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과 말씀: 부흥의 기초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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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3-07-09 10:38 조회4,069회 댓글0건첨부파일
- 제 3 과 말씀.hwp (29.5K) 149회 다운로드 DATE : 2013-07-09 10: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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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말씀: 부흥의 기초
기억절:“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시119:154)
첫째 날(일) 말씀으로 다시 살아남
*도입질문: 말씀으로 삶의 고난을 이길 힘을 얻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성경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요5:39) 성경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한 채 성경의 지식만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처럼 예수님은 마음 밖에 거절한 채 부자라고 오판하는 모습이 됩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 당시에 성경 박사였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 율법사들이 성경대로 알고 있었고, 성경대로 살고 있었지만 정작 그 성경을 말씀하신 예수님과는 늘 충돌이 일어나고 반대 입장에 섰던 모습입니다.
성경을 글자대로만 지식으로 받아들였을 뿐,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거나, 말씀으로 삶의 고난을 이길 힘을 얻었다는 말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에 함께 하시는 자신의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확신할 때 이루어집니다.(마15:21-28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품성을 믿었기에 예수님의 말이나 태도에 상처 받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의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고 그 품성에 감동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력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요6:63)
둘째 날(월) 창조의 힘이 있는 말씀
*도입질문: 성경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는 이유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 중 하나가 말씀입니다.(요1:1) 말씀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이 생명 그 자체이시므로 곧바로 에너지가 되어 물질을 이루십니다.(시33:9)
생명이신 분만 생명체를 창조하시고 생명에너지(생기, 생명)를 불어 넣으실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생명이신 하나님을 만날 때만 그 하나님을 통해 생명에너지가 전달됩니다.
생명과 동의어는 사랑입니다.(요14:6과 요일4:16 비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일 때만 사단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몰아내고(요일4:18)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생명이 됩니다.(요일5:11-12)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발견하게 될 때 그 사랑에너지가 곧 생명에너지가 되어 나의 몸을 회복시키고 치유하며 재창조합니다.(말4:2)
셋째 날(화) 예수와 말씀
*도입질문: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경험했던 진정한 부흥을 어디서 온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함으로 근심 속에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명의 제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눅24:37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품성을 드러내어 주고,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통해 예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여줌으로, 예수님이 오시고자 하셨던 메시야이며 구원자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면 고난과 죽음도 당하지만 부활하실 것에 대한 믿음도 갖게 되었기에, 드디어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마음속에 있었던 뜨거웠던 경험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동이 몰려왔고 그 감동으로 인해 마음에 생명력을 느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글자 자체는 지식만을 전달할 뿐이며 지속적인 감동을 갖게 하지 못하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느끼게 될 때 지속적인 감동과 생명력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절대적 사랑을 발견하고 받게 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됩니다.
말씀을 통해 말씀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볼 때 감동이 오고 감동할 때 생명력 충만케 됩니다.(요5:39-40)
넷째 날(수) 부흥, 믿음 그리고 말씀
*도입질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말씀이 읽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게 되면 처음 알게 된 지식이라면 놀람과 깨달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은 같은 것을 반복하여 듣게 된다면 다 듣기도 전에 무슨 말씀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감동이 오지 못합니다.
다만 지식은 교만에 빠지게 합니다.(고전8:1) 그래서 내가 가진 지식의 옳고 그름을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게 됩니다. 말씀을 말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뜻에 의미가 있고 뜻은 그 말씀을 하신 분의 품성을 알게 될 때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을 하신 분의 품성을 보게 될 때 그 분을 신뢰하게 되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때 감사함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받아들이게 될 때 그 말씀대로 따르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그 사람을 행동하게 만듭니다.
성령하나님 만이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해 주심으로 우리는 성경을 읽은 때에 성령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고전2:10)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될 때 그분의 사랑에 끌리게 되며 신뢰 관계가 형성됩니다.
다섯째 날(목) 말씀: 부흥의 안내자이자 보호자
*도입질문: 문화적으로 복음의 융성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통해 부흥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고, 그 존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 시킨 아담의 영향력으로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사단의 영향력 아래 태어나고 살고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 태어난 존재들이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비록 사단의 영향력으로 우상숭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그 문화에 지속적으로 감화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의 존재론적 입장대로 생명의 활력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확신해야 감동과 함께 생명에너지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생명에너지가 충만해야 부흥이 일어나고 내적 부흥이 일어날 때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나의 잘 못된 것들에 대하여 개혁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말씀의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 속에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원자로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그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을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품성)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호6:3) 그것이 바로 생명을 아는 일이고 생명이며 영생입니다.(요17:3)
기억절:“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시119:154)
첫째 날(일) 말씀으로 다시 살아남
*도입질문: 말씀으로 삶의 고난을 이길 힘을 얻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성경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요5:39) 성경이 가리키는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한 채 성경의 지식만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처럼 예수님은 마음 밖에 거절한 채 부자라고 오판하는 모습이 됩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 당시에 성경 박사였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 율법사들이 성경대로 알고 있었고, 성경대로 살고 있었지만 정작 그 성경을 말씀하신 예수님과는 늘 충돌이 일어나고 반대 입장에 섰던 모습입니다.
성경을 글자대로만 지식으로 받아들였을 뿐,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거나, 말씀으로 삶의 고난을 이길 힘을 얻었다는 말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에 함께 하시는 자신의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확신할 때 이루어집니다.(마15:21-28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품성을 믿었기에 예수님의 말이나 태도에 상처 받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의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고 그 품성에 감동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력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요6:63)
둘째 날(월) 창조의 힘이 있는 말씀
*도입질문: 성경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는 이유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 중 하나가 말씀입니다.(요1:1) 말씀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하나님이 생명 그 자체이시므로 곧바로 에너지가 되어 물질을 이루십니다.(시33:9)
생명이신 분만 생명체를 창조하시고 생명에너지(생기, 생명)를 불어 넣으실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생명이신 하나님을 만날 때만 그 하나님을 통해 생명에너지가 전달됩니다.
생명과 동의어는 사랑입니다.(요14:6과 요일4:16 비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일 때만 사단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몰아내고(요일4:18)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생명이 됩니다.(요일5:11-12)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발견하게 될 때 그 사랑에너지가 곧 생명에너지가 되어 나의 몸을 회복시키고 치유하며 재창조합니다.(말4:2)
셋째 날(화) 예수와 말씀
*도입질문: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경험했던 진정한 부흥을 어디서 온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함으로 근심 속에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명의 제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기 위한 예수님의 방법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눅24:37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품성을 드러내어 주고,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통해 예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보여줌으로, 예수님이 오시고자 하셨던 메시야이며 구원자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면 고난과 죽음도 당하지만 부활하실 것에 대한 믿음도 갖게 되었기에, 드디어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마음속에 있었던 뜨거웠던 경험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볼 때에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동이 몰려왔고 그 감동으로 인해 마음에 생명력을 느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글자 자체는 지식만을 전달할 뿐이며 지속적인 감동을 갖게 하지 못하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느끼게 될 때 지속적인 감동과 생명력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절대적 사랑을 발견하고 받게 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됩니다.
말씀을 통해 말씀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볼 때 감동이 오고 감동할 때 생명력 충만케 됩니다.(요5:39-40)
넷째 날(수) 부흥, 믿음 그리고 말씀
*도입질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말씀이 읽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게 되면 처음 알게 된 지식이라면 놀람과 깨달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은 같은 것을 반복하여 듣게 된다면 다 듣기도 전에 무슨 말씀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감동이 오지 못합니다.
다만 지식은 교만에 빠지게 합니다.(고전8:1) 그래서 내가 가진 지식의 옳고 그름을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게 됩니다. 말씀을 말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뜻에 의미가 있고 뜻은 그 말씀을 하신 분의 품성을 알게 될 때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을 하신 분의 품성을 보게 될 때 그 분을 신뢰하게 되는 마음이 만들어지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때 감사함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받아들이게 될 때 그 말씀대로 따르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그 사람을 행동하게 만듭니다.
성령하나님 만이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해 주심으로 우리는 성경을 읽은 때에 성령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고전2:10)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알게 될 때 그분의 사랑에 끌리게 되며 신뢰 관계가 형성됩니다.
다섯째 날(목) 말씀: 부흥의 안내자이자 보호자
*도입질문: 문화적으로 복음의 융성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통해 부흥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고, 그 존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 시킨 아담의 영향력으로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사단의 영향력 아래 태어나고 살고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로 인해 태어난 존재들이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비록 사단의 영향력으로 우상숭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그 문화에 지속적으로 감화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의 존재론적 입장대로 생명의 활력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확신해야 감동과 함께 생명에너지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생명에너지가 충만해야 부흥이 일어나고 내적 부흥이 일어날 때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나의 잘 못된 것들에 대하여 개혁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말씀의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 속에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원자로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그것이 바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을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품성)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호6:3) 그것이 바로 생명을 아는 일이고 생명이며 영생입니다.(요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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