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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그분의 지혜로운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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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04-17 13:27 조회6,7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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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그분의 지혜로운 가르침
4월 26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17분)

기억절: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 1:22).

연구범위: 마 5-7장, 20:25-28, 요 4:22-24, 8:1-11.

안식일 오후
“예수께서는 과학의 가장 어두운 신비들에 관하여 찬란한 광선을 비춰주실 수도 있으셨으나 그분께서는 한 순간도 구원의 과학의 지식을 가르치는 일로부터 떠나 그런 일에 시간을 할애하려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시간, 그분의 지식, 그분의 기능들, 그분의 생애 자체는 영혼들의 구원을 이루어 내는 수단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었다”(엘렌 G. 화잇,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1권, 245).
우리가 예수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한 가지 위험은, 우리가 그분과 각 시대의 다른 지혜로운 교사들과의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혜로울 뿐 아니라, 다른 교사들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특별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분의 가르침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언적이고 결정적인 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곧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참된 신분에 대해 알지 못했으면서도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에는 어떤 독특함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이번 주에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핵심본문: 요 7:46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께서는 사회의 가장 연약한 자들을 포함하여 평범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셨음을 배운다.
느끼기: 예수처럼 우리도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섬기려는 열망을 갖는다.
행하기: 우리가 용서 받았듯이 남도 용서하는 겸손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교과 개요
I. 예수님의 말씀들
A. 예수께서는 지혜로운 선생이실 뿐 아니라 권위 있게 말씀하셨음
B.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는 그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적 규범과도 반대되는 태도와 행동을 가르치셨음

II. 하나님의 계시
A.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음
B. 어린아이들과 사회의 가장 연약한 자들에 대한 구주의 사랑은 하나님의 참된 품성을 드러내주었음
C. 예수께서는 우리가 용서받은 것처럼 남을 용서하라고 가르치심

III. 겸손과 은혜
A. 예수께서는 친히 인간이 되시고 죄인의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겸손의 가장 위대한 모본을 남기심
B. 은혜의 참된 의미가 예수님의 비유와 그분 자신이 실제로 겪으신 생애를 통해 잘 나타남
C. 은혜에 대한 주님의 모본은, 자격이 없는 자들조차도 필요한 때에 도움과 용서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음

요점: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하나님의 참된 품성을 보여 주었고, 겸손의 참된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일요일(4월 20일) 가장 위대한 설교(마 5-7장)

해마다 수천수만 편의 설교들이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또 어떤 설교는 한 동안 기억되다가 결국에는 잊혀진다. 그런데 2천년 동안이나 기억되고 인용될 뿐 아니라, 그 설교가 들려진 장소까지도 정확히 기억되는 특별한 설교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산상수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프렌드 교회(Society of Friends, 퀘이커 교도를 가리킴)는 연합군에게 나눠주기 위해 별도의 주석이 달리지 않은 산상수훈을 소책자로 인쇄하였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지 못하도록 조처하였다. 왜냐하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설교를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읽혔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그들은 어느 정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1. 팔복(마 5:3-12)을 읽어 보십시오.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경험에 비춰 볼 때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답: 모든 말씀이 다 의미 있는 부분이다.

팔복에는 ‘애통하는 자’와 같이 단순히 우리가 처해 있는 형편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또 한편 온유한 자(혹은 겸손한 자)와 같이 우리가 힘써야 할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상태가 아니고 우리가 꾸며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자가 되기 위해 힘쓰라고 권면하신다.

2. 산상수훈의 나머지 부분의 교훈들을 간단히 요약해 보십시오.
1.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마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소금과 빛처럼 조용히 침투하는 영향력
2. 하나님의 율법(마 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은 폐할 수 없고 반드시 준수되어야 함
3. 마음으로 범하는 죄(마 5:21-30)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음으로 범하는 죄까지도 경계해야 함
4. 이혼(마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음행한 연고 없이 이혼하는 것은 옳지 않음
5. 보복(마 5:38-4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악을 행한 자에게 보복하지 말고 오히려 선대할 것
6. 원수를 사랑함(마 5:43-4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원수와 핍박자를 사랑하고 기도해 줄 것
7. 기도(마 6:5-1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만한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함

산상 설교에 대한 무리의 반응
“방랑하는 무리들의 귀에는 이 말씀이 신기하고 새로운 것으로 들린다. 이런 교훈은 그들이 지금껏 제사장이나 랍비에게서 듣던 것과는 판이한 것이다. 그들은 이 교훈에서 자만심을 높여 주거나 야심을 길러 주는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새 선생에게는 그들을 완전히 사로잡는 능력이 있다. 거룩한 사랑의 향기가 꽃향기처럼 그분이 계신 바로 그 곳에서 흘러나온다”(산상보훈, 6).

<부가설명> 마태복음은 모세오경을 모방하여 5개의 설교를 구성하고 있다. 그 첫 번 설교가 산상보훈이다. 톨스토이는 산상보훈만 남고 신약성경이 다 없어진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아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인간의 도덕성을 다루는데 아마도 가장 값진 말씀일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불가능의 윤리라고 말한다. 이것을 읽어보는 사람이 인간은 도저히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굴복하라고 주신 교훈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비 그리스도인이면서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산 사람이 간디라고 한다. 그는 산상설교의 내용을 생활에 실천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바른 마음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실생활에 실천해야 하는 윤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들에게 주신 교훈이 아니다. 제자들,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이다. 그들은 천국백성이요 천국백성이 이 죄의 세상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가르친 것이다. 이것을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백성 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며, 천국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사신 것을 말씀으로 설명하신 것이다. 우리가 천국백성이라면 이렇게 살아질 것이다. 과연 나는 천국백성이 되었는가?

교훈: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각 시대를 통해 가장 많이 기억되고 인용되는 설교로서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매우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


월요일(4월 21일) 하나님에 관한 그분의 가르침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위격과 품성에 대해 오해하는 어두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생애와 말씀을 통해 그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셨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오신 그분께서는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명확한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셨다. 이전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에 관해 말하였으나 이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모든 세계를 지으신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느니라(히 1:2).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지존자(至尊者)의 모습을 바로 보게 되었다.

1. 다음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마 5:8-9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은 성결하시고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심
마 18:5-6, 10, 19:13-14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9: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분
요 4:22-24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영이신 하나님
요 10:27-3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목숨을 걸고 양을 돌보는 목자처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옛날이든 오늘날이든 그 사회의 품격을 측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 중 가장 연약한 자들, 즉 어린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를 두느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분주한 일과 중에도 어린 꼬마들을 위해 시간을 내셔서 그들을 만져주시고 복을 베푸시며, 이 연약한 존재들을 귀중히 보시고 그들이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당시 가난한 어머니들에게는 마치 숨통을 터주는 신선한 공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예수님의 행동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잘 말해 주었다. 그분은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연약하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돌보시는 분이다. 그분은 약자의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과 앉으셨을 때, 당신 때문에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한 ‘무고한 어린 생명들’(마 2:16-18)을 기억하셨을 것이며, 옛날 바로의 명령에 의해 피 흘리며 죽어간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들(출 1:15-16)을 기억하셨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 모든 정신질환적인 살인자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오셨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온전한 품성을 드러내심
“예수께서는 인간의 운명에 동참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예수님은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의 품성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으로는 하늘의 보좌를 붙드시는 한편 당신의 인성으로는 우리를 붙드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품성의 영광에 이르라고 우리에게 명하신다”(시대의 소망, 311).

<부가설명> 세상은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가득하다. 이런 오해는 소위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교회 안에 더욱 심하다. 불신자들이야 아예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오해라는 말을 쓸 처지가 아니다. 그래도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으며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기독교회 안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엄청나다. 사단이 그렇게 하는 일에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에 대하여 강론하면서 사단의 사상을 마치 하나님의 사상인 것처럼 강론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강론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도 똑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핍박하였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교회는 어떤가? 말씀을 기록된 대로 읽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깨닫지 못하면 우리도 그렇게 한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올바르게 보여주신 분이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요14:6).

교훈: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신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과 동정이 많으시고 자비와 은혜가 충만하신 분으로 나타내셨다.


화요일(4월 22일) 용서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마 6:12-14)

우리가 예수님과 관련지을 수 있는 모든 단어들 중에 최상의 말은 ‘용서’일 것이다. 예수님과 ‘용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십자가 위에서의 참기 어려운 고통과 군병들의 모욕, 그리고 사람들의 조롱 중에서도 그분께서는 떨리는 입술로 다음과 같은 애타는 간구를 올리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산상수훈에서도 그분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분께 지은 죄를 용서받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마 6:12, 14-15).

1. 다음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용서에 관해 어떤 가르침을 주셨습니까?(막 2:5-12, 눅 7:36-50, 17:3-4, 요 8:1-11).
막2:5-12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눅7:36-50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17: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요8:1-1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답: 예수께서는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4)고 하셨다. 그분께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용서하심으로 본을 보이시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고 권면하셨다.

2. 용서에 관한 훌륭한 여러 말씀들에도 불구하고, 다음 구절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의 균형을 잡아주는 어떤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까?(마 12:31-32, 18:6, 막 14:21).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막14: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답: 예수께서는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거절하고 의식적으로 죄를 반복하는 자들에게는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셨다.

마가복음 14:21에서 예수께서는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사람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행동을 대조해 보자. 유다는 예수님을 체포한 자들이 그분을 정죄하는 것을 목격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당국자들에게 ‘배반의 돈’을 되돌려주면서 다음과 같은 매우 적절해 보이는 말을 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자신의 후회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유다와는 달리, 베드로는 조용히 회개의 눈물을 흘렸을 뿐, 가야바의 법정으로 되돌아가 자신의 부끄러운 배반의 말을 취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결국 한 사람은 정죄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용서받았다.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인가?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
“회개는 용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선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역사해 오시지 않은 마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스도 없이 우리가 용서함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양심을 일깨우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이는 회개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심으로 죄인을 이끄시고, 감정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그리고 영혼 속에 영감을 주셔서 자복하고 회개하게 하신다”(리뷰 앤드 헤럴드, 1890년 4월 1일자).

<부가설명> 하나님의 용서는 회개보다 먼저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가 네 죄를 사하였다”는 우주적 선언이다. 이 용서를 자기에게 적용시켜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이다.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무시하는 죄를 더하는 것이 된다.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의 뉘우침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순복하려는 뉘우침이 아니다. 자기 중심의 뉘우침이다. 그 속에는 책임을 전가하는 정신이 있다. 자신이 죽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라 굴복하려는 진정한 마음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체면 유지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고, 자기의 계획과 욕망이 좌절된 울분이 있었다. 이런 회개는 성경이 가르치는 회개는 아니다. 성경의 회개는 진정으로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경험이다. 우리는 좋은 말로 기도하며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그 간청대로 생활하려는 정신이 없다. 그냥 기도하는 것이다. 눈을 뜨면 기도한 내용도 다 어디로 가고 없다. 그렇게 회개한다. 용서의 씻음이 따르겠는가? 하나님의 용서는 우주를 포용하였는데, 우리는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교훈: 예수께서는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시려고 용서의 선물을 주러 이 땅에 오셨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회개하면 용서를 받는다.


수요일(4월 23일) 겸손에 관한 그분의 가르침(마 20:25-28)

1995년에 실시된 한 설문에서, 운동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만약 어떤 마약을 먹으면 올림픽에서 확실히 금메달을 따는 것이 보장되지만 그 약의 영향으로 5년 만에 죽는다면 그것을 복용하겠습니까?’ 절반 이상이 ‘예’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오늘날 사회에 편만한 명예와 권력에 대한 유혹을 잘 말해준다. 21세기의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수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열망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정신이 교회 안에도 침투해 들어올 수 있다.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 첫째가 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은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1. 최고를 향한 만족할 줄 모르는 갈망이라는 관점에서 다음 구절들을 연구해 보십시오.
마 18:1-6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라고 말씀하심
마 20:25-28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음
마 23:1, 5-12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고 하셨음
벧전 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심

역사상 가혹한 사건이 발생하면 때때로 거만한 독재자가 일어나 가난한 난민들의 돈을 빼앗고 그들을 고독한 감옥에 던지거나 혹은 가장 열악한 교도소에 가두어 온갖 학대를 가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독재자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국가의 토지를 사회의 소외계층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발적이든 강압적이든 이 모든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비와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된다. 바울은 그분이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말한다. 즉 그분은 우주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그분은 거기서 더 내려가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었다(빌 2:6-8).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무아(無我)의 봉사의 생애였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한’ 것(마 20:28)이 그분의 모든 행동의 교훈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하였다.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예증으로 그분의 교훈을 반복하셨는데, 그 예증으로 당신의 교훈은 제자들의 마음과 정신에 영원히 인상 깊게 새겨졌다”(시대의 소망, 642).

<부가설명>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참으로 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실력이 있어야 섬길 수 있다. 실력이 있으면서 정말 평상심으로 실력이 낮은 사람이나 그런 실력이 전혀 없는데, 바로 그런 일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때 겸손이 드러난다. 물론 으스대면 도우는 것이 아니라 평상심으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그런 마음으로 도울 때 그것이 섬기는 것이다. 그것이 겸손이다. 실력이 있으면서 섬기지 않는 것이 교만이다. 실력이 없으면서 섬김을 거절하는 것도 교만이다. 언제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그 일을 그 일이 필요한 곳에서 군소리 없이 뽐내지 않고 담담하게 수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겸손이며 봉사이다. 이런 사람에게 마대 25장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하신다. 그들은 그들의 평소 삶을 그냥 산 것이기 때문에 그 섬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자기를 비어 사람들과 같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사실은 그분이 보여주신 겸손의 깊이를 말해 준다.


목요일(4월 24일) 은혜와 믿음에 관한 그분의 가르침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구원의 기별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이렇게 묘사하였다. 바울의 표현은 예수님의 표현과는 다르게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믿으셨는가 하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묻는 것은 바울과 예수님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혜에 관해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접근방법이 때때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행위에 대한 우리의 묘사나 반응이 너무 율법주의적인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은혜의 화신으로 오셨다. 그분은 은혜의 전형(全形)이셨다. 그분을 만나는 것은 은혜를 만나는 것이다. 요한은 기록하기를,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하였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믿음으로 사셨다. 그가 은혜 자체이시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셨다. 그러나 그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느냐고 묻는 것은 예수님을 모르는 소리이다. 예수님은 그 존재 자체가 의요 그에게는 죄라는 것이 절대로 조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 자신이 그냥 의 그 자체이시다. 그는 그 의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므로 잘 유지하셨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를 믿어야 의롭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혜 자체로 오신 예수를 믿음으로 은혜와 의에 거할 수 있었다.

1. 다음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은혜와 믿음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마 14:28-31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물에 빠져 가면서 부르짖는 베드로를 즉시 건져주신 은혜
마 20:1-15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3 또 제 삼 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5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제11시에 와서 잠깐 일한 자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시는 은혜
눅 7:36-48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많은 빚을 탕감해 주듯이 죄인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
눅 15:11-3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돌아온 탕자와 집안의 탕자를 너그럽게 품어 주시는 은혜
요 8:1-1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는 은혜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비유와 당신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신 은혜에 관한 많은 교훈들을 배우게 된다. 어느 날 밤 베드로는 호수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는 능력의 주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었다. 도움은 즉각적으로 왔다. 회개할 겨를도 없었다. 복잡한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외쳤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 그러자 즉시 예수님의 손이 그를 붙잡았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죄인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게 되며 자신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은혜를 힘입을 때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며 그 능력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품성에 역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어 받음으로써만 죄의 가증한 정체를 분별하게 되며 마침내 죄를 영혼의 성전에서 쫓아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사귀게 되고 구원의 사업을 위하여 주님과 더불어 연합하게 되는 것도 오직 은혜를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66).

<부가설명> 은혜는 예수님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 가장 큰 은혜를 세상에 베푸신 것이다. 예수님이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은혜 안에 있는 것이다.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감동을 받았다는 뜻 이상이다. 그 설교말씀으로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났다는 뜻이다. 설교말씀을 듣고 예수님은 만나지 못하고 일반적인 감동을 받고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은 좋은 소설이나 이야기나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모일 때 거기서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야 한다. 그 품에 안길 때 은혜에 젖는 것이다. 흠뻑 젖어야 한다. 예수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있는 경험에 이를 때 은혜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리가 그의 삶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교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죄인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다.


금요일(4월 2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역사학자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역사상 가장 많이 반복되어 왔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런데 감추인 보화, 씨 뿌리는 자, 값진 진주를 사는 상인, 선한 사마리아인 등과 같이 대부분의 경우 그분은 이야기로 가르치셨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이 사람처럼 권위 있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외쳤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분이 가르치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분이 그렇게 생애하셨다는 것이다. 성경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분의 전 생애는 겸손과 자신을 온전히 버리신 사랑의 생애였다.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돌보신 사례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분의 겸비에 대한 최상의 증거가 된다. 그분은 자신을 생각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심이 있으셨다. 그분께서는 관습이 만들어 놓은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허무셨다. 그분은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셨다. 그분은 불의를 미워하셨고, 사람들 스스로를 은폐시키는 위선을 더 미워하셨다”(예화로 엮은 세계의 종교들, 212-21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늘날 국가간의 전쟁에 관한 문제와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용서만이 능사가 아닌 상황도 있을까요?
*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이에 있는 싸움, 국가 간에 있는 전쟁에 대하여 다 아신다. 그것이 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아신다. 그리스도인이 용서하는 것도 죄와 싸우는 한 형태이다. 용서는 죄를 정복하는 무기이다. 죄를 정복하는 과정에 쟁투의 모습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이 용서이어야 한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국가 간에 이 원칙을 동일한 것이 아닐까?

2. 비록 산상수훈이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상의 실제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에는 그 교훈이 무시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이 원칙들을 매일의 신앙생애에 잘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려고 진정으로 자아를 주님께 바치면 잘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의 생명을 얻어서 그 생명력으로 삶의 모습이 예수님처럼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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