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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부자와 유명인사(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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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2-14 06:42 조회8,701회 댓글0건

본문

2월 22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18분

기억절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연구범위: 신 8:17~18, 창 13:5~6, 요 3:1~15, 눅 19:1~10, 막 4:18~19, 마 19:16~26.

‘사람들은 그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러,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는 것을 위해, 그들에게 없는 돈을 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돈이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개인의 지출 경향은 그 사람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그래서 재물은 사실상 영적인 문제이다. 성경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재물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또한 명예가 있는 곳에 부가 따른다. 영화배우, 유명 운동선수, 정치가들은 대개 둘을 모두 가지고 있다. 유명인은 권력의 한 형태로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감동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동기로 구원하고자 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종류의 부를 소유하기 바라셨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세속적 부는 평범한 사람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시험거리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하나님은 부자든 보통 사람이든 동일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➌ 행하기 :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사회적 지위가 있든지 없든지 표면적 삶에 가려져 있는 인생의 필요는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A.
❷ 그대 생각에 예수님은 부자들을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 예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한 구원의 대상을 대하셨다.
❸ 젊은 부자 관원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 영생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만 있다는 것과 재물에 치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❹ 어떻게 하면 돈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영적 필요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 돈은 도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도우고,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님을 깨우쳐주고 그것은 인생이 죽음을 맞을 때 본인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도와야 할 것이다.

B.
❷ 니고데모나 삭개오의 예를 보면 부자나 유명인들의 영적 필요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영생에 대한 것이다.
❸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부와 재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알아야 한다.
❹ 주변에 주님께 인도하기를 원하는 부자 또는 유명인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온유와 겸손과 친절과 예의 바름으로 접근하고 친교를 터는 것이 첫 단계일 것이다.

결론: 우리가 예수님의 모본을 따른다면 우리는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또는 중요하든지 평범하든지 상관없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날(일) 2월16일
풍요의 복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 8:18).

타락한 인류는 자기보다 돈이 더 많은 자들을 시기하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이미 얼마나 많은 돈이 있는지 상관없다.) 그러나 성경은 부 또는 부자를 무조건적으로 폄하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문제는 물질 그 자체에 있기보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

1. 성경은 부에 대하여 어떤 조언을 하는가?(신 8:17~18, 창 13:5~6, 41:41~43, 욥1:1~3, 단 4:28~31)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서 복이 오는지 잊지 말아야 했다. 왜 이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신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창13:5,6]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창41:41~43]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욥1:1~3]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단4:28~31]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30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답: 재물을 얻을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부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과 같은 마음으로 부를 소유할 때 죄가 될 수 있다.

물론 아브라함, 요셉, 모르드개, 에스더, 히스기야, 요시아, 여호사밧 같은 인물들은 부자이면서 영적이었다. 반면 느부갓네살 왕의 예는 부를 우상으로 삼을 때 이르러 오는 위험을 보여준다. 오늘날 누구든지 그렇게 되기 쉽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부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관대함에 감사할 때 영적, 물질적 복을 함께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복이 어디서 오는지 잊지 말도록 경고를 받았다. 다시 말하자면 부 자체는 영적 가난이나 무관심을 가리키지 않는다. 부자 중에는 매우 경건하고 신실한 자들도 있고 상당히 못되고 악한 자들도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돈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부자들을 경멸해서도 안 된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이 필요한 자들이다.

<부가설명> 재물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을 가진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재물은 복도 되고 화도 되고, 유익도 되고 해도 된다. 재물은 도구(道具)이다. 이 말은 여러 번 한 것 같다. 재물을 소유로 여기면 유익이 없다. 그것은 생활의 편리를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이다. 재물을 도구 이상으로 여기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고의 정신으로 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물을 생활의 편리와 안락을 위한 도구로 여긴다면 자기에게도 유익하고 주위에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 있는 생활의 편의를 위하여 가지고 있는 도구처럼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어서 사용하여 함께 편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소유로 생각하고 독점하여 자기만 편리하고 주위의 필요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예수님은 부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들을 진리를 받아들여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를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이끄셨다. 니고데모, 삭개오, 바나바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교훈: 성경의 많은 인물이 부자였으며 예수님도 부자를 멸시하지 않고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셨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를 우상으로 섬길 때 문제가 된다.


둘째날(월) 2월17일
늦은 밤의 만남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3~4).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유명인들은 예수님을 위협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사회적 지도층에게 분개하지도 그들을 동경하지도 않으셨다. 구주는 재정적 풍요가 평화와 만족, 의미 있는 관계와 심오한 목적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셨다. 가장 돈이 많은 거물은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외롭고, 공허하며, 분노하기 쉽다.

1.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분석해 보라(요 3:1~15). 어떤 사건이 니고데모로 하여금 예수님의 기별에 관심을 갖도록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는가?(요 2:13~25) 어두운 밤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니고데모에게 주신 예수님의 핵심 기별은 무엇인가?
[요3:1~15]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2:13~2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답: 밤에 예수님을 찾은 것은 그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는 아직 명성이 드러나기 전의 젊은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밤은 주위의 눈길을 피하는데 알맞았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도리를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제시하시고 예수님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근본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거듭남은 구약성경에 계시된 사실임을 암시하셨고, 예수께서 들리시는 사건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목격하고 은밀하게 그분을 만나기를 원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은밀한 접근을 거부하실 수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멸망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기 때문에 니고데모가 하나님의 나라에 한 발 더 가깝게 나아올 수 있도록 기꺼이 기회를 허락하셨다. 니고데모의 가난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었다. 세상의 사물은 풍족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었지만 그는 영적으로 굶주려 있었다.
니고데모는 자신과 같은 학식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나야 한다는 제안을 본능적으로 거부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심판과 구원 사이의 영원한 선택을 끈질기게 제시하셨다. 비난과 멸시가 두려워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하였다. 담화는 분명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영적인 씨앗이 뿌려져 그의 마음 밭에 서서히 싹을 틔웠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졌을 때에 니고데모는 담대하게 전면에 나섰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면 소멸될 것으로 예기하였던 어린 교회를 받들기 위하여 자기의 재물을 사용하였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그렇게도 조심스럽고 의심이 많던 그는 바위처럼 굳세게 서서 제자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복음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재물을 공급하였다”(시대의 소망, 177).

<부가설명> 이 세상은 지나가는 세상이고 아무리 많은 부를 가졌더라도 호흡이 끊어지면 그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 자손들에게 분배가 공평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면 자녀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불씨를 만들고 자녀들의 우애가 박살이 난다. 소유는 영생하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죽는 사람에게 진정한 소유는 없다.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유를 원하면 영생의 생명을 얻어야 하고 그것은 예수를 믿고 거듭남으로 얻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재물과 기타 소유물은 영생의 생명을 얻게 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면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여 거듭나게 된 사람들을 하늘에서 만나게 되면 영원한 소유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니고데모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셨다.

교훈: 물질적인 부자들은 영적으로 가난하기 쉽다. 예수님은 돈과 명예를 가진 니고데모의 영적 굶주림을 보시고 그에게 거듭남의 길을 제시하셨다.


셋째날(화) 2월18일
부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눅 19:5).

부자라고 항상 존경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근면과 성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으로 말미암아 부를 얻지만, 노골적인 사기꾼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합법적이지만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돈을 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모든 비도덕적인 방법이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1. 마 9:10~13과 눅 5:27~32, 19:1~10을 비교해 보라. 무슨 이유로 예수님은 비난을 받으셨는가? 그런 비난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은혜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는가?
[마9:10~13]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눅5:27~32]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19:1~1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답: 예수께서는 세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교제하며 잡수시는 것으로 비난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언하셨다. 죄인은 누구든지 예수께 나아갈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엄청난 은혜이다.

삭개오의 거주지였던 여리고는 중요한 상업의 중심지로 헤롯 궁전이 있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여리고에는 세관 출장소가 있었다. 삭개오는 지역의 세관장으로서 합법적으로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에 따르면 탐심은 그로 하여금 합법적인 울타리를 넘도록 유혹했던 것으로 보인다. 열성적인 애국자들은 정직한 세리조차 경멸하며 로마 압제의 도구로 여겼다. 하물며 삭개오와 같이 정직하지 못한 세리는 극도로 혐오하였다. 마태(레위)도 가버나움에서 헤롯 안디바 휘하의 비슷한 지위에 있었다. 본질적으로 로마 정부의 앞잡이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배신자, 최악에는 탐욕스런 변절자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단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회적 제약에 저항하면서 그들과 식사하셨다. 제사장과 심지어 일반 백성까지 그분을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멸시를 받던 자들은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마침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중에서 마태는 열두 제자가 됐을 뿐 아니라 신약 성경의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이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영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비록 모든 죄의 크기가 같은 것은 아니며, 어떤 죄는 다른 죄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동등하다.

<부가설명> 우리는 전도할 때 죄인으로 여김을 받는 사람보다는 선하다고 여김을 받는 사람들을 선호하는지 모르겠다. 죄인으로 드러난 사람들에게 우리들 자신이 접근할 능력이 없어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세리들은 당시 유대민중들에게 드러난 죄인이었다. 그들과 교제하면 비난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동류로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도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과 어울리셨고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으며 마태와 삭개오를 비롯하여 아마도 많은 세리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같은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고 다가가면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사명을 주시면 그렇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긍휼 베풀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분명히 드러내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선언하셨다.

교훈: 예수님 당시 세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민족적인 지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교제하며 구원하고자 노력하셨다.


넷째날(수) 2월19일
금박을 입힌 기별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1. 막 4:18~19, 눅 1:51~53, 6:22~25, 12:16~21, 16:13을 분석해 보라. 이 말씀들은 어떤 실제적인 조언을 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영적 경고를 보태는가? 부자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 신자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막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눅1:51~53]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6:22~25]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12:16~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답: 재물에 치심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재물에 치심하면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재물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과 그것이 죽음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재물이 우리의 주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질적 소유에 의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소모되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재물의 유혹’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우리의 영적 우선순위가 얼마나 쉽게 돈을 벌려는 목적에 밀리는지 생각해 보라. 이미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이런 진리를 염두에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심판 날에 다음과 같이 오직 한 질문만을 받을 것처럼 살아간다. “그대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 예수님은 잘못된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으신다. 소유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바른 위치에 있어야 한다. 물질적인 소유물들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계획된 하나님의 도구이다. 그것들은 나누면 축복이 되고, 쌓이면 저주가 된다.
부하든 가난하든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영원한 행복을 희생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들은 영원한 만족을 더 나빠지고 낡아버릴 잠깐의 욕망과 바꾸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든 돈이든 둘 중에 하나를 섬긴다. 부하든 가난하든 모두가 다음의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

<부가설명> 재물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재물이다. 그것을 필요 이상을 많이 가지고 주위의 필요를 도외시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부자들이 큰 기업을 운영하여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모든 사람이 다 큰 기업을 운영할 수 없지 않는가. 그래서 고용주가 생기고 고용인이 있어서 노사관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가진 자들이 고용한 사람들을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허물을 범하는 것이다. 또 피고용인들이 이기심에 충동되어서 지나치게 요구할 때도 하나님 앞에 허물을 범하는 것이다. 피차 신뢰와 이해로 아름다운 공생을 이룬다면 재물은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며 사회는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재물을 영원을 위하여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복되게 사용하는 것인 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훈: 대부분의 사람은 돈 버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우리는 그들이 우선순위를 바꿔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돈을 바르게 다루도록 도와야 한다.


다섯째날(목) 2월20일
위험을 각오할 조건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1. 마 19:16~26을 연구해 보라. 이 말씀은 어떤 영적 위험성에 대해 언급하는가? 신자들은
어떻게 오늘날의 젊은 부자 관원을 도울 수 있는가?
[마19:16~2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답: 재물에 마음을 두게 되면 손에 잡힌 영생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성도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고 없어지는 것임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일생, 죽고 나면 소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듣도록 설명하고 영생의 생명의 확실함과 그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격과 권위, 넉넉한 재산, 의문의 여지가 없는 도덕성, 게다가 하늘만큼 높은 자존감까지 갖췄다. 패기 넘치는 제자 후보자는 진지하게 구원을 얻기 위한 공식을 물었다. 그리스도께서 우쭐해지셔야 했는가? ‘마침내 우리가 상류층을 회심시키는 중이야!’ 예수님의 생각은 그와 같은 흥분으로 오염되지 않았다. 그가 만약 칭찬을 기대했다면 완전히 실망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순종의 최소 표준으로 십계명을 제시하셨다. 아마도 젊은 관원은 스스로 축하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평가에 따르면 그는 첫 번째 장애물을 통과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종교지도자를 능가하는 의를 따로 요구하셨다. 그 표준은 이 후보자의 수준에 맞게 낮춰질 수 있었을까? 유다는 열광할 뻔했다. 공적 사무의 책임자라면 크게 기뻐할 상황이었다. 든든한 후원자의 승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라.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은 거룩하다. 영적 결핍은 결코 간과해서도 무시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이기적 욕망은 굴복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세 단계의 과정을 제시하셨다.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에 시달리는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이것이 그의 영적인 고비였다. 그 예비 제자는 비록 어리지만 상당한 재물을 축적했었다. 고급 주택, 아름다운 과원, 비옥한 논밭, 화려한 의복, 보석 수집품, 하인, 가축 그리고 특제 마차까지 모든 것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나님의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흥정이나 협상으로 가격을 낮출 수는 없다. 예수님을 얻으려면 전부가 필요하다. 세속적 성공을 버리고 하늘의 보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 부자 관원처럼 영생을 얻기를 진지하게 갈망하며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보이려고 그분께 나아온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들에게 그 대가가 제시될 때, 즉 집과 토지, 아내와 자녀를 모두 포기하고, 자기 생명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그들은 슬퍼하며 떠나간다. 그들은 하늘의 보화와 하나님의 생명과 버금가는 생명을 소유하기 원하면서도 세상의 보화를 포기할 마음이 없다. 그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생각이 없다”(The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898. 4. 19.).

<부가설명> 이 부자 청년은 영생의 갈망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얻기 위하여 현세의 안락을 포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 죽음 후에 불멸하는 영혼의 안락을 구하는 것이 거의 보편화되었다. 이런 사상은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면서 선행을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굳어진다. 이 청년도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 청년의 생각에 영생은 사람이 선하게 사는 행위의 값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가 바로 이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교인들도 이런 생각에 빠져 있지 않는지 두렵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고 기쁨도 없는 것이 아닌가. 영생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영접하는 길 외에 결코 없다. 이 청년에게 가르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너는 나를 좇으라는 것이 이 사건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이다. 재물을 팔라는 것이나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것은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해요소가 될 것을 보셨기 때문이다. 삭개오에게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으셨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마음에 세상의 재물이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삭개오의 재물은 초대교회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예수님의 재림을 영광중에 맞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지 않는지. 예수님께 전적으로 굴복하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가 죽어야 할 것이다.

교훈: 젊은 관원의 일화는 우리가 세상의 보화를 버리고 외형적 신앙 이상의 전적인 굴복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여섯째날(금) 2월2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167~177 “니고데모”, 272~280 “레위 마태”, 518~523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552~556 “삭개오”, <치료봉사>, 209~216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읽어 보라.

“외면당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많이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외면당한 부자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 것인가? 많은 사람은 부유층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속적 영광에 눈이 멀고 현혹되어 영원한 것을 관심에서 상실해 버린 그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기 위하여 별반 일을 하지 않는다. 부유층에 있는 수많은 사람은 경고를 받지 못한 채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외관상으로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자들 중 많은 사람이 영혼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부(富)와 세상의 영화가 심령을 만족케 할 수 없다. 부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어떤 거룩한 보증, 곧 어떤 영적 소망을 갈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그들의 목적 없이 지루한 생애를 종식시켜 줄 무엇인가를 갈망한다. 공직에 있는 많은 사람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어떤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별반 유익을 얻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이 듣는 교훈은 심령에 감동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호소해야 하지 않겠는가?”(치료봉사, 21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의 신학과 원칙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면 부유한 자들과 쉽게 친교를 나눌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어떤 실제적인 변화가 필요할까요? 교회의 선교 전략은 부유한 자들을 제자로 삼기 위한 필요성을 어떻게 제기할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부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상적인 방식으로 어떤 구체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좀 더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이 방법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 교회는 부유한 자들이 찾을 만하도록 인적자원, 환경 개선, 친교의 장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부유한 사람들의 실제적인 결핍에 대하여 대답할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➋ 어떻게 하면 부와 물질적 소유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 가장 확실한 것은 이 세상의 부는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참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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