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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 봉사를 위해 은사를 받음 : 빌립 : (修訂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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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9-12 18:31 조회7,2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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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9월20일(안) 일몰 오후 6시32분

제12과 봉사(奉仕)를 위해 은사(恩賜)를 받음 : 빌립

<확대경(擴大鏡)>
※ 성경에는 빌립(Philip)이라는 이름이 몇 명 나온다.
즉 동명이인(同名異人)을 유념(留念)해서 살펴보자.
금번의 교과 공부는
1. 헤롯 빌립1세 도 아니고
2. 분봉왕 헤롯 빌립2세도 아니고
3. 사도(使徒)빌립도 아니며
4. 집사(執事)빌립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별로 깊이 생각해본 적인 없었는데, 신앙생활의 연조(年條)가(?)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가정집을 방문할 때에나 교회에 좋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피아노를 보면서 예배(禮拜)를 드릴 때에 반주(伴奏)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반주(伴奏)를 하지 못하고 찬미(讚美)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으로 답답하다는 것을 항상 크게 느끼곤 한다.
받은 달란트나 은사가 없어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 피아노나 전자오르간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느껴지게 된다. (♥ 받은 은사를 적당한 때 꼭 필요한 곳에 사용되지 못할 때의 말이다.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

◎ 은사(恩賜)란?
1. “은사(恩賜)”를 국어사전에는 = “임금이 내려줌”, 또는 “임금이 내려준 선물(膳物)”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1978년 동아 신 콘사이스 국어사전)

2. 성경사전(聖經辭典)에는 두 가지로 해석(解釋)하고 있다.
1. 구원(救援)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또는 “특별한” 은혜(恩惠)의 선물(膳物)을 언급할 때 사용하고
2. 사도 바울에 의해서 빈번히 사용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共同體)를 섬기는데 쓰도록 특별히 부여하신 것들로 특별한 영적은사(靈的恩賜)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익을 위해 주시는 성령의 나타남” (고전 12:7) 곧 모든 그리스도인이 소유한 한 성령이 다양한 형태로 역사하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고전 12:4-6, 11-30 참조)

◎ 은사(恩賜)를 주신 목적(目的)인 복음전도(福音傳道)
신자(信者)들은 다양(多樣)한 은사(恩賜)들을 받았다.
그것은 각자가 개별적(個別的)인 직무(職務)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각 신자(信者)는 자신의 신앙(信仰)에 대하여 증거(證據)하고 믿음 있음을 나누어주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서 무슨 일을 이루셨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각 은사를 주신 목적은 그 은사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소유자(所有者)로 하여금 복음전도(福音傳道)를 가능(可能)케 하기 위한 것이다. (S. D. A 기본교리 201)

◎ 집사(執事)빌립은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수 있는지에 관한 힘 있는 본보기가 되었다.
집사(執事)빌립은 구스 내시(內侍)에게 예수님을 증거(證據)할 때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福音)을 나눌 때나,
마술사(魔術師) 시몬을 회심(悔心)시킬 때나
빌립의 목표는 오로지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뿐이었다.

일(日) 9월14일
<봉사(奉仕)를 위(爲)해 부르심을 받음(행 6:3)>
1. 헤롯 빌립1세
헤롯 대제와 하스모니아 왕가(王家)의(대 제사장 시몬의 딸)마리암네 사이에서 태어난 자 헤롯안디바의 이복(異腹)동생으로 성경이외의 자료들에서는 헤롯 빌립이라고 불리웠으나 新約에서는 항상(恒常) 빌립이라고 불리웠다. (마 14:3, 막 6:17, 참조. 눅 3:19에서는 분봉왕 헤롯의 동생으로 되어 있음) 그는 헤롯 대제의 손녀(孫女)이자 자기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헤로디아를 통하여 살로메라는 딸을 낳았다.
그런데 이 살로메는 헤롯빌립1세의 이복(異腹)동생인 분봉왕 헤롯 빌립2세와(2)결혼하였다.
결국 헤롯빌립1세의 이복(異腹)동생이 그의 사위가 되었던 것이다.
이복(異腹)형제사이이자 장인(丈人)과 사위 사이인 이 두 사람은 이름이 같기 때문에 자주 혼동(混同)을 야기 시킨다. 헤롯 안디바가 로마로 가던 도중 헤롯빌립1세의 집에 들린 적이 있었다. 이때 안디바는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불륜(不倫)의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마침내 이복(異腹)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아내로 삼아버렸다. 침례(浸禮)요한은 안디바의 이와 같은 불륜(不倫)의 죄를 지적하다가 투옥(投獄)되었고 처형(處刑)되었다.
침례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는 바로 헤롯빌립1세와 헤로디아의 딸이었다.
(마 14:3-11; 막 6:14:28; 눅 3:19-20)

2. 분봉왕 헤롯 빌립2세
헤롯 대제와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자.
빌립이 통치하던 (B. C 4년- A. D 34년) 지역은 갈릴리 호수 부근과 데가볼리 북동쪽의 이방 지역인 인구 밀도가 희박(稀薄)하던 곳이었다.
곧 요단강 상류와 다메섹 남쪽인 안티레바논 산맥의 동쪽 골짜기를 헤롯 대제로부터 분할 받았다.
성경은 이 지역을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이라고 말하였다. (눅 3:1).
빌립이 통치하던 지방의 수도는 ‘바네아스’(오늘날의 ‘바니아스’)였는데 이곳은 ‘가이사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갈멜산 남쪽에 있던 ‘가이사랴 마리티마’와 이곳을 구별하기위하여 ‘가이사랴 빌립’이라고도 불렀다.
헤롯 빌립2세는 헤롯 빌립1세와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와 결혼 하였다.

3. 사도(使徒)빌립
사도 빌립의 고향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벳새다였다. (요1:44)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빌립을 부르셨으며(요 1:43절), 빌립은 또한 나다나엘을 전도하여 예수께 데리고 왔다. (요 1:45-51) 빌립은 구약(舊約)에 대하여 매우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奇蹟)을 일으키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질문을 던져 빌립을 시험하셨다 (요 6:5-7)
예수님을 만나고자 원했던 헬라인 몇 사람이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 또한 빌립 이였다. (요12:21-22).
빌립은 예수님께서 다락방 강해(講解)를 하실 때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성급한 질문을 했던 적도 있었다. (요 14:8-9)
성경에는 12사도들의 명단이 네 번이나 언급되어 있는데 빌립의 이름은 네 번다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세 번은 바돌로메와 짝을 이루며 나타나 있다. (마 10:3; 막 3:18; 눅 6:14; 행 1:13)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바돌로메가 빌립이 전도했던 나다나엘과 동일인 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4. 집사 빌립
전도자 빌립은 사도(使徒)들을 도와 교회의 과부(寡婦)들을 돌보았던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행 6:1-5; 21:8)
빌립은 사마리아 땅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행 8:5-8) 그의 복음을 듣고 마술사(魔術師) 시몬도 개종(改宗)하였다. (행8:9-13).
그 후 빌립은 천사(天使)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 순례(巡禮)를 마치고 돌아가는 에티오피아 내시(內侍)에게 복음을 전(傳)하고 침례(浸禮)를 베풀었다. (행 8:26-39) 빌립 그는 아소도에서부터 가이사랴에 이르는 해안도시(海岸都市)들을 돌아다니면서 복음(福音)을 전(傳)하였다. (행 8:40) 그리고 빌립은 가이사랴에서 정착했던 것 같다. (행21:8) 빌립의 네 딸은 그리스도인 예언자들이었다. (행 21:9)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는 집사(執事)와 장로(長老)와 목사(牧師)등의 직분(職分)에 안수(按手)받고 교회에서 봉사(奉仕)를하고 있다. 그러나 극히 일부 잘못된 인식(認識)에서 이러한 직분(職分)들이 세상의 벼슬로 착각(錯覺)하여 권위주의(權威主義)에 빠져있는 분들도 간혹(間或)있는 것 같다. 교회의 직분은 직능(職能)과 직분(職分)의 구분(區分)으로 섬기는 자들이지 차별(差別)의 직분이 아닌 것이다. 즉 교회에는 직분에 높낮이가 없는 것이며 다만 기능상의 구별(區別)만 있을 뿐이다.

☞ (권위(權威) = 아무리 아버지가 학교 문턱에 가본일이 없는 무식(無識)한 아버지일지라도 아버지의 권위(權威)를 인정하고 섬겨야지, 아버지에게 무식(無識)하다는 것으로 깐보거나 낮게 여기는 것은 안 되며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된다.)

☞ 권위주의(權威主義))= 권위주의는 내가 아버지인데 아들이라고 마구 학대(虐待)하거나 권위(權威)의식 속에 사로 잡혀 아버지라는 권위로 사리분별을 못하거나 폭군(暴君)으로 군림하는 것은 권위주의(權威主義)자인 것이다)

◎ 성경을 다독(多讀)했다고 구도자(求道者)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니요,
교회에 365일 새벽 예배참석과, 52주 안식일에 결석(缺席)을 하지 않고 오랜 세월 교회를 출석(出席)하였다고 구도자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니요, 고급승용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산다고 구도자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니요 값비싼 옷을 입고 얼굴이 예쁘다고 구도자를 많이 얻는 것도 아니요, 성경말씀을 달달 많이 암송(暗誦)한다고 구도자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니요, 재산이 많다고 구도자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니요, 교회에 높은(?) 수석(首席)의 자리에 직분을 받았다고 구도자를 많이 내는 것도 아니다.

☞ 다만 예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아서 그 은혜를 감당할 수 없다는 믿음이 마음속 깊이 용솟음칠 때에 자신의 그 기쁨이 마치 수가 성(城)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처럼, 세상 남자들에게 갖은 멸시 천대와 놀림을 받다가 몸을 파는 여인에서 간음(姦淫)하다 잡혀와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그 여인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라든지, 세상 학문에서 권위주의와 세상 벼슬에서 열심을 내다가 다메섹 도상(道上)에서 진정한 세상의 가치(價値)를 알고 난 사도 바울처럼,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否認)한 배신자(背信者)였던 베드로를 사랑으로 용서해주신 그 좋으신 예수님을 만나 베드로처럼, 가슴과 마음으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체험하고 만난 사람만이 그 분을 위해서 나의 전 재산이나 시간이나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어 놓고 봉사하고 선교할 것이다. 오랜 세월 연륜(年輪)의 신앙생활에서 그토록 구도자를 얻지 못한 분이시라면 진심으로 사랑의 주님을 깊이 만나시고 체험하는 이번의 교과 공부가 됩시다.

월(月) 9월15일
<사마리아에서의 선교여행(宣敎旅行) (행 8:15)>
◎ 구제(救濟)를 위해 봉사(奉仕)하도록 택함을 받은 일곱 집사중의 한 사람인 빌립은 또한 전도(傳導)하는 일과 침례를 베푼 선교하는 사람이다. 일곱 집사의 한 사람인 빌립도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사람들 중에 있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城)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행적 107)

◎ 사도(使徒)들이 빌립의 전도(傳導)를 받아들임.
야곱의 우물에서 담화(談話)하신 사마리아 여인에게 보낸 그리스도의 기별은 결실을 가져왔다.
그 여인은 그 분의 말씀을 들은 후 성읍 사람들에게 가서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하였다.
사마리아에서 빌립의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리하여 용기를 얻은 그는 도움을 구하려고 예루살렘에 사람을 보내었다. 이제 사도들은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뜻을 더욱 완전히 이해(理解)하였다. (행적 107-108)

◎ 그것은 70주야의 끝이었다.
유대인들을 위하여 배당된70주일 곧490년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서기34년에 끝이 났다.
그때 유대인의 산헤드린이 취한 태도(態度)로는 곧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박해함으로 복음을 거절(拒絶)한 것은 국가로서 저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복음은 그 택함을 받은 국민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온 세계에 전파되었다.
제자들은 박해 때문에 부득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그 흩어진 사람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城)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다. (쟁투 하 42)

◎ 초기 교회에 혹독한 핍박이 닥쳤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빌립은 사마리아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신앙은 편안하고 안정되고 모든 여건이 잘 갖추어지면 잘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나 핍박과 난관과 어려움이 봉착할 때 신앙은 자라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이시라면 다시 한 번 신앙의 옷깃을 여미시기를 바랍니다.

화(火) 9월16일
<증거(證據)를 위한 기회(期會)들 (행 8:26-39)>
◎ 빌립은 훌륭한 설교가 였지만 그가 이적(異蹟)을 행(行)한 것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쐐기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행 8:6) 빌립이 악령(惡靈)들을 쫓아내고 중풍병(中風病)자들과 장애(障碍)인들을 고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이적(異蹟)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 전체적인 봉사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이적들을 행하신 것이지 예자신이 메시야라는 것을 입증(立證)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적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수단(手段)이 될 것을 아셨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것을 갈급하며 흔히 탁월한 마술사(魔術師)나 이적을 행하는 자에게로 재빨리 달려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애를 변화(變化)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이적들을 행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들은 전도자나 선교사로써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건강(健康)에 관한 것이든지 어떤 구제(救濟)나 봉사(奉仕)에 있어서 쐐기의 역할이라는 것을 분명히 명심하여야 하며 이들의 혜택을 보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일만 하여야 한다.

◎ 구스 내시(內侍)
사마리아에서 신나게 사역의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갑자기 천사(天使)가 빌립에게 새로운 과업을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천사는 이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로(약 80㎞의 거리로) 빌립을 보내는 것입니다.
가는 도중에 오늘날의 수단 나라인 구스인 내시(內侍)를 만나게 됩니다. 그 내시는 아마도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해서 꽤 많이 듣고 성경 말씀도 많이 본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으로 기대에 부풀어 오늘날의 성지(聖地) 순례(巡禮)를 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갔으나 심한 충격(衝擊)을 받고 귀경(歸京)하는 때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는 중입니다. 그가 읽고 있던 성경말씀은 이사야서이구요 그러나 열심을 내어서 읽기는 읽지만 뜻도 모르는(행 8:30-31)성경 통독의 시간입니다. 빌립이 성경을 읽는 내시(內侍)에게 묻습니다. 읽는 말씀을 이해(理解)하느냐고 ? 내시(內侍)의 대답은 (행 8:31)에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사람 빌립을 즉시 그에게 파송(派送)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야기는 이에 앞서 있었던 경험과 배경을 미루어 짐작 컨데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구스 내시(內侍)는 기대(期待)했던 예루살렘을 가본 결과 유대인과 이방인(異邦人)에 대한 엄청난 차별(差別)로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異邦人)의 뜰을 분리시켜 감히 이방인들은 성전(聖殿)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취급을 당했으며, 또 한 가지는 뜨거운 환대(歡待)를 받을 것으로 생각 하였으나 환대는 고사하고 냉대(冷待)와 멸시(蔑視)를 받고 의기소침(意氣銷沈)과 낙담(落膽)과 실의(失意)로 귀향(歸鄕)하는 처지였습니다.

◎ 지금 우리 교회에 출석 하는 사람들 중에 구스 내시(內侍)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로 보내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던 세상의 환경과 관습에서 어떠어떠한 우여 곡절로 예수님을 알고 이제 새로운 출발로 기대를 걸고 기대했던 교회의 하나님의 사랑으로 첫 발을 내디뎌 보지만 ,
이미 기득권(旣得權)처럼 제도화 되어있는 우리들의 교회에 예배의 분위기와 먼저 나왔던 교우(敎友)들 간끼리의 친절(親切)미나 환대(歡待)등은, 새로 처음 나오는 초신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긴장 되는 것들인데 구스 내시가 예루살렘을 찾아 갔다가 피부색(皮膚色)으로 이방인(異邦人)으로 예수 믿는 그 신성(神聖)한 성전(聖殿)에서의 기대(期待)와 실망(失望)을 경험 한 것 같은 것을 나에게 반드시 적용해서 우리들만은 내가 출석(出席)하는 교회에서 또는 직장에서 이웃에서 구스 내시(內侍)의 교훈을 금번의 교과를 통해서 가슴깊이 교훈하며 자신에게 적용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 8:26).
◎ 빌립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가르쳐줌으로 기별을 전파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구속사적인 의미를 밝히 이해하고 있었다.
◎ 빌립은 내시에게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쳤고, 내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침례 받기를 요청하였다. 침례를 받기 위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자신의 구주와 주님이시라는 사실이다.
◎ 교훈: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있던 에티오피아 내시는 빌립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침례를 받음으로 최초의 아프리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수(水) 9월17일
<봉사(奉仕)를 위(爲)해 은사(恩賜)를 받음 (고전 12:1-11)>
◎ 우리의 교회 직분에 있어서 집사(執事)나 장로(長老)로써 연말에 선거위원회를 통하여 집사로 장로(長老)로 직분을 받고 그 한 해 동안에 전도(傳導)는 고사하고 교회의 출석이나 일 년에 몇 번도 안 되는 예배의 순서에도 결석(缺席)하는 경우가 갈수록 증가(增加)한다는 사실이며, 더 나아가 자기의 순서가 언제 지나갔는지 조차도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신선(新鮮)한 것이며 고귀(高貴)한 것이며 특권(特權)인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봉사(奉仕)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귀한 은사(恩賜)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농기구(農器具)나 모든 공구(工具)나 제품들을 방치(放置)하여 두면 녹이 쓸고 산화(酸化)되고 부식(腐蝕)이 되듯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귀한 은사(恩賜)를 우리의 도움이 필요(必要)되는 이웃들에게 봉사(奉仕)를 위해 사용합시다.

1. 빌립은 복음 전파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귀신 쫓아내는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등을 행하였다.

◎ 다양한 영적은사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교회의 모든 교인들에게 영적은사를 주사 교인 각자가 교회와 인류의 공동 유익을 위한 사랑의 봉사 사업에 사용토록 하셨다. 이 은사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분의 뜻대로 각 교인에게 나누어 주어졌으며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임무들을 수행하는 데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재능과 봉사의 직무들을 공급해 준다. 성경에 의하면, 이런 은사들에는 믿음, 병 고치는 일, 예언하는 일, 복음전도, 가르치는 일, 다스리는 일, 화목 시키는 일, 동정을 베푸는 일, 백성들을 도와주고 격려하기 위한 자기희생적 봉사와 사랑 등이 포함된다. 어떤 교인들은 봉사의 일을 위해 준비시키고, 교회를 영적으로 성숙케 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지식의 일치를 가져오는 일에 특히 필요한 목회 사업과 복음전도 사업과 사도직과 가르치는 직무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성령의 은사를 받아 교회가 인정하는 임무에 종사하게 된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293)

◎ 교훈: 영적은사는 신자(信者)개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빌립은 귀신(鬼神)을 쫓아내고, 병자(病者)를 고치며, 담 대(膽大)히 복음을 전하는 은사(恩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망각(妄覺)하고 사는 것과,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기억할 때 감사함으로 은사를 주신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하자.

목(木) 9월18일
<빌립과 마술사(魔術師) 시몬 (행 8:9-25)>
◎ 빌립을 통하여 마술사(魔術師)시몬은 외관상(外觀上)으로는 예수님을 받아들였지만 그의 생애는 변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마술사 시몬은)계속해서 교회를 위협(威脅)하였고 사마리아에 있는 새 신자(信者)들에게 잠재적(潛在的)으로 심각하게 손상(損傷)을 시키기도 했던 것입니다.
초기의 그리스도교의 문서들은 시몬을 이단(異端)자요 이른바 비밀지식과 거래하는 신령운동인 영지주의의 초기 지도자중 하나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엘렌 지 화잇에 의하면 그는(시몬은) 후에 “복음사업을 반대하고 방해하기위하여” 로마까지 베드로를 따라가서 거기서 네로 황제의 후원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시몬의 속임수를 폭로(暴露)하자 네로는 화(禍)를 내어 베드로를 투옥(投獄)시켰다고 기록 하고 있다. (바울의 생애 328참조)

◎ 빌립은 마술사(魔術師)시몬을 만나다.
일반적으로 사귀(邪鬼)들린 사람들은 심(甚)하게 고통(苦痛)하였으나 예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초자연적 능력을 얻기 위하여 어떤 사람들은 사단의 능력을 일부러 받았다. 그들은 사귀와 싸우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점치는 귀신에 접한 자들이다. 마술쟁이 시몬, 박수 엘루마……. 확실하고 충분한 성경상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과 악한 천사들의 존재와 활동을 부인(否認)하는 자처럼 악령(惡靈)의 영향을 받는 일에 있어서 더 위험한 처지에 있는 자들은 없다. 우리가 악령(惡靈)의 간계(奸計)를 알지 못하면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유익을 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지혜가 명하는 대로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악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끝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을 속이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더욱 큰 세력으로 활동하여 사단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신념을 도처에 퍼뜨린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 방법을 감추는 것이 사단의 정책이다. 큰 기만적 연극의 주연으로서 사단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로 가장할 것이다. 마치 마술쟁이 시몬에 속은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무리들은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 까지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마술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기만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 거짓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성경과 일치 되지 않는다. (쟁투 하 331, 494-495)

◎ 우리는 성령을 사용할 수 없다 오직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은혜 지도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만 성령을 주신다. (소망 672)

◎ 빌립은 마술사 시몬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했고 바로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도와주었다. 하나님의 사역도 서로의 사역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

<초점(焦點)>
1.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인 것이다 그분을 위하여 사용할 때 가장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다.

2. 은사(恩賜)는 봉사(奉仕)위해 받은 축복이다. 은사(恩賜)받음을 깨닫는 자는 그분을 위해서 그 분의 사랑을 증거(證據)하게 될 것이요 그것이 곧 선교(宣敎)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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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 은사(恩賜)를 주신 목적(目的)

다양(多樣)한 성령(聖靈)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은사(恩賜)를 주셨을까요?

첫째,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은사는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좋은 목소리는 찬양대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누군가를 잘 가르치는 은사는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라고 주신 것입니다.

돈을 주셨다면, 그것은 그 돈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겁니다. 건강도 그렇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돕고 위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은사입니다. 이러한 은사는 개인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사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고전 14장)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교회의 덕을 위해서"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합니다.
만약 받은 은사가 교회를 분열시킨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은사는 교회의 덕(德)을 위해 잘 조절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 써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은사라도 그 은사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마귀(魔鬼)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용할 때 덕을 끼치지 못한다면 즉시 은사 사용하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은사는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때로 자기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언젠가 그 은사를 거두어 가실지도 모릅니다.

둘째, 은사는 그리스도의 교회인 그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성원 간의 상호 보완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浸禮)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2-13).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지만,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몸에 눈, 코, 귀, 손, 발이 있듯 그리스도의 몸에도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각각의 지체는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다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사람은 '난 쓸모없어', '난 죽어야지'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혹시 자기가 성경공부를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이 사람은 내 사람이야' 하는 분이 있습니까?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나와 특별히 친할 사람도, 덜 친할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친합니다. 모두 예수님의 제자,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몸을 만드시기 위해서 눈, 코, 입, 손, 발을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잘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서 한 명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서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목사는 중요하고, 교회서 궂은일을 하는 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성도(聖徒) 이렇게 서열을 매길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데는 모든 사람이 다 중요합니다.
직분(職分)의 차이(差異)와, 역할(役割)의 구별(區別)만 있을 뿐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약(弱)해 보이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하고 귀(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장기(臟器)중에서 중요한 부분들은 다 속에 들어가 있고 밖에서 갈비뼈들이 보호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표현된 것이 덜 중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어느 부분이 중요하고 다른 부분은 덜 중요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은사(恩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을 돕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즉 교회에 분쟁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계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나사못 한 개도 중요한 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높고 낮음,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를 받았다면 받은 은사대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이 하는 일을 도와주며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은사를 받았다면 혼자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은사는 섬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자기만족을 위해서 봉사(奉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봉사(奉仕)하는 것은 아닙니까?
봉사(奉仕)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봉사하거나 은사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오직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봉사하고 은사를 사용하십시오. 오직 우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성령님이시며,
우리는 그 구성원일 뿐임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엡 4:12). 만약 내게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서 ?
일대일 성경공부? 를 한다면, 그 목적은 성도를 온전히 세우는 것이야 합니다.
그것이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봉사하도록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의 은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 지혜로운 은사 사용법
성령의 은사를 지혜롭게 사용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은사 사용은 적당하게, 질서(秩序)대로 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39-40)고 했습니다.
그러니 예언(豫言)을 사모하며 방언하는 것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적당히 하라'는 말입니다. 양극단(兩極端)에 치우치지 말고, 성령의 은사를 적당하게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너무 양극단(兩極端)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또한 바울은 '질서 있게 쓰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질서가 있습니다.
영적(靈的)인 권위(權威)에, 그 질서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봉사는 자기 기분, 자기 판단, 자기감정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신적(狂信的)인 것도 아닙니다. 열정(熱情)은 광신(狂信)과 다릅니다.

둘째, 은사는 사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은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은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의 은사입니다. 바울은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고 말한 뒤,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은사는 사랑을 위해 써야 합니다. 은사에 사랑이 없다면 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4:1).

셋째, 은사를 사용할 때는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벧전 4:10-11). 또한 누가 말을 하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같이 하고, 봉사하려거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벧전 4:11).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벧전 4:11 하). 봉사를 하다가 창피를 당한다 해도, 무시를 당한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봉사하십시오. 좀 오해도 받아 보고, 이리저리 밟혀도 보고 그렇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恩賜)가 불일 듯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 일 듯하다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딤후 1:6). 우리도 성령의 은사가 아주 강력하게 일어나기를 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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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고 행복한 추석을 맞이해서 만나고 싶은 분들과 정감어린 시간속에 예수님과 꼭 함께하는 복된 시간이 되소서 <감사합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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