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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권력자들을 제자로 양성함(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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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2-22 06:56 조회9,0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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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25분

기억절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연구범위: 롬 13:1~7, 막 2:23~28, 마 8:5~13, 마 26:57~68, 마 27:11~14, 행 4:1~12.
*매일 교과를 공부할 때에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칩시다.

“제자들은 그런 은혜가 필요할 때까지는 순교자의 용기와 꿋꿋함을 부여받지 못하였다. 그 후에 구주의 허락은 성취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증언하였을 때에 사람들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행 4:13)았다. 스데반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람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행 6:15, 10)였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가 가이사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한 것에 대해서 기록하는 가운데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딤후 4:16~17)라고 말한다”(시대의 소망, 354~355).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권력자들 앞에서 설 때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확신한다.
➋ 느끼기 : 과거에 성령께서 신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그분이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➌ 행하기 :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과 협력한다.

A.
❷ 예수님을 만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떤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 환영한 사람도 있고 거절한 사람 무관심한 사람 등등의 반응이다.
❸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요?
※ 자기의 직업을 통하여 권위에 대한 교훈을 배웠고 예수님의 치유하는 능력을 듣고 신의 권위를 가진 분을 믿었다.
❹ 인기와 지위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우리 같은 소수 교단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그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들도 복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생명을 얻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B.
❷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정치 또는 세속 정부의 권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 순복해야 한다.
❸ 권력의 박해 아래 재판을 받았던 예수님과 바울은 우리에게 어떤 모본을 남겼습니까?
※ 권력자들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임을 염두에 두신 자비로 그들을 대하였다.
❹ 앞에서 이야기했던 우호적인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 겸손과 온유와 친절로 접근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생명의 복음의 성질을 알 수 있도록 친교하는 기회를 만들면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론: 권력자들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방법은 다른 이들을 구원하셨던 방법과 같았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만나 동정하시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심으로 신뢰를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방법과 다른 지름길로 가려는 모든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첫째날(일) 2월23일
권위를 존중함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며 시민들이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이해하기 위해 씨름해왔다. 무엇이 통치자로 하여금 통치할 권한을 부여하는가? 어떤 정부가 최선의 형태인가? 백성들은 항상 정부에 복종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들은 우리가 오늘날까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1. 롬 13:1~7을 읽어 보라. 이 말씀 속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중요한 기별이 있는가? 한편 이 말씀과 그 교훈은 어떻게 남용될 수 있는가? 역사적으로 그러한 남용이 있었던 예는 무엇인가? 일반 기독교 역사뿐 아니라 재림교회의 역사에도 있었던 그러한 과오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롬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답: 사람이 처한 국가 공권력을 존중히 여기고 의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어떤 권력이든지 그 근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 구절로 교회와 국민을 압박하는데 남용할 위험이 있다. 역사적으로 정부가 종교를 탄압하는 일이 자행되었다. 재림교회의 지도자가 권력행사로 착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시정해야 하고 우리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처럼 철저히 섬기는 정신으로 봉사해야 한다.

억압과 잔인성은 예수님 시대의 로마 제국의 특징이었다. 로마 군대는 문명 국민들을 위협하고 굴복시킨 다음, 그들을 로마로 강제 이송하였다. 수십만 명이 재산을 빼앗기고 투옥되고 처형당했다. 로마가 세운 괴뢰정부는 필히 로마 정부보다 더 악랄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이러한 정부에 대항하는 어떤 반역도 지지하지 않았고, 심지어 납세 저항도 하지 않으셨다(눅 20:25). 예수님의 공적인 불복종 행위는 제사장들의 지위 남용에서 느끼셨던 혐오감을 표현하기 위해 환전상의 탁자를 한 번 뒤집은 것이 전부였다. 그 자체로는 로마에 반항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인간 정부를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로 인정하며 그것에 대한 순종을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신성한 의무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이 하나님의 주장과 상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인간의 법률보다 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 교회나 국가가 말하였다는 것 때문에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교회증언 6권, 402).

<부가설명> 정부는 민족들의 통일과 질서를 위하여 필요하다. 동물이나 곤충의 세계에도 두목이 있고 질서가 있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람의 세계에도 조직이 있고 지도자가 있어서 통솔하고 질서를 유지하면 전체의 평안과 안전과 발전을 위하여 봉사하는 제도는 당연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도 통치자로 계시라고 그분이 통치하는 것은 나라로 나타낸다. 당연히 하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사60:17) 삼는 나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죄가 주장하는 곳이 되어 통치는 필요악이 된 상태이다. 그럴지라도 이 세상이 있는 한 통치는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통치 질서를 잘 순응해야 한다. 다만 국가의 법과 지시가 성경과 충돌될 때에는 단호히 성경을 순복해야 한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중세 교회가 세속적 권력을 잡고 교회를 통치하면서 교회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교권을 휘둘렀다. 카톨릭에는 아직도 그런 통치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개혁한 교회도 교권주의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재림교회의 목회자들도 다른 교단의 그런 모습을 은근히 배우고 있지 않는지 심히 우려된다.

교훈: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뜻을 벗어나지 않는 한 세속적인 정부에 복종해야 함을 가르친다. 예수님도 친히 그런 모본을 보이셨다.


둘째날(월) 2월24일
“읽어보지 못하였는가?”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마 12:1~3).

불행히도 예수님이 상대하셨던 권력자와 큰 영향력을 가진 자들 중에 일부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그분에게 공공연한 적대감을 표출하였다.
그러나 그들과 대면하는 중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셨다. 그분은 논쟁을 원치 않으셨다. 대신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셨기에 그분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권세가와 영향력 있는 인물들까지 구원하기 원하셨다.

1. 막 2:23~28, 3:1~6, 마 12:1~16을 읽어 보라. 그들의 공공연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그들을 구원하려고 노력하셨던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닫히지 않았다면 감동을 받을 만한 어떤 말씀을 주셨는가?
[막2:23~28]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3:1~6]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마12:1~16]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9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답: 당시 민중들에게 인기가 있고 존경받는 사람들인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종교적 이유를 들어 맹렬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구약의 말씀을 제시하시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타이르듯이 이야기하셨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을 감동시킬 성경과 심지어 거룩한 역사와 자료들을 언급하셨다. 예수님은 자신과 그들 사이에서 공감할 수 있는 영역에 호소하셨다. 예를 들면, 제사보다 자비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성경을 인용하셨다. 그렇게 해서 그분은 그 지도자들이 그토록 열렬히 높이며 소중히 여기는 율법의 더 깊은 의미로 그들을 인도하고자 하셨다.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가축을 건지는 일에 관한 대화에서 예수님은 그들도 강조해야 했던 친절과 관대함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에 호소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 때문에 그런 사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은 그들 가운데 계셨던 비범한 분에 대하여 이 영향력 많은 지도자들에게 제시된 매우 큰 증거였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종교 지도자들이 진리를 거부하고 완고하게 행했던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에게서 오는 빛을 거부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생각보다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가설명> 종교가 도덕적 행위에 치우치거나 율법의 조문에 치우치면 진리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박제(剝製)가 되기 쉽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런 현상에 빠졌다. 그들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눅6:35) 그런데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모세 율법의 핵심인 실제적 의미를 모르고 문자에 매여 율법의 의미 자체이신 예수님의 행하시는 것을 비난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의 참 뜻을 깨닫게 하려고 애를 쓰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예수님은 이런 말씀들로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성경의 참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애쓰셨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내용이다. 재림성도들도 이런 경향이 강하지 않는가? 특별히 경건히 살려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훈: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많은 반대를 받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끈질기게 그들을 설득하고 구원하고자 노력하셨다.


셋째날(화) 2월25일
백부장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

물론 예수님과 권력자들의 조우가 험악하게 끝난 몇 번의 예도 있지만, 니고데모같이 주목할 만한 예외의 경우도 있었고, 로마 백부장과의 건설적인 만남도 있었다.  

1. 마 8:5~13, 눅 7:1~1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던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마8:5~13]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눅7:1~10]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답: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 중에 진리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백부장은 몇 친구들을 보내 예수님이 오시지 못하도록 만류하였다. 유대인들의 예배와 예수님의 영성을 매우 존중한 탓에 그는 예수님의 개인적인 관심을 받기에 부족함을 느꼈다. 급기야 예수님이 도착하기 직전에 어렵사리 그분께 나아와 상황을 설명 드리고, 예수님의 선언만으로 하인이 회복되리라는 믿음을 나타내었다. 군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권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관에게 복종했고, 그의 부하들도 자신의 명령에 복종했다. 훨씬 많은 영적 혜택을 누리는 자들도 예수님을 배척하는 때에 힘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그토록 진지한 믿음을 보이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런 면에서 정직한 자기 검증이 유익하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한 상태에서 자신이 살아 있는 신앙을 경험하기보다 단지 좋은 교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아직 훈련이 덜 된 새 신자가 신앙 안에서 자란 자들보다 더 깊은 믿음을 나타낸 적이 있는가? 우리의 영적 특권이 자기 신뢰를 위해 사용되지는 않는가? 영적인 기회가 알게 모르게 줄어들지는 않는가? 위 질문에 예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누구든지 백부장과 같은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지위가 높은 자들을 전도하는 이들에게 힘이 된다. 이 세상에는 21세기의 백부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을 깨우고 강화시키기를 바란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이방인 백부장의 태도를 보시고 기이히 여기시면 그 믿음을 칭찬하셨다. 그러면서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1,12)고 하셨다. 이것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재림성도들이 구원의 기득권이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구원은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진정으로 모셔야 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이 되어서,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께서 자신 안에서 사시는 그대로 실생활이 이루어지도록 예수께 전적으로 맡겨버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자기 스스로 주관하려고 한다. 아직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깊이 반성하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경험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예수님께 하인을 치료해 달라고 요청했던 로마 백부장은 유대 백성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을 나타냈다.


넷째날(수) 2월26일
재판 받으시던 날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1. 마 26:57~68, 27:11~14, 눅 23:1~12, 요 18:19~23, 31~40, 19:8~12을 읽어 보라. 이러한 고관들에게 증언하는 예수님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마26:57~68] 예수를 잡은 자들이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 하되 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66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마27:11~14]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눅23:1~12]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5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6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11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요18:19~23, 31~40]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요19:8~12]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답: 첫째는 위축되지 않으셨다. 증거할 말은 논리적으로 다 하셨다. 그러나 그들을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실은 그대로 밝히 말씀하셨다.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자들은 위축되지 않는 충실함의 고통스런 대가를 엿본다. 체포에서 십자가까지 예수님은 그 땅에서 가장 권세 있는 군주와 관원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증언하셨다. 예수님은 세속적 권위에 도취된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셨다. 겉보기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지배하였다. 군사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의 궁극적인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분을 법정과 의회와 궁전으로 그리고 다시 재판정으로 끌고 다녔다. 그분에 대하여 어떤 형을 선고하든지 결국 그들이 내린 판결은 그들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를 삼기 위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지만, 때로 그 결과는 그분이 바라시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빌라도, 가야바, 헤롯, 그 밖의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회개했다면 예수님이 매우 기뻐하셨을 것이다. 완고하게 그분의 간청을 거부하더니, 그들은 마지막 구원의 초청마저 냉담하게 비껴갔다.
마찬가지로 21세기의 신자들도 복음을 전할 때 그 결과가 바라고 기도했던 것과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의 노력에 언제나 큰 성공이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들을 낙담시키거나 계속적인 전도활동을 금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제자는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충성할지언정 충성하다 실망하지 않는다. 듣는 이에게 결심을 호소할 때 알곡과 쭉정이가 나뉜다. 우리에게 알곡은 기쁨을 주고 쭉정이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래도 추수는 계속되어야 한다.
권력자들 앞에 제시한 예수님의 증언은 성공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행 6:7에 따르면 이후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였다. 그 최후의 순간에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그 기별을 경청했던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법정에서도 그를 심문하고 조롱하는 자들 중에서 훗날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자기를 고소하는 자들이나 조롱하는 자들을 저주하거나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분에 대하여 물을 때에는 정확하게 대답하셨다. 빌라도에게는 우회적인 표현을 쓰셨지만 가야바에게는 직설적으로 대답하셨다. 가야바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시고 재림하시는 것을 그들이 볼 것이라고 증거하셨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요8:53,54; 딤후2:13) 예수께서는 평소에나 심문을 받으실 때나 항상 신실한 정신과 태도를 고수하셨다. 우리도 그런 정신과 태도로 생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제자들을 통하여 진리가 증거될 때에 법정에서나 평소 예수님을 공격하는 자리에 있었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고 많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교훈: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했던 결과는 그분에게 큰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했던 그분의 증언과 태도는 후에 큰 결실을 거두었다.


다섯째날(목) 2월27일
초기의 폭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1~12).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문명세계 곳곳에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가정, 회당, 경기장, 재판정, 왕궁이 천국을 선포하는 무대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구금과 핍박 그리고 적대적인 왕족들이 기다린다고 예언하셨다(마 10:16~20). 불행히도 세속 권력에 취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 가장 더뎠다.

행 4:1~12, 13:5~12, 50, 23:1~6, 25:23~26:28을 읽어 보라.
4:1~12 베드로와 요한이 잡혀가는 내용이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믿는 자가 많다고 하였다. 13:5~12 바보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이 믿음. 23:1~6은 바울이 공회에서 증거하는 내용이다. 25:23~28은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증거하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은 수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회심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극적인 결과는 보이지 않는 여러 상황에서 비롯된 가시적 산물이다. 추수를 하려면 씨를 뿌려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의 제자들도 유대 지역 곳곳에 복음을 전하였다. 최초의 회심자들도 복음을 전달하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을 때, 그분의 기별을 확신하고 수천 명의 방관자들이 그의 나라에 가담하였다. 그들은 그분을 은밀히 추종하면서 마음속으로 그분의 초청에 응하였다. 문화적 요인, 직업의 안정, 가족의 압박 등이 그들의 분명한 반응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결심을 촉구하였다.
그다음 사도 바울이 등장한다. 하지만 권력자들을 향한 그의 증언은 널리 인정을 받지 못했다. 유명한 자들은 그를 핍박하거나 내쫓았다. 그는 돌에 맞고 폭행을 당하며 투옥되었고 때로는 권력자들의 선동에 학대를 당하였다. 그들의 반기독교 정서의 바탕에는 종종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
벨릭스 총독은 종교적으로 바울의 반대편을 달래기 위해 그를 투옥하였다. 그의 후임자 베스도는 그나마 공정하였지만 바울을 석방시키려는 정치적 의지는 약했다. 그는 아그립바왕과 그의 여동생 버니게(헤롯 왕조의 후계자들)의 공식 방문 기간에 바울을 심문하도록 그들에게 요청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 이전의 조상들처럼 그들은 구원의 초청을 거절하였다. 비록 유사한 반대와 박해를 당할지라도 21세기에 사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와 같이 굴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부가설명>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는지 우리는 모른다. 권력자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주라는 사실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몫을 다하면 된다. 나머지는 성령께서 하실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기가 전도해서 신앙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소개할 때가 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또 사실이 아니다. 그를 전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성령이시고 전도자는 성령의 일의 지팡이 노릇을 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팡이 노릇 잘 했다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다 예수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롬9:28) 아멘.

교훈: 초기 신자들은 예수님이 뿌려 놓은 복음의 씨로 말미암아 큰 결실을 거두기도 했지만 권력자들은 복음을 거절하고 박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섯째날(금) 2월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315~318 “백부장”, 698~715 “안나스 앞과 가야바의 궁전에서”, 723~740 “빌라도의 법정에서”, <치료봉사>, 209~216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 <사도행적>, 433~438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를 읽어 보라.

“부유하게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은 우연한 접촉이나 뜻밖의 만남으로 그리스도께 인도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때때로 가장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선교 정신으로 무장된 남녀들, 실패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사람들에 의하여 개인적 노력이 주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상류계급의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기에 적합하다”(치료봉사, 21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예수께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다른 이들이 지켜봤습니다. 그중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제사장 계급의 학식 있는 많은 사람이 점점 믿음으로 나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종교 지도자들과 대면하는 모습을 목격한 행인들도 마찬가지로 믿음을 얻었습니다. 화산 활동은 보통 산악 지각 아래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강도를 시각적으로 계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화산 활동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계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운동의 폭발적인 잠재력은 그분의 초기 봉사 기간에는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에 그 나라가 분출하였고, 심지어 영향력 있는 지위를 가진 자들을 포함하여 대규모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착실한 파종이 결국 풍성한 수확을 가져왔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기대하는 만큼 효과적이지 못할 때 어떤 교훈을 가르쳐줍니까? 특히 힘 있는 사회 지도층에게 복음을 전할 때 실망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  예수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인내로 실망하지 말고 증거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겸손하게 일하면 마침내 열매를 거둘 것이다.

➋ 엘렌 G. 화잇은 위 인용문에서 어떤 사람은 상류층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요? 한편 자격이 부족하다는 우리의 판단에 따라 어떤 사람을 제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선교 정신으로 무장된 남녀들, 실패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사람들에 의하여 개인적 노력이 주어져야 한다.” 쉽게 낙담하지 않는 끈기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누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의 일을 제한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뢰해야 한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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