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속죄와 하나님의 주도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10-16 17:00 조회6,692회 댓글0건본문
제4과 속죄와 하나님의 주도권
10월 25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2분)
기억절: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연구범위: 롬 3:19-22, 5:6-8, 5:20-21, 엡 1:4, 골 1:26-27, 딤후 1:8-9, 딛 1:2.
중심 사상: 인간의 타락을 예상하신 하나님께서는 죄가 생겨나기 오래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안식일 오후
인간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상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이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일단 이 자유를 주신 후에는 그것은 그들의 것이 되며, 그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자유는 제거될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랑과 감사와 신실한 순종으로 그분을 섬김으로써 이 자유를 사용할 수도 있었고, 이 생명의 선물을 거절하고 여호와께 불순종함으로써 이 자유를 오용할 수도 있었다. (만약 인간이 불순종을 선택할 수 없었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불순종의 가능성을 내다보시고 그것을 위한 대비책을 세우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창조되기 오래 전에, 죄와 악이 실제로 생겨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생애를 중심으로 세워진 구원의 계획을 생각하셨던 것이다.
핵심본문: 엡 1:9-10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느끼기: 분리는 하나님과 우리에게 공히 고통을 가져옴을 깨닫는다.
행하기: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품성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날마다 묵상한다.
교과 개요
I. 완전함에서 영원한 죽음으로(전 7:29)
A.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으나 그들이 혼란을 자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지럽혀 놓은 모든 것을 정리하시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구속을 제공하지 않으셨다면 다른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실 수 있었을지에 대해 토의해 보라. 그렇게 되었을 때의 가능한 결과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 얼마나 더 잘 알게 되는가? 만약 그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지 않으시고 죽을 운명에 내버려 두셨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II. 구출 작전이 개시됨(롬 5:6-8)
A. 우리는 고침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구렁텅이에 버려두시고 죄의 결과인 영원한 파멸을 당하게 하실 수도 있으셨다. 당신은 어떤 조건하에서 누구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는가? 자녀, 배우자, 부모? 당신은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나 테러주의자, 혹은 마약 거래자나 윤락녀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대답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묵상해 보라.
요점: 우리를 구원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고 믿기를 바라신다.
일요일(10월 19일)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롬 5:6-8)
1.로마서 5:6-8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신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롬5: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답: 하나님의 자발적인 사랑이다.
하나님께는 인류를 구원할 의무가 없으셨다. 그것은 강요된 일도 아니었다. 인류가 타락의 상태에 빠진 것은 인간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 7:29)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의무가 있으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한층 더 값진 것이 되게 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어떤 의무감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택으로 된 일이기 때문이다. 창조주이신 그분께서는 피조물인 우리를 구원할 의무가 없으셨다.
2. 로마서 3:19-22에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율법은 죄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합니까?
롬3:19-22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답: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그 행위로는 의를 얻을 육체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의, 예수를 믿음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에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참조 롬 8:3, 갈 3:21).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살게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관계 회복을 위하여 친히 주도권을 잡으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의 의(義)를 나타내셨다. 이 의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에게 이르러 온다. 만약 구원이 순종을 통해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의무를 지셔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만 인류가 용서받고 당신과의 영원한 교제를 회복하도록 지정하셨다.
순수한 사랑이 동기가 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고 죄인들을 위해 당하신 고통을 볼 때에, 우리는 순결하고 영혼을 위한 사심 없는 사랑의 동기로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즐거움과 편리를 희생해가면서 그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 앞에 있는 기쁨 즉 모든 고통 중에서도 그분을 견디게 하였던 기쁨은 불쌍한 죄인들의 구원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의 사업에 임하는 기쁨과 열망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2권, 115).
<부가설명> 하나님의 그 자체가 사랑이시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인간이 말하는 정이 아니라고 앞에 어디에서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람이 감히 설명하지 못한다. 앞 어느 과에서 말했듯이 성경이 계시한 사랑의 분명한 한 가지 상태는 “사랑은 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4:9). 사망이 된 아담과 이 지구를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을 살리려는 충동으로 견딜 수 없으신 것이었다. 자신이 죽으실지라도 이것을 살려야 하였다. 이것이 사랑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랑에 반응하기만 하면 된다.
월요일(10월 20일)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엡 1:7)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거민들과 우주의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이 반역한 인류를 위해 행하시려는 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존재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과거에 결코 보지 못했던 일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사랑과 능력의 일면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능력으로써 이 지구상의 죄를 소멸시키실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이 죄 많고 반역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친절과 자비로 다가가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에 관하여,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 6:35)고 증언하셨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 바울이 죄의 현상을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와 대조시킨 것에서 어떤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롬 5:20-21)
롬5:20,2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답: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 보이려는 것 같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충분히 이해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일이 없었으면 인류는 전혀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것이다(요일3:16 참고).
성경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면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인들을 당신과의 충만한 관계 속으로 회복시키고자 하신다. 은혜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임을 가리킨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우리가 죄에 대해 변명할 수 없으며, 그래서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죽음 대신 영생의 소망과 약속이 주어졌다. 마침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속성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통해 온 우주에 드러났다.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엡 1:7)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자격 없는 이에게 주시는 은혜
“은혜를 받을 자격이 도무지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가 베풀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가 되신 예수님 때문에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허물 많은 죄인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70)
<부가설명>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요1:14). 물론 하나님의 사랑도 예수 그리스도이다(롬8:39). 우리는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그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그 은혜는 죄를 이기고 멸하는 능력이며, 그 사랑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죄인 되었을 때에 이것이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알기를 원하신다. 그 사랑은 용서하고 살리는 사랑이다. 그것은 생명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그랬을 때 우리도 사랑이 된다. 전도는 이 사랑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교훈: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의 한 면으로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졌다.
화요일(10월 21일) 영원한 계획(엡 1:4)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할 책임이 없으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 일을 자원하셨다. 이 결정은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어야 할 만큼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루는 일이었으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희생에 관해 망설이시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다.
1.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에 관하여 다음 성경절들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엡 1:4, 골 1:26-27, 딤후 1:8-9, 딛 1:2)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골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딤후1:8,9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딛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답: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은 사후적(事後的) 처방이 아니라 '창세 전' 혹은 '영원한 때 전'부터 세워진 계획이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신약은 하나님의 비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드러내준다.
첫째, 이 비밀은 “창세 전”(엡 1:4)에 세워진 것이었다. 즉, 인간이 타락하여 죄에 빠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다루실 방법을 계획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의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이다(골 1:26). 그것은 미리 계획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 특정한 시점에 발효될 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 비밀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 비밀은 특별히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었다(골 1:27). 이것은 죄 지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인성과 공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중보의 신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요, 그리스도인의 복음인 것이다.(엡 6:19)
넷째, 이 비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엡 1:10)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통해 죄로 인해 파괴된 우주의 조화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이 계획은 교회 안에서의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을 통해 성공이 이미 예견되었다(엡 3:6).
다섯째,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은밀히 계획된 그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심으로써 이제 알려진바 되었다.
놀라운 구속의 계획
“구속의 계획은 인간의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다. 하나님 편에서 그토록 낮게 몸을 낮추심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그 계획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깨달을 수가 없고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도 그보다 월등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것은 신성에다 인성의 옷을 입힌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셔서 죄가 만들어 놓은 진노를 당하심으로써만 성공할 수가 있다. … 이 계획을 헤아려 보려 할 때 유한한 인간의 모든 지성은 좌절하고 만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3)
<부가설명> 전예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타락할 것도 예정했고 구원받을 것도 개별적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바로 창세전에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런 말씀들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기 때문에 루시퍼의 반란이나 지구의 아담의 범죄에 대하여 모르실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럴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계획을 미리 세웠다는 생각은 성경의 계시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들어맞는 것인지 필자로서는 잘 모르겠다. 우리교회도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예언의 신의 증거를 또 그렇게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은데, 필자는 이해한 이렇다.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그분이 창조한 우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도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않는 대로 좋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넉넉히 해결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미리 구원의 계획을 세워두신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여호와라는 그 이름은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이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방도를 즉시 실천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동안 그 방도는 비밀인 것이다. 나타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에 죄가 일어났을 때 그 방도는 즉시 나타났으며, 지구에 죄가 들어왔을 때 그 방도는 곧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전지성이며 전능성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이시다. 여호와 외의 모든 존재는 그가 창조하였다.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 그가 창조한 모든 것에 대하여 그분은 창조한 상태로 돌보시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다. 지구에 죄가 들어왔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죄를 처리하고 죄에서 나와서 생명에 참여할 조처를 다 취하셨다. 이런 사실을 성경은“자기 때에 나타내셨다”고 말한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1:2,3).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9,10).
이런 사실을 계시로 보았을 때 선지자와 사도들은 창세전부터 만대에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나타낸 것이라고 기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 이제 라는 말은 사람이 범죄한 후이며 예수께서 구주로 세상에 오신 때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교과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필자의 일 이해를 한번 생각해보시고,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면 “숨 쉬는 것은 썩지 않는다”라는 필자의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한 영원한 계획을 세우셨으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생애와 봉사를 통하여 성취하셨다.
수요일(10월 22일) 십자가의 길(막 10:45)
<토의를 위한 위란 질문의 도입부에 혼합주의(syncretism)에 대한 질문이 있다. 혼합주의는 모든 종교에는 동일하게 구원이 있다는 사상을 가르치는 주의 같다. 다원주의와 닮은 사상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죄와 구원을 도덕성에 바탕을 두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죄와 구원문제가 생명과 존재에 대한 것임을 알면 감히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반역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실 수 있으셨다. 그분은 아담과 하와를 멸망시키시고 지구까지도 즉시 파괴하실 수 있으셨다. 혹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로 인해 고통당하고 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두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한편 그분께서는 그들의 반역을 묵과하지도 않으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과 똑같이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 허용하지도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지도 않으셨으며, 그들의 반역을 묵인하지도 않으셨다면, 그분은 과연 무엇을 행하셨는가? 그분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의 계획을 실행시키셨다.
1. 다음 구절들은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줍니까?(막 10:45, 갈 1:4, 2:20, 엡 5:2, 딛 2:14)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인간을 구원하는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당신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는 것뿐이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정하셨을 때,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상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 죽음과 부활, 그리고 중보를 통해서만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낼 수만 있다면,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기꺼이 '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즉, 하늘로 가는 길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심장을 통과하는 길 뿐이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셨을 때(마 26:36-46), 그분께서는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는지 물으시는 기도를 아버지께 드리셨다. 침묵 가운데 응답이 왔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길 외에는 인류를 구원할 다른 길이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로 자신을 구별하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바 되었다. 다른 길이 없었다.
매일 한 시간 그분의 희생을 묵상함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명상하는 데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확실히 머리 속에 그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더욱 굳어질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격발되고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83)
<부가설명> 앞에 공부한 어느 과목에서 죄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설명한 부가설명을 상기하면서 오늘의 문제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죄는 도덕성 문제 이전에 생명과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그 존재를 상실하였다. 그것이 바로 사망이다. 그는 사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다. 사망이 된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사망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명으로 옮길 수 없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썩을 수밖에 없다. 그가 선악과를 먹자마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다(엡4:18). 그것은 모든 것이 종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사랑의 발로로 그들을 다시 살리시는 일을 수행하신다. 그것이 바로 대속이다. 즉 아담이 죽어 그 존재를 상실하는 대신에 예수께서 죽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죽은 그 죽음을 예수 안에서 안 죽어도 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며 이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요5:24). 아담의 모든 후손이 아담 안에서 생명에서 사망으로 옮겼는데, 이제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죄를 처리했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구원의 기본적인 문제를 잘 이해하기 바란다. 그래서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선악의 행위 문제 이전이며 성품 문제 이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예수 외에 결코 아무도 이 일을 이룰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 과의 부가설명에서 보게 될 것이다.
교훈: 타락한 인간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심장을 통과하는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 예수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해 그 길이 되셨다.
목요일(10월 23일)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됨(눅 4:43)
1. 예수께서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행하셔야만' 했던 일에 대해 다음 구절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눅 4:43, 9:22, 17:25, 19:5, 22:37, 24:7, 24:26, 24:44)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눅9: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눅17: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눅24:7,26,44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답: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셔야 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이 구절들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하나의 동사는 헬라어로 데이(dei)인데, '~해야 한다'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동사는 예수님의 생애의 매우 중요한 일면을 나타내 준다.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그분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완수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요 9:4). 그분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 4:43)고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의 모든 부분은 구원의 계획과 관련이 있었다. 그분께서 삭개오를 보시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고 말씀하신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의 진정한 목표는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그분께서 걸어가셔야 할 어두운 길이 있었다. 그분은 예루살렘으로 가셔야만 했다. 그분은 가지 않기로 선택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그 길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아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마 16:21)을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악한 세대에게 버린바 되시기 위해 그곳으로 가셔야만 했다(눅 17:25). 그분께서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으셔야 했다(눅 22:37).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에 높이 들리셔야만 했다(요 3:14, 12:34). 그러나 죽는 것만으로는 그분의 사명이 성취되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셔서 영광 가운데 영접 받으시고(행 17:3), 모든 예언들이 성취될 때까지 거기에 머무셔야만 했다(행 3:21). 그분은 삼위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계획을 따르고 계셨던 것이다.
십자가의 그늘에 눌린 제자들
“제자들은 저희 선생을 사랑하였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압도되었다. … 어찌하여 예수께서는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가셔서 자기가 그 곳에서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우를 당하셔야 하는가 하고 저들은 의심하였다. 예수께서 어떻게 이와 같은 운명에 자신을 맡기시고, 그가 친히 저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 전에 저희가 방황하였던 것보다 더 캄캄한 흑암 중에 저들을 버리실 수가 있단 말인가?”(시대의 소망, 418)
<부가설명>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창조주의 계획에 알맞게 우주를 창조하셨다. 사40:26을 읽으면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 설계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구도 그의 설계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지구가 루시퍼의 꾐에 넘어갔을 때에라도 창조주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호와라는 그 이름 그 존재에는 어떤 경우가 생겨도 모두 다 해결할 수 있는 섭리가 이미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섭리에 의하여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피조물의 자리에 오시고 다함없는 극진한 사랑의 섭리를 실천하셨다. 그렇게 할 것을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해주셨고, 예언대로 친히 오셔서 예언한 그것들을 친히 성취하였다. 그래서 창조의 계획대로 우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엡1:10). 그 중에 우리가 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한 일인가.
교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빈틈없이 성취되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매 걸음마다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는 삶이었다.
금요일(10월 2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만약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은혜'라는 단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고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죄 없는 천사들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지는 않는다. 이 천사들은 은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가 필요하지도 않다. 은혜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그것을 구하지 않았을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베풀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찾아 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것을 기꺼이 주신다. 이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엘렌 G. 화잇, 오늘의 나의 생애, 100)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뜻을 행할 능력을 주셨다. 전지하신 분께서는 인간의 반역과 그 모든 결과를 미리 내다보셨으나 당신의 영원한 목적의 이행을 멈추지 않으셨다."(엘렌 G. 화잇,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129)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잔인한 것인지를 미리 아셨다. 사실상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실 의무가 없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영혼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다. 그분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 하나가 되었으며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엘렌 G. 화잇, 바이블 에코우, 1895년 11월 25일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아시면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요? 위의 구절은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떤 도움을 줍니까?
* 사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셨다. 이것은 창조를 시작하실 때 우주를 어떻게 구성할는지 계획하신 사실을 엿보게 하는 말씀이다. 그 중에 지구도 있었다. 주님은 당신의 창조 계획을 원래 계획대로 성취하실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창세전에 구원의 경륜을 예정하셨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무튼 주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다. 그 사랑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감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은 그분의 사랑의 본성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계획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수립되었다. 그 계획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전히 드러났으며 정확히 이행되었다.
10월 25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2분)
기억절: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연구범위: 롬 3:19-22, 5:6-8, 5:20-21, 엡 1:4, 골 1:26-27, 딤후 1:8-9, 딛 1:2.
중심 사상: 인간의 타락을 예상하신 하나님께서는 죄가 생겨나기 오래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놓으셨다.
안식일 오후
인간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상의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이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일단 이 자유를 주신 후에는 그것은 그들의 것이 되며, 그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자유는 제거될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랑과 감사와 신실한 순종으로 그분을 섬김으로써 이 자유를 사용할 수도 있었고, 이 생명의 선물을 거절하고 여호와께 불순종함으로써 이 자유를 오용할 수도 있었다. (만약 인간이 불순종을 선택할 수 없었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불순종의 가능성을 내다보시고 그것을 위한 대비책을 세우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창조되기 오래 전에, 죄와 악이 실제로 생겨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생애를 중심으로 세워진 구원의 계획을 생각하셨던 것이다.
핵심본문: 엡 1:9-10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느끼기: 분리는 하나님과 우리에게 공히 고통을 가져옴을 깨닫는다.
행하기: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품성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날마다 묵상한다.
교과 개요
I. 완전함에서 영원한 죽음으로(전 7:29)
A.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으나 그들이 혼란을 자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지럽혀 놓은 모든 것을 정리하시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구속을 제공하지 않으셨다면 다른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실 수 있었을지에 대해 토의해 보라. 그렇게 되었을 때의 가능한 결과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 얼마나 더 잘 알게 되는가? 만약 그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지 않으시고 죽을 운명에 내버려 두셨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II. 구출 작전이 개시됨(롬 5:6-8)
A. 우리는 고침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구렁텅이에 버려두시고 죄의 결과인 영원한 파멸을 당하게 하실 수도 있으셨다. 당신은 어떤 조건하에서 누구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는가? 자녀, 배우자, 부모? 당신은 권력에 굶주린 독재자나 테러주의자, 혹은 마약 거래자나 윤락녀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대답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묵상해 보라.
요점: 우리를 구원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고 믿기를 바라신다.
일요일(10월 19일)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롬 5:6-8)
1.로마서 5:6-8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신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롬5: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답: 하나님의 자발적인 사랑이다.
하나님께는 인류를 구원할 의무가 없으셨다. 그것은 강요된 일도 아니었다. 인류가 타락의 상태에 빠진 것은 인간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 7:29)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의무가 있으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한층 더 값진 것이 되게 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어떤 의무감에 의해 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택으로 된 일이기 때문이다. 창조주이신 그분께서는 피조물인 우리를 구원할 의무가 없으셨다.
2. 로마서 3:19-22에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율법은 죄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합니까?
롬3:19-22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답: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그 행위로는 의를 얻을 육체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의, 예수를 믿음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에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참조 롬 8:3, 갈 3:21).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살게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관계 회복을 위하여 친히 주도권을 잡으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의 의(義)를 나타내셨다. 이 의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에게 이르러 온다. 만약 구원이 순종을 통해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의무를 지셔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만 인류가 용서받고 당신과의 영원한 교제를 회복하도록 지정하셨다.
순수한 사랑이 동기가 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고 죄인들을 위해 당하신 고통을 볼 때에, 우리는 순결하고 영혼을 위한 사심 없는 사랑의 동기로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즐거움과 편리를 희생해가면서 그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 앞에 있는 기쁨 즉 모든 고통 중에서도 그분을 견디게 하였던 기쁨은 불쌍한 죄인들의 구원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의 사업에 임하는 기쁨과 열망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2권, 115).
<부가설명> 하나님의 그 자체가 사랑이시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인간이 말하는 정이 아니라고 앞에 어디에서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람이 감히 설명하지 못한다. 앞 어느 과에서 말했듯이 성경이 계시한 사랑의 분명한 한 가지 상태는 “사랑은 살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4:9). 사망이 된 아담과 이 지구를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을 살리려는 충동으로 견딜 수 없으신 것이었다. 자신이 죽으실지라도 이것을 살려야 하였다. 이것이 사랑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사랑에 반응하기만 하면 된다.
월요일(10월 20일)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엡 1:7)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타락하지 않은 세계의 거민들과 우주의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이 반역한 인류를 위해 행하시려는 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존재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과거에 결코 보지 못했던 일을 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사랑과 능력의 일면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의 능력으로써 이 지구상의 죄를 소멸시키실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이 죄 많고 반역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친절과 자비로 다가가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에 관하여,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 6:35)고 증언하셨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 바울이 죄의 현상을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와 대조시킨 것에서 어떤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롬 5:20-21)
롬5:20,2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답: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 보이려는 것 같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충분히 이해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일이 없었으면 인류는 전혀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것이다(요일3:16 참고).
성경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면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인들을 당신과의 충만한 관계 속으로 회복시키고자 하신다. 은혜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임을 가리킨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또한 우리가 죄에 대해 변명할 수 없으며, 그래서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죽음 대신 영생의 소망과 약속이 주어졌다. 마침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속성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통해 온 우주에 드러났다.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엡 1:7)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자격 없는 이에게 주시는 은혜
“은혜를 받을 자격이 도무지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가 베풀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가 되신 예수님 때문에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허물 많은 죄인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70)
<부가설명>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요1:14). 물론 하나님의 사랑도 예수 그리스도이다(롬8:39). 우리는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그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그 은혜는 죄를 이기고 멸하는 능력이며, 그 사랑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죄인 되었을 때에 이것이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참으로 알기를 원하신다. 그 사랑은 용서하고 살리는 사랑이다. 그것은 생명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 그랬을 때 우리도 사랑이 된다. 전도는 이 사랑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교훈: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의 한 면으로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졌다.
화요일(10월 21일) 영원한 계획(엡 1:4)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할 책임이 없으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 일을 자원하셨다. 이 결정은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어야 할 만큼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루는 일이었으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희생에 관해 망설이시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다.
1.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에 관하여 다음 성경절들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엡 1:4, 골 1:26-27, 딤후 1:8-9, 딛 1:2)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골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딤후1:8,9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딛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답: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은 사후적(事後的) 처방이 아니라 '창세 전' 혹은 '영원한 때 전'부터 세워진 계획이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신약은 하나님의 비밀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드러내준다.
첫째, 이 비밀은 “창세 전”(엡 1:4)에 세워진 것이었다. 즉, 인간이 타락하여 죄에 빠지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다루실 방법을 계획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의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이다(골 1:26). 그것은 미리 계획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 특정한 시점에 발효될 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 비밀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 비밀은 특별히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었다(골 1:27). 이것은 죄 지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인성과 공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중보의 신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요, 그리스도인의 복음인 것이다.(엡 6:19)
넷째, 이 비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엡 1:10)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통해 죄로 인해 파괴된 우주의 조화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이 계획은 교회 안에서의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을 통해 성공이 이미 예견되었다(엡 3:6).
다섯째,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해 은밀히 계획된 그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심으로써 이제 알려진바 되었다.
놀라운 구속의 계획
“구속의 계획은 인간의 지성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다. 하나님 편에서 그토록 낮게 몸을 낮추심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신비이다. 우리는 그 계획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깨달을 수가 없고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도 그보다 월등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것은 신성에다 인성의 옷을 입힌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셔서 죄가 만들어 놓은 진노를 당하심으로써만 성공할 수가 있다. … 이 계획을 헤아려 보려 할 때 유한한 인간의 모든 지성은 좌절하고 만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3)
<부가설명> 전예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타락할 것도 예정했고 구원받을 것도 개별적으로 예정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바로 창세전에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이런 말씀들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기 때문에 루시퍼의 반란이나 지구의 아담의 범죄에 대하여 모르실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럴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계획을 미리 세웠다는 생각은 성경의 계시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들어맞는 것인지 필자로서는 잘 모르겠다. 우리교회도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예언의 신의 증거를 또 그렇게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은데, 필자는 이해한 이렇다.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그분이 창조한 우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도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않는 대로 좋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넉넉히 해결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미리 구원의 계획을 세워두신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여호와라는 그 이름은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이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방도를 즉시 실천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동안 그 방도는 비밀인 것이다. 나타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에 죄가 일어났을 때 그 방도는 즉시 나타났으며, 지구에 죄가 들어왔을 때 그 방도는 곧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전지성이며 전능성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이시다. 여호와 외의 모든 존재는 그가 창조하였다.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 그가 창조한 모든 것에 대하여 그분은 창조한 상태로 돌보시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다. 지구에 죄가 들어왔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죄를 처리하고 죄에서 나와서 생명에 참여할 조처를 다 취하셨다. 이런 사실을 성경은“자기 때에 나타내셨다”고 말한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1:2,3).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9,10).
이런 사실을 계시로 보았을 때 선지자와 사도들은 창세전부터 만대에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나타낸 것이라고 기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 이제 라는 말은 사람이 범죄한 후이며 예수께서 구주로 세상에 오신 때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교과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필자의 일 이해를 한번 생각해보시고,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면 “숨 쉬는 것은 썩지 않는다”라는 필자의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한 영원한 계획을 세우셨으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생애와 봉사를 통하여 성취하셨다.
수요일(10월 22일) 십자가의 길(막 10:45)
<토의를 위한 위란 질문의 도입부에 혼합주의(syncretism)에 대한 질문이 있다. 혼합주의는 모든 종교에는 동일하게 구원이 있다는 사상을 가르치는 주의 같다. 다원주의와 닮은 사상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죄와 구원을 도덕성에 바탕을 두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죄와 구원문제가 생명과 존재에 대한 것임을 알면 감히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반역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실 수 있으셨다. 그분은 아담과 하와를 멸망시키시고 지구까지도 즉시 파괴하실 수 있으셨다. 혹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로 인해 고통당하고 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두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한편 그분께서는 그들의 반역을 묵과하지도 않으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과 똑같이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 허용하지도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지도 않으셨으며, 그들의 반역을 묵인하지도 않으셨다면, 그분은 과연 무엇을 행하셨는가? 그분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의 계획을 실행시키셨다.
1. 다음 구절들은 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줍니까?(막 10:45, 갈 1:4, 2:20, 엡 5:2, 딛 2:14)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인간을 구원하는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당신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는 것뿐이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정하셨을 때,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상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 죽음과 부활, 그리고 중보를 통해서만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낼 수만 있다면,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기꺼이 '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즉, 하늘로 가는 길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심장을 통과하는 길 뿐이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셨을 때(마 26:36-46), 그분께서는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는지 물으시는 기도를 아버지께 드리셨다. 침묵 가운데 응답이 왔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길 외에는 인류를 구원할 다른 길이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로 자신을 구별하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바 되었다. 다른 길이 없었다.
매일 한 시간 그분의 희생을 묵상함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명상하는 데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확실히 머리 속에 그릴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더욱 굳어질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격발되고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이다.”(시대의 소망, 83)
<부가설명> 앞에 공부한 어느 과목에서 죄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설명한 부가설명을 상기하면서 오늘의 문제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죄는 도덕성 문제 이전에 생명과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그 존재를 상실하였다. 그것이 바로 사망이다. 그는 사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다. 사망이 된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사망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명으로 옮길 수 없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썩을 수밖에 없다. 그가 선악과를 먹자마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다(엡4:18). 그것은 모든 것이 종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사랑의 발로로 그들을 다시 살리시는 일을 수행하신다. 그것이 바로 대속이다. 즉 아담이 죽어 그 존재를 상실하는 대신에 예수께서 죽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죽은 그 죽음을 예수 안에서 안 죽어도 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며 이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요5:24). 아담의 모든 후손이 아담 안에서 생명에서 사망으로 옮겼는데, 이제 예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죄를 처리했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구원의 기본적인 문제를 잘 이해하기 바란다. 그래서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선악의 행위 문제 이전이며 성품 문제 이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예수 외에 결코 아무도 이 일을 이룰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 과의 부가설명에서 보게 될 것이다.
교훈: 타락한 인간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심장을 통과하는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 예수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해 그 길이 되셨다.
목요일(10월 23일)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됨(눅 4:43)
1. 예수께서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행하셔야만' 했던 일에 대해 다음 구절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눅 4:43, 9:22, 17:25, 19:5, 22:37, 24:7, 24:26, 24:44)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눅9: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눅17: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눅24:7,26,44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답: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셔야 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이 구절들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하나의 동사는 헬라어로 데이(dei)인데, '~해야 한다'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동사는 예수님의 생애의 매우 중요한 일면을 나타내 준다.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그분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완수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요 9:4). 그분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 4:43)고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의 모든 부분은 구원의 계획과 관련이 있었다. 그분께서 삭개오를 보시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고 말씀하신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의 진정한 목표는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그분께서 걸어가셔야 할 어두운 길이 있었다. 그분은 예루살렘으로 가셔야만 했다. 그분은 가지 않기로 선택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그 길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임을 아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마 16:21)을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악한 세대에게 버린바 되시기 위해 그곳으로 가셔야만 했다(눅 17:25). 그분께서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으셔야 했다(눅 22:37).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에 높이 들리셔야만 했다(요 3:14, 12:34). 그러나 죽는 것만으로는 그분의 사명이 성취되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셔서 영광 가운데 영접 받으시고(행 17:3), 모든 예언들이 성취될 때까지 거기에 머무셔야만 했다(행 3:21). 그분은 삼위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계획을 따르고 계셨던 것이다.
십자가의 그늘에 눌린 제자들
“제자들은 저희 선생을 사랑하였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압도되었다. … 어찌하여 예수께서는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가셔서 자기가 그 곳에서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대우를 당하셔야 하는가 하고 저들은 의심하였다. 예수께서 어떻게 이와 같은 운명에 자신을 맡기시고, 그가 친히 저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 전에 저희가 방황하였던 것보다 더 캄캄한 흑암 중에 저들을 버리실 수가 있단 말인가?”(시대의 소망, 418)
<부가설명>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창조주의 계획에 알맞게 우주를 창조하셨다. 사40:26을 읽으면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 설계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구도 그의 설계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지구가 루시퍼의 꾐에 넘어갔을 때에라도 창조주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호와라는 그 이름 그 존재에는 어떤 경우가 생겨도 모두 다 해결할 수 있는 섭리가 이미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섭리에 의하여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피조물의 자리에 오시고 다함없는 극진한 사랑의 섭리를 실천하셨다. 그렇게 할 것을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해주셨고, 예언대로 친히 오셔서 예언한 그것들을 친히 성취하였다. 그래서 창조의 계획대로 우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엡1:10). 그 중에 우리가 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한 일인가.
교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빈틈없이 성취되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매 걸음마다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는 삶이었다.
금요일(10월 2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만약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은혜'라는 단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고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죄 없는 천사들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지는 않는다. 이 천사들은 은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가 필요하지도 않다. 은혜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그것을 구하지 않았을 때에 그것이 우리에게 베풀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찾아 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것을 기꺼이 주신다. 이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엘렌 G. 화잇, 오늘의 나의 생애, 100)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뜻을 행할 능력을 주셨다. 전지하신 분께서는 인간의 반역과 그 모든 결과를 미리 내다보셨으나 당신의 영원한 목적의 이행을 멈추지 않으셨다."(엘렌 G. 화잇,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129)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이 얼마나 두렵고 잔인한 것인지를 미리 아셨다. 사실상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실 의무가 없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영혼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다. 그분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 하나가 되었으며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엘렌 G. 화잇, 바이블 에코우, 1895년 11월 25일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아시면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요? 위의 구절은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떤 도움을 줍니까?
* 사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셨다. 이것은 창조를 시작하실 때 우주를 어떻게 구성할는지 계획하신 사실을 엿보게 하는 말씀이다. 그 중에 지구도 있었다. 주님은 당신의 창조 계획을 원래 계획대로 성취하실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창세전에 구원의 경륜을 예정하셨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무튼 주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다. 그 사랑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감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요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은 그분의 사랑의 본성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계획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수립되었다. 그 계획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전히 드러났으며 정확히 이행되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