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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기도와 제자도(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1/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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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4-01-10 06:46 조회8,50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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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40분

기억절 :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0~21).

연구범위: 단 9:2~19, 마 14:22~23, 마 26:36, 요 17:6~26, 히 2:17, 벧전 4:7.

영혼 구원 사업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봉사 프로그램을 계획하든지 우리는 우리가 구원하려는 자들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자에게 핵심적인 사명이며 제자를 만들려는 자에게 더욱 그러하다. 꾸준하고 열렬한 기도가 제자들을 만들고 양육하는 핵심적인 방법이 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일꾼들은 ‘주께서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꼭 이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전도하려는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도록 요청하라. 그들을 교회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할 대상자로 제시하라.… 다른 영혼 그리고 또 다른 영혼을 택하여 매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진실한 기도로 그분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일하라”(의료봉사, 244~245).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기도가 제자도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한다.
➋ 느끼기 : 기도가 신비한 행위임을 인정하며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확신한다.
➌ 행하기 : 날마다 시시때때로 기도하도록 노력한다.

A.
❷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기도가 왜 대표적인 중보기도라 할 수 있을까요?
※ 그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와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자기가 회개하며 기도하였다.
❸ 그대는 진실한 기도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진정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❹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고 예수의 생명으로 연합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B.
❷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하여 기도하셨고 우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원하는 일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❸ 개인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 지체이기 때문이다.
❹ 기도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 격려하고 기도하며 계획하고 홍보하며 호소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결론: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 그분께서 들어주시는 그런 과정이 아닙니다. 기도란 우리가 그분의 생각을 깨닫고 그대로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첫째날(일) 세월의 시험을 통과한 동정
1월12일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9).

기도는 종종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신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얻기를 바라며 소원 목록을 하나님께 드린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간혹 우리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심령이 사악하고 기만적이며 부패한 것은 아닌가? 우리의 기도는 자주 우리 속에 있는 죄많은 본성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나?
그러나 중보기도는 타인의 필요에 초점을 맞춤으로 이기적인 동기의 가능성을 제거한다. 역사적으로 중보기도는 가장 차원 높은 영적 대화의 표현 방식이었다. 자기만족을 위한 열망에 오염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영적 대화는 이타심과 동정 그리고 타인의 구원을 위한 진지한 열망을 나타낸다.

1. 단 9:2~19을 읽어 보라. 다니엘은 어떤 부담을 가지고 기도하였는가? 자백은 그의 기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미 연로하였기 때문에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을 유익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도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단9:2~19]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14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5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16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답: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허물을 자기의 허물로 여기고 고백 회개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중보적 기도를 하였다.

예레미야의 말한 70년이 지났다. 다니엘은 지금 그 예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 출신이었던 그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고인이 되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중건된다 해도 다니엘 개인의 행복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니엘의 기도에는 개인적인 관심사를 의미하는 내용이 없다. 이 옛날 선지자는 포로로 끌려간 유대 민족의 미래와 여호와 그분의 명성에 관해서 하나님께 분명하게 탄원하였다.
소원을 아뢰기 전에 긴 자백이 있었다. 자백을 하면서 다니엘은 불순종한 백성 가운데 자신을 포함시켰다. 선지자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동시에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예루살렘 중건을 추구하였다.

<부가설명>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한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연구하였고, 70년의 포로기간에 대하여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 성취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바벨론 포로 생활한 세월을 세어보면서 이스라엘에 권고 받는 때의 끝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그 기간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자신에게 보여준 때에 대한 계시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의 죄가 마치 자기 개인이 저지를 죄인 것처럼 자복하고 회개하였다. 그는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그가 민족의 허물을 다 짊어진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회개하며 용서와 자비를 탄원한 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하는 기도를 우리는 중보기도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성경은 중보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는데(딤전2:5)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가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 표현이 어떻든지 다니엘의 이런 정신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흔쾌히 응답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다니엘과 같은 신앙의 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훈: 기도는 때로 인간의 이기적인 동기를 드러낸다. 그러나 중보기도는 그런 가능성을 제거하며 타인과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추구한다.

둘째날(월) 기도를 위한 시간
1월13일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기도가 정말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타락하고 죄 많은, 죽어 마땅한 존재가 우주의 창조주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과 즉각적이면서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그 한계를 받아들이셨을 때 그분 역시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다. 물론 우리와 같은 타락한 죄인의 지위에서 하나님 앞에 서신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신 예수님도 기도의 필요성을 아셨다.

1. 마 14:22~23, 26:36, 막 1:35~37, 눅 5:15~16, 6:12~13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개인기도 생활은 어떤 특징이 있었는가?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둘러싼 분위기에 대하여 묘사해 보라. 예수님의 기도 생활에 나타난 특징으로부터 우리는 기도의 빈도, 장소, 시간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마14:22,2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막1:35~37]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눅5:15,16]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답: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셔서 혼자 기도하셨다. 그는 필요를 느낄 때 언제나 기도하셨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과 대화할 필요가 있을 때 홀로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모본으로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는 분명 기도 생활의 모본을 보이시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예수님은 아침과 저녁, 설교 전후 가능하면 언제든지 기도하셨다. 산과 들, 조용한 곳과 방해거리가 없는 곳이면 예수님은 어디서든지 기도하셨다. 공간적으로 아버지의 임재와 분리되어 있었지만,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그분과 연합하였다. 그리스도의 영적 생혈(生血)은 기도라는 영적 동맥을 통해 흘러왔다. 그렇다면 죄의 성향으로 연약해지고, 세속적 관심으로 숨 막히며, 실패로 말미암아 절망하는 오늘날의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못한 기도 생활에 만족해야 하겠는가?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그 심정을 펴놓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93).

<부가설명> 우리는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배운다. 호흡은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기도로 그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는 것도 고백하는 것이 기도이다. 우리가 호흡하고 먹고 마시는 것은 자기 자신 안에 스스로 생존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생리적 현상이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호흡과 먹고 마시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없이는 내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행위인 것 이다. 예수님은 호흡마가 기도가 되는 삶을 사셨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심호흡이 필요하고 복식호흡도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 한적한 곳에 홀로 기도하셨고 철야기도도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걸음마다 호흡마다 기도가 되는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또 심호흡도 하고 복식호흡도 하고 단전호흡도 하는 기도생활을 하라는 모본을 예수께서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아무튼 우리는 호흡하지 않고 생명이 유지되지 않듯이 기도 없는 성도의 삶은 생명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교훈: 예수님이 아침과 저녁 그리고 가능한 장소와 시간이면 언제든지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며 교제해야 한다.

셋째날(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가르침
1월14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기도는 유한한 영혼을 무한한 창조주께 기적적으로 결합시킨다. 기도는 영적인 접착제이다. 하늘 아버지와 결합됨으로 신자들은 땅의 본성과 죄의 성향을 초월한다. 이런 변화는 그들을 세속과 분리시킨다. 만약 사탄이 기도의 특성을 자기중심적인 틀로 바꾸는 데 성공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기도의 능력을 앗아간다면, 우리는 여러모로 세상과 타협할 것이며 우리의 증거 활동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1. 마 6:7~8, 7:7~11, 18:19~20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기도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마6:7,8]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답: 중언부언하지 말며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하셔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시고 합심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신실한 신자라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킬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지금까지 기도의 요청으로 하나님을 겁준 사람은 없었다. 그분의 권위는 끝이 없고, 그분의 능력은 비길 데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는 당시에는 하나님의 응답을 알지 못할지라도 그분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하늘 문을 두드린다. 믿음이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결과를 보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히 11:1~7참고). 주를 섬기고 믿음 안에서 행하는 이상 우리는 소망하고 기도하던 대로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또한 성경은 그대가 혼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2. 마 6:9~15, 26:3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마6:9~1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답: 기도의 방법과 기도의 원칙을 가르쳐준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기도의 내용에는 용서의 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믿음을 오만이나 자만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믿음은 특권의식과 관계가 없다. 신자의 행실은 담대함과 겸손의 특징이 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바람을 말했지만 그것으로 끝맺지 않고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다. 전적인 굴복과 함께 용서의 정신 역시 겸손의 또 다른 표시이다. 우리는 크게 용서 받은 자로서 마땅히 다른 사람을 그와 같이 용서해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을 따라 기도문을 가르쳐주셨다. 거기에는 기도의 대상으로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를 불러서 기도하라고 하셨고 그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할 것을 고백해야 하는 것을 가르쳐주셨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게 되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것은 하늘에서 뜻이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인간의 필요를 간구하는데 이것은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생활하는 성도들의 필요를 간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했다. 우리의 기도도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기도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과 결합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리든지 하나님이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응답하시리라고 믿어야 한다.

넷째날(수)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동정
1월15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2).

그리스도는 완전의 표본이셨다. 즉 모든 형태의 하나님의 완전이 그분을 통해 계시되었다. 세상에 그리스도보다 더 자비로운 자가 있었는가? 세상에 예수님보다 인간의 괴로움을 가볍게 하려는 강렬한 소망을 가진 자가 있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묻는다.

1. 그리스도의 동정과 중보는 제자도와 어떤 관계였는가? 눅 22:31~32, 요17:6~26을 읽고 히 2:17도 참고하라. 예수님의 인간 신분은 그분의 중보 기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에는 어떤 궁극적인 목적들이 있었는가?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요17:6~2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히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답: 예수께서는 인간의 연약성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대제사장이 되어 중보로 도우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정신을 받아들여서 사람들을 동정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기도하며 도우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에 적극 동참하셨고, 그들을 철저히 이해하셨으며, 그들의 유익을 간절히 사모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성공적으로 중보하실 수 있었다. 오늘날 효과적인 중보 기도에도 바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21세기에 제자를 양육하는 자들은 그들과 잃은 영혼 사이의 관계를 방해하며 시간을 좀먹는 목적들을 포기할 것이다.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높은 학위를 얻는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는 더 큰 목적에 비하여 부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진리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자주 일상적인 것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에 자신을 투자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의 집을 방문하여 그들의 가족과 사귀셨고, 그들과 함께 여가를 보내시며 그들 곁에서 일하셨다. 그들의 삶에서 그분이 주목하지 못한 중요한 일은 없었다.
오늘날의 제자 훈련에도 전도지 분급과 빈틈없는 성경논증 이상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동정하며 그 고통을 가볍게 하고픈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는 효과적인 제자 훈련에 필요한 중보 기도의 표준이기도 하다. 이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대가 그들에게 진정으로 관심이 많은지 알기 전까지 그들은 그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들을 뜻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참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생명의 사자들이다. 그러므로 동정심은 기본적인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 또는 죽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그들을 살리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한 생명이시다. 그분은 당신께서 대신하여 죽어주시기까지 하면서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려고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롬5:8) 사망이 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친히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으로 봉사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이 정신을 이어받아서 동정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예수께서 봉사하시는 삶을 통하여 친히 가르쳐주셨다. 그분의 모든 삶이 그랬지만 특히 기도는 예수님의 봉사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의논하신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도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고 끊임없이 말씀을 상고해야 한다.

교훈: 예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역하는 일에 헌신하셨다. 오늘날의 제자 훈련에도 그런 요소가 필요하다.

다섯째날(목)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동정심이 복제됨
1월16일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 2:1).

가장 진심어린 찬사는 모방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주의 기도 생활을 모방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안위와 매일의 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영적 인도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중보 기도는 제자 훈련에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했다.

1. 행 1:13~14, 딤전 2:1~4, 약 5:13~16, 요일 5:16, 유 20~22, 벧전 4:7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에 기도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들은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기도하였는가? 이런 예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행1:13,14]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딤전2:1~4]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약5:13~16]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요일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유20~2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답: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과 국가와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고난당하는 자들과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죄를 지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의심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사실을 두고 근신하여 기도했다.

줄기찬 기도는 초기 교회의 정신적 힘이었다. 선교 여행을 떠날 때마다 바울은 기도를 통해 파송되었다(행 13:3, 14:23). 그들의 이별 모임도 기도로 뒤덮였다(행 20:36, 21:5). 그들의 기도는 대체로 중보의 형태였을 것이다. 그들은 정부 지도자와 동료 신자들 그리고 모두를 위해 기도하였다. 바울은 멜리데 섬에서 이질로 고통을 당했던 보블리오의 부친을 위해 중보하였다. 스데반은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그를 죽인 자들을 위해 중보하였다. 초기 신자들에게 기도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였다. 성경에 따르면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사람의 구원과 진리의 확장을 바라시기 때문이다. 기도가 사도들의 가르침과 열렬한 설교, 신비한 이적 그리고 사랑과 교제와 어우러졌을 때 초기 교회는 번성하였다. 극심한 박해에도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뒤덮었다.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황제의 궁에서부터 미지의 지역에 이르기까지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살아있는 불빛처럼 타올랐다.

<부가설명> 기도는 영의 사람들의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호흡은 의식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다. 호흡을 중지하려고 하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결심하지 않고 호흡을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이 그랬고 초기교회의 성도들의 삶이 바로 기도로 이어졌다. 우리 주님의 강림이 그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이 시대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삶이 기도가 되는 믿음으로 살아야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유다는 말했다.(20절) 이 거룩한 믿음은 하나님의 믿음이고 예수님의 믿음이다. 이 믿음 위에 우리의 삶이 건축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기도가 호흡이 되는 것이다. 영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기도가 호흡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교훈: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의 중보기도 생활을 모방함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오늘날도 중보 기도는 교회의 번영에 가장 밀접하고 중요한 요소이다.

여섯째날(금) 1월1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회증언 9권>, 126 “개혁운동”, <의료봉사>, 244~245 “개인적 노력과 살아있는 믿음으로”를 읽어 보라.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는 자는 오래지 아니하여 기도를 그치게 되든지 또는 그의 기도가 일종의 형식적 일과(日課)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떠나서 그리스도의 의무와 십자가를 지는 일의 범위를 벗어날 때에 또는 사람이 저희를 위하여 열성으로 일하신 구주를 위하여 열심으로 일하기를 그치는 때에 그 사람은 기도의 제목(題目)을 잃어버리게 되고 기도할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기도는 개인적이요 이기적이 된다. 그들은 인류의 궁핍에 대해서나 또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기 위한 힘을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없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10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중보기도의 부재가 교회 성장을 저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대로 적극적인 중보기도 생활은 제자 양성 활동을 얼마나 진작시킬까요? 성공적인 중보기도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중보기도 자는 무엇에 대하여 기도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중보적 기도를 할 때에 서로 돕고 연합하는 정신이 충일(充溢)하게 된다. 그것은 교회를 일으키고 부흥하게 하는 힘으로 드러나게 된다. 교회의 필요와 교우들의 필요를 느낄 때 중보적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열렬해질 것이다.

➋ 신자들은 집에서 개인적으로 간구하는 것을 초월하여 그들이 기도하는 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신자들은 그들이 기도하는 이웃과 친척 그리고 동료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을 위한 은밀한 기도와 그 사람과 친교를 나누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참으로 중보적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그가 기도하는 그 일을 위하여 활동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동정하고 도우는 사랑의 관계를 이루게 된다. 기도는 삶을 이끌기 때문이다.

➌ 2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역동적인 기도 생활을 경험하려면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합니까? 성공적인 제자 양성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는 경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기도자가 먼저 변화되지 않으면서 그가 기도하는 다른 사람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개인 기도의 제목이 어떻게 잃은 영혼을 위한 열정에 의하여 변화될 수 있을까요? 개인의 경건과 기도 생활은 진리를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 질문이 한꺼번에 너무 많다. 역동적인 기도를 하려면 중생을 경험해야 한다. 중생한 삶은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그 생명을 얻게 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될 때 당ㅇㄴ히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이끌어주려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댓글목록

이한용님의 댓글

이한용 작성일

목사님 새해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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