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그분의 긴밀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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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5-16 21:56 조회6,214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08년5월24일(안) 李奉周 (제8과).hwp (44.5K) 137회 다운로드 DATE : 2008-05-16 21: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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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5월24일 (안) 일몰 오후7시42분 (李奉周)
제8과 그분의 긴밀(緊密)한 동행(同行)
☞ 주님은
내가 넉넉할 때 좋으신 분이시고,
내가 부족할 때 필요한 분이시고,
내가 실패할 때 절대자가 되시나이다.
(日) 5월18일
<초기(初期)의 생애(生涯)>
◎ (눅 2:40) →
1. 예수그리스도의 품성의 발달은 단 한 번도 죄에 굴복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의 과정을 따라 성장해 갔다. 그는 보통 어린이나 청년들처럼 가족사회안에서 살았다.
어떤 결점도 그의 성장 과정을 훼손하지 않은 것 외에는 이 기간에 체력(體力)과 지성(知性) 영성(靈性)과 사회성(社會性)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성장하였다.
마치 예수의 완전함이 그의 신성을 입증하듯 성장과정은 그의 참된 인성을 입증한다.
(본교 한글주석10권224-225)
2. 예수의 소년기와 청년기는 신체적, 지적 및 영적능력이 조화롭게 발달한 시기였다. (참조 교육13)
그가 열망하는 목표는 하늘아버지의 성품을 반사하는 것이었다. 이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완전한 인성이었다.
3년 반 동안의 짧은 봉사에 앞서 30년의 충실한 준비가 있었다.
누가복음2:40절의 말씀은 특별히 예수님의 유년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고52절 말씀은 주로 그의 청년기에 관한 언급이다.
사무엘상2:26절과 참례자 요한(1:80절)의 청년기에 관해서도 같은 언급이 있다.
기독교 초기의 외경(外經)의 여러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미신적인 전설은 단순한 권위와 아름다움 그리고 성경기사의 감동을 주는 힘과 이상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전설적인 이야기의 실례를 참조하려면 외경. 유아기 1서(1 infancy)7:1-35; 13:1-13; 15:1-7; 16:1-16; 18:1-19)을 참조하라.
분명히 예수는 공중봉사 기간 이전에는 이적을 행하지 않았다. (참조 시대의 소망 72, 74, 92)
(본교 한글주석10권231)
◎ 예수께서 선생들 중에 앉아서 듣기도 묻기도 하고 하는데 예수의 말을 듣는 자들이 다 그 지혜에 놀랐다. 예수는 이렇게 지혜와 지식이 출중한 상태로 성장하였으며 근심하며 찾았다는 그 부모의 말에 의하여 생각하면 유년기의 예수님에게 부모들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통을 나누시기 위해 한적한 천연계를 찾아가셨으며, 그곳에서 행복한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셨다.
(月) 5월19일
<그분의 사역이 시작(始作)될 때>
◎ "예수님"은 탄생할 때부터 성령의 인도와 지도아래 있었으나 (마3:16; 눅2:52) 침례 받을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풍성하게 임하여 위탁된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지혜와 기능을 부어주셨다.(행 10:38; 참조 행 1:8)
"예수님"은 “지상에 오시기전에” “그 앞에 제시”된 “완전한 계획”에 맞추어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한걸음씩 인도 받았다.”(소망 147).
마가복음은 한층 더 강한 표현으로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라고 말한다. (막1:12)
◎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신뢰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지식은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는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했으며 그것들과 매우 친숙해 있었다. (소망 70)
바로 거기에 시험에 대처하는 비결이 있었다.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은 믿음이며(요일 5:4),
믿음은 말씀연구를 통하여 계발(啓發)된다 .(롬 10:17)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것이 이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임을 확언(確言)한다.
이때에 그리스도가 인용한 구절(句節)은 모두 신명기에서 뽑아온 것이다. (본교성경주석(한글) 9권 209)
◎ 예수는 시험을 자초하거나 의식적으로 마귀(魔鬼)의 시험의 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와 홀로 있기 위해 자신 앞에 놓인 사업에 대해 명상하기위해 광야로 물러났다.
예수는 인성(人性)을 취했으며 그것과 함께 죄에 굴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취했다. (소망 117)
그는 “인간이면 누구나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겪고 또한 인간이면 누구나 해야 할 싸움을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받아들여야 했다. (소망 49)
오직 그렇게 해야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는 말씀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가 신성을 가졌기 때문에 시험받을 수 없다면 이것은 연극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가 시험을 경험한 것은 인성을 통해서였다. (소망686)
만일 그가 당한 시험이 우리가 당하는 시험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것이었다면 “그는 우리를 도울 수 없을 것이다. (소망 117)
◎ 예수는 인간이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으며 각 개인이 견딜 수 있는 힘에 따라 시험하는 자의 세력을 조절하시며 “피할 길을 주신다.” (고전 10:13)고 약속했다.
그리스도가 시험의 광야에서 겪은 큰 싸움은 각 사람의 마음의 영토에서 반복되고 있다.
시험 곧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어떠한 성품의 발전도 없다.
우리가 유혹에 설 수 있는 능력은 유혹을 저항함으로써 생긴다. (본교 성경주석(한글) 9권207p)
◎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2).
예수께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으며,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검으로 사단의 모든 시험을 물리쳐야겠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과 집중적인 교통을 하시기 위해 광야로 나가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셨다. 그분의 승리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다.
(火) 5월20일
<그분의 기도생활(祈禱生活)>
◎ <예수님과 기도(祈禱)>
예수님은 지상(地上)생애동안 아버지와 밀접한 교제를 계속하셨다.
이것은 그분들께서 협력자로서 그리고 창조주와 구속(救贖)의 두 일을 계획하시던 영원 전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M. L 앤드리어슨 저(著) “기도” 209p)
◎ <그리스도의 능력의 근원(根源)>
우리가 그리스도의 기도(祈禱)안에 곧 아버지와의 그분의 교제 안에 그분의 능력이 있었다는 견해를 받아들일 것 같으면 우리는 심하게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 분은 백성들 앞에 나타나실 때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하셨다.
미래(未來)가 그 분 앞에 펼쳐졌으며 그분은 어떤 것을 만나게 될지 정확히 아셨다.
어떤 것도 그분을 놀라게 할 수 없었으며 그 분은 언제나 모든 상황을 주도하셨다. (211p)
◎ 예수님은 온밤을 기도에 바쳤다. (소망419)
보통 그런 경우는 여러 복음서 기자들이 언급한 대로 구주의 생애와 봉사에서 결단이나 위기의 때를 앞두고 있었다.
◎ 그리스도의 탁월하고 귀중한 특징들 중 하나는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기도 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그의 지상 생애 가운데 자주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요 5:19, 30)고 언급하였다. 그가 행한 놀라운 일들은 아버지의 능력으로 성취되었다. (소망 143)
그가 한 말씀들은 아버지가 주신 것이었다.(요 8:28)
예수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자신의 생애를 위한 자세한 모든 계획들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가운데 다닐 때, 매 단계마다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인도되었다.” (소망147)
그의 생애를 위한 계획은 날마다 펼쳐졌다. (소망208)
◎ "예수님"의 사역은 명상과 기도로 시작했었다.
그의 갈릴리 봉사의 시작과 갈릴리 마을과 도시들을 다닌 그의 첫 번째 선교 여행 직전에도
◎ <중요한 사건이나 결정이 있기 전에는 밤이 맞도록 기도 하셨다>
중요한 사건이나 결정이 있기 전, 그리스도께서 그 전날 밤을 산(山)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내신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
① 첫 번째 전도 여행을 앞두고 그 분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祈禱)하”섰다.
(막 1:35, 38-39)
② 열두 사도를 택하시기 전 “예수님께서 기도 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 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 (눅 6:12-13)
③ 변화하실 때 그 분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 (눅 9:28-31)
④ 승리의 입성 후에도 온밤을 기도에 바쳤다. (소망 581)
⑤ 가장 길게 기록된 예수의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기 전에 한 것이다. (요 17장 참조)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진지하고 고통스러운 기도를 드렸다. (마 26:36-44) (눅 22:19, 41; 눅 23:34)
⑥ 이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29)
⑦ 침례를 받으실 때 그 분은 기도 하셨다. (눅 3:21)
⑧ 성찬식 때 그분은 기도하셨으며,
모든 중요한 일에 있어서 그 분은 기도 하셨으며 어떤 때는 밤새워 기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 대한 이 에들은 기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자 심지어 옷에 광채가 났다. 우리의 무기력하고 생기 없는 기도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심지어 그분의 옷이 영향을 받을 정도까지 기도하셨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힘의 근원을 가지고 계신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 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 밤이 되면 곯아떨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것을 포기하시고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아침에 돌아오셨을 때는 완전히 새롭게 활기를 되찾으시고 다시 백성들에게 봉사할 준비가 되셨다.
사도들은 그 분이 어디서 그런 활력을 얻으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분의 사업을 계속하시는지 분명 궁금했을 것이다. 그분은 밤새워 하시는 일에 대해 별반 말씀이 없으셨지만 그분은 그분이 밤새 기도하시는 것과 그 분의 힘 있는 낮의 활동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그 분께 기도 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여덟 시간 이상을 주무시지 않았다.
그 분은 정규적인 식사도 하지 못하셨다.
그분에게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음식이 있었다.
그 분은 위로부터 오는 힘의 근원을 가지고 계셨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에 들어가시고 죽음을 통해서 사단으로부터 그 사로잡힌 것을 빼앗으실 이 순간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열중했다.
그리스도께는 이때가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승리하여 이 시험을 통과하시면 영광을 받으실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기도(祈禱)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 12:28)
(M. L 앤드리어슨 저(著) “기도” 211-214p)
◎ 그분께서는 호수 위를 걸으시는 놀라운 사건이 있기 전에도 당신의 아버지와 긴밀하게 교통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그리고 수난주간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눈앞에 두시고 당신의 제자들과 마지막 때까지의 당신의 백성을 위해 간절한 탄원의 기도를 올리셨다.
◎ 예수께서는 평소에도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통하셨으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더욱 집중적인 기도로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으셨다.
(水) 5월21일
<사명(使命)에의 집중성(集中性)>
◎ "예수님"은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살았다. (마 4:4; 눅 2:49; 요 6:38)
대부분의 사람들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살지만,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아니면 다른 어떤 것에도 식욕을 느끼지 않았다. (요 6:27)
생애의 물질적인 필요들은 인류의 구원을 이루려는 그의 위대한 목적에 부수되는 것이었다.
(마 6:23-24; 요 6:26-58 참조)
◎ 요한은 종종 예수님을 그의 거룩한 사명과 관련지어 언급하고 있다.
(요 3;17; 5:30, 36-37; 6:38, 44; 7:18, 28, 33; 8:16, 18, 26, 29; 9:4; 10:25, 32, 37; 12:44, 49; 13:20; 14:10, 24, 31; 15:21; 16:5; 17:4 참조)
◎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충족된다는 것을 드러내신 말씀이다.
양식은 생명을 유지하며 힘을 얻는 방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유지되고 힘을 얻었다.
그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다.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생애 동안에 언제나 열심으로 일하셨다.
그는 많은 것을 기대하셨으므로 많은 것을 시도하셨다. (소망, 72).”(선교, 238)
◎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의 모든 지상 생애 동안 가난하고 비천한 운명에 처하셨다.
극기와 희생이 그의 생애를 특징지었다.”(청지기, 160)
◎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는 영세 전부터 수립되어 있었던 계획을 성취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에 그 모든 내용의 완전한 계획이 그 앞에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실 때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씩 인도함을 받았다.
그는 정한 시기에 행동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그와 같이 순복하심으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소망, 147)
◎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4).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27, 32).
◎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한 당신의 사명에 온전히 집중하셨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여야 한다.
(木) 5월22일
<우리와 하나님의 동행(同行)>
◎ 사람들은 어려움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다가 어려움이 봉착하면 신앙에서 떠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다니엘의 친구들도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로 던짐을 받았을 때 그 풀무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셨고, 다니엘도 사자굴속에 던짐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고, 베드로와 사도들도, 사울도 감옥 안에 들어가 고난 받을 때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으며 옥문을 열어 주셨다.
위기(危機)의 현장(現場)에는 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계십니다.
◎ <모래 위에 발자국>
By Mary Stevenson (1922-1999)
어느 날 밤에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을 스크린 삼아 그의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영화처럼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는 모래 위에 길게 펼쳐진 발자국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때가 그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슬펐던 순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항의하듯이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항상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왜 주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을 당하는 시간에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있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혹시 지금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등을 느껴보십시오. 주님의 등에 얼굴을 기대십시오.
주님은 당신이 용기와 새 힘을 얻을 때까지 업고 가실 것입니다. (아멘)
◎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될 때에 일어나는 결과이다.
바울은 이것은 갈라디아 2:20에 고백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참으로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었느냐 하는 데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내 안에서 당신의 삶을 사실 것이기 때문에 그의 행하시는 대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 이론상으로는 이렇다. 이것이 실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예수께서 지적하셨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마 13:22)으로 인해 말씀을 실행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깨달은 만큼 실천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요구된다.
◎ 오늘날과 같이 사단의 유혹이 강렬한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최우선으로 삼고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 고정시켜야 한다.
<초점(焦點)>
1. 예수님께서 하늘아버지께 지속적인 의존과 관계는 기도의 교통을 통해서였다.
2. 우리도 하나님과 긴밀한 동행과 관계는 예수님처럼 기도의 연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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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지상 생애 동안 날마다 필요 되는 새로운 공급을 위하여 아버지께 간구하셨고, 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굳게 하고 축복하려고 나아가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헌신한 교역자에게 경이로운 위안이 된다.”(복음, 510)
◎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생애 동안 날마다 필요 되는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기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셨다는 사실과 또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굳세게 하고 축복하시고자 나가셨음을 아는 것은 헌신한 교역자에게 귀중한 위안이 된다. 하늘 아버지께 엎드려 기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기도로써 당신의 믿음을 굳게 하셨으며, 또한 하늘과 교통하심으로 악을 저항하시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친히 얻으셨다. 인류의 맏형으로서 그분은, 결함이 많지만 죄와 유혹의 세상에 살면서 여전히 당신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요들을 아신다. 당신이 보내기에 합당하다고 보시는 사자들이 연약하고 과오를 범하는 사람들임을 아시지만, 그분의 사업에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약속하신다. 그분 자신의 모본은 믿음, 즉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게 하고 아낌없이 그분의 사업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믿음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열렬하고도 끈기 있는 탄원은 죄와의 싸움에 있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하는데 효력이 있다는 보증이 된다.”(행적, 55)
◎ 마귀는 항상 우리가 아주 약할 때 공격하는데 이는 그때가 넘어지기 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능력을 약하게 함으로 시험하는 자의 간계에 대한 우리의 방어력은 약해진다.
과로, 운동부족, 과식, 그릇된 식사, 수면부족 그 외 우리의 지각을 무디게 하고 감정의 통제력을 약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악한 자가 우리의 영혼에 들어오는 길을 쉽게 열어 놓는다.
실망감, 패배감, 원한 등을 품고 있는 것도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생각과 애정을 위의 것에 고정시켜야 하며 (골 3:2). 심령을 참되고 경건하고 정결하고 사랑할만한 것으로 채워야 한다. (빌 4:8)
우리의 몸을 육체를 위한 법칙의 지배 아래 두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존재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범하면서 생활한다면 영원한 가치를 지닌 사물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구주께서 사람들 가운데 생애하시는 동안 그는 가난한 자의 처지를 맛보셨다. 그는 자기의 체험으로 가난한 자의 근심과 고난을 잘 아셨으므로 모든 비천한 일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실 수 있으셨다. 예수의 생애의 교훈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가진 자들은 결단코 계급의 차별이 있어야 한다거나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더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일을 즐겁고 재치 있게 행하셨다. 성경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정생활과 일터에서 응용하고, 세상의 사업에 힘을 기울이면서도 오직 일편단심 하나님의 영광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많은 인내와 영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돕는 자가 되신 것은 바로 이러한 환경에 있을 때이다. 그는 결코 하늘 사물을 생각하실 시간이 없으리만큼 세상의 관심사에 몰두하지는 않으셨다. 그는 자주 시와 하늘의 노래를 부르심으로 마음속에 있는 그의 기쁨을 표현하셨다. 나사렛의 동민들은 그가 음성을 높여서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는 노래로써 하늘과의 교통을 유지하셨다. 그의 동료들이 일에 피곤하다고 불평할 때에 그들은 예수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원기를 얻었다. 그의 찬미 소리는 악한 천사들을 쫓아버리고 향연처럼 그 장소를 향기로 채우는 듯하였다. 그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 자들의 마음은 그들의 지상의 나그네 생활에서 떠나서 하늘 본향으로 이끌러 갔다.
예수는 세상을 치유하시는 은혜의 샘이었다. 나사렛에서 그가 은둔 생애를 하신 온 기간에 동정과 친절의 조수가 흘러나왔다. 연로한 자나, 슬퍼하는 자나, 죄 짐을 진 자나, 순진한 기쁨 속에서 즐겨 노는 어린이나, 숲 속의 작은 피조물들이나, 무거운 짐을 실은 참을성 있는 짐승이 나를 무론하고 모두 그가 함께 계심으로 더 행복해졌다. 능력의 말씀으로 여러 세계들을 붙들고 계셨던 그가 상처를 입은 한 마리의 새를 살리시려고 몸을 굽히시곤 하셨다. 그의 주목을 끌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고 봉사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었다.”(소망, 73-74)
“나는 그대들에게 이 이른 아침에 그리스도를 아느냐고 묻고 싶다. 그분은 우리가, 걱정과 당혹함과 절망을 안고 장례 행렬에서 움직이는 곡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께 우리 영혼을 맡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드러난 약속에 신뢰를 두도록 원하신다. 그러나 그대들은 말하기를, 나는 그렇게 느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감정이 그대들을 유일한 도움 되시는 분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 실수하는 유한한 자들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돌이키게 한다면 그것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 내게 말해 달라. 하나님 안에서 활용하는 것이 그대들의 특권이 되는 믿음보다 감정이 더 강하단 말인가? 감정들은 거의 매 환경마다 변한다. 그러나 영원하신 분의 약속들은 반석처럼 견고하다. 우리의 집을 확실한 토대 위에 짓고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반석이신 분, 시대의 반석이신 분께 고정시키자. 만일 우리가 이것을 행한다면, 우리가 동반자 되시는 분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습관적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방법이다. 그는 그분과 이야기했다. 그는 신령한 임재를 깨달았다. 그리고 에녹의 시대에도 완벽한 그리스도인 품성에 대해 1901년보다 더 호의적이지 않았다.”(2설교, 166)
제8과 그분의 긴밀(緊密)한 동행(同行)
☞ 주님은
내가 넉넉할 때 좋으신 분이시고,
내가 부족할 때 필요한 분이시고,
내가 실패할 때 절대자가 되시나이다.
(日) 5월18일
<초기(初期)의 생애(生涯)>
◎ (눅 2:40) →
1. 예수그리스도의 품성의 발달은 단 한 번도 죄에 굴복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의 과정을 따라 성장해 갔다. 그는 보통 어린이나 청년들처럼 가족사회안에서 살았다.
어떤 결점도 그의 성장 과정을 훼손하지 않은 것 외에는 이 기간에 체력(體力)과 지성(知性) 영성(靈性)과 사회성(社會性)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성장하였다.
마치 예수의 완전함이 그의 신성을 입증하듯 성장과정은 그의 참된 인성을 입증한다.
(본교 한글주석10권224-225)
2. 예수의 소년기와 청년기는 신체적, 지적 및 영적능력이 조화롭게 발달한 시기였다. (참조 교육13)
그가 열망하는 목표는 하늘아버지의 성품을 반사하는 것이었다. 이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완전한 인성이었다.
3년 반 동안의 짧은 봉사에 앞서 30년의 충실한 준비가 있었다.
누가복음2:40절의 말씀은 특별히 예수님의 유년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고52절 말씀은 주로 그의 청년기에 관한 언급이다.
사무엘상2:26절과 참례자 요한(1:80절)의 청년기에 관해서도 같은 언급이 있다.
기독교 초기의 외경(外經)의 여러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미신적인 전설은 단순한 권위와 아름다움 그리고 성경기사의 감동을 주는 힘과 이상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전설적인 이야기의 실례를 참조하려면 외경. 유아기 1서(1 infancy)7:1-35; 13:1-13; 15:1-7; 16:1-16; 18:1-19)을 참조하라.
분명히 예수는 공중봉사 기간 이전에는 이적을 행하지 않았다. (참조 시대의 소망 72, 74, 92)
(본교 한글주석10권231)
◎ 예수께서 선생들 중에 앉아서 듣기도 묻기도 하고 하는데 예수의 말을 듣는 자들이 다 그 지혜에 놀랐다. 예수는 이렇게 지혜와 지식이 출중한 상태로 성장하였으며 근심하며 찾았다는 그 부모의 말에 의하여 생각하면 유년기의 예수님에게 부모들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돌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통을 나누시기 위해 한적한 천연계를 찾아가셨으며, 그곳에서 행복한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보내셨다.
(月) 5월19일
<그분의 사역이 시작(始作)될 때>
◎ "예수님"은 탄생할 때부터 성령의 인도와 지도아래 있었으나 (마3:16; 눅2:52) 침례 받을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풍성하게 임하여 위탁된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지혜와 기능을 부어주셨다.(행 10:38; 참조 행 1:8)
"예수님"은 “지상에 오시기전에” “그 앞에 제시”된 “완전한 계획”에 맞추어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한걸음씩 인도 받았다.”(소망 147).
마가복음은 한층 더 강한 표현으로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라고 말한다. (막1:12)
◎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신뢰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지식은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는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했으며 그것들과 매우 친숙해 있었다. (소망 70)
바로 거기에 시험에 대처하는 비결이 있었다.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은 믿음이며(요일 5:4),
믿음은 말씀연구를 통하여 계발(啓發)된다 .(롬 10:17)
바로 여기서 그리스도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것이 이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임을 확언(確言)한다.
이때에 그리스도가 인용한 구절(句節)은 모두 신명기에서 뽑아온 것이다. (본교성경주석(한글) 9권 209)
◎ 예수는 시험을 자초하거나 의식적으로 마귀(魔鬼)의 시험의 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와 홀로 있기 위해 자신 앞에 놓인 사업에 대해 명상하기위해 광야로 물러났다.
예수는 인성(人性)을 취했으며 그것과 함께 죄에 굴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취했다. (소망 117)
그는 “인간이면 누구나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겪고 또한 인간이면 누구나 해야 할 싸움을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받아들여야 했다. (소망 49)
오직 그렇게 해야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는 말씀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가 신성을 가졌기 때문에 시험받을 수 없다면 이것은 연극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가 시험을 경험한 것은 인성을 통해서였다. (소망686)
만일 그가 당한 시험이 우리가 당하는 시험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것이었다면 “그는 우리를 도울 수 없을 것이다. (소망 117)
◎ 예수는 인간이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으며 각 개인이 견딜 수 있는 힘에 따라 시험하는 자의 세력을 조절하시며 “피할 길을 주신다.” (고전 10:13)고 약속했다.
그리스도가 시험의 광야에서 겪은 큰 싸움은 각 사람의 마음의 영토에서 반복되고 있다.
시험 곧 선이나 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어떠한 성품의 발전도 없다.
우리가 유혹에 설 수 있는 능력은 유혹을 저항함으로써 생긴다. (본교 성경주석(한글) 9권207p)
◎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2).
예수께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으며,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검으로 사단의 모든 시험을 물리쳐야겠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과 집중적인 교통을 하시기 위해 광야로 나가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셨다. 그분의 승리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다.
(火) 5월20일
<그분의 기도생활(祈禱生活)>
◎ <예수님과 기도(祈禱)>
예수님은 지상(地上)생애동안 아버지와 밀접한 교제를 계속하셨다.
이것은 그분들께서 협력자로서 그리고 창조주와 구속(救贖)의 두 일을 계획하시던 영원 전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M. L 앤드리어슨 저(著) “기도” 209p)
◎ <그리스도의 능력의 근원(根源)>
우리가 그리스도의 기도(祈禱)안에 곧 아버지와의 그분의 교제 안에 그분의 능력이 있었다는 견해를 받아들일 것 같으면 우리는 심하게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 분은 백성들 앞에 나타나실 때 언제나 침착하고 조용하셨다.
미래(未來)가 그 분 앞에 펼쳐졌으며 그분은 어떤 것을 만나게 될지 정확히 아셨다.
어떤 것도 그분을 놀라게 할 수 없었으며 그 분은 언제나 모든 상황을 주도하셨다. (211p)
◎ 예수님은 온밤을 기도에 바쳤다. (소망419)
보통 그런 경우는 여러 복음서 기자들이 언급한 대로 구주의 생애와 봉사에서 결단이나 위기의 때를 앞두고 있었다.
◎ 그리스도의 탁월하고 귀중한 특징들 중 하나는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기도 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그의 지상 생애 가운데 자주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요 5:19, 30)고 언급하였다. 그가 행한 놀라운 일들은 아버지의 능력으로 성취되었다. (소망 143)
그가 한 말씀들은 아버지가 주신 것이었다.(요 8:28)
예수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자신의 생애를 위한 자세한 모든 계획들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가운데 다닐 때, 매 단계마다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인도되었다.” (소망147)
그의 생애를 위한 계획은 날마다 펼쳐졌다. (소망208)
◎ "예수님"의 사역은 명상과 기도로 시작했었다.
그의 갈릴리 봉사의 시작과 갈릴리 마을과 도시들을 다닌 그의 첫 번째 선교 여행 직전에도
◎ <중요한 사건이나 결정이 있기 전에는 밤이 맞도록 기도 하셨다>
중요한 사건이나 결정이 있기 전, 그리스도께서 그 전날 밤을 산(山)에서 하나님과 함께 보내신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
① 첫 번째 전도 여행을 앞두고 그 분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祈禱)하”섰다.
(막 1:35, 38-39)
② 열두 사도를 택하시기 전 “예수님께서 기도 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 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 (눅 6:12-13)
③ 변화하실 때 그 분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 (눅 9:28-31)
④ 승리의 입성 후에도 온밤을 기도에 바쳤다. (소망 581)
⑤ 가장 길게 기록된 예수의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기 전에 한 것이다. (요 17장 참조)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진지하고 고통스러운 기도를 드렸다. (마 26:36-44) (눅 22:19, 41; 눅 23:34)
⑥ 이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 9:29)
⑦ 침례를 받으실 때 그 분은 기도 하셨다. (눅 3:21)
⑧ 성찬식 때 그분은 기도하셨으며,
모든 중요한 일에 있어서 그 분은 기도 하셨으며 어떤 때는 밤새워 기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 대한 이 에들은 기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자 심지어 옷에 광채가 났다. 우리의 무기력하고 생기 없는 기도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심지어 그분의 옷이 영향을 받을 정도까지 기도하셨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힘의 근원을 가지고 계신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 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 밤이 되면 곯아떨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것을 포기하시고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아침에 돌아오셨을 때는 완전히 새롭게 활기를 되찾으시고 다시 백성들에게 봉사할 준비가 되셨다.
사도들은 그 분이 어디서 그런 활력을 얻으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분의 사업을 계속하시는지 분명 궁금했을 것이다. 그분은 밤새워 하시는 일에 대해 별반 말씀이 없으셨지만 그분은 그분이 밤새 기도하시는 것과 그 분의 힘 있는 낮의 활동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그 분께 기도 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여덟 시간 이상을 주무시지 않았다.
그 분은 정규적인 식사도 하지 못하셨다.
그분에게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음식이 있었다.
그 분은 위로부터 오는 힘의 근원을 가지고 계셨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에 들어가시고 죽음을 통해서 사단으로부터 그 사로잡힌 것을 빼앗으실 이 순간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열중했다.
그리스도께는 이때가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승리하여 이 시험을 통과하시면 영광을 받으실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기도(祈禱)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 12:28)
(M. L 앤드리어슨 저(著) “기도” 211-214p)
◎ 그분께서는 호수 위를 걸으시는 놀라운 사건이 있기 전에도 당신의 아버지와 긴밀하게 교통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그리고 수난주간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눈앞에 두시고 당신의 제자들과 마지막 때까지의 당신의 백성을 위해 간절한 탄원의 기도를 올리셨다.
◎ 예수께서는 평소에도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통하셨으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더욱 집중적인 기도로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으셨다.
(水) 5월21일
<사명(使命)에의 집중성(集中性)>
◎ "예수님"은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살았다. (마 4:4; 눅 2:49; 요 6:38)
대부분의 사람들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살지만,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아니면 다른 어떤 것에도 식욕을 느끼지 않았다. (요 6:27)
생애의 물질적인 필요들은 인류의 구원을 이루려는 그의 위대한 목적에 부수되는 것이었다.
(마 6:23-24; 요 6:26-58 참조)
◎ 요한은 종종 예수님을 그의 거룩한 사명과 관련지어 언급하고 있다.
(요 3;17; 5:30, 36-37; 6:38, 44; 7:18, 28, 33; 8:16, 18, 26, 29; 9:4; 10:25, 32, 37; 12:44, 49; 13:20; 14:10, 24, 31; 15:21; 16:5; 17:4 참조)
◎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충족된다는 것을 드러내신 말씀이다.
양식은 생명을 유지하며 힘을 얻는 방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유지되고 힘을 얻었다.
그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다.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생애 동안에 언제나 열심으로 일하셨다.
그는 많은 것을 기대하셨으므로 많은 것을 시도하셨다. (소망, 72).”(선교, 238)
◎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의 모든 지상 생애 동안 가난하고 비천한 운명에 처하셨다.
극기와 희생이 그의 생애를 특징지었다.”(청지기, 160)
◎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는 영세 전부터 수립되어 있었던 계획을 성취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에 그 모든 내용의 완전한 계획이 그 앞에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실 때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씩 인도함을 받았다.
그는 정한 시기에 행동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그와 같이 순복하심으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소망, 147)
◎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4).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27, 32).
◎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한 당신의 사명에 온전히 집중하셨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여야 한다.
(木) 5월22일
<우리와 하나님의 동행(同行)>
◎ 사람들은 어려움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다가 어려움이 봉착하면 신앙에서 떠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다니엘의 친구들도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로 던짐을 받았을 때 그 풀무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셨고, 다니엘도 사자굴속에 던짐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고, 베드로와 사도들도, 사울도 감옥 안에 들어가 고난 받을 때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으며 옥문을 열어 주셨다.
위기(危機)의 현장(現場)에는 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계십니다.
◎ <모래 위에 발자국>
By Mary Stevenson (1922-1999)
어느 날 밤에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을 스크린 삼아 그의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영화처럼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는 모래 위에 길게 펼쳐진 발자국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때가 그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슬펐던 순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항의하듯이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항상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왜 주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을 당하는 시간에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있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혹시 지금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등을 느껴보십시오. 주님의 등에 얼굴을 기대십시오.
주님은 당신이 용기와 새 힘을 얻을 때까지 업고 가실 것입니다. (아멘)
◎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될 때에 일어나는 결과이다.
바울은 이것은 갈라디아 2:20에 고백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참으로 유명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었느냐 하는 데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내 안에서 당신의 삶을 사실 것이기 때문에 그의 행하시는 대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 이론상으로는 이렇다. 이것이 실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예수께서 지적하셨듯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마 13:22)으로 인해 말씀을 실행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깨달은 만큼 실천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요구된다.
◎ 오늘날과 같이 사단의 유혹이 강렬한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최우선으로 삼고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 고정시켜야 한다.
<초점(焦點)>
1. 예수님께서 하늘아버지께 지속적인 의존과 관계는 기도의 교통을 통해서였다.
2. 우리도 하나님과 긴밀한 동행과 관계는 예수님처럼 기도의 연결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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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의 지상 생애 동안 날마다 필요 되는 새로운 공급을 위하여 아버지께 간구하셨고, 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굳게 하고 축복하려고 나아가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헌신한 교역자에게 경이로운 위안이 된다.”(복음, 510)
◎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생애 동안 날마다 필요 되는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기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셨다는 사실과 또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굳세게 하고 축복하시고자 나가셨음을 아는 것은 헌신한 교역자에게 귀중한 위안이 된다. 하늘 아버지께 엎드려 기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기도로써 당신의 믿음을 굳게 하셨으며, 또한 하늘과 교통하심으로 악을 저항하시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친히 얻으셨다. 인류의 맏형으로서 그분은, 결함이 많지만 죄와 유혹의 세상에 살면서 여전히 당신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요들을 아신다. 당신이 보내기에 합당하다고 보시는 사자들이 연약하고 과오를 범하는 사람들임을 아시지만, 그분의 사업에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약속하신다. 그분 자신의 모본은 믿음, 즉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게 하고 아낌없이 그분의 사업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믿음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열렬하고도 끈기 있는 탄원은 죄와의 싸움에 있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하는데 효력이 있다는 보증이 된다.”(행적, 55)
◎ 마귀는 항상 우리가 아주 약할 때 공격하는데 이는 그때가 넘어지기 쉬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능력을 약하게 함으로 시험하는 자의 간계에 대한 우리의 방어력은 약해진다.
과로, 운동부족, 과식, 그릇된 식사, 수면부족 그 외 우리의 지각을 무디게 하고 감정의 통제력을 약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악한 자가 우리의 영혼에 들어오는 길을 쉽게 열어 놓는다.
실망감, 패배감, 원한 등을 품고 있는 것도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생각과 애정을 위의 것에 고정시켜야 하며 (골 3:2). 심령을 참되고 경건하고 정결하고 사랑할만한 것으로 채워야 한다. (빌 4:8)
우리의 몸을 육체를 위한 법칙의 지배 아래 두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존재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범하면서 생활한다면 영원한 가치를 지닌 사물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구주께서 사람들 가운데 생애하시는 동안 그는 가난한 자의 처지를 맛보셨다. 그는 자기의 체험으로 가난한 자의 근심과 고난을 잘 아셨으므로 모든 비천한 일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실 수 있으셨다. 예수의 생애의 교훈에 대한 참된 개념을 가진 자들은 결단코 계급의 차별이 있어야 한다거나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더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일을 즐겁고 재치 있게 행하셨다. 성경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정생활과 일터에서 응용하고, 세상의 사업에 힘을 기울이면서도 오직 일편단심 하나님의 영광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많은 인내와 영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돕는 자가 되신 것은 바로 이러한 환경에 있을 때이다. 그는 결코 하늘 사물을 생각하실 시간이 없으리만큼 세상의 관심사에 몰두하지는 않으셨다. 그는 자주 시와 하늘의 노래를 부르심으로 마음속에 있는 그의 기쁨을 표현하셨다. 나사렛의 동민들은 그가 음성을 높여서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는 노래로써 하늘과의 교통을 유지하셨다. 그의 동료들이 일에 피곤하다고 불평할 때에 그들은 예수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원기를 얻었다. 그의 찬미 소리는 악한 천사들을 쫓아버리고 향연처럼 그 장소를 향기로 채우는 듯하였다. 그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 자들의 마음은 그들의 지상의 나그네 생활에서 떠나서 하늘 본향으로 이끌러 갔다.
예수는 세상을 치유하시는 은혜의 샘이었다. 나사렛에서 그가 은둔 생애를 하신 온 기간에 동정과 친절의 조수가 흘러나왔다. 연로한 자나, 슬퍼하는 자나, 죄 짐을 진 자나, 순진한 기쁨 속에서 즐겨 노는 어린이나, 숲 속의 작은 피조물들이나, 무거운 짐을 실은 참을성 있는 짐승이 나를 무론하고 모두 그가 함께 계심으로 더 행복해졌다. 능력의 말씀으로 여러 세계들을 붙들고 계셨던 그가 상처를 입은 한 마리의 새를 살리시려고 몸을 굽히시곤 하셨다. 그의 주목을 끌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고 봉사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었다.”(소망, 73-74)
“나는 그대들에게 이 이른 아침에 그리스도를 아느냐고 묻고 싶다. 그분은 우리가, 걱정과 당혹함과 절망을 안고 장례 행렬에서 움직이는 곡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께 우리 영혼을 맡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드러난 약속에 신뢰를 두도록 원하신다. 그러나 그대들은 말하기를, 나는 그렇게 느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감정이 그대들을 유일한 도움 되시는 분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 실수하는 유한한 자들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돌이키게 한다면 그것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 내게 말해 달라. 하나님 안에서 활용하는 것이 그대들의 특권이 되는 믿음보다 감정이 더 강하단 말인가? 감정들은 거의 매 환경마다 변한다. 그러나 영원하신 분의 약속들은 반석처럼 견고하다. 우리의 집을 확실한 토대 위에 짓고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반석이신 분, 시대의 반석이신 분께 고정시키자. 만일 우리가 이것을 행한다면, 우리가 동반자 되시는 분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습관적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방법이다. 그는 그분과 이야기했다. 그는 신령한 임재를 깨달았다. 그리고 에녹의 시대에도 완벽한 그리스도인 품성에 대해 1901년보다 더 호의적이지 않았다.”(2설교,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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