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과 마태복음 10장: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조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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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쵸 작성일08-07-24 21:42 조회6,629회 댓글0건본문
제 5과 마태복음 10장: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
8월 2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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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disciple)란 일반적인 의미로 pupil(학생); follower(추종자); apprentice(실습생)의 뜻을 갖고 있다. 성경적은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며 배우며 행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다. 심층적 의미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12사도를 친히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는 말씀은 제자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으로 부터 들어야 하며 배워야 한다. 이 말씀은 제자도의 첫 걸음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출발되며 그 말씀을 마음에 두기 위하여 가르침을 받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듣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 제자의 임무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제자의 대상으로 삼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쳐 그 말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주의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구원 받을 사람들이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제자된 우리에게로 붙여주시기로 작정된 영혼들이 있으므로 전도는 어려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쉬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찔러보고 작정되었으면 그냥 데리고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주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다 맡기면서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이루어지는 전도는 쉬운 것이다.
기억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1).
연구범위: 레 25:8-54, 마 10장, 요 10:10.
중심 사상: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파송하시기 전에 몇 가지 지시사항을 주셨다. 그분의 말씀에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어떤 원칙들을 배울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셔서 당신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게 하는 것이 사역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고 계셨다. 이제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병을 고치는 일을 하기 위해 갈릴리 지방의 선교 여행을 떠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열두 제자들을 첫 번째 선교 여행에 내보내실 때가 이르렀음을 아셨다. 제자들은 선교사로서의 직접적인 경험을 갖게 될 것이었다.
제자들은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로부터 아주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우주를 이끄시는 원리의 산 모본을 보았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모델을 보았던 것이다.
제자들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 14:6)과 더불어 걸으며 함께 대화하였다. 마침내 제자들이 그 동안 배운 것들을 실습할 때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보내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특별한 지시사항을 주셨다.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교여행에 내보내실 때에 주신 말씀들을 탐구할 것이다.
일요일(7월 27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10:7)
도입)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읽을수록 가슴을 파고드는 멋진 시이다. 특히 제 3연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부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하는 대목이다. 천상병님의 “귀천”이라는 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100년도 안 되는 인생이 어찌 보면 소풍과도 같은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천상병 시인은 1930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경남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지만 1967년에 '동베를린(동백림)'사건'이라는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겪게 된다. 군사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당시에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짐작되기도 하는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서 천상병 시인의 이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갔던 중앙정보부에서, 그는 물고문과 전기 고문 끝에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박정희군사독재정권은 순수한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렸다. 평생을 고문 후유증과 자포자기한 음주벽으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던 천상병 시인은 43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오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2년 목순옥(睦順玉)여사와 결혼하여 비로소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 뒤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부인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의 삶을 보노라면 이 세상에서의 삶이 결코 소풍처럼 즐겁고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그러진 얼굴과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 여러분 같으면 어떠셨을 것 같은가? 하지만 그의 인생은 군사정권에 의해 그의 삶은 완전히 일그러졌지만 그에게는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하늘나라” 즉 “천국” 대한 소망이 있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셨던 설교이다. 주님께서 공생애 3년의 시간 동안 천국을 말씀하셨다. 4복음서 전부 하나님나라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천국은 결코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이미 천국의 삶은 시작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고난이 오고 아픔이 와도 이것은 100년도 안 되어 사라져버릴 잠시 잠깐의 소풍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이 그러한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그러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으셨다. 예수님 자신이 천국이시기에 제자들에게 천국의 삶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천국의 삶을 살다가 갔다. 여러분은 이러한 천국의 삶을 살고 계신가? 혹시 이 땅의 것들에 연연해서 이 땅의 것들에 미련이 남아서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우리의 생명이든지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1. 마태복음 10:7을 읽으십시오.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천국’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답:
왕국이란 왕의 통치 아래 있는 땅을 말한다. 하나님의 왕국 즉 천국에는 지리적 및 영적 영역이 포함된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2.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침례자 요한은 천국이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마 3:2). 신약은 분명히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약속된 왕으로 제시한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소망과 예언들을 성취하셔야만 했다(참조 눅 1:32-33).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적인 정치적 왕국을 세울 정치적 왕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주실 것을 기대하였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왕국은 그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로마가 패망할 때에 이르러 올 그런 왕국이 아니었다. 천국은 이제 임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그들을 구원과 하늘로 이끌어 줄 원칙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본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원칙들이 실생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왕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죄를 이기게 하시는 성령의 약속을 받았으며, 영생의 소망을 소유하게 되었다.
교훈: 제자들이 전파해야 했던 기별의 요지는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이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 이르러온 은혜의 왕국과 영광의 왕국을 일컫는 것이다.
부가적용)
마 12:28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천국이 가까이 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성령이 임재 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성령이 충만해지고 성령이 역사를 하면 성령 역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완전한 자로 준비하도록 만드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 것으로 임시만 바라보고 살던 자가 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목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육신을 위주로 목적하며 살던 자가 영을 목적으로 천국 목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임재를 해야 만이 진리의 영이 이렇게 살도록 역사를 한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성령의 진리의 사상이 들어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왔다고 하고 천국이 임하고 있다고 성경은 상징하고 있다. ‘천국이 임한다.’ 라고 하는 것은 세상살이로 염려 걱정을 가지고 살던 심령 속에 진리의 깨달음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심령에 좌정하시면 낙심하던 자가 기쁨이 되고, 매사에 짜증이 나고 부정적이던 자가 긍정적인 사람이 됨과 동시에 천국생활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천국은 앞으로 우리가 신령세계에 돌아갈 천국만 생각 하지 말라. 가정에도 천국이 있다. 심령의 천국이 있다. 교회의 천국, 사회의 천국이 있고, 이 땅에서 삶 속에, 생활 속에서 천국이 이루어져 가야 그것이 천국이 진정으로 임한 것이다. 세상을 추구하고 지향하던 자가 천국으로 돌이킨 자, 즉 이렇게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천국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월요일(7월 28일)
선교사를 위한 훈령(마 10장)
도입)
마 8, 9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질적인 권세를 보여 주신 주님은 마 10장에서는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셨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추수하는 일꾼'(9:38)들이다. 따라서 참된 제자도를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전도자로서 해야 할 일, 그 성취 방법, 각오, 장차 복음 전파와 함께 나타날 양상 등을 알아야 했다. 10장은 바로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겪게 될 모든 가능성과 대처 방법들을 다룬 그런 내용들이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선교사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장을 자세히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16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답:
2.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다 같이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나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9-10, 24절). 이 구절은 우리가 다른 문화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여야 할 것을 말해줍니까?
답:
3. 제자들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까?(8절)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능력을 갖지 않은 채 어떻게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전도할 수 있습니까?
답:
교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선교 현장으로 파송하시기 전에 그들이 이제 만나게 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중요한 원칙들을 말씀해 주셨다.
부가적용)
예수께서 선교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여 주셨는데 그런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도 방법(1-5절)
1) 대상 잃어버린 자
예수님은 전도 대상을 '이방인의 길로도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에게로'한정하신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제한이 아니다. 다만 '잃어버린 양'에 대한 관심 집중이다. 내 형제, 내 민족이 간과된 채 복음 전파가 확산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롬9:3). 특히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이야말로 복음의 집중적이고도 제1차적인 전파 대상이다.
2) 내용천국의 긴급 도래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라신다. 복음 전파에는 긴박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이다(고후6:2). 때를 지나면 후회와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3) 은사
대가없이 예수님은 병고치고 귀신 내쫓는 일을, '거져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신다. 은사는 우리의 공로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다. 따라서 조건을 걸고 은사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 대가를 바래서도 안 된다.
4) 재정
하나님 의존 아울러 주님은 금은을 몸에 지녀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물질의 풍요한 공급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6:33).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신다(왕상17:9). 그러므로 전도자는 합당한 자를 찾아 기거하고 거부하면 그곳에서 떠나면 된다. 신세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 집에 평안과 복을 빌어주어 그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하면 된다(왕상17:6).
2. 일사(一死)각오(16-33절)
1) 박해
채찍, 재판, 배신과 죽음 복음 전파란 양이 이리 떼 속으로 들어감과 같은 행동이다. 위험과 고난, 박해는 너무나 당연하다. 결코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벧전4:12). 우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와 같은 핍박을 받았다(5:12). 예수님도 채찍, 재판, 배신과 죽음을 당하셨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집 사람들이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을 수 없다(24절). 그러나 복음 전도자는 박해를 피해 가려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빠져나갈까 궁색한 답변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모든 답변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2) 대처
현명한 도피 예수께서는 박해를 끝까지 견디라고 하시면서도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현명한 도피를 적극 권하신다. 전도자는 양같이 순하고 깨끗해야 하지만 또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미련하게 고난을 다 받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도 지혜다. 바울은 숱한 박해를 당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도망하여 생명을 보전함과 아울러 새로운 개척지를 얻었다(행13:50,51;14:5-7). 예수님은 우리를 다른 선교지로 보내시고자 할 때 때로 박해를 사용하시기도 한다(행8:1). 박해를 못이겨 우리의 신앙이 변절되서는 안 되지만 현명한 방법으로 박해에서 벗어나는 것도 지혜이다. 모세도 도피의 경험이 있고(눅2:15), 엘리야도 경험이 있으며(왕상19:3), 심지어 아기 예수도 도피의 경험이 있다(2:13). 도피라고 다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3. 거부와 영접의 결과(34-42절)
1) 거부의 결과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 주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하신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검이 된다. 분쟁이 오고 다툼이 온다. 온화하던 가정이 불화한 가정으로 변한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은 거짓 평화를 파괴하고 드러내는 속성을 지닌다. 어디든 평화가 없는 곳에 예수의 평화를 심고야 만다. 예수님 자신이 가는 곳마다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요10:19).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곳마다 살의가 번득였다(요10:31,39).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으셨다.
2) 영접의 결과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셨다. 따라서 제자들은 영접함은 예수님을 영접함이요 예수님을 영접함은 하나님을 영접함이다. 아울러 거기에는 상당한 상급이 약속된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급을,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면 의인의 상급을 받는다. 또 하나 첨가된다.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 상도 적지는 않다. 참으로 기본적이다. 도대체 상급과 축복이 새어나갈 틈이 없다. 들어가도 나가도 떡 반죽 그릇까지 복을 받는 신명기적 축복과 유사하다(신28:1-14). 하나님의 종은 본래 축복의 근원이다(창12:2). 열두 제자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사도직에 임명된다. 아울러 그들은 복음전도자로서 해야 할 직무에 관해 교훈을 얻는다.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전달하는 자이다. 세상에는 복음에 갈급해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하고 공격적인 이들이 있다. 복음전도자는 먼저 복음에 갈급한 이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철저한 반대자도 만난다. 이때 그의 태도는 당당하면서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고난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아울러 반대자는 그 자신 자체를 뒷발질하는 어리석은 자다. 그에게 혼란과 다툼이 있을 뿐이다.
화요일(7월 29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마 10:5-6)
도입)
전도 파송을 받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대상은 이방 세계도 사마리아도 아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도 직접 전도한 사실로 볼 때(요4:5), 이 지시가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에게 전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파송 기간이 짧은 관계로 인한 복음 전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행13:46). 그리고 지리적으로 제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이라는 형용사 아폴로로타(ajpolwlovta)는 '잃어버리다, 죽이다. 없어지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폴뤼미(ajpovllumi)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잃어버린 양은 선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진리에서 떠나 방황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내 형제, 내 민족이 간과된 채 복음 전파가 확산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롬9:3). 특히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이야말로 복음의 집중적이고도 제1차적인 전파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 이방인에게로 가지 말고 유대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태복음 10:5-6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방인에게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져야 한단 말인가? 왜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 대답은 문화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사명을 수행하다가 위험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셨다. 엘렌 G. 화잇은 기록하기를, “만약 제자들이 먼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더라면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감화를 상실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기별을 들어야 할 첫 번째 부류였던 것이다”(애드벤트 리뷰 앤드 쎄베스 헤럴드, 1892년 4월 19일자). 어쩌면 이방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엘렌 G. 화잇은 암시한다. 그러면 제자들은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실망했을 것이다(참조 엘렌 G. 화잇, 영문 시조, 1900년 7월 18일).
오늘날 우리도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문화적인 관습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관습들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간과한다면 좋은 증인이 될 수 없다.
2. 요한복음 10:10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해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까?
답: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에 매우 민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제시할 더 건강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생활방식이 그들의 것보다 나음을 보여주자.
교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유대인에게 보내셨다. 만약 이방인에게 먼저 보내셨다면 이 둘 사이에 분명히 불필요한 긴장과 분쟁이 발생했을 것이다.
부가적용)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에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이란 구절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6)고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의 선교 명령의 반복으로서 예수께서 맡으신 사명이 어떠한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결코 유대인에게서만 영원히 국한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하는 요 4:22 말씀처럼 (1) 예수께서는 자신의 민족의 구원 문제를 일차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왜냐하면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의 전개는 하나님이 직접 작성하신 엄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도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10)고 하였다. (2) 유대인은 예수를 배척했어도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보여준다. (3) 예수께서는 당신이 주로 유대인 사역에 힘쓰시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전도할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셨는 바, 제자들은 예수의 뒤를 좇아 힘써 선교해야 할 것이다(요 10:16; 행 1:8). 한편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란 표현은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양'이라 표현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지어서(겔 34:6) 유래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그들의 참 목자 되신 예수를(요 10:11) 오히려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잃어버린 양'이 된 것이다.
수요일(7월 30일)
전인적인 사역(마 10:7-8)
도입)
전도는 전 인격을 포함한다. 먼저 머리에 호소한다.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서 전도를 해야 한다. 성경에 있으니까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전도는 또한 감정에 호소한다. 여자는 "가슴이 아퍼"라고 말하지만, 남자는 "머리가 아퍼"라고 말한다. 알파 코스를 실시한 어느 교회의 저녁 예배에서는 교우들이 스스로 간식을 준비하고, 간단한 식사까지 제공한다. 그렇게 되니까 불신자들과 교인들이 올 때 교회에 대한 분위기와 인식이 완전히 달라 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전도는 양심에도 호소하고 또 의지에도 호소한다. 따뜻한 관심과 강제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부담 없이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신약성서에 있는 전도의 모형들은 고전적이며 총체적이고, 또한 능력전도를 포함한다. 고전적인 전도는 말씀 중심이다. 기본이긴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론 부족하다. 총체적 전도는 사역을 통한 섬김을 중시한다. 지나친 경건주의와 초신령주의를 피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적 책임과 함께 사랑의 책임도 함께 주셨다. 그 다음에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는 능력 전도도 필요하다. 랄프 네이버는 "중국의 지하교회에서는 지금도 송장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위대한 신앙인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을 단순하게 믿는 사람을 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이 모든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시다.
1. 제자들의 사명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 외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습니까?(마 10:7-8)
답: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은 단지 영적인 부분과만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뿐 아니라,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도 돌보아야만 했다. 사람들을 위한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 구원과 영생이다. 하지만 그 목표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시련을 간과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는 이사야서를 읽으신 후에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참조 눅 4:18-19). 그분께서는 가난한 자들과 앞을 못 보는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과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도우실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또한 “주의 은혜의 해”(19절)를 전파하실 것이었다. 이는 희년(레 25:8-54)을 가리키신 것이었다. 희년은 매 50년마다 땅의 소유권이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때이다.
2. 레위기 25:8-54의 주요한 종교적 이슈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어떤 원칙을 가르치신 것입니까?
답:
엘렌 화잇이 말했듯이, “이 제도는 빈부의 두 극단적 차이가 생기는 일을 방지해 주었다”(교육, 43). 희년이 돌아오면 모든 종들은 해방되고 모든 빚은 탕감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균형 잡힌 봉사를 하도록 가르치셨다. 제자들은 천국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천국이 이미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육신적 및 사회적 필요를 포함한 전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함으로써 영생의 참된 약속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도와줄 수 있다.
교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사람들의 육신적․사회적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필요에 대해 눈을 뜨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부가적용)
우리 주님은 영육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왔을 때,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전하심으로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신 후에 또한 육의 양식도 채워주셨다. 그분의 우선적인 관심은, 우리가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데에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의 떡에만 연연해하는 무리들과(요 6: 26) 제자들(막 8: 17)을 책망하셨다. 하지만 주님은 결코 그들의 육신적인 필요나 고통도 외면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는, 영육간의 모든 필요를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목요일(7월 31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2)
도입)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1). 하나님께서는 흔한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 뿐 아니라, 제자들의 머리털 수효까지도 아신다. 그 만큼 세미한 것까지 간섭하시고 돌보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많은 참새(pollw'n strouqivwn;폴론 스트루디온) 보다 귀하다고 증언한다. 한 마리의 참새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가 따르는 데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 하심은 앞 절과 대조시켜 제자들에게(본문에서는 2인칭 주격 복수인 uJmei'") 용기와 보증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참새로 쓰인 스트루디온은 참새만이 아닌 '작은 새'에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다(눅12:6,7). 디아페레테(diafevrete)는 디아페로(diafevrw;∼보다 귀하다, ∼를 능가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세밀한 간섭을 밝히느라고 본문의 말씀을 하셨다. 실상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16:26)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주로 그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맞추어져 있다. 그들이 전파할 기별은 사랑과 바른 삶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저항하는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저항과 공격에 잘 대비하도록 권면하셨다.
1. 마태복음 10:22과 히브리서 10:35-36에는 우리를 위한 어떤 중요한 메시지가 주어져 있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러한 비난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라고 격려하셨다. 사도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말했다. 야고보는,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고 말했다.
2.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시험을 받습니까? 이러한 때를 믿음으로 통과하도록 어떻게 우리의 영적인 생애를 강화시킬 수 있을까요?
답: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증언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라(마 10:19)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통해 말씀하실 것이며, 그들에게 할 말을 주실 것이라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경고하신 사건들이 사도행전에서 무수히 많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베드로와 바울과 많은 다른 이들은 종종 고관들에게 끌려가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담대하게 그들의 믿음을 증거하였다.
교훈: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많은 반대와 저항을 만나겠지만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전진해야 한다.
부가적용)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전도에 힘썼던 리빙스턴은 “고난이 따르지 않는 전도란 그림자 없는 사람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 사람에게 그 그림자 다 있듯이 전도할 때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원래 가치 있는 일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일의 가치가 큰 것이다. 일반적으로 쉽게 되는 것은 가치가 적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사실 어려울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소명자들은 어려움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후퇴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행 14:46절에 보면 그러한 상황에서도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했다고 되어 있다. 소명자가 늘 간직해야할 것, 복음의 증인들이 늘 지녀야할 것, 바로 우리가 언제나 간직해야할 것은 담대함이다. 디모데 후서 1장 7절에서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두려움 없는 담대한 마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제자들은 그렇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특별히 그들이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을 여신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행 14:46절 끝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고백한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거기에서 좌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이방인 선교의 문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우리가 어려워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의 문이 막힐 때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문을 꼭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사방팔방 막힌 것 같아도 하나님은 홍해 길을 여셨다. 길이 없던 광야에서 길들이 열렸다.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있기에 길은 결국 열린다. 우리를 위해 또 다른 길을 여시고, 또 다른 문을 여시는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란다. 주님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복음의 문을 여셨다. 복음은 절대로 갇히지 않는다. 심지어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도 그 안에서 복음의 문이 열려서 바울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복음은 절대로 갇히지 않고, 복음의 문은 결코 닫히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친히 여시기 때문이다.
금요일(8월 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시대의 소망, 제37장 ‘최초의 복음 전도자들’(349-358).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보다 조금도 더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백성들이 그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의 종들을 가능한 한 고달프게 만드는 데 있어서 대원수를 조력하는 데 힘닿는 대로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그들은 중상과 거짓의 혀로 몹시 괴롭힐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고, 그들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은 악한 추측을 통해, 모든 것이 바르고 완전한 정직한 이들을 속이고 부정직한 이들로 몰아세울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종들을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거짓 고소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이 원하신다면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바치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전진해 나갈 것이다”(교회증언, 4권, 23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오늘날 우리의 선교 현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파송되었던 현장과 어떻게 다릅니까? 그리고 같은 점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은 현재 출석하는 지역교회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전도활동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주변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는 왜 충분치 않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복음 전파에만 힘쓰고 사람들의 실질적인 필요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약: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선교 현장으로 파송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주셨다. 그분께서 열거하신 원칙들은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이 원칙들을 따르는 데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8월 2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39분)
도입)
제자(disciple)란 일반적인 의미로 pupil(학생); follower(추종자); apprentice(실습생)의 뜻을 갖고 있다. 성경적은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며 배우며 행하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다. 심층적 의미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12사도를 친히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는 말씀은 제자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으로 부터 들어야 하며 배워야 한다. 이 말씀은 제자도의 첫 걸음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출발되며 그 말씀을 마음에 두기 위하여 가르침을 받는 과정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듣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 제자의 임무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사람들을 제자의 대상으로 삼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쳐 그 말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주의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구원 받을 사람들이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제자된 우리에게로 붙여주시기로 작정된 영혼들이 있으므로 전도는 어려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쉬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찔러보고 작정되었으면 그냥 데리고 나오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주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다 맡기면서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이루어지는 전도는 쉬운 것이다.
기억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1).
연구범위: 레 25:8-54, 마 10장, 요 10:10.
중심 사상: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파송하시기 전에 몇 가지 지시사항을 주셨다. 그분의 말씀에서 오늘날 우리를 위한 어떤 원칙들을 배울 수 있는가?
안식일 오후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훈련시키셔서 당신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게 하는 것이 사역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고 계셨다. 이제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병을 고치는 일을 하기 위해 갈릴리 지방의 선교 여행을 떠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열두 제자들을 첫 번째 선교 여행에 내보내실 때가 이르렀음을 아셨다. 제자들은 선교사로서의 직접적인 경험을 갖게 될 것이었다.
제자들은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로부터 아주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우주를 이끄시는 원리의 산 모본을 보았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모델을 보았던 것이다.
제자들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 14:6)과 더불어 걸으며 함께 대화하였다. 마침내 제자들이 그 동안 배운 것들을 실습할 때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내보내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특별한 지시사항을 주셨다.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교여행에 내보내실 때에 주신 말씀들을 탐구할 것이다.
일요일(7월 27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10:7)
도입)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읽을수록 가슴을 파고드는 멋진 시이다. 특히 제 3연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부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하는 대목이다. 천상병님의 “귀천”이라는 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100년도 안 되는 인생이 어찌 보면 소풍과도 같은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천상병 시인은 1930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경남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지만 1967년에 '동베를린(동백림)'사건'이라는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겪게 된다. 군사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당시에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짐작되기도 하는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서 천상병 시인의 이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갔던 중앙정보부에서, 그는 물고문과 전기 고문 끝에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박정희군사독재정권은 순수한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렸다. 평생을 고문 후유증과 자포자기한 음주벽으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던 천상병 시인은 43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오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2년 목순옥(睦順玉)여사와 결혼하여 비로소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 뒤 지병으로 죽기 전까지 부인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그의 삶을 보노라면 이 세상에서의 삶이 결코 소풍처럼 즐겁고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그러진 얼굴과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 여러분 같으면 어떠셨을 것 같은가? 하지만 그의 인생은 군사정권에 의해 그의 삶은 완전히 일그러졌지만 그에게는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하늘나라” 즉 “천국” 대한 소망이 있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셨던 설교이다. 주님께서 공생애 3년의 시간 동안 천국을 말씀하셨다. 4복음서 전부 하나님나라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천국은 결코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이미 천국의 삶은 시작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고난이 오고 아픔이 와도 이것은 100년도 안 되어 사라져버릴 잠시 잠깐의 소풍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이 그러한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그러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으셨다. 예수님 자신이 천국이시기에 제자들에게 천국의 삶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천국의 삶을 살다가 갔다. 여러분은 이러한 천국의 삶을 살고 계신가? 혹시 이 땅의 것들에 연연해서 이 땅의 것들에 미련이 남아서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언제든지 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우리의 생명이든지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서 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1. 마태복음 10:7을 읽으십시오.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천국’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답:
왕국이란 왕의 통치 아래 있는 땅을 말한다. 하나님의 왕국 즉 천국에는 지리적 및 영적 영역이 포함된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2.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침례자 요한은 천국이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마 3:2). 신약은 분명히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약속된 왕으로 제시한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소망과 예언들을 성취하셔야만 했다(참조 눅 1:32-33).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적인 정치적 왕국을 세울 정치적 왕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주실 것을 기대하였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왕국은 그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로마가 패망할 때에 이르러 올 그런 왕국이 아니었다. 천국은 이제 임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그들을 구원과 하늘로 이끌어 줄 원칙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본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원칙들이 실생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왕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죄를 이기게 하시는 성령의 약속을 받았으며, 영생의 소망을 소유하게 되었다.
교훈: 제자들이 전파해야 했던 기별의 요지는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이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 이르러온 은혜의 왕국과 영광의 왕국을 일컫는 것이다.
부가적용)
마 12:28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천국이 가까이 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성령이 임재 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가? 성령이 충만해지고 성령이 역사를 하면 성령 역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완전한 자로 준비하도록 만드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 것으로 임시만 바라보고 살던 자가 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목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육신을 위주로 목적하며 살던 자가 영을 목적으로 천국 목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임재를 해야 만이 진리의 영이 이렇게 살도록 역사를 한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성령의 진리의 사상이 들어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왔다고 하고 천국이 임하고 있다고 성경은 상징하고 있다. ‘천국이 임한다.’ 라고 하는 것은 세상살이로 염려 걱정을 가지고 살던 심령 속에 진리의 깨달음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심령에 좌정하시면 낙심하던 자가 기쁨이 되고, 매사에 짜증이 나고 부정적이던 자가 긍정적인 사람이 됨과 동시에 천국생활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천국은 앞으로 우리가 신령세계에 돌아갈 천국만 생각 하지 말라. 가정에도 천국이 있다. 심령의 천국이 있다. 교회의 천국, 사회의 천국이 있고, 이 땅에서 삶 속에, 생활 속에서 천국이 이루어져 가야 그것이 천국이 진정으로 임한 것이다. 세상을 추구하고 지향하던 자가 천국으로 돌이킨 자, 즉 이렇게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천국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월요일(7월 28일)
선교사를 위한 훈령(마 10장)
도입)
마 8, 9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질적인 권세를 보여 주신 주님은 마 10장에서는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셨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추수하는 일꾼'(9:38)들이다. 따라서 참된 제자도를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전도자로서 해야 할 일, 그 성취 방법, 각오, 장차 복음 전파와 함께 나타날 양상 등을 알아야 했다. 10장은 바로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겪게 될 모든 가능성과 대처 방법들을 다룬 그런 내용들이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선교사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장을 자세히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신 말씀(16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답:
2.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다 같이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나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9-10, 24절). 이 구절은 우리가 다른 문화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여야 할 것을 말해줍니까?
답:
3. 제자들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까?(8절)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능력을 갖지 않은 채 어떻게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전도할 수 있습니까?
답:
교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선교 현장으로 파송하시기 전에 그들이 이제 만나게 될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중요한 원칙들을 말씀해 주셨다.
부가적용)
예수께서 선교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과 방법을 제시하여 주셨는데 그런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도 방법(1-5절)
1) 대상 잃어버린 자
예수님은 전도 대상을 '이방인의 길로도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에게로'한정하신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제한이 아니다. 다만 '잃어버린 양'에 대한 관심 집중이다. 내 형제, 내 민족이 간과된 채 복음 전파가 확산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롬9:3). 특히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이야말로 복음의 집중적이고도 제1차적인 전파 대상이다.
2) 내용천국의 긴급 도래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하라신다. 복음 전파에는 긴박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이다(고후6:2). 때를 지나면 후회와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3) 은사
대가없이 예수님은 병고치고 귀신 내쫓는 일을, '거져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신다. 은사는 우리의 공로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다. 따라서 조건을 걸고 은사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 대가를 바래서도 안 된다.
4) 재정
하나님 의존 아울러 주님은 금은을 몸에 지녀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물질의 풍요한 공급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6:33).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신다(왕상17:9). 그러므로 전도자는 합당한 자를 찾아 기거하고 거부하면 그곳에서 떠나면 된다. 신세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 집에 평안과 복을 빌어주어 그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하면 된다(왕상17:6).
2. 일사(一死)각오(16-33절)
1) 박해
채찍, 재판, 배신과 죽음 복음 전파란 양이 이리 떼 속으로 들어감과 같은 행동이다. 위험과 고난, 박해는 너무나 당연하다. 결코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벧전4:12). 우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와 같은 핍박을 받았다(5:12). 예수님도 채찍, 재판, 배신과 죽음을 당하셨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집 사람들이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을 수 없다(24절). 그러나 복음 전도자는 박해를 피해 가려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빠져나갈까 궁색한 답변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모든 답변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2) 대처
현명한 도피 예수께서는 박해를 끝까지 견디라고 하시면서도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현명한 도피를 적극 권하신다. 전도자는 양같이 순하고 깨끗해야 하지만 또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미련하게 고난을 다 받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도 지혜다. 바울은 숱한 박해를 당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도망하여 생명을 보전함과 아울러 새로운 개척지를 얻었다(행13:50,51;14:5-7). 예수님은 우리를 다른 선교지로 보내시고자 할 때 때로 박해를 사용하시기도 한다(행8:1). 박해를 못이겨 우리의 신앙이 변절되서는 안 되지만 현명한 방법으로 박해에서 벗어나는 것도 지혜이다. 모세도 도피의 경험이 있고(눅2:15), 엘리야도 경험이 있으며(왕상19:3), 심지어 아기 예수도 도피의 경험이 있다(2:13). 도피라고 다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3. 거부와 영접의 결과(34-42절)
1) 거부의 결과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 주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하신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검이 된다. 분쟁이 오고 다툼이 온다. 온화하던 가정이 불화한 가정으로 변한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은 거짓 평화를 파괴하고 드러내는 속성을 지닌다. 어디든 평화가 없는 곳에 예수의 평화를 심고야 만다. 예수님 자신이 가는 곳마다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요10:19).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곳마다 살의가 번득였다(요10:31,39).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으셨다.
2) 영접의 결과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셨다. 따라서 제자들은 영접함은 예수님을 영접함이요 예수님을 영접함은 하나님을 영접함이다. 아울러 거기에는 상당한 상급이 약속된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급을,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하면 의인의 상급을 받는다. 또 하나 첨가된다.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면 그 상도 적지는 않다. 참으로 기본적이다. 도대체 상급과 축복이 새어나갈 틈이 없다. 들어가도 나가도 떡 반죽 그릇까지 복을 받는 신명기적 축복과 유사하다(신28:1-14). 하나님의 종은 본래 축복의 근원이다(창12:2). 열두 제자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사도직에 임명된다. 아울러 그들은 복음전도자로서 해야 할 직무에 관해 교훈을 얻는다.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전달하는 자이다. 세상에는 복음에 갈급해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부하고 공격적인 이들이 있다. 복음전도자는 먼저 복음에 갈급한 이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철저한 반대자도 만난다. 이때 그의 태도는 당당하면서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 고난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아울러 반대자는 그 자신 자체를 뒷발질하는 어리석은 자다. 그에게 혼란과 다툼이 있을 뿐이다.
화요일(7월 29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마 10:5-6)
도입)
전도 파송을 받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대상은 이방 세계도 사마리아도 아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도 직접 전도한 사실로 볼 때(요4:5), 이 지시가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에게 전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파송 기간이 짧은 관계로 인한 복음 전도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행13:46). 그리고 지리적으로 제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이라는 형용사 아폴로로타(ajpolwlovta)는 '잃어버리다, 죽이다. 없어지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폴뤼미(ajpovllumi)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잃어버린 양은 선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진리에서 떠나 방황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내 형제, 내 민족이 간과된 채 복음 전파가 확산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롬9:3). 특히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이야말로 복음의 집중적이고도 제1차적인 전파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 이방인에게로 가지 말고 유대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태복음 10:5-6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답: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보내실 때 이방인에게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져야 한단 말인가? 왜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 대답은 문화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사명을 수행하다가 위험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셨다. 엘렌 G. 화잇은 기록하기를, “만약 제자들이 먼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더라면 그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감화를 상실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기별을 들어야 할 첫 번째 부류였던 것이다”(애드벤트 리뷰 앤드 쎄베스 헤럴드, 1892년 4월 19일자). 어쩌면 이방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엘렌 G. 화잇은 암시한다. 그러면 제자들은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실망했을 것이다(참조 엘렌 G. 화잇, 영문 시조, 1900년 7월 18일).
오늘날 우리도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문화적인 관습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관습들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간과한다면 좋은 증인이 될 수 없다.
2. 요한복음 10:10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해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까?
답: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에 매우 민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제시할 더 건강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생활방식이 그들의 것보다 나음을 보여주자.
교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유대인에게 보내셨다. 만약 이방인에게 먼저 보내셨다면 이 둘 사이에 분명히 불필요한 긴장과 분쟁이 발생했을 것이다.
부가적용)
마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에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이란 구절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6)고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의 선교 명령의 반복으로서 예수께서 맡으신 사명이 어떠한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결코 유대인에게서만 영원히 국한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하는 요 4:22 말씀처럼 (1) 예수께서는 자신의 민족의 구원 문제를 일차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왜냐하면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의 전개는 하나님이 직접 작성하신 엄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도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10)고 하였다. (2) 유대인은 예수를 배척했어도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음을 보여준다. (3) 예수께서는 당신이 주로 유대인 사역에 힘쓰시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전도할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셨는 바, 제자들은 예수의 뒤를 좇아 힘써 선교해야 할 것이다(요 10:16; 행 1:8). 한편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란 표현은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양'이라 표현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지어서(겔 34:6) 유래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그들의 참 목자 되신 예수를(요 10:11) 오히려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잃어버린 양'이 된 것이다.
수요일(7월 30일)
전인적인 사역(마 10:7-8)
도입)
전도는 전 인격을 포함한다. 먼저 머리에 호소한다.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서 전도를 해야 한다. 성경에 있으니까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전도는 또한 감정에 호소한다. 여자는 "가슴이 아퍼"라고 말하지만, 남자는 "머리가 아퍼"라고 말한다. 알파 코스를 실시한 어느 교회의 저녁 예배에서는 교우들이 스스로 간식을 준비하고, 간단한 식사까지 제공한다. 그렇게 되니까 불신자들과 교인들이 올 때 교회에 대한 분위기와 인식이 완전히 달라 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전도는 양심에도 호소하고 또 의지에도 호소한다. 따뜻한 관심과 강제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부담 없이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신약성서에 있는 전도의 모형들은 고전적이며 총체적이고, 또한 능력전도를 포함한다. 고전적인 전도는 말씀 중심이다. 기본이긴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론 부족하다. 총체적 전도는 사역을 통한 섬김을 중시한다. 지나친 경건주의와 초신령주의를 피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적 책임과 함께 사랑의 책임도 함께 주셨다. 그 다음에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는 능력 전도도 필요하다. 랄프 네이버는 "중국의 지하교회에서는 지금도 송장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위대한 신앙인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을 단순하게 믿는 사람을 원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이 모든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시다.
1. 제자들의 사명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 외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습니까?(마 10:7-8)
답: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은 단지 영적인 부분과만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뿐 아니라,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도 돌보아야만 했다. 사람들을 위한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 구원과 영생이다. 하지만 그 목표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시련을 간과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하실 때, 그분께서는 이사야서를 읽으신 후에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참조 눅 4:18-19). 그분께서는 가난한 자들과 앞을 못 보는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과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도우실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또한 “주의 은혜의 해”(19절)를 전파하실 것이었다. 이는 희년(레 25:8-54)을 가리키신 것이었다. 희년은 매 50년마다 땅의 소유권이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때이다.
2. 레위기 25:8-54의 주요한 종교적 이슈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어떤 원칙을 가르치신 것입니까?
답:
엘렌 화잇이 말했듯이, “이 제도는 빈부의 두 극단적 차이가 생기는 일을 방지해 주었다”(교육, 43). 희년이 돌아오면 모든 종들은 해방되고 모든 빚은 탕감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균형 잡힌 봉사를 하도록 가르치셨다. 제자들은 천국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천국이 이미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육신적 및 사회적 필요를 포함한 전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함으로써 영생의 참된 약속을 향해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도와줄 수 있다.
교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사람들의 육신적․사회적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필요에 대해 눈을 뜨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부가적용)
우리 주님은 영육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왔을 때,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전하심으로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신 후에 또한 육의 양식도 채워주셨다. 그분의 우선적인 관심은, 우리가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데에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의 떡에만 연연해하는 무리들과(요 6: 26) 제자들(막 8: 17)을 책망하셨다. 하지만 주님은 결코 그들의 육신적인 필요나 고통도 외면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는, 영육간의 모든 필요를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목요일(7월 31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2)
도입)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1). 하나님께서는 흔한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 뿐 아니라, 제자들의 머리털 수효까지도 아신다. 그 만큼 세미한 것까지 간섭하시고 돌보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많은 참새(pollw'n strouqivwn;폴론 스트루디온) 보다 귀하다고 증언한다. 한 마리의 참새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가 따르는 데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 하심은 앞 절과 대조시켜 제자들에게(본문에서는 2인칭 주격 복수인 uJmei'") 용기와 보증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참새로 쓰인 스트루디온은 참새만이 아닌 '작은 새'에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다(눅12:6,7). 디아페레테(diafevrete)는 디아페로(diafevrw;∼보다 귀하다, ∼를 능가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세밀한 간섭을 밝히느라고 본문의 말씀을 하셨다. 실상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16:26)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주로 그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맞추어져 있다. 그들이 전파할 기별은 사랑과 바른 삶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저항하는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저항과 공격에 잘 대비하도록 권면하셨다.
1. 마태복음 10:22과 히브리서 10:35-36에는 우리를 위한 어떤 중요한 메시지가 주어져 있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러한 비난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하라고 격려하셨다. 사도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말했다. 야고보는,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고 말했다.
2.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시험을 받습니까? 이러한 때를 믿음으로 통과하도록 어떻게 우리의 영적인 생애를 강화시킬 수 있을까요?
답: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증언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라(마 10:19)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통해 말씀하실 것이며, 그들에게 할 말을 주실 것이라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예수께서 경고하신 사건들이 사도행전에서 무수히 많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베드로와 바울과 많은 다른 이들은 종종 고관들에게 끌려가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담대하게 그들의 믿음을 증거하였다.
교훈: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많은 반대와 저항을 만나겠지만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전진해야 한다.
부가적용)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전도에 힘썼던 리빙스턴은 “고난이 따르지 않는 전도란 그림자 없는 사람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 사람에게 그 그림자 다 있듯이 전도할 때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원래 가치 있는 일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일의 가치가 큰 것이다. 일반적으로 쉽게 되는 것은 가치가 적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사실 어려울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소명자들은 어려움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후퇴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행 14:46절에 보면 그러한 상황에서도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했다고 되어 있다. 소명자가 늘 간직해야할 것, 복음의 증인들이 늘 지녀야할 것, 바로 우리가 언제나 간직해야할 것은 담대함이다. 디모데 후서 1장 7절에서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두려움 없는 담대한 마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제자들은 그렇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특별히 그들이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을 여신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행 14:46절 끝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고백한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거기에서 좌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이방인 선교의 문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우리가 어려워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의 문이 막힐 때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문을 꼭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사방팔방 막힌 것 같아도 하나님은 홍해 길을 여셨다. 길이 없던 광야에서 길들이 열렸다.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있기에 길은 결국 열린다. 우리를 위해 또 다른 길을 여시고, 또 다른 문을 여시는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란다. 주님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복음의 문을 여셨다. 복음은 절대로 갇히지 않는다. 심지어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도 그 안에서 복음의 문이 열려서 바울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복음은 절대로 갇히지 않고, 복음의 문은 결코 닫히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친히 여시기 때문이다.
금요일(8월 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시대의 소망, 제37장 ‘최초의 복음 전도자들’(349-358).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보다 조금도 더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백성들이 그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의 종들을 가능한 한 고달프게 만드는 데 있어서 대원수를 조력하는 데 힘닿는 대로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그들은 중상과 거짓의 혀로 몹시 괴롭힐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고, 그들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은 악한 추측을 통해, 모든 것이 바르고 완전한 정직한 이들을 속이고 부정직한 이들로 몰아세울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종들을 인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거짓 고소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이 원하신다면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바치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전진해 나갈 것이다”(교회증언, 4권, 23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오늘날 우리의 선교 현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파송되었던 현장과 어떻게 다릅니까? 그리고 같은 점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은 현재 출석하는 지역교회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전도활동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주변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는 왜 충분치 않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복음 전파에만 힘쓰고 사람들의 실질적인 필요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약: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선교 현장으로 파송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주셨다. 그분께서 열거하신 원칙들은 모든 시대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이 원칙들을 따르는 데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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