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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보통사람들을 제자로 양성함(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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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1-31 22:49 조회8,5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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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3분

기억절 :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막1:16 ~18 ).

연구범위: 눅 2:21~28, 마 15:32~39, 마 16:13~17, 눅 12:6~7, 눅 13:1~5, 약 2:1~9.

그리스도의 죽음은 훌륭한 평형 장치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십자가의 빛에 인종, 정치, 경제, 사회의 장벽이 무너진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관점에서 대단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할 때에 종종 이런 중요한 진리를 잊곤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명예와 성공을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여기신다. 사실 그분을 가장 괴롭게 했던 사람들은 높은 지위를 차지했던 바리새인들, 부자 사두개인들 그리고 로마 귀족과 같이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목수, 어부, 농부, 주부, 목동, 군인, 하인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그분을 따르고 영접하였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시며 제자들은 계급의 구분을 알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➋ 느끼기 : 비록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는 점을 마음에 새긴다.
➌ 행하기 : 인종과 국적, 경제적 수준과 교육의 정도 등 인위적인 구분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바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A.
❷ 예수님이 가난한 성장기를 보내셨다는 사실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 우리의 처지에서 우리를 이끌기 위하여 택하신 사랑이다.
❸ ‘보통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변화시키셨던 예수님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은 자기를 접근하기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셨다.
❹ 예수님처럼 한 영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려면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 영혼에 대한 사랑의 관심과 그들을 진실로 인정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지요.

B.  
❷ 인종과 성별, 신분과 계급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아무 가치가 없고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❸ 평등사상은 초기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 특히 보통사람들이 교회의 증거를 잘 받아들이게 했다.
❹ 베드로의 변화를 볼 때 그대는 어떤 위안 또는 용기를 얻게 됩니까?
※ 베드로를 변화시킨 예수님은 우리도 그렇게 변화하게 하실 것이다.

결론: 기독교의 위대함은 가장 무식하고 단순한 사람들의 증거를 통해 세계를 휩쓸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교육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분을 위해 비범한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첫째날(일) 2월2일
미천한 출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눅 2:24).

1. 눅 2:21~28, 막 6:2~4, 레 12:8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어떤 계층에서 태어나셨는가? 그런 계층의 삶은 그분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눅2:21~28]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막6:2~4]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레12:8]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답: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계층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고향이나 사회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요셉과 마리아가 드린 제물은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그들의 처지를 가리킨다. 이런 전통은 레 12:8에 기록된 모세의 법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어린양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예외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자들은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로 대신할 수 있었다. 이렇듯 마구간 탄생에서 부모가 바친 제물까지, 예수님은 가난하고 평범한 백성의 가정에서 생애를 시작하신 것으로 묘사되었다. 실제로 고고학적인 증거에 따르면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나사렛은 다른 곳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중요성이 떨어지는 마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목수일이 지조 있는 직업이지만, 그렇다고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부모는 가난하여 그들의 매일 수고에 의지하여 그날 그날을 살아갔다. 예수께서는 빈곤과 극기와 궁핍을 잘 아셨다. 이 경험이 그에게는 한 방벽이 되었다. 그의 부지런한 생애에는 시험을 이끌어 들일만한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는 부패한 교제를 위한 길을 터놓는 목적 없는 시간이 없었다. 그는 할 수 있는대로 시험하는 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았다. 돈이나 오락이나 또는 칭찬이나 비난도 그릇된 행동에 동의하도록 그를 유인할 수 없었다. 그는 악을 식별하는 일에 지혜로웠고 또한 그 악을 대항하는 일에는 강하였다”(시대의 소망, 72).

<부가설명> 예수님이 탄생한 가정은 가난한 가정이었다. 나사렛은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평판이 있는 마을이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담에게서 이어오는 생명이 아니고 당신 자신의 생명, 즉 말씀하나님이신 그 생명으로 잉태되시고 탄생하셨다. 그러나 나사렛이라는 마을 가난한 집 출생, 세상에서 주목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2,3)라고 예언하였다. 예수께서 그렇게 오신 것은 영적 의미가 있지만 평범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구주가 되시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늘 왕좌를 떠나서 세상에 오신 구주는 이 세상의 보통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단지 인간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시골 마을의 가난한 가정의 자녀로 태어나 성장하셨다.


둘째날(월) 2월3일
“보통사람”들을 변화시킴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막 1:16~18).

1. 요 2:1~11, 마 15:32~39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간단한 일상의 욕구와 필요를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요2:1~1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마15:32~39]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답: 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라서 난처했을 때 포도즙을 만들어 충족하게 하셨고, 5,000명을 먹이시므로 신체적 필요를 충족시켜주셔서 그들을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을 열게 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자연적인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욕구가 비슷하다. 그들은 몸에 필요한 영양과 인격적 존중 그리고 우정을 필요로 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하시고 이러한 일반적 욕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설 기회가 많은 상황에 계셨다.
예수님은 물을 발효되지 않은 포도 과즙으로 변화시키셨고, 어부들을 설교자로 바꾸어 놓으셨다(막 1:16~18). 그분은 평범한 사람들을 비범하게 변화시키는데 전문가이셨다. 구경꾼들은 그분의 자격에 대하여 묻곤 했다(막 6:3). 그들은 예수님에게 과시할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비범한 것을 열망했기 때문에 평범하게 보이는 것을 간과했고 영원한 손실이 될 것들마저 놓쳐 버렸다.
예수님은 자주 평범한 자들을 찾으셨다. 자급력이 부족한 그들은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천적 재능과 성취에 현혹된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더 위대한 것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 얼마나비극적인 일인가!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은 최고의 교육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개인적 부를 소유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모두 잊혀졌다. 그러나 농부, 어부, 목수, 목동, 옹기장이, 주부, 하인 등 그리스도를 위해 비범한 증인들로 변화된 보통 사람들은 기억되었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1:21~31) 그리스도인에게는 오직 예수님뿐이다. 의도 완전도 성화도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사람만 하늘에 합당한 사람이다. 그분이 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교훈: 예수님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욕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으며,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비범한 일을 행하도록 변화시키셨다.


셋째날(화) 2월4일
흠 많은 어부를 부르심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신약 성경을 보면 베드로는 모든 제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자이다. 실제로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보통 사람이 비범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1. 아래의 성경절을 읽어 보라.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어떻게 현저하게 변화되었는가?
1) 눅 5:1~11. 베드로는 여기서 자신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떤 말로 표현했는가? 이런 특성을 우리 삶에 계발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눅5:1~1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답: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상을 확실하게 한다.

2) 마 16:13~17. 이 말씀에서 우리는 베드로에 대해 그리고 성령을 향한 그의 열린 마음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마16:13~17]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답: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이고 믿었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인 것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확인해주셨다.

3) 마 26:75.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에 대하여 어떤 통찰을 얻게 되며,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신 방법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는가?
[마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답: 베드로는 허물을 깨달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회개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런 정직한 마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일꾼으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베드로 역시 엄청난 경험들을 예수님과 함께했다. 실수가 많은 평범한 어부에 불과했지만 예수님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 심지어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뼈아픈 실수를 저지른 후에도 베드로는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야기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어렴풋이 파악하자마자 자신의 단점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시인하였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성품에 흠이 많은 베드로를 인내와 관용으로 변화시켜서 역사를 바꾸는 인물로 만드셨다.

<부가설명>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을 예수께 인도했을 때 시몬의 성정을 알아보신 예수께서 장차 게바라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마태 16장에서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리고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를 세우실 때 교회의 지도자로 일할 것을 보장하셨다. 그 후에도 베드로는 실수했고, 또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참 엄청난 허물을 범했어도 그가 예수님의 돌아보는 눈길에서 용서를 감지하고 아픈 마음을 안고 겟세마네에 가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는 단순하고 정직한 성정을 드러내었다. 야고보는 엘리야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베드로도 당연히 그렇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솔직하고 단순하며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성령의 역사로 시몬이 베드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교훈: 베드로는 성격적 결함이 많은 어부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부르시고 변화시키셔서 역사를 바꾸는 인물이 되게 하셨다.


넷째날(수) 2월5일
하늘의 평가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6~7).

어떤 복음전도자는 자신의 세미나에 상류층 사람들이 참석한다고 자랑하였다.(물론 우리는 그가 좀 더 평범한 사람들의 참석도 기뻐했기를 바란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계급도 구별하지 않았다. 그분에게 평범한 사람이란 없었다. 모든 사람이 특별했다. 예수님은 흔한 예증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군중들을 만나셨다. 그분의 태도를 보면 그분의 관심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있었다는 암시는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제자를 양육하는 자들은 선교 봉사를 하는 동안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 눅 12:6~7, 13:1~5, 마 6:25~30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가치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는가? 물론 우리가 이런 사상을 믿는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십자가의 보편성이 영원토록 제거했던 그와 같은 종류의 차별을 행하는 죄를 범하는가?
[눅12:6,7]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13:1~5]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마6:25~3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답: 하나님은 미물들도 친히 잊지 않고 돌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서 영원히 함께 거하시려는 대상인 사람들을 공평하게 취급하시지 않겠는가.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절대족으로 동등하게 여기신다.

시장에서 가장 싼 새는 참새이다. 가장 작고 화폐 가치가 낮은 한 앗사리온에 두 마리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흔하고 별 볼일 없는 참새도 하늘은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니 인간은 얼마나 더 소중하겠는가? 계급과 무관하게 십자가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모든 인간의 무한한 가치를 증명하였다. 계급이란 본래 하늘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심지어 하늘의 원리와 반대되는 개념과 속성에 기초한 인간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부가설명> 사회는 통치와 질서를 유지하게 위하여 통치 계급과 통치를 받아야하는 계층이 있다. 통치는 본래 봉사하는 것이다. 하늘에서도 지위가 있는 것을 본다. 천사장이 있다. 루시퍼는 지휘하는 천사였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또 가브리엘이 있다. 그러나 하늘의 지위는 계급이 아니라 봉사의 직무였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직분들은 섬기는 직분이지 지배하는 직분이 아니다. 목회자와 교회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은 결단코 계급이 아니다. 그것을 계급으로 만든 것은 교권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런 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생명과 존재의 가치에 있어서 그렇다.

교훈: 예수님은 사람들을 대할 때 계급의 구분을 두지 않으셨다. 계급은 타락한 인류 역사의 산물일 뿐 하늘에서는 무의미한 개념이다.


다섯째날(목) 2월6일
계급이 없는 사회

원시 기독교의 가장 매력적인 사회적 특성은 아마도 계급 구별의 철폐일 것이다. 계급을 나누었던 장벽은 복음의 무게에 허물어졌다. 보통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하였다. 그리스도는 평범한 사람을 비범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셨다. 목수, 세리, 석공, 여왕, 하인, 제사장, 헬라인, 로마인, 남자, 여자, 부자, 가난한 자가 그리스도의 은혜의 나라 안에서 모두 평등해졌다. 실제로 기독교 공동체는 계급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했다.

1. 아래의 성경절에서 우리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가? 당시의 문화와 성경 기자들의 개인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그들이 이런 핵심적인 개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갈 3:28~29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약 2:1~9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벧전 1:17, 2:9 “…외모로 보시지 않고…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요일 3:16~19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답: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동등한 가치로 보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당시는 봉건적 사회에서 신분제도가 아주 심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참고 행 2:43~47, 4:32~37). 하나님이 평범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개념은 초기 기독교의 폭발적인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세상에 봉사하는 방식에 어떻게 잘 적용해야 할지 물을 필요가 있다.

<부가설명> 이 세상의 인류는 교육, 성격, 교양, 환경 등등에 의하여 천차만별의 상태로 섞여 살고 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가지게 된다. 돈이 많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우월감을 가진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도 그렇다. 이런 세상의 폐단을 예수께서 지적하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깨우쳐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세상에 사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야한다. 강한 자는 약한 자에게 강함을 봉사의 기회로 삼과 유식한 자는 무식한 자에게 유식을 봉사하고, 있는 자는 없는 자들에게 그 있는 것으로 봉사하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었고 그분의 제자들도 이런 정신이어야 한다.

교훈: 초기 기독교는 당시 봉건적인 사회의 두터운 장벽에도 불구하고 신분 구별을 철폐함으로 폭발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여섯째날(금) 2월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육>, 269~270, “평생사업”, <복음전도>, 564~566 “중류 계급을 위한 전도”를 읽어 보라.

“끝나가는 복음 사업에 있어서 복음으로 점령해야 할 광대한 지역이 우리 앞에 있으므로,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조력자를 일반인 중에서 모아야 한다. 밭에서, 포도원에서, 공장에서, 노소를 무론하고 부르심을 받아 구세주의 기별을 전해야 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자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목적을 성취할 자격이 있다고 보신다. 만일, 그들이 이 일에 마음을 두고 배우기를 계속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한 일꾼으로서 그를 합당한 자로 만드실 것이다”(교육, 269~27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예수님이 보통 사람들을 제자로 만드셨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분의 기별이 부자들과 사회 지도층에 쉽게 수용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난한 성장기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얻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을까요? 만약 예수님이 왕자나 대지주로 오셨다면 보통 사람을 얻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을까요?
※ 예수님 자신이 보통사람으로 탄생하셨고 보통사람으로 사셨기 때문에 보통사람들과 접근이 쉬웠고, 그들의 사정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셨다. 사회 지도층은 예수를 서민계급으로 여겨 접근을 꺼려했다.

➋ 고전 1:26~29을 함께 읽어 보십시오.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는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아름다운 사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말씀은 세상의 이해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보여줍니까? 우리가 이런 타락한 방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고전1:26~29]은 월요일 부가설명에 인용한 구절이다. 세상에 약한 것은 “아스데네스”로서 무력한 것이라는 뜻이다. 재력이나 학력이나 권력이 없는 존재들을 나타낸다. 그런 사람들은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나님은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을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이끌 때 잘 따라올 것을 아신 것이다. 세상은 세상이 보는 가치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중심으로 사람을 동등하게 보시는 것이다.

➌ 보통 사람들에게 더욱 친화적으로 되기 위해서 교과반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번역 성경을 선택해야 합니까? 제자를 양육하려는 사람은 특히 세상에서 상처를 받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처음 접촉할 때에 이론적인 주제보다 실제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손길로 다가갈 때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쇄를 가지고 가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에게 친화적이기 위하여서는 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말로 기록된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교과저자의 의도가 그것을 말하는 것 같다. 동의하지만,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은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번역을 사용하고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여 깨닫도록 이끌어주기를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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