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과 제자(弟子)가 되기 위(爲)한 준비(準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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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奉ju 작성일08-02-27 21:30 조회5,257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08년2월16일(안) 제7과) 이봉주.hwp (27.0K) 54회 다운로드 DATE : 2008-02-27 21: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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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과 제자(弟子)가 되기 위(爲)한 준비(準備)
<프리즘>
◉ 산모(産母)가 출산하기 전에 아기에 대한 모든 것을 준비(準備)하듯!
운동선수(運動選手)가 운동(運動)하기 전에 준비운동(準備運動)을 하듯!
집을 짓기 전에 모든 재료(材料)를 준비(準備)하듯!
학생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학용품과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교재 물들을 준비하듯!
군인(軍人)이 전장(戰場)에 나가기 전에 완전무장(完全武裝)으로 준비하듯!......
모든 일에는 사전(事前)에 준비가 필요하다.
☞ 하물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그분의 사상(思想)을 닮고자 부단히 애쓰며 훈련을 받고 준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중요한 특성 3가지!
① 남을 비판(批判)하는 대신 자애(慈愛)롭게 대하는 열망(熱望)을 개발(開發)하라.
②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慈悲)는?
정죄(定罪)하기위한 판단(判斷)이 아니라, 용서(容恕)하기위한 판단(判斷)이여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자비(慈悲)의 정신(精神)이시다.
③ 우리가 형제의 눈 속의 티를 제거하는 대신 먼저 우리 눈 속의 들보를 제거(除去)해야 한다.
日 (2월 10일)
<사도(使徒)들을 지명(指名)하심>
◉ 12의 의미(意味)와 축복(祝福).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게 12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 12지파가(분파(分派))되었다.(창17:20)
2. 성경 출15:27절 나오는 엘림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를 향해가던 광야에 있는 오아시스다. 엘림에 12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어서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이 잘 쉬고 가나안을 향해 갔다. 이스라엘 12지파에게 12개의 샘은 안성맞춤이었다.
3. 제사장의 흉배엔 12보석이 장식 되었다.
가슴에 착용하는 제사장의 흉배엔 12지파를 상징하는12보석이 물려 있었다. (출28:21)
4. 하나님의 제단 떡상에 드리는 떡이12개인데 이스라엘 12지파를 먹이시는 하나님께 12개의 떡을 진설하였다. (레24:5)
5.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소가 12마리다.(민7:3)
6. 하나님께 봉헌 예물로 바친 은반, 은바리, 금 숟가락이12개다(민7:84)
7. 이스라엘12지파의 족장들 지팡이12개를 법궤 앞에 두니 그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움이 돋고, 순(荀)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다.(민17:5-9)
8. 가나안 땅을 정탐한 족장이 12명인데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2명 여호수아,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모세와 백성들에게 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신1:22-24)
긍정적으로 살고 긍정적으로 말하자.
9. 하나님의 도우시는 기적으로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처럼 요단강이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도하한 기념으로 여호수아가 12돌을 기념으로 요단강에 세웠다.(수4:9)
10.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할 때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수효대로 12돌을 쌓고 하나님을 부르니 불이 제단에 내렸다.(왕상18:31)
11. 에스더와 처녀들이 왕후로 뽑히기전 12달을 몸 단장 후에 아하수에로 왕에게 왕후로 뽑혔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예수님 만나기 위하여 단장해야 한다.(에2:12)
12. 12년 동안을 혈루 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 옷자락을 만짐으로 고침 받았다.(마9:20)
13.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었다.(마10:2)
14. 예수님 12살 될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눅2:42)
15. 예수님께서 살리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12살 되던 해였다.(눅8:42)
16.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000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요6:13)
17. 면류관의12별(계12:1) 여자는 교회를 상징하기도하고 성도를 의미 하는데 면류관을 쓴 여자의 면류관에 12별이 있었다.
18.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의 문이 12 진주 문과 그 문에 12천사가 있다(계21:12)
19. 하늘나라 하나님 보좌 앞에 흐르는 생명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에 12가지 실과가 맺힌다.(계22:1)
◉ "예수님"께서는 (눅 6:13) “그 제자(弟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擇)하여 사도(使徒)라 칭(稱)하셨”다. 즉 열둘을 지명(指名) 하셨습니다. (눅 6:13-16)
(지명(指名): 여럿 가운데의 사람이나 물건의 이름을 지칭하여 이름.)
이 열둘 가운데에는 스스로 제자(弟子)가 된 가룟유다(눅 6:16)까지도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 제자(弟子)=
제자는 배우는 자로써 스승과 함께 공부하기위하여 스승을 따르는 자를 제자라 하고,
Ⓑ 사도(使徒)= “누군가로부터 보냄을 받다”라는 의미로
사도(使徒)란 주인(主人)이나 나라를 대표하기위해 파견(派遣)된 대사(大使)또는 밀사(密使)를 뜻한다.
☞ 제자(弟子)나 사도(使徒)는 둘 다 배우는 자(者)이지만, 사도(使徒)는 주인이나 조직체(組織體)의 대표(代表)로써 보냄을 받기 때문에 별도(別途)의 훈련(訓練)을 받아야 한다. (교과 94)
☞ 제자(弟子)가 되는 길에 대하여 세 가지로 요약(要約)해보면.
①, 제자가 되는 길은 남을 비판(批判)하지 말고.
②. 제자가 되는 길은 예수님의 자비(慈悲)를 올바로 알고 실천해야 되며,
남의 허물을 찾아 정죄(定罪)하기 위(爲)한 판단(判斷)이 아니고,
남의 허물을 용서(容恕)하기 위(爲)한 판단(判斷)을 하는 것이 예수님의 자비(慈悲)이다.
③. 제자가 되는 길은 남의 허물을 찾는 정신을 버리고,
자기(自己)눈 속의 “들보”를 제거(除去)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택(擇)하신 것은 사도(使徒)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爲)함이었다.
오늘날의 제자(弟子)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어떤 임무(任務)와 권능(權能)을 받았는가?
月 (2월 11일)
<산상수훈 - 1>
◉ 마태복음 5장-7장을 우리는 산상수훈(山上垂訓)(보훈)의 “8복”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嚴密)히 말하면 “9복”이다. (마 5:3-11)
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② 애통하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③ 온유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
④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6)
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⑥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⑦ 화평케 하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⑧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福)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10)
⑨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福)이 있나니(11)
◉ "예수님"의 산상수훈(보훈)이라 해서 축복의 말씀이 선포된 곳은 장소로써는 “그리심 산상(山上)”에서 이었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기 14세기전 이스라엘자손들이 평평한 세겜 골짜기에 모였을 때 산(山) 좌우(左右)쪽에서 축복(祝福)과 저주(詛呪)를 내리는 제사장(祭司長)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신 11:27-28)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命令)을 들으면 복(福)이 될 것이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命令)을 듣지 아니하(면).저주(詛呪)를 받으리라”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었던 이 산은 이렇게 하여 축복(祝福)의 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생애(生涯)의 전환(轉換)을 경험(經驗)하는 예가 많다.
낙담(落膽)에서 용기(勇氣)를 얻고, 악(惡)에서 선(善)으로, 실패(失敗)에서 성공(成功)으로 생애(生涯)를 전환(轉換)할 경우의 만남이란 거의 예외(例外)없이 교훈(敎訓)과의 만남이다. 훌륭한 교훈의 그늘아래 있는 사람은 탁월(卓越)한 인격(人格)을 형성(形成)하고 훌륭한 인간으로 성숙(成熟)해나갈 것이다.
▷ 보잘 것 없고 겁(怯)많고 무식(無識)한 어부(漁夫)며 세리(稅吏)며 죄인(罪人)이였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함께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의 심문(審問)과 십자가(十字架)사건까지도 그들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否認)하고 도망갔던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復活)후에 그토록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우리는 나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點檢)해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 산상수훈은 어떤 의미에서 제자도(弟子道)에 관한 선언(宣言)이라 할 수 있다.
무리들이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말씀하셨다.
◉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마지막 시대를 위한 기별을 전파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기도의 내용을 가르치셨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
◉ 산상수훈(마 5-7장)에는 제자도(弟子道)의 기본(基本)원칙(原則)들이 자세(仔細)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지침(指針)을 철저(徹底)히 따름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弟子)가 되자.
火 (2월 12일)
<산상수훈 - 2>
◉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 (그냥 아무 가게에 가서 돈 좀 달라고 하면 아마도 실패할 확률이 8-90%일 것이다.)
그러나 목탁(木鐸)을 가지고가서 (가짜 승려(僧侶)행색이라도 염불)를 하며 축복을 빌고 나오면 돈을 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따라오면서 돈을 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먼저 복 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즉 상대에게 이익이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상대에게 유익(有益)을 베풀어 주면 그 다음에는 반듯이 나에게 대가를 내어 놓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전도(傳道)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나 친지들 간에나 친구들 간에 상대를 미워하는 말을 계속 하는 사람(trouble Maker)과, 상대를 계속해서 칭찬 하는 사람(Peace Maker)과 어느 사람이 더 인기가 있겠는가?
과연 나의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내가 낳은 자식도 나의 부모님도 내 마음에 100% 마음에 안 드는 데, 하물며 성별도 다르고 배움도 다르고 환경도 취미도 식성(食性)도 칼라도 다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의 마음에 딱 맞아서 내가 편안하게 살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 방법이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으로 말씀하신 생명의 말씀인 산상수훈(山上垂訓)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진리를 실천해야겠습니다.
옛날 시골의 화장실에서나 인분(人糞)작업으로 많은 일을 하고 온 사람에게서는 인분(人糞)냄새가 나게 되는 법이고, 장미꽃 밭에서나 향수 점에서 많은 시간을 있다 나온 사람에게는 늘 그에게 향수(香水)냄새나 꽃 냄새가 날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본 분에게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배여 나올 것이며, 늘 세속에서 썩은 생활과 냄새만 많이 적신 분에게서는 세상의 썩은 냄새만 분명히 날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냄새만 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 “순종(順從)은 제자(弟子)가 되는 시금석(試金石)이다.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이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인 교리가 마음속에 있는 죄를 소멸시키고, 심령을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고 성결의 열매를 맺으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자비, 친절, 긍휼, 동정이 생애에 나타날 때, 의로운 일을 하는 기쁨이 마음속에 있을 때,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기를 죽일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바른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한일서 2장 3절).”(보훈, 146)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일례를 들면서 산상에서의 교훈을 마치셨다.
구주의 주변에 모여든 무리 가운데는 갈릴리 바다 부근에서 생애를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산 중턱에 앉아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동안 계곡과 산골짜기로 흐르는 시냇물이 바다를 찾아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름에는 종종 이 시내들이 말라서 먼지가 나는 바닥만 남긴 채 완전히 없어져 버리곤 했다.
그러나 겨울의 폭풍우가 언덕 위에 쏟아지면 강은 맹렬하고 사나운 물결로 바뀌는데, 때로는 골짜기를 가득 채우며 저항할 수 없는 거센 물살로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가끔은 얼른 보기에 위험이 없을 것 같은, 농부들이 초원에 지어 놓은 농막들도 휩쓸려 떠내려갔다.
그런데 산 위 높은 곳에는 바위 위에 지은 집들이 있었다.
그 지역 어떤 곳에는 완전히 돌로 지은 집들도 있었다.
그 중 많은 수가 폭풍우에 천년을 견디어 왔다.
이 집들은 수고와 고생을 하며 지은 것들이었다.
이 집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또 위치가 초원보다 인기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바위 위에 지어졌으므로 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닥쳐도 이상이 없었다.”(보훈, 147)
“그대가 키가 커지고 몸의 균형이 잘 잡힐지는 모르나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릴 기질, 습관 및 품성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진 채 자라난 아이로서는 그 곳에 들어갈 자가 하나도 없다.
만일 그대가 의혹(疑惑), 비판(批判), 급한 성미 및 자존심(自尊心) 등을 길러왔다면 이 잔치를 망칠 것이므로 그 자리에 들어갈 허락을 받을 수 없다.
이 문을 통과하여 들어갈 모든 자들은 하늘의 베틀로 짠 혼인예복을 입은 자들이다.
다른 사람의 품성에서 결점을 끄집어내는 버릇을 스스로 키운 자들은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며 영혼들로 진리에서 떠나 어리석은 이야기를 택하도록 하는 추한 결함을 드러낼 것이다. 그대의 불신의 누룩, 그대의 신망을 얻고자 하는 욕구, 그대의 비난하는 정신은 그대 자신을 그 문으로 못 들어가도록 막을 것이다. 상호간에 완전한 신뢰로 결합하고 사는 거주자들의 행복에 흠을 낼 자는 단 한 사람도 이 문을 통과하여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 안에 사는 모든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겼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이 하늘 임금의 품성을 나타내지 않는 한 아름다운 영광에 싸이신 하늘 임금을 결코 볼 수 없다.”(1기별, 110)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영생을 위한 준비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해석을 덧붙여 이 말씀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마음과 양심은 굳어지고 부패되었다. 형제들이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질문하노니,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그대가 회심하고, 그리스도를 그대의 영혼의 성전에 받아들이고, 그대의 마음이 새 율법, 곧 자유롭게 하는 충성의 율법 아래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 지도자라 공언하며 서 있는 배틀크릭 인사들의 뜻과 마음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던 사단의 교훈과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었다는 즐거운 소식을 내가 접할 수 있다면, 나는 저 넓은 태평양을 건너가서 또다시 그대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대가 빛보다도 어두움을 선택했기 때문에 약화된 지각과 흐려진 마음을 지닌 그대를 만나보는 것을 갈망하지 않는다.”(목사, 395)
◉ 제자들은 남을 판단(判斷)하지 말고, 모든 심판(審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 예수의 제자들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이다.
이 나무는 같은 종류의 좋고 나쁜 나무가 아니고, 포도나무와 가시나무, 무화과나무와 엉겅퀴의 대조로 보이듯이 전혀 다른 나무이다.
◉ 말씀을 듣고 믿는다 하더라도 그대로 행(行)하지 않는다면 듣지 않음만 못하다.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順從)의 행동(行動)이 따른다.
◉ 새로운 신자(信者)들을 포함한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順從함으로 그분의 참 제자가 되고 품성(稟性)의 바른 열매를 맺어야 한다.
水 (2월 13일)
<선교 여행을 위한 지침(指針)>
◉ 선교를 편안하게 쉽게 선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선교는 말로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도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을 세상에 멋지게 알리는 일에 때로는 일곱 배의 더 뜨거운 풀무불속에도 던짐을 받았고, 사자굴속에로 내 던짐을 받았고, 동료와 관료와 주위로부터 많은 질투와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스데반은 돌로 맞아 죽기까지 했다. 그 때의 현실로만 본다면 스데반은 아무 결실도 없이 실패한 전도자였지만 얼마 후 스데반의 순교이후에 그로 인하여 열매가 맺었다 그가 바로 스데반을 살해했을 때의 감독자였든 “사도 바울”이 회심하여 스데반의 못 다한 선교를 바울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놀라운 선교의 역사가 일어났는가를 우리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서 확인하고 있다.
◉ 초기의 신앙인들을 본받자
왈덴스인들과 존 위클리프, 후스와 제롬, 츠빙글리와 루터, 등등의 신앙을 우리는 마음에서 한시도 떼어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의 믿음의 온전한 정신이 오늘날도 반드시 필요하며. 본받아야 한다. 우리들의 생활에 신앙이 한부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에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의 삶을 직업을 생활을 신앙에 맞추어서 실천하는 생활을 하여야 될 것이다.
◉ 우리가 제자 삼을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다.
우리와 가까운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서부터 그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어야 한다.
때로는 거절(拒絶)과 박해(迫害)도 감수(甘受)해야 한다.
하지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처신하면서 끝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눈동자처럼 돌보실 것이다.
◉ 예수께서 당신의 열두 제자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전도의 중요한 원리들을 제시해 주셨다. 우리는 반대(反對)와 박해(迫害)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木 (2월 14일)
<70인의 전도(傳道)>
◉ 그리스도인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그리스도인이 된 기쁨을 느낀 사람이라면 아마도 전도(傳道)하고 싶은 강한 충동(衝動)과 도전을 누차 받았을 것이며, 또한 가장 효과적인 전도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 비록 우리(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와 교리나 섬김의 대상과 믿음이 전혀 상이(相異)한 “여호와의 증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본(本)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단 한 가지 전도(傳道)방법이다.
그 들은 둘씩 짝지어 매일 집집을 방문하거나 가계(사무실) 거리 전도에 그들만큼 열심을 내어 전도(傳道)하는 집단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옳지 못한 기별을 갖이고 그 토록 열심을 내고 있는 그들(여호와의 증인)을 보면서, 옳은 생명의 말씀을 갖이고 있는 우리(재림교인들)가 그 좋은 기별을 소장(所藏)하고 나만(우리들만)누리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늘 "하나님"앞에 죄스럽게 느끼며 살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게 여겨진다.
◉ 근간(近間)에는 참으로 많은 기발(奇拔)한 아이디어들도 많고, 별의 별 정보의 홍수(洪水)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전도(傳道)의 방법인데 그 방법도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그 일례(一例)를
대충 소개해도 가족전도, 친구전도, 축호전도, 학교전도, 직장전도, 병원전도, 방송전도, 교도소전도, 군인전도, 산업전도, 경조전도, 어린이전도, 캠퍼스전도, 농어촌전도, 아파트전도, 양로원전도, 장애인전도, 문서전도 등 많은 전도 방법들을 열거 할 수 있다.
◉ 노치준교수의 통계에 다음과 같은 전도방법의 순위가 있는 자료를 참고해보면
기도(80%), 권고(45%), 생활의 모범(32%), 배려(31%), 금식기도(14%), 양보(14%) 등입니다. 반면에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결심한 계기를 보면 전도인의 생활에 감동(35%), 간청(27%), 병 고침(26%), 실패체험(23%), 특별집회(17%), 미안한 마음(17%)의 순서의 자료도 있다.
아울러 부언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전도는 전도대상자와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십시오.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친절이 사람의 심령을 건드리고 감동을 주어 전도의 기회를 얻게 합니다.
그러나 속보이는 속셈과 계산을 가지고 베푸는 친절은 열매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절박한 사랑의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면 반드시 전도에 응하게 될 것입니다
◉ 이와 같이 많은 전도 방법이 있지만
오늘의 교과 공부에 깊은 맥(脈)을 잡아 "예수님"의 방법대로 성경말씀대로 둘씩 짝지어 도시와 마을로 두루 다니라고 말씀하신 그 방법과 명령이 지금도 가장 유효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 서로 권면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보다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어떤 위대한 행위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하여 내 자신이 주님의 품성을 닮아가고 영혼들을 구원하며 함께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 70인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나갔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원리(原理)를 우리도 적용(適用)해야 한다.
<焦點>
1. 제자는 기본적(基本的)인 교육(敎育)과 훈련(訓練)을 통(通)해서 제자(弟子)가 되는 것이며.
2. 제자는 선교(宣敎)와 전도(傳道)로 실천(實踐)할 때 그의 사명(使命)이 나타나는 것이다.
<프리즘>
◉ 산모(産母)가 출산하기 전에 아기에 대한 모든 것을 준비(準備)하듯!
운동선수(運動選手)가 운동(運動)하기 전에 준비운동(準備運動)을 하듯!
집을 짓기 전에 모든 재료(材料)를 준비(準備)하듯!
학생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학용품과 학교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교재 물들을 준비하듯!
군인(軍人)이 전장(戰場)에 나가기 전에 완전무장(完全武裝)으로 준비하듯!......
모든 일에는 사전(事前)에 준비가 필요하다.
☞ 하물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그분의 사상(思想)을 닮고자 부단히 애쓰며 훈련을 받고 준비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중요한 특성 3가지!
① 남을 비판(批判)하는 대신 자애(慈愛)롭게 대하는 열망(熱望)을 개발(開發)하라.
②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慈悲)는?
정죄(定罪)하기위한 판단(判斷)이 아니라, 용서(容恕)하기위한 판단(判斷)이여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자비(慈悲)의 정신(精神)이시다.
③ 우리가 형제의 눈 속의 티를 제거하는 대신 먼저 우리 눈 속의 들보를 제거(除去)해야 한다.
日 (2월 10일)
<사도(使徒)들을 지명(指名)하심>
◉ 12의 의미(意味)와 축복(祝福).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게 12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 12지파가(분파(分派))되었다.(창17:20)
2. 성경 출15:27절 나오는 엘림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를 향해가던 광야에 있는 오아시스다. 엘림에 12샘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어서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이 잘 쉬고 가나안을 향해 갔다. 이스라엘 12지파에게 12개의 샘은 안성맞춤이었다.
3. 제사장의 흉배엔 12보석이 장식 되었다.
가슴에 착용하는 제사장의 흉배엔 12지파를 상징하는12보석이 물려 있었다. (출28:21)
4. 하나님의 제단 떡상에 드리는 떡이12개인데 이스라엘 12지파를 먹이시는 하나님께 12개의 떡을 진설하였다. (레24:5)
5. 하나님께 제물로 드린 소가 12마리다.(민7:3)
6. 하나님께 봉헌 예물로 바친 은반, 은바리, 금 숟가락이12개다(민7:84)
7. 이스라엘12지파의 족장들 지팡이12개를 법궤 앞에 두니 그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움이 돋고, 순(荀)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다.(민17:5-9)
8. 가나안 땅을 정탐한 족장이 12명인데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2명 여호수아,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모세와 백성들에게 함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신1:22-24)
긍정적으로 살고 긍정적으로 말하자.
9. 하나님의 도우시는 기적으로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처럼 요단강이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도하한 기념으로 여호수아가 12돌을 기념으로 요단강에 세웠다.(수4:9)
10.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할 때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수효대로 12돌을 쌓고 하나님을 부르니 불이 제단에 내렸다.(왕상18:31)
11. 에스더와 처녀들이 왕후로 뽑히기전 12달을 몸 단장 후에 아하수에로 왕에게 왕후로 뽑혔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예수님 만나기 위하여 단장해야 한다.(에2:12)
12. 12년 동안을 혈루 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 옷자락을 만짐으로 고침 받았다.(마9:20)
13.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었다.(마10:2)
14. 예수님 12살 될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눅2:42)
15. 예수님께서 살리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12살 되던 해였다.(눅8:42)
16.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000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요6:13)
17. 면류관의12별(계12:1) 여자는 교회를 상징하기도하고 성도를 의미 하는데 면류관을 쓴 여자의 면류관에 12별이 있었다.
18. 하늘나라 새 예루살렘의 문이 12 진주 문과 그 문에 12천사가 있다(계21:12)
19. 하늘나라 하나님 보좌 앞에 흐르는 생명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에 12가지 실과가 맺힌다.(계22:1)
◉ "예수님"께서는 (눅 6:13) “그 제자(弟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擇)하여 사도(使徒)라 칭(稱)하셨”다. 즉 열둘을 지명(指名) 하셨습니다. (눅 6:13-16)
(지명(指名): 여럿 가운데의 사람이나 물건의 이름을 지칭하여 이름.)
이 열둘 가운데에는 스스로 제자(弟子)가 된 가룟유다(눅 6:16)까지도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 제자(弟子)=
제자는 배우는 자로써 스승과 함께 공부하기위하여 스승을 따르는 자를 제자라 하고,
Ⓑ 사도(使徒)= “누군가로부터 보냄을 받다”라는 의미로
사도(使徒)란 주인(主人)이나 나라를 대표하기위해 파견(派遣)된 대사(大使)또는 밀사(密使)를 뜻한다.
☞ 제자(弟子)나 사도(使徒)는 둘 다 배우는 자(者)이지만, 사도(使徒)는 주인이나 조직체(組織體)의 대표(代表)로써 보냄을 받기 때문에 별도(別途)의 훈련(訓練)을 받아야 한다. (교과 94)
☞ 제자(弟子)가 되는 길에 대하여 세 가지로 요약(要約)해보면.
①, 제자가 되는 길은 남을 비판(批判)하지 말고.
②. 제자가 되는 길은 예수님의 자비(慈悲)를 올바로 알고 실천해야 되며,
남의 허물을 찾아 정죄(定罪)하기 위(爲)한 판단(判斷)이 아니고,
남의 허물을 용서(容恕)하기 위(爲)한 판단(判斷)을 하는 것이 예수님의 자비(慈悲)이다.
③. 제자가 되는 길은 남의 허물을 찾는 정신을 버리고,
자기(自己)눈 속의 “들보”를 제거(除去)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택(擇)하신 것은 사도(使徒)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爲)함이었다.
오늘날의 제자(弟子)로 부르심을 받은 나는 어떤 임무(任務)와 권능(權能)을 받았는가?
月 (2월 11일)
<산상수훈 - 1>
◉ 마태복음 5장-7장을 우리는 산상수훈(山上垂訓)(보훈)의 “8복”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嚴密)히 말하면 “9복”이다. (마 5:3-11)
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② 애통하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③ 온유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
④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6)
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⑥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⑦ 화평케 하는 자는 복(福)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
⑧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福)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10)
⑨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福)이 있나니(11)
◉ "예수님"의 산상수훈(보훈)이라 해서 축복의 말씀이 선포된 곳은 장소로써는 “그리심 산상(山上)”에서 이었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기 14세기전 이스라엘자손들이 평평한 세겜 골짜기에 모였을 때 산(山) 좌우(左右)쪽에서 축복(祝福)과 저주(詛呪)를 내리는 제사장(祭司長)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신 11:27-28)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命令)을 들으면 복(福)이 될 것이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命令)을 듣지 아니하(면).저주(詛呪)를 받으리라” 축복의 말씀이 선포되었던 이 산은 이렇게 하여 축복(祝福)의 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생애(生涯)의 전환(轉換)을 경험(經驗)하는 예가 많다.
낙담(落膽)에서 용기(勇氣)를 얻고, 악(惡)에서 선(善)으로, 실패(失敗)에서 성공(成功)으로 생애(生涯)를 전환(轉換)할 경우의 만남이란 거의 예외(例外)없이 교훈(敎訓)과의 만남이다. 훌륭한 교훈의 그늘아래 있는 사람은 탁월(卓越)한 인격(人格)을 형성(形成)하고 훌륭한 인간으로 성숙(成熟)해나갈 것이다.
▷ 보잘 것 없고 겁(怯)많고 무식(無識)한 어부(漁夫)며 세리(稅吏)며 죄인(罪人)이였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함께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의 심문(審問)과 십자가(十字架)사건까지도 그들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否認)하고 도망갔던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復活)후에 그토록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우리는 나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點檢)해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 산상수훈은 어떤 의미에서 제자도(弟子道)에 관한 선언(宣言)이라 할 수 있다.
무리들이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말씀하셨다.
◉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마지막 시대를 위한 기별을 전파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기도의 내용을 가르치셨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
◉ 산상수훈(마 5-7장)에는 제자도(弟子道)의 기본(基本)원칙(原則)들이 자세(仔細)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지침(指針)을 철저(徹底)히 따름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弟子)가 되자.
火 (2월 12일)
<산상수훈 - 2>
◉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 (그냥 아무 가게에 가서 돈 좀 달라고 하면 아마도 실패할 확률이 8-90%일 것이다.)
그러나 목탁(木鐸)을 가지고가서 (가짜 승려(僧侶)행색이라도 염불)를 하며 축복을 빌고 나오면 돈을 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따라오면서 돈을 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먼저 복 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즉 상대에게 이익이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상대에게 유익(有益)을 베풀어 주면 그 다음에는 반듯이 나에게 대가를 내어 놓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전도(傳道)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나 친지들 간에나 친구들 간에 상대를 미워하는 말을 계속 하는 사람(trouble Maker)과, 상대를 계속해서 칭찬 하는 사람(Peace Maker)과 어느 사람이 더 인기가 있겠는가?
과연 나의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내가 낳은 자식도 나의 부모님도 내 마음에 100% 마음에 안 드는 데, 하물며 성별도 다르고 배움도 다르고 환경도 취미도 식성(食性)도 칼라도 다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의 마음에 딱 맞아서 내가 편안하게 살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 방법이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으로 말씀하신 생명의 말씀인 산상수훈(山上垂訓)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진리를 실천해야겠습니다.
옛날 시골의 화장실에서나 인분(人糞)작업으로 많은 일을 하고 온 사람에게서는 인분(人糞)냄새가 나게 되는 법이고, 장미꽃 밭에서나 향수 점에서 많은 시간을 있다 나온 사람에게는 늘 그에게 향수(香水)냄새나 꽃 냄새가 날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본 분에게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배여 나올 것이며, 늘 세속에서 썩은 생활과 냄새만 많이 적신 분에게서는 세상의 썩은 냄새만 분명히 날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냄새만 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 “순종(順從)은 제자(弟子)가 되는 시금석(試金石)이다.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이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인 교리가 마음속에 있는 죄를 소멸시키고, 심령을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하고 성결의 열매를 맺으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자비, 친절, 긍휼, 동정이 생애에 나타날 때, 의로운 일을 하는 기쁨이 마음속에 있을 때,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기를 죽일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바른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한일서 2장 3절).”(보훈, 146)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일례를 들면서 산상에서의 교훈을 마치셨다.
구주의 주변에 모여든 무리 가운데는 갈릴리 바다 부근에서 생애를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산 중턱에 앉아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동안 계곡과 산골짜기로 흐르는 시냇물이 바다를 찾아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름에는 종종 이 시내들이 말라서 먼지가 나는 바닥만 남긴 채 완전히 없어져 버리곤 했다.
그러나 겨울의 폭풍우가 언덕 위에 쏟아지면 강은 맹렬하고 사나운 물결로 바뀌는데, 때로는 골짜기를 가득 채우며 저항할 수 없는 거센 물살로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가끔은 얼른 보기에 위험이 없을 것 같은, 농부들이 초원에 지어 놓은 농막들도 휩쓸려 떠내려갔다.
그런데 산 위 높은 곳에는 바위 위에 지은 집들이 있었다.
그 지역 어떤 곳에는 완전히 돌로 지은 집들도 있었다.
그 중 많은 수가 폭풍우에 천년을 견디어 왔다.
이 집들은 수고와 고생을 하며 지은 것들이었다.
이 집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또 위치가 초원보다 인기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바위 위에 지어졌으므로 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닥쳐도 이상이 없었다.”(보훈, 147)
“그대가 키가 커지고 몸의 균형이 잘 잡힐지는 모르나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릴 기질, 습관 및 품성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진 채 자라난 아이로서는 그 곳에 들어갈 자가 하나도 없다.
만일 그대가 의혹(疑惑), 비판(批判), 급한 성미 및 자존심(自尊心) 등을 길러왔다면 이 잔치를 망칠 것이므로 그 자리에 들어갈 허락을 받을 수 없다.
이 문을 통과하여 들어갈 모든 자들은 하늘의 베틀로 짠 혼인예복을 입은 자들이다.
다른 사람의 품성에서 결점을 끄집어내는 버릇을 스스로 키운 자들은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며 영혼들로 진리에서 떠나 어리석은 이야기를 택하도록 하는 추한 결함을 드러낼 것이다. 그대의 불신의 누룩, 그대의 신망을 얻고자 하는 욕구, 그대의 비난하는 정신은 그대 자신을 그 문으로 못 들어가도록 막을 것이다. 상호간에 완전한 신뢰로 결합하고 사는 거주자들의 행복에 흠을 낼 자는 단 한 사람도 이 문을 통과하여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 안에 사는 모든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겼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이 하늘 임금의 품성을 나타내지 않는 한 아름다운 영광에 싸이신 하늘 임금을 결코 볼 수 없다.”(1기별, 110)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영생을 위한 준비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해석을 덧붙여 이 말씀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마음과 양심은 굳어지고 부패되었다. 형제들이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질문하노니,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그대가 회심하고, 그리스도를 그대의 영혼의 성전에 받아들이고, 그대의 마음이 새 율법, 곧 자유롭게 하는 충성의 율법 아래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 지도자라 공언하며 서 있는 배틀크릭 인사들의 뜻과 마음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던 사단의 교훈과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었다는 즐거운 소식을 내가 접할 수 있다면, 나는 저 넓은 태평양을 건너가서 또다시 그대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러나 그대가 빛보다도 어두움을 선택했기 때문에 약화된 지각과 흐려진 마음을 지닌 그대를 만나보는 것을 갈망하지 않는다.”(목사, 395)
◉ 제자들은 남을 판단(判斷)하지 말고, 모든 심판(審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 예수의 제자들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이다.
이 나무는 같은 종류의 좋고 나쁜 나무가 아니고, 포도나무와 가시나무, 무화과나무와 엉겅퀴의 대조로 보이듯이 전혀 다른 나무이다.
◉ 말씀을 듣고 믿는다 하더라도 그대로 행(行)하지 않는다면 듣지 않음만 못하다.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順從)의 행동(行動)이 따른다.
◉ 새로운 신자(信者)들을 포함한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順從함으로 그분의 참 제자가 되고 품성(稟性)의 바른 열매를 맺어야 한다.
水 (2월 13일)
<선교 여행을 위한 지침(指針)>
◉ 선교를 편안하게 쉽게 선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선교는 말로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도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을 세상에 멋지게 알리는 일에 때로는 일곱 배의 더 뜨거운 풀무불속에도 던짐을 받았고, 사자굴속에로 내 던짐을 받았고, 동료와 관료와 주위로부터 많은 질투와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스데반은 돌로 맞아 죽기까지 했다. 그 때의 현실로만 본다면 스데반은 아무 결실도 없이 실패한 전도자였지만 얼마 후 스데반의 순교이후에 그로 인하여 열매가 맺었다 그가 바로 스데반을 살해했을 때의 감독자였든 “사도 바울”이 회심하여 스데반의 못 다한 선교를 바울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놀라운 선교의 역사가 일어났는가를 우리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서 확인하고 있다.
◉ 초기의 신앙인들을 본받자
왈덴스인들과 존 위클리프, 후스와 제롬, 츠빙글리와 루터, 등등의 신앙을 우리는 마음에서 한시도 떼어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의 믿음의 온전한 정신이 오늘날도 반드시 필요하며. 본받아야 한다. 우리들의 생활에 신앙이 한부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에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의 삶을 직업을 생활을 신앙에 맞추어서 실천하는 생활을 하여야 될 것이다.
◉ 우리가 제자 삼을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다.
우리와 가까운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서부터 그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어야 한다.
때로는 거절(拒絶)과 박해(迫害)도 감수(甘受)해야 한다.
하지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처신하면서 끝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눈동자처럼 돌보실 것이다.
◉ 예수께서 당신의 열두 제자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전도의 중요한 원리들을 제시해 주셨다. 우리는 반대(反對)와 박해(迫害)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木 (2월 14일)
<70인의 전도(傳道)>
◉ 그리스도인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그리스도인이 된 기쁨을 느낀 사람이라면 아마도 전도(傳道)하고 싶은 강한 충동(衝動)과 도전을 누차 받았을 것이며, 또한 가장 효과적인 전도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 비록 우리(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와 교리나 섬김의 대상과 믿음이 전혀 상이(相異)한 “여호와의 증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본(本)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단 한 가지 전도(傳道)방법이다.
그 들은 둘씩 짝지어 매일 집집을 방문하거나 가계(사무실) 거리 전도에 그들만큼 열심을 내어 전도(傳道)하는 집단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옳지 못한 기별을 갖이고 그 토록 열심을 내고 있는 그들(여호와의 증인)을 보면서, 옳은 생명의 말씀을 갖이고 있는 우리(재림교인들)가 그 좋은 기별을 소장(所藏)하고 나만(우리들만)누리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늘 "하나님"앞에 죄스럽게 느끼며 살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게 여겨진다.
◉ 근간(近間)에는 참으로 많은 기발(奇拔)한 아이디어들도 많고, 별의 별 정보의 홍수(洪水)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전도(傳道)의 방법인데 그 방법도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그 일례(一例)를
대충 소개해도 가족전도, 친구전도, 축호전도, 학교전도, 직장전도, 병원전도, 방송전도, 교도소전도, 군인전도, 산업전도, 경조전도, 어린이전도, 캠퍼스전도, 농어촌전도, 아파트전도, 양로원전도, 장애인전도, 문서전도 등 많은 전도 방법들을 열거 할 수 있다.
◉ 노치준교수의 통계에 다음과 같은 전도방법의 순위가 있는 자료를 참고해보면
기도(80%), 권고(45%), 생활의 모범(32%), 배려(31%), 금식기도(14%), 양보(14%) 등입니다. 반면에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결심한 계기를 보면 전도인의 생활에 감동(35%), 간청(27%), 병 고침(26%), 실패체험(23%), 특별집회(17%), 미안한 마음(17%)의 순서의 자료도 있다.
아울러 부언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전도는 전도대상자와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십시오.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친절이 사람의 심령을 건드리고 감동을 주어 전도의 기회를 얻게 합니다.
그러나 속보이는 속셈과 계산을 가지고 베푸는 친절은 열매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절박한 사랑의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면 반드시 전도에 응하게 될 것입니다
◉ 이와 같이 많은 전도 방법이 있지만
오늘의 교과 공부에 깊은 맥(脈)을 잡아 "예수님"의 방법대로 성경말씀대로 둘씩 짝지어 도시와 마을로 두루 다니라고 말씀하신 그 방법과 명령이 지금도 가장 유효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 서로 권면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보다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어떤 위대한 행위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하여 내 자신이 주님의 품성을 닮아가고 영혼들을 구원하며 함께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 70인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나갔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원리(原理)를 우리도 적용(適用)해야 한다.
<焦點>
1. 제자는 기본적(基本的)인 교육(敎育)과 훈련(訓練)을 통(通)해서 제자(弟子)가 되는 것이며.
2. 제자는 선교(宣敎)와 전도(傳道)로 실천(實踐)할 때 그의 사명(使命)이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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