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하늘 성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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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9-28 02:33 조회9,255회 댓글0건본문
10월 5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10분
기억절 :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왕상 8:49).
연구 범위 : 렘 23:23~24, 시 89:14, 계 4~5장, 시 11:4~7, 신 25:1, 히 8:1~2.
“하나님은 어디에서 사시죠?”
6살짜리 어린애의 순진한 질문이 퍽이나 당황스럽다. 뭐라 답을 한다고 해도 다음과 같이 더 어려운 질문들이 이어질 게 뻔하다. “하나님이 한 곳에 계신다면 어떻게 모든 곳에 계시는 게 가능하죠?” “하나님도 집이 필요하세요?” “만약 필요하다면 왜 필요하신 거죠?” 좋은 질문들이다. 그러나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는 범위에서 답을 해야만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 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하늘 성소는 그분이 일하시는 중심 공간이다.
성경의 요점은 분명하다. 하늘 성소는 실제 공간이며,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하나님의 품성과 사역에 대한 진리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 교과는 하늘 성소와 그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들에 초점을 맞춘다. 왜냐하면 그분이 성소에서 행하시는 일들은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늘 성소의 실재와 기본적인 기능을 파악한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의 집인 하늘 성소의 온기와 포근함을 느낀다.
➌ 행하기 : 하늘 성소의 실재성을 가르치는 성경의 설명을 수용하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기별을 마음에 새긴다.
A.
❷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어떤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은 실제로 거하시는 곳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❸ 하나님이 특별히 ‘하늘 성소’에 계신다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 성소에 계신다는 것은 속죄의 봉사를 하신다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보증이 된다.
❹ 하늘 성소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살겠다고 마음먹게 됩니까?
※ 주님의 속죄하시는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살겠다고 마음먹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가 생각해보자.
B.
❷ 성경은 하늘 성소가 가상이 아닌 실제 공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 삼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것과 수종드는 천사가 있는 것으로 가르친다.
❸ 하늘 성소는 어떤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인류의 속죄의 종결과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데 필요하다.
❹ 하늘 성소에 대한 깨달음은 그대의 신앙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님의 속죄봉사가 날마다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결론 : 하늘 성소는 창조의 시초부터 자신을 낮추시고 피조물과 함께 거하려는 사랑의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첫째 날(일) 9월 29일 하나님의 거처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왕상 8:49).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신다.”, “그분은 무소부재하신다.”라고 말한다. 즉 우주의 모든 곳에 그분이 계시다는 뜻이다.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3~24). 다윗도 하나님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시 139편). 바울의 주장처럼 적어도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신다(행 17:27~28).
또한 하나님은 무소부재할 뿐 아니라 영원하시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다(시 90:2). 그분은 항상 계셨고 앞으로도 계실 것이다(유 25).
1. 왕상 8:49과 시 102:1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는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가?
[왕상8: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시102:19]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답: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높은 성소에 계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또 성경이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이 있으면 찾아서 확인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진술로 가득하다(왕상 8:30, 43, 49). 이는 그분이 다른 곳에 계시기보다 하늘에 더 많이 계신다는 뜻인가? 하나님은 분명 영광스러운 임재와 순수한 거룩함이라는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하늘에 거하신다.
물론 우리는 그분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이해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틀이나 차원에 담을 수 없다(요 4:24, 왕상 8:27). 그러면서도 성경은 하늘과 하늘 성소를 하나님이 계시는 실제 공간으로 제시한다(요 14:1~3, 히 8:2, 행 7:55~56, 계 4:2~3). 그러나 우리는 하늘과 하늘 성소라도 하나님이 피조물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는 공간임을 믿어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성경이 사람의 언어로 기록 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기록된 언어 표현 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기록된 언어가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상징과 비유와 표상으로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비유와 상징과 표상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를 물, 불, 바람 등으로 상징하여 표현하였다. 이유는 성령의 역사를 한 마디로 사람이 알도록 설명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여러 비유를 종합하여 우리는 성령의 역사의 다양성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포도나무, 반석, 빛, 생명, 목자, 문, 길과 진리 부활 등등으로 표현한 것은 다 비유적 성질이 강하다. 당연히 햇빛 자체가 예수님이 아니다. 하나님을 빛, 반석, 생명, 사랑 등등으로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언어들이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록된 언어가 바로 사실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했다고 산에 있는 반석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든지 하늘 성소에 계신다고 한 표현들이 문자 그대로를 나타내는 것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많은 경우 계시적 형상으로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성경이 성경을 풀어주는 그 길을 따라서 성경의 사실을 깨닫도록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교훈 :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도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하늘과 하늘 성소는 그분이 특별한 방식으로 거하시는 공간이다.
둘째 날(월) 보좌가 있는 곳
9월 30일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 103:19).
1. 시 47:6~9, 93:1~2, 103:19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보좌에 관하여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되는가?
[시47:6~9]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찌어다 8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
[시93:1,2]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시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답: 하나님이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통치자 왕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계시하고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이상이 몇 차례 나온다. 그것들은 왕이신 하나님 앞에 모여 있는 천상의 존재들을 묘사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이상은 대부분 인간사와 관련하여 의인들을 위해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을 군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왕권은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임금이자 “온 땅의 왕”(시 47:7)이시다. 이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늘 여기의 일이다(시 93:2).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세워졌다는 개념에 대한 몇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님은 독립적이며 우주의 다른 것들 위에 계신다는 견해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2. 시 89:14, 97: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과 통치 방식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시89: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시97:2]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답: 의와 공의가 그의 보좌의 기초이다. 그분은 의와 공의(공평)으로 만유를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통치는 “의와 공의” 그리고 “인자함과 진실함”을 포괄한다. 이런 도덕적 속성은 인간 세계에서 그분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설명하며, 온 우주 속에서 그분의 지위를 강조한다. 그분의 통치를 이루는 이러한 속성은 또한 그분이 자기 백성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기를 바라는 속성들과 동일하다(미 6:8을 사 59:14과 비교해 보라.).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마치 땅이 하나님의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귀중한 곡식을 산출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하게 될 것이었다”(재림신도의 가정, 144).
<부가설명>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그의 통치는 공평하시다. 그분이 의로우신 것은 그분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공평하신 것은 그분의 생명의 성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곳은 모든 것이 공평하다. 해와 비를 의인이나 악인에게 제한없이 주신다. 공기도 그렇다. 죄로 인하여 산과 땅과 물이 편중되게 산재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가장 필요한 공기와 해와 별과 달은 어디서든지 공평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 공기를 공평하게 주시지 않았다면 사람이나 동식물이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다 사용할 수 있게 하셨다. 물론 물이 모자라는 곳이 있지만 땅이 저주를 받아 생긴 결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한 없이 공급하신다. 어디서든지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비록 죄가 들어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하라는 교훈으로 받아야 한다.
교훈 : 하나님은 하늘에 보좌를 세우신 온 우주의 왕이시며, 그분의 도덕적 품성은 세상을 다스리는 그분의 통치 원리이자 우리가 반사해야 할 모습이다.
셋째 날(화) 하늘의 예배
10월 1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1. 계 4~5장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하늘 거처에 대하여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또한 이 말씀 속에는 구원의 계획이 어떤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는가?
[계4:1~11] 여기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변과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내용.
[계5:1~14] 여기는 아들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다.
답: 이 장면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께서 실제로 거처하는 곳이 있다는 것과 그곳이 하늘 보좌이며 그 주위에는 시위하는 천상의 존재들이 항상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보좌 주위에 계신 것을 통하여 구원의 계획이 그 보좌에서 이루어지도 실행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특히 5:9,10은 어린양 예수께서 구원하신 사실을 기록하였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를 생각하게 한다.
하늘 보좌가 있는 공간에 대한 이상은 곧 하늘 성소에 관한 이상이다. 이는 히브리 종교 체계를 언급하는 언어들을 볼 때 확실하다. 예를 들면 계 4:1에 “문”나 “나팔”과 같은 그리스어는 칠십인역(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에 자주성소와 관련하여 등장한다. 계 4:3에서 언급된 보석은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에 붙이는 보석에 포함된다. 일곱 등불은 솔로몬 성전의 등잔대를 연상케 한다. 24장로는 금대접에 ‘향’(시 141:2)을 피워 기도의 제사를 드리며 일 년 동안 돌아가며 성전에서 봉사했던 제사장들의 24반차를 상기시킨다. 이 모든 성경절은 지상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구약의 예배를 가리키고 있다.
계시록 5장에 등장하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물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가리킨다. 우리의 거룩한 구원의 중보자이신 어린 양 그리스도는 그분의 승리(계 5:5)와 희생(계 5:9, 12)과 신성(계 5:13)으로 인하여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게 여김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인성을 쓰시고 생애를 희생물로 드리심으로 인간이 신성을 나누어 받는 자가 되어 영생을 얻게 하셨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41).
우리는 계 4~5에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이 보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또한 대쟁투 속에 있는 핵심 주제, 즉 그분의 사역이 하늘의 다른 지적 존재들 앞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을 본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되 사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계시하신다. 계시로 보여주시는 형상은 실상(實狀)일 수도 있고, 또 계시적 형상일 수도 있다. 다니엘과 계시록의 많은 장면들은 계시적 형상이. 계1장에 일곱 촛대 사이에 계시는 예수님은 그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온다고 묘사되어 있고 발은 주석 같다고 기록되었다. 이런 기록들은 계시적 형상이지 실제적 형상이 아니다. 짐승으로 표현된 것도 계시적 형상이. 독수리 날개 달린 사자가 바벨론을 상징하는 계시적 형상이지 바벨론의 실상이 아닌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4,5장에 보이는 보좌와 보좌 주위 광경이 실상인지 계시적 형상인지 우리는 분간하기 어렵다.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묘사했다가 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이라고 묘사한 예수님에 대한 묘사도 계시적 형상이. 예수님은 어린양의 모습도 아니고 사자의 모습도 아니다. 그러나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실 때에 그렇게 볼 수 있도록 하셨다는 말이. 이런 것을 나는 계시적 형상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묘사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고 성경이 성경을 풀어주는 원칙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 묘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구원하시는 은혜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훈 : 계시록 4~5장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예배의 장면은 성소를 연상케 하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넷째 날(수) 법정
10월 2일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시 9:4).
1. 시 11:4~7, 합 2:20을 읽어 보라. 하늘 성전에서 하나님은 또 어떤 일을 하시는가? 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가?
[시11:4~7]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합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답: 하늘 성전에서 인생을 살피시고 공의로 그들을 돌보신다. 또 심판하셔서 상벌을 집행하신다. 온 천하는 그분 앞에 잠잠함이 좋다.
여러 시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의인의 필요와 그들이 당하는 불의에 무관심하시지 않다. 하나님은 시정을 요구하는 음성에 반응하시며 훌륭한 판사처럼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신 25:1)하신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보좌가 있는 곳은 법정이 되며, 하늘 보좌는 심판석이 된다. 보좌에 앉은 분이 심판하시는 분이시다(시 9:4~8). 이는 왕이 재판장의 역할을 했던 고대 근동에서는 잘 알려진 개념이다.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모두 심판한다. 악인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받은 유사한 형벌을 당하는 반면, 의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것이다(시 11:6~7). 단 7:9~14은 보좌와 심판을 결합한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 심판은 두 가닥으로 구성된다. 성도들을 위해서는 옹호의 선언이 있고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해서는 정죄의 선고가 내려진다.
하박국서에서 선지자가 하나님께 왜 불의에 침묵하시는지 묻자, 하나님은 언젠가 반드시 심판하시리라 대답하신다(합 1장, 2:1~5). 우상들은 ‘숨’도 없고 ‘영’도 없다(합 2:19).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성전 곧 하늘 성소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
선지자는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고 호소한다.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두려운 마음으로 침묵하며 잠잠히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특별한 임재를 나타내시며 천상의 존재들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곳은 모든 인류를 위해 의로운 심판을 베푸는 곳과 같은 공간, 즉 하늘 성소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의 공의에 대한 모든 질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때가 아닌 그분이 정하신 때에 응답될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 위에 인용한 시편에 기록한 대로 악인은 불과 유황으로 타게 될 것이고 의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불과 유황으로 타는 악인들, 죄인들은 계속 타면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타서 재가 되면 존재가 없어진다. 그들은 존재 자체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한 사망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사람들은 산 자들이다. 살아 있어야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산 자가 아니면 그의 얼굴을 뵈올 수 없다. 이런 말씀들을 잘 생각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죽은 자를 죽은 자의 땅으로 산 자를 산 자의 땅으로 보내시는 것이 심판의 본질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한다고 한 것이고 그것이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선은 산 자들이고 악은 죽은 자들이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막3:4) 선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과 악을 도덕적 관점에 고정하여 이해하려고 하면 성경의 선악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할 수 있다. 도덕적으로 악한 자도 최후는 죽는 것이다. 산 자는 생명이신 예수님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고 죽은 자는 예수님이 없는 자이다.(요일5:11~13) 우리가 산 자인지 죽은 자인지 스스로 알 수 있지 않을까?
교훈 :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시는 재판장이고, 그 공간은 하나님이 경배를 받는 성전이자 심판을 베푸는 법정이기도 하다.
다섯째 날(목) 구원을 베푸는 곳
10월 3일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히 8:1).
1. 히 8:1~2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히8:1,2]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답: 하늘의 참 장막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신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봉사한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에 초점을 맞춰 일하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히 9:24)신다. 그분은 우리를 동정하시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근거로 우리가 버림받지 않고 긍휼과 은혜를 받으리라고 보증하신다(히 4:15~16).
지상 성소와 마찬가지로 하늘 성소에서도 신자들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진다(히 2:17). 이렇게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은 하늘에서도 우리를 위해 봉사하신다.
2. 계 1:12~20, 8:2~6, 11:19, 15:5~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성소와 관련된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가?
[계1:12~20]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8:2~6]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6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계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계15:5~9]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답: 예수님은 성소에서 봉사하시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것임을 가르친다. 또 천사가 제단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받아서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리며, 언약궤가 있고, 하늘 성전에서 심판과 그 집행을 한다.
이 말씀들은 지상 성소에서 봉사하는 사실에 의하여 하늘에서 성소 봉사하는 사실을 알도록 가르쳐주는 계시적 형상이다.
위의 성경절들은 계시록에서 성소와 관련된 이미지가 나타나는 곳 가운데 일부이다. 사실 계시록을 크게 나누면 각 부분은 성소의 장면으로 시작하거나 성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서론적인 장면에서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의 복장을 입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계 1:12~20). 둘째 장면에서 계시록은 하늘 보좌가 있는 곳을 공개하는데 여기서 보좌, 등불, 바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 피, 향을 담은 금대접과 같이 성소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계 4~5장). 셋째 장면은 하늘 성소의 첫째 칸에서 이루어지는 매일의 중보 사역을 다룬다(계 8:2~6).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넷째 장면은 성소의 두 번째 칸에 있는 언약궤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여 준다(계 11:19). 다섯째 장면은 하늘 성막의 전반적인 모습을 그린다(계 15:5~8). 여섯째 장면은 특이하게도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가 끝났음을 암시하듯이 성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계 19:1~10). 마지막 장면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도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막처럼 묘사하고 있다(계 21:1~8).
이 장면들을 자세히 연구하면 그것들이 서로 연관되어있고, 하나님 이 베푸시는 구원에는 어떤 내적 과정, 즉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다음에, 하늘 성소의 첫째 칸과 둘째 칸에서의 봉사가 있고, 그다음에는 그분의 대제사장 봉사가 종결되며, 마지막으로 지구에 새로운 장막이 임한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부가설명> 하늘 성소에 대한 묘사들은 참 쉽지 않다. 하늘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면 그곳이 바로 하늘이 아니겠는가. 옛날 임금이 행차하여 머물면 그곳이 바로 궁전이었다. 그것을 행궁이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하늘이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룰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구원의 도리를 시청각 교재로 만들어 주신 것이 세상에 지으라고 한 성소요 성전이다. 그 성전의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구원의 도리이다. 하나님께서 성소를 지으라고 하실 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시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임마누엘이다. 그 성소 임마누엘의 원형이요 실상은 바로 임마누엘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의 여러 측면을 시청각 교재로 만들어서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렇게 하시고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하늘을 바로 세상에 만들라고 한 그 성소의 구조를 가지고 설명하신다. 왜냐하면 그 성소만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짓게 한 그 성소의 구조와 봉사와 기구들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다. 그것을 하늘을 설명할 때 사람들이 알게 된다. 하늘에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봉사는 모두 세상에 짓게 하셨던 성소에서 행한 봉사를 통하여 알게 하신 것이다. 이런 성경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하늘 성소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닌가?
교훈 :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는 예수님의 하늘 성소 봉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으로 일하신다.
여섯째 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0월 4일
“바울은 하늘의 광경을 보았다. 그가 하늘에 있는 그 영광에 관해 말을 하려고 할 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묘사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우리에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의 상상의 날개를 한껏 펴 볼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온 능력을 다 경주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일에 지치고 피로한 그대의 지각으로는 그 실상을 붙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 너머에는 무한한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영광을 다 펼쳐 보고 하나님의 말씀의 귀한 보화를 다 깨달으려면 영원이라는 시간이 다 소요될 것이다”(화잇 주석, 고후 12:4).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을, 수종하는 자가 천천이요 시위하는 자가 만만이나 되는 만왕의 왕이 거하시는 곳(단 7:10 참고), 그 시위하는 영화로운 스랍들이 경배하고 머리를 숙이는, 영원한 보좌가 있는, 영광으로 충만한 하늘 성소와 비교하면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한 건물일지라도, 그 무한한 영광과 웅장함에 대한 극히 희미하고 미약한 반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상의 성소와 그 봉사를 통하여 하늘 성소에 관한 중요한 진리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진행되는 주님의 봉사를 배우게 되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41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엘렌 화잇의 인용문에서 지상 성소를 통해 배워야 했던 우리 구원을 위한 “중요한 진리”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어떤 진리들을 말하며 왜 그것들이 중요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봉사에 대한 진리이다.
➋ 하나님이 하늘에 ‘거하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대는 이런 개념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 하나님은 실체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실제가 거하시는 곳이 있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 아니겠는가. 그분이 어디에 계시든지 그분이 계시는 그 곳이 하늘이라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되겠는가.
➌ 이번 주 교과는 우주가 인류를 위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개념을 다루었습니다. 왜 이러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런 개념은 대쟁투 주제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이런 개념은 전체 구원의 계획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합니까? 이런 개념은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조사할 여지를 두시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무엇을 말합니까?
※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통치하시기 때문에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며, 선악 간의 대쟁투의 심판이 있다는 것은 곧 악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사망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처리하시고 예수 안에서 산 자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산 자의 땅에서 산 자의 하나님이신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신다는 공의와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일몰:오후 6시 10분
기억절 :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왕상 8:49).
연구 범위 : 렘 23:23~24, 시 89:14, 계 4~5장, 시 11:4~7, 신 25:1, 히 8:1~2.
“하나님은 어디에서 사시죠?”
6살짜리 어린애의 순진한 질문이 퍽이나 당황스럽다. 뭐라 답을 한다고 해도 다음과 같이 더 어려운 질문들이 이어질 게 뻔하다. “하나님이 한 곳에 계신다면 어떻게 모든 곳에 계시는 게 가능하죠?” “하나님도 집이 필요하세요?” “만약 필요하다면 왜 필요하신 거죠?” 좋은 질문들이다. 그러나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는 범위에서 답을 해야만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며, 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하늘 성소는 그분이 일하시는 중심 공간이다.
성경의 요점은 분명하다. 하늘 성소는 실제 공간이며,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하나님의 품성과 사역에 대한 진리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 교과는 하늘 성소와 그곳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들에 초점을 맞춘다. 왜냐하면 그분이 성소에서 행하시는 일들은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늘 성소의 실재와 기본적인 기능을 파악한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의 집인 하늘 성소의 온기와 포근함을 느낀다.
➌ 행하기 : 하늘 성소의 실재성을 가르치는 성경의 설명을 수용하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기별을 마음에 새긴다.
A.
❷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어떤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은 실제로 거하시는 곳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❸ 하나님이 특별히 ‘하늘 성소’에 계신다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 성소에 계신다는 것은 속죄의 봉사를 하신다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보증이 된다.
❹ 하늘 성소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살겠다고 마음먹게 됩니까?
※ 주님의 속죄하시는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살겠다고 마음먹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가 생각해보자.
B.
❷ 성경은 하늘 성소가 가상이 아닌 실제 공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 삼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것과 수종드는 천사가 있는 것으로 가르친다.
❸ 하늘 성소는 어떤 목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인류의 속죄의 종결과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데 필요하다.
❹ 하늘 성소에 대한 깨달음은 그대의 신앙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님의 속죄봉사가 날마다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결론 : 하늘 성소는 창조의 시초부터 자신을 낮추시고 피조물과 함께 거하려는 사랑의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첫째 날(일) 9월 29일 하나님의 거처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왕상 8:49).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신다.”, “그분은 무소부재하신다.”라고 말한다. 즉 우주의 모든 곳에 그분이 계시다는 뜻이다.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3~24). 다윗도 하나님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시 139편). 바울의 주장처럼 적어도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가까이 계신다(행 17:27~28).
또한 하나님은 무소부재할 뿐 아니라 영원하시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다(시 90:2). 그분은 항상 계셨고 앞으로도 계실 것이다(유 25).
1. 왕상 8:49과 시 102:1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는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가?
[왕상8: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시102:19]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답: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높은 성소에 계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또 성경이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이 있으면 찾아서 확인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진술로 가득하다(왕상 8:30, 43, 49). 이는 그분이 다른 곳에 계시기보다 하늘에 더 많이 계신다는 뜻인가? 하나님은 분명 영광스러운 임재와 순수한 거룩함이라는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하늘에 거하신다.
물론 우리는 그분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이해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틀이나 차원에 담을 수 없다(요 4:24, 왕상 8:27). 그러면서도 성경은 하늘과 하늘 성소를 하나님이 계시는 실제 공간으로 제시한다(요 14:1~3, 히 8:2, 행 7:55~56, 계 4:2~3). 그러나 우리는 하늘과 하늘 성소라도 하나님이 피조물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는 공간임을 믿어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는 성경이 사람의 언어로 기록 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기록된 언어 표현 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기록된 언어가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상징과 비유와 표상으로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비유와 상징과 표상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를 물, 불, 바람 등으로 상징하여 표현하였다. 이유는 성령의 역사를 한 마디로 사람이 알도록 설명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여러 비유를 종합하여 우리는 성령의 역사의 다양성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포도나무, 반석, 빛, 생명, 목자, 문, 길과 진리 부활 등등으로 표현한 것은 다 비유적 성질이 강하다. 당연히 햇빛 자체가 예수님이 아니다. 하나님을 빛, 반석, 생명, 사랑 등등으로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언어들이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록된 언어가 바로 사실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했다고 산에 있는 반석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든지 하늘 성소에 계신다고 한 표현들이 문자 그대로를 나타내는 것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른다. 많은 경우 계시적 형상으로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성경이 성경을 풀어주는 그 길을 따라서 성경의 사실을 깨닫도록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교훈 :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도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하늘과 하늘 성소는 그분이 특별한 방식으로 거하시는 공간이다.
둘째 날(월) 보좌가 있는 곳
9월 30일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 103:19).
1. 시 47:6~9, 93:1~2, 103:19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보좌에 관하여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되는가?
[시47:6~9]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찌어다 8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
[시93:1,2]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시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답: 하나님이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통치자 왕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계시하고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이상이 몇 차례 나온다. 그것들은 왕이신 하나님 앞에 모여 있는 천상의 존재들을 묘사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이상은 대부분 인간사와 관련하여 의인들을 위해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을 군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왕권은 시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임금이자 “온 땅의 왕”(시 47:7)이시다. 이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늘 여기의 일이다(시 93:2).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세워졌다는 개념에 대한 몇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님은 독립적이며 우주의 다른 것들 위에 계신다는 견해가 그 가운데 하나이다.
2. 시 89:14, 97: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과 통치 방식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시89: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시97:2]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답: 의와 공의가 그의 보좌의 기초이다. 그분은 의와 공의(공평)으로 만유를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통치는 “의와 공의” 그리고 “인자함과 진실함”을 포괄한다. 이런 도덕적 속성은 인간 세계에서 그분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설명하며, 온 우주 속에서 그분의 지위를 강조한다. 그분의 통치를 이루는 이러한 속성은 또한 그분이 자기 백성들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기를 바라는 속성들과 동일하다(미 6:8을 사 59:14과 비교해 보라.).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마치 땅이 하나님의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귀중한 곡식을 산출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하게 될 것이었다”(재림신도의 가정, 144).
<부가설명>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그의 통치는 공평하시다. 그분이 의로우신 것은 그분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공평하신 것은 그분의 생명의 성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곳은 모든 것이 공평하다. 해와 비를 의인이나 악인에게 제한없이 주신다. 공기도 그렇다. 죄로 인하여 산과 땅과 물이 편중되게 산재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가장 필요한 공기와 해와 별과 달은 어디서든지 공평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 공기를 공평하게 주시지 않았다면 사람이나 동식물이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다 사용할 수 있게 하셨다. 물론 물이 모자라는 곳이 있지만 땅이 저주를 받아 생긴 결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한 없이 공급하신다. 어디서든지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비록 죄가 들어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하라는 교훈으로 받아야 한다.
교훈 : 하나님은 하늘에 보좌를 세우신 온 우주의 왕이시며, 그분의 도덕적 품성은 세상을 다스리는 그분의 통치 원리이자 우리가 반사해야 할 모습이다.
셋째 날(화) 하늘의 예배
10월 1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1. 계 4~5장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하늘 거처에 대하여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또한 이 말씀 속에는 구원의 계획이 어떤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는가?
[계4:1~11] 여기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변과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내용.
[계5:1~14] 여기는 아들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다.
답: 이 장면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께서 실제로 거처하는 곳이 있다는 것과 그곳이 하늘 보좌이며 그 주위에는 시위하는 천상의 존재들이 항상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보좌 주위에 계신 것을 통하여 구원의 계획이 그 보좌에서 이루어지도 실행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특히 5:9,10은 어린양 예수께서 구원하신 사실을 기록하였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를 생각하게 한다.
하늘 보좌가 있는 공간에 대한 이상은 곧 하늘 성소에 관한 이상이다. 이는 히브리 종교 체계를 언급하는 언어들을 볼 때 확실하다. 예를 들면 계 4:1에 “문”나 “나팔”과 같은 그리스어는 칠십인역(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에 자주성소와 관련하여 등장한다. 계 4:3에서 언급된 보석은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에 붙이는 보석에 포함된다. 일곱 등불은 솔로몬 성전의 등잔대를 연상케 한다. 24장로는 금대접에 ‘향’(시 141:2)을 피워 기도의 제사를 드리며 일 년 동안 돌아가며 성전에서 봉사했던 제사장들의 24반차를 상기시킨다. 이 모든 성경절은 지상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구약의 예배를 가리키고 있다.
계시록 5장에 등장하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은 물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가리킨다. 우리의 거룩한 구원의 중보자이신 어린 양 그리스도는 그분의 승리(계 5:5)와 희생(계 5:9, 12)과 신성(계 5:13)으로 인하여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게 여김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인성을 쓰시고 생애를 희생물로 드리심으로 인간이 신성을 나누어 받는 자가 되어 영생을 얻게 하셨다”(가려 뽑은 기별 3권, 141).
우리는 계 4~5에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이 보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또한 대쟁투 속에 있는 핵심 주제, 즉 그분의 사역이 하늘의 다른 지적 존재들 앞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을 본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되 사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계시하신다. 계시로 보여주시는 형상은 실상(實狀)일 수도 있고, 또 계시적 형상일 수도 있다. 다니엘과 계시록의 많은 장면들은 계시적 형상이. 계1장에 일곱 촛대 사이에 계시는 예수님은 그 입에서 날카로운 칼이 나온다고 묘사되어 있고 발은 주석 같다고 기록되었다. 이런 기록들은 계시적 형상이지 실제적 형상이 아니다. 짐승으로 표현된 것도 계시적 형상이. 독수리 날개 달린 사자가 바벨론을 상징하는 계시적 형상이지 바벨론의 실상이 아닌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4,5장에 보이는 보좌와 보좌 주위 광경이 실상인지 계시적 형상인지 우리는 분간하기 어렵다.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묘사했다가 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이라고 묘사한 예수님에 대한 묘사도 계시적 형상이. 예수님은 어린양의 모습도 아니고 사자의 모습도 아니다. 그러나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실 때에 그렇게 볼 수 있도록 하셨다는 말이. 이런 것을 나는 계시적 형상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묘사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고 성경이 성경을 풀어주는 원칙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 묘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구원하시는 은혜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훈 : 계시록 4~5장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예배의 장면은 성소를 연상케 하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넷째 날(수) 법정
10월 2일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시 9:4).
1. 시 11:4~7, 합 2:20을 읽어 보라. 하늘 성전에서 하나님은 또 어떤 일을 하시는가? 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가?
[시11:4~7]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합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답: 하늘 성전에서 인생을 살피시고 공의로 그들을 돌보신다. 또 심판하셔서 상벌을 집행하신다. 온 천하는 그분 앞에 잠잠함이 좋다.
여러 시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의인의 필요와 그들이 당하는 불의에 무관심하시지 않다. 하나님은 시정을 요구하는 음성에 반응하시며 훌륭한 판사처럼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신 25:1)하신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보좌가 있는 곳은 법정이 되며, 하늘 보좌는 심판석이 된다. 보좌에 앉은 분이 심판하시는 분이시다(시 9:4~8). 이는 왕이 재판장의 역할을 했던 고대 근동에서는 잘 알려진 개념이다.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모두 심판한다. 악인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받은 유사한 형벌을 당하는 반면, 의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것이다(시 11:6~7). 단 7:9~14은 보좌와 심판을 결합한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 심판은 두 가닥으로 구성된다. 성도들을 위해서는 옹호의 선언이 있고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해서는 정죄의 선고가 내려진다.
하박국서에서 선지자가 하나님께 왜 불의에 침묵하시는지 묻자, 하나님은 언젠가 반드시 심판하시리라 대답하신다(합 1장, 2:1~5). 우상들은 ‘숨’도 없고 ‘영’도 없다(합 2:19).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그의 성전 곧 하늘 성소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
선지자는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고 호소한다.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두려운 마음으로 침묵하며 잠잠히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특별한 임재를 나타내시며 천상의 존재들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곳은 모든 인류를 위해 의로운 심판을 베푸는 곳과 같은 공간, 즉 하늘 성소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의 공의에 대한 모든 질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때가 아닌 그분이 정하신 때에 응답될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 위에 인용한 시편에 기록한 대로 악인은 불과 유황으로 타게 될 것이고 의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불과 유황으로 타는 악인들, 죄인들은 계속 타면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타서 재가 되면 존재가 없어진다. 그들은 존재 자체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한 사망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사람들은 산 자들이다. 살아 있어야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산 자가 아니면 그의 얼굴을 뵈올 수 없다. 이런 말씀들을 잘 생각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죽은 자를 죽은 자의 땅으로 산 자를 산 자의 땅으로 보내시는 것이 심판의 본질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한다고 한 것이고 그것이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선은 산 자들이고 악은 죽은 자들이다. 이것을 알 수 있도록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막3:4) 선을 행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과 악을 도덕적 관점에 고정하여 이해하려고 하면 성경의 선악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할 수 있다. 도덕적으로 악한 자도 최후는 죽는 것이다. 산 자는 생명이신 예수님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고 죽은 자는 예수님이 없는 자이다.(요일5:11~13) 우리가 산 자인지 죽은 자인지 스스로 알 수 있지 않을까?
교훈 :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시는 재판장이고, 그 공간은 하나님이 경배를 받는 성전이자 심판을 베푸는 법정이기도 하다.
다섯째 날(목) 구원을 베푸는 곳
10월 3일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히 8:1).
1. 히 8:1~2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히8:1,2]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답: 하늘의 참 장막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신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봉사한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에 초점을 맞춰 일하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히 9:24)신다. 그분은 우리를 동정하시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근거로 우리가 버림받지 않고 긍휼과 은혜를 받으리라고 보증하신다(히 4:15~16).
지상 성소와 마찬가지로 하늘 성소에서도 신자들을 위한 ‘속죄’가 이루어진다(히 2:17). 이렇게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은 하늘에서도 우리를 위해 봉사하신다.
2. 계 1:12~20, 8:2~6, 11:19, 15:5~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성소와 관련된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가?
[계1:12~20]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8:2~6]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6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계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계15:5~9]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답: 예수님은 성소에서 봉사하시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것임을 가르친다. 또 천사가 제단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받아서 향연과 함께 하나님께 올리며, 언약궤가 있고, 하늘 성전에서 심판과 그 집행을 한다.
이 말씀들은 지상 성소에서 봉사하는 사실에 의하여 하늘에서 성소 봉사하는 사실을 알도록 가르쳐주는 계시적 형상이다.
위의 성경절들은 계시록에서 성소와 관련된 이미지가 나타나는 곳 가운데 일부이다. 사실 계시록을 크게 나누면 각 부분은 성소의 장면으로 시작하거나 성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서론적인 장면에서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의 복장을 입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계 1:12~20). 둘째 장면에서 계시록은 하늘 보좌가 있는 곳을 공개하는데 여기서 보좌, 등불, 바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 피, 향을 담은 금대접과 같이 성소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계 4~5장). 셋째 장면은 하늘 성소의 첫째 칸에서 이루어지는 매일의 중보 사역을 다룬다(계 8:2~6).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넷째 장면은 성소의 두 번째 칸에 있는 언약궤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여 준다(계 11:19). 다섯째 장면은 하늘 성막의 전반적인 모습을 그린다(계 15:5~8). 여섯째 장면은 특이하게도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가 끝났음을 암시하듯이 성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계 19:1~10). 마지막 장면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도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막처럼 묘사하고 있다(계 21:1~8).
이 장면들을 자세히 연구하면 그것들이 서로 연관되어있고, 하나님 이 베푸시는 구원에는 어떤 내적 과정, 즉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다음에, 하늘 성소의 첫째 칸과 둘째 칸에서의 봉사가 있고, 그다음에는 그분의 대제사장 봉사가 종결되며, 마지막으로 지구에 새로운 장막이 임한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부가설명> 하늘 성소에 대한 묘사들은 참 쉽지 않다. 하늘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면 그곳이 바로 하늘이 아니겠는가. 옛날 임금이 행차하여 머물면 그곳이 바로 궁전이었다. 그것을 행궁이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하늘이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룰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구원의 도리를 시청각 교재로 만들어 주신 것이 세상에 지으라고 한 성소요 성전이다. 그 성전의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구원의 도리이다. 하나님께서 성소를 지으라고 하실 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시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임마누엘이다. 그 성소 임마누엘의 원형이요 실상은 바로 임마누엘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의 여러 측면을 시청각 교재로 만들어서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렇게 하시고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하늘을 바로 세상에 만들라고 한 그 성소의 구조를 가지고 설명하신다. 왜냐하면 그 성소만 사람들이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짓게 한 그 성소의 구조와 봉사와 기구들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다. 그것을 하늘을 설명할 때 사람들이 알게 된다. 하늘에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봉사는 모두 세상에 짓게 하셨던 성소에서 행한 봉사를 통하여 알게 하신 것이다. 이런 성경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하늘 성소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닌가?
교훈 :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는 예수님의 하늘 성소 봉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으로 일하신다.
여섯째 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10월 4일
“바울은 하늘의 광경을 보았다. 그가 하늘에 있는 그 영광에 관해 말을 하려고 할 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묘사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우리에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의 상상의 날개를 한껏 펴 볼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온 능력을 다 경주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일에 지치고 피로한 그대의 지각으로는 그 실상을 붙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 너머에는 무한한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영광을 다 펼쳐 보고 하나님의 말씀의 귀한 보화를 다 깨달으려면 영원이라는 시간이 다 소요될 것이다”(화잇 주석, 고후 12:4).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을, 수종하는 자가 천천이요 시위하는 자가 만만이나 되는 만왕의 왕이 거하시는 곳(단 7:10 참고), 그 시위하는 영화로운 스랍들이 경배하고 머리를 숙이는, 영원한 보좌가 있는, 영광으로 충만한 하늘 성소와 비교하면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한 건물일지라도, 그 무한한 영광과 웅장함에 대한 극히 희미하고 미약한 반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상의 성소와 그 봉사를 통하여 하늘 성소에 관한 중요한 진리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진행되는 주님의 봉사를 배우게 되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41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엘렌 화잇의 인용문에서 지상 성소를 통해 배워야 했던 우리 구원을 위한 “중요한 진리”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어떤 진리들을 말하며 왜 그것들이 중요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봉사에 대한 진리이다.
➋ 하나님이 하늘에 ‘거하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대는 이런 개념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 하나님은 실체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실제가 거하시는 곳이 있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 아니겠는가. 그분이 어디에 계시든지 그분이 계시는 그 곳이 하늘이라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되겠는가.
➌ 이번 주 교과는 우주가 인류를 위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개념을 다루었습니다. 왜 이러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런 개념은 대쟁투 주제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이런 개념은 전체 구원의 계획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합니까? 이런 개념은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조사할 여지를 두시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무엇을 말합니까?
※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통치하시기 때문에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며, 선악 간의 대쟁투의 심판이 있다는 것은 곧 악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사망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처리하시고 예수 안에서 산 자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산 자의 땅에서 산 자의 하나님이신 그분과 함께 살게 하신다는 공의와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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