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제자도의 그때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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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08-02-27 20:15 조회6,729회 댓글0건본문
제2과 제자도의 그때와 지금
1월 12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3분)
기억절: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연구범위: 마 24:14, 28:19-20, 막 16:20, 요 3:21-30, 행 5:34-39.
중심 사상: 헬라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제자도란 어떤 것이었는가? 침례자 요한의 제자도와 나사렛 예수님의 제자도는 어떻게 달랐는가?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제자도에서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는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제자도(弟子道)는 예수님의 지상봉사 이전 시대에도 있었다. 예수께서 인간의 육체를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시기 수세기 전에도 제자들을 모아 가르치므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헬라와 유대와 중국과 다른 고대 문명사회에 존재했었다. 이 교사들 중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스승으로, 생도들이 제자로 불려지는 것조차도 싫어할 만큼 너무나 친밀한 결속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이러한 교사들의 제자도와 예수님의 제자도를 비교해 보면서,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분의 제자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찰해 볼 것이다.
핵심본문: 막 16:19-20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이적과 기사로써 확증하셨다.
느끼기: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도록 한다.
행하기: 우리가 날마다 가는 곳을 선교지로 만든다.
교과 개요
I.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심
A. 제자들이 마가복음 16:19의 사건에 반응하여 즉시 행동하였음을 20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얼마나 신속히 반응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가?
B. 제자들이 복음을 ‘두루 전파’했다는 것은 복음이 얼마나 널리 확산된 것을 말해 주는가?
C.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셨다(막 16:20)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어떤 표적이 포함되어 있는가? 표적은 왜 중요한가?
II.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음
A.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에 어떤 이적을 행하시는가?
B. 예수께서는 우리 속에 어떤 ‘말씀’을 증거하기 원하시는가? 예수께서는 표적 이외에 어떤 것을 행하시는가?
III. 예수님과 함께 일함
A. 예수님 당시의 제자도에는 스승이 행한 이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B. 제자들은 ‘두루’ 다니며 전도하였다. 나의 가정과 학교와 일터를 어떻게 선교지(宣敎地)로 만들 수 있는가?
요점: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초기 제자들의 삶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일요일(1월 6일) 헬라인들 중에서의 제자도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요 12:20-21).
이 헬라 사람들이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미 이들의 신앙적 자세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본문의 앞 구절들을 살펴보면 이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도록 이끌어 준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다음 구절들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을 통해 이 헬라인들에게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렘 29:13, 요 1:9, 6:44, 행 10:34-35).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행10: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답: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전심으로 당신을 찾는 자들은 만나리라고 약속하셨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 6:44)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예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제자들을 택하여 부르셨다. 그런데 위의 구절들은 약간 다른 인상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도 성령께서는 이 헬라인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계셨던 것이다.
헬라 문화에서 제자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어떤 교사들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학생들이 교사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 편에서 관계를 시작하였다. 한편 대부분의 경우에 교사들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내게 하였다.
본문에 나오는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께 배우고자 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어떤 사실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엘렌 G. 화잇 여사는 기록하기를, “헬라인들은 그분의 사명에 관하여 진실을 알고자 하였다”(시대의 소망, 622)고 했으며, 예수께서 그들의 요청을 수락하셨다고 하였다.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헬라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쫓아내셨고 더욱이 그분은 다윗의 보좌를 취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소문을 퍼뜨렸다. 헬라인들은 그분의 사명에 관하여 진실을 알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간청은 허락되었다. 그 요청이 왔을 때 예수님은 유대인들 외에는 아무도 있을 수 없는 성전 경내에 계셨지만 헬라인들이 있는 바깥마당으로 나오셔서 그들과 개인적인 면담을 나누셨다”(시대의 소망, 622).
<부가설명>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했다.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서방에서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의 민족이라고 자처하는 헬라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다 온 세상에 예수를 찾게 될 것에 대한 적은 상징에 불과하였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혜의 스승을 찾아 수업료를 내고 배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것 같다. 아마 이들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헬라인들의 제자도를 따라 생각한 결과였을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자기 생각으로 거절하지 않아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은 인용하면서 말세에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신다고 말했다. 또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였다(행2:17,18). 모든 육체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남녀종들에게도 역사하신다. 그리스도의 종들을 통하여 전파되는 말씀은 모든 육체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에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스스로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훈: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것은 이들이 이미 예수님의 여러 가지 이적에 관해 들어왔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월요일(1월 7일) 유대인들 중에서의 제자도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필로(Philo)와 요세푸스(Josephus)와 같은 유대인 학자들의 글에도 언급되어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었던 유명한 두 랍비 힐렐(Hillel)과 샴마이(Shammai)가 경쟁적인 두 학파를 이끌고 있었다. 또한 사도행전에 보면 다소 사람 사울이 1세기의 또 다른 유명한 교사인 랍비 가말리엘(Gamaliel)의 문하에서 배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행 5:34-39, 22:3).
1. 위의 구절들에서 우리는 가말리엘에 관한 어떤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행5:34-39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답: 가말리엘은 백성의 존경을 받는 바리새인 교법사 중 하나로서, 공회 의원들이 사도들을 해하려고 할 때에 그 일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제안하였다. 사도 바울 역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다.
이 교사들은 1세기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들은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유대교 신학(神學)과 법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을 끌어 모아 그들의 발아래 앉게 하였다. 장차 랍비가 되기를 원하는 젊은 유대인은 열네 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 제자로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스승과 개인적으로 교제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제스처를 흉내 내고, 교실에서와 일상생활을 통해서 배움을 계속했다. 교실에서는 스승의 발아래 앉아 배우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가 전통적인 과정을 이수하였을 때는 서임(敍任)되지 않은 학자로 지명되었다가, 정해진 연령이 되면 랍비의 칭호를 받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는 계속하여 전 세계 유대인들을 위해 매고 푸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2. 오늘 교과에서 언급된 내용은 우리가 신약에서 발견하는 유대인들의 사제관계에 관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마 16:19, 18:18).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답: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교법사 가말리엘의 감화력
“가말리엘은 교법사요, 학문 있는 바리새인이요,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사려가 깊은 사람으로 죄수를 위하여 변호하기 전에 잠깐 동안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죄수들이 밖으로 나가자 신중하고 침착하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였다”(살아남는 이들, 257).
<부가설명> 유대인들은 랍비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런 문화적 사실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와 능력을 수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것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제자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견습하고 모방하며 선생을 닮아가는 훈련을 한 것이다. 이것이 제자도였다. 이런 문화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닮도록 훈련해야 할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를 모방해야 한다. 주께서 어떠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그래야 한다.
교훈: 유대인 교사들이 제자들을 가르친 사례가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성경 기록과 일치한다. 제자들은 오랫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화요일(1월 8일) 침례자 요한의 제자도
1. 요한복음 3:21-30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에 의하면 침례자 요한에게도 제자들이 있었습니까? 그도 역시 제자들을 불러 모은 스승이었습니까? 그는 랍비로서의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이 그를 호칭할 때 사용한 랍비라는 칭호는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요3:21-30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2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침례를 주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침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답: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을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로 기대하고 그를 랍비라고 불렀다. 그러나 요한 자신은 분명히 제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예수님을 높이는 말을 하였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어떤 유대인들은 침례자 요한이 메시야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사람을 보내어 요한에게 던졌던 질문 속에 암시되어 있다(요 1:19-28). 그들이 그런 질문을 던진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신구약 중간 시대에 유대인들 사이에는 메시야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 발전해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는 레위 지파에서 나오고, ‘왕으로서의 메시야’는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레위 지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을 보낸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요한의 제자들이 그를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로 보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요한이 레위 지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 때문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보낸 사람들은 요한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요한복음에서 침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관하여 한 말이 그처럼 자주 나오는 까닭은, 요한 자신도 예수님을 분명히 메시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려는 복음서 기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요한의 제자들도 꽤 많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요 3:25-26).
“보라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침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하였다. 많은 사람이 그의 교훈에 유의하였다. 많은 사람이 순종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했다. 허다한 무리가 이 새 교사를 여러 곳으로 따라다녔는데 그가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는 희망을 품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은 백성들이 자기에게로 향하여 오는 것을 보았을 때에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의 믿음을 오실 그분에게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시대의 소망, 108).
<부가설명> 침례요한이 어떻게 제자들을 두게 되었는지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문화를 보아서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에게 나아와 제자 되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혼탁한 시대에 개혁과 구원을 열망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의 사명은 메시야의 선구자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당시 광야에 은둔하여 집단생활을 한 에세네파에서 특히 두 메시야를 기다렸다. 아론적 메시야와 다윗적 메시야였다. 요한이 제사장의 아들인 것을 감안하고 그가 아론적 메시야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을 보내어 그의 신분을 물은 것이다(요1:19). 그러나 한 분 예수님이 이 두 직무를 다 수행하시는 메시야이셨다.
교훈: 많은 사람들이 침례자 요한을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키면서 자신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수요일(1월 9일) 예수님의 제자도
예수님께는 공중 봉사의 초기부터 제자들이 있었다. 그분께서는 헬라인 교사들과 유대인 교사들의 전통을 따라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교사로서 1세기 유대교적 배경 가운데서 등장하셨다. 한편 그분께서는 사명을 위해 예비하시는 과정에서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신 이래 그와의 접촉도 가지셨다.
예수께서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전통을 따라, 각처로부터 와서 당신을 따르며 그 가르침을 배우고 본받기를 원하는 자들을 제자로 삼으셨다(마 5:1-2, 요 1:35-40, 2:1-2).
1. 마태복음 4:18-20을 주의 깊게 읽고, 일요일과 월요일 교과로 돌아가 예수님을 따른 자들과, 헬라 교사들을 따른 자들과, 기존 유대교 랍비들을 따른 자들 사이에 제자가 된 방법들을 각각 비교해 보십시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마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답: 예수님 당시의 소위 랍비들도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가르침을 베풀었으나 예수님은 특히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강력한 지시를 주셨다. 이것은 이전의 생애를 온전히 버리고 당신께 전적으로 마음을 바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것이 당시 랍비들이나 헬라의 선생들과 아주 다른 점이었다.
“이때까지는 제자 중의 아무도 예수님의 동역자로서 그분과 온전히 연합한 자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많은 이적들을 목격하였고 그분의 교훈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의 생업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다. 침례자 요한의 투옥은 그들에게는 매우 쓰라린 실망이었다. 만일 요한의 전도의 결과가 이와 같은 것이라면 그들은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대적하고 있는 그들의 선생에게 거의 소망을 걸 수가 없었다. 이런 환경 아래서 잠시나마 돌아가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이 그들에겐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이전 생애를 버리고 그들의 관심을 당신의 관심과 결합시키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그 부르심을 받아들였다. 해안에 도착하시자 예수께서 다른 세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명령하셨다. 그들은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시대의 소망, 246-249).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심
“이 사람들이 봉급의 약속도 없이 즉각적으로 의심 없이 순종함은 이상한 듯하나, 그리스도의 부르시는 말씀에는 거역할 수 없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천한 어부들을 자기와 함께 사람들을 사단을 섬기는 데서 건져 내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방편으로 삼고자 하셨다. 그들로 이 일에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사람의 전설이나 궤변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리를 세상에 소개하며 주님의 덕을 실행하여 주님과 더불어 생애하고 일함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자격을 구비하게 하셨다”(복음교역자, 24).
<부가설명> 이미 다른 과에서 설명했는데,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세 단계를 거치셨다. 첫째는 와 보라는 단계이고, 둘째는 나를 따르라는 단계이며, 셋째는 보내셔서 전파하라는 단계이다. 이 세 번째 단계가 바로 사도의 단계이다. 12사도는 이 세 단계를 다 거친 제자들이다. 우리도 이 단계를 거치게 된다. 와서 보고, 다르면서 말씀을 배우고 그리고 그 배운 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교회가 바로 이 일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이런 의미로 모든 성도들은 다 제자들이다. 어는 단계에 있는지는 각자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셋째 단계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은 첫 단계에 이르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이 오기는 하는데 예수님을 처음 찾았던 사람들처럼 예수와 함께 오래 있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오래 함께 있으면서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안드레처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할 수 있을 것인데.
교훈: 예수님도 그 당시의 다른 교사들처럼 제자들을 두셨으나 그분께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교사로서 제자들을 당신의 동역자로 부르셨다.
목요일(1월 10일) 오늘날의 제자도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1. 위의 본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를 위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참조 마 24:14, 28:19-20, 계 14:6-12).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며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렇게 할 때에 그들에게는 주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따를 것이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했다는 사실 외에도, 마가는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초기 제자들과 함께 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당신의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셨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제자들도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통해 그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가? 우리가 보는 이적과 기사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는 이적과 기사를 어떻게 정의(定義)하는가? 우리는 모든 문화와 시대와 사회에서 같은 종류의 이적과 기사를 기대해야 하는가?
2.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당신의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기 위해 이적과 기사 외에 어떤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이적과 기사 외에도 마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감화를 사용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초기 제자들 못지않게 오늘날의 제자들에게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임무에 대해 동일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라고 말씀하신다. 더욱이 그분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고 말씀하신다.
말씀 전파에 따른 표적
“최초의 제자들이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들은 저희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었다. 주께서 저희와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이 제자들은 저희 사업을 위하여 자기 자신들을 준비했다. 오순절 전에 그들은 함께 모여서 모든 불화를 일소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들은 자기들만을 위한 축복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구원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꼈다.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내려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그렇게 했을 때에 성령이 부어진바 되었고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였다”(시대의 소망, 827).
<부가설명> 예나 오늘이나 예수님의 제자도의 원리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온 마음과 생명과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고귀한 신분을 잘 지키면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드러나야 한다. 입으로 말을 하든지 안 하든지 존재로서 예수님을 실감하도록 해야 한다. 말이 없어도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이 드러나도록 살 때에 제자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이 욕을 먹는다면 그는 제자도를 바르게 나타내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어떤가?
교훈: 예수께서는 오늘날의 제자들에게도 초기의 제자들 못지않게 많은 것을 기대하신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금요일(1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보고: 재림교 성경주석, 9권 370-373, 577-580, 10권 531-532, 659, 엘렌 G. 화잇, 시대의 소망, 442
“침례자 요한이 백성에게 미친 영향은 한 때 관원들, 제사장들, 방백들의 감화보다 더 컸다. 만일 그가 자신을 메시야라고 선언하고 로마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켰다면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그의 깃발 아래로 뭉쳤을 것이다. 사단은 세상의 정복자들의 야심에 호소하는 온갖 수단을 침례 요한에게 강요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능력의 증거를 앞에 가지고도 그 화려한 매수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분에게로 향하게 하였다.
이제 요한은 인기의 조류가 자기 자신에게서 구주에게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자기 주위에 둘러선 군중들은 나날이 그 수가 줄어들었다. …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의 인기가 상승하는 것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시대의 소망, 17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말 속에는 어떤 것이 포함됩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와 같은 헌신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 생활 철학이 완전히 예수님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이 지도하는대로 우리의 사언행(思言行)을 이룰 때 그렇게 된다.
2. 우리의 교육 기관들은 제자를 만드는 일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와 학교들이 이 중요한 도전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 학교 당국과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그들의 위치와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고 정직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혼연일체가 되어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그들을 하늘 시민으로 꼴짓도록 지도해야 한다. 세상 문화와 풍조를 너무 의식하다보면 이런 일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3. 이적과 기사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믿습니까? 이적과 기사는 무엇을 증명해 주며, 또한 무엇을 증명해 줄 수 없습니까? 우리는 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할 때 깊은 주의와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까?
*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하시는가를 드러내는 표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며 그분만을 경배해야 하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 때는 사단도 이적과 기사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만이 올바른 분별로 바른 이적과 기사를 행할 것이다. 가장 큰 이적과 기사는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생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존재와 생명이 예수님의 것인 줄 깨닫고 예수님께 자신을 맡긴 사람들이다. 참된 제자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1월 12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3분)
기억절: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연구범위: 마 24:14, 28:19-20, 막 16:20, 요 3:21-30, 행 5:34-39.
중심 사상: 헬라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제자도란 어떤 것이었는가? 침례자 요한의 제자도와 나사렛 예수님의 제자도는 어떻게 달랐는가?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제자도에서 오늘날에 적용할 수 있는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제자도(弟子道)는 예수님의 지상봉사 이전 시대에도 있었다. 예수께서 인간의 육체를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시기 수세기 전에도 제자들을 모아 가르치므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헬라와 유대와 중국과 다른 고대 문명사회에 존재했었다. 이 교사들 중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스승으로, 생도들이 제자로 불려지는 것조차도 싫어할 만큼 너무나 친밀한 결속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이러한 교사들의 제자도와 예수님의 제자도를 비교해 보면서,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분의 제자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찰해 볼 것이다.
핵심본문: 막 16:19-20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이적과 기사로써 확증하셨다.
느끼기: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도록 한다.
행하기: 우리가 날마다 가는 곳을 선교지로 만든다.
교과 개요
I.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심
A. 제자들이 마가복음 16:19의 사건에 반응하여 즉시 행동하였음을 20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얼마나 신속히 반응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가?
B. 제자들이 복음을 ‘두루 전파’했다는 것은 복음이 얼마나 널리 확산된 것을 말해 주는가?
C.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셨다(막 16:20)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어떤 표적이 포함되어 있는가? 표적은 왜 중요한가?
II.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음
A.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에 어떤 이적을 행하시는가?
B. 예수께서는 우리 속에 어떤 ‘말씀’을 증거하기 원하시는가? 예수께서는 표적 이외에 어떤 것을 행하시는가?
III. 예수님과 함께 일함
A. 예수님 당시의 제자도에는 스승이 행한 이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B. 제자들은 ‘두루’ 다니며 전도하였다. 나의 가정과 학교와 일터를 어떻게 선교지(宣敎地)로 만들 수 있는가?
요점: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초기 제자들의 삶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일요일(1월 6일) 헬라인들 중에서의 제자도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요 12:20-21).
이 헬라 사람들이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미 이들의 신앙적 자세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본문의 앞 구절들을 살펴보면 이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도록 이끌어 준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다음 구절들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을 통해 이 헬라인들에게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렘 29:13, 요 1:9, 6:44, 행 10:34-35).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행10: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답: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전심으로 당신을 찾는 자들은 만나리라고 약속하셨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 6:44)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예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제자들을 택하여 부르셨다. 그런데 위의 구절들은 약간 다른 인상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도 성령께서는 이 헬라인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계셨던 것이다.
헬라 문화에서 제자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어떤 교사들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학생들이 교사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 편에서 관계를 시작하였다. 한편 대부분의 경우에 교사들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내게 하였다.
본문에 나오는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께 배우고자 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어떤 사실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엘렌 G. 화잇 여사는 기록하기를, “헬라인들은 그분의 사명에 관하여 진실을 알고자 하였다”(시대의 소망, 622)고 했으며, 예수께서 그들의 요청을 수락하셨다고 하였다.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헬라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쫓아내셨고 더욱이 그분은 다윗의 보좌를 취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소문을 퍼뜨렸다. 헬라인들은 그분의 사명에 관하여 진실을 알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간청은 허락되었다. 그 요청이 왔을 때 예수님은 유대인들 외에는 아무도 있을 수 없는 성전 경내에 계셨지만 헬라인들이 있는 바깥마당으로 나오셔서 그들과 개인적인 면담을 나누셨다”(시대의 소망, 622).
<부가설명>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했다.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서방에서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의 민족이라고 자처하는 헬라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다 온 세상에 예수를 찾게 될 것에 대한 적은 상징에 불과하였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혜의 스승을 찾아 수업료를 내고 배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것 같다. 아마 이들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헬라인들의 제자도를 따라 생각한 결과였을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자기 생각으로 거절하지 않아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은 인용하면서 말세에 성령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신다고 말했다. 또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였다(행2:17,18). 모든 육체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남녀종들에게도 역사하신다. 그리스도의 종들을 통하여 전파되는 말씀은 모든 육체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에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스스로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훈: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것은 이들이 이미 예수님의 여러 가지 이적에 관해 들어왔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월요일(1월 7일) 유대인들 중에서의 제자도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필로(Philo)와 요세푸스(Josephus)와 같은 유대인 학자들의 글에도 언급되어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었던 유명한 두 랍비 힐렐(Hillel)과 샴마이(Shammai)가 경쟁적인 두 학파를 이끌고 있었다. 또한 사도행전에 보면 다소 사람 사울이 1세기의 또 다른 유명한 교사인 랍비 가말리엘(Gamaliel)의 문하에서 배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행 5:34-39, 22:3).
1. 위의 구절들에서 우리는 가말리엘에 관한 어떤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행5:34-39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답: 가말리엘은 백성의 존경을 받는 바리새인 교법사 중 하나로서, 공회 의원들이 사도들을 해하려고 할 때에 그 일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제안하였다. 사도 바울 역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다.
이 교사들은 1세기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들은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유대교 신학(神學)과 법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을 끌어 모아 그들의 발아래 앉게 하였다. 장차 랍비가 되기를 원하는 젊은 유대인은 열네 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 제자로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스승과 개인적으로 교제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제스처를 흉내 내고, 교실에서와 일상생활을 통해서 배움을 계속했다. 교실에서는 스승의 발아래 앉아 배우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가 전통적인 과정을 이수하였을 때는 서임(敍任)되지 않은 학자로 지명되었다가, 정해진 연령이 되면 랍비의 칭호를 받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는 계속하여 전 세계 유대인들을 위해 매고 푸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2. 오늘 교과에서 언급된 내용은 우리가 신약에서 발견하는 유대인들의 사제관계에 관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구절들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마 16:19, 18:18).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답: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교법사 가말리엘의 감화력
“가말리엘은 교법사요, 학문 있는 바리새인이요,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사려가 깊은 사람으로 죄수를 위하여 변호하기 전에 잠깐 동안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하였다. 죄수들이 밖으로 나가자 신중하고 침착하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였다”(살아남는 이들, 257).
<부가설명> 유대인들은 랍비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런 문화적 사실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와 능력을 수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것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제자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견습하고 모방하며 선생을 닮아가는 훈련을 한 것이다. 이것이 제자도였다. 이런 문화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닮도록 훈련해야 할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를 모방해야 한다. 주께서 어떠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그래야 한다.
교훈: 유대인 교사들이 제자들을 가르친 사례가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성경 기록과 일치한다. 제자들은 오랫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화요일(1월 8일) 침례자 요한의 제자도
1. 요한복음 3:21-30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에 의하면 침례자 요한에게도 제자들이 있었습니까? 그도 역시 제자들을 불러 모은 스승이었습니까? 그는 랍비로서의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이 그를 호칭할 때 사용한 랍비라는 칭호는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요3:21-30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2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침례를 주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례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침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답: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을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로 기대하고 그를 랍비라고 불렀다. 그러나 요한 자신은 분명히 제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예수님을 높이는 말을 하였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어떤 유대인들은 침례자 요한이 메시야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사람을 보내어 요한에게 던졌던 질문 속에 암시되어 있다(요 1:19-28). 그들이 그런 질문을 던진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신구약 중간 시대에 유대인들 사이에는 메시야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 발전해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는 레위 지파에서 나오고, ‘왕으로서의 메시야’는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레위 지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을 보낸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요한의 제자들이 그를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로 보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요한이 레위 지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 때문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보낸 사람들은 요한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요한복음에서 침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관하여 한 말이 그처럼 자주 나오는 까닭은, 요한 자신도 예수님을 분명히 메시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려는 복음서 기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요한의 제자들도 꽤 많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요 3:25-26).
“보라 세상 죄를 지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침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하였다. 많은 사람이 그의 교훈에 유의하였다. 많은 사람이 순종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했다. 허다한 무리가 이 새 교사를 여러 곳으로 따라다녔는데 그가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는 희망을 품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은 백성들이 자기에게로 향하여 오는 것을 보았을 때에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의 믿음을 오실 그분에게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시대의 소망, 108).
<부가설명> 침례요한이 어떻게 제자들을 두게 되었는지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문화를 보아서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에게 나아와 제자 되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혼탁한 시대에 개혁과 구원을 열망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의 사명은 메시야의 선구자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당시 광야에 은둔하여 집단생활을 한 에세네파에서 특히 두 메시야를 기다렸다. 아론적 메시야와 다윗적 메시야였다. 요한이 제사장의 아들인 것을 감안하고 그가 아론적 메시야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을 보내어 그의 신분을 물은 것이다(요1:19). 그러나 한 분 예수님이 이 두 직무를 다 수행하시는 메시야이셨다.
교훈: 많은 사람들이 침례자 요한을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키면서 자신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수요일(1월 9일) 예수님의 제자도
예수님께는 공중 봉사의 초기부터 제자들이 있었다. 그분께서는 헬라인 교사들과 유대인 교사들의 전통을 따라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교사로서 1세기 유대교적 배경 가운데서 등장하셨다. 한편 그분께서는 사명을 위해 예비하시는 과정에서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신 이래 그와의 접촉도 가지셨다.
예수께서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전통을 따라, 각처로부터 와서 당신을 따르며 그 가르침을 배우고 본받기를 원하는 자들을 제자로 삼으셨다(마 5:1-2, 요 1:35-40, 2:1-2).
1. 마태복음 4:18-20을 주의 깊게 읽고, 일요일과 월요일 교과로 돌아가 예수님을 따른 자들과, 헬라 교사들을 따른 자들과, 기존 유대교 랍비들을 따른 자들 사이에 제자가 된 방법들을 각각 비교해 보십시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마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답: 예수님 당시의 소위 랍비들도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가르침을 베풀었으나 예수님은 특히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강력한 지시를 주셨다. 이것은 이전의 생애를 온전히 버리고 당신께 전적으로 마음을 바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것이 당시 랍비들이나 헬라의 선생들과 아주 다른 점이었다.
“이때까지는 제자 중의 아무도 예수님의 동역자로서 그분과 온전히 연합한 자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많은 이적들을 목격하였고 그분의 교훈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의 생업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였다. 침례자 요한의 투옥은 그들에게는 매우 쓰라린 실망이었다. 만일 요한의 전도의 결과가 이와 같은 것이라면 그들은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대적하고 있는 그들의 선생에게 거의 소망을 걸 수가 없었다. 이런 환경 아래서 잠시나마 돌아가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이 그들에겐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이전 생애를 버리고 그들의 관심을 당신의 관심과 결합시키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그 부르심을 받아들였다. 해안에 도착하시자 예수께서 다른 세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명령하셨다. 그들은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시대의 소망, 246-249).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심
“이 사람들이 봉급의 약속도 없이 즉각적으로 의심 없이 순종함은 이상한 듯하나, 그리스도의 부르시는 말씀에는 거역할 수 없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천한 어부들을 자기와 함께 사람들을 사단을 섬기는 데서 건져 내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방편으로 삼고자 하셨다. 그들로 이 일에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사람의 전설이나 궤변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리를 세상에 소개하며 주님의 덕을 실행하여 주님과 더불어 생애하고 일함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자격을 구비하게 하셨다”(복음교역자, 24).
<부가설명> 이미 다른 과에서 설명했는데,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세 단계를 거치셨다. 첫째는 와 보라는 단계이고, 둘째는 나를 따르라는 단계이며, 셋째는 보내셔서 전파하라는 단계이다. 이 세 번째 단계가 바로 사도의 단계이다. 12사도는 이 세 단계를 다 거친 제자들이다. 우리도 이 단계를 거치게 된다. 와서 보고, 다르면서 말씀을 배우고 그리고 그 배운 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교회가 바로 이 일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이런 의미로 모든 성도들은 다 제자들이다. 어는 단계에 있는지는 각자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셋째 단계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은 첫 단계에 이르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이 오기는 하는데 예수님을 처음 찾았던 사람들처럼 예수와 함께 오래 있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오래 함께 있으면서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안드레처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할 수 있을 것인데.
교훈: 예수님도 그 당시의 다른 교사들처럼 제자들을 두셨으나 그분께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교사로서 제자들을 당신의 동역자로 부르셨다.
목요일(1월 10일) 오늘날의 제자도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1. 위의 본문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를 위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참조 마 24:14, 28:19-20, 계 14:6-12).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며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렇게 할 때에 그들에게는 주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따를 것이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했다는 사실 외에도, 마가는 주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초기 제자들과 함께 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당신의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셨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제자들도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통해 그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가? 우리가 보는 이적과 기사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는 이적과 기사를 어떻게 정의(定義)하는가? 우리는 모든 문화와 시대와 사회에서 같은 종류의 이적과 기사를 기대해야 하는가?
2.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당신의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기 위해 이적과 기사 외에 어떤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답: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이적과 기사 외에도 마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감화를 사용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초기 제자들 못지않게 오늘날의 제자들에게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임무에 대해 동일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라고 말씀하신다. 더욱이 그분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고 말씀하신다.
말씀 전파에 따른 표적
“최초의 제자들이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들은 저희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었다. 주께서 저희와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이 제자들은 저희 사업을 위하여 자기 자신들을 준비했다. 오순절 전에 그들은 함께 모여서 모든 불화를 일소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들은 자기들만을 위한 축복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구원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꼈다.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내려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그렇게 했을 때에 성령이 부어진바 되었고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였다”(시대의 소망, 827).
<부가설명> 예나 오늘이나 예수님의 제자도의 원리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온 마음과 생명과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고귀한 신분을 잘 지키면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드러나야 한다. 입으로 말을 하든지 안 하든지 존재로서 예수님을 실감하도록 해야 한다. 말이 없어도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이 드러나도록 살 때에 제자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이 욕을 먹는다면 그는 제자도를 바르게 나타내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어떤가?
교훈: 예수께서는 오늘날의 제자들에게도 초기의 제자들 못지않게 많은 것을 기대하신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금요일(1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보고: 재림교 성경주석, 9권 370-373, 577-580, 10권 531-532, 659, 엘렌 G. 화잇, 시대의 소망, 442
“침례자 요한이 백성에게 미친 영향은 한 때 관원들, 제사장들, 방백들의 감화보다 더 컸다. 만일 그가 자신을 메시야라고 선언하고 로마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켰다면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그의 깃발 아래로 뭉쳤을 것이다. 사단은 세상의 정복자들의 야심에 호소하는 온갖 수단을 침례 요한에게 강요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능력의 증거를 앞에 가지고도 그 화려한 매수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분에게로 향하게 하였다.
이제 요한은 인기의 조류가 자기 자신에게서 구주에게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자기 주위에 둘러선 군중들은 나날이 그 수가 줄어들었다. …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의 인기가 상승하는 것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시대의 소망, 17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말 속에는 어떤 것이 포함됩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와 같은 헌신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 생활 철학이 완전히 예수님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이 지도하는대로 우리의 사언행(思言行)을 이룰 때 그렇게 된다.
2. 우리의 교육 기관들은 제자를 만드는 일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와 학교들이 이 중요한 도전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 학교 당국과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그들의 위치와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고 정직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혼연일체가 되어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서 그들을 하늘 시민으로 꼴짓도록 지도해야 한다. 세상 문화와 풍조를 너무 의식하다보면 이런 일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3. 이적과 기사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믿습니까? 이적과 기사는 무엇을 증명해 주며, 또한 무엇을 증명해 줄 수 없습니까? 우리는 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할 때 깊은 주의와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까?
*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하시는가를 드러내는 표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며 그분만을 경배해야 하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 때는 사단도 이적과 기사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만이 올바른 분별로 바른 이적과 기사를 행할 것이다. 가장 큰 이적과 기사는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생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존재와 생명이 예수님의 것인 줄 깨닫고 예수님께 자신을 맡긴 사람들이다. 참된 제자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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