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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함 침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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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7-14 14:17 조회6,7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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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7월19일(안) 일몰(日沒)오후7시51분

제3과 “예수님의 길을 예비(豫備)함” 침례자(浸禮者)요한

<확대경(擴大鏡)>
◉ 침례(浸禮)요한(사랑하는 자)은 어떤 사람인가 ?
사갸랴와 엘리사벳의 아들 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先驅者)로 와서 AD28년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에게 참수형(斬首刑)을 받고 죽었다. 침례요한은
① 두려움이 없는 사람. (마 14:4 ; 막 6:18)
② 겁(怯)이 없는 사람. (눅 3:7 ; 막 6:18)
③ 불의(不義)를 못 보는 사람. (눅 3:9-14).
④ 자신(自身)의 분수(分數)를 알고 행동(行動)한 사람. (눅 3:16)
⑤ 자신(自身)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 (눅 3:16)
⑥ 겸손(謙遜)한 사람. (마 3:14 ; 눅 3:16)
⑦ 예수님의 길을 예비(豫備)하러 오신 사람 (눅 1:76).
⑧ 예수님에게 침례(浸禮)를 베푼 사람. (마 3:14)

日 7월13일
<特別한 부르심> (사 40:35)
◉ 침례(浸禮) 요한
◎ 1. '침례요한'은 '여호와는 은혜(恩惠)로우시도다'라는 뜻이며, 노년(老年)에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얻은 아들이며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고.(눅 1:14) 아비야 반열(班列)의 제사장(祭司長)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눅 1:5). 유다 산지(山地)에 거주하였고. 예수님께 침례(浸禮)를 베풀었다 하여'침례(浸禮) 요한'이라 명명(命名)되고 있다.
2. '침례요한'은 헤롯 대왕(B.C.37-A.D.4년)의 통치기간(統治期間)인 B.C. 5년경에 출생(出生)하여 예수님과 거의 동시대(同時代)에 활동(活動)했다(A.D.27-30년경).
3. '침례요한'은 제사장(祭司長)의 가문(家門)에서 태어나 율법(律法)에 통달(通達)했고, 유다광야(廣野)로 나가 회개(悔改)를 촉구(促求)하였다.
4. '침례요한'은 예언자(豫言者)의 사명감(使命感)을 가지고 금욕(禁慾)과 청빈(淸貧)한 삶을 살면서 주(主)의 길을 예비(豫備)하여 유대 백성(百姓)에게 침례(浸禮)를 베풀었다. (말4:5-6).
5. '침례요한'은 예수께 침례(浸禮)를 베풀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紹介)하였다 (요 1:29).
6. '침례요한'은 .헤롯 안디바의 부도덕(不道德)을 고발(告發)하다 투옥(投獄)되어 참수(斬首)의 죽임을 당하였다(마14:3-12).
7. '침례요한'은 예루살렘 주변(周邊)의 성직자(聖職者)들이 물질(物質)에 탐닉(耽溺)하는 것과는 달리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廣野)에서 회개(悔改)를 선포(宣布)한 것을 볼 때 강직(剛直)하고 검소(儉素)한 인물(人物)로의 삶을 살았다.
8. '침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침례(浸禮)를 요청(要請)하자 예수에게 자신(自身)의 한계(限界)를 인정(認定)하며 이를 마다하려 한 것으로 보아 당대(當代)의 선구자(先驅者)로서 매우 겸손(謙遜)한 성품(性稟)의 소유자(所有者)였음을 알 수 있다. (마3:13-14).
9. '침례요한'은 동생(同生)의 아내를 탈취(奪取)한 통치자(統治者) 헤롯 안디바를 통렬(痛烈)히 책망(責望)한 것을 볼 때 불의(不義)를 묵과(黙過)하지 않는 정의(定義)의 인물(人物)임을 보여준다. (눅3:19-20).
10. 침례요한은 권력자(權力者) 헤롯 안디바의 파렴치(破廉恥)한 소행을 신랄하게 비난하여 목숨까지도 잃게 된 요한의 선지자(先知者)적 행동(行動)은 부패(腐敗)한 권력자(權力者)의 잘못에 침묵(沈黙)으로 동조(同調)하는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적 속성을 가진 모든 종교인(宗敎人)들에게 귀감(歸勘)이 된다.
11. 무명인(無名人)으로 침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침례(浸禮) 베푸는 것을 마다한 당대(當代)의 선각자(先覺者) 요한의 겸손(謙遜)이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었듯이(마3:13-15), 복음(福音) 전파(傳播)자의 첫째 조건(條件)은 겸손(謙遜)이다.
12. 침례자요한의 핵심 성경절(聖經節)은 "광야(廣野)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豫備)하라 그의 첩경(捷徑)을 평탄(平坦)케 하라 하였느니라."(마3:3).

月 7월14일
<길을 예비(豫備)하는 자 가 준비(準備)됨> (눅 1:80)
◎ 침례요한이 세상에 온 것은 메시아적 예언의 성취였다.
“선지자 …….의 글에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2-3)이 예언의 말씀가운데 2절은 말라기 3:1에서 인용하였다. 3절의 말씀은 이사야 40:3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이사야는 여기에 “소리”라는 말로써 요한의 앞서 옴을 예언하였던 것이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사 40:3) 이 “소리”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전령(傳令)인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할 한 가지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선택하는 그런 형(形)의 사람을 택(擇)하시지 않는다는 것 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미련한 것들”을 택하시며 “강(强)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것들”을 택하신다. (고전 1:27-28) 만일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전령(傳令)자를 택하는 일이 맡겨졌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고귀(高貴)한 출생의 박사(博士)나 유명한 인재를 뽑았을 것 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고등교육도 받지 않고 고귀(高貴)한 태생(胎生)도 아니며 알려지지도 않은 광야(廣野)의 사람 요한을 택(擇)하셨던 것이다.
침례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은 사람이다. (마 11:11)

◎ 침례요한의 메시지는 또한 그의 출현과 같이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마치 로마의 관리가가 나와 왕의 행차를 알리듯 모든 사람들에게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쳤다.
◎ (막 1:3) “광야(廣野)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말과 소리의 차이)
말(言)= 말은 말하는 자의 의도와 뜻을 전(傳)하고자 하는 자의 의도대로 하는 것이 말이지만,
소리(音)= 소리는 그 자체이다.
즉 "하나님"께서 하시 의도와 계획을 담아 그대로 내는 것이 “소리”이다
침례요한은 자기의 말을 하지 아니하고 “소리” 즉 나팔로 스피커로써 사명을 감당하였다는 것이다.
잘하는 설교(說敎)란 자기의 말(생각)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소리”로써 해야 한다.

○ <사단은 침례요한을 움직일 수가 없었음>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앞서가서 세상의 구속 주께서 가실 길을 예비하는 특별한 사업을 하도록 되어있는 요한의 어린 시절과 청장년 시절의 특징은 굳건한 도덕적 능력을 지닌 것이었다. 사단은 그의 성실성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리뷰 1874. 3.3).”(화잇주석, 눅 1:80)

火 7월15일
<엘리야의 심령(心靈)> (마 11:14)
◎ 엘리야는 어떤 사람 이였는가?
1.'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으로 길르앗의 디셉 사람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최고의 선지자(왕상17:1)였고 털이 많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두른 사람(왕하 1:8)으로 성경은 소개 하고 있으며,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사람이며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사의 스승이다.
2. '엘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합과 아하시야 치세(治世)때 활동하였고 (대략 B.C.875-850년경).
3.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극심한 우상숭배(偶像崇拜)로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 것을 예언하고 그릿 시냇가로 몸을 숨겼고 (왕상17:1-7). 시냇물이 마르자 시돈 땅으로 가 사르밧 과부의 공궤를 받았고 (왕상17:8-16), 3년 뒤 갈멜산 대결에서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증명하고, 이방 선지자들을 기손 시냇가에서 쳐 죽였다. (왕상18:40). 그 후 이세벨의 칼을 피해 호렙산으로 도망가 죽기를 자처하나, 하남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용기를 얻었으며 (왕상19:1-14).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을 꾸짖고 하나님을 멸시한 아하시야의 죽음 을 예언하였다. '엘리야'는 사역 후기에 제자 엘리사와 헤어져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昇天)하였고
4.'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가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끝까지 견딘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850명의 이방 선지자를 상대로 홀로 싸울 만큼 강하고 담대한 신앙의 용사였다.
'엘리야'는 가뭄 동안 자신을 공궤한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죽자 그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점은 그가 양심적이고 의리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었으나,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호렙산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 점에서 그 의 인간적인 나약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5. '엘리야'는 온 국가가 우상(偶像)의 소굴이 된 상황에서도 엘리야는 홀로 850명의 이방 선지
들을 상대로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담대(膽大)하게증거 했다. 생명을 내어 놓고 하나님을 증거한 엘리야의 신앙은 하나님을 증거(證據)하기는 커녕 개인의 영달(榮達) 을 위해 자신의 신앙까지도 숨기려 하는 현 세태(世態)에 훌륭한 귀감이 된다. 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야조차도 위기에 처해서는 자포자기하며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에게 용기를 주시며 더 큰 능력 으로 채워 주셨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간절히 기도할 때 하늘이 비를 내리게 하는 엄청난 이적을 행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간절한 기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낸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들이여 기도의용 사가 되자!
6.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다시 기도(祈禱)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7-18).

◉ “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말 4:5; 눅 1:17)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침례요한은 유대인들의 부패상을 공공연히 책망하였고 유행하는 죄를 책망하는 데에 그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설교는 분명하고, 날카로 왔으며 설득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회개의 증거로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봉사를 예비하는 사업이었다. 이 충실한 선지자가 외치는 단순한 진리로 많은 사람이 죄를 깨달았지만 그 빛을 거절한 사람들은 더 짙은 어두움에 휩싸이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들은 예수님이 참 메시아라는 증거들을 외면할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2예언 48,49).”(화잇주석, 마 11:14)

◎ 침례요한과 엘리야는 비슷한 사역을 하였다.
엘리야는 우상숭배(偶像崇拜)로 파국지경으로 치닫는 아합왕에게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엘리야자신이 아니라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을 좇은 자가 아합왕 이라는 폭탄선언(왕상 18:17-18)을 하는 참으로 요즘의 말로 표현 한다면 간(肝)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으로 겁(怯)과 두려움이 없는 주님의 사자(使者)요 사도(使徒)였다
☞ 침례요한 역시 헤롯에게 부정직(不正直) 부도덕(不道德)함을 직언(直言)( 마 14:8-12 ; 막 6:18)한 사람이다.

水 7월16일
<행동(行動)의 변화(變化)> (눅 3:10-15)
◎ 사람을 크게 두 부분으로 생각해볼 수가 있다.
(첫째) 하드웨어적인 부분 (육신(肉身)과
(둘째) 소프트웨어적인 부분 (정신(精神)으로
어떤 사람은 육신에 많은 관심과 온갖 생애에 목표가 되는 듯이 즉 외모(外貌)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그에 삶을 허비(虛費)하는 것 같은 생(生)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반면(反面)에는 정신적인(영적(靈的)인 삶을 추구(追究)하는 사람도 있다.
1. 전자(前字:육신)에 사람은 성경에서 정의(定義)하기를 (갈 5:19-21)에 음행(淫行)과, 더러운 것과, 호색(好色)과, 우상숭배(偶像崇拜)와, 술수(術數)와, 원수(怨讐)맺는 것, 분쟁(忿爭)과, 시기(猜忌)와, 분(忿)냄과, 당(黨)짓는 것과, 분리(分離)함과, 이단(異端)과, 투기(妬忌)와, 술 취(醉)함과, 방탕(放蕩)함으로 정의를 했고,

2. 정신적인(영적(靈的)) 사람은
사랑과 희락(喜樂)과, 화평(和平)과 오래 참음과 자비(慈悲)와 양선(良善)과 충성(忠誠)과 온유(溫柔)와 절제(節制)라고 (갈 5:22-23)에 기록하고 있다.

행동의 변화가 중요한 것은 먼저 마음에서 생각한 것을 말로 하게 되며, 말한 것을 행동(行動)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의 변화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누가복음15장의 탕자(蕩子)의 비유(譬喩)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누가복음15장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라는 말에 유의하여 살펴보자
회개(悔改)란 먼저 스스로 돌이키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이 “스스로 돌이키는 것” 이 참으로 중요하다. 사람은 돌이키는 단계를 거쳐서 죄를 자복(自服)하는 단계로 이어지며 이를(마 3:6)에서 말하고 그 다음단계에서 행동(行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마 3:8)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서 말한다면 “예수님”을 영접치 않고 살다가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면 그 증거로 죄(罪)된 지난날을 자복(自服)과 회개(悔改)를 통하여 그 행동이 침례(浸禮)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거듭남의 표시로 로마서 6장1절부터 11절까지에 “예수님”과 합하여 침례(浸禮)를 받는 것은 죄 된 지난날의 삶을 이제는 죽음과 다시 사는 경험을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음에 감사함으로 우리는 받아드리는 것이다.

◎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침례요한이 회개(悔改)의 열매를 맺도록 촉구(促求)하는 깊은 뜻을 금번의 교과공부를 통하여 다시 한 번 나의 신앙(信仰)에 촉진제(促進劑)로 적용(適用)하는 축복을 누립시다.

木 7월17일
<요한에게서 배울 중요(重要)한 교훈(敎訓)> (골 2:8)
◎ 침례요한과 예수님은 자신에게 퍼부어진 온갖 불의(不義)에 대한 "하나님"의 무응답(無應答)을 경험(經驗)다.
이때 침례요한과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反應)했는지 주목(注目)해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重要)하다.

◎ 침례요한은 끝까지 충성(忠誠)한 겸손(謙遜)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촌 예수님이 무명시절 그가 자신의 뒤에 오실 그분이심을 믿었다. 그리고 철저히 그분을 예비(豫備)하는 사역을 했다. 자신의 사역과 제자들을 그분께 양보했으며 사역에서 오는 인기도 포기했다.
그런 그가 헤롯에 의해 허무한 죽음으로 세상을 마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고한 죽음을 허락하셨다. 침례요한이 형장(刑場)으로 끌려갈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의 삶과 죽음의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 뭐라 질문 했을까? "하나님"은 과연 그 질문에 답 하셨을까? 그렇다면 그 답은 어떤 것이었을까?
침례요한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포기 하게 하셨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침례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진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식과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실망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다른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피해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 왜 이렇게 불공평하세요? 주님을 잘 믿고 싶었던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무정하게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는 결국 그것을 허락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이런 경험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온전한 순종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안에 해결되지 않는 원망이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완전하신 나의 주, 행하신 모든 일 완전하시다.” 라는 고백이 나오지 못한다. 침례요한의 무고한 죽음은 결국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만 온전히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豫表)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역시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진 듯 한 상황으로 들어가셨고 그 가운데에서 죽으셨다.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시편22편1절 이하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철저한 "하나님"의 침묵과 외면을 경험하셔야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겪으시며 그 저주를 다 받으셨다. "하나님" 스스로 그 모든 고통의 짐을 다 받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고통가운데 외치는 그 소리에 응답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침묵하신 이유가 있었음을 설명하셨다. 이것이 수없이 억울한 아픔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위로가 된다.

◉ “세속적(世俗的) 명예(名譽)를 구(求)하지 않음(요 1:26, 27)
백성들은 침례요한이 약속된 메시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생애의 특징은 희생과 자기 부정과 겸손이었다. 그의 가르침과 권면과 책망은 열렬하고 진지하고 용감하였다. 그는 그의 사명의 길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으로써 사람들의 사랑과 갈채를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세속적인 명예나 지위를 원하지 않고 그의 것이 아닌 명예를 차지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하였다 (2 예언 57).” (화잇주석, 눅 3:15,16)

(초점(焦點))
1. 침례자 요한은 특별한 사명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예수님의 길을 에비 한 삶을 살고 죽었다.
2.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도 침례요한과 똑같은 사명을 가진 자임을 자부하며 사명을 감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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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 침례요한의 배경과 출생
사가랴는 그의 결혼생활 시초부터 내내 아들을 하나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제 그와 그의 아내는 늙었고 그들의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셨다. 그 분은 이 기도를 응답하실 시간을 정해놓으셨으며, 형편이 아주 없어 보일 때 사가랴는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의 기도를 잊지 않으셨다. 그 분은 그의 기록 책에다 그것을 기록해 두시고 그분이 가장 좋게 여기시는 시간에 응답을 받게 하셨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희망이 없지만 주님께서는 잊지 않으셨다. 그는 긴 세월 실망만 않고 왔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가장 영광스럽게 될 수 있었을 그때에 그의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무한하신 사랑의 그 큰마음은 얼마나 부드럽고 친절하며 사랑과 동정으로 가득차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에게 보통사람을 아들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에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할 사람을 주신 것이다. 그에게서 하늘의 빛이 분명하고 똑똑한 빛줄기로 비춰야만 하였다. (원고 27, 1898)

아브라함에게와 마리아에게서 아들이 출생한 일과 같이 사가랴에게 아들이 탄생한 것은 큰 영적 진리 곧 우리는 배우기는 더디 하고 잊기는 쉬이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시려고 한 것이었다. 우리 자신으로는 능히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라도 순복하고 믿는 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영적 생명을 낳게 하고 우리가 의로운 행실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소망1권 111)

○ 침례 요한의 생애(生涯)에 있었던 교육(敎育)
일의 당연한 순서로서 사가랴의 아들은 제사장직(祭司長職)을 위하여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랍비의 학교에서 받은 수양(修養)은 그로 하여금 그의 사업에 부적당하게 만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성경을 해석(解釋)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그를 신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로 보내시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이 천연계(天然界)와 그 천연계(天然界)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게 하기 위하여 그를 광야로 부르셨다. 그가 자기의 집으로 정한곳은 적적한 장소로서 황무한 언덕과 거친 계곡과 암굴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엄격한 수양을 받기 위하여 세상의 향락과 사치를 버리기를 택하였다. 유년과 소년시대는 그 품성이 매우 감동 받기가 쉬운 때이다. 자제력도 이 시대에 얻어야 한다. 노변과 가정 식탁에서 끼쳐지는 감화력의 결과는 영원토록 미치는 영구성 있는 것이다. 유년기에 형성된 습관은 어떤 성품보다 더 인생의 투쟁에서 사람의 승패를 결정하게 한다. 청소년시대는 씨를 뿌리는 때이다. 청소년 시대는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를 위하여 거둘 수확의 성격을 결정하는 시대이다. (1소망 115-116)

○ 성령을 받은 침례(浸禮)요한
어머니의 팔에 안긴 영아일지라도 기도하는 어머니의 믿음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아래 거할 수 있다. 침례요한은 날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였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산다면 우리도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라도 성령께서 우리의 어린것들을 꼴 지어 주시기를 기대할 수 있다. (2소망321)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하는 기별자를 준비시키는 데에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한 천사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와서 그 들이 어떻게 그 아이를 훈련시키고 교육시킬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부모로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유능한 일군으로 일하도록 요한에게 할당하신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한 품성을 꼴 지움에 있어서 하나님과 신실히 협력하여야만 하였다. 요한은 그들이 늙어서 얻은 아들이요 기적의 아들이다. 그들은 요한이 주를 위하여 하여야할 특별한일이 있으며 주께서 그를 돌보실 것이라는 것을 능히 추론해서 알 수 있었지만 그 부모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시골에 있는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그들의 아들은 도시생활의 유혹에 노출되지도 않았고 부모로서 그들이 아들에게 주는 권면과 교훈에서 떠날만한 유혹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그 아이 속에 품성개발을 이루는데 에 그들의 할 일을 다 하였고 하나님께서 요한의 생애를 위해서 계획하신 목적에 부응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다. (특별증언 1896. 4. 16)
○ 광야(廣野)에서
침례요한은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을 배웠다.
그는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공부하였다. 또 성령의 지도아래 선지자들의 글을 연구하였다. 낮이면 낮 밤이면 밤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명상하던 그의 심령은 영광의 계시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요한은 아름다운 왕을 바라보았을 때에 자신을 잊어버렸다.
그가 거룩한 위엄을 보았을 때에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았다. 요한이 전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기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義)를 힘입어 담대히 하늘의 사자로서 나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복음 51-52)

○ 그의 단순한 생활의 모본(模本)
침례요한의 모본은 개혁자였다. 요한에게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서 큰 사업이 위탁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한 준비로서 그의 모든 습관은 나면서부터 세심하게 통제되었다.
요한은 그의 친구들과 사치스런 생활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서 광야에 홀로 살면서 순수한 채식으로 살아갔다. 그의 단순한 의복. 약대 털옷. 은 그 시대 사람들의 낭비와 허식 특별히 유대의 제사장들에게는 책망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제시해야할 거룩한 진리를 위탁하시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 길을 준비시켜야할 말세에 사는 사람들을 대표하였다. 그리고 요한이 실천하였던 동일한 절제의 원칙은 인자의 오심을 세상에 경고해야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도 준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절제와 성경상 위생 37-39) 

○ 침례요한은 게으른 생활을 하지 않았음
요한의 생애는 게으름과 금욕적 음울함과 이기적 도피 가운데서 소일한 것이 아니었다.
때때로 그는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섞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진 관찰자였다. 한적한 그의 은신처에서 그는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것을 주의 깊이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영으로 비추이심을 받은 계시로 그는 사람들의 품성을 연구하였고 이렇게 함으로서 그는 하늘의기별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에 접근하는 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교회증언 8권 221-222)

그는 광야에서 고독과 궁핍에 자신을 굴복시켰다.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천연계의 책을 연구함으로서 그분의 엄위하심에 대한 느낌을 계속 지닐 수가 있었고 그분의 놀라운 솜씨 가운데 나타난 그분의 품성을 익히 알게 되었다. 도덕적 수양을 쌓고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계속 갖게 하는 데에 광야는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그리스도의 선구자 요한은 악한 대화와 부패한 세속의 감화에다 자신을 노出시키지 않았다. 그는 죄가 아주 죄 되게 보이지 않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그의 양심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그의 집을 광야에다 갖기로 하였으며 그 환경이 그의 감각을 왜곡시키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존 귀히 여기시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 보다 더 큰이가 없다” 말씀하신 이분의 모본에서 무엇인가 봄 배우는 것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교회증언 4권109)

○ 요한의 슬픈 생애.
요한은 그의 사면 가운데서 발견하였던 기쁨을 뺀다면 그의 생애는 슬픔의 생애 그것이었다. 그의 음성은 광야이외의 곳에서는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쓸쓸한 운명을 보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일한 그 결과를 보는 특권을 얻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보다 큰 빛에 따르는 하늘의 능력의 나타남을 증거 하는 것은 그의 특권이 아니었다. 눈먼 자가 그의 시력을 회복하고 앓는 자가 나음을 입고 죽은 자가 살아서 일어나는 것은 그가 볼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을 통하여 비친 예언의 허락 위에 영광을 발산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이신 이적을 보고 그 말씀을 듣던 가장 작은 제자라도 이런 의미에서 침례 요한보다 더욱 훌륭한 특권을 받은 것이므로 그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모든 희생의 관을 쓸 것이다. 저들은 분명히 이기적인 사람들의 오해를 사게 될 것이며 사단의 치열한 공격목표가 될 것이다. (1소망 300-301, 306)

○ 침례 요한의 사업과 기별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요한은 유대인의 부패상을 공공연히 책망하였고 편만한 죄악을 꾸짖는 데에 그의 음성을 높였다. 그의 설교는 단순하고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으며 확신에 차있었다. 많은 사람이 회개하는데 이르렀고, 그 회개의 표시로서 요단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봉사를 위하여 예비적인 사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신실한 선지자가 전파하는 명백한 진리로 인하여 죄를 깨달았다. 그러나 빛을 거절함으로서 그들은 더 깊은 어두움에 싸이게 되었고 따라서 참 매시아이신 예수에게 따르는 증거들을 거절할 준비가 완전히 갖추어진 것이었다. (예언의 선물2권 48-49)

요한은 정교한 논리나 잘 짜여진 이론을 전개하지 않고 그의 기별을 선포하였다. 준엄하고 깜짝 놀랄만하였지만 희망에 가득찬 그의 음성이 광야에서 들려왔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3:2) 새롭고도 이상한 능력으로 그것은 백성들을 감동시켰다. 온 나라는 들끓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떼를 지어 나갔다. (교회증언 8권 332)

그는 죄를 꾸짖고 책망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증거를 세상에 하여야만 했다.
요한은 그의 음성을 나팔소리같이 높였다. 그의 사명은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집에 그 죄를 고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학위를 받지 않았고 하나님과 천연계가 그의 교사이었지만 타락한 국가를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 선지자들과 같이 그의 음성을 높일 담대한 사람이 그리스도 앞에 길을 예비하는 데에 필요하였다.
기다란 변설(辨說)도 정교하게 짜여진 이론도 없었다. 정교하게 첫째, 둘째, 셋째 대지로 배열한 설교도 아니었지만 짧은 문장으로 표현된 순수한 토박이 말투의 웅변 속에 담긴 말 한마디에는 육중한 경고의 진리와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요한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하였다. 침례 요한은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나 고관들에게나 다 같이 공개적으로 죄를 책망하였다. 그는 왕족과 귀족들에게 듣든지 거절하든지 간에 진리를 선포하였다. 직접적이고도 날카롭게 말하였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신앙이 형식적이며 순수하고 기쁨으로 하는 순종의 의가 없었기 때문에 산헤드린에 속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였다. (원고 B-19 1/2, 1897)

○ 침례 요한의 기별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인근의 촌락으로부터 온 불학무식(不學無識)한 농부들과 어부들 헤롯 병영(兵營)에서온 로마의 군인들 반역의 기미가 있으면 진압하기 위하여 칼을 차고 온 장교들 세관에서 온 탐욕스러운 세리들 산헤드린에 서온 신앙이 독실(篤實)한 척 하는 제사장들 이 모두가 다 홀린 듯이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그리고 모두다 심지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차갑고 매정하게 비웃던 사람들까지도 잠잠히 돌아가서는 죄책감으로 가슴을 찢었다. 헤롯도 궁전에서 그 기별을 들었고 그 거만하고 죄로 굳은 위정자들의 마음도 회개하라는 부르심을 듣고 벌벌 떨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주의 크신 날에 사람들이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킬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교회증언 8권332)

충돌과 분쟁 속에서 광야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으니 곧 그 음성은 놀랍고도 엄숙하였으나 소망에 찬 음성이었다.
이 말은 새롭고 이상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이 아주 먼 장래에 있을 사건으로 예언하였는데 그 사건이 가깝다고 여기에서는 외치는 것이었다.
요한의 이상한 외양(外樣)은 청중으로 하여금 옛날의 선지자들을 연상하게 하였다. 그의 태도와 의복은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하였다. 그는 엘리야의 심정과 권능으로 백성들의 부패한 것을 비난하고 널리 퍼진 죄를 견책하였다. 그의 말은 명백하고 날카로우며 또한 확신시키는 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난 선지자중 한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다. 온 나라는 뒤끓었고 많은 무리는 광야로 모여들었다. 요한의 복음 선포는 종교계의 권위자들의 주목을 이끌 만큼 국내에 그 깊은 뿌리를 박았다.
요한의 사업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증대하여 가는 것처럼 보였다. (1소망 121-122, 163-164)

○ 침례요한이 극복(克復)한 약점(弱點)
요한도 천성적(天性的)으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허물과 약점(弱點)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접촉으로 그는 변화를 입었다. 믿음으로 구주를 바라보는 동안 그는 자기 부정의 높은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주의를 자기에게로 끌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사상을 점점 더 향상시켜서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향하게 하였다.
자아를 비운 그 선지자의 영혼은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 찼다.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과 거의 쌍벽을 이룰만한 말로 그는 구주의 영광을 증거(證據)하였다. “위에서 오시는 분은 만유위에 계신다.” 고 그는 말하였다. (교회증언8권 333-334)

○ 어떻게 침례요한은 우혹(愚惑)을 받았는가?
요한의 제자들은 불평하면서 그에게로 와서 말하기를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이 증거 하던 자가 침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사단은 이러한 말을 통하여 요한에게 시험을 가져다 주었다. 요한의 생명이 비록 거의 끝나가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그가 아직도 능히 그리스도의 사업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요한이 자기 자신을 동정하고 자기의 지위를 빼앗기는 일에 대하여 슬픔과 실망을 표시하였다면 그는 불화의 씨를 뿌렸을 것이며 질투와 시기를 조장하여 복음사업의 전진에 치명적인 방해를 끼쳤을 것이다. (1소망 232)

○ 침례요한의 죽음
세월은 지나갔으되 요한이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던 왕국은 건설되지 아니하였다. 헤롯의 노옥(奴獄)에서 생기를 주는 공기와 광야의 자유로부터 차단되어서 그는 기다리고 주목하고 있었다. 비록 무력의 표시나 옥문(獄門)을 깨뜨리는 일은 없었으나 그러나 병인(病人)을 고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사람의 심령을 고상하게 하는 일들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증거하고 이었다. 홀로 노옥(奴獄)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자기의 갈 길을 내어다 본 요한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희생에 참여하는 신임을 받아들였다. 하늘의 사자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타락한 세계나 타락(墮落)하지 않은 세계를 물론하고 온 우주의 지혜(智慧)있는 존재들은 다 함께 그가 무아의 봉사를 옹호한 것을 목도하였다.
그 후 각 시대를 내려오면서 고난을 받은 심령들이 요한의 평생에 남긴 증언에 의하여 유지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 11:11)고 하신 말씀을 기억함으로 노옥(奴獄)에서 교수대에서 또는 화형주의 불꽃 가운데서 많은 남녀들이 암흑의 여러 세기를 통하여 힘을 얻어온 것이다. (교육 205)

○ 침례요한이 죽도록 허락된 이유(理由)
예수님께서는 당신의종을 구해내시려고 개입하지 아니하셨다. 예수님께서 요한이 그 시험을 견디어 낼 것을 아셨다. 구주께서는 친히 임재하심으로 감방의 음울함을 명랑하게 하시기 위하여 즐겨 요한에게 오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원수의 수중에 두심으로 자신의 사명을 위태롭게 하려고 아니하셨다. 그는 그의 충성스러운 종을 즐겨 구출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후년에 감방에서 죽음을 당할 수다한 사람들을 위하여 요한은 순교의 잔을 마셔야 하였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외로운 옥중에서 신음하고 칼이나 고문대나 나무다발에 죽임을 당하여 겉으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한 것처럼 보일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충성을 증거 하셨던 침례요한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겪었다는 생각에 저들의 마음이 든든함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는 항상 하늘의 천사들이 동무가 되어 주어서 그들이 그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과 성경 말씀의 귀중한 허락들을 공개하여 주었다. (1소망 307-308)


○ 하늘은 그를(침례 요한을) 어떻게 보았는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천사는 요한이 나기 전에 사가랴에게 선언할 때에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리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하늘의 평가에서 크게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크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니 곧 저희가 존중히 여기는 바 부(富)나 지위나 훌륭한 가문(家門)이나 선물(膳物)이 아닌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고찰(考察)을 떠나서 만일 지적 위대함이 존 귀히 여길 만한 것이라면 우리의 경의는 아무라도 일찍이 그 지능에 있어서 어깨를 겨누지 못하던 사단에게 돌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자기를 섬기는 데 악용될 때에 그 선물이 크면 클수록 그 저주도 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도덕적인 가치이다. 사랑과 순결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존중히 여기는속성인 것이나 요한은 주님 보시기에 큰 자이니 곧 그는 산헤드린이 파견한 사자들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나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나 자신의 영예를 구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허락하신 분으로 지시하였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보인 그의 이기심 없는 기쁨은 일찍이 사람이 나타낸 수고 중에 가장 높은 형태의 숭고한 정신을 제시하는 것이다. (1소망 298-299)

○ 오늘을 위한 교훈(敎訓)
우리의 사업은 무엇인가?
침례요한에게 주어진 것과 똑같은 사업, 곧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고 전파(傳播)하는 사업이다.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하여 주의사업에 진정으로 헌신한 사람들은 모두 증거(證據)해야 할 결정적인 기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사야 40장 처음 몇 구절을 읽어보라.
(교회증언8권 9)

우리의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인쇄물들은 "하나님"을 만나도록 백성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온 세계를 통하여 침례요한이 유대 나라를 위하여 행한 것과 꼭 같은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 깜짝 놀랄만한 경고의 기별을 가지고 그 하나님의 선지자는 세속의 꿈속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일깨웠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회개하도록 초청하셨다. 그는 진리를 제시함으로써 널리 대중화된 기만을 폭로하였다. 그 시대의 거짓 이론과는 대조적으로 그가 가르치는 진리는 영원히 확실한 것으로 굳게 섰다.
요한이 초림을 위한 길을 준비한 것과 같이 우리는 구주의 재림을 위하여 길을 준비해야 한다. (교회증언 7권 139)

○ 그의 (침례 요한의) 죽은 후(後)에 개심(改心)자들이 나타남
이때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다. 아볼로는 침례요한의 전도를 듣고 회개의 침례를 받았으며 선지자의 사업이 헛되지 아니하였다는 산 증인이었다…….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여 열두 형제를 방문하였는데 그들은 아볼로처럼 침례요한의 제자들이었고 아볼로처럼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하여 얼마쯤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볼로와 같은 능력을 갖지 못하였으나 그와 같은 성실과 신앙으로 저희가 얻은 지식을 널리 전파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행적 264,277)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있었다. 배척 받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시는 분이란 소식이 멀리 퍼져다. 이 세상의 마음속에도보다 나은 생애를 살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났다. 여리고 에서 불과 몇 킬로 되지 않는 요단강에서 전에 침례요한이 전도하였으므로 삭개오는 그 회개하라는 초청을 들었었다. “정한 세(稅)외에는 늑징(勒徵)하지 말라.”는 세리(稅吏)들에 대한 교훈을 비록 겉으로는 무시하였으나 마음속에는 감명(感銘)을 받았었다. (2소망 370)

귀족(貴族), 랍비, 군인(軍人), 세리(稅吏), 농부(農夫)들이 이 선지자(先知者)의 말을 듣기 위하여 왔다. 잠시 동안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 그 엄숙한 경고는 저들을 놀라게 하였다. 많은 사람이 회개에 이르고 침례를 받았다.
여러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요한이 선포(宣布)한 왕국에 참여하기위하여 침례요한의 요구에 순복(順服)하였다.
저들은 요한을 떠나서 예수를 찾으러 갔다. 둘 중의 하나는 시몬의 형제 안드레였고 다른 하나는 전도자 요한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최초의 제자들이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를 버리지 아니하였다. 저들은 감옥에 접근 하도록 허용되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의 사업에 대한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백성들이 어떻게 주위에 모여들고 있는지를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슬픈 마음으로 요한의 잘리운 시체를 묻기 위하여 운반 하였다. 그런 후에 그, 들은 예수께 고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서 사람들을 끌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시기하였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의 편을 들어서 예수님께서 마태가 베푼 잔치에 세리(稅吏)들과 함께 앉으신 것을 보고 그를 비난 하였다. 예수님께서 침례요한을 자유하게 하지 않으셨다는 이유로 그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사명을 의심(疑心)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선생이 죽자 그들의 슬픔을 위로 받고 장래의 사업에 대한 지도를 받고자 하여 그들은 예수님께 나와 그들의 관심사를 예수님께 맡겼다. 그들에게도 또한 구주와 사귈 조용한 한 때가 필요 하였던 것이다. (1소망 172, 291; 1소망 100)

○ 우리도 요한처럼 되어야 한다.
요한은 예수님의 초림을 전파하기 위하여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다.
나는 이 요한이 말세의 진노의 날과 예수님의 재림을 선포하기 위하여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져야 할 자들을 나타냄을 보았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의 초림을 선포하여 그의 오심을 예비한 것처럼 월리암 밀러와 그에게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재림을 전파하였다. (초기문집 159, 236)

◉ <적합한 학교가 없었음>
선지자 침례요한에게 맡겨진 큰 일이 있었지만 지상에는 그가 다닐만한 학교가 없었다. 그는 도시에서 떨어진 광야에서 학문을 습득하여야 하였다. 그가 연구해야 할 책들은 구약 성경과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연계였다. 하나님은 침례요한을 주의 길을 예비하는 그 사업에 적합한 인물로 만들고자 하셨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 콩과 야생 꿀이었다. 사람들의 관습과 관례들은 이 사람의 교육이 될 수가 없었다.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은 그의 품성 형성에 하나도 섞여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원고 131, 1901).

○ <길이 차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이 접근함>
침례요한은 사회에서 그가 맞서야 할 커다란 유혹을 저항할 만큼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의 품성이 유대 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일반의 관습에 따라 꼴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광야를 그의 학교로 택하였고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크신 책, 천연계에서 적합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가 있었다. 광야에서 침례요한은 보다 쉽게 자기를 부인할 수가 있었고 식욕을 통제할 수가 있었으며, 자연에 따라 옷도 단순하게 입을 수 있었다. 광야에는 명상과 기도로부터 그의 마음을 빼앗아 갈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요한이 마귀가 들어올 모든 통로를 다 차단한 후일지라도 사단은 요한에게 접근해 왔다. 그러나 그의 생활 습관은 매우 순결하고 자연 그대로였기 때문에 그는 원수를 식별할 수가 있었고 그를 저항할 수 있는 정신력과 결단력을 갖고 있었다.
다양한 교훈을 무한히 갖고 있는 자연의 책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고, 그리고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셔서 그가 백성들에게 회개를 호소하고 더 높고 더 고상한 생애를 촉구하는 큰 사업을 하도록 그의 마음에 뜨거운 열심을 불붙이었다. 요한은 삼십 년 간 그를 두르고 있는 광야의 산과 바위들같이 주변 환경에 의해서 동요되지 않고 백성들 가운데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고되고 궁핍한 은둔 생활을 통하여 그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거기에 맞추어 통제하고 있었다(2예언 47).


<끝까지 앍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에 이름으로 축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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