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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제자도에 관한 추가적인 교훈들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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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3-07 23:39 조회5,4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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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제자도에 관한 추가적인 교훈들
3월 15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9분)

기억절: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 14:27).

연구범위: 마 14:22-33, 막 4:36-41, 6:51-52, 눅 8:25, 24:37, 요 6:19.

학습 포인트: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왜 종종 두려움에 휩싸이는가?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가 전도할 때에 고의적으로 마음을 닫아버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안식일 오후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당신과 함께 머물면서 당신께 배우도록 하셨다. 그들은 분명히 명석하거나 민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와는 어떻게 다른가?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수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걸었으나 여전히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천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도 성장은 생명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날마다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가 자라나야 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또한 성공적인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토양과 자양분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몇 가지 실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우게 될 것이다.

핵심본문: 마 14:27(참조 막 6:45-52)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께서는 어떻게 두려움을 주는 것들을 정복하셨는지 깨닫는다.
느끼기: 믿음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게 하려는 열망을 배양한다.
행하기: 시련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실 것을 확신한다.

< 교과 개요 >
I. 바다에서의 믿음
A. 제자들은 폭풍을 겪기 전에 어떤 교훈을 배웠어야 했는가?
B.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막 6:52)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C. 우리는 종종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직접 목격한다면 믿음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가 후에 주님을 부인한 사실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II. 폭풍 중에서의 안전
A. 예수께서 왜 폭풍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셨는가? 그분은 제자들과 우리를 어떻게 돌보시는가?
B.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 그분께서 우리를 모든 곤경에서 건지실 것이라는 어떤 확증을 갖게 되는가?

III. 하나님을 신뢰함
A. 예수께서 어둠 속에서 흰 겉옷을 입고 물위를 걸어오실 때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들은 주님을 유령으로 생각했겠는가. 우리를 돕기 위한 주님의 손길을 때때로 우리를 헤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B.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기 전에 폭풍에 대해 경고하지 않으셨다. 시련은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해 주는가?

요점: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일요일(3월 9일) 바다에서 배우는 교훈 - 1

마가복음 4장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제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과연 주님의 발아래서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1. 마가복음 4:36-41을 읽으십시오. 특히 38절에서 제자들이 주님께 한 말은 어떤 사실을 드러내 줍니까? 우리도 두려움에 휩싸일 때에 얼마나 자주 이와 비슷한 반응을 하곤 합니까?
막4:36-41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답: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8). 우리도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우리에게 비극과 문제가 닥쳐올 때, 과연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돌보시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이 사건에서 참으로 역설적인 한 가지 사실은 예수께서 항상 그 곳에 계셨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자고 맨 먼저 말씀하신 분은 바로 주님이셨다. 그 광풍에 놀라지 않으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임하는 시련에 대해서도 당황하지 않으신다.

2. 예수님을 깨운 것은 폭풍이 아니라 제자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광풍을 제어하시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광풍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분께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분의 제자 된 우리가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이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제자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의 요인들이 무엇인지 주목해 보라. 그들은 광풍을 두려워했고, 그 다음에 광풍이 잔잔해지자 예수님을 두려워하였다. 물론 그들은 이제까지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 그분에게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겠지만, 이와 같은 능력의 나타남을 보면서 크게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로 그들이 이제 그분이 모든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희망과 위안을 가졌어야 했다. 이 사건은 이 제자들이 여전히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아야 했음을 보여준다.

폭풍 가운데서도 평안히 쉬심
“갑자기 번갯불이 암흑을 꿰뚫자 그들은 예수께서 그 소동에 방해 받으심이 없이 누워 잠드신 것을 보았다. 그들은 놀람과 절망으로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외쳤다. 제자들이 위기 가운데서 죽음과 싸우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평안히 쉬실 수 있으셨을까?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께서는 잠이 깨셨다. 눈부신 번갯불이 예수를 비췄을 때 그들은 하늘의 평화가 그의 얼굴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분의 시선에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온유한 사랑을 느끼자 그들의 마음을 예수께 집중시키면서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고 부르짖었다”(시대의 소망, 334-335).

<부가설명> 사람은 능력이 너무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경외심을 가지면서 경계심도 생겨난다. 천연계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이라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고 능력이 너무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그의 성질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두려워한다. 예수님이 천연계를 지배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제자들은 천연계의 위력보다 더 큰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그분이 바로 그들의 선생이요, 그래서 천연계의 파괴적인 위력에서 구원을 받았는데도 그 선생의 실체를 몰라서 두려워하였던 것 같다. 그들은 그를 사람으로 보았는데, 사람 이상의 존재감을 그분에게서 봤을 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분으로하여 그들은 안전하였다.
이런 능력의 예수님은 우리의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현장에 언제자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분은 사랑이시다. 그분을 무서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의지해야 한다. 의지하면 아전하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지금 바로 내가 있는 그 장소에 주님이 계신다. 그분을 깨우라.

교훈: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인생의 광풍을 만날 때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 곁에 계심을 기억한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월요일(3월 10일) 바다에서 배우는 교훈 - 2

생각해 보면, 바다는 제자도에 관한 교훈을 배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참조 욥 12:10, 단 5:23, 행 17:28), 특히 발아래 있는 물이 나를 받쳐주지 못하고 삼켜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하나님을 붙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마도 주님께서 훌륭한 제자가 되는 데 있어서 핵심요소인 믿음에 관한 교훈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해 바다를 선택하신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제자들은 호수의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과의 대면 이후 성공적인 선교 여행(막 6:6-13)을 마치고, 그분께서 5천 명을 먹이신 이적을 목격하면서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5천 명을 먹이시던 그날 밤에 제자들은 호수 위에서 또 다른 폭풍을 경험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예수께서 그 배에 계시지 않았다.

1. 마태복음 14:22-23과 마가복음 6:45-52을 읽으십시오. 이 두 기사에서 제자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실수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마14:22,2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막6:45-5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50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답: 제자들은 예수께서 폭풍을 잠잠케 하시고, 보리떡 두 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흔들리는 배 위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마음이 둔하여 예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마가복음에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이야기가 생략되었지만, 이 두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한 가지 핵심적인 내용은 그 사건을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했다. 마가복음에는 그들이 자신들의 경험한 바에 대해 마음에 심히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분께서 날씨까지도 복종케 하신다는 사실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폭풍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물 위를 걸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참으로 그 어떤 사람도 목격하지 못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목도하였던 것이다.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격렬한 태풍이 갑자기 제자들을 엄습하였으나 그들은 그 태풍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갑작스런 기상의 변화였다. 왜냐하면 그날은 매우 청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강풍이 그들을 때릴 때 그들은 겁에 질렸다. …
이제는 죽는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한 줄기의 빛이 물 위로 그들에게 다가오는 신비한 한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예수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원수로 생각하였다. 공포가 그들을 억눌렀다. 쇳덩이처럼 단단한 근육의 힘으로 노를 잡았던 손이 풀렸다. 배는 파도가 치는 대로 흔들렸다. 제자들의 눈은 일제히 못 박힌 듯 거품 이는 바다의 흰 물결 위를 걸어오는 사람의 환상에 집중되었다.
그들은 그것이 저희의 죽음을 예시하는 유령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시대의 소망, 380-381).

<부가설명> 예수님이 좀 뛰어난 사람이라는 관념이 제자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 엄청난 이적을 베풀었을지라도 옛날 엘리사보다 좀 더 뛰어난 선지자인 사람으로만 이해했을 것이다. 복음서나 사도행전에는 제자들이 자연 표적을 행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물 위를 걷는 것이나 폭풍을 잠잠하게 한 것이나 5천명을 먹이신 이적들은 다 자연 표적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것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된 표적들이다. 사람인 제자들에게는 허락된 이적들이 아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일이 더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일 우리도 예수님을 뛰어난 인간으로서의 본이 되신 분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사상을 지배한다면 물 위를 걷다가 빠진 베드로와 같은 위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사실을 참으로 믿어야 하며 전적으로 그분을 의뢰해야 할 것이다.

교훈: 제자들은 예수께서 광풍을 잠잠케 하시는 능력과 5천명을 먹이신 이적과 물 위를 걸으시는 광경을 목격한 후에 그분의 능력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화요일(3월 11일) 바리새인들의 누룩

마태복음 16:1-12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예수께 던진 유대 지도자들의 질문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것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성경에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들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서 여기에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어떤 핵심을 이끌어내야 합니까? 마태복음의 앞 장들을 살펴보십시오(참조 눅 16:29-31).
마16:1-1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답: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다. 그러나 그 많은 표적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한 것은 그분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그분께서 거절하신다면 사무엘이나 엘리야보다 나을 바가 없다고 할 작정이었다. 주님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 자들에게는 어떠한 이적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예수께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하신 특별한 경고 이면에는 어떤 원칙이 깔려 있습니까?(마 23:23).
마12: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답: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의 의미를 깨달았어야 했으며, 십일조를 드리되 그 의미를 생각했어야 했다. 피상적인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3. 마태복음 16:8-11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고자 하신 핵심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목전에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잊어버리기가 왜 그렇게도 쉽습니까?
마16:8-11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답: 그리스도인들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기를 상실한 채 딱딱하게 굳어버린 형식적 신앙을 주님은 책망하신다.

생명의 떡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누룩 사이에는 어떤 대조가 있으며, 왜 이 둘을 혼동하기가 쉬운가?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신념이나 전통을 따르는 일과, 믿음을 수호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가 믿는 것이나 예배드리는 방식이나 혹은 믿음을 실행하는 것이 제도화됨으로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란 쉽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가 되는 것이며 그분의 뜻을 행함으로 그분의 사랑과 품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가 형식화되는 원인
“교회가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를 좇지 않고 모든 빛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제시된 모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종교는 다분히 형식화되어 버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경건의 정신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316).

<부가설명> 누룩은 가루를 발효시킨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그들의 교훈을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인데 바리새인들의 교훈은 진리를 진리대로 바르게 깨닫게 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이었다.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모든 진리를 부풀게 한다. 무엇이든지 그 부푼 것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고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점점 더 부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누어주신 떡처럼 주님 손에서 불어나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교훈을 들을 때에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해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창40:8). 교회의 전통과 기독교적 문화의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거나 신앙생활을 영위하려고 하면 진리에서 떠나 문화와 제도 안에 안주하게 될 것이다.

교훈: 생동감을 상실한 채 제도화되고 형식화된 신앙은 위험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서도 바리새인의 누룩을 경계해야 한다.

수요일(3월 12일) 두려움에 관한 교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요일 4:18).

우리는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제자들이 얼마나 자주 두려움에 빠졌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사복음서에는 여러 상황에서 두려움에 빠졌던 제자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1. 제자들이 두려움에 빠진 여러 상황들을 다음 구절들에서 확인해 보십시오(마 14:27, 17:6-7, 막 10:32, 눅 8:25, 24:37, 요 6:19). 우리는 이들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마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17:6,7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막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눅8: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눅24: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요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답: 제자들이 두려워하던 모든 상황에 예수께서 아주 가까이 계셨다. 심지어 이들은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믿음이 없으면 제일 먼저 두려움이 찾아온다.

2. 마가복음 9:30-32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제자들은 무엇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까?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어떤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까?
막9:30-32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답: 제자들은 예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막 9:31)고 하신 말씀 때문에 무서워하였다. 이들에게 소망을 안겨줄 사건이 두려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슬프게도 제자들은 큰 소망을 주기 위해 제공된 사건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었다. 구원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이르러 온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그들이 듣기를 원치 않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만약 그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했더라면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그들의 무지였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다른 누구보다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폭풍 가운데서 물 위로 걸으신 예수님,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보리떡 몇 개로 5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동일한 예수님이시다. 죄는 실제이고 마귀도 실제이겠지만,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그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를 붙잡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의 소망과 위로 안에 머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두려움을 내어 쫓는 사랑
“사랑은 순종을 통하여 나타나며, 완전한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쫓는다”(마지막 날 사건들, 221).
“생명이나 사망이나 높음이나 깊음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매우 단단히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께서 우리를 매우 단단히 붙잡으셨기 때문이다”(사도행적, 552-553).


<부가설명> 심리학적으로 두려움은 본능이라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성질이라는 말이다. 누가 이런 두려움을 사람의 정서에 심었을까? 태어나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하여 출발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사망과 직결된 정서일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이루실 일을 지식으로 알았다고 해도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두려워하면 믿음이 적은 자들이 된다. 그러나 우리 육신의 연약함이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모습일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까이 계셨으나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확신했을 때 죽어도 사는 생명을 얻었을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그래서 순교도 두려움이 될 수 없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는 것은 예수의 사랑은 부활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확증하셨다. 이 사랑 안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교훈: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진정 누구이시며 그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의 고난과 십자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목요일(3월 13일) 제자도와 전도

“나는 무신론이 진실이길 바라고, 내가 아는 가장 지적이고 학문이 깊은 사람들이 종교를 신봉한다는 사실에 대해 거북함을 느낀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히 내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확신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하나님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부하며, 우주 안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토머스 네이겔, 마지막 말,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사, 1997년, 130).

1. 위의 인용구를 보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로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을 생각하면 맨 먼저 어떤 성경절이 떠오릅니까? 지금 당장 적어 보십시오.
답: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2. 이제 성경절을 적었으면, 그 성경절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그 성경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합니까? 이 성경절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동정적입니까, 비판적입니까, 아쉬움이 섞인 것입니까, 저주가 섞인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 섞여 있습니까?
답: 시49:20은 인생의 허무를 탄식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자기가 존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서려있는 말씀이다. 14:1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상태 그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 말씀들에는 비판적인 것이 섞여 있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 말씀들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증거하는 일이다. 사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준비시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도구로 훈련시키신 여러 기록들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쉽게 믿고, 또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거절하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증거하는 동안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거기에는 위에 인용된 사람처럼 공공연하게 거절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와 동일한 태도를 나타내는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분노하는가, 사랑하는가, 불쌍히 여기는가, 아니면 다른 느낌을 갖는가?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마음 문을 닫아버리는 이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사랑
“사람들의 마음이 마치 도로처럼 단단하여서 그들에게 구주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무익한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논리나 토론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지도 또 확신시키지도 못할지라도, 개인 전도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돌과 같이 단단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진리의 뿌리가 박히게 한다”(복음 교역자, 185).

<부가설명> 죄의 본질이 창조주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 곧 생명이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생명을 가진 제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의 생명을 나누어줄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롭게 이런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사랑의 교제를 유도하여 최선을 다하여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자. 생활로 생명으로 드러내어 보이는 것은 아주 하당한 일이다.

교훈: 제자도와 전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그분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할지를 배워야 한다.

금요일(3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재림교 성경주석, 한국어판, 9권, 349-353, 365-384, 10권, 276-282, 시대의 소망, 제35장 ‘잠잠하라 고요하라’(333-341), 제40장 ‘호수의 밤’(377-382), 제45장 ‘십자가의 예표’(410-418), 제46장 ‘예수께서 변화하심’(419-425), 제83장 ‘엠마오로 가는 길’(795-801), 제87장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께로’(829-835), 실물교훈, 40, 각 시대의 대쟁투, 349-350.

“베드로는 그렇게 오랫동안 주님과 함께 있었으나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는 매우 불완전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십자가가 없기를 소원하였다. 그러나 죽어가는 인간이 생명과 소망을 얻는 것은 오직 십자가를 통한 길 뿐이었다”(엘렌 G. 화잇, 리뷰 앤드 헤럴드, 1891년 4월 7일자).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분과 감정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소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릴 때, 그리스도의 심령은 상하신다. 이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에 대한 틀림없는 증거를 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안에서 든든해지고, 힘을 얻고, 세움을 입게 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당신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업을 그들이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그들의 심령은 그분의 손에 들린 신령한 수금이 되어, 그 모든 줄로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518-51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는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한편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확신과 그 생명을 이루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확신할 때 가장 평안하다.

2. 오늘날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제자에서 바리새인으로 변질되어 가는 단계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바리새인으로 변질되기가 쉽습니까, 아니면 바리새인에서 제자로 변화되기가 쉽습니까?
* 어려운 술어들로 설명되는 신학이론들과 교리 설명들과 교회의 전통과 권위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이 바리새인을 변질되는 쪽이 좀 쉽지 않을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생명의 말씀 앞에 겸손하고 말씀이 내 생활의 생명능력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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