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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민족들을 제자로 양성함(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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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2-27 02:19 조회8,9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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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32분

기억절 :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

연구범위: 사 56:6~8, 마 11:20~24, 요 12:20~32, 롬 15:12, 행 1:7~8.

그리스도의 기별은 태생적으로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목표로 삼았다.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특성 때문에 복음은 초기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물론 이런 복음의 개념은 제자들의 사고에 도전의식을 고취시켰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회심시키셨을 때, 그들의 첫 번째 반응은 이러한 도전을 예증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단지 유대인의 예언과 희망을 성취하기 위한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오해했고, 특히 만민을 아우르는 기별을 전했던 이사야의 예언을 간과했다. 만국의 소망이신 예수님은 한 민족에게 제한되실 수 없었다. 구원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국경, 국가 간의 분쟁, 언어의 차이 그리고 기타 난관들을 초월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교차 문화 전도법을 창안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계 14:6에서 이런 부르심을 발견한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유럽인, 아메리카인과 같은 구분은 필요 없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➋ 느끼기 : 사람을 나이와 민족, 경제수준과 종교로 분류하라는 요구를 거부한다.
➌ 행하기 :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다른 배경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교제한다.

A.
❷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많은 특권과 복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 그들을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❸ 우리 교회가 특별히 세계 선교에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마지막 자비의 복음, 곧 영원한 복음을 깨달은 교회는 우리교회 뿐이기 때문이다.
❹ 우리 교회가 이주민 선교 또는 해외 선교에 기여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먼저 그들의 현실적 필요를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

B.  
❷ 구원이 처음부터 유대인들만이 아닌 전 인류를 위한 것임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 구원의 복음은 아담에게 전해졌다. 또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너를 위하여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❸ 십자가 사건 전에 찾아온 그리스인(헬라인)의 방문은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 예수님의 구원사업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을 보시는 예가 되는 것이었다.
❹ 비유 속의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는 어떻게 민족의 경계를 넘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정신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결론: 만약 예수님이 자신들만 돌보시고 오직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재림하신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전 세계적인 기별을 가진 백성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계 14:6)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바라십니다.

첫째날(일) 3월2일
선지자들의 예언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미 4:2).

옛날 선지자들은 다른 민족들이 성경에 기초한 믿음으로 회심하리라는 사실을 예언하였다. 그들의 예언에 따르면 이방신, 이교예배, 파괴적 생활방식은 여호와에 대한 타협 없는 순종과 믿음에 의해 무너지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영적 지식에 목말라하며 예루살렘으로 몰려와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할 것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임무는 주변 민족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전 세계적인 초청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의 선교 열정은 세속적 관심사로 인해 경로를 이탈했다. 거대한 이상은 현실안주에 파묻혔다. 그리스도의 초림이 그러한 이상을 되살렸지만 그것을 이해한 사람은 소수였다.

1. 사 56:6~8, 미 4:1~2, 욘 3:7~10, 4:11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선교에 대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반면 이런 개념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해는 얼마나 제한적이었는가?
[사56:6~8]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8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미4:1,2]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욘3:7~10]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욘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답: 구약 선지자들을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에 이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계시해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뜻을 세상에 잘 펴야 한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빛이 되어야 했다. 만약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누리는 놀라운 특권을 보면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에 대하여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참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켰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 내부에만 초점을 맞춤으로 하나님이 그토록 자주 강조했던 더 큰 목적에 대한 관점을 상실하였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자하는가? 아니면 더 큰 목적을 잊은 채 내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려 하는가? 생각보다 우리는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외방 사업의 결과를 인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결코 실수가 없으신 우리 대장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전진하라 새 지역을 개척하라. 모든 땅에서 깃발을 높이 들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있도다.’ 우리의 구호는 ‘전진’, ‘계속 전진’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 앞에서 길을 준비한다. ‘지경 너머의 지역’에 대한 우리의 부담은 온 세상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때까지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교회증언 6권, 28~29).

<부가설명>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하셨다. 소금은 소금만으로 있으면 기능을 나타내지 못한다. 빛은 빛으로만 있어도 주위를 밝힌다. 성경은 세상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비유하였다. 그래서 빛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망에 매여 죽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밝혀서 영원한 생명의 맛을 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소금 기능을 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가까이 하면 영생으로 맛들어야 하고 세상의 빛이 되는 불을 받아 밝혀져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유대인의 빛이라고 하지 않았다. 창세기부터 성경은 범세계적인 기별을 계시하고 있다. 민족적 유대인은 이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고립되었고 단절되었으며 배타적이 되었다. 고난을 많이 당한 민족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도 고난을 당한 민족이다. 더구나 재림교회는 소수이고 사회적 힘이 없는 집단인 것 같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의 전철을 밟기 꼭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우리도 고립되고 배타적이 된다.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길을 깨닫고 따르도록 주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리도록 기도하고 굴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에게 여호와 신앙을 소개하는 열방의 빛이 되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내부에 집중하느라 더 중요한 목적을 상실하였다.


둘째날(월) 3월3일
화가 있으리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눅 4:27).

1. 마 11:20~24, 눅 4:25~30, 17:11~19, 요 10:16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는 어떤 중요한 기별이 있는가? 우리는 여기에 기록된 말씀을 어떻게 오늘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매우 유의해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마11:20~24]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눅4:25~30]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눅17: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요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답: 이스라엘 민족과 나라 밖의 인종들과 민족들에게 예수의 복음이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는 기별이 있다. 우리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누구에게든지 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구원은 혈통적으로 상속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동등하게 예수께 나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수많은 특권을 가진 자신의 친 백성이 깨어나 그들을 한 민족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진정한 부르심을 깨닫기 바라셨다. 그분은 그들이 비록 선택받은 백성들일지라도 구원이 선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바라셨다. 구원은 유전과 혈통에 의해 상속되지 않았다. 구원은 의식적인 선택이 있어야 받을 수 있었으며, 그러한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도 할 수 있었다.

스포츠 코치들은 종종 경쟁 학교나 팀과 자기 선수들을 비교함으로 분발을 촉구한다. “그들처럼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연습하다면, 너희도 성공할 수 있다.” 코치의 동기는 선수들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북돋고 열망을 불어넣으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일부 이방인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백성들도 풍성한 구원을 나누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이미 널리 알려진 교훈이었고 유대인들도 이해하는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취지의 설교는 유대인들의 귀에 거슬렸고, 어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수많은 영적 특권을 누린다. 이런 특권을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이 전부 하나님의 선물이며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가설명> 민족적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누리는 특권과 복을 이방에 나누어주고 함께 생명에 참여하도록 이방을 이끌어 들일 복의 기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특권이 오직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한정지었고 이방인들은 저주받은 백성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그들의 의식을 세계적인 사명으로 일깨우려고 애쓰셨다. 제자들에게 특히 그렇게 하셨다. 그래서 성령께서 임하시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예수의 생명의 복음이 전해지도록 명하셨다.(마28:19, 행1:8) 제자들은 그 사명을 잘 수행하였고 오늘날 우리들도 그 복음을 전해 받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그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아 참 된 구원에 이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교훈: 유대인들은 믿음을 선택한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빛을 전하는 일에 사용했어야 했다.


셋째날(화) 3월4일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요 12:20~21).

1. 요 12:20~3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복음의 보편성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요12:20~32]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답: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복음이 헬라 세계에도 전파될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헬라인들이 이미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는 증거가 되는 장면이다.

예루살렘은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이 있은 후였다. ‘호산나!’ 했던 외침은 어느새 의심으로 대체되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예수가 정말 왕관을 쓸까?’
유월절에 모인 군중 가운데는 그리스인 예배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빌립에게 한 말을 주목하라.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원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그분에 대해 알기 원했다. 이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기별이 세계적이며 보편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훌륭한 증거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정작 이와 같은 고백을 해야 했던 자들은 그분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그리스인들은 빌립의 그리스식 이름 때문에 그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빌립은 수산물 유통의 중심지요 다문화 사회였던 벳세다 출신으로서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이 즉시 그들을 접견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그분은 아마도 유대인을 위한 장소에서 예배하셨을 것이다.
그런 다음 바깥뜰에서 제자들과 그리스인 방문자들을 만나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남자나 여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만약 누구든지 그분을 따르기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 대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요 12:25을 보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이 외국인들은 아직 자리에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심판과 승리에 관한 긍정적인 기별이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예수님은 그 소리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자신의 죽음은 온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하셨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부가설명>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왔다.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서방에서 헬라인들이 찾아왔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봉사가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헬라인들이 찾아왔을 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들리시면 모든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땅에서 들리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만이 아니고 그가 승천하시는 것도 포함된 선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땅에서 들리셨고, 또 승천하심으로 땅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 하여 온 세상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고 계신다. 성령께서 그 일을 주도하시고 성도들은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으로 그 일에 헌신한다. 그 대상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이다. 차별이 없다.

교훈: 유월절에 예수님을 찾아온 그리스인들의 방문은 주님의 복음이 세계적이며 그분의 죽음이 온 인류를 위한 희생이 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넷째날(수) 3월5일
장벽을 허묾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요 7:35).

1. 요 7:35, 8:48, 눅 10:27~37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역과 인종과 기타 다른 장벽이 자리할 여지가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요7: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요8: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눅10:27~3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답: 그리스도인은 헬라인이다 사마리아인이나 유대인이나 상관없이 장벽을 허물고 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종교적 규율을 지키느라고 자비를 베풀고 인종의 장벽을 너머서 진리를 증거해야 하는 사명을 망각한 일에 대한 책망도 포함되어 있다.

예수님에 대한 지도자들의 경멸의 정도는 끝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앞장서서 그분과 그분의 기별을 받아들여야 할 자들이 그분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때,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멸시하였다. 자신이 영적인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강력하고 엄중한 교훈인가!
그리스도를 비난할 때에 그들은 그분에게 귀신 들린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그분을 조롱하면서 그리스 사람에게 자신의 민족과 종교 출신이 아닌 자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그리스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민족적 기원보다 품성을 강조하심으로써 이런 편견을 반박하셨다.
흥미롭게도 그분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효과적인 영적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실화를 드셨다. 말할 것도 없이 종교 지도자들은 부정과 정결에 대한 레위인 법의 왜곡된 이해에 막혀서 부상당한 사람을 지나쳤다. 무시당하는 외국인이었던 한 사마리아 사람은 민족적 편견을 억누르고 낯선 사람의 생명을 구하였다. 단지 우리 민족, 사회, 문화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내쫓고 멸시하는 모든 자에게 얼마나 따끔한 질책인가!

<부가설명> 사람들은 친숙한 사이가 편하게 느낀다. 그래서 같은 민족, 같은 인종,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끼리 쉽게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편견은 이런 상태보다고 더 경직되어 있어서 서로 가까이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유대인 더구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적 계율에 충실해야 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다. 다쳐서 피를 흘려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려하지 않는다. 종교의 규정이 인간의 생명을 경하게 여기게 만든 것이다. 우리도 이런 상태에 빠지기 아주 쉬운 처지에 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인의 사건을 비유로 사용하셔서 이런 사상을 깨뜨리셨다. 그리고 생명을 구하는 것은 그 상대가 어떤 부류에 속하든지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지적하시고 친히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은 생명을 얻게 하려는 정신으로 대하셨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의 생명의 가치가 동등한 것을 진정으로 인식할 때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하셨고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한 복음 봉사를 하신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유대인이 만든 민족적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인뿐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헬라인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미쳐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다섯째날(목) 3월6일
대사명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롬 15:12).

1. 롬 15:12, 행 1:7~8, 요 11:52~53, 마 28:19~20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의 핵심기별은 무엇인가? 그 기별은 계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가?
[롬15:12]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행1:7,8]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요11:52,53]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답: 온 세상으로 나가서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세 천사의 기별도 바로 같은 내용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사업은 영원한 복음 즉,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이 모든 민족과 나라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 전파될 때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정확한 때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성경은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천명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기고 승리를 선포하실 것이다.
예언에 따르면 만민이 이 기별을 받아드릴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위해 누가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바칠 것인가? 누가 복음의 확장을 가로막는 인종적, 민족적, 언어적 장애를 무너뜨리는 데 그리스도와 협력할 것인가? 누가 자신의 소유와 재산을 바칠 것인가? 누가 하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지상의 안락과 가족의 안위를 희생할 것인가? 이는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들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료 신자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서 그들의 삶을 바쳐 복음을 전파하고자 할 때에 활발한 활동을 단념시키는 인종적 고정관념과 문화적 편견 그리고 사탄이 만든 사회적 장벽들을 허용하는 신자들이 있다.
“우리의 선교 사업의 성공은 우리의 자아 부인과 자기희생의 노력에 완전히 비례한다. 복음의 기별이 밝고 바르게 전파되어 사업이 성취된 정도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다”(교회증언 6권, 28).
“새 지역을 개척하였고, 과감한 사업이 시작되었다. 진리의 씨앗은 뿌려졌고, 빛은 많은 이의 마음속에 전해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어떻게 품성이 형성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더 바른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 수천 명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역사하며 영혼을 순결케 하는 믿음을 부여받았다”(교회증언 6권, 28).

<부가설명>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원칙을 알고 있다. 민족과 인종과 국가와 빈부와 귀천에 대하여 차별 없이 대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을 교인된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말 차별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민족, 심지어 한 가족 사이에서도 차별이 있는 것이 인간의 상태이다. 우리는 인격과 지위와 귀천의 상태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어 있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 정직하다. 이런 우리의 상태를 시인하고 예수 안에서 이것이 극복되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생명의 가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생명은 왕의 생명이나 걸인의 생명이나 박사의 생명이나 문맹의 생명이나 어른의 생명이나 어린이의 생명이나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창조주께서 부여하신 것이다. 이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창조주의 하신 일을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이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에게 위탁된 세 천사의 기별은 영원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이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여섯째날(금) 3월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25~34, “대사명”, 35~46 “오순절”, <시대의 소망>, 621~626 “바깥뜰에서”, 497~505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읽어 보라.
“어떤 사마리아인이 여행 도중에 고통당하는 자가 있는 그 곳에 이르렀다. 그를 보자 그는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 낯선 사람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문제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누가 내 이웃이니이까”라는 질문은 영원한 답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이웃이 단순히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나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보이셨다. 그것은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계급의 구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다. 대적에게 상처받아 죽게 된 영혼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다. 하나님의 소유인 모든 사람은 다 우리의 이웃이다”(시대의 소망, 50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가 세계 선교를 위해 드리는 재정적 지원은 복음 전파 사명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 어느 정도임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우리가 단지 재정적인 지원에 그쳐서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현재 교회를 관리하기 위해 분배되는 자금을 다른 문화권의 선교 활동에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
※ 선교헌금은 복음전파 사명에 헌신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재정지원만이 아니고 기도로 지원하고 가능하면 선교지로 나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교회의 재정은 선교를 위하여 크게 할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잘 관리되어야 또 선교자금도 많이 드릴 수 있다. 교회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선교자금이 많이 드려질 분위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➋ “우리는 복음 사업이 주로 목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왕국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주셨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각 사람은 진지하고 사심 없는 일꾼이 되어 의의 원칙을 수호하고자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각 영혼은 하나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활발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는 데 있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6권, 427). 교과반에서 이 권면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업을 마치기 위해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 개인전도와 구역반, 또는 작음 그룹모임을 활용하는 것은 좋을 것이며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든지 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과 실천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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