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 선지자들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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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2월 2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7분) 李奉周
제8과 선지자(先知者)들의 권위(權威)
(기억절)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0-21)
(깨닫기) : 선지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기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행하기) : 성경을 그리스도인 생애와 교리의 최종적인 권위로 존중한다.
(요점)
선지자의 권위는 그 권위의 출처와 글의 내용 그리고 기별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개인적 능력이나 영향력 혹은 카리스마를 선지자적 권위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에 있다.
일(日) (2월 15일)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인 선지자(先知者).(출 4:10-16)>
◉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을 전 하기위해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선지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권위(權威)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주저하고 꺼린다.
모세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았을 때 (출 4:10-16)에서 한 이야기를 보자.
①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
② 보낼 자만 보내소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①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② 누가 농아(聾啞)나 소경이나 장애인(障碍人)이 되게 하였느냐?
③ 모세에게 .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 하냐.
④ 네 형 아론이 말 잘하는 것을 내가(하나님)잘 안다.
⑤ 그(아론)는 네 입을 대신 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
⑥ 여호와께서 모세를 당신의 대언자로 부르셨을 때 모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사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노를 발하시며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지명하셨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출 4:16)
☞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같이” 되고(참조 출 4:16),
아론은 모세의 “대언자”가 되었다(출 7:1).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대언자(代言者)요 대변인(代辯人)인 선지자들 간의 밀접한 관계를 정확히 나타내준다.
더군다나 모세와 아론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대언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처음에 모세는 선지자가 되기를 꺼리고 있었다.
☞ 모세는 한때 애굽 나라의 장군(將軍)이었고, 말 잘하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자아(自我)가 그 사업(하나님의 사업)에 개입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원고 11. 1903)
◉ “엘렌 G. 화잇”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도 처음에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저했었다. 고 자신의 (자서전69쪽)에 기록 하면서
“첫 이상을 본 지 약 1주일 후에 본 두 번째 이상(異像)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련들을 보여 주시고,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활동은 큰 반대를 받을 것이며 마음은 고민으로 찢어지는 듯 할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하기에 충분할 것임을 보여 주셨다.
☞ 여러 날 동안 나는, 이 짐을 내게서 옮겨 그것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 달라고 깊은 밤중까지 기도하였다. 그러나 임무에 대한 빛은 변하지 않고 천사의 음성만이 계속 내 귀에 쟁쟁하였다.
‘내가 네게 보여 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라.’(엘렌 G. 화잇의 자서전, 69)
◉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대언자(代言者)>
“모세와 아론의 관계를 통해서 성령과 기자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예시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출 7:1, 4:15-16 참조)라고 하셨다.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기별들을 알려주었고, 그 대신 아론은 그것들을 자신의 어휘와 표현 양식을 사용하여 바로에게 전했다.
마찬가지로 성경 기자들은 그들 자신의 언어 양식에 따라 신적 명령과, 사상, 생각들을 전달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전달하셨기 때문에 성경의 서로 다른 책들은 그 어휘가 다르며 기자의 교육과 교양을 반영하고 있다”
(기본교리, 2007년, 21-22)
◉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언자(代言者)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사양하였다.
엘렌 G. 화잇도 하나님의 기별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매우 망설였지만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선지자들의 권위(權威)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월(月) (2월 16일)
<성육신(成肉身)하신 말씀의 권위(權威)(마 28:18)>
◉ <성육신(成肉身)이란 >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 (요 1:1)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다. (요 1:3)
이 말씀은 이제 육신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는데, 이 말씀은 참 빛이며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다.
육신이 되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오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곧 성육신의 사건이다.
성육신(成肉身)의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빌 2:6-8)
성육신(成肉身)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 지음을 받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음을 뜻한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주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는 성육신 교리에서 그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위대한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곧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행동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경배(敬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의 약속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으며,
우리가 예수와 마주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치는 것이다.
성육신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신비(神秘)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省察)의 절정이다.
여기에서 성육신의 핵심(核心)은 예수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동정녀의 몸을 빌어 잉태(孕胎)하신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심. (마 1:22-23)
병자(病者)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은 예언(豫言)된 메시야이심. (마 11:2-6)
다윗이 성령(聖靈)에 감동(感動)하여 주(主)라 칭(稱)한 이는 그리스도이심. (마 22:41-45)
예수께서도 자신(自身)을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하심. (막 14:61-64)
제자(弟子) 도마도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불렀음. (요 20:26-28)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 14:9)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권위(權威)와 권위주의(權威主義)란 무엇인가?
① 권위(權威)(authority)란 ?
㉮ 남을 지휘(指揮)하거나 통솔(統率)하여 따르게 하는 힘을 권위(權威)라 한다.
㉯ 성경이 말하는 권위(權威)란 ?
절대적인 것으로서 남을 복종시키는 힘을 말한다.
(시 93:1; 시 104:1; 딛 2:15; 유 1:8)
② 권위주의(權威主義)
어떤 일에 있어 권위(權威)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를 권위주의라 한다.
◉ 권위란? = 주워진 위치의 권한을 권위라 하며,
권위주의란? = 주워진 권한을 남발하는 것을 권위주의라 한다.
(예(例))
1. 아버지가 초등학교도 못나온 문맹자라고, 가장(家長)으로써 돈을 못 벌어 온다고,
대학을 나온 아들이 아버지를 깐보거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을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2. 권위주의(權威主義) 란?
내가 아버지라는 이름만 가지고 자녀를 학대(虐待)하거나 부인(婦人)을 학대하거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행동을 자행(恣行)하면서 내가 아버지인데, 남편인데 라는 권위를 남용(濫用)하는 것을 권위주의라 한다.
◉ <예수님께는 분명히 신적(神的)인 권위(權威)가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고, 그 행하시는 이적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나누어 주셨다.
◉ 예수님의 최종적인 권위는 우리의 창조주(요 1:3)요
구속주(救贖主)(롬 3:24)이신 그리스도께 속(屬)해 있다.
그분은 재판장이신 동시에 각 사람이 심판받게 될 절대적 표준이시다.
그분의 권위는 최종적인 권위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은,
그분이 권세 있는 자와 같이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마 7:29)
◉ 복음서(福音書)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적(神的)인 권위(權威)를 보게 된다.
①그분은 죄를 용서하셨고(막 2:10), ⑩
② 귀신을 쫓아내셨으며(막 3:15),
③ 사람들의 마음을 심판할 권세가 있음을 주장하셨고(요 2:24-25),
④ 또한 영생을 주셨다(요 10:28).
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상(地上)에서 행사하신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것이었다(요 17:2).
⑥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을 포함하여,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은 항상 하늘 아버지께 의존함으로,
아버지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요 5:19).
⑦ 그와 동시에 그분은 독자적인 권세를 가지셨다(마 28:18).
⑧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었으며(막 6:7),
⑨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수 있으시다.(요 5:27)
◉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
“그분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그분은 권세 있는 자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특징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든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과 대조가 되게 하였다.
랍비들은 마치 성경의 말씀들이 한 가지 사물이나
혹은 그와는 꼭 반대의 사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과 주저함으로 말하였다.
듣는 자들은 날마다 더욱 큰 불확실 가운데 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의 책으로 가르치셨다.
그분이 제시하시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분의 말씀은 전혀 논박할 수가 없는 그런 권세로 제시되었다.”(시대의 소망, 253)
◉ 예수께서는 창조주(創造主)와 구속주(救贖主)로서 최종적(最終的)인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그 분의 권세와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며,
또한 당신 자신이 독자적으로 가지신 권세(權勢)이다.
화(火) (2월 17일)
<기록(記錄)된 말씀의 권위(權威)(왕하 22:10-13)>
◉ 국가(國家)와 국가 간(國家間)에는 대사(大使)라는 직책이 있고 대사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영토내(領土內)에 미국 대사관이 있으면 그 건물은 미국의 영토와 같이 대한민국 사람이나 정부로부터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는 미국나라 영토(재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그 권위가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例))
북한에서 탈북한 분들이 중국이나 제3국의 대사관으로 들어가면 그 나라 국가의 치외법권(治外法權)이 됨으로 그들을 붙잡아 갈수 없는 것이다.
이는 국가 간(國家間)의 권위(權威)를 존중하기 때문인 것이다.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대하는 두 부류의 태도(態度)가 있다.
<Ⅰ>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否定)하는 부류의 사람.
① 성경을 폄하(貶下)하거나
② 성경 말씀을 조롱(嘲弄)하거나
③ 무시하거나
④ 시대에 뒤떨어진 책으로 거부(拒否)하거나
⑤ 역사적 가치나 권위가 없는 것처럼 해석을 하는 행위
⑥ 성경을 불태우거나 훼손하는 행위와
⑦ 성경의 모순점과 의문을 지속적으로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제기하며,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
⑧ 성경의 진리를 하나님의 뜻이 아니 아전인수 격(我田引水格)으로 해석 유포하는 행위 등
<Ⅱ>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부류의 사람,
①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품성과 뜻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② 인간의 존재의미가 기록된 책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③ 각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도록 명료하게 진술되어 있는 말씀으로
즉 성경을 대하는 두 부류란 ?
1. 첫째부류는
성경의 모순점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말하며
2. 둘째부류는
마음에 진리와 의무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보는 사람들이다.
◉ 유다 왕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자 옷을 찢으며 말씀에 순응하여 우상을 제하고 산당(山堂)을 허는 대대적인 개혁을 일으켰으나, 유다 왕 여호야김은 말씀이 낭독될 때에 그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로 불에 던져 넣었다.
이 두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나타낸다.
◉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 있는 책으로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한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논쟁의 해답으로써 그리고 모든 신앙의 기초로써 제시되어야 한다.”(실물교훈, 39-40)
◉ “엘렌 G. 화잇”여사는 그녀의 일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높였다.
과학과 성경 사이의 논쟁에 관하여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들의 과학적 관념으로 시험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지식은 신뢰할 수 없는 안내자다.”(부조와 선지자, 114)
◉ 1909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총회에 참석했을 때,
마지막 설교를 마치면서 그녀는 펼쳐진 성경을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이 책을 여러분께 권하는 바입니다.”
(아서 L. 화잇, 엘렌 G. 화잇: 엠스헤이븐에서의 후년의 생애, 197)
◉ <성경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
“성경의 거죽만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피상적 지식을 가지고 심오한 성경 지식을 가졌노라고 생각하고는 성경의 모순점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진리와 의무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볼 것이다. 빛을 받은 영혼은 영적인 통일성을 보게 된다. 그것은 성경 전편을 꿰뚫고 있는 장중한 황금 실과 같은 것이지만 그 귀한 황금실을 추적해 내려면 인내와 생각과 기도가 필요하다.”
(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5)
◉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엘렌 G.화잇은 일생동안 성경을 높였다.
수(水) (2월 18일)
<선포(宣布)된 말씀의 권위(權威)(히 4:12)>
◉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救主)로 믿는 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라는 말씀이 우리를 주님께 인도 하고 있다.
또한 같은 책의 말씀에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證據)니”(히 11:1) 라고 선포된 말씀이 곧 하나님의 권위를 뒷받침하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은 곧 “혼(魂)과 영(靈)과 및 관절(關節)과 골수(骨髓)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鑑察)”한다.(히 4:12)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중한 어떤 범죄자도 도덕적인 법으로 사형에 처할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그의 영혼은 거듭나는” 경우가 바로 의사의 손에 들린 수술용 칼처럼 사람의 죄를 치유(治癒)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사람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과 능력이 있다.
반면에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는 그 말씀에 강력히 반발하여 그 말씀을 전달한 선지자를 죽이려하기도 했고, 또한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선지자의 말씀을 선포한 스데반을 죽이므로 사울(바울)을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로 스데반의 죽음으로 신약 성경의 절반이상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고 하나님의 사도로 열심을 냈던 사울(바울)과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를 일컬어서 “선포된 말씀의 권위”의 실례라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 말씀에 강력히 반발하여 그 말씀을 전달한 선지자를 죽이려 하기도 했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 반대의 경우로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또는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회개하기도 하였다.
◉ 교회내의 모든 사람들이 “엘렌 G. 화잇”의 권면을 받아들이므로 큰 유익을 얻었다.
(예(例))
1863년부터 1901년까지 교회의 조직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각자가 독자적으로 활동했고 유기적으로 일하는 대신 종종 경쟁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러나 대총회 전날 “엘렌 G. 화잇”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나서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에 의하여 교회의 운영에 대한 과감한 변화를 촉구했다.
이로 지도자들의 신속한 결정이 내릴 수 있었고 하나님의 권면에 의해 지시된 교회의 조직 개편에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으며 약간의 수정과 증보가 있었으나 그 조직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 <말씀에 귀를 기울임 >
“우리는 주님의 길을 알기 위하여 또한 종교적인 허위(虛僞)들에 속지 않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거짓된 이론들과 미혹적인 강신술의 견해들로 가득 차 있어 밝은 영적 식별력을 흐리게 하고 진리와 거룩함에서 떠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이때를 만난 우리는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 5:6)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69)
◉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뿐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를 지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화잇 여사를 통해 교회의 재조직을 지시하셨다.
목(木) (2월 19일)
<비정경 선지자들의 권위(權威)(눅 7:28)>
◉ 지금의 우리 교회에서 해마다 재직을 선출한다.
그러나 어느 장로님은 설교를 일 년 동안에 한번이상의 설교를 하지만, 어느 장로님은 일 년 동안 한 번의 설교를 하지 않는 분도 있다.
그러나 설교하신 장로님만 장로로 인정하고, 설교를 하지 않는 장로님을 장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없듯이
비록 정경(성경)을 문자로 기록 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똑 같은 선지자들의 권위를 갖는다.
◉ 교회법에 의하여 정전(正典)으로(성경의 기록에 없는 선지자들) 인정되지 않은 선지자들의 권위는 어떠한가?
성경에 선지자들로의 이름을 거명 되었지만 성경자체에 기록된 말씀이 없는 선지자들의 권위는 어떠할까?
즉 역대기에는 “갓, 나단, 아히야, 스마야, 잇도” 등의 선지자들은 성경(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에 의해 쓰인 최소한의 여섯 권의 책이 언급되어 있다.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하지만 정경을 기록 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정경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
◉.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견자 사무엘의 글, 선지자 나단의 글, 선견자 갓의 글,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 등이 언급되어 있다.
◉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예언을 하였고, 그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었다. 모든 선지자가 성경을 쓴 것이 아니며, 선지자들의 모든 글이 다 성경에 포함된 것도 아니다.
◉ 정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삶과 믿음의 규준으로서 그분의 섭리 하에 묶여진 책들의 수집본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의 모든 글이 성경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에 포함된 것보다 더 많은 영감 받은 편지들이 바울에 의해 쓰였다(고전 5:9, 골 4:16). 혹 그 편지들 중 하나가 발견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의 일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경 이외의 권위 있고 영감적인 서신으로 남게 될 것이다.
◉ 엘렌 화잇의 권위는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의 권위와 비견될 수 있다.
그녀가 받은 영감적인 기별은 정경에 추가되지 않는다.
그녀의 글들은 또 다른 성경이 아니다. 결국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 비정경 선지자들과 성경 시대 이후 선지자들의 유사성
“성경 시대 이후의 선지자들은, 나단, 갓, 아삽, 스마야, 아사랴, 엘리에셀, 아히야, 그리고 오벳, 미리암, 드보라, 훌다, 시므온, 침례자 요한, 아가보, 실라, 안나, 빌립의 네 딸 등 성경 시대에 살았지만 그들의 증언이 성경에 수록되지 않은 선지자들과 많은 면에서 유사한 기능을 행한다. 그들의 저술들이 성경에 수록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동일한 하나님이 이 남녀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그들의 기별은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와 모순되지 않는다.”(기본교리, 2007년, 313)
◉ 다음은 1982년에 대총회가 성경과 엘렌 G. 화잇의 글에 관해 진술한 내용의 일부이다.
<Ⅰ> 지지(긍정)
(1) 우리는 성경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영감 받은 책임을 믿는다.
(2) 성경의 정경은 오직 신구약 66권뿐임을 믿는다.
(3) 성경은 믿음의 기초이며 모든 교리와 경험에 관한 최종적인 권위임을 믿는다.
(4)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5) 예언의 은사가 신약시대 이후의 교회에서도 발견될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음을 믿는다.
(6) 엘렌 화잇의 사역과 글이 그녀의 예언적 은사를 입증해 준다고 믿는다.
(7) 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령의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의 글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기별임을 믿는다.
(8) 엘렌 화잇의 글의 목적은 우리의 영적인 생애와 성장을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믿는다.
(9) 엘렌 화잇의 예언적 은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성장과 연합에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다.
(10) 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경의 많은 기자들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했음을 믿는다.”
<Ⅱ> 부정(否定)(반대)
(1)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성경과는 질적으로 다른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2)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거룩한 정경에 추가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3) 엘렌 화잇의 글이 그리스도인 신앙에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 성경과 동등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4) 엘렌 화잇의 글이 모든 교리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5) 엘렌 화잇의 글을 연구하는 것으로 성경 연구를 대신해도 된다고 믿지 않는다.
(6) 성경은 오직 엘렌 화잇의 글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7) 엘렌 화잇의 글은 성경의 의미를 남김없이 해석해 준다고 믿지 않는다.
(8) 넓은 의미에서 엘렌 화잇의 글은 성경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9)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단순히 그리스도인 경건의 산물이라고 믿지 않는다.
(10) 엘렌 화잇이 문학적 자료를 인용하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은 것이 그녀의 글의 영감성을 무효화한다고 믿지 않는다.
※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글의 영감성과 권위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1) 그녀의 글을 성경 수준으로 취급하거나,
(2) 일반 신앙 서적처럼 간주해 버리는 양극단을 피할 수 있다.
제8과 선지자(先知者)들의 권위(權威)
(기억절)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0-21)
(깨닫기) : 선지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기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행하기) : 성경을 그리스도인 생애와 교리의 최종적인 권위로 존중한다.
(요점)
선지자의 권위는 그 권위의 출처와 글의 내용 그리고 기별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개인적 능력이나 영향력 혹은 카리스마를 선지자적 권위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에 있다.
일(日) (2월 15일)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인 선지자(先知者).(출 4:10-16)>
◉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을 전 하기위해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선지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권위(權威)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주저하고 꺼린다.
모세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았을 때 (출 4:10-16)에서 한 이야기를 보자.
①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
② 보낼 자만 보내소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자.
①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② 누가 농아(聾啞)나 소경이나 장애인(障碍人)이 되게 하였느냐?
③ 모세에게 .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 하냐.
④ 네 형 아론이 말 잘하는 것을 내가(하나님)잘 안다.
⑤ 그(아론)는 네 입을 대신 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
⑥ 여호와께서 모세를 당신의 대언자로 부르셨을 때 모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사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노를 발하시며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지명하셨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출 4:16)
☞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같이” 되고(참조 출 4:16),
아론은 모세의 “대언자”가 되었다(출 7:1).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대언자(代言者)요 대변인(代辯人)인 선지자들 간의 밀접한 관계를 정확히 나타내준다.
더군다나 모세와 아론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대언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처음에 모세는 선지자가 되기를 꺼리고 있었다.
☞ 모세는 한때 애굽 나라의 장군(將軍)이었고, 말 잘하는 법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자아(自我)가 그 사업(하나님의 사업)에 개입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원고 11. 1903)
◉ “엘렌 G. 화잇”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도 처음에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저했었다. 고 자신의 (자서전69쪽)에 기록 하면서
“첫 이상을 본 지 약 1주일 후에 본 두 번째 이상(異像)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련들을 보여 주시고,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활동은 큰 반대를 받을 것이며 마음은 고민으로 찢어지는 듯 할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하기에 충분할 것임을 보여 주셨다.
☞ 여러 날 동안 나는, 이 짐을 내게서 옮겨 그것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 달라고 깊은 밤중까지 기도하였다. 그러나 임무에 대한 빛은 변하지 않고 천사의 음성만이 계속 내 귀에 쟁쟁하였다.
‘내가 네게 보여 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라.’(엘렌 G. 화잇의 자서전, 69)
◉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대언자(代言者)>
“모세와 아론의 관계를 통해서 성령과 기자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예시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출 7:1, 4:15-16 참조)라고 하셨다.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기별들을 알려주었고, 그 대신 아론은 그것들을 자신의 어휘와 표현 양식을 사용하여 바로에게 전했다.
마찬가지로 성경 기자들은 그들 자신의 언어 양식에 따라 신적 명령과, 사상, 생각들을 전달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전달하셨기 때문에 성경의 서로 다른 책들은 그 어휘가 다르며 기자의 교육과 교양을 반영하고 있다”
(기본교리, 2007년, 21-22)
◉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언자(代言者)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사양하였다.
엘렌 G. 화잇도 하나님의 기별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매우 망설였지만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선지자들의 권위(權威)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월(月) (2월 16일)
<성육신(成肉身)하신 말씀의 권위(權威)(마 28:18)>
◉ <성육신(成肉身)이란 >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 (요 1:1)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다. (요 1:3)
이 말씀은 이제 육신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는데, 이 말씀은 참 빛이며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다.
육신이 되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오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곧 성육신의 사건이다.
성육신(成肉身)의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빌 2:6-8)
성육신(成肉身)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 지음을 받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음을 뜻한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주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는 성육신 교리에서 그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위대한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곧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행동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경배(敬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의 약속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으며,
우리가 예수와 마주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치는 것이다.
성육신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신비(神秘)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省察)의 절정이다.
여기에서 성육신의 핵심(核心)은 예수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동정녀의 몸을 빌어 잉태(孕胎)하신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심. (마 1:22-23)
병자(病者)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은 예언(豫言)된 메시야이심. (마 11:2-6)
다윗이 성령(聖靈)에 감동(感動)하여 주(主)라 칭(稱)한 이는 그리스도이심. (마 22:41-45)
예수께서도 자신(自身)을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하심. (막 14:61-64)
제자(弟子) 도마도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불렀음. (요 20:26-28)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요 14:9)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권위(權威)와 권위주의(權威主義)란 무엇인가?
① 권위(權威)(authority)란 ?
㉮ 남을 지휘(指揮)하거나 통솔(統率)하여 따르게 하는 힘을 권위(權威)라 한다.
㉯ 성경이 말하는 권위(權威)란 ?
절대적인 것으로서 남을 복종시키는 힘을 말한다.
(시 93:1; 시 104:1; 딛 2:15; 유 1:8)
② 권위주의(權威主義)
어떤 일에 있어 권위(權威)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를 권위주의라 한다.
◉ 권위란? = 주워진 위치의 권한을 권위라 하며,
권위주의란? = 주워진 권한을 남발하는 것을 권위주의라 한다.
(예(例))
1. 아버지가 초등학교도 못나온 문맹자라고, 가장(家長)으로써 돈을 못 벌어 온다고,
대학을 나온 아들이 아버지를 깐보거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을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2. 권위주의(權威主義) 란?
내가 아버지라는 이름만 가지고 자녀를 학대(虐待)하거나 부인(婦人)을 학대하거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행동을 자행(恣行)하면서 내가 아버지인데, 남편인데 라는 권위를 남용(濫用)하는 것을 권위주의라 한다.
◉ <예수님께는 분명히 신적(神的)인 권위(權威)가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고, 그 행하시는 이적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나누어 주셨다.
◉ 예수님의 최종적인 권위는 우리의 창조주(요 1:3)요
구속주(救贖主)(롬 3:24)이신 그리스도께 속(屬)해 있다.
그분은 재판장이신 동시에 각 사람이 심판받게 될 절대적 표준이시다.
그분의 권위는 최종적인 권위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은,
그분이 권세 있는 자와 같이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마 7:29)
◉ 복음서(福音書)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적(神的)인 권위(權威)를 보게 된다.
①그분은 죄를 용서하셨고(막 2:10), ⑩
② 귀신을 쫓아내셨으며(막 3:15),
③ 사람들의 마음을 심판할 권세가 있음을 주장하셨고(요 2:24-25),
④ 또한 영생을 주셨다(요 10:28).
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상(地上)에서 행사하신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것이었다(요 17:2).
⑥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을 포함하여,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은 항상 하늘 아버지께 의존함으로,
아버지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요 5:19).
⑦ 그와 동시에 그분은 독자적인 권세를 가지셨다(마 28:18).
⑧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었으며(막 6:7),
⑨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수 있으시다.(요 5:27)
◉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
“그분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그분은 권세 있는 자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특징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든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과 대조가 되게 하였다.
랍비들은 마치 성경의 말씀들이 한 가지 사물이나
혹은 그와는 꼭 반대의 사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과 주저함으로 말하였다.
듣는 자들은 날마다 더욱 큰 불확실 가운데 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의 책으로 가르치셨다.
그분이 제시하시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분의 말씀은 전혀 논박할 수가 없는 그런 권세로 제시되었다.”(시대의 소망, 253)
◉ 예수께서는 창조주(創造主)와 구속주(救贖主)로서 최종적(最終的)인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그 분의 권세와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며,
또한 당신 자신이 독자적으로 가지신 권세(權勢)이다.
화(火) (2월 17일)
<기록(記錄)된 말씀의 권위(權威)(왕하 22:10-13)>
◉ 국가(國家)와 국가 간(國家間)에는 대사(大使)라는 직책이 있고 대사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영토내(領土內)에 미국 대사관이 있으면 그 건물은 미국의 영토와 같이 대한민국 사람이나 정부로부터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는 미국나라 영토(재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즉 그 권위가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例))
북한에서 탈북한 분들이 중국이나 제3국의 대사관으로 들어가면 그 나라 국가의 치외법권(治外法權)이 됨으로 그들을 붙잡아 갈수 없는 것이다.
이는 국가 간(國家間)의 권위(權威)를 존중하기 때문인 것이다.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대하는 두 부류의 태도(態度)가 있다.
<Ⅰ>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否定)하는 부류의 사람.
① 성경을 폄하(貶下)하거나
② 성경 말씀을 조롱(嘲弄)하거나
③ 무시하거나
④ 시대에 뒤떨어진 책으로 거부(拒否)하거나
⑤ 역사적 가치나 권위가 없는 것처럼 해석을 하는 행위
⑥ 성경을 불태우거나 훼손하는 행위와
⑦ 성경의 모순점과 의문을 지속적으로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제기하며,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
⑧ 성경의 진리를 하나님의 뜻이 아니 아전인수 격(我田引水格)으로 해석 유포하는 행위 등
<Ⅱ>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부류의 사람,
①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품성과 뜻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② 인간의 존재의미가 기록된 책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③ 각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도록 명료하게 진술되어 있는 말씀으로
즉 성경을 대하는 두 부류란 ?
1. 첫째부류는
성경의 모순점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말하며
2. 둘째부류는
마음에 진리와 의무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보는 사람들이다.
◉ 유다 왕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자 옷을 찢으며 말씀에 순응하여 우상을 제하고 산당(山堂)을 허는 대대적인 개혁을 일으켰으나, 유다 왕 여호야김은 말씀이 낭독될 때에 그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로 불에 던져 넣었다.
이 두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나타낸다.
◉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 있는 책으로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한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논쟁의 해답으로써 그리고 모든 신앙의 기초로써 제시되어야 한다.”(실물교훈, 39-40)
◉ “엘렌 G. 화잇”여사는 그녀의 일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높였다.
과학과 성경 사이의 논쟁에 관하여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들의 과학적 관념으로 시험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지식은 신뢰할 수 없는 안내자다.”(부조와 선지자, 114)
◉ 1909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총회에 참석했을 때,
마지막 설교를 마치면서 그녀는 펼쳐진 성경을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이 책을 여러분께 권하는 바입니다.”
(아서 L. 화잇, 엘렌 G. 화잇: 엠스헤이븐에서의 후년의 생애, 197)
◉ <성경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
“성경의 거죽만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피상적 지식을 가지고 심오한 성경 지식을 가졌노라고 생각하고는 성경의 모순점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진리와 의무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볼 것이다. 빛을 받은 영혼은 영적인 통일성을 보게 된다. 그것은 성경 전편을 꿰뚫고 있는 장중한 황금 실과 같은 것이지만 그 귀한 황금실을 추적해 내려면 인내와 생각과 기도가 필요하다.”
(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5)
◉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엘렌 G.화잇은 일생동안 성경을 높였다.
수(水) (2월 18일)
<선포(宣布)된 말씀의 권위(權威)(히 4:12)>
◉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救主)로 믿는 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라는 말씀이 우리를 주님께 인도 하고 있다.
또한 같은 책의 말씀에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證據)니”(히 11:1) 라고 선포된 말씀이 곧 하나님의 권위를 뒷받침하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은 곧 “혼(魂)과 영(靈)과 및 관절(關節)과 골수(骨髓)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鑑察)”한다.(히 4:12)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중한 어떤 범죄자도 도덕적인 법으로 사형에 처할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그의 영혼은 거듭나는” 경우가 바로 의사의 손에 들린 수술용 칼처럼 사람의 죄를 치유(治癒)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사람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과 능력이 있다.
반면에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는 그 말씀에 강력히 반발하여 그 말씀을 전달한 선지자를 죽이려하기도 했고, 또한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선지자의 말씀을 선포한 스데반을 죽이므로 사울(바울)을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로 스데반의 죽음으로 신약 성경의 절반이상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고 하나님의 사도로 열심을 냈던 사울(바울)과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를 일컬어서 “선포된 말씀의 권위”의 실례라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 말씀에 강력히 반발하여 그 말씀을 전달한 선지자를 죽이려 하기도 했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 반대의 경우로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또는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회개하기도 하였다.
◉ 교회내의 모든 사람들이 “엘렌 G. 화잇”의 권면을 받아들이므로 큰 유익을 얻었다.
(예(例))
1863년부터 1901년까지 교회의 조직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각자가 독자적으로 활동했고 유기적으로 일하는 대신 종종 경쟁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러나 대총회 전날 “엘렌 G. 화잇”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나서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에 의하여 교회의 운영에 대한 과감한 변화를 촉구했다.
이로 지도자들의 신속한 결정이 내릴 수 있었고 하나님의 권면에 의해 지시된 교회의 조직 개편에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으며 약간의 수정과 증보가 있었으나 그 조직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 <말씀에 귀를 기울임 >
“우리는 주님의 길을 알기 위하여 또한 종교적인 허위(虛僞)들에 속지 않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거짓된 이론들과 미혹적인 강신술의 견해들로 가득 차 있어 밝은 영적 식별력을 흐리게 하고 진리와 거룩함에서 떠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이때를 만난 우리는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 5:6)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69)
◉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뿐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를 지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화잇 여사를 통해 교회의 재조직을 지시하셨다.
목(木) (2월 19일)
<비정경 선지자들의 권위(權威)(눅 7:28)>
◉ 지금의 우리 교회에서 해마다 재직을 선출한다.
그러나 어느 장로님은 설교를 일 년 동안에 한번이상의 설교를 하지만, 어느 장로님은 일 년 동안 한 번의 설교를 하지 않는 분도 있다.
그러나 설교하신 장로님만 장로로 인정하고, 설교를 하지 않는 장로님을 장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없듯이
비록 정경(성경)을 문자로 기록 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똑 같은 선지자들의 권위를 갖는다.
◉ 교회법에 의하여 정전(正典)으로(성경의 기록에 없는 선지자들) 인정되지 않은 선지자들의 권위는 어떠한가?
성경에 선지자들로의 이름을 거명 되었지만 성경자체에 기록된 말씀이 없는 선지자들의 권위는 어떠할까?
즉 역대기에는 “갓, 나단, 아히야, 스마야, 잇도” 등의 선지자들은 성경(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에 의해 쓰인 최소한의 여섯 권의 책이 언급되어 있다.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하지만 정경을 기록 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정경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
◉.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견자 사무엘의 글, 선지자 나단의 글, 선견자 갓의 글,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 등이 언급되어 있다.
◉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예언을 하였고, 그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었다. 모든 선지자가 성경을 쓴 것이 아니며, 선지자들의 모든 글이 다 성경에 포함된 것도 아니다.
◉ 정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삶과 믿음의 규준으로서 그분의 섭리 하에 묶여진 책들의 수집본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의 모든 글이 성경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에 포함된 것보다 더 많은 영감 받은 편지들이 바울에 의해 쓰였다(고전 5:9, 골 4:16). 혹 그 편지들 중 하나가 발견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의 일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경 이외의 권위 있고 영감적인 서신으로 남게 될 것이다.
◉ 엘렌 화잇의 권위는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의 권위와 비견될 수 있다.
그녀가 받은 영감적인 기별은 정경에 추가되지 않는다.
그녀의 글들은 또 다른 성경이 아니다. 결국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 비정경 선지자들과 성경 시대 이후 선지자들의 유사성
“성경 시대 이후의 선지자들은, 나단, 갓, 아삽, 스마야, 아사랴, 엘리에셀, 아히야, 그리고 오벳, 미리암, 드보라, 훌다, 시므온, 침례자 요한, 아가보, 실라, 안나, 빌립의 네 딸 등 성경 시대에 살았지만 그들의 증언이 성경에 수록되지 않은 선지자들과 많은 면에서 유사한 기능을 행한다. 그들의 저술들이 성경에 수록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동일한 하나님이 이 남녀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그들의 기별은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와 모순되지 않는다.”(기본교리, 2007년, 313)
◉ 다음은 1982년에 대총회가 성경과 엘렌 G. 화잇의 글에 관해 진술한 내용의 일부이다.
<Ⅰ> 지지(긍정)
(1) 우리는 성경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영감 받은 책임을 믿는다.
(2) 성경의 정경은 오직 신구약 66권뿐임을 믿는다.
(3) 성경은 믿음의 기초이며 모든 교리와 경험에 관한 최종적인 권위임을 믿는다.
(4)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5) 예언의 은사가 신약시대 이후의 교회에서도 발견될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음을 믿는다.
(6) 엘렌 화잇의 사역과 글이 그녀의 예언적 은사를 입증해 준다고 믿는다.
(7) 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령의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의 글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기별임을 믿는다.
(8) 엘렌 화잇의 글의 목적은 우리의 영적인 생애와 성장을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믿는다.
(9) 엘렌 화잇의 예언적 은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성장과 연합에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다.
(10) 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경의 많은 기자들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했음을 믿는다.”
<Ⅱ> 부정(否定)(반대)
(1)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성경과는 질적으로 다른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2)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거룩한 정경에 추가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3) 엘렌 화잇의 글이 그리스도인 신앙에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 성경과 동등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4) 엘렌 화잇의 글이 모든 교리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5) 엘렌 화잇의 글을 연구하는 것으로 성경 연구를 대신해도 된다고 믿지 않는다.
(6) 성경은 오직 엘렌 화잇의 글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7) 엘렌 화잇의 글은 성경의 의미를 남김없이 해석해 준다고 믿지 않는다.
(8) 넓은 의미에서 엘렌 화잇의 글은 성경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9)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단순히 그리스도인 경건의 산물이라고 믿지 않는다.
(10) 엘렌 화잇이 문학적 자료를 인용하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은 것이 그녀의 글의 영감성을 무효화한다고 믿지 않는다.
※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글의 영감성과 권위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1) 그녀의 글을 성경 수준으로 취급하거나,
(2) 일반 신앙 서적처럼 간주해 버리는 양극단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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