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기 제 1 과 하늘 성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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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3-09-26 10:11 조회4,834회 댓글0건첨부파일
- 제 1 과 하늘 성소(박용범).hwp (16.5K) 139회 다운로드 DATE : 2013-09-26 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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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하늘 성소
기억절:“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왕상8:49)
*2013년도 제 4기는 총 주제가 구원의 청사진입니다.
하나님의 품성과 가장 위대한 사랑의 계시가 드러난 곳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성소입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품성을 열어서 보여 줍니다. 성소를 예식이나 형식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것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께로 끌리게 될 것입니다.
첫째 날(일) 하나님의 거처
*도입질문: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어디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즉 어느 곳이나 임재하십니다.
우주와 그 외의 어떤 곳에도 동시에 나의 마음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틀이나 차원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한정된 곳일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셔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와 그 외의 어떤 장소라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됩니다.
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장소인 하늘에 계신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 성소라는 좀 더 한정된 작은 공간 속에 거하시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만드신 우주를 초월해 계시는 창조주께서 하늘이나 하늘 성소라는 특정한 곳에 계시는 것처럼 표현했다면 그것은 특별한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구라고 하는 곳의 한정된 장소와 지금 거처하고 있는 더 작은 한정된 장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하늘이라고 한정하는 것이 어쩌면 무소부재 하시는 하나님 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보다 더 안정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에 하늘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언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늘 성소도 사실 하나님께는 거하실 공간이나 장소가 필요치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성소(렘17:12)이지만 하나님의 품성을 잘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속의 청사진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둘째 날(월) 보좌가 있는 곳
*도입질문: 보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보좌란 왕의 자리라는 의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왕이 되심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방식은 하나님의 품성대로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이란 절대적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므로 우주를 다스리는 원칙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린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섬긴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마20:28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큰 자가 낮은 자를 섬겨야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칙입니다.(마20:25-27)
우주에서 가장 큰 분은 우주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존재들을 섬기기 위해서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121:4)셔야 합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을 떠나 사망 속에 있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은혜를 주고 싶은 사랑이었습니다.(롬5:20)
창조주가 가지신 절대적 사랑을 피조물인 루스벨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합리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사랑의 원칙으로는 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반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루스벨은 하나님의 능력은 원했으나 품성은 원하지 않았다”(소망, 435)
하나님의 품성이 우리의 마음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때 하나님의 보좌가 우리 마음에 좌정하게 됩니다.
셋째 날(화) 하늘의 예배
*도입질문: 하늘 예배의 핵심가치는 무엇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늘 예배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 천사들의 합창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5:13)
어린 양이란 칭호 속에 하늘 예배의 핵심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신하여 어린 양처럼 돌아가실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하늘 예배의 핵심은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까지도 주시는 하나님,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대속물로 주심으로 섬기시는 하나님, 의지의 자유를 주시고 의지의 자유 속에 선택한 것에 대하여 조건적으로 처리하지 않으시고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선택의 자유를 주신 분께서 모든 책임을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품성에 감동되어 찬양하게 되는데 있습니다. (빌2:5-11)
넷째 날(수) 법정
*도입질문: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심판이라고 하면 흔히 집행을 떠올리지만 심판이란 판단해주는 것입니다.
선언하는 말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나온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었는지? 신앙이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를 판단해주고 선언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은 하나님의 품성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심판석이 된다면 그 심판은 그 심판을 하시는 분의 품성대로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 안에서 하는 판단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고 싶으셔서 하는 판단입니다.(요12:47)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만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를 보여주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 하나님과 분리된 선택이었다면 그 선택을 되돌리도록 성령으로 호소하시지만 자신이 생각을 고집하여 끝까지 성령의 호소를 거절하면 그 선택을 인정하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잠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품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 악인을 죽입니다.(시34:21)
사람이 스스로를 정죄합니다.(창4:13-14)
그러므로 정죄하고 집행 하시는 분이기에 무서움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을 알기에 두려우리만큼 놀라운 감동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날(목) 구원을 베푸는 곳
*도입질문: 하나님의 보좌를 성소에서 사용하는 용어로는 어떻게 불렀는가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말하며, 성소에서는 그룹천사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법궤 뚜껑인데 그곳을 성소 용어로는 시은좌,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시은좌란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는 뜻이고, 속죄소란 죄를 속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베풀고 죄를 속하는 근거는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피(생명)입니다.
아담과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선택이 결과를 그 사람들에게 지우지 않으시고 아담과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책임지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품성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인 시은좌 혹은 속죄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보여 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행하시는 구원의 청사진이 바로 성소에서 그대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성소이십니다.
기억절:“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왕상8:49)
*2013년도 제 4기는 총 주제가 구원의 청사진입니다.
하나님의 품성과 가장 위대한 사랑의 계시가 드러난 곳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성소입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품성을 열어서 보여 줍니다. 성소를 예식이나 형식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것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품성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께로 끌리게 될 것입니다.
첫째 날(일) 하나님의 거처
*도입질문: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어디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즉 어느 곳이나 임재하십니다.
우주와 그 외의 어떤 곳에도 동시에 나의 마음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틀이나 차원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한정된 곳일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셔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와 그 외의 어떤 장소라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됩니다.
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장소인 하늘에 계신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 성소라는 좀 더 한정된 작은 공간 속에 거하시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만드신 우주를 초월해 계시는 창조주께서 하늘이나 하늘 성소라는 특정한 곳에 계시는 것처럼 표현했다면 그것은 특별한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구라고 하는 곳의 한정된 장소와 지금 거처하고 있는 더 작은 한정된 장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하늘이라고 한정하는 것이 어쩌면 무소부재 하시는 하나님 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보다 더 안정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에 하늘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언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늘 성소도 사실 하나님께는 거하실 공간이나 장소가 필요치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성소(렘17:12)이지만 하나님의 품성을 잘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속의 청사진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둘째 날(월) 보좌가 있는 곳
*도입질문: 보좌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보좌란 왕의 자리라는 의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왕이 되심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방식은 하나님의 품성대로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이란 절대적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므로 우주를 다스리는 원칙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린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섬긴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마20:28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큰 자가 낮은 자를 섬겨야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칙입니다.(마20:25-27)
우주에서 가장 큰 분은 우주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존재들을 섬기기 위해서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121:4)셔야 합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을 떠나 사망 속에 있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은혜를 주고 싶은 사랑이었습니다.(롬5:20)
창조주가 가지신 절대적 사랑을 피조물인 루스벨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합리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사랑의 원칙으로는 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반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루스벨은 하나님의 능력은 원했으나 품성은 원하지 않았다”(소망, 435)
하나님의 품성이 우리의 마음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때 하나님의 보좌가 우리 마음에 좌정하게 됩니다.
셋째 날(화) 하늘의 예배
*도입질문: 하늘 예배의 핵심가치는 무엇입니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늘 예배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 천사들의 합창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5:13)
어린 양이란 칭호 속에 하늘 예배의 핵심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신하여 어린 양처럼 돌아가실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하늘 예배의 핵심은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까지도 주시는 하나님,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대속물로 주심으로 섬기시는 하나님, 의지의 자유를 주시고 의지의 자유 속에 선택한 것에 대하여 조건적으로 처리하지 않으시고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선택의 자유를 주신 분께서 모든 책임을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품성에 감동되어 찬양하게 되는데 있습니다. (빌2:5-11)
넷째 날(수) 법정
*도입질문: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심판이라고 하면 흔히 집행을 떠올리지만 심판이란 판단해주는 것입니다.
선언하는 말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나온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었는지? 신앙이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를 판단해주고 선언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은 하나님의 품성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심판석이 된다면 그 심판은 그 심판을 하시는 분의 품성대로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 사랑 안에서 하는 판단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습니다.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고 싶으셔서 하는 판단입니다.(요12:47)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만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를 보여주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 하나님과 분리된 선택이었다면 그 선택을 되돌리도록 성령으로 호소하시지만 자신이 생각을 고집하여 끝까지 성령의 호소를 거절하면 그 선택을 인정하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잠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품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 악인을 죽입니다.(시34:21)
사람이 스스로를 정죄합니다.(창4:13-14)
그러므로 정죄하고 집행 하시는 분이기에 무서움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을 알기에 두려우리만큼 놀라운 감동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날(목) 구원을 베푸는 곳
*도입질문: 하나님의 보좌를 성소에서 사용하는 용어로는 어떻게 불렀는가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을 말하며, 성소에서는 그룹천사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법궤 뚜껑인데 그곳을 성소 용어로는 시은좌,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시은좌란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는 뜻이고, 속죄소란 죄를 속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베풀고 죄를 속하는 근거는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피(생명)입니다.
아담과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선택이 결과를 그 사람들에게 지우지 않으시고 아담과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침으로 책임지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품성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인 시은좌 혹은 속죄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보여 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행하시는 구원의 청사진이 바로 성소에서 그대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성소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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