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예수: 공급자와 유지자(질문, 대답, 부가설명)0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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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2-15 22:07 조회8,668회 댓글0건본문
2월 23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9분
기억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연구 범위: 히 1:3, 골 1:16~17, 욥 42장, 마 5:45, 마 6:25~34, 마 10:28.
우주가 하나님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내버려 둔 기계처럼 비유되곤 하는데, 하나님은 그와 같은 규칙적인 방식으로 창조 세계를 유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라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창조 세계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악기로 비유하는 편이 훨씬 낫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를 지탱하는 일에 끊임없이 관여하신다.
우주에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그뿐 아니라,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유지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만물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는 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고 밝히 말하였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달려 있게 하고, 우주 만물을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활동하도록 붙드는 손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다”(교육,132).
※ 학습 목표
1. 깨닫기: 세계를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왜 각자의 영적 삶에 중요한지 이해한다.
2. 느끼기: 영적인 삶을 지탱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3. 행하기: 삶을 유지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더 온전히 의지하도록 노력한다.
A.
2.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돌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저절로 움직이도록 방치하십니까?
※ 하나님은 친히 매 순간마다 돌보신다.
3. 마 6:25~34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 세계와 인간을 어떻게 돌보고 계십니까?
※ 새와 백합화보다 더 확실하게 돌보신다.
4.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서로 이야기해 보십시오.
※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친히 돌보신다고 약속하셨고 독생자를 보내어 확실한 보증을 주셨기 때문이다.
B.
2. 이신론, 범신론, 만유재신론은 하나님과 창조 세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잘못 설명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는 피조물을 자동으로 돌아가게 하셨지 친히 돌보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3. 타락 후에도 하나님이 인류와 세계를 돌보고 계신다는 성경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4.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천연계를 통해 섭리하신 예가 있다면 서로 나눠 봅시다.
※ 반생들의 경험을 서로 나누어봅시다.
결론: 피조물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하나님이 유지시키시려 하는 목적 내지 설계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첫째날(일) 2월 17일
유지자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1. 히 1:3과 골 1:16~17을 일어 보라. 우주가 지속적인 존재하는 데 있어 예수께서 하시는 역할은 무엇인가?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답: 예수께서 만물을 붙드시고 계신다. 그분 안에서 만물이 제 자리를 유지하고 존속하는 것이다.
2. 고전 8:6과 행 17:28을 읽어 보라. 바울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답: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
3. 위의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 의지나 선택의 자유를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존재의 요소들이 우리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우리의 자유의지나 선택의 자유는 지극히 제한된 것이다. 존재와 생명에 관한 한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는 전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을 그대로 받느냐 거절하느냐는 반응이 유일한 선택일 뿐이다.
<부가설명> 나는 교과공부에 부가설명을 쓰면서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에 대하여 여러 번 말한 것 같다. 우리는 자유의지 선택의 자유라는 단어에 엄청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문제 답에 썼지만, 존재와 생명에 있어서는 전혀 자유의지도 선택의 자유도 없다. 그것은 생명과 바른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사람에게 겨우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에 달려있다는 말인가? 나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재창조를 위하여 희생하신 예수님께 달려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우리를 이미 선택하셨다. 그 선택의 아름다운 사랑을 십자가로 증명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선택에 긍정적 반응을 하라고 요청하신다. 긍정적 반응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은 부정적 반응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택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눈물을 머금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신다. 결과는 부정적 반응을 한 사람의 존재와 생명을 반납 받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형벌을 받되, 그 기간과 정도는 다르나 최종적으로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와 자비에 모순되도록 죄인을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이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간직할 자격이 없음을 입증한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취하신다.”(쟁투544) 우리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는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반응하는 것뿐임을 깨닫는 것은 성경의 구원의 도리를 바르게 깨닫는데 유익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해 계시며 만물을 유지하신다. 그분은 우주에 의존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우주와 인간이 그분께 의존하고 있다.
둘째날(월) 2월 18일
관대하신 공급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
1. 창 2:8~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에서 음식을 제공하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가?
[창2:8,9]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답: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 아름답고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 것을 알 수 있다.
2. “자연은 힘이지만, 자연의 하나님은 그 힘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지 않으시다. 그분의 사업이 그분의 품성을 설명한다. 위인들의 가정(假定)으로가 아니라 그분이 손으로 하신 일로 그분을 판단하는 자들은 그분의 임재를 모든 것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309). 천연계를 바라보라. 어떤 통로로 우리는 모든 것에서 그분의 임재를 볼 수 있는가?
답: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천연계를 볼 때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서 창조주의 임재를 볼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생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지 않는 한 죽음은 그들과 전혀 상관없었다. 사람들이 건강과 생명을 위하여 음식을 먹어야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먹을 것을 동산에 가득 베풀어주셨다. 그것은 즐거움을 위하여 베푸신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아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때에 우리는 죽을 수 없는 생명으로 부활한다.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부활한다. 그래도 생명과를 먹고 하늘나라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것을 먹어야 생명과 힘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불멸의 몸을 입었다. 그런데도 먹는다. 그것은 생명의 특권이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행복이다. 우리가 에덴동산에서도 먹어야 생명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실을 존중하는 생각이 아니다. 창조주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 외에 결코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신 일이 없다.
교훈: 하나님은 지상의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필요한 식물을 제공하심으로써 그분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증명하신다.
셋째날(화) 2월 19일
자연적인 죄악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1. 욥기 42장을 읽어 보라. 이 성경 장은 우리에게 어떤 해답을 주는가?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의문은 무엇인가?
[요42:1~9]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답: 욥기는 천연계의 재난을 사단이 주장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죄의 세상에서 천연계도 역시 죄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기의 중심 사상은 도덕론적 종교와 창조론 종교의 대조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모든 주석가들이나 신학자들, 목회자들이 의인이 당하는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욥기는 창조주께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전적으로 창조주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 사단에게 천연계를 주장할 기회를 하락하시는 것도 알 수 있다. 남은 의문이란 왜 사단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하셨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것도 욥기의 주제를 알면 풀리는 의문이다. 생각해보기 바란다.
2. 안식일 소지로 돌아가서 엘렌 G. 화잇의 인용문을 읽어 보라. 하나님도 죄악의 문제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계심을 아는 것은 우리가 죄악의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하는 데 얼마큼 도움이 되는가?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는 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고 밝히 말하였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달려 있게 하고, 우주 만물을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활동하도록 붙드는 손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다”(교육,132).]
답: 하나님의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온 우주에 드러내셨다. 죽기까지 고통당하셨다. 그 십자가의 못 박힌 손, 즉 고통의 흔적을 가진 그 손으로 지금도 이 지구상의 천연계를 유지해 주신다. 그것은 엄청난 사랑이다.
<부가설명> 욥기는 어려운 책으로 생각되는 성경이다. 거기에는 심오한 인생철학이 있다고들 말한다.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욥기는 의인의 고난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욥기는 주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이다. 욥기의 주제는 도덕론 종교와 창조론 종교를 대조한 것이다. 욥을 비롯하여 욥의 세 친구는 도덕론 종교의 대표자들이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재앙이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죄를 짓지 않고 이런 재앙을 당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 자녀들의 죽음도 그들이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욥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도덕론 신앙가였다. 그런데 지금 재앙을 당하면서 자기 신앙과 신관(神觀)에 혼란을 겪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이런 재앙을 받아야 할 도덕적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도 끔직한 재앙이 왜 자기에게 임하는가? 하나님 대답 좀 해보시오. 그러면서 욥은 29장부터 31장까지 자기의 도덕적 선행들을 나열한다. 이런 종교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선행에 따라 보상해야할 책임이 있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선행을 하나님께 빚을 지우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욥기가 바로 이런 그릇된 종교와 신앙을 폭로하고 있다, 38장부터 친히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도덕론에 대하여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신다. 다만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서만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렇게 존재하게 된 우주와 만물을 친히 섭리하시며 모든 피조물은 천사거나 사람이거나 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안에서 생존하고 생활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선을 행하는 자도 악을 행하는 자도 다 창조 받아 생존한다는 사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를 깨닫도록 우회적으로 말씀하셨다. 욥은 그것을 알아들었다. 자기는 죄가 없다고 그렇게 버티던 욥이 더디어 무릎을 꿇고 재에 앉아 회개한다. 자기의 종교와 신앙, 자기의 하나님 관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도 이런 욥의 회개가 필요하다.
교훈: 우리는 천연계 속에서 벌어지는 재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찾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 죄악이 존재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넷째날(수) 2월 20일
훼손된 창조 세계를 통치함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 5:45).
1. 마 5:45과 시 65:9~10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돌보기 위해 창조 세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시는가? 이는 창조된 세계에 대한 그분의 관심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는가?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시65:9,10]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답: 해와 비를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베풀어주시고, 농사하여 먹고 생활하는 일을 일일이 친히 돌보시는 것을 가르쳐준다.
2. 다음의 말씀에 어떤 유사한 현상들이 언급되었는가? 창 8:1, 출 10:13, 민 11:31.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출10: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에 미쳐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들인지라.
[민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답: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바람을 친히 일으키시고 사용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부가설명> 시인은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119:91)라고 기록하였다. 만물이 창조주의 종이다. 창조주께서 말씀하시면 천연계는 그대로 순종한다. 바다의 파도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 외에도 예수께서 행하신 자연표적들은 그분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보여준다.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천연계도 죄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지만, 죄인 된 사람들을 일정기간 생존하게 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명령을 이루도록 죄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셨다. 그것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인데, 곧 처음 창조한 상태대로 천연계가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변질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죄의 세상이 되고 죄인이 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배려이다. 천연계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위하여 창조주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교훈: 하나님은 죄의 영향으로 손상을 입은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그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일하시며 때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기이한 방식으로 섭리하신다.
다섯째날(목) 2월 21일
훼손된 창조 세계를 위한 공급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1. 마 6:25~3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핵심적인 기별을 주셨는가? 수많은 사람이 겪는 시련과 비극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마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답: 천연계를 창조주께서 일일이 돌보신다는 것을 계시하셨다. 그것들을 그렇게 돌보시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을 돌보시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이 당하는 시련과 비극들은 욥기 사건으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죄가 끼치는 영향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애3:39)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2,33)
2. 오늘 교과에 나온 말씀들과 연관해서 마 10:2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가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답: 이 세상에서는 환난과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가 빚은 모든 죄악의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며 죄와 죄에 속한 것들은 완전히 멸하게 될 것을 가르쳐주신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은 지나가는 세상인 것을 알고 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있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지나가는 세상의 주인노릇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단의 단말마적인 행패가 환난과 고통으로 드러난다. 물론 사단은 세상을 환난과 고통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누가 사단의 기만에 당하겠는가. 그는 이 세상은 자기에게 넘겨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절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줄 수 있다고 예수님께 대들었다.(눅4:5,6) 그는 자기 때가 얼마 못 된 줄 알기 때문에 크게 분 내어 세상에서 활동한다. 그래서 땅과 그 가운데 있는 것들이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12:12)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마귀는 이미 없어지게 되었다.(히2:14)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비로 고난을 받을지라도 인내하며 연단을 견딘다. 마침내 정금 같이 되어 하늘 예루살렘의 황금기를 걷게 될 것이다. 아멘.
교훈: 하나님은 범죄 이후에도 인간의 필요를 채우신다. 우리에게 갑작스런 재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을 수 있다.
여섯째날(금) 2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그분께서 행하셨거나 하실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의 법으로 말미암아 제약을 받으신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다. 사람들은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는가 하면 만물, 심지어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그분의 이름을 존경하거나, 그분의 권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이나 그 법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무한한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대로, ‘자연의 법칙’은 물질세계를 주관하는 법들에 관하여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은 얼마나 제한되어 있으며, 창조주께서 유한한 존재들에게는 전적으로 이해될 수 없지만 당신 자신의 법들과 조화되게 일하실 수 있는 분야는 얼마나 광범위한가!”(부조와 선지자, 114, 교회증언 8권, 259~261 ‘자연의 법칙’도 참고하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에 있는 엘렌 화잇의 인용문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그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수많은 과학자는 어떤 방식으로 엘렌 화잇의 말처럼 시도하려고 합니까?
※ 하나님과 그분의 하시는 일을 이 세상 사람들, 비록 과학자들이라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들은 천연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법칙을 밝히는 것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 수 있다고 시도한다. 그러나 가능하지 않다.
➋ 현대 과학은 자연적인 수단을 통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 또는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과거보다 훨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연적인 수단’ 또는 ‘자연의 법칙’에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러한 수단 내지 법칙 외에는 아무것도, 그 배후에 어떤 초자연적인 세력도 없다고 보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그런 가정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습니까? 왜 그런 생각에는 논리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그런 법칙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왜 그러한 사상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과 반합니까?
※ 과학은 천연계에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법칙을 발견하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천연계가 어떻게 그런 법칙으로 존재하고 유지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발생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있게 했기 때문에 있는 것들일 뿐이다.
➌ 창조 세계를 하나의 악기로 보는 관점은 그것을 하나의 기계로 보는 관점보다 하나님과 창조 세계의 관계에 대하여 얼마나 더 정확한 모습을 제공합니까?
※ 그것은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친히 연주하신다는 비유로서 기계로 비유하면 처음에 돌아가게 한 다음에는 기계에 입력해놓은 규칙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지만 악기는 연주자가 반드시 연주해야 악기의 기능을 나타낸다. 모든 피조물도 창조주께서 친히 돌보실 때 제 몫을 다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섭리의 손길을 떠나서 운행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➍ 우리가 단지 “자연의 힘”만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신 예가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왕상 19:11~12을 참고하십시오.
※ 왕상 19장은 엘리야가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바람과 지진과 불을 일으킨 내용이다. 그런 것은 강한 바람으로 홍해를 가르신 사건도 있고, 여호수아 때에 태양을 머물게 한 사건과 히스기야 때에 해시계의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한 일도 있다. 그 외에도 천연계의 사물들을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 사용하신 예는 성경에 여러 번 기록되었다. 홍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일몰: 오후 6시 19분
기억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연구 범위: 히 1:3, 골 1:16~17, 욥 42장, 마 5:45, 마 6:25~34, 마 10:28.
우주가 하나님이 스스로 작동하도록 내버려 둔 기계처럼 비유되곤 하는데, 하나님은 그와 같은 규칙적인 방식으로 창조 세계를 유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라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창조 세계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악기로 비유하는 편이 훨씬 낫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를 지탱하는 일에 끊임없이 관여하신다.
우주에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그뿐 아니라,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유지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만물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는 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고 밝히 말하였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달려 있게 하고, 우주 만물을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활동하도록 붙드는 손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다”(교육,132).
※ 학습 목표
1. 깨닫기: 세계를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왜 각자의 영적 삶에 중요한지 이해한다.
2. 느끼기: 영적인 삶을 지탱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3. 행하기: 삶을 유지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더 온전히 의지하도록 노력한다.
A.
2.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돌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저절로 움직이도록 방치하십니까?
※ 하나님은 친히 매 순간마다 돌보신다.
3. 마 6:25~34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 세계와 인간을 어떻게 돌보고 계십니까?
※ 새와 백합화보다 더 확실하게 돌보신다.
4.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서로 이야기해 보십시오.
※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친히 돌보신다고 약속하셨고 독생자를 보내어 확실한 보증을 주셨기 때문이다.
B.
2. 이신론, 범신론, 만유재신론은 하나님과 창조 세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잘못 설명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는 피조물을 자동으로 돌아가게 하셨지 친히 돌보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3. 타락 후에도 하나님이 인류와 세계를 돌보고 계신다는 성경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4.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천연계를 통해 섭리하신 예가 있다면 서로 나눠 봅시다.
※ 반생들의 경험을 서로 나누어봅시다.
결론: 피조물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하나님이 유지시키시려 하는 목적 내지 설계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첫째날(일) 2월 17일
유지자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1. 히 1:3과 골 1:16~17을 일어 보라. 우주가 지속적인 존재하는 데 있어 예수께서 하시는 역할은 무엇인가?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골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답: 예수께서 만물을 붙드시고 계신다. 그분 안에서 만물이 제 자리를 유지하고 존속하는 것이다.
2. 고전 8:6과 행 17:28을 읽어 보라. 바울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답: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
3. 위의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 의지나 선택의 자유를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존재의 요소들이 우리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우리의 자유의지나 선택의 자유는 지극히 제한된 것이다. 존재와 생명에 관한 한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는 전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을 그대로 받느냐 거절하느냐는 반응이 유일한 선택일 뿐이다.
<부가설명> 나는 교과공부에 부가설명을 쓰면서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에 대하여 여러 번 말한 것 같다. 우리는 자유의지 선택의 자유라는 단어에 엄청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문제 답에 썼지만, 존재와 생명에 있어서는 전혀 자유의지도 선택의 자유도 없다. 그것은 생명과 바른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사람에게 겨우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에 달려있다는 말인가? 나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재창조를 위하여 희생하신 예수님께 달려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우리를 이미 선택하셨다. 그 선택의 아름다운 사랑을 십자가로 증명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선택에 긍정적 반응을 하라고 요청하신다. 긍정적 반응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은 부정적 반응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택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눈물을 머금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신다. 결과는 부정적 반응을 한 사람의 존재와 생명을 반납 받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형벌을 받되, 그 기간과 정도는 다르나 최종적으로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와 자비에 모순되도록 죄인을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이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간직할 자격이 없음을 입증한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취하신다.”(쟁투544) 우리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는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반응하는 것뿐임을 깨닫는 것은 성경의 구원의 도리를 바르게 깨닫는데 유익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해 계시며 만물을 유지하신다. 그분은 우주에 의존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우주와 인간이 그분께 의존하고 있다.
둘째날(월) 2월 18일
관대하신 공급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
1. 창 2:8~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에서 음식을 제공하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가?
[창2:8,9]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답: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 아름답고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 것을 알 수 있다.
2. “자연은 힘이지만, 자연의 하나님은 그 힘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지 않으시다. 그분의 사업이 그분의 품성을 설명한다. 위인들의 가정(假定)으로가 아니라 그분이 손으로 하신 일로 그분을 판단하는 자들은 그분의 임재를 모든 것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309). 천연계를 바라보라. 어떤 통로로 우리는 모든 것에서 그분의 임재를 볼 수 있는가?
답: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천연계를 볼 때에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서 창조주의 임재를 볼 수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생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지 않는 한 죽음은 그들과 전혀 상관없었다. 사람들이 건강과 생명을 위하여 음식을 먹어야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먹을 것을 동산에 가득 베풀어주셨다. 그것은 즐거움을 위하여 베푸신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아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때에 우리는 죽을 수 없는 생명으로 부활한다.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부활한다. 그래도 생명과를 먹고 하늘나라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것을 먹어야 생명과 힘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불멸의 몸을 입었다. 그런데도 먹는다. 그것은 생명의 특권이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행복이다. 우리가 에덴동산에서도 먹어야 생명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실을 존중하는 생각이 아니다. 창조주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 외에 결코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신 일이 없다.
교훈: 하나님은 지상의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필요한 식물을 제공하심으로써 그분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증명하신다.
셋째날(화) 2월 19일
자연적인 죄악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1. 욥기 42장을 읽어 보라. 이 성경 장은 우리에게 어떤 해답을 주는가?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의문은 무엇인가?
[요42:1~9]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답: 욥기는 천연계의 재난을 사단이 주장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죄의 세상에서 천연계도 역시 죄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욥기의 중심 사상은 도덕론적 종교와 창조론 종교의 대조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모든 주석가들이나 신학자들, 목회자들이 의인이 당하는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욥기는 창조주께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전적으로 창조주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 사단에게 천연계를 주장할 기회를 하락하시는 것도 알 수 있다. 남은 의문이란 왜 사단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하셨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것도 욥기의 주제를 알면 풀리는 의문이다. 생각해보기 바란다.
2. 안식일 소지로 돌아가서 엘렌 G. 화잇의 인용문을 읽어 보라. 하나님도 죄악의 문제로 인하여 고통당하고 계심을 아는 것은 우리가 죄악의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하는 데 얼마큼 도움이 되는가?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는 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고 밝히 말하였다. 모든 세계를 공간에 달려 있게 하고, 우주 만물을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지치지 않고 활동하도록 붙드는 손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다”(교육,132).]
답: 하나님의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온 우주에 드러내셨다. 죽기까지 고통당하셨다. 그 십자가의 못 박힌 손, 즉 고통의 흔적을 가진 그 손으로 지금도 이 지구상의 천연계를 유지해 주신다. 그것은 엄청난 사랑이다.
<부가설명> 욥기는 어려운 책으로 생각되는 성경이다. 거기에는 심오한 인생철학이 있다고들 말한다.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욥기는 의인의 고난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욥기는 주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이다. 욥기의 주제는 도덕론 종교와 창조론 종교를 대조한 것이다. 욥을 비롯하여 욥의 세 친구는 도덕론 종교의 대표자들이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재앙이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죄를 짓지 않고 이런 재앙을 당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 자녀들의 죽음도 그들이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욥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도덕론 신앙가였다. 그런데 지금 재앙을 당하면서 자기 신앙과 신관(神觀)에 혼란을 겪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이런 재앙을 받아야 할 도덕적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도 끔직한 재앙이 왜 자기에게 임하는가? 하나님 대답 좀 해보시오. 그러면서 욥은 29장부터 31장까지 자기의 도덕적 선행들을 나열한다. 이런 종교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선행에 따라 보상해야할 책임이 있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선행을 하나님께 빚을 지우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욥기가 바로 이런 그릇된 종교와 신앙을 폭로하고 있다, 38장부터 친히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도덕론에 대하여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신다. 다만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서만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렇게 존재하게 된 우주와 만물을 친히 섭리하시며 모든 피조물은 천사거나 사람이거나 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안에서 생존하고 생활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선을 행하는 자도 악을 행하는 자도 다 창조 받아 생존한다는 사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를 깨닫도록 우회적으로 말씀하셨다. 욥은 그것을 알아들었다. 자기는 죄가 없다고 그렇게 버티던 욥이 더디어 무릎을 꿇고 재에 앉아 회개한다. 자기의 종교와 신앙, 자기의 하나님 관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도 이런 욥의 회개가 필요하다.
교훈: 우리는 천연계 속에서 벌어지는 재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찾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 죄악이 존재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넷째날(수) 2월 20일
훼손된 창조 세계를 통치함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 5:45).
1. 마 5:45과 시 65:9~10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돌보기 위해 창조 세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시는가? 이는 창조된 세계에 대한 그분의 관심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는가?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시65:9,10]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답: 해와 비를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베풀어주시고, 농사하여 먹고 생활하는 일을 일일이 친히 돌보시는 것을 가르쳐준다.
2. 다음의 말씀에 어떤 유사한 현상들이 언급되었는가? 창 8:1, 출 10:13, 민 11:31.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출10: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에 미쳐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들인지라.
[민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답: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바람을 친히 일으키시고 사용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부가설명> 시인은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119:91)라고 기록하였다. 만물이 창조주의 종이다. 창조주께서 말씀하시면 천연계는 그대로 순종한다. 바다의 파도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 외에도 예수께서 행하신 자연표적들은 그분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보여준다.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천연계도 죄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지만, 죄인 된 사람들을 일정기간 생존하게 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명령을 이루도록 죄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셨다. 그것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인데, 곧 처음 창조한 상태대로 천연계가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변질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죄의 세상이 되고 죄인이 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배려이다. 천연계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위하여 창조주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교훈: 하나님은 죄의 영향으로 손상을 입은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그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일하시며 때로 우리가 알 수 없는 기이한 방식으로 섭리하신다.
다섯째날(목) 2월 21일
훼손된 창조 세계를 위한 공급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1. 마 6:25~3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핵심적인 기별을 주셨는가? 수많은 사람이 겪는 시련과 비극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마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답: 천연계를 창조주께서 일일이 돌보신다는 것을 계시하셨다. 그것들을 그렇게 돌보시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을 돌보시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이 당하는 시련과 비극들은 욥기 사건으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죄가 끼치는 영향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애3:39)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2,33)
2. 오늘 교과에 나온 말씀들과 연관해서 마 10:2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우리가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답: 이 세상에서는 환난과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가 빚은 모든 죄악의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며 죄와 죄에 속한 것들은 완전히 멸하게 될 것을 가르쳐주신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은 지나가는 세상인 것을 알고 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있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지나가는 세상의 주인노릇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단의 단말마적인 행패가 환난과 고통으로 드러난다. 물론 사단은 세상을 환난과 고통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누가 사단의 기만에 당하겠는가. 그는 이 세상은 자기에게 넘겨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절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줄 수 있다고 예수님께 대들었다.(눅4:5,6) 그는 자기 때가 얼마 못 된 줄 알기 때문에 크게 분 내어 세상에서 활동한다. 그래서 땅과 그 가운데 있는 것들이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12:12)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마귀는 이미 없어지게 되었다.(히2:14)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비로 고난을 받을지라도 인내하며 연단을 견딘다. 마침내 정금 같이 되어 하늘 예루살렘의 황금기를 걷게 될 것이다. 아멘.
교훈: 하나님은 범죄 이후에도 인간의 필요를 채우신다. 우리에게 갑작스런 재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을 수 있다.
여섯째날(금) 2월 22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그분께서 행하셨거나 하실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의 법으로 말미암아 제약을 받으신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다. 사람들은 그분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는가 하면 만물, 심지어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그분의 이름을 존경하거나, 그분의 권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이나 그 법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무한한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대로, ‘자연의 법칙’은 물질세계를 주관하는 법들에 관하여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은 얼마나 제한되어 있으며, 창조주께서 유한한 존재들에게는 전적으로 이해될 수 없지만 당신 자신의 법들과 조화되게 일하실 수 있는 분야는 얼마나 광범위한가!”(부조와 선지자, 114, 교회증언 8권, 259~261 ‘자연의 법칙’도 참고하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위에 있는 엘렌 화잇의 인용문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그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수많은 과학자는 어떤 방식으로 엘렌 화잇의 말처럼 시도하려고 합니까?
※ 하나님과 그분의 하시는 일을 이 세상 사람들, 비록 과학자들이라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들은 천연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법칙을 밝히는 것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 수 있다고 시도한다. 그러나 가능하지 않다.
➋ 현대 과학은 자연적인 수단을 통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 또는 일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과거보다 훨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연적인 수단’ 또는 ‘자연의 법칙’에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러한 수단 내지 법칙 외에는 아무것도, 그 배후에 어떤 초자연적인 세력도 없다고 보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그런 가정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습니까? 왜 그런 생각에는 논리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그런 법칙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왜 그러한 사상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과 반합니까?
※ 과학은 천연계에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법칙을 발견하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천연계가 어떻게 그런 법칙으로 존재하고 유지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발생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있게 했기 때문에 있는 것들일 뿐이다.
➌ 창조 세계를 하나의 악기로 보는 관점은 그것을 하나의 기계로 보는 관점보다 하나님과 창조 세계의 관계에 대하여 얼마나 더 정확한 모습을 제공합니까?
※ 그것은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친히 연주하신다는 비유로서 기계로 비유하면 처음에 돌아가게 한 다음에는 기계에 입력해놓은 규칙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지만 악기는 연주자가 반드시 연주해야 악기의 기능을 나타낸다. 모든 피조물도 창조주께서 친히 돌보실 때 제 몫을 다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섭리의 손길을 떠나서 운행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➍ 우리가 단지 “자연의 힘”만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신 예가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왕상 19:11~12을 참고하십시오.
※ 왕상 19장은 엘리야가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바람과 지진과 불을 일으킨 내용이다. 그런 것은 강한 바람으로 홍해를 가르신 사건도 있고, 여호수아 때에 태양을 머물게 한 사건과 히스기야 때에 해시계의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한 일도 있다. 그 외에도 천연계의 사물들을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 사용하신 예는 성경에 여러 번 기록되었다. 홍수도 그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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