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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우리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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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11-15 06:23 조회9,40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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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7분

기억절 :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히 8:1~2).

연구 범위: 시 110:1~5, 창 14:18~20, 히 7:1~3, 롬 8:31~34, 딤전 2:4~6, 히 8:6, 히 2:17~18, 히 3:6, 히 10:1~14.

부활하여 하늘 성소로 승천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의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셨다(히 2:17). 자신의 희생으로 필수적인 요구를 성취하신 그분은 제사장으로 즉위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완전한 희생을 가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피로 씻음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중보하는 제사장 봉사를 시작하셨다.
이번 주 우리는 예수님의 매일의 봉사와 그것의 실천적인 영향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자신의 희생의 공덕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봉사하시면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계신 예수님에 대하여 알 때 우리는 큰 위로를 얻는다. 성소 기별은 가장 연약한 신자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준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중보 사역에 대하여 배운다.
➋ 느끼기 : 예수님이 중보하시는 죄인들에 대하여 사랑의 마음을 가진다.
➌ 행하기 :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도와주고, 구원하며, 사탄의 고소로부터 그들을 옹
호하시는 동안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A.
❷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하늘 대제사장으로서 갖추셔야 할 자격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범사에 사람과 같이 되시고 인간을 위하여 행하신 대속적 희생과 또 사람으로서 부활하여 승천하셔야 한다.
❸ 지상 제사장들의 봉사와 그분의 봉사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사람 제사장들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속죄도 해야 하고 또 짐승의 희생으로는 실제로 죄를 사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흠이 없으시고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야할 연약한 것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분의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루시고 다시는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하셨다.
❹ 주님이 단번에 베푸신 놀라운 속죄의 능력을 우리는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 우리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생활로 본을 보이며 성소의 확실한 진리를 알아서 바르게 증거해야 할 것이다.

B.
❷ 우리가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분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 승천하신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행17:31, 고전15:13~19 참고)
❸ 우리가 하늘 법정에 설 때, 우리는 예수님께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 예수님은 전적으로 우리의 변호사로 우리를 대신하신 자기의 희생과 봉사를 주장하신다.
❹ 우리가 주님의 중보를 굳게 확신하려면 그분과 어떻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을 따라 살면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 : 우리의 과거를 위한 그리스도의 크신 희생과 우리의 현재를 위한 매일의 중보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영적으로 안전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미래가 그분의 손에 맡겨져 있기에 미래도 보장됩니다.


첫째 날(일) 11월 17일
우리의 대제사장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히 5:6).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신약 성경은 히브리서이다. 히브리서의 구약적인 골격은 시편 110편에서 인용한 두 성경절로 구성된다. 1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음으로 만물 위에 뛰어남을 확증하기 위해 인용되었다. 이는 히브리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주제로서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야 되심을 강조한다(히 1:3, 4:14, 7:26, 8:1, 12:2). 시 110:4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멜기세덱으로부터 예표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히 5:6).

1.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셨는가? 창 14:18~20과 시 110:4과 히 7:1~3을 비교하라.
[창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시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7:1~3]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답: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로 대제사장이 되었다. 멜기세덱은 이런 예수님의 표상적 인물이다. 그의 이름과 지위는 예수님의 신분을 잘 표상한다.

성경에는 멜기세덱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과 비슷한 점이 많다. 멜기세덱은 살렘 성의 왕이다(살렘은 ‘평화’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는 ‘평화의 왕’이다.). 그의 이름은 ‘의의 왕’이라는 뜻으로 그의 품성을 나타낸다. 그는 족보가 없기 때문에 역사와 거리가 있다. 그의 출생과 죽음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시작과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레위 지파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을 통해 레위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셈이기 때문이다(히 7:4~10).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표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이상이셨다.
반면 아론은 이스라엘의 초대 대제사장이었다. 히 5:1~4은 아론의 이상적인 대제사장직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하나님이 임명하신 자로서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서 중재하였고, 자비로운 제사장으로서 백성과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렸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새로운 대제사장으로 그린다. 그분은 아론보다 나은 반차를 따른다. 그분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의 의무를 성취할 뿐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고 완전히 순종하셨으며, 자신을 위해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셨다. 오히려 그분 자신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제물이셨다. 예수님은 아론이나 멜기세덱이 할 수 있는 봉사보다 더 훌륭한 방법으로 그들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직을 완수하셨다. 이 두 예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원형을 만났다.

<부가설명> 멜기세덱은 성경에 기록된 중요한 인물 중에서 신비에 가려 있는 존재이다.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여 돌아왔을 때에 느닷없이 나타나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었는데 성경은 그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하였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 그는 족보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도 출생에 대한 것도 죽은 날에 대한 것도 모른다. 그리고 시편 110편에 두 번째 나타나고 다음은 신약성경 히브리서 5장과 7장에 나타난다. 히브리서에는 그가 바로 예수님을 표상하는 인물이라고 계시한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 곧 계열을 따른 대제사장이라고 계시하였다. 멜기세덱이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족보도 있었을 것이고 아비와 어미가 있었을 것이고 출생한 날고 죽은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 하나도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므로 아비도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장 완벽하게 표상하는 인물로 역사에 등장시킨 것이다. 그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는 칭호도 바로 예수님을 완벽하게 표상하는 칭호인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우리를 위하여 수행하고 계신다. 얼마나 감사한가.

교훈 :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우리를 위한 하늘 대제사장이 되셔서 그들보다 더 나은 제사로써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둘째 날(월) 변호자 그리고 중재자
11월 18일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
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1. 롬 8:31~3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위대한 희망과 약속을 주는가? 31~34절은 법정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는 여기서 재판 받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누가 우리를 적대시하는가? 누가 우리를 고소하며 정죄할 것인가?
[롬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답: 사단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우리를 고소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의 희생의 피로 사단을 변박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나님께 제시한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등골이 오싹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죄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며(31절),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셨고(32절),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시며(32절),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다(33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편에 계신다. 그분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과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정죄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그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34절).
만약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기까지 한다면 그의 사랑에 대하여 확신이 생길 것이다. 롬 8:31~39에 나타난 확신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인지 말해 준다. 그 무엇도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을 방해할 수 없다(35~39절).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법정은 기쁨과 환희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진리는 요일 2:1~2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는 ‘중재자’로서 다른 사람의 편에 서는 법적 보조자 또는 변호자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자로서 우리를 위해 방어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변호자는 의로우시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중보를 들어주시리라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운 아버지께서 거부하실 일은 하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는 의로운 분으로서 죄인들의 자리에서 자신을 제시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중재하신다.

<부가설명>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 설 수밖에 없다고 성경은 계시한다. 이유는 우리는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이 세상에 태어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망의 세력에게 사로잡힌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생명의 하나님 앞에서 사망에 사로잡혔던 사실을 고하여야 할 것이다. 어떻게 사망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우주 앞에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주에 증거할 것이다. 예수님은 사단의 참소를 이미 물리치셨다.(계12:10) 그래서 아무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 우리는 산 자의 하나님이신 재판장께서 너는 산 자라고 판결하시고 생명이신 하나님과 함께 산 자의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선언하실 것이다.(시27:13, 마5:5 참고) 그리스도인의 심판은 이런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의 변호자이시고 생명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드러내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다.

교훈 :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중재자로서 자신의 의로움으로 우리를 변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날(화) 중보자
11월 19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4~6).

1. 위의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답: 중보 하신다. 자기를 대속물로 주신 그 사실에 의하여 중보 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라고 일컫는다. 그분 외에 다른 중보자는 없으며 필요하지도 않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분을 통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를 수 있다(딤전 2:4).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지위와 인종과 품성과 과거의 행적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베푸신 은택을 누릴 것인지 말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중보자란 고대 그리스의 상업 또는 법정 용어이다. 이것은 쌍방의 이견을 제거하거나 계약 또는 언약을 비준함으로써 공동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협상하는 사람 또는 중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히브리서에서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새 언약과 관계가 깊다(히 8:6, 9:15, 12:24). 그분은 화목을 조성한다. 죄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교제를 파괴하고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이것이 바로 화목이다.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신다. 우리는 이 연결고리를 통해서 하나님과 온전한 언약적 관계를 누린다.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바울의 표현은 신인으로서의 그분의 독특성을 나타낸다(딤전 2:5). 구원과 중보는 예수님의 인성과 그분의 자발적인 자기희생에 정확히 고정되어 있다.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예수님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실 수 있다.

<부가설명> 중보자는 두 사이를 연결하고 화해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신성으로 연결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이 또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과 연결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의 역할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더구나 그분은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또 사람이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그 사망을 처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어주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셔서 사망을 이기신 분이시다. 그래서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산 자로 세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예수께서 수행하신 이런 희생과 부활의 봉사를 통하여 그분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실 수 있으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세울 수 있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시고, 사람들에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신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인하여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너는 생명이 있는 자라고 판단하시는 것이다.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을 배반한 죄인을 중보하여 다시 하나님과 연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넷째 날(수) 위대한 대제사장
11월 20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 2:17).

1. 다음의 성경절들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에 관하여 어떤 사실을 드러내는가? 히 2:17~18, 3:6, 4:14~15, 7:24~28, 8:1~3.
[히2:17,18]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3: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히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7:24~28]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8:1~3]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답: 자비하시고 충성되사 친히 사람이 받는 동일한 시험을 받은 경험이 있으시며 아들의 신분을 가지신 분으로 충성하셨으며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이시며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직분이 바뀌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시고 약점이 없으신 완전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다(히 4:14). 그분은 이 땅의 모든 대제사장과 통치자들보다 우월하시다. 예수님은 유일한 참대제사장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여러 자격을 갖추셨다.
자비롭고 신실하심. 이 두 속성은 그리스도의 중보자 역할에 들어맞는다(히 2:17).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의 은사를 우리에게 베푸시고(자비로움), 아버지와 우리에게 충실하시기(신실함)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히 2:18, 5:2, 7). 우리는 인간으로 사셨던 그분의 동정심과 완전한 도움을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와 사정이 같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가 없으시기 때문이다(히 4:15).
우리 위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모세처럼 신자의 무리에 속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아버지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우리 위에 계신다(히 3:6). 그리스도는 성도들 사이에서 완전한 권위를 행사하신다.
우리와 같이. 예수님의 신적 기원은 배타적인 권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다(히 4:15). 광야에서 받은 집중적인 시험은 그분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 차원에서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마 4:1~11).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 성소 곧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타나신다(히 9:24).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히 7:25). 심판의 날에 우리 편에 서는 하늘의 대리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부가설명>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위하여 속죄를 호소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위하여 그 자신이 죄가 없어야 하였다. 죄가 있으면 감히 하나님 앞에 서서 호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죄를 소멸하는 불이된다.(히12:29)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은 먼저 자기를 위하여 속죄해야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속죄할 이유도 필요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연약에 싸여 있는 분이 아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5:1~3)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릴 이유가 없으신 완전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람 대제사장처럼 연약에 싸여 있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바로 이런 완전한 분이시고 당신 자신이 친히 희생 제물이 되어 우리를 속죄하신 분이시다.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교훈 : 자비롭고 신실하신 예수님은 여러 면에서 하늘의 대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우리의 대리인으로서 적합한 자격을 갖추셨다.


다섯째 날(목) 단번의 희생
11월 21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0~12).

지금까지 봐 온 것처럼 지상 성소 봉사의 핵심 목적은 상징, 표상, 축소판 예언의 형태로 예수님의 대제사장 봉사를 계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죄는 동물의 죽음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문제이다. 오히려 그렇게 흘린 모든 피는 죄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 곧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를 속죄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빌 2:6)의 죽음이 필요했다는 말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보여 준다.
1. 히 10:1~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지상 성소 봉사의 기능’과 ‘예수님의 죽음과 대제사장 봉사’를 어떻게 대조하는가?
[히10:1~1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답: 지상성소의 봉사는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고 죄도 실제로 사하지 못한다. 다만 실제로 죄를 사하실 분을 가리키는 예언적 예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봉사는 실제로 죄를 사하시고 하늘성소에서 봉사하시므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온전케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산 자의 처소인 하늘에 합당한 산 자들이 되게 하신다.

많은 핵심 진리가 이 말씀에서 울려 퍼진다. 모든 동물의 죽음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가장 중요한 진실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히 10:4). 그것들은 단지 해결책을 가리킬 뿐 해결책은 아니었다. 해결책은 곧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하늘 성소 봉사이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핵심 진리는 단번의 죽음이 이룬 완전한 효험성이다. 동물 희생 제사는 때마다, 날마다 그리고 해마다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드린 단번의 희생은 모든 인류의 죄를 덮기에 충분하였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지상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을 때, 하나님은 이 중요한 진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셨다(마 27:51).

<부가설명> 성소는 예수님이시다. 이미 어느 과에서 말했는데, 성소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한 것이다.(출25:8) 그런데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세상에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임마누엘이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이 바로 예수님이 그의 육신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그 육신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요한은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21)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시면 그곳이 곧 성전이다. 예수님은 성전으로서 대제사장으로서 희생의 제물로서 등대로서 떡 상으로서 분향단으로서 언약궤로서 시은좌로서 모든 직무를 다 수행하시는 성전이시고 대제사장이시다. 그분 안에서 모든 속죄가 완정되고 모든 거룩함이 완성되고 의가 완성되고 구원이 완성된다. 그분의 속죄 희생이 한 번만으로 족한 이유는 그 한 번으로 사망을 영원히 처리하셨기 때문이다. 다시는 사망이 사람을 주장할 수 없게 하셨다.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율법적 도덕적 죄들은 사망의 존재에게서 나오는 썩어져가는 구습이다.(엡4:22) 그러나 예수께서 사망을 단번에 처리하시고 부활로 영원한 생명을 단번에 드러내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사망에 속하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썩어져가는 구습에서도 해방이 된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가르친다.(요5:24) 우리는 예수 안에서만 생명을 얻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찬양할 수 있다. 아멘.

교훈 : 지상 성소의 봉사와 동물의 희생은 속죄의 유일한 해결책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켰고 그분은 단번의 희생으로 모든 속죄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여섯째 날(금) 11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양심은 정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님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불가능한 일들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는 성화를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향유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염려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치물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가려 뽑은 기별 2권, 32~3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히 2:17을 읽어 보십시오. 어떤 이유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기 전에 인간이 되어 고난을 당하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 [히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기 위하여서이다. 인간의 고난과 사망을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서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➋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염려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대치물이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엘렌 화잇의 진술을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앞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보다 무엇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까?
※ 예수님이 우리보다 앞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대신하여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기 전에 예수님을 보시고 그 안에 있는 우리를 예수님처럼 보신다.

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보증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희생과 피의 결과와 유익을 적용하십니다. 우리 편에 서 계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히브리서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며, 특히 큰 유혹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 기록한 대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유혹을 이겨야 한다.

➍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드린 단번의 희생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그런데 만약 죄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런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관습이 있다면 그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뭐라고 말할까요?
※ 만일 그 종교 관습이 기독교 안에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구원의 봉사를 부인하는 것이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종교는 다 거짓 종교이다.


댓글목록

현채옥님의 댓글

현채옥 작성일

목사님 건강하시죠? 말씀 잘 보고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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