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복음을 듣지 못한 이를 향한 선교1-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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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12-06 20:37 조회1,59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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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10과 복음을 듣지 못한 이를 향(向)한 선교(宣敎) ~1
(12월 9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4분)
<기억절(記憶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 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 17:24)
<교과 맥(敎科脈)>
기독교배경(基督敎背景)이 전혀 없거나, 또는 토속신앙(土俗信仰)만을 주장하는 집단(集團)들에게는 물론이며 그밖에 복음(福音)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선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향한 선교는 비판(批判)이나 대립(對立)이 아니라 이들을 존중하며 장점을 부각(浮刻)하여 그들을 사랑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 복음을 자연스럽게 전(傳)할 수 있을 것을 이번 교과에서 배워 적용하며 활용하자.
(12월 03일) (일) <아테네(아덴)의 히브리인>
(Q)~아테네(아덴)는 어떤 곳이며, 아덴에서의 바울의 행적(行蹟)? (행전171~16절)
(A)~<바울은 우상숭배(偶像崇拜) 만연한 아덴에서 복음전도(福音傳道)의 전략(戰略)으로 공통점(共通點)을 찾아 접촉(接觸)하고자 하였다>
⑴.아테네(아덴)는 "우상(偶像)으로 가득 차 있었다."
⑵.아테네(아덴)는 그리스의 다른 모든 지방(地方)의 우상(偶像)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우상이 있었고 그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배나 축제(祝祭)를 열었음을 전해 준다.
⑶.아테네(아덴)는 무엇이든지 신기한 신이 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은 호감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신(神)을 위해 사원(寺院)을 세우고 제단(祭壇)을 쌓았다.
⑷.그들(아덴)은 거의 그들의 사람 수효만큼의 많은 신(神)을 숭배(崇拜)했다
⑸.바울은 아덴 사람에게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너희들은 종교성이 많다고 말하면서 “알지 못하는 신(神)까지 섬기는바 그 알지 못하는 신(神)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 소개함.
⑹.바울은 예수의 몸의 부활을 전(傳)함 (행 17:18)
⑺.바울은 신앙 문제에 대하여 자기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이야기하였다.
⑻.바울의 설교 주제.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단 한 분 살아 계시는 참 하나님을 그들로 알게 하여" 그들의 예배의 유일하고 적절한 대상으로 삼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⑼.바울은 모든 종교의 제일 원리인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그분은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림으로 그들의 신앙의 기초를 이루려고 하였다.
⑽.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역사를 들어 살아계시며 참된 유일한 하나님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증거한다.
(12월 04일) (월) <아레오바고의 바울>
(Q)~바울의 가르침과 선교는 아덴에서 ‘아레오바고’로 이끌었다. 바울이 ‘아덴’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아레오바고’에서의 선교전략(선교법)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A)~<바울이 아덴에서의 교훈으로 철학자들을 만났을 때 논리는 논리로 과학은 과학으로 철학은 철학으로 대항했을 때 그 노력은 별반 결실이 없었다. 이런 연유(緣由)로 그때부터 선교활동방법(宣敎活動方法)을 바꾸었다>
⑴.바울이 ‘아덴’에서의 교훈으로 철학자들과 문학에 정통한 논리(論理)로 응수(應酬)하였으나
그 노력은 별반 결실이 없었음을 깨닫고 아테네(아덴) 거리에서 얻은 내용이 수학(受學)
더욱 유익하여 ‘아레오바고’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이 나타났다.
⑵.바울이 이방 신을 전하는 이로 보였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기 때문이었다
⑶.‘아레오바고’는 모든 이슈(issue)가 모이는 곳이기에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려갔다
⑷.바울은 그들의 종교, 사회, 문학, 철학 등 모든 분야에서 정통함을 나타내었다.
⑸.그들은 바울의 일목요연(一目瞭然)한 논리에 무시할 수 없는 상대로 인정하였다.
⑹.그들은 바울의 선교에 “새로운 신을 전하는 자”라는 방식으로 반응하였다.
⑺.이에 바울은 그들이 전혀 모르는 예수의 육신 부활을 선교하였다.
⑻.즉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復活)을 전했다.
⑼.바울은 그들에게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전했다.
⑽.바울은 그들에게 종교성(宗敎性)이 있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심과 심판에 대해 선교하였다.
(12월 05일) (화) <바울과 “알 수 없는 신(神)”>
(Q)~사도 바울은 “알 수 없는 신(神)의 도시(都市) 아덴”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으며 선교(宣敎) 전략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까요? (행전 17:22~
(A)~<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유익을 생각함으로 그들의 이상한 점도 장점으로 볼 수 있었고 이를 선교전략에 적용하였다.>
⑴.바울은 ‘아덴’의 종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⑵.‘아덴’ 사람들은 범사(凡事)에 종교심(宗敎心)이 많음을 바울은 파악(把握)하였다.
⑶.바울은 ‘아덴’ 사람들과 공통적(共通的)으로 보이는 점을 활용했다.
⑷.바울은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아덴”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⑸.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좋은 점을 발견하여 접촉점(接觸點)으로 삼았다.
⑹.바울은 ‘아덴’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유익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⑺.바울은 사람들에게 저들의 우상숭배에 비교하여 하나님의 존엄성을 증거하였다.
⑻.죄는 인간의 시야를 흐리게 하며 이로 천연 계를 하나님보다 놓이 평가한다.
⑼.‘아덴’ 사람들의 장점은 이해하는 것과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독실(篤實)했다.
⑽.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엄성을 증거하였다.
(12월 06일) (수) <전혀 다른 하나님을 소개(紹介)함>
(Q)~바울은 ‘종교심이 많은 ’아덴‘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하나님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소개하였습니까? (행 17:24~27)
(A)~<아테네 사상가들의 관심을 끈 바울은 이제 청중에게 하늘의 하나님을 소개한다.>
⑴.바울은 먼저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영적 인식과 성실함을 칭찬했다.
⑵.다음으로 바울은 자신이 그들의 믿음을 연구했으며 그것을 통해 발견한 것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⑶. 그다음 바울은 그들의 종교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그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한 특별한 사실에 관해 이야기했다.
⑷.그 후, 그는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하나님의 모습, 즉 존재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시고 멀리 계시지 않은 하나님의 모솝을 나누었다.
⑸.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부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고하며 웅변을 마쳤다.
⑹.종교성이 강한 ’아덴‘사람들이었지만 창조와 부활의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하나님이었다.
⑺.바울은 그들에게 점진적으로 성경의 하나님 창조주께로 그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⑻.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받으시는 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을 소개했다.
⑼.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고 인간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으시며 대신 인간의 필요를 공급하신다는 것이었다
⑽.자기중심적인 신앙의 ’아덴‘사람의 그리스 신관(神觀)에 젖어 있던 문화에서 바울이 선교는 놀랍도록 중요한 기별로써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기별로써 그들은 사랑의 창조주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도록 인도하였다.
(12월 07일) (목) <반응(反應)이 엇갈리는 지점(地點)>
(Q)~바울의 경험(經驗)을 통해 알 수 있는 선교(宣敎)를 하는 사람이 기억(記憶)해야 할 일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또한 바울의 노력에도 그들의 반응(反應)이 엇갈리는 것은 선교(宣敎)에 있어서 무엇을 시사(示唆)합니까? (행 17:32)
(A)~<선교결과(宣敎結果)의 반응(反應)이 어떻든 분명한 것은 결과에 연연((連延) 하지 말고 기별(奇別)을 전(傳)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⑴.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아덴“사람 저자(著者)가 기록한 저서(著書)에서 성경진리(聖經眞理)에 매우 가까운 글을 쓴 내용 일부를 실제로 인용했다.
⑵.바울은 그들의 글을 인용하여 청중들이 더 친숙하게 진리 가까이에 나올 기회를 마련했다.
⑶.바울은 그들의 신앙에서 친숙한 부분을 활용했다.
⑷.바울은 “아덴’ 사람들과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자신이 이끌고자 했던 곳, 즉 예수 님의 부활과 그 부활이 그들 모두에게 주는 소망으로 이끌었다.
⑸.바울의 결론(結論)에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부류(部類)는 다시 듣고 싶어 했고, 또 어떤 부류는 그것을 믿는 사람도 있었다.
⑹.바울의 ‘아덴’에서의 선교의 결과는 반응에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⑺.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에 관해 연구하고 배운 것을 잘 활용해 그들이 알지 못했던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존재(存在)한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증거했다.
⑻.바울의 복음 기별이 ‘아덴’인들 중에서 비교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는 그들의 교만(驕慢)에서 찾을 수 있다.
⑼죄인으로서 예수 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나, 자신들의 지혜를 높이며 나오는 특출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과 지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⑽.세상의 학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과 복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리뷰 1911.8.3.)
******<말미부록(末尾附錄)>***********
<아덴 : 아테네>
G116: Ἀθῆναι
아데나이Athe-nai / 아덴 Athens.
1. 아덴의 역사
아데나이는 고대 앗티카(Attica) 지역의 중심 도시였으며, 현대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의 명칭이다. 이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테네에서 유래된 듯하다. 한글 개역에서 이 명칭을 '아덴'이라고 번역했다.
아덴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계속하여 아덴에 거주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자신들을 "토착인"이라고 말했다. 아덴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곳은 신석기 시대 때 아덴의 아크로폴리스 성채와 그 주위 지역에서였다.
아덴은 B.C. 6세기 초에 입법가 솔론(Solon)에 의해 민주주의 제도가 수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B.C. 4세기와 5세기에 아덴은 그 문화와 위대한 극작가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아덴은 로마의 그리스 정복 후에 씨비타스 포에테라타(civitas foederata, 조약에 의해 로마와 결합된 도시)가 되어 아가야의 총독에서 완전히 독립했으며,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고 사법 자치권을 가지었다. 세 개의 대학 도시인 아덴, 다소, 알렉산드리아 중에 아덴이 가장 유명했다. 아덴은 신전, 조각, 기념비들로 유명했다. 아덴인들은 종교적이고 종교를 토론하는 데 열심이었으나 그들의 영적 수준은 이상하게도 높지 않았다. 바울 시대의 철학자 아폴로니우스는 디오니수스 왕의 축제에서의 아덴인들의 음란한 춤과 그들이 격투사 경기장에 살인을 즐기는 것에 대해 비난했다. (참조: NBD).
2. 신약성경.
아덴은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데살로니가 전서에만 사용되었다.
(행 17:15) 이하에서 아덴에서 바울의 전도에 대해 말한다.
바울이 방문할 당시의 아덴은 비록 그 영화로운 번영이 쇠퇴한 상태에 있었으나 여전히 학문의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울은 아덴의 중요한 공공 건축물들과 많은 신전이 술라(Sulla)의 야만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상되지 않은 채 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행 17:23). 사도 바울이 아덴을 방문한 것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유대인들이 자기의 전하는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을 싫어하며, 반대하며, 소동을 일으켰던 때문이었다. 바울은 아덴의 아고라 저자에서 복음을 변호하는 지적인 변론을 펴서 전도했다. 바울은 이 변론에서 아덴 사람들을 위하여 섬기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드리는 단"에 대해 언급했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아마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마땅하게 경배드릴 수 없는 신들의 진노에서 보호를 받고자 애썼다. 바울은 이 점에 접촉점을 찾아서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제 유일하고도 참되신, 살아계신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선포한다. 이 하나님은 모든 이방 종교적 노력이 혼미하고 무지하더라도 그것과 관련 짓는 분이신 것이다.
(행 17:17)에서 "회당"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유대인들의 무덤들이 케라메이코스(kerameikos)에서 발견되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뜰 앞에서 복음을 변호하는 전도적 변론을 말한 결과로써 바울이 고린도로 떠나기에 앞서 몇 사람의 새로운 개심 자가 생겨났는데,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아라고 하는 여자와 및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행 17:15-행 18:1). (참조: PEB).
<아레오바고>
G697: Ἄρειος Πάγος
<아레이오스 Areios / 아레오바고(법정) Areopagus>
아레오바고는 아덴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남서쪽의 한 언덕을 가리킨다.
그 언덕이 어떻게 그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두 가지 전승(傳承)이 있다.
그중 한 가지에 따르면 그곳에서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 Halirrhotios의 살해에 대한 재판을 벌인 전쟁의 신 아레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행 17:22)에 나오는 명칭이 유래했다(아레스는 로마의 신 Mars와 동일시된다.).
다른 전승(傳承)은 아레오바고라는 이름은 "아라이(Arai)의 언덕"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퓨리에스(Furies)로 더 많이 알려진 아라이(Arai: "저주 curses")는 그녀의 일이 복수(復讐)하는 살인자(殺人者)인 여신(女神)들이다.
만약 이 전승(傳承)이 참이라면 그 이름은 매우 적절하다.
왜냐하면, 아레오바고는 살인 사건을 재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언덕의 기슭에 그 안에 이들 여신(女神)들의 사당이 위치한 동굴이 있다.
그 여신들은 Semnai와 Erinye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의 Pausanias는 아레오바고에서의 첫 번째 재판은 Orestes에 대한 것이었다는 전설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 여신들은 Orestes가 자신의 어머니, Clytemnestra를 살해한 것에 대해 저주하고 냉혹하게 고소했다.
그들의 ‘알지 못하는 신’은 곧 하나님으로 창조주이시며,
그는 시간을 만드사, 사람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게 하셨고 나아가 모든 민족이 살 수 있는 공간적인 경계까지 정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시편 기자와 모세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땅의 모든 경계를 정하셨으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라고 노래했다(시 74:17). 또한 모세도 모든 민족들의 경계가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졌음을 교훈하고 있다(신 32:8).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구약성경에서 유래하는 사상에 근거하여 아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하고 있다. (만나주석- 행 17:15-34)
<바울의 기별>
○. 메시아가 "해를 받고 죽으셨다가 다시 사시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 그 예수가 바로 메시아임을 보여 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고 당신들을 믿게 하려고 하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구세주이며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요. 오실 이(재림하실)이시다. 그러기에 너희가 다른 메시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말씀과 행하심으로(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의 자녀들에게 말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성경과 기적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메시아임을 효과적으로 증명하셨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 복음 사역자들은 예수를 설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만 한다. 사역자들의 임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들을 예수와 만나게 하는 것이다.
○. 우리가 예수에 대하여 설교해야 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의해 구원을 받고 그에 의해 통치되기를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행 17:1~16, 매튜헨리)
○.< 바울의 가르침에 대하여 몇몇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
☞. 바울이 만나서 이야기하였으나 그를 반대한 사람들.
"그는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다."(17절).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고 무시하였으며 그가 하는 말에도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말을 나눌 만한 상대라고 생각하는 몇몇 철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전혀 반대되는 이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 이들 철학자 가운데 쾌락주의자들(Epicureans)이 있었다.
이들은 "신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신을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게으르고 비활동적인 존재로 생각했고 선과 악 사이에도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고 또 통치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나 행하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두려워할 벌도 기대랄 만한 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가 대항하여 없애려고 하는 무신론적인 개념들을 다 허용하고 있었다. 쾌락주의자들은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자신은 부인하라고 가르치신 그 자신 안에서 쾌락을 추구하였다. (행 17:1~16, 매튜헨리)
○. 암비볼리.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48㎞ 떨어져 있다. 초기 시대에는 이 도시가 전략적인 위치라는 인식 때문에 엔네아 호도이(Ennea Hodoi, “아홉 개의 길”)라고 알려져 있었다. 로마 치하에서 로마의 속주(屬州) 마게도냐를 네 지역으로 분할했는데 암비볼리가 그중 첫 번째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아볼로니아.
암비볼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48㎞ 떨어져 있다. 이 도시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얼마 전 채찍을 맞은 이들에게 하루 약 48㎞라는 여행 거리는 큰 피로를 안겨 주었지만 방금 언급된 두 도시가 빌립보에서 온 이 여행자들에게 밤을 지낼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두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행 17:1~16, 재림교주석)
○.성경으로부터.” 바울은 예수(눅 24:25~27, 44)와 스데반(7장) 그리고 자신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그랬던 것처럼(참조 13:16~41), 성경에서 그의 이론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강론(講論)하며.
헬라어 디알레고마이(dia-legomai). 17절에 “변론하다”로 번역된 것과 같은 동사로, “담화하다”, “강연하다”, “토론하다”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예전처럼 담대하게 증거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말로만…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살전 1:5) 전했다. 동시에 그는 “유모가 자기 자식을 기름과 같이”(살전 2:7) 온유했다. 그 결과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만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많은 이방인도 “우상을 버리고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살전 1:9). (행 17:1~16, 재림교주석)
○.아덴에서의 바울(2)(사도행전 17:22-31)
우리는 여기서 아덴에서 행한 바울의 설교를 듣는다. 우리는 사도들의 여러 가지 설교를 지니고 있다. 사도들이 유대인들에게나, 혹은 구약을 잘 알고 그것을 존경하여 진실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 숭배하는 이방인들을 향해 설교한 설교가 있었다. 사도들이 이들에게 한 모든 설교에는 "예수가 그리스도이다."라는 사실이 주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우리는 이방인들 즉 거짓 신들을 예배하고 참된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자들에 대한 설교를 대하게 된다. 이들에 대한 사도들의 설교는 전자의 설교와는 전혀 달랐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들의 청중들로 하여금 예언과 기적에 의해 구속자를 알게 하고 그를 믿게끔 인도하는 것이 사도들의 주된 임무였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섭리의 일반적인 역사(役事)를 설명함으로 그들을 창조자에 대한 지식으로 이끌고 그를 예배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다. 사도를 신격화시키려는 루스드라의 미개한 우상 숭배자들에게 행한 설교가 본문과 같은 성격의 설교였다(14:15). 한 가지 차이점은 본문의 말씀은 루스드라에서의 말씀보다는 그 대상이 아덴의 좀 더 정중하고 세련된 우상 숭배자들이라는 점이리라. 이 설교는 대단히 유창한 것으로 청중들에게 알맞은 수준 높은 것이었다. 그는 이 설교를 그 청중을 감안하여서 행하였다.
○. 바울의 설교 주제.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단 한 분 살아 계시는 참 하나님을 그들로 알게 하여" 그들의 예배의 유일하고 적절한 대상으로 삼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바울은 모든 종교의 제일 원리인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그분은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림으로 그들의 신앙의 기초를 이루려고 하였다. 바울이 그들이 숭배하고 있는 신들을 반대하여 전도한 것은 그들을 무신론자들로 이끌려고 한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을 봉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방적인 우상숭배를 폭로한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법정에서 고발되고 처벌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그 도시가 존경하고 있던 신들을 존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신(邪神)을 소개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러한 비난이 바울에게도 주어졌다. 이제 바울은 아무 말 없이 그가 그곳의 신들을 무시한다는 고소는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새로운 신들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계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그들에게 전하려 한 것뿐이라고 선언함으로 후자의 고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변호한다.
○. 바울은 그들에게 이것에 관해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만든 거짓 신들을 예배하느라고 그들을 창조한 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Deos qui rogat ille facit - 즉 다른 신들을 예배하는 그들을 만든 하나님을 소개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27절) 라고 말하였다. 바울이 그들을 고발한 죄는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다른 것에 보내고 있다는 것이며, 그들이 악마와 영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귀신들과 영혼들이 그들이 예배하는 우상 속에 깃들어 있다고 상상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너희 이웃들보다 뛰어나게 많은 신들을 섬기고 너희에게 일이 있을 때마다 우상에게 경배한다.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 때가 왔도다. deisi daimones teroi - 즉 너희가 범사에 정하는도다. 그러나 그것들은 종교를 더욱 부패시키는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그 종교를 개혁할 수 있는 요소를 보여 주리라." 그들의 이웃 국가들은 그들이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여 그들의 이 종교성을 칭찬했다. 그럼에도 그가 부드럽게 책망하였고 그들의 종교심을 맹렬히 비난함으로써 그들을 격분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바울은 그들이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뜻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들은 모든 면에서 특출하게 종교적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22절을 "너희들은 너희 신앙에 매우 헌신적이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또는 이 본문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너희들은 말하자면 (w,j) 필요 이상으로 미신적이다."라는 뜻을 좋은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그는 그가 인지한 사실만을 말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qewrw, - 즉 내가 보건대, 또는 "내가 주의해 보니"라고 서두를 붙인다. 그들은 바울이 새로운 신을 소개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아니, 너희들은 이미 충분한 잡신들을 소지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그러한 신들을 더 보태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행 17:16~34, 매튜헨리)
○.그들의 철학의 윤리적인 실효성에 몇 가지 결함이 있었다.
(1) 그들은 자신에 대해 무관심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정심이 없었다.
(2) 그들은 자신의 의지 작용을 통해 윤리적 완전에 이르려고 함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였다.
(3) 바리새인들처럼, 높은 이상 곧 완전한 삶을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이기적이고 타락한 삶을 가리는 가면으로 삼았다.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은 너무도 흔히 “위선자”(또는 “배우”)가 되었고, 그들의 내면의 품성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연극을 세상 앞에서 하고 있었다. 풍자가의 말을 빌리자면, “쿠리우스(Curii)의 흉내를 내면서 박쿠스 신(神) 예찬자(술주정뱅이)처럼 사는 자들이 감히 도덕을 논하고 있다”(Juvenal Satires ii. 2, 3; Loeb ed. 17).
이 학파의 더 훌륭한 대표자들과 바울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바울이 주장한 기본적인 원칙들이 그들에게는 허망한 꿈처럼 보였을 것이다. 바울이 예수와 부활 그리고 다가올 심판에 대해 말할 때 스도이고 철학자들은 자신들에게 용서와 구속이 필요하다는 사상을 꺼렸다. (행 17:15~34, 재림교주석)
○.생명과 호흡.
이 두 명사는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최초의 생명을 주고, 육적인 호흡을 부여하여 그것을 유지케 하신다. 이처럼 바울은 인간이 참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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