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제자가 되기 위한 준비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7과 제자가 되기 위한 준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08-02-27 21:29 조회7,359회 댓글0건

본문

제7과 제자가 되기 위한 준비
2월 16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1분)

기억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16).

연구범위: 마 5-7장, 10:1, 5-42, 막 3:1-19, 눅 6:12-16.

학습 포인트: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어떻게 준비시키셨는가? 그분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제자도에 관한 어떤 원칙을 배울 수 있는가? 제자도에 관한 중요한 말씀인 산상수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떤 반대에 부딪힐 것을 예상할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으로부터 배우는 자로서, 끊임없이 스승과 같이 되고자 애쓰는 자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보내신 것처럼 모든 교회는 제자의 길을 독려하고 계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침례 준 사람들이 곧 떠나가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 못한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르치다’로 번역된 이 단어는 ‘제자를 만들다’의 뜻이 있는 헬라어에서 왔다(실제로 많은 번역본들이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이번 주에 제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살펴볼 것이다.

핵심본문: 마 7:1-5

학습 목표
깨닫기: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 대로 비판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남을 비판하는 대신 자애롭게 대하고자 하는 열망을 계발한다.
행하기: 남을 판단하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한다.

교과 개요
I. 비판하지 말라
A.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B.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모든 제자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비판의 문제에 대해 어떤 경고를 주셨는가? 우리가 이 말씀을 따를 때 어떻게 더욱 성공적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가?
C. 우리 눈에서 ‘들보’를 제거하는 일은 자신의 약점 대신 남의 약점만을 보려는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 주는가?

II. 예수님의 자비
A. 성경이 말하는 두 종류의 판단, 즉 용서하기 위한 판단과 정죄하기 위한 판단은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B. 남의 허물을 찾는 태도는 어떻게 자비의 정신을 소멸하는가?

III. ‘들보’를 제거함
A. 남의 허물을 찾는 정신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B. 예수께서는 비판받는 자를 가리켜 원수라 하지 않고 ‘형제’라고 하셨으므로 우리는 실수하는 교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C. 예수께서는 우리가 형제의 눈 속의 티를 제거하는 대신 먼저 우리 눈 속의 들보를 제거하도록 어떻게 도와주시는가?

요점: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는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과 우리 자신의 영적 필요에 대해 눈멀게 만든다.


일요일(2월 10일) 사도들을 지명하심

마가복음 3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한 편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유명한 안식일의 치유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이야기(막 3:1-12)에서 우리는 굉장한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되는데, 지도자들은 그분을 죽일 기회를 찾는 한편 큰 무리는 그분을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편에서는 그분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 능력의 은총을 받는 것을 시기하고 있었다.

1. 마가복음 3:13-19(참조 눅 6:12-16)에는 어떤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막3:13-19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눅6:12-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답: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여 사도라 칭하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기사를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어느 시점에 당신을 따르는 큰 무리로부터 떠나시어 선택된 제자들의 무리와 함께 다니셨다. 예수께서는 이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아 사도의 일을 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임무를 위하여 원하시는 자들을 택하셨다. 우리가 이미 공부한 대로 이것은 그분께 주도권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분께서는 그 부르심을 우리에게까지 확대하셨다. 이 말은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영역에서 얼마나 능력을 가졌든지 간에 그 봉사를 위해 전심전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와 사도는 어떻게 다른가? 제자는 배우는 자이다. 제자는 스승과 함께 공부하기 위하여 스승을 따른다. ‘사도’라는 용어는 헬라어의 두 단어 즉 아포(apo)와 스텔로(stello)에서 왔는데, 이는 ‘누군가로부터 보냄을 받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도(使徒)란 주인이나 나라를 대표하기 위해 파견된 대사(大使) 또는 밀사(密使)이다. 제자나 사도는 둘 다 배우는 자이지만, 사도는 주인이나 조직체의 대표로서 보냄을 받기 때문에 별도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열두 명을 지명하여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고 복음전파를 위해 보내실 것이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고 마태는 기록하였다. 그분께 택함을 받은 자들은 그분께서 가시는 곳마다 따르는 큰 무리를 돌보기 위해 훈련을 받아야 했다.

열두 제자들에게 부여된 사명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아가 저희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고 들은 바를 세상에 선포하여야 하였다. 그들의 직무는 이제까지 인간이 부르심을 받은 직무 중 가장 중대한 것이었고 그리스도의 직무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였다. 구약에 열두 부조들이 이스라엘을 대표한 것처럼 열두 사도는 복음 교회의 대표자가 되었다”(사도행적, 19).

<부가설명> 열둘을 부르셨다는 말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다르다. 마가는 ‘푸로스칼레이타이’를 썼는데(막 3:13), 이것은 초대한다는 뜻이다.
누가는 ‘푸로스포네오’를 썼는데, 이것은 호출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 제자를 삼는 일에 강제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마가의 기록은 “마음에 드는 자들을 부르셨다”(막 3:13), 초대했다고 기록했다. 옹위한 사람들 중에서 늘 눈여겨 살펴온 마음에 든 자들을 초대하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초대이기 때문에 응하고, 응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이 초대는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도전이다. 이 도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의 영원한 인격을 좌우한다. 그리고 이 초청에 자원하여, 응한 사람들을 예수님은 호출하신다. 그래서 누가는 “제자를 부르사”(눅 6:13), 즉 호출하사라고 썼다. 예수님의 초청에 즐겨 응한 자는 그의 호출에 대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님은 그 호출에 나온 사람들 중에서 열둘을 택하셨다. 택한다는 말은 ‘에클레고’인데, 아주 신중히 가려 뽑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이렇게 선택하여 그들을 세우셨다(막 3:14). 이 말은 ‘포이에오’로 ‘만들다, 창조하다, 행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런 경우는 특별한 직분을 맡기기 위하여 따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직분에 임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열둘에게 사도라는 특별 임무를 주셨다. 사도란 말 ‘아포스톨로스’는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은 자, 대리자라는 말이다. 이 이름은 제자들의 할 일이 무엇임을 명시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가는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고 기록하였다. (김명호 저, 예수의 생애와 교훈 269, 270)

교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신 것은 사도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오늘날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떤 임무와 권능을 받았는가?


월요일(2월 11일) 산상수훈 - 1

많은 학자들은 산상수훈(마 5-7장)을 왕이신 예수님의 취임 설교로 보고, 거기에 그분의 왕국의 윤리가 설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산상수훈에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기 위한 열쇠가 들어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제자도에 관한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1. 마태복음 5:1을 읽으십시오. 이 설교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이 설교를 하신 그 당시의 청중은 누구였습니까?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답: 산상수훈은 어떤 의미에서 제자도에 관한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무리들이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말씀하셨다.

산상수훈을 해설한 책이 과연 몇 권이나 쓰였는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이번 주 교과의 목적에 따라 산상수훈의 주요 내용 가운데서 특히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마태복음 5:13-15을 읽으십시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를 위하여 어떤 기별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 말씀들은 요한계시록 14:6-12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는 우리 재림 신자들에게 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마5:13-15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답: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우리에게 맡겨진 마지막 시대를 위한 기별을 전파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마태복음 6:5-13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제자도에 관해 어떤 중요한 교훈을 주고 계십니까?
마6:5-13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답: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기도의 내용을 가르치셨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부여받음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그들은 세상에서 유익한 감화를 끼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릇 나타냄으로써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
참된 품성은 밖에서 형성되어 장식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밖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다른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한다면 의의 원칙이 우리 마음에 먼저 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시대의 소망, 306-307)

<부가설명> 산상수훈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윤리를 선포한 것이다. 이것을 불가능의 윤리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세상 정신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니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윤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윤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바로 이 수훈처럼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방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해와 비를 선인이나 악인에게 다 내려주시듯이 인간의 상태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마땅한 길이다.

교훈: 산상수훈(마 5-7장)에는 제자도의 기본 원칙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지침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자.


화요일(2월 12일) 산상수훈 - 2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침례 받은 새 신자들의 교회 잔존율 문제이다. 이 모든 문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그분의 새로운 왕국의 시민이 되게 가르치는 제자도와 관련이 있다.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이 배우고 따라야 할 실제적인 교훈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산상수훈을 계속 공부하면서 “이 가르침을 어떻게 내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이 문제를 새 신자들에게 잘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더 나은 제자가 되게 할 수 있을까?”하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1. 마태복음 7:1-5을 읽으십시오. 여기에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이 배워야 할 어떤 중요한 교훈과 경고가 주어져 있습니까? 비판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답: 제자들은 남을 판단하지 말고,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2. 마태복음 7:15-20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까? 이 구절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마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답: 예수의 제자들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이다. 이 나무는 같은 종류의 좋고 나쁜 나무가 아니고, 포도나무와 가시나무, 무화과나무와 엉겅퀴의 대조로 보이듯이 전혀 다른 나무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공언하는 것과 실제로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제자로 만들거나 혹은 우리 자신이 좋은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예수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3. 마태복음 7:24-27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 구절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성경의 다른 약속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답: 이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말씀을 듣고 믿는다 하더라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듣지 않음만 못하다. 참된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의 행동이 따른다.

생활 속에서 진리를 실천함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신학적 교의(敎義)에 동의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실생활에 실천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를 믿고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성결하게 하는 진리를 통하여 오는 능력과 은혜를 받지 못하였다”(시대의 소망, 309).

<부가설명> 마태 7장은 천국 시민 곧 예수의 제자들의 삶의 결과를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자신이 포도나무라고 하셨다. 그의 제자는 그 가지들이다. 포도나무 가지는 역시 포도나무이다. 열매는 가지에서 맺힌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서 그 진액을 받는다면 저절로 열매를 맺힌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함께 보면 포도나무 가지인데,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마르는 것이 있는가하면, 가시와 엉겅퀴도 있다. 둘 다 불에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예수의 참된 제자는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이다. 예수 생명이 그 안에서 살기 때문에 예수와 같은 삶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그런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 산상보훈이다.

교훈: 새로운 신자들을 포함한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함으로 그분의 참 제자가 되고 품성의 바른 열매를 맺어야 한다.


수요일(2월 13일) 선교 여행을 위한 지침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마 4:19)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은 곧바로 성취되지 않았다. 처음에 그들은 그분의 활동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봉사 동안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9:35).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36절)을 보시고 저들을 민망히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37절) 주인께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라고 요청하셨다.

1. 열두 제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마 10:1, 5-42). 오늘날 우리가 제자를 만들기 위해 애쓸 때에 적용할 만한 어떤 원리를 이 구절들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마10:1, 5-42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답: 우리가 제자 삼을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다. 우리와 가까운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서부터 그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어야 한다. 때로는 거절과 박해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처신하면서 끝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눈동자처럼 돌보실 것이다.

이 구절들에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배울 수 있는 많은 교훈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반대와 소동, 심지어는 박해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닥칠 때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런 일이 없는 때를 염려해야 한다.

2. 마태복음 10장의 내용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떤 종류의 반대와 소동과 시련을 당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미 2천여 년 전에 말씀하신 그 일을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겪었던 적이 있습니까?

답: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마 10:17-18).

박해는 빛을 확산시킴
“박해는 빛을 확산시킬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 박해가 아니었다면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하였을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 앞에 끌려 나갈 것이다. … 그 위기에 대처하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의 종들에게 공급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신다”(시대의 소망, 354).

<부가설명> 마태복음 10장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다섯 번의 설교 중에서 두 번째 강론에 해당되는데 천국의 전파에 대한 주제로 말씀하신 것이다. 천국을 이 죄의 세상에서 증거하는 데는 곤란이 따른다. 천국을 전파하는 제자들은 오직 천국을 전파하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길 가다가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몰두해야 한다. 당시 유대인들의 인사 풍속은 서로 마주 대하고 서서 긴 시간동안 안부도 묻고 기타 많은 말을 하였다. 천국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길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낼 만큼 시간 여유가 없다. 내일 죽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니 당장 죽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망의 존재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협과 핍박이 있어도 전해야 한다. 그들은 죽어도 사는 생명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핍박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죽음을 자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훈: 예수께서 당신의 열두 제자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전도의 중요한 원리들을 제시해 주셨다. 우리는 반대와 박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목요일(2월 14일) 70인의 전도

예수께서 70인의 제자들을 지명하여 선교여행을 보내신 사실은 누가복음에만 언급되어 있다(눅 10:1-23, 참조 출 24:1, 9). 그분께서 이들에게 주신 지침은 여러 면에서 열두 제자들에게 주신 지침과 비슷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교육하신 후에 둘씩 짝을 지어, 당신께서 가실 각동 각처로 앞서 보내셨다. 이들의 사명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일은 예수께서 오실 때에 사람들이 그분을 영접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을 준비시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일과 얼마나 흡사한가?

1. 그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신 데는 어떤 유리한 점이 있었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이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눅10:1-23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답: 서로 권면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보다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누가복음 10:17에는 70인이 기쁨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는데, 이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그들에게 항복”했기 때문이었다(눅 10:17).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그 능력으로 인해 전율을 느꼈으며, 그 능력이 그분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받은 바 능력을 인정하시면서도, 그들이 진정으로 기뻐해야할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적하셨다.

2. 누가복음 10:20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줍니까?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답: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어떤 위대한 행위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하여 내 자신이 주님의 품성을 닮아가고 영혼들을 구원하며 함께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어떤 위대한 행위도 구원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마 7:22-23). 종교적인 지위나 교회의 권위, 심지어 영혼구원을 통해 얻은 큰 성공도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로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고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계 3:5). 왜냐하면 하늘에 기록된 이름은 곧 예수님을 통한 영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씩 짝지어 보내심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당신 주위로 부르시고 둘씩 짝을 지어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라고 명령하셨다. 아무도 혼자 나아가지 않았으며 형제는 형제와 연합하고 친구는 친구끼리 짝을 지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은 함께 권면하고 기도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충하면서 피차에 돕고 격려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모양으로 후에 칠십 인을 내보내셨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연합시키시는 것이 구주의 목적하시는 바였다. 오늘날 우리가 이 모본을 더욱 엄밀히 따른다면 전도 사업은 훨씬 더 성공을 거둘 것이다”(시대의 소망, 350).

<부가설명>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물론 성령께서 전도인을 통하여 일하신다. 성령께서 친히 구스 내시에게 전도하지 않으시고 빌립을 시켜서 전도하게 하셨다. 그러나 빌립을 내시에게 보내신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리고 내시가 말씀을 기쁨으로 받도록 마음을 감동시키신 분도 성령이시다. 성령이 역사할 때 반응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로 인하여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성취한 것처럼 기뻐하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것은 다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을 알고 성령이 함께 하셨음을 감사하면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실이 진정으로 기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시온의 등록부에 등재된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시87:6).

교훈: 70인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나갔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원리를 우리도 적용해야 한다.


금요일(2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재림교 성경주석, 한국어판, 9권, 225-229, 10권, 276-282, 시대의 소망, 312-314, 제37장 ‘최초의 복음 전도자들’(349-358), 교육, 79-80, 마가복음 6:6-13.

“마태복음 5:1-2의 짧은 구절 속에 우리는 산상수훈의 중요한 세 가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1) 예수께서는 ‘앉으셔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유대 랍비가 공식적인 가르침을 베풀 때에는 앉아서 가르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앉아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는 것은 이 가르침이 중요하고 공식적인 가르침임을 암시해 준다. (2) 마태는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고 말한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구절은 이중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a) 헬라어에서 이 구절은 엄숙하고 근엄한 어조로 기록되어 있다. b) 이것은 또한 가슴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온전히 쏟아 내는 말임을 가리킨다. 이것은 대체로 서로 간에 격이 없는 친밀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3) 이제 우리가 연구하는 이 구절의 헬라어 동사의 시제는 부정(不定) 과거가 아니라 미완료 시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행동을 묘사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분이 그들에게 가르치시곤 하던 것’이라 번역해야 한다. 산상 수훈은 특별한 때에 특별한 상황에서 하신 예수님의 한 설교가 아니라는 것을 마태는 헬라어 어법상으로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산상수훈은 예수께서 계속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던 것의 핵심이라는 것이다”(윌리엄 바클레이, 마태복음, 웨스트민스터 출판사, 1975년, 86-8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어떤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까? 그 프로그램의 강점과 약점은 각각 무엇입니까? 교회가 제자훈련을 더 잘 시키려면 어떤 실제적인 단계를 밟아야 할까요?
* 말씀을 가르치고 나가서 실습하도록 훈련할 필요가 있다. 각 교회의 프로그램에 대하여서는 서로 의논해보라.

2. 안식일학교 자체를 하나의 제자훈련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은 무엇입니까? 함께 논의해 봅시다.
* 각 반에서 의논해 보자.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말씀에 더 가까이 말씀을 생활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