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속죄와 하나님의 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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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10-22 14:43 조회6,21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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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0월25일(안)
제4과 속죄(贖罪)와 하나님의 주도권(主導權)
<확대경(擴大鏡)>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恩惠)의 신비(神秘)를 깨닫는 자는 구원(救援)받은 증거(證據)의 선물(膳物)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救援)하기 위해 유일(唯一)하게 택하신 방법이 자원(自願)하신 예수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기억하며 생애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축복을 누립시다.
일(日) 10월19일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神秘) (롬 5:6-8)>
◎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물리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두뇌로 분석되어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인간들에게 무한(無限)히 주고 또 주어도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똑 같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으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쉬지 않고 계속 솟아 나오는 것과 같다고 표현 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받고 또 받아도 싫어하는 자가 없고,
받고 또 받아도 배부른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배고픈 이처럼 겸손해지고 낮아지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피나 무게로 측정할 수 없지만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가치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 세계 온 인류가 함께 받아서 그 모든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의 부피가 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척도(尺度)가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피부로 느껴질 수 있는 한정적(限定的)인 물체도 아니요,
어떤 고체(固體)덩어리도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며 무엇으로 깨달을 수가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짜로 거저 주시는 선물인
즉 은혜(恩惠)를 깨달은 자 만이 그 사랑을 알 수 가있다.
◎ 흔히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식(認識)을 초월(超越)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비밀(秘密)을 두고 ‘신비(神秘)’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恩惠)는 신비 중에서도 신비라는 의미(意味)로 ‘절대 신비(絶對神秘)’라고 표현(表現)합니다. 인간의 언어(言語)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고, 인간의 이성(理性)으로는 감히 파악(把握)할 수가 없다는 의미(意味)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고귀한 진리의 가장 신비한 특성이 나타나 있으며 교회와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화가 펼쳐져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요 3:16)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한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사랑인가! 율법의 강력한 주장들을 이해는 하면서도 무한히 풍성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손실인가! 하나님의 율법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로써 증거(證據)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다. 이 범죄한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선물은 모든 설교 가운데서 크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진리를 냉담하고 생기가 없는 태도로 증거(證據)할 때에 진리로 말미암아 심령들이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주님의 관계 가운데서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허락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저들은 얼마나 자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는 말씀으로 신자들에게 보증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가?”(1기별, 384)
◎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은 많은 꾀로 즉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斷切)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無限)한 사랑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기만 하면 된다.
월(月) 10월20일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신비(神秘)(엡 1:7)>
◎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신비
성경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신비(神秘)이다.
은혜(恩惠)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膳物)은 나타내는 단어(單語)이다.
은혜(恩惠)는 전적(全的)으로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은혜(恩惠)는 값을 치루고 사거나 팔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공짜로 받는 것을 은혜(恩惠)라고 한다.
성경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면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는데 그 은혜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은혜를 우리에게 거저 공짜로 주셨는데 그 주어진 은혜를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 자격(資格) 없는 이에게 주시는 은혜(恩惠)
“은혜를 받을 자격이 도무지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가 베풀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가 되신 예수님 때문에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허물 많은 죄인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된다.”(성경주석,E. 6권, 1070) (교과55)
◎ 성경은 어떤 특정한 사람 즉 아브라함이나, 다윗 등과 같은 사람의 삶이 핵심이 아닌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창조에서부터 인간을 구원(救援)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 하십니다.
◎ 창세기에서도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蔑視)하고 잊어버리고 자기스스로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거절(拒絶)하는 과정 중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잘해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선택(選擇)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이 무슨 자기의 의(義)나 자랑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즉 기쁜 소식은 아무런 자격이 없고 아무런 대가없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救援)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核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이고 전적(全的)인 사랑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임을 알게 된 다음에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길 원하는 사람은 은혜의 복음을 알기 때문에 그에 따라 생명의 길을 찾기 때문에 그것이 짐이 되지 아니하고 자유롭고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이 부담이 되고 어려움이 느껴지고 자유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그 길이 곧 생명의 길임을 알기에 삶을 제자의 삶으로 놓는 것에 대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 사랑과 은혜를 경험해본 사람 다윗
성경을 읽거나 신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윗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의 예수님의 족보에도 기록 되어있을 뿐 아니라, 거장 골리앗을 물매 돌로 쳐 죽인 사람으로, 시편에 많은 글을 쓴 사람으로 알고 있으며, 그의 생애는 탄탄대로(坦坦大路)를 거닐고 멋진 인생만을 살았던 사람으로 만 알고 있겠지만,
그의 생애에 요즘 말로 하는 산전수전(山戰水戰) 수중전(水中戰)모두 겪었던 사람이다.
☞ 다윗은 첫 아내를 남에게 빼앗겨도 보고(삼상 25:44참조)
배반(背叛)한 자식(子息)에게 쫓겨 필사(必死)의 도망(逃亡)길에 오르기도 했으며,
철석 같이 믿어온 심복(心腹)과 동료친구들에게 배신(背信)을 당하고,
사랑했던 백성들에게 등 돌림을 당하는 등 다윗의 일생은 참으로 스트레스가 넘치는 한때의 날들이었고, 한때는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게걸스럽게 “미친 체”하고서라도 살아보려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려도 보았지만(삼상 21:10-15) 모두 잘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다윗이 쫓기고 도망하며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기기도 하며, 인간의 고뇌(苦惱)를 경험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讚揚)하는 많은 글을 성경에 기록하였을까?
이는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깨달은 후에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인생 광야가 우리 앞의 현실들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고비 고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손길을 깨달은 삶이 축복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구요.
◎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의 한 면으로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졌다.
화(火) 10월21일
<영원(永遠)한 계획(計劃) (엡 1:4)>
◎ 사업(事業)성공의 비결(秘結)도, 공부를 잘하는 비결도, 멋지게 노후를 보내려는 비결도, 휴가를 보람 있고 멋지게 보낼 비결도, 전투(戰鬪)에서 승리하는 비결도,
이 모든 비결이 있다면 계획(計劃)을 철저(徹底)히 잘 짜야 되는 것이 기본(基本)중에 기본이다.
그러므로 계획에는 중장기 계획으로부터 1년 단위의 계획과 전반기 하반기로 월(月)단위로 주(週)단위로 하루의 계획으로 세밀하고 치밀하게 계획잘 세운 자들은 거의가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계획이란 좋은 것이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신약은 하나님의 비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드러내준다. (교과 56)
(첫째), 이 비밀은 “창세 전”(엡 1:4)에 세워진 것이었다. 즉, 인간이 타락하여 죄에 빠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다루실 방법을 계획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의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이다(골 1:26). 그것은 미리 계획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 특정한 시점에 발효될 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 비밀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 비밀은 특별히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었다(골 1:27). 이것은 죄 지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인성과 공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중보의 신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요, 그리스도인의 복음인 것이다.(엡 6:19)
(넷째), 이 비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엡 1:10)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통해 죄로 인해 파괴된 우주의 조화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이 계획은 교회 안에서의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을 통해 성공이 이미 예견되었다(엡 3:6).
(다섯째),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은밀히 계획된 그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심으로써 이제 알려진바 되었다.
◎ 놀라운 구속의 계획
“구속의 계획은 인간의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다. 하나님 편에서 그토록 낮게 몸을 낮추심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그 계획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깨달을 수가 없고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도 그보다 월등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것은 신성에다 인성의 옷을 입힌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셔서 죄가 만들어 놓은 진노를 당하심으로써만 성공할 수가 있다. … 이 계획을 헤아려 보려 할 때 유한한 인간의 모든 지성은 좌절하고 만다.”(성경주석,E. 5권, 1133) (교과 56-57)
◎ 인간을 구원(救援)하기 위한 사후적(事後的)처방이 아니라 “창세전(創世前)” 혹은 ‘영원한 때 전’부터 세워진 계획이었다. (골 1;26-27).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한 영원한 계획을 세우셨으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생애와 봉사를 통하여 성취하셨다.
수(水) 10월22일
<십자가(十字架)의 길(막 10:45)>
◎ 십자가의 길
① 기독교적 의미에서 십자가(十字架)는 불행한 나무이며, 가로막대를 얽어놓은 나무기둥으로서 그리스도인들과 동방인 들의 예를 따라 로마인들은 특정계층의 범죄자들을 거기에 매달아 놓거나 못을 박아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었던 형틀 이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위에서 죽음을 당하시므로 이 수치(羞恥)의 형상을 부활(復活)과 구원(救援)의 상징(象徵)으로 바꾸어 놓았다.
② 근간(近間)의 여자들 장식품(裝飾品)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사랑을 상징한 하트모양이고 그다음은 십자가(十字架) 모양(模樣)이라고 합니다.
목걸이와 귀걸이로 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그러나 십자가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사용하는지 또한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란 원래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써 주인을 배반(背叛)하고 도망친 노예(奴隸)나 금품(金品)을 탐(貪)내어 살인강도(殺人强盜)를 한 흉악범(凶惡犯)이나 국사변란을 일으킨 국사범(國事犯)들을 처형(處刑)하는 데 쓰였던 형틀이었다.
그 당시 처형하는 방법에는 목매는 법과 칼로 목을 자르는 단두대(斷頭臺), 불로 태워 죽이는 화형(火刑), 십자가(十字架)에 매달아 죽이는 방법이 있었는데 다른 방법의 처형방법은 죽은 사람도 큰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데 나무 위에 사람의 손과 발을 못 박아 햇볕에 쪼여서 길거리에다 달아 고통(苦痛)속에 죽어가게 함으로써 타인(他人)들이 이것을 보고 감히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고통스럽고 무서운 처형(處刑)법이 십자가형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름답게 하는 장식품으로서 인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한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깊은 뜻을 이해하고 마음속 깊이 새겨서 그 뜻대로 살고 그 뜻대로 행하겠다는 표시로 달고 다니는 줄 압니다.
③ 십자가!
십자가란 말을 들으면 우리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미 예수님하면 십자가이고,
십자가하면 예수님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잔혹한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도(道)는 십자가(十字架)입니다.
십자가(十字架)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18절에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인은 참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신앙(信仰)중에 최고의 성숙한 신앙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신앙입니다.
잘 믿으면 사업이 잘된다. 병이 낫는다. 만사형통한다는 축복만 받는 신앙에만 머물러 있으면 성숙한 신앙이 못되는 것입니다.
축복받고 응답받는 신앙도 가져야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한 단계는 십자가를 지는 즉 희생을 아끼지 않는 신앙인 것입니다.
④ 십자가의 길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람이 편리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 면 이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 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였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인 것입니다.
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요 어려운 길이지만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만 한다면 영광의 길입니다.
가족이 알아주지 않고 세상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 외로운 길이요 고난 의 길이요 손해(損害)보는 것 같은 길이요 어 떤 때는 억울한 소리도 듣는 일이 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반드시 큰 영광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장 27절). 주님께서 큰상으로 하늘과 땅에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⑤ 믿음이 형식화되어가고 신앙이 잠들어가는 이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말없이 걸어가며,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감당해 나가갑시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요 희생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榮光)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祈願)합니다.
◎ 매일 한 시간 그분의 희생을 묵상함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명상하는 데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확실히 머릿속에 그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더욱 굳어질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격발되고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83)
◎ 인간을 구원하는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당신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는 것뿐이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심장(心臟)을 통과하는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 예수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해 그 길이 되셨다.
목(木) 10월23일
<하나님의 계획(計劃)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成就)됨. (눅 4:43)>
◎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크고 작은 일들과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전개되어 가는 것을 몸으로 보고 느끼며 살면서 우리의 삶이 온통 현실에 도취(陶醉)되어 세상 역사가 혼란하게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것 같이 느끼며 살고 있을 때가 많을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성경에 예언되어있는 말씀을 적당히 자기에게 필요 되는 말씀만을 선택하여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때로는 인용하면서 살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있는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대가 듣고 싶은 대로 성경말씀을 듣고 보면서 신앙을 하는 것이다.
비근 한 일예로 안식일에 관한 말씀과 취지와 뜻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성경의 말씀보다, 유전(遺傳)과 전통과 사람들의 말씀이 그들의 중심에서 있기 때문에 많은 이단 사술에 노예로 전락되어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계획과 과정과 끝을 성경에 확실히 기록하여놓고 성취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한 타락으로 말미암는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으로 죄인에게 구원자(救援者)를 보내주심으로 타락한 모두에게 영생의 길을 이 또한 마련해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예언의 성취(成就)등을 성경의 예언서를 통해서 미리 계획하셨고 빈틈없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의 시작과 진행과 끝을 미리아시고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에 대한 지적(知的)인 확신을 (사 42:9, 46:9-10, 호 12:10, 벧후 1:21, 민 12:6)에 기록 해놓으셨고,
하나님께서 일견 혼란한 듯이 보이는 세상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그분의 뜻과 계획을 관철시켜 오셨으며 미래에 이루시려는 섭리가 무엇임을 확실히 알고 믿기 위하여 (단 2:29, 계1:1, 암 3:7, 요 14:29, 롬 15:4, 대하 20:20)등에 기록되어 있다.
◎ 계획은 사람들이 모두가 제정신이 들면 누구나 세운다.
최소한도 하루에 계획은 말이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계획이 아닌 당면한 문제만을 직시(直視)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계획이라고 할 수가 없다. 계획은 성공의 기초이며 절대이지만 허황된 계획이나 실현 불가능한 계획도 인간에게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계획의 100%성취는 바로 성공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계획으로 역사를 주관 하셨고 지금도 진행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성취하실 것이다.
◎ 하나님, 인간, 죄, 구속(救贖), 칭의(稱義), 성화(聖化),등의 말들은 두 낱말로 표시한다면= 은혜(恩惠)와 영광(榮光)이요, 한 낱말로 표현 한다면 예수님이다.
◎ 이 세상의 모든 만사(萬事)는 하나님에 의해서 만세전부터 계획되어 졌다. (행2: 23)
1) 만세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하나님의 작정 (decree)"이라 합니다.
2)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정했다고 말합니다. (시139: 16)
3) 우리의 구원도 만세전에 하나님이 다 정하셨습니다. (엡1: 4)
4) "하나님의 섭리 (providence)"란 "작정"이 역사(歷史)속에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5) 하나님은 그 계획을 피조물과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6) 모든 것에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하나님의 주권 (sovereignty)"이라고도 합니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셔야 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빈틈없이 성취되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매 걸음마다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는 삶이었다.
<초점(焦點)>
1. 완전하게 창조된 인간이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것을 구출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2. 죄인을 구원하기위하여 자원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늘 기다리고 계신다.
이번 교과도 너무늦게 올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머리숙여 꾸벅 인사드립니다>
제4과 속죄(贖罪)와 하나님의 주도권(主導權)
<확대경(擴大鏡)>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恩惠)의 신비(神秘)를 깨닫는 자는 구원(救援)받은 증거(證據)의 선물(膳物)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救援)하기 위해 유일(唯一)하게 택하신 방법이 자원(自願)하신 예수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기억하며 생애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축복을 누립시다.
일(日) 10월19일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神秘) (롬 5:6-8)>
◎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물리적으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두뇌로 분석되어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인간들에게 무한(無限)히 주고 또 주어도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똑 같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으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쉬지 않고 계속 솟아 나오는 것과 같다고 표현 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받고 또 받아도 싫어하는 자가 없고,
받고 또 받아도 배부른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배고픈 이처럼 겸손해지고 낮아지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피나 무게로 측정할 수 없지만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가치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 세계 온 인류가 함께 받아서 그 모든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의 부피가 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척도(尺度)가 어떻게 표현되는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피부로 느껴질 수 있는 한정적(限定的)인 물체도 아니요,
어떤 고체(固體)덩어리도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며 무엇으로 깨달을 수가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공짜로 거저 주시는 선물인
즉 은혜(恩惠)를 깨달은 자 만이 그 사랑을 알 수 가있다.
◎ 흔히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식(認識)을 초월(超越)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비밀(秘密)을 두고 ‘신비(神秘)’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恩惠)는 신비 중에서도 신비라는 의미(意味)로 ‘절대 신비(絶對神秘)’라고 표현(表現)합니다. 인간의 언어(言語)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고, 인간의 이성(理性)으로는 감히 파악(把握)할 수가 없다는 의미(意味)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고귀한 진리의 가장 신비한 특성이 나타나 있으며 교회와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화가 펼쳐져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요 3:16)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한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사랑인가! 율법의 강력한 주장들을 이해는 하면서도 무한히 풍성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손실인가! 하나님의 율법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로써 증거(證據)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사실이다. 이 범죄한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선물은 모든 설교 가운데서 크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진리를 냉담하고 생기가 없는 태도로 증거(證據)할 때에 진리로 말미암아 심령들이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주님의 관계 가운데서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허락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저들은 얼마나 자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는 말씀으로 신자들에게 보증의 말씀을 전해 주었는가?”(1기별, 384)
◎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은 많은 꾀로 즉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斷切)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無限)한 사랑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기만 하면 된다.
월(月) 10월20일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신비(神秘)(엡 1:7)>
◎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신비
성경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신비(神秘)이다.
은혜(恩惠)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膳物)은 나타내는 단어(單語)이다.
은혜(恩惠)는 전적(全的)으로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은혜(恩惠)는 값을 치루고 사거나 팔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공짜로 받는 것을 은혜(恩惠)라고 한다.
성경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면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는데 그 은혜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은혜를 우리에게 거저 공짜로 주셨는데 그 주어진 은혜를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 자격(資格) 없는 이에게 주시는 은혜(恩惠)
“은혜를 받을 자격이 도무지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가 베풀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가 되신 예수님 때문에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허물 많은 죄인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된다.”(성경주석,E. 6권, 1070) (교과55)
◎ 성경은 어떤 특정한 사람 즉 아브라함이나, 다윗 등과 같은 사람의 삶이 핵심이 아닌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창조에서부터 인간을 구원(救援)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 하십니다.
◎ 창세기에서도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멸시(蔑視)하고 잊어버리고 자기스스로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거절(拒絶)하는 과정 중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잘해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선택(選擇)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이 무슨 자기의 의(義)나 자랑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즉 기쁜 소식은 아무런 자격이 없고 아무런 대가없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救援)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核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이고 전적(全的)인 사랑은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임을 알게 된 다음에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길 원하는 사람은 은혜의 복음을 알기 때문에 그에 따라 생명의 길을 찾기 때문에 그것이 짐이 되지 아니하고 자유롭고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 하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이 부담이 되고 어려움이 느껴지고 자유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그 길이 곧 생명의 길임을 알기에 삶을 제자의 삶으로 놓는 것에 대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 사랑과 은혜를 경험해본 사람 다윗
성경을 읽거나 신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윗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의 예수님의 족보에도 기록 되어있을 뿐 아니라, 거장 골리앗을 물매 돌로 쳐 죽인 사람으로, 시편에 많은 글을 쓴 사람으로 알고 있으며, 그의 생애는 탄탄대로(坦坦大路)를 거닐고 멋진 인생만을 살았던 사람으로 만 알고 있겠지만,
그의 생애에 요즘 말로 하는 산전수전(山戰水戰) 수중전(水中戰)모두 겪었던 사람이다.
☞ 다윗은 첫 아내를 남에게 빼앗겨도 보고(삼상 25:44참조)
배반(背叛)한 자식(子息)에게 쫓겨 필사(必死)의 도망(逃亡)길에 오르기도 했으며,
철석 같이 믿어온 심복(心腹)과 동료친구들에게 배신(背信)을 당하고,
사랑했던 백성들에게 등 돌림을 당하는 등 다윗의 일생은 참으로 스트레스가 넘치는 한때의 날들이었고, 한때는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게걸스럽게 “미친 체”하고서라도 살아보려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려도 보았지만(삼상 21:10-15) 모두 잘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다윗이 쫓기고 도망하며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기기도 하며, 인간의 고뇌(苦惱)를 경험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讚揚)하는 많은 글을 성경에 기록하였을까?
이는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깨달은 후에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인생 광야가 우리 앞의 현실들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고비 고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손길을 깨달은 삶이 축복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구요.
◎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의 한 면으로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졌다.
화(火) 10월21일
<영원(永遠)한 계획(計劃) (엡 1:4)>
◎ 사업(事業)성공의 비결(秘結)도, 공부를 잘하는 비결도, 멋지게 노후를 보내려는 비결도, 휴가를 보람 있고 멋지게 보낼 비결도, 전투(戰鬪)에서 승리하는 비결도,
이 모든 비결이 있다면 계획(計劃)을 철저(徹底)히 잘 짜야 되는 것이 기본(基本)중에 기본이다.
그러므로 계획에는 중장기 계획으로부터 1년 단위의 계획과 전반기 하반기로 월(月)단위로 주(週)단위로 하루의 계획으로 세밀하고 치밀하게 계획잘 세운 자들은 거의가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계획이란 좋은 것이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신약은 하나님의 비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드러내준다. (교과 56)
(첫째), 이 비밀은 “창세 전”(엡 1:4)에 세워진 것이었다. 즉, 인간이 타락하여 죄에 빠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다루실 방법을 계획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의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이다(골 1:26). 그것은 미리 계획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 특정한 시점에 발효될 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 비밀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 비밀은 특별히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었다(골 1:27). 이것은 죄 지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인성과 공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중보의 신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요, 그리스도인의 복음인 것이다.(엡 6:19)
(넷째), 이 비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엡 1:10)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통해 죄로 인해 파괴된 우주의 조화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이 계획은 교회 안에서의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을 통해 성공이 이미 예견되었다(엡 3:6).
(다섯째),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은밀히 계획된 그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심으로써 이제 알려진바 되었다.
◎ 놀라운 구속의 계획
“구속의 계획은 인간의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다. 하나님 편에서 그토록 낮게 몸을 낮추심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그 계획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깨달을 수가 없고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도 그보다 월등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것은 신성에다 인성의 옷을 입힌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셔서 죄가 만들어 놓은 진노를 당하심으로써만 성공할 수가 있다. … 이 계획을 헤아려 보려 할 때 유한한 인간의 모든 지성은 좌절하고 만다.”(성경주석,E. 5권, 1133) (교과 56-57)
◎ 인간을 구원(救援)하기 위한 사후적(事後的)처방이 아니라 “창세전(創世前)” 혹은 ‘영원한 때 전’부터 세워진 계획이었다. (골 1;26-27).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한 영원한 계획을 세우셨으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생애와 봉사를 통하여 성취하셨다.
수(水) 10월22일
<십자가(十字架)의 길(막 10:45)>
◎ 십자가의 길
① 기독교적 의미에서 십자가(十字架)는 불행한 나무이며, 가로막대를 얽어놓은 나무기둥으로서 그리스도인들과 동방인 들의 예를 따라 로마인들은 특정계층의 범죄자들을 거기에 매달아 놓거나 못을 박아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두었던 형틀 이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위에서 죽음을 당하시므로 이 수치(羞恥)의 형상을 부활(復活)과 구원(救援)의 상징(象徵)으로 바꾸어 놓았다.
② 근간(近間)의 여자들 장식품(裝飾品)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사랑을 상징한 하트모양이고 그다음은 십자가(十字架) 모양(模樣)이라고 합니다.
목걸이와 귀걸이로 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그러나 십자가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사용하는지 또한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란 원래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써 주인을 배반(背叛)하고 도망친 노예(奴隸)나 금품(金品)을 탐(貪)내어 살인강도(殺人强盜)를 한 흉악범(凶惡犯)이나 국사변란을 일으킨 국사범(國事犯)들을 처형(處刑)하는 데 쓰였던 형틀이었다.
그 당시 처형하는 방법에는 목매는 법과 칼로 목을 자르는 단두대(斷頭臺), 불로 태워 죽이는 화형(火刑), 십자가(十字架)에 매달아 죽이는 방법이 있었는데 다른 방법의 처형방법은 죽은 사람도 큰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데 나무 위에 사람의 손과 발을 못 박아 햇볕에 쪼여서 길거리에다 달아 고통(苦痛)속에 죽어가게 함으로써 타인(他人)들이 이것을 보고 감히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고통스럽고 무서운 처형(處刑)법이 십자가형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름답게 하는 장식품으로서 인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한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깊은 뜻을 이해하고 마음속 깊이 새겨서 그 뜻대로 살고 그 뜻대로 행하겠다는 표시로 달고 다니는 줄 압니다.
③ 십자가!
십자가란 말을 들으면 우리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미 예수님하면 십자가이고,
십자가하면 예수님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잔혹한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도(道)는 십자가(十字架)입니다.
십자가(十字架)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18절에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인은 참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신앙(信仰)중에 최고의 성숙한 신앙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신앙입니다.
잘 믿으면 사업이 잘된다. 병이 낫는다. 만사형통한다는 축복만 받는 신앙에만 머물러 있으면 성숙한 신앙이 못되는 것입니다.
축복받고 응답받는 신앙도 가져야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한 단계는 십자가를 지는 즉 희생을 아끼지 않는 신앙인 것입니다.
④ 십자가의 길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람이 편리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 면 이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 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였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인 것입니다.
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요 어려운 길이지만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만 한다면 영광의 길입니다.
가족이 알아주지 않고 세상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 외로운 길이요 고난 의 길이요 손해(損害)보는 것 같은 길이요 어 떤 때는 억울한 소리도 듣는 일이 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반드시 큰 영광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장 27절). 주님께서 큰상으로 하늘과 땅에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⑤ 믿음이 형식화되어가고 신앙이 잠들어가는 이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말없이 걸어가며,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감당해 나가갑시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요 희생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榮光)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祈願)합니다.
◎ 매일 한 시간 그분의 희생을 묵상함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명상하는 데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확실히 머릿속에 그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더욱 굳어질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격발되고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83)
◎ 인간을 구원하는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당신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는 것뿐이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심장(心臟)을 통과하는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 예수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해 그 길이 되셨다.
목(木) 10월23일
<하나님의 계획(計劃)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成就)됨. (눅 4:43)>
◎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크고 작은 일들과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전개되어 가는 것을 몸으로 보고 느끼며 살면서 우리의 삶이 온통 현실에 도취(陶醉)되어 세상 역사가 혼란하게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것 같이 느끼며 살고 있을 때가 많을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성경에 예언되어있는 말씀을 적당히 자기에게 필요 되는 말씀만을 선택하여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때로는 인용하면서 살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있는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대가 듣고 싶은 대로 성경말씀을 듣고 보면서 신앙을 하는 것이다.
비근 한 일예로 안식일에 관한 말씀과 취지와 뜻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성경의 말씀보다, 유전(遺傳)과 전통과 사람들의 말씀이 그들의 중심에서 있기 때문에 많은 이단 사술에 노예로 전락되어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계획과 과정과 끝을 성경에 확실히 기록하여놓고 성취되어 가고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한 타락으로 말미암는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으로 죄인에게 구원자(救援者)를 보내주심으로 타락한 모두에게 영생의 길을 이 또한 마련해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예언의 성취(成就)등을 성경의 예언서를 통해서 미리 계획하셨고 빈틈없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의 시작과 진행과 끝을 미리아시고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에 대한 지적(知的)인 확신을 (사 42:9, 46:9-10, 호 12:10, 벧후 1:21, 민 12:6)에 기록 해놓으셨고,
하나님께서 일견 혼란한 듯이 보이는 세상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그분의 뜻과 계획을 관철시켜 오셨으며 미래에 이루시려는 섭리가 무엇임을 확실히 알고 믿기 위하여 (단 2:29, 계1:1, 암 3:7, 요 14:29, 롬 15:4, 대하 20:20)등에 기록되어 있다.
◎ 계획은 사람들이 모두가 제정신이 들면 누구나 세운다.
최소한도 하루에 계획은 말이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인 계획이 아닌 당면한 문제만을 직시(直視)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계획이라고 할 수가 없다. 계획은 성공의 기초이며 절대이지만 허황된 계획이나 실현 불가능한 계획도 인간에게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계획의 100%성취는 바로 성공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계획으로 역사를 주관 하셨고 지금도 진행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성취하실 것이다.
◎ 하나님, 인간, 죄, 구속(救贖), 칭의(稱義), 성화(聖化),등의 말들은 두 낱말로 표시한다면= 은혜(恩惠)와 영광(榮光)이요, 한 낱말로 표현 한다면 예수님이다.
◎ 이 세상의 모든 만사(萬事)는 하나님에 의해서 만세전부터 계획되어 졌다. (행2: 23)
1) 만세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하나님의 작정 (decree)"이라 합니다.
2)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정했다고 말합니다. (시139: 16)
3) 우리의 구원도 만세전에 하나님이 다 정하셨습니다. (엡1: 4)
4) "하나님의 섭리 (providence)"란 "작정"이 역사(歷史)속에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5) 하나님은 그 계획을 피조물과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6) 모든 것에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하나님의 주권 (sovereignty)"이라고도 합니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셔야 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빈틈없이 성취되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매 걸음마다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는 삶이었다.
<초점(焦點)>
1. 완전하게 창조된 인간이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것을 구출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2. 죄인을 구원하기위하여 자원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늘 기다리고 계신다.
이번 교과도 너무늦게 올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머리숙여 꾸벅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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