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땅에 임한 하늘(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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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10-05 07:35 조회8,996회 댓글1건본문
10월 12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9분
기억절 :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연구 범위 : 창 1:31~2:3, 출 39:32, 43, 출 25:9, 히 8:5, 요 2:19~21, 고전 3:16~17, 계 21:1~22.
비록 하늘 성소가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는 성소의 원형일지라도, 이 땅에서 그분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성소에 관한 진리를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성소의 한 상징으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늘 성소와 그 구원의 기능은 지상의 장막과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이스라엘 성전을 통해 설명되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 속에 있는 성전의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리고 성경은 마침내 하늘 성전이 새 땅에 임하리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앞으로 공부하겠지만, 하나님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늘 성소와 관련된 개념들을 사용하신다. 이번 주에 우리는 그런 개념들 가운데 몇 가지를 연구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성소 표상학의 기초를 이해한다.
➋ 느끼기 :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소 표상학에서 나타난 약속의 능력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고 성소 표상학에 담긴 약속을 주장하기로 결심한다.
A.
❷ 여러분은 하나님이 성소에 어떤 중요한 마음을 담으셨다고 생각합니까?
※ 죄인을 용서하시고 함께 거하시겠다는 간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❸ 예수님 이후에 성소의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것의 의미는 어떻게 계속 살아 있습니까?
※ 예수께서 하늘에서 지상성소를 통하여 계시한 속죄의 봉사를 지금도 수행하신다.
❹ 우리는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 어떻게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할까요?
※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면서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생활하면 구별된다.
B.
❷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의 관계를 표상학적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지상성소는 하늘성소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하늘에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를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계시하였다는 것이다.
❸ 예수님은 성소의 의미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늘 성소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고 아직도 예수께서 하늘에서 성소와 지성소 봉사 직무를 수행하시기 때문이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❹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더 풍성하여지며 그 생명이 생활하는 대로 충성하고 어린양의 피에 날마다 옷을 씻으며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결론 : 성소 표상학은 복음의 주요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첫째 날(일) 지상의 첫째 성소
10월 6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창 3:8).
성경학자들은 에덴동산의 여러 특성이 이스라엘 백성의 성소와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에덴이 지상의 첫 번째 상징적인 ‘성전’이었음을 암시한다.
에덴동산이 성소와 비슷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창조 기사의 끝과 장막 건조를 묘사하는 보고에는 동일한 세 가지 요소, 즉 승인, 완성, 축복을 의미하는 동일한 핵심 단어들(‘모든’, ‘마치다’, ‘복’을 가지고 창 1:31~2:3, 출 39:32, 43, 40:33을 비교해 보라.)이 등장한다.
2. 에덴동산을 거니셨던 것처럼(창 3:8) 하나님은 성소 안에서도 백성들 중에 다니셨다(삼하 7:6~7).
3. 아담은 동산을 ‘경작하며 지켜야’ 했다(창 2:15). 동일한 동사가 레위인들의 성막 봉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민 3:7~8).
4. 성소에 관한 설명에는 정원 이미지가 계속 나타난다(출 25:31~36, 왕상 6:18).
5. 그룹 천사가 동산을 지켰던 것처럼(창 3:24) 지성소에는 두 그룹천사가 상주한다(출 25:18~22).
6. 창조가 6일 동안 이루어졌고, 매일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시작하여 6일 뒤에 안식일이 이른 것처럼, 성막 건조와 관련하여 6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출 25:1, 30:11, 17, 22, 34, 31:1)라는 말이 있고, 7번째 부분에는 안식일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출 31:12~17).
7. 성소 건조는 세계 창조의 완성을 연상하게 하는 히브리 달력 첫째 달 첫째 날에 마친다(출 40:17).
창세기 2장은 이런 유사성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고대인들도 그런 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기원전 2세기의 한 유대인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에덴동산은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하나님의 거처였다.” 에덴동산은 “여호와의 동산”으로 불렸다(사 51:3, 겔 28:13, 31:9). 그곳은 우리의 조상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지상 거처였다. 따라서 타락이 가져온 최고의 손실은 아담과 하와의 추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임재의 상실이다.
<부가설명> 에덴동산과 성소를 세우는 과정에 대한 비교는 아주 좋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에덴동산 성소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죄가 들어온 후에 세우게 한 성소와는 구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설명이 너무 합당해 보이기 때문에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 설명을 모세를 통하여 성소를 짓는 과정에 완전히 일치시키려고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전체를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준 성소는 제사봉사가 중심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기 전에 에덴동산은 죄와 상관없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거처로서의 성소인 것이다. 이 성소에는 피가 필요 없다. 그러나 모세의 성소봉사에는 반드시 피가 있어야 한다. 창조의 순서와 사용된 단어가 성소 건축에 나타난 단어와 순서가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모세의 성소 세상에 짓게 한 성소는 속죄가 중요 봉사였지만 에덴동산에는 그것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논리의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혀 동일한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데, 그 사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엄청 오류를 범하게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임재하신 성소이지 속죄의 피가 필요한 속죄봉사를 하는 성소는 아니었다. 결국 모세에게 짓게 한 성소는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성소에 피가 필요하게 된 요소를 더하여 짓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훈 : 성경은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가 나타났던 지상의 첫 번째 성소로 묘사한다.
둘째 날(월) 모양의 복제
10월 7일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9).
1. 출 25:9, 40, 히 8:5, 9:23~24을 읽어 보라.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는 어떤 관계인가?
[출25:9,40]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히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9:23,2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답: 지상 성소는 하늘성소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준 양식대로 지었다.
성경은 모세가 성막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지었다고 가르친다(출 26:30, 27:8, 민 8:4). 지상 성소는 “모양(pattern)”에 따라 건조되어야 했다(출 25:9, 40). ‘모양’을 뜻하는 히브리어 ‘타브니트’는 모형 또는 복제본의 개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가 하늘 성소를 대표하는 일종의 축소 모형을 봤고 그 모형이 지상 성소의 ‘모양’ 역할을 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늘 성전이 이스라엘 성소의 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하늘 성소와 하늘 자체를 동일시할 수 없다. 하늘 성전은 하늘에 있고 하늘은 성전을 포함한다(계 11:19, 14:17, 15:5).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는 오해의 여지가 없는 언어로 하늘 성소가 실재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하늘 성소는 “참장막” 또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불린다(히 8:2, 9:11). 반면 지상 성소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이다(히 8:5). 그림자가 항상 실물의 존재를 말하는 불완전한 표현 방식인 것처럼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단순한 하나의 표현 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실재성을 중요한 방법으로 반사하였다.
이 둘의 관계를 일컬어 표상(typology)이라고 한다. 표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예언적 예표로서 서로 상응하는 원형과 모형의 두 역사적 실체를 포괄한다.
상호 관련성은 원형에서 모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모세가 봤던 하늘의 모형은 ‘모양(pattern)’이고(히 8:5), 지상 성소는 ‘복제본’(copy)이라 할 수 있다(히 9:24). 이런 진리는 하늘 성소가 지상 성소에 앞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적인 근거에 입각하여 하늘 성소의 물리적 실재성을 강조한다.
<부가설명> 성경 계시에서 실상과 표상에 대하여서는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실상이 반드시 표상과 같은 모양은 아니다. 표상은 많은 경우 계시적 형상이다. 계시적 형상은 실제적 형상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니엘 7장에 기록된 네 마리 맹수는 표상인데 그 실상은 짐승이 아닌 나라들이다. 계시록 1장에 묘사된 예수님은 표상이지 실상이 아니다. 하늘에 계시는 실상인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칼이 드나들 것인가? 그리고 요한은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을 보았다. 그 어린양은 예수님이다. 표상과 실상은 이런 차이가 있다. 모세에게 보여준 성소는 표상이다. 그 실상, 참장막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독수리 날개 달린 사자의 실상은 제국 바벨론이었다. 성소의 실상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 삼위일체이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렘17:12,13)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실존도 인간의 표현으로는 물리적 실재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소가 된다. 옛날 왕이 행차하면 왕이 행차해서 머무는 곳이 왕궁이 되었다. 왕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곳을 행궁이라고 한다. 삼위하나님께서 성소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임재하신 곳은 곧 성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속죄사업이 성소의 원형이고 실상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시다. 성소는 임마누엘을 구상화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시청각교재인 것이다. 모세에게 보여준 것이나 바울이나 요한이 엘렌이 본 것은 다 계시적 형상일 수밖에 없다. 계시적 형상이란 실제로 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아는 것은 사람에게 보여주어서 짓게 한 지상성소의 구조뿐이기 때문에, 그 사실에 근거해서 하늘성소 봉사를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시적 형상으로 구조물인 성소를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설명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참고는 될 것이다.
교훈 : 성경은 하늘에 참장막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며, 모세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양에 따라 성소를 지었다고 가르친다.
셋째 날(화) 성소이신 예수
10월 8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1. 요 2:19~21을 읽어 보라. 왜 예수님의 육체는 성전으로 비유되었는가?(요 1:14 참고)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답: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이것이 출25:8,9의 성소의 목적이며 실상이다. 예수님은 성소제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속죄봉사에 대한 모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몸이 바로 성소의 실상인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더 좋은 ‘성전’이 임했다는 소식은 요한복음의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장막 이미지는 처음에 요 1:14에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사람 가운데 ‘거하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거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스케노’는 ‘장막’을 의미하는 명사 ‘스케네’의 동사 형태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14절을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고 번역한다. 이런 문맥에서 ‘영광’은 광야의 성소에 가득했던(출 40:34~35) 그리고 솔로몬 성전 봉헌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을 연상케 한다(대하 7:1~3). 결국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은 성전을 통해 백성 가운데 거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셨다.
위의 성경절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이 되어야 함을 선언하심으로써 이미 자신의 죽음으로 지상 성전의 필요성에 종말을 고하셨다(요 2:19~21, 마 27:51). 또한 자신을 생명의 떡(요 6:35)과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지상 성소의 사물들 곧 떡상 위에 진설병과 등잔대를 초월한 의미를 가리키셨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과 성소와의 결정적인 연관성은 성경이 그분을 세상 죄를 지실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으로 지목했다는 데에 있다.
“성소와 관련하여 봉사하는 모든 자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재에 관하여 계속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성소 봉사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늘 왕국의 법 곧 하나님의 법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실물 교훈이 되어야 했다. 그분은 고난을 받으며 죽어가는 희생 제물이 되셨고, 인간이 지은 죄를 친히 담당하셨으니, 무고하신 분이 우리들을 위하여 죄가 되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33).
<부가설명> 공부하시는 분들은 교과의 설명을 잘 읽고 혼란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월요일 부가설명에서 계시적 형상에 대하여 자세히 말했다. 그리고 실상은 예수님을 포함하여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교과 저자도 화요일 공부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성소의 실상인 것이다. 교과 저자가 지적했듯이 예수님이 빛이시니, 성소의 등대의 실상이고 생명의 떡이시니 성소 떡의 실상이다. 그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니 성소 제물들의 실상이다. 그분이 날마다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니 성소 분향의 실상이시다. 예수께서 거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임재와 봉사를 구상화하여 사람에게 가르쳐준 것이 성소의 구조이다. 성소는 실상이신 예수님의 표상으로 짓게 한 것이며 결국 하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함께 거하시겠다는 사랑의 복음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복음 자체이신 것이다.
교훈 : 성소의 의미와 목적대로 예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셨고,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성소로부터 제시된 약속들을 성취하셨다.
넷째 날(수) 성소로서의 교회
10월 9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으로 즉위하신 뒤에 지상 성소는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마 27:50~51).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백성과 함께 거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신다. 사도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성전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1. 고전 3:16~17, 6:19~20, 고후 6: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 가운데 성소 이미지를 주목하라. 우리는 여기서 어떤 사실을 배우게 되는가?
[고전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답: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도들의 연합체인 교회에 대한 표현이다. 그리고 성도 개개인도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온전히 정결하고 거룩하여야 한다.
고전 3:16~17에서 바울은 하나의 통합적인 연합체로서의 교회를 대상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전이 누구의 소유이며 얼마나 거룩한지 설명한다. 그는 고전 6:19~20에서 동일한 원리를 개별 신자에게 적용한다. 성전으로서의 신자는 거룩한 영역이며 거룩함 속에 살아야 하는 신성한 의무 아래 있다. 바울은 성전 이미지를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로의 부르심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 특히 여기서 거룩한 삶이란 성적 순결을 의미한다(고전 6:15~18). 성소로서의 교회에 대한 그의 마지막 언급은 이런 설명 방식에 적합하다.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 공동 지대는 없다(고후 6:14~7:1).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으므로 전적으로 그분의 것이다(고후 6:18).
한편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자 거룩한 제사장이다(벧전 2:5, 9). 물론 이러한 특권에는 중대한 책임이 따른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기에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믿음과 순종으로 우리의 삶을 바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부가설명> 나는 성경에서 세 종류의 참 성소를 보았다. 첫째는 하늘성소로서 곧 하나님 자신이시고, 다음은 교회성소이고 세 번째는 성도 성소이다. 교회와 성도가 성소라는 것은 그들이 속죄의 봉사를 하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속죄는 오직 성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예수님으로부터 속죄 받고 하나님께서 함께 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성소가 되는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기에 합당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이 거룩함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고후6:16~7:1)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육과 양이 되고 생활자체가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과 입는 것과 치장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예수께서 그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산 참 성소이기 때문이다.
교훈 :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건물로서의 지상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지만, 교회와 그 구성원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날(목) 새로운 창조
10월 10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 7:15).
1. 계 7:15~17을 읽어 보라. 구원받은 자들은 어디에 있으며 이 말씀은 그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계7: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답: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궁전과 성전에서 일하는 왕과 제사장으로 묘사한다(계 1:6, 5:10, 20:6 참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계 7:15)라는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광야 성막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떠올리게 한다. 새 땅에서 성소는 다시 한번 하나님과 구원받은 자들이 만나는 완전한 관계의 공간이 될 것이다. 성소는 피신과 보호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있는 생명의 완전한 성취를 보장한다. 사람 가운데 장막을 치셨던(요 1:14, 또는 “거하셨던”) 분이 이제는 성도들이 그분의 나라에 거할 수 있도록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2. 계 21:1~22을 읽어 보라. 새 예루살렘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이 말씀에서 거룩한 성과 성소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가?
[계21:1~22]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답: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이 바로 성소이다. 하나님이 성소 자체인 것처럼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 예루살렘 성이 성전이다. 구조도 정육면체로서 지성소의 원형이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계 21:22). 그렇다고 성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자체가 성전이요 “하나님의 장막”이기 때문이다(계 21:3). 새 예루살렘에는 몇 가지 성소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거룩하며 하늘에 기원을 둔다(계 21:2, 10). 그것은 지성소와 같이 정육면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계 21:16, 왕상 6:20). 성전 경내와 마찬가지로 도성 안에는 부정한 것의 출입이 금지된다(계 21:27).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성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누며 살 것이다(계 21:3, 7).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이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새 예루살렘을 지성소의 원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적인 설명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실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 장소로서 새 예루살렘이 성전이며 특히 지성소가 된다. 지상성소에도 하나님은 지성소에 임재하시고 세키나가 빛났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거기서 하나님을 뵐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넉넉히 뵐 수 있도록 예수 안에서 거룩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이기 때문에 소멸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세상에 있을 때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 어린양의 피에 씻어 언제나 희게 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성도이며 그들이 밤낮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아멘.
교훈 :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 위에 장막을 치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성전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날(금)
10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육, 301~309 “내세의 학교”, 각 시대의 대쟁투 673~678 “대쟁투의 종결”을 읽으라.
“장래의 유업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처럼 생각되는 일을 염려하여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게 해 주는 바로 그 진리를 영적으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보증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늘 집에 관하여 전혀 무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고전 2:9)던 것들이다. 사람의 언어는 의인들이 받을 상급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바라보는 사람들만이 깨닫게 될 것이다. 유한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낙원의 영광을 깨달을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674~67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늘 성소가 실제 공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반면 지상 성전과 하늘 성전을 너무 문자적으로 비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하늘성소가 실제적인 공간이라는 것은 새 예루살렘 성이 실제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고 성경이 계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의 기구들이 지상성소의 기구들처럼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전이신 하나님이 계시니까 그 공간이 성전인 것이다. 그리고 지상성소는 소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실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똑 같다고 생각하면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➋ 교과반에서 성소로서의 교회의 개념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교회로서 이 중요한 개념을 더욱 잘 성취할 수 있을까요?
※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죄의 복음을 전하는 기능이 있고 성도들을 불신자들을 예수께 인도하여 속죄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진리를 따라 생활할 때에 이 직무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
➌ 고전 3:16~17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떻게 그 가르침을 우리의 삶의 방식에 적용해야 합니까?
※ 성도 개인이나 그들이 모여서 형성된 교회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하고 성도들의 생활방식을 성령께서 역사하는 대로 거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➍ 우리가 지금 제사장이며, 재림 이후에도 제사장 역할을 하리라는 사상을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제사장으로서 지금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며 재림 이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사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 보더라도 성소 개념이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토의해 보십시오.
※ 다음 성구들이 대답이 될 것이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20:4~6)
일몰:오후 5시 59분
기억절 :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연구 범위 : 창 1:31~2:3, 출 39:32, 43, 출 25:9, 히 8:5, 요 2:19~21, 고전 3:16~17, 계 21:1~22.
비록 하늘 성소가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는 성소의 원형일지라도, 이 땅에서 그분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성소에 관한 진리를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성소의 한 상징으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늘 성소와 그 구원의 기능은 지상의 장막과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이스라엘 성전을 통해 설명되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 속에 있는 성전의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리고 성경은 마침내 하늘 성전이 새 땅에 임하리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앞으로 공부하겠지만, 하나님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늘 성소와 관련된 개념들을 사용하신다. 이번 주에 우리는 그런 개념들 가운데 몇 가지를 연구하려고 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성소 표상학의 기초를 이해한다.
➋ 느끼기 :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소 표상학에서 나타난 약속의 능력을 인식한다.
➌ 행하기 :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고 성소 표상학에 담긴 약속을 주장하기로 결심한다.
A.
❷ 여러분은 하나님이 성소에 어떤 중요한 마음을 담으셨다고 생각합니까?
※ 죄인을 용서하시고 함께 거하시겠다는 간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❸ 예수님 이후에 성소의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것의 의미는 어떻게 계속 살아 있습니까?
※ 예수께서 하늘에서 지상성소를 통하여 계시한 속죄의 봉사를 지금도 수행하신다.
❹ 우리는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 어떻게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할까요?
※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면서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생활하면 구별된다.
B.
❷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의 관계를 표상학적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지상성소는 하늘성소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하늘에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를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계시하였다는 것이다.
❸ 예수님은 성소의 의미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늘 성소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고 아직도 예수께서 하늘에서 성소와 지성소 봉사 직무를 수행하시기 때문이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❹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더 풍성하여지며 그 생명이 생활하는 대로 충성하고 어린양의 피에 날마다 옷을 씻으며 굴복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결론 : 성소 표상학은 복음의 주요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첫째 날(일) 지상의 첫째 성소
10월 6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창 3:8).
성경학자들은 에덴동산의 여러 특성이 이스라엘 백성의 성소와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에덴이 지상의 첫 번째 상징적인 ‘성전’이었음을 암시한다.
에덴동산이 성소와 비슷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창조 기사의 끝과 장막 건조를 묘사하는 보고에는 동일한 세 가지 요소, 즉 승인, 완성, 축복을 의미하는 동일한 핵심 단어들(‘모든’, ‘마치다’, ‘복’을 가지고 창 1:31~2:3, 출 39:32, 43, 40:33을 비교해 보라.)이 등장한다.
2. 에덴동산을 거니셨던 것처럼(창 3:8) 하나님은 성소 안에서도 백성들 중에 다니셨다(삼하 7:6~7).
3. 아담은 동산을 ‘경작하며 지켜야’ 했다(창 2:15). 동일한 동사가 레위인들의 성막 봉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민 3:7~8).
4. 성소에 관한 설명에는 정원 이미지가 계속 나타난다(출 25:31~36, 왕상 6:18).
5. 그룹 천사가 동산을 지켰던 것처럼(창 3:24) 지성소에는 두 그룹천사가 상주한다(출 25:18~22).
6. 창조가 6일 동안 이루어졌고, 매일 “하나님이 이르시되”로 시작하여 6일 뒤에 안식일이 이른 것처럼, 성막 건조와 관련하여 6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출 25:1, 30:11, 17, 22, 34, 31:1)라는 말이 있고, 7번째 부분에는 안식일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출 31:12~17).
7. 성소 건조는 세계 창조의 완성을 연상하게 하는 히브리 달력 첫째 달 첫째 날에 마친다(출 40:17).
창세기 2장은 이런 유사성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고대인들도 그런 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기원전 2세기의 한 유대인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에덴동산은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 하나님의 거처였다.” 에덴동산은 “여호와의 동산”으로 불렸다(사 51:3, 겔 28:13, 31:9). 그곳은 우리의 조상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지상 거처였다. 따라서 타락이 가져온 최고의 손실은 아담과 하와의 추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임재의 상실이다.
<부가설명> 에덴동산과 성소를 세우는 과정에 대한 비교는 아주 좋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에덴동산 성소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죄가 들어온 후에 세우게 한 성소와는 구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설명이 너무 합당해 보이기 때문에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 설명을 모세를 통하여 성소를 짓는 과정에 완전히 일치시키려고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전체를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준 성소는 제사봉사가 중심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기 전에 에덴동산은 죄와 상관없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거처로서의 성소인 것이다. 이 성소에는 피가 필요 없다. 그러나 모세의 성소봉사에는 반드시 피가 있어야 한다. 창조의 순서와 사용된 단어가 성소 건축에 나타난 단어와 순서가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동일한 것은 아니다. 모세의 성소 세상에 짓게 한 성소는 속죄가 중요 봉사였지만 에덴동산에는 그것이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논리의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혀 동일한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데, 그 사건이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엄청 오류를 범하게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임재하신 성소이지 속죄의 피가 필요한 속죄봉사를 하는 성소는 아니었다. 결국 모세에게 짓게 한 성소는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성소에 피가 필요하게 된 요소를 더하여 짓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훈 : 성경은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가 나타났던 지상의 첫 번째 성소로 묘사한다.
둘째 날(월) 모양의 복제
10월 7일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9).
1. 출 25:9, 40, 히 8:5, 9:23~24을 읽어 보라.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는 어떤 관계인가?
[출25:9,40]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히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9:23,24]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답: 지상 성소는 하늘성소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준 양식대로 지었다.
성경은 모세가 성막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지었다고 가르친다(출 26:30, 27:8, 민 8:4). 지상 성소는 “모양(pattern)”에 따라 건조되어야 했다(출 25:9, 40). ‘모양’을 뜻하는 히브리어 ‘타브니트’는 모형 또는 복제본의 개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가 하늘 성소를 대표하는 일종의 축소 모형을 봤고 그 모형이 지상 성소의 ‘모양’ 역할을 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늘 성전이 이스라엘 성소의 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하늘 성소와 하늘 자체를 동일시할 수 없다. 하늘 성전은 하늘에 있고 하늘은 성전을 포함한다(계 11:19, 14:17, 15:5).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는 오해의 여지가 없는 언어로 하늘 성소가 실재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하늘 성소는 “참장막” 또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불린다(히 8:2, 9:11). 반면 지상 성소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이다(히 8:5). 그림자가 항상 실물의 존재를 말하는 불완전한 표현 방식인 것처럼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단순한 하나의 표현 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실재성을 중요한 방법으로 반사하였다.
이 둘의 관계를 일컬어 표상(typology)이라고 한다. 표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예언적 예표로서 서로 상응하는 원형과 모형의 두 역사적 실체를 포괄한다.
상호 관련성은 원형에서 모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모세가 봤던 하늘의 모형은 ‘모양(pattern)’이고(히 8:5), 지상 성소는 ‘복제본’(copy)이라 할 수 있다(히 9:24). 이런 진리는 하늘 성소가 지상 성소에 앞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적인 근거에 입각하여 하늘 성소의 물리적 실재성을 강조한다.
<부가설명> 성경 계시에서 실상과 표상에 대하여서는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실상이 반드시 표상과 같은 모양은 아니다. 표상은 많은 경우 계시적 형상이다. 계시적 형상은 실제적 형상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니엘 7장에 기록된 네 마리 맹수는 표상인데 그 실상은 짐승이 아닌 나라들이다. 계시록 1장에 묘사된 예수님은 표상이지 실상이 아니다. 하늘에 계시는 실상인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칼이 드나들 것인가? 그리고 요한은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을 보았다. 그 어린양은 예수님이다. 표상과 실상은 이런 차이가 있다. 모세에게 보여준 성소는 표상이다. 그 실상, 참장막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독수리 날개 달린 사자의 실상은 제국 바벨론이었다. 성소의 실상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 삼위일체이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렘17:12,13)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21:22)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실존도 인간의 표현으로는 물리적 실재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소가 된다. 옛날 왕이 행차하면 왕이 행차해서 머무는 곳이 왕궁이 되었다. 왕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곳을 행궁이라고 한다. 삼위하나님께서 성소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임재하신 곳은 곧 성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속죄사업이 성소의 원형이고 실상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시다. 성소는 임마누엘을 구상화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신 시청각교재인 것이다. 모세에게 보여준 것이나 바울이나 요한이 엘렌이 본 것은 다 계시적 형상일 수밖에 없다. 계시적 형상이란 실제로 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아는 것은 사람에게 보여주어서 짓게 한 지상성소의 구조뿐이기 때문에, 그 사실에 근거해서 하늘성소 봉사를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시적 형상으로 구조물인 성소를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설명에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다. 참고는 될 것이다.
교훈 : 성경은 하늘에 참장막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며, 모세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양에 따라 성소를 지었다고 가르친다.
셋째 날(화) 성소이신 예수
10월 8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1. 요 2:19~21을 읽어 보라. 왜 예수님의 육체는 성전으로 비유되었는가?(요 1:14 참고)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답: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이것이 출25:8,9의 성소의 목적이며 실상이다. 예수님은 성소제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속죄봉사에 대한 모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몸이 바로 성소의 실상인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더 좋은 ‘성전’이 임했다는 소식은 요한복음의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장막 이미지는 처음에 요 1:14에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사람 가운데 ‘거하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거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스케노’는 ‘장막’을 의미하는 명사 ‘스케네’의 동사 형태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14절을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고 번역한다. 이런 문맥에서 ‘영광’은 광야의 성소에 가득했던(출 40:34~35) 그리고 솔로몬 성전 봉헌에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을 연상케 한다(대하 7:1~3). 결국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은 성전을 통해 백성 가운데 거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셨다.
위의 성경절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이 되어야 함을 선언하심으로써 이미 자신의 죽음으로 지상 성전의 필요성에 종말을 고하셨다(요 2:19~21, 마 27:51). 또한 자신을 생명의 떡(요 6:35)과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지상 성소의 사물들 곧 떡상 위에 진설병과 등잔대를 초월한 의미를 가리키셨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과 성소와의 결정적인 연관성은 성경이 그분을 세상 죄를 지실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으로 지목했다는 데에 있다.
“성소와 관련하여 봉사하는 모든 자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재에 관하여 계속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성소 봉사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늘 왕국의 법 곧 하나님의 법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실물 교훈이 되어야 했다. 그분은 고난을 받으며 죽어가는 희생 제물이 되셨고, 인간이 지은 죄를 친히 담당하셨으니, 무고하신 분이 우리들을 위하여 죄가 되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33).
<부가설명> 공부하시는 분들은 교과의 설명을 잘 읽고 혼란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월요일 부가설명에서 계시적 형상에 대하여 자세히 말했다. 그리고 실상은 예수님을 포함하여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교과 저자도 화요일 공부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성소의 실상인 것이다. 교과 저자가 지적했듯이 예수님이 빛이시니, 성소의 등대의 실상이고 생명의 떡이시니 성소 떡의 실상이다. 그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니 성소 제물들의 실상이다. 그분이 날마다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니 성소 분향의 실상이시다. 예수께서 거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임재와 봉사를 구상화하여 사람에게 가르쳐준 것이 성소의 구조이다. 성소는 실상이신 예수님의 표상으로 짓게 한 것이며 결국 하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함께 거하시겠다는 사랑의 복음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복음 자체이신 것이다.
교훈 : 성소의 의미와 목적대로 예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셨고,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성소로부터 제시된 약속들을 성취하셨다.
넷째 날(수) 성소로서의 교회
10월 9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으로 즉위하신 뒤에 지상 성소는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마 27:50~51).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백성과 함께 거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신다. 사도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성전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1. 고전 3:16~17, 6:19~20, 고후 6: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 가운데 성소 이미지를 주목하라. 우리는 여기서 어떤 사실을 배우게 되는가?
[고전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답: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도들의 연합체인 교회에 대한 표현이다. 그리고 성도 개개인도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온전히 정결하고 거룩하여야 한다.
고전 3:16~17에서 바울은 하나의 통합적인 연합체로서의 교회를 대상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전이 누구의 소유이며 얼마나 거룩한지 설명한다. 그는 고전 6:19~20에서 동일한 원리를 개별 신자에게 적용한다. 성전으로서의 신자는 거룩한 영역이며 거룩함 속에 살아야 하는 신성한 의무 아래 있다. 바울은 성전 이미지를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로의 부르심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 특히 여기서 거룩한 삶이란 성적 순결을 의미한다(고전 6:15~18). 성소로서의 교회에 대한 그의 마지막 언급은 이런 설명 방식에 적합하다.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 공동 지대는 없다(고후 6:14~7:1).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으므로 전적으로 그분의 것이다(고후 6:18).
한편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자 거룩한 제사장이다(벧전 2:5, 9). 물론 이러한 특권에는 중대한 책임이 따른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기에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믿음과 순종으로 우리의 삶을 바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부가설명> 나는 성경에서 세 종류의 참 성소를 보았다. 첫째는 하늘성소로서 곧 하나님 자신이시고, 다음은 교회성소이고 세 번째는 성도 성소이다. 교회와 성도가 성소라는 것은 그들이 속죄의 봉사를 하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속죄는 오직 성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예수님으로부터 속죄 받고 하나님께서 함께 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성소가 되는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기에 합당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이 거룩함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고후6:16~7:1)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육과 양이 되고 생활자체가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과 입는 것과 치장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예수께서 그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산 참 성소이기 때문이다.
교훈 :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건물로서의 지상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지만, 교회와 그 구성원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날(목) 새로운 창조
10월 10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 7:15).
1. 계 7:15~17을 읽어 보라. 구원받은 자들은 어디에 있으며 이 말씀은 그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계7: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답: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궁전과 성전에서 일하는 왕과 제사장으로 묘사한다(계 1:6, 5:10, 20:6 참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계 7:15)라는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광야 성막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떠올리게 한다. 새 땅에서 성소는 다시 한번 하나님과 구원받은 자들이 만나는 완전한 관계의 공간이 될 것이다. 성소는 피신과 보호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있는 생명의 완전한 성취를 보장한다. 사람 가운데 장막을 치셨던(요 1:14, 또는 “거하셨던”) 분이 이제는 성도들이 그분의 나라에 거할 수 있도록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2. 계 21:1~22을 읽어 보라. 새 예루살렘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이 말씀에서 거룩한 성과 성소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가?
[계21:1~22]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답: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이 바로 성소이다. 하나님이 성소 자체인 것처럼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 예루살렘 성이 성전이다. 구조도 정육면체로서 지성소의 원형이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다(계 21:22). 그렇다고 성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자체가 성전이요 “하나님의 장막”이기 때문이다(계 21:3). 새 예루살렘에는 몇 가지 성소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거룩하며 하늘에 기원을 둔다(계 21:2, 10). 그것은 지성소와 같이 정육면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계 21:16, 왕상 6:20). 성전 경내와 마찬가지로 도성 안에는 부정한 것의 출입이 금지된다(계 21:27).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성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누며 살 것이다(계 21:3, 7). 이것이 바로 구원의 목적이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새 예루살렘을 지성소의 원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적인 설명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실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 장소로서 새 예루살렘이 성전이며 특히 지성소가 된다. 지상성소에도 하나님은 지성소에 임재하시고 세키나가 빛났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거기서 하나님을 뵐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넉넉히 뵐 수 있도록 예수 안에서 거룩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이기 때문에 소멸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세상에 있을 때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 어린양의 피에 씻어 언제나 희게 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성도이며 그들이 밤낮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아멘.
교훈 :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 위에 장막을 치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성전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날(금)
10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육, 301~309 “내세의 학교”, 각 시대의 대쟁투 673~678 “대쟁투의 종결”을 읽으라.
“장래의 유업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처럼 생각되는 일을 염려하여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게 해 주는 바로 그 진리를 영적으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 집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보증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늘 집에 관하여 전혀 무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고전 2:9)던 것들이다. 사람의 언어는 의인들이 받을 상급을 묘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바라보는 사람들만이 깨닫게 될 것이다. 유한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낙원의 영광을 깨달을 수 없다”(각 시대의 대쟁투, 674~67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하늘 성소가 실제 공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반면 지상 성전과 하늘 성전을 너무 문자적으로 비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하늘성소가 실제적인 공간이라는 것은 새 예루살렘 성이 실제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고 성경이 계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의 기구들이 지상성소의 기구들처럼 갖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전이신 하나님이 계시니까 그 공간이 성전인 것이다. 그리고 지상성소는 소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실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똑 같다고 생각하면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➋ 교과반에서 성소로서의 교회의 개념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교회로서 이 중요한 개념을 더욱 잘 성취할 수 있을까요?
※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죄의 복음을 전하는 기능이 있고 성도들을 불신자들을 예수께 인도하여 속죄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진리를 따라 생활할 때에 이 직무를 성취하게 될 것이다.
➌ 고전 3:16~17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떻게 그 가르침을 우리의 삶의 방식에 적용해야 합니까?
※ 성도 개인이나 그들이 모여서 형성된 교회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야 하고 성도들의 생활방식을 성령께서 역사하는 대로 거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➍ 우리가 지금 제사장이며, 재림 이후에도 제사장 역할을 하리라는 사상을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제사장으로서 지금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며 재림 이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사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만 보더라도 성소 개념이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토의해 보십시오.
※ 다음 성구들이 대답이 될 것이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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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용님의 댓글
이한용 작성일목사님 감사합니다. 늘건강 하세요. 이한용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