찬양은 절대 진정한 부흥의 결과일 수 없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무아적인 관심이야말로 부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고 축복하고자 열망하게 된다. 진정으로 참된 부흥에는 선교와 봉사를 새롭게 강조하는 정신이 따른다.
결론 :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이타적인 삶과 증거는 예수님과 나누는 친밀한 경험의 결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을 구원하려는 미약한 시도보다 훨씬 포괄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삶을 변화시킨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구원하는 은혜의 대사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날(일) 그리스도의 마지막 분부와 약속
7월 21일
교사강해 1)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별로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자신도 스스로 신자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헌신은 매우 저조할 뿐이다. 이것은 자신이 크리스천이 아니면서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로’고 하신 주님의 대사명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내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수님께서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마 28:19)’고 하셨는데, 이 대사명을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마 28:18)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 이런 점에서 선교의 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에 감사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은 민주주의가 아닌 절대 전제 군주제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우리는 그 절대적인 권세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에 하나님을 포함시키기가 쉽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 우리가 포함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가난, 선교, 순교 그 무엇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 삶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자기들만 돌보라고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고별사는 교회의 사명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의도는 자기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의 빛과 구원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다음의 성경절을 읽고 요약하라. 각 성경절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핵심 소망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마 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막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눅 24:45~49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요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표징이 되어야 했다. 제자들은 사명이 있었고, 전해야 할 기별이 있었으며,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시작한 사업을 계속해야 했다.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되었으므로,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충만과 풍족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의 보고(寶庫)이므로 종국에는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위자들에게’(엡 3:10, 새번역)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사도행적, 9).
부가적용)
美 콜럼비아국제대학교 총장인 조지 머레이 박사(Dr. George Murray)는 “선교는 하나님의 백지 계획서에 먼저 서명부터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약의 권세는 헬라어로 ‘두나미스’다. 다이너마이트도 이 단어에서 유래 됐는데 폭발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는 ‘엑수시아’로 쓴다. 합법적인 권위를 의미한다. 도둑이 가진 총과 경찰관이 가진 총으로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선한 계획과 권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전 세계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리라는 마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길 바란다.
교훈 :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교회를 세우셨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예수님은 전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실까요?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인류의 구원은 예수님의 마음의 짐이다. 사도 바울은 젊은 동료 디모데에게 구주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딤전 2:4)하신다고 편지했다. 베드로도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벧후 3:9)신다고 덧붙였다.
| 적용 |
그대가 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목적 -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그 나라의 원칙을 드러내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분은 그들이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이 원칙을 드러내기 위하여 세상의 습관과 풍습과 관습에서 떠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도록 그들을 그분께로 가까이 이끌고자 하신다”(교회증언 6권, 9).
기도
아버지, 제게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주시고 진리의 빛을 비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를 복음의 도구와 복의 통로로 삼아 주셔서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날(월) 약속을 받음
7월 22일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교사강해 2)
옛날 목회자들에 비해 요즘 목회자들은 많이 배워서 지식이 많다. 하지만 의사가 수술은 잘 했는데 환자는 죽었다는 말이 있듯이 설교는 잘 했는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감동과 변화가 적다. 성령의 능력을 깊이 체험하지 못해 말씀이 생명으로 역사하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신학교에서 사변적인 신학만을 배웠지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도가 부족하면, 생동감 있는 영성의 체험이 부족하게 된다. 학문이 발전할수록 교회의 문이 닫힌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성령을 받아야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 실례이다. 목회자들의 기도와 목회자들의 더 깊은 영적인 체험이 중요하다.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라는 사명은 분명 이 작은 무리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장애는 많고 임무는 막중하였다. 제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명을 완수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인구는 최대 6~7천만으로 추산된다. 사도행전 1장에 따르면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인 제자의 수는 120명에 불과하다.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인 비율은 인구 50~58만 명당 한 명꼴이었다.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막연한 일이었다.
사도행전 2장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의 선교 사명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결과는 놀라웠다. 교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천 명이 회심하였다.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기별이 제국의 벽지까지 전파되었다.
서기 110년경 오늘날 터키 북쪽 해안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역의 총독이었던 작은 플리니우스(Plinius the Younger)는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고 처형하기 위한 재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재판에 회부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회부될 전망입니다. 도시뿐 아니라 지방 촌락까지 이 미신(기독교)에 감염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위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불과 몇 세대 만에 외딴 지역의 모든 계층에 기독교가 침투했음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90년이 흐른 서기 200년경,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법률가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 로마 재판장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서 “모든 도시의 대다수의 시민이 기독교인이다.”라고 자랑하였다.
부가적용)
미래에 비행사가 되기를 소원하는 두 학생이 있었다. 한 학생은 비행사가 되기 위해서 집에서 열심히 종이를 접었다. 다른 학생은 비행사가 되고 싶어서 항공대학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였다. 나중에 누가 비행사가 되었겠는가? 집에서 종이를 접은 학생이 아니라 당연히 항공대학에 가서 학습과 실전을 쌓은 학생이다. 학생들은 미래에 크리스천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 열심히 성경을 바탕으로 한 신앙과 탁월한 학문을 쌓으며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크리스천 교재와 커리큘럼은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위권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하는 수준 높은 교재이다. 특별히 크리스천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세상과 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빛으로 앞서서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미국의 크리스천 대학에서는 세상의 교재와 크리스천 교재를 같이 학습한다. 앞서서 세상을 바른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세상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 가장 탁월한 문화, 신앙, 역사, 학문이 있다. 크리스천은 이러한 세상을 앞서가는 탁월한 학문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교훈 : 영적으로 부흥된 백성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 교회의 역사는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영적 부흥은 열렬한 선교 활동과 어떤 관계일까요?
(왼쪽 페이지에 이어서) 사도행전은 주를 위해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부흥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영적 부흥은 항상 열정적인 증거로 이어진다. 복음 전파는 변화된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우리가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를수록 그분의 관심은 우리의 관심이 된다. 만약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멀리서 따르고 있으며 개인적인 영적 부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적용 |
그대와 교회의 선교 열의를 고취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기 도
교회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 “오늘날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목적을 세상에 알리고자 당신의 교회를 사용하신다. …많은 곳에서 헌신한 남녀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확실하게 해 준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그들의 빛을 계속 비추이게 할 때 더욱더 많은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된다. 이리하여 이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것이다”(사도행적, 53~54).
기도
아버지, 우리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열의도 부족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우리를 소생시켜 주셔서 사도 교회처럼 선교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날(화) 개인 간증의 힘
7월 23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교사강해 3)
우리는 각 나라마다 존재하는 많은 건국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단군신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신화 속에는 대부분 과장되거나 있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포장되어 있다. 사람이 아닌 신의 이야기는 대부분 실존론적으로는 가상과 허상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음에 틀림없다. 그 대표적인 예로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다. 그 시대에 사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이를 신의 또 다른 세계라 보는 사람은 거의 드물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너무나 친숙해서 신이라 불리면서도 인간과 거의 닮은꼴에 지나지 않는 그런 모습일 뿐이다. 종교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모든 출발은 신화일 수밖에 없다. 신화란 곧 신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접한 모든 이야기가 상상과 꾸며진 허구에 기초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읽는 사실에 기초한 진정한 신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신의 구원의 사건을 통해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을 사실로 증거 하시면서 진실한 신화, 참 하나님에 대한 참 신화를 접하게 하셨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실체를 나타내시어 제자들 자신들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고백할 수 있는 진정한 신화, 거짓이 없는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인간이 인격적인 예수 그리스도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에서 인간의 참 능력은 시작되는 것이다.
종교 의식은 삶을 바꾸는 힘이 거의 없다. 종교적 형식주의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메마르게 한다. 교리만으로는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신약 교회의 힘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생애의 진실성에 기초해 있었다. 제자들의 삶은 연극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자인 것처럼 시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성은 가공된 영성이 아니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그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잠잠할 수 없었다.
바울과 요한이 그토록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공통적인 맥락이 흐르고 있는가?(행 22:1~14, 빌 3:1~7, 요일 1:1~4)
오순절에 제자들은 변화되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기에 성령께서는 그들을 통해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성령이 그들을 위해 중요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또한 그들과 함께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그들의 삶에서 성령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의 삶을 새롭게 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현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여기서 ‘믿다.’라는 말은 그리스어 ‘피스티스’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표면적인 믿음 또는 지적 동의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확고한 믿음 또는 확신에 찬 신뢰를 뜻한다. ‘피스티스’는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역동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을 말한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소하면 그 사랑은 우리 마음에서 넘쳐 주위 사람에게 흐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 어떤 것도 예수의 사랑에 잠긴 마음에서 샘솟는 간증을 대신하지 못한다.
부가적용)
간증은 사실에 기초한 개인적인 체험이며 가감할 수 없는 증거들이다. 이는 자기 체험의 고백이며 하나님께서 이를 증거 하시는 일이다. 믿는 것과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증거 하는 것은 성경의 주된 구성요소와 같다. 성령을 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간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병 고침을 받은 것에 대하여 간증하고, 위기를 면하게 된 은혜를 간증함으로 예수께 감사해야 한다. 이는 성령이 원하시는 일이며 주님이 요구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간증하는 신앙이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빛에 의해 산 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듯(마 5:14), 성도의 믿음과 착한 행실은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신앙은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떠한 이익도 없다(약 2:14). 이는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약 2:17).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라도 스스로 예수 믿는 신분을 알리고 자신이 만난 예수를 증거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어 적극적으로 행할 것을 요구하신다. 신앙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간증하는 신앙운동이 일어날 때 교회가 부흥하고 자신의 신앙이 살아난다.
교훈 :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전파에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과 변화된 삶을 증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개인적으로 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간증이 있습니까?
2천 년이 흐르는 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이 기독교에 반응한 이유는 이 신앙이 살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종교는 의식이나 신학에 갇혀 있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켰고, 심지어 개인들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을 강력하게 증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더욱 풍성해진다면 우리는 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적용 |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개인 간증을 아래에 요점만 적어 봅시다.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증인들 - “하나님의 미쁘심을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는 데 있어서 하늘이 선택한 수단이다. 우리는 옛날의 성인들을 통하여 알려진 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효력이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한 증언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 속에 있는 하늘의 능력의 역사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증인들이다”(시대의 소망, 347).
기도
아버지,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넷째날(수) 증언하는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
7월 24일
교사강해 4)
간증은 예수의 역사하심에 대한 참 증거로서 자신에게 베푸신 큰일을 사실대로 증거 해야 한다(마 12:36~37). 만약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랑삼아 하게 되면 이미 세상에서 그 상을 다 받아버린 것이다(마 6:2). 예수 믿는 사람은 그로 인한 체험을 혼자 독점해서는 안된다. 누구에게나 나누어 줌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행 12:7). 많은 사람을 긍휼히 여김으로 해야 하며(마 10:7, 8),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인해 받은 체험을 성령의 힘으로 간증 할 때만이 그러한 역사가 다시 나타난다(행 10:44~46). 받은 은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막 9:28, 29).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인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모든 신체 기관과 근육과 조직은 운동을 통해 강화되고 활력을 얻는다. 운동을 게을리 하면 면역성이 떨어져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우리가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증언을 게을리할 때, 영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기 원하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믿음은 나누면서 더욱 강화된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믿음을 나누는 삶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주는가?(요
6:1~11)
우리가 믿음을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욱 배가된다. 배가의 법칙은 거룩한 영적 생명의 법칙이다. 주면 커지고, 움켜쥐면 작아진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작을지라도 그것을 다른 이에게 나눌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신다. 우리가 주위에 영적으로 굶주린 자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나누면, 그것은 우리 손에서 배가되어 결국 처음보다 훨씬 많게 된다.
예수님도 처음에는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처음보다 훨씬 많은 양이 남아 열두 바구니에 찼다. 신약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지시는 오해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증언은 부흥의 불씨를 오순절 불길로 일으키는 산들바람과 같다. 기도의 부흥과 말씀 연구가 전도와 봉사를 수반하지 않으면 부흥의 불길은 꺼지며, 숯은 식어 버릴 것이다.
부가적용)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래로 '인생이 무엇이냐?' 즉 인생에 대하여 계속 질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철학에서는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한 철학자가 한 명도 없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스승님! 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사람의 일도 미처 모르거늘 신의 일을 내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또 한 제자가 죽음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생을 아직 모르거늘 어찌 사(죽음)를 알리요'라고 했다. 공자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했기에 스승 중에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생명이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불교계의 거성 효봉 스님이 계셨다. 그 사람은 일제시대 조선인으로서는 따기 어려운 판사직책을 가졌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한 살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형을 집행한 뒤에 진범이 나타났다. 한 마디로 오판을 해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한 것이다. 효봉은 이 일에 양심의 가책이 되어 사표를 내던지고 삼천리강산을 유람했다. 드디어 묘양산에서 삭발을 하고 중이 되어 불도수업이 일취월장하여 드디어 불교계의 거성이 된 것뿐만 아니라 당시 젊은이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이 효봉스님이 마지막 입적할 때(죽을 때)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던가? '인생은 무(無)다.'라는 외마디를 내뱉었다. 그때 함께 불교수련에 정진하던 친구들은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과연 큰 어른의 마지막 말씀이 다르다.'고 찬탄을 했다고 한다. 無(무)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면 뭐 때문에 고행을 자행하면서 도를 닦는가? 그러나 성경은 무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예수님은 요11: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이 영원히 다시 살 수 있다는 생명의 이야기, 영생의 이야기의 증언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삶이다. 우리의 성경의 지식과 말씀을 나눌수록 커지고 강화될 것이다.
교훈 : 오병이어가 나눌 때 더욱 풍성해졌던 것처럼 믿음은 사용할수록 더욱 강화되고 전할 때 더욱 성장한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믿음을 나누는 데 얼마나 적극적입니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른 사실을 말해 줍니다. 소년은 단지 자신의 작은 도시락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5천 명을 만족시키셨습니다. 믿음이 아무리 작고 경험이 특별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전할 때, 주님은 큰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경험이 되고, 더 큰 믿음과 확신으로 남습니다.
| 적용 |
그대의 믿음을 누구에게 먼저 전하겠습니까? 아래에 순서대로 이름을 적어 봅시다.
영감의 교훈 기 도
받고 나눠 줌 -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저희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 아무리 지혜가 많고 아무리 경건한 마음을 가진 자라도 받을 때에만 줄 수 있다. 그들 자신으로서는 영혼의 필요를 조금도 공급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만을 공급할 수 있다. 계속 남에게 나눠 줄 때 우리는 계속해서 받는다. 나눠 줄수록 우리는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 우리는 항상 끊임없이 믿고 의지하고 받고 나눠 줄 수 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370).
기도
아버지, 제게 아직도 믿음을 전할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과 십자가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때에 하나님을 증언할 기회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다섯째날(목) 부흥, 증언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
7월 25일
교사강해 5)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이야기' 또는 '사도들의 전도기록'이란 뜻이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 전하라'는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이것은 주님의 최후의 명령이다. 사도행전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증인'이다. 사도행전 여기저기에 '우리는 증인이다.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도 증인된 자들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주제가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이다. 여기서 증인이란 말은 헬라어로 '마르투스'인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제자, 순교자'로 번역되어 있다. 증인이란 법정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증언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법률용어인데 이 용어가 초대교회 당시에는 성도들이 예수를 전하다가 처형당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순교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죽음을 자원하는 순교자가 된 것'이다. 잠14:25절에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고 했다. 우리는 진실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급성장한 신약 교회의 이야기는 부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했던 교회의 이야기이며, 때마다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증언은 초기 신자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오히려 박해는 복음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예루살렘 교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행 8:4)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빌립과 에티오피아 관리와의 만남이었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무엇을 권했고, 그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행 8:26~38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부흥과 증언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한 천사가 빛을 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빌립을 인도한 것처럼, 오늘날도 천사들은 성령께서 저희 혀를 성화시키고 그 마음을 정련하고 고상하게 하도록 허락하는 일꾼들의 발걸음을 인도할 것이다. 빌립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천사 자신이 에티오피아 사람을 위해 일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인간들이 동료 인간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다”(사도행적, 109).
부흥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기도, 말씀 연구 그리고 증언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열렬하게 그분을 찾고, 진심으로 중보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정신을 가득 채우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전할 때에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진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예기치 않은 문을 열어 주신다.
부가적용)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있었다. 20대에 논문 통과로 박사 학위 심사위원들이 논문을 심사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청혼해 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진찰 결과가 아주 충격적이다. '당신의 생명은 단 15분 남았습니다.' 5분이 지나갔다. 초조했다. 이 때 전보 한 통이 날라 왔다. '억만장자 삼촌이 방금 운명하셨습니다. 재산 상속자는 당신뿐입니다. 와서 재산 상속 절차를 밟으시오' 10분이 남은 인생에게 억만장자는 소용이 없었다. 2분이 또 흘렀다. 이제 8분 남았는데 또 전보가 날라 왔다. 애타게 기다리던 애인이 보낸 전보였다. '당신의 청혼을 승낙합니다.' 이제 12분이 지나고 3분 남았다. 세 번째 전보가 날아왔다.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세 전보는 이 청년이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이었지만 그러나 죽음 앞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영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우리의 죽음의 그늘에서 영원한 삶을 얻는 생명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고 하셨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시급한 영혼이 많이 있다. 오늘 전도하지 않으면 영원한 사망으로 떨어질 영혼들이 많이 있다. 교회가 이 땅위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교회가 교회로써 해야 할 가장 큰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 구원'하는 일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길과 산울가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신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고 하신다. 이상의 말씀들을 보면 '전도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명령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이다. 주님의 부탁이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모든 성도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교훈 : 우리가 부흥을 경험하고 열렬하고 진지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
파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전도의 길을 열어 주신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증언의 기회가 올 때, 그대는 어떻게 하십니까?
증언의 기회를 활용하든지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로 기회를 회피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물론 우리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증언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불편하게 여길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피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습관적으로 증언을 기피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크게 각성하고 생활을 개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적용 |
그대는 현재 누구에게 믿음을 나누기 원하며, 그대가 그에게 다가갈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기를 바랍니까?
영감의 교훈 기 도
오랫동안 고대해 오신 하나님 - “온 교회가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능력에 따라 그분을 위해 일하게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고대해 오셨다.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필요한 분야에 들어가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할 때에, 온 세계는 오래지 아니하여 경고를 받게 될 것이고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될 것이다”(사도행적, 111).
기도
아버지, 그동안 저에게 허락된 무수한 기회를 버린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앞으로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저의 작은 발걸음에 함께해 주셔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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