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십자가에서의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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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12-03 21:41 조회5,83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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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왜 십자가 이여야 하는가>
십자가(十字架)
<Ⅰ> 예수님의 출생과 사단의 역사
(마 2:1-23)까지에 예수님에 대하여 출생부터 헤롯이 죽은 후에 나사렛이란 동네에 오셔서 살게 된 기록이 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당시의 두 살부터 그 아래로 사내아이들의 죽이기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1. 헤롯을 유대인들은 왕(王)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2. 헤롯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다.
3. 유대인의 왕(예수님)의 나심으로 온 유대인들이 술렁거렸다.
4. 헤롯은 대제사장과 박사에게 묻기를 그의 출생 장소와 정황을 물어 살펴보고서 당시의 예수님의 출생 나이에 비슷한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게 한다.
5. 헤롯의 가문(家門)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으로 혈육끼리의 복잡한 가계(家系)를 형성하고 있었다. 헤롯의 가문은 근친상간(近親相姦)과 집안에서의 살육(殺戮)에 살육을 통하여 억지로 왕위(王位)에 오른 사람이 당시의 헤롯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족이 유대인과 같이 보내고 한때는 성전재건도 하여 헤롯 성전이란 이름을 불릴 정도로 성전 건축도 한 사람이다.
유전에 의하면 아주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 건축은 일반 건축가들이 건축할 수가 없다고 하여 제사장들에게 건축교육을 받게 하여 지성소 건축을 하였고 예루살렘 안쪽으로는 자신과 그의 가문은 물론이며 아무 왕의 초상화(肖像畵)까지도 걸어놓지 못하게 하는 등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춘 사람이 헤롯 이였다.
그러나 헤롯의 통치에 약점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약점이었다.
헤롯은 <이두매>출신의 사람으로서 명목상으로만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고 억지로 유대인이라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를 인정 하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정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가운데 헤롯이 탄생한 배경 떳떳하지 못한 그의 가문을 헤롯은 잘 알고 있었다.
6.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정통 유대인의 왕은 다윗 왕가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레위인 들은 과부와 결혼하지 말라는 레위기의 법이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해서는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헤롯은 왕으로써의 정통성이 없는 사람임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헤롯은 자기 자신이 이방인의 힘을 빌어서 왕이 되었던 자가 또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이방인의 힘을 빌어서 왕이 되는 느낌을 헤롯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7. 이런 연유에서 동방에서부터 박사(博士)가 와서 왕이 탄생하였다고 하니 헤롯자신이 왕인데 또 이방으로부터 왕이 나타났다고 하니 어떻겠습니까?
원로원에서 명분만 너는 유대인의 왕(王)이다 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통치할 땅(영토)이 없기에 헤롯은 자기에 가문을 유지하기위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8. 유다에 왕이 가기까지는 이와 같은 헤롯왕의 고약하고 치졸한 왕이 였다는 사실입니다.
권력에 도취된 헤롯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내와 자식도 죽이는 악한 왕이었다.
헤롯은 다른 사람이 왕이 될 것과 유대에 정통 왕이 나타날 것 같으면 안 되니까 늘 불안해하였다.
그래서 헤롯은 “어디서”라는 것이 늘 관심사였다.
그래서 구약에 “베들레헴”과 “다윗”에 계통에 대해서 민감해있었고 그래서 헤롯은 박사들을 불러서 자세히 묻는 것입니다.
헤롯은 정통성에 관해서 늘 불안해서 그 시간을 계산해서 두 살 밑에 아이들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가들은 그 당시에 큰 사건이 아니라면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을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인구가 25,000명 정도이고 그 다음으로 베들레헴에 약 2,000명 정도의 인구에 아이들이라고 해도 2-30명 정도의 아이들만 있었기에 그 정도는 역사가들은 기록치 않고 있으나 우리들은 즉 성경은 성도들은 굉장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9. 이 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위급하고 굉장한 사건의 배경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Ⅱ>
1. 창세기는 창조와 파괴(破壞)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창조 하셨습니다.
창조 하실 때에는 보시기에 좋게 아름답게 창조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질서는 사단의 꼬임에 파괴가 됩니다.
죄의 결과로 (창 3:19)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참으로 가슴 아픈 진리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시절이 다지나가고 이젠 초겨울을 맞이해서 천연계도 초록색에서 붉은색으로 더 나아가서 흙색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생도 죽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즉 대시 피를 흘려 죽음으로 창 3:21에 대신 하여 죽는 것입니다.
가죽이란 말은 최초로 (창 3:21)에서 나오지만
이후 가죽이란 말은 희생제물(犧牲祭物)로 지칭할 때마다 사용합니다.
(역대하 35:11)에 희생제물(犧牲祭物)에 모든 부문에서 가죽이란 말로 나옵니다.
2. 사단은 대속(代贖)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죄가 이 땅에 온 때부터 대속(代贖)을 없이 합니다.
(창 4:4)에 아벨의 제물(祭物)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히 11:4)다. 아벨은 구속의 대원칙의 의미를 파악하였다. 그는 자신이 죄인인 것과 죄와 그 죄의 형벌인 죽음이 그의 영혼과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죽임을 당한 제물 즉 희생된 생명을 드림으로 범해진바 된 율법의 요구를 승인하였다. 그는 흘려진 피를 통하여 미래의 희생 즉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질 속죄를 의지함으로 그가 의로워졌으며 그의 제물이 받으신바 되었다는 증거를 얻었다.”(부조, 72)
○ 아벨은 동물의 제사(祭祀)를 드립니다. (히 11:4) 최초의 의인이 아벨입니다.
(창 4:3) 가인의 제물이 나옵니다. “땅의 소산으로 제물(祭物)을 삼아”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았고 아벨은 양(羊)의 제사(祭祀)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이고
(두 번째)는 종교적인 문제로 죽는 것입니다.
“아벨의 살해는 뱀과 여인의 후손 곧 사단과 그의 부하들과 그리스도와 그분의 추종자들 사이에 있으리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증오심의 실례였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한 영혼이 죄를 섬기기를 단념할 때마다 사단의 분노는 불붙는다.” (부조, 74)
○ 가인이 시기심으로 아벨을 죽이기 전에도 사단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인의 시기심을 알고 사단이 들어가서 사단이 이 대속(代贖)을 끊으려고 했다.
사단의 첫 시도로 아벨은 죽인 것이다.
그의 희생 제사에서 대속(代贖)의 흐름을 사단은 끓으려 했다.
사단은 어린양으로 인하여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영감의 글에는 많은 곳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동시에 끝마칠 제사 제도에 관하여 모세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희생 제도는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예표 된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실 것을 예표 한 것이다.”(살아, 149)
구약에서 메시아는 다윗으로 나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울의 시기심(猜忌心) 이전에는 끈임 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단은 메시야의 끈을 끊으려합니다.
대쟁투(大爭鬪)의 시각(視覺)으로 본다면 왜 사울이 다윗을 죽으려 했을까?
이는 다윗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구약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갈 4:4) “때가 차매”
어두운 고통의 때가 차매.
이는 사단의 머리가 부서지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때가 차매 태어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긴장을 하고 또 긴장을 하기 때문에 아기로 오신 것입니다.
공자와 맹자는 그냥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언되었고 어린아이로 오신 것입니다.
거창한 모양으로 오신 분이 아니시고
아주 연약(軟弱)한 어린 아이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사단은 시기(猜忌)와 질투(嫉妬)에 불붙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때가 차서 속죄(贖罪)의 양(羊)으로 오셨는데 헤롯은 부인(婦人)미리암네도 두 아들도 장인 장모도 죽입니다.
그런 계책(計策)의 장본인인 헤롯을 통해서 사단은 역사를 합니다.
헤롯은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머리도 좋고 잔인한 헤롯 때에 예수님에 탄생이 있었습니다.
사단은 대속(代贖)의 제물이 되시는 예수님을 탄생(誕生)시에는 죽이기에 혈안이 됩니다.
그러나 침례요한의 외치는 자의 광야의 소리를 가차 없이 목배임으로 처단을 합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희생제물”에 관한 외침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에는 그분을 죽이지 않고 즉 희생제물(犧牲祭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 40일 금식(禁食)후에는 계속 죽지 않고 피 흘리지 않고 십자가(十字架)의 대속을 물 타기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Ⅲ> 광야의 시험
십자가를 대쟁투(大爭鬪)의 시각(視覺)에서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예수님의 공생애와 사단의 역사를 명확히 알 수가 있다.
침례요한의 죽음은 갈릴리의 분 봉왕 헤롯에게 참수형(斬首刑)을 받고 죽었으나 그의 죽음 뒤에는 놀라운 사단의 역사가 있었다.
즉 이 말은 사단이 포학(暴虐)한 헤롯과 헤로디아 의 딸을 통하여 역사했을 뿐이다.
사단이 침례요한을 죽게 한 것은 희생제물(犧牲祭物)에 대하여 증거(證據)할 때에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로다.” (요 1:29)
“ 요한은 자기가 침례를 베풀어 준 분이 세상의 구주(救主)라는 것을 알았다.
성령(聖靈)이 그에게 임(臨)하자 그는 손을 펴서 예수를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소망, 112)
사단은 예수님에 대하여 제물(祭物)을(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제물(祭物))을 증거(證據)할 때 이를 도저히 묵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침례요한의 “어린 양”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즉 희생제물(犧牲祭物)에 대해서 증거(證據)할 때에는 대속(代贖)에 대하여는 도저히 용납을 못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의 광야(廣野)의 시험(試驗)의 의미(意味)
① 아담으로부터의 탈취(奪取)한 통치권(統治權)은 → 먹는 것으로 인해서 탈취(奪取)당했다.
그러나 온전한 통치권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② 절대적(絶對的)인 통치권(統治權)을 행사할 수 없었음.
③ 이유는 예수님의 희생(犧牲)을 표상(表象)하는 제사제도(祭祀制度) 때문이다.
“에덴에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창 3:15)는 선언이 있은 이후로 사단은 자기가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통치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에 사단의 지배에 대항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큰 관심을 가지고 아담과 그의 아들들이 드리는 제물을 지켜보았다.”(소망, 115)
“예수께서 시험받으시기 위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성령에게 이끌리셨다.
그는 시험을 자취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구주께서 광야(廣野)로 가신 것을 알았으며 그는 이것이 예수에게 접근할 가장 적당한 때라고 생각했다.”(소망, 114)
◉ 40일간을 금식(禁食)하면 사람으로써는 가장 극점(極點)인 때이다.
마음이 연약(軟弱)할 때만이 아니라 육신적인 연약함에도 사단이 시험할 때이다.
광야의 시험
(첫 번째) (마 4:3) “돌 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단의 전략은 의심(疑心)하게 하는 것 즉 의심(疑心)이 들게 만들어 유혹(誘惑)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사단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 3:16-17)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 보고 알고 있는 바이다.
사단의 이 수법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한 수법(手法)과 똑 같다.
(창 3:1)에 여자에게 물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實果)를 먹지 말라하시더냐?”
(창 3:4)에 “결코 죽지아니하리라”
① 사단이 예수님의 광야시험 대하여 하와(아담)를 속일 때와 꼭 같은 의미이다.
예수님이 죽을 이유가 없다 다만 돌들이 떡으로 되게 하는 유혹으로 대속(代贖)의 죽음을 비켜가도록 시험을 하는 것이다. 육신의 떡은 자신을 위한 떡일 뿐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써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떡)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아담과 하와는 먹는 것으로 사단에게 넘어 갔으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승리 하셨다.(마 4:4).
확인된 사실은 믿음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②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승리 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단이 말씀을 갖고 예수님을 시험한다.
(마 4:6)에 마귀(魔鬼)는 (시편 91편11-1·2절)의 말씀을 갖고 사단도 “기록 되었으되”라고 말씀의 연구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 91:11-12)
사단이 인용한 말씀은 시편 91편의 9-10절을 빼고 11절12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91:9-10읠 말씀은 모든 사람이 아무 곳에서나 뛰어 내리면 보호(保護)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지존자(至尊者)의 거처(居處)를 삼는 자 야만이 발을 받쳐주는 보호를 받는 다라는 것을 사단은 머리와 꼬리를 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존자(至尊者)의 거처(居處)를 삼는 자는 높은데서 절대로 뛰어 내리지 않습니다.
③ 두 번째의 시험에서 실패(失敗)한 마귀는
세 번째로 (마 4:8-9) 경배(敬拜)의 관한문제로 시험을 한다.
사단은 여기까지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의 전략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단은 희생제물(犧牲祭物)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피 흘림이 없이 해야 된다는 것을 광야의 시험에서 세 번째로 (마 4:8-9)에 “더 쉬운 방법”으로 “절하면”(프로스퀴네오)= “경배(敬拜)”, “예배(禮拜)”하면 (본교성경주석 9권213)으로 시험을 한다.
희생(犧牲)으로 죽지 말고 대속(代贖)으로 죽지 말라고 합니다.
사단은 피 흘림이 없는 쉬운 방법을 택(擇)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방법을 택(擇)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거기에서 굉장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에서 어려울 때 예수님과 사단과의 대쟁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의 시험에서 3번째는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고통의 길이 있어도 가야합니다.
사단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또 광야의 시험 말고 또 다른 시험을 갖고 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대속의 제물(祭物)로 “들려야 하리니” 즉 희생 제물로 들려야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사단은 이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들리지 않도록 획책하는 모습을 깊이 통찰해야 하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려(들여)야 하리니 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4)
②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後)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③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 12:32)
십자가(十字架)의 죽음 즉 대속(代贖)의 죽음에 “휩소오”라는 말을 이때에만 사용한 것이다.
제물(祭物)은 반듯이 죽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반드시 죽어야만 싹이 새 생명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네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十字架)가 들린 것입니다.
사단은 인내(忍耐)의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들려야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끈임 없이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사단은 골고다의 십자가(十字架)까지 가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예수님을 뛰어내리라고 4복음서에 연결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十字架)에 들려야 제물(祭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속(代贖)죽음을 끝까지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끝까지 제물(祭物)이 못되도록 회유(懷柔)하고 넘어지도록 따라다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대상이지 시험에 대상이 아닙니다.
사단은 십자가(十字架)에서도 못을 뽑아내고 멋지게 뛰어내리라고 종용(慫慂)을 합니다.
예수님이 비참(悲慘)하게 죽지 말고 폼 나게 멋지게 하라는 것이 사단의 전략(戰略)인 것입니다.
※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을 들어내시는 한편 자기를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의 간섭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그런 처지에 자기 자신을 두지 않으실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를 구출하게 하심으로 사람에게 신뢰와 복종의 모본을 주지 못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소망, 125)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을 들어내시는 한편 자기를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의 간섭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그런 처지에 자기 자신을 두지 않으실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지의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그 말씀을 성취시킬 것이기 때문에 간구해야 한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간구해야 한다. (소망, 125)
지극히 높은 산이란 예수님 당시에 성전 꼭대기를 말함인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될 당시에는 “미드라”신(神)이 제일로 추앙을 받고 있을 때로 사단에게 경배(敬拜)를 하면 미드라신이 있는 성전 꼭대기에 설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는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다 떠나가게 된다.
십자가(十字架)
<Ⅰ> 예수님의 출생과 사단의 역사
(마 2:1-23)까지에 예수님에 대하여 출생부터 헤롯이 죽은 후에 나사렛이란 동네에 오셔서 살게 된 기록이 있다.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당시의 두 살부터 그 아래로 사내아이들의 죽이기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1. 헤롯을 유대인들은 왕(王)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2. 헤롯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다.
3. 유대인의 왕(예수님)의 나심으로 온 유대인들이 술렁거렸다.
4. 헤롯은 대제사장과 박사에게 묻기를 그의 출생 장소와 정황을 물어 살펴보고서 당시의 예수님의 출생 나이에 비슷한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게 한다.
5. 헤롯의 가문(家門)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으로 혈육끼리의 복잡한 가계(家系)를 형성하고 있었다. 헤롯의 가문은 근친상간(近親相姦)과 집안에서의 살육(殺戮)에 살육을 통하여 억지로 왕위(王位)에 오른 사람이 당시의 헤롯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족이 유대인과 같이 보내고 한때는 성전재건도 하여 헤롯 성전이란 이름을 불릴 정도로 성전 건축도 한 사람이다.
유전에 의하면 아주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 건축은 일반 건축가들이 건축할 수가 없다고 하여 제사장들에게 건축교육을 받게 하여 지성소 건축을 하였고 예루살렘 안쪽으로는 자신과 그의 가문은 물론이며 아무 왕의 초상화(肖像畵)까지도 걸어놓지 못하게 하는 등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춘 사람이 헤롯 이였다.
그러나 헤롯의 통치에 약점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약점이었다.
헤롯은 <이두매>출신의 사람으로서 명목상으로만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고 억지로 유대인이라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를 인정 하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정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가운데 헤롯이 탄생한 배경 떳떳하지 못한 그의 가문을 헤롯은 잘 알고 있었다.
6.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정통 유대인의 왕은 다윗 왕가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레위인 들은 과부와 결혼하지 말라는 레위기의 법이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해서는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헤롯은 왕으로써의 정통성이 없는 사람임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헤롯은 자기 자신이 이방인의 힘을 빌어서 왕이 되었던 자가 또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이방인의 힘을 빌어서 왕이 되는 느낌을 헤롯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7. 이런 연유에서 동방에서부터 박사(博士)가 와서 왕이 탄생하였다고 하니 헤롯자신이 왕인데 또 이방으로부터 왕이 나타났다고 하니 어떻겠습니까?
원로원에서 명분만 너는 유대인의 왕(王)이다 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통치할 땅(영토)이 없기에 헤롯은 자기에 가문을 유지하기위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8. 유다에 왕이 가기까지는 이와 같은 헤롯왕의 고약하고 치졸한 왕이 였다는 사실입니다.
권력에 도취된 헤롯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내와 자식도 죽이는 악한 왕이었다.
헤롯은 다른 사람이 왕이 될 것과 유대에 정통 왕이 나타날 것 같으면 안 되니까 늘 불안해하였다.
그래서 헤롯은 “어디서”라는 것이 늘 관심사였다.
그래서 구약에 “베들레헴”과 “다윗”에 계통에 대해서 민감해있었고 그래서 헤롯은 박사들을 불러서 자세히 묻는 것입니다.
헤롯은 정통성에 관해서 늘 불안해서 그 시간을 계산해서 두 살 밑에 아이들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가들은 그 당시에 큰 사건이 아니라면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을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인구가 25,000명 정도이고 그 다음으로 베들레헴에 약 2,000명 정도의 인구에 아이들이라고 해도 2-30명 정도의 아이들만 있었기에 그 정도는 역사가들은 기록치 않고 있으나 우리들은 즉 성경은 성도들은 굉장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9. 이 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위급하고 굉장한 사건의 배경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Ⅱ>
1. 창세기는 창조와 파괴(破壞)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창조 하셨습니다.
창조 하실 때에는 보시기에 좋게 아름답게 창조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질서는 사단의 꼬임에 파괴가 됩니다.
죄의 결과로 (창 3:19)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참으로 가슴 아픈 진리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시절이 다지나가고 이젠 초겨울을 맞이해서 천연계도 초록색에서 붉은색으로 더 나아가서 흙색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생도 죽어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므로 즉 대시 피를 흘려 죽음으로 창 3:21에 대신 하여 죽는 것입니다.
가죽이란 말은 최초로 (창 3:21)에서 나오지만
이후 가죽이란 말은 희생제물(犧牲祭物)로 지칭할 때마다 사용합니다.
(역대하 35:11)에 희생제물(犧牲祭物)에 모든 부문에서 가죽이란 말로 나옵니다.
2. 사단은 대속(代贖)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죄가 이 땅에 온 때부터 대속(代贖)을 없이 합니다.
(창 4:4)에 아벨의 제물(祭物)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히 11:4)다. 아벨은 구속의 대원칙의 의미를 파악하였다. 그는 자신이 죄인인 것과 죄와 그 죄의 형벌인 죽음이 그의 영혼과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죽임을 당한 제물 즉 희생된 생명을 드림으로 범해진바 된 율법의 요구를 승인하였다. 그는 흘려진 피를 통하여 미래의 희생 즉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질 속죄를 의지함으로 그가 의로워졌으며 그의 제물이 받으신바 되었다는 증거를 얻었다.”(부조, 72)
○ 아벨은 동물의 제사(祭祀)를 드립니다. (히 11:4) 최초의 의인이 아벨입니다.
(창 4:3) 가인의 제물이 나옵니다. “땅의 소산으로 제물(祭物)을 삼아”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았고 아벨은 양(羊)의 제사(祭祀)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이고
(두 번째)는 종교적인 문제로 죽는 것입니다.
“아벨의 살해는 뱀과 여인의 후손 곧 사단과 그의 부하들과 그리스도와 그분의 추종자들 사이에 있으리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증오심의 실례였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한 영혼이 죄를 섬기기를 단념할 때마다 사단의 분노는 불붙는다.” (부조, 74)
○ 가인이 시기심으로 아벨을 죽이기 전에도 사단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인의 시기심을 알고 사단이 들어가서 사단이 이 대속(代贖)을 끊으려고 했다.
사단의 첫 시도로 아벨은 죽인 것이다.
그의 희생 제사에서 대속(代贖)의 흐름을 사단은 끓으려 했다.
사단은 어린양으로 인하여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영감의 글에는 많은 곳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동시에 끝마칠 제사 제도에 관하여 모세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희생 제도는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예표 된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실 것을 예표 한 것이다.”(살아, 149)
구약에서 메시아는 다윗으로 나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울의 시기심(猜忌心) 이전에는 끈임 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단은 메시야의 끈을 끊으려합니다.
대쟁투(大爭鬪)의 시각(視覺)으로 본다면 왜 사울이 다윗을 죽으려 했을까?
이는 다윗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구약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갈 4:4) “때가 차매”
어두운 고통의 때가 차매.
이는 사단의 머리가 부서지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때가 차매 태어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긴장을 하고 또 긴장을 하기 때문에 아기로 오신 것입니다.
공자와 맹자는 그냥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언되었고 어린아이로 오신 것입니다.
거창한 모양으로 오신 분이 아니시고
아주 연약(軟弱)한 어린 아이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사단은 시기(猜忌)와 질투(嫉妬)에 불붙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때가 차서 속죄(贖罪)의 양(羊)으로 오셨는데 헤롯은 부인(婦人)미리암네도 두 아들도 장인 장모도 죽입니다.
그런 계책(計策)의 장본인인 헤롯을 통해서 사단은 역사를 합니다.
헤롯은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머리도 좋고 잔인한 헤롯 때에 예수님에 탄생이 있었습니다.
사단은 대속(代贖)의 제물이 되시는 예수님을 탄생(誕生)시에는 죽이기에 혈안이 됩니다.
그러나 침례요한의 외치는 자의 광야의 소리를 가차 없이 목배임으로 처단을 합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희생제물”에 관한 외침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에는 그분을 죽이지 않고 즉 희생제물(犧牲祭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 40일 금식(禁食)후에는 계속 죽지 않고 피 흘리지 않고 십자가(十字架)의 대속을 물 타기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Ⅲ> 광야의 시험
십자가를 대쟁투(大爭鬪)의 시각(視覺)에서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예수님의 공생애와 사단의 역사를 명확히 알 수가 있다.
침례요한의 죽음은 갈릴리의 분 봉왕 헤롯에게 참수형(斬首刑)을 받고 죽었으나 그의 죽음 뒤에는 놀라운 사단의 역사가 있었다.
즉 이 말은 사단이 포학(暴虐)한 헤롯과 헤로디아 의 딸을 통하여 역사했을 뿐이다.
사단이 침례요한을 죽게 한 것은 희생제물(犧牲祭物)에 대하여 증거(證據)할 때에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로다.” (요 1:29)
“ 요한은 자기가 침례를 베풀어 준 분이 세상의 구주(救主)라는 것을 알았다.
성령(聖靈)이 그에게 임(臨)하자 그는 손을 펴서 예수를 가리키며 부르짖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소망, 112)
사단은 예수님에 대하여 제물(祭物)을(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제물(祭物))을 증거(證據)할 때 이를 도저히 묵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침례요한의 “어린 양”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즉 희생제물(犧牲祭物)에 대해서 증거(證據)할 때에는 대속(代贖)에 대하여는 도저히 용납을 못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의 광야(廣野)의 시험(試驗)의 의미(意味)
① 아담으로부터의 탈취(奪取)한 통치권(統治權)은 → 먹는 것으로 인해서 탈취(奪取)당했다.
그러나 온전한 통치권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② 절대적(絶對的)인 통치권(統治權)을 행사할 수 없었음.
③ 이유는 예수님의 희생(犧牲)을 표상(表象)하는 제사제도(祭祀制度) 때문이다.
“에덴에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창 3:15)는 선언이 있은 이후로 사단은 자기가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통치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에 사단의 지배에 대항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큰 관심을 가지고 아담과 그의 아들들이 드리는 제물을 지켜보았다.”(소망, 115)
“예수께서 시험받으시기 위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성령에게 이끌리셨다.
그는 시험을 자취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구주께서 광야(廣野)로 가신 것을 알았으며 그는 이것이 예수에게 접근할 가장 적당한 때라고 생각했다.”(소망, 114)
◉ 40일간을 금식(禁食)하면 사람으로써는 가장 극점(極點)인 때이다.
마음이 연약(軟弱)할 때만이 아니라 육신적인 연약함에도 사단이 시험할 때이다.
광야의 시험
(첫 번째) (마 4:3) “돌 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단의 전략은 의심(疑心)하게 하는 것 즉 의심(疑心)이 들게 만들어 유혹(誘惑)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사단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 3:16-17)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 보고 알고 있는 바이다.
사단의 이 수법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한 수법(手法)과 똑 같다.
(창 3:1)에 여자에게 물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實果)를 먹지 말라하시더냐?”
(창 3:4)에 “결코 죽지아니하리라”
① 사단이 예수님의 광야시험 대하여 하와(아담)를 속일 때와 꼭 같은 의미이다.
예수님이 죽을 이유가 없다 다만 돌들이 떡으로 되게 하는 유혹으로 대속(代贖)의 죽음을 비켜가도록 시험을 하는 것이다. 육신의 떡은 자신을 위한 떡일 뿐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써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떡)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아담과 하와는 먹는 것으로 사단에게 넘어 갔으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승리 하셨다.(마 4:4).
확인된 사실은 믿음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②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승리 하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단이 말씀을 갖고 예수님을 시험한다.
(마 4:6)에 마귀(魔鬼)는 (시편 91편11-1·2절)의 말씀을 갖고 사단도 “기록 되었으되”라고 말씀의 연구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 91:11-12)
사단이 인용한 말씀은 시편 91편의 9-10절을 빼고 11절12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91:9-10읠 말씀은 모든 사람이 아무 곳에서나 뛰어 내리면 보호(保護)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지존자(至尊者)의 거처(居處)를 삼는 자 야만이 발을 받쳐주는 보호를 받는 다라는 것을 사단은 머리와 꼬리를 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존자(至尊者)의 거처(居處)를 삼는 자는 높은데서 절대로 뛰어 내리지 않습니다.
③ 두 번째의 시험에서 실패(失敗)한 마귀는
세 번째로 (마 4:8-9) 경배(敬拜)의 관한문제로 시험을 한다.
사단은 여기까지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의 전략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단은 희생제물(犧牲祭物)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피 흘림이 없이 해야 된다는 것을 광야의 시험에서 세 번째로 (마 4:8-9)에 “더 쉬운 방법”으로 “절하면”(프로스퀴네오)= “경배(敬拜)”, “예배(禮拜)”하면 (본교성경주석 9권213)으로 시험을 한다.
희생(犧牲)으로 죽지 말고 대속(代贖)으로 죽지 말라고 합니다.
사단은 피 흘림이 없는 쉬운 방법을 택(擇)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방법을 택(擇)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거기에서 굉장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에서 어려울 때 예수님과 사단과의 대쟁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의 시험에서 3번째는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고통의 길이 있어도 가야합니다.
사단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또 광야의 시험 말고 또 다른 시험을 갖고 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대속의 제물(祭物)로 “들려야 하리니” 즉 희생 제물로 들려야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사단은 이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들리지 않도록 획책하는 모습을 깊이 통찰해야 하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려(들여)야 하리니 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4)
②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後)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③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 12:32)
십자가(十字架)의 죽음 즉 대속(代贖)의 죽음에 “휩소오”라는 말을 이때에만 사용한 것이다.
제물(祭物)은 반듯이 죽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반드시 죽어야만 싹이 새 생명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네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十字架)가 들린 것입니다.
사단은 인내(忍耐)의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들려야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끈임 없이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사단은 골고다의 십자가(十字架)까지 가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예수님을 뛰어내리라고 4복음서에 연결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十字架)에 들려야 제물(祭物)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속(代贖)죽음을 끝까지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끝까지 제물(祭物)이 못되도록 회유(懷柔)하고 넘어지도록 따라다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대상이지 시험에 대상이 아닙니다.
사단은 십자가(十字架)에서도 못을 뽑아내고 멋지게 뛰어내리라고 종용(慫慂)을 합니다.
예수님이 비참(悲慘)하게 죽지 말고 폼 나게 멋지게 하라는 것이 사단의 전략(戰略)인 것입니다.
※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을 들어내시는 한편 자기를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의 간섭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그런 처지에 자기 자신을 두지 않으실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를 구출하게 하심으로 사람에게 신뢰와 복종의 모본을 주지 못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소망, 125)
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을 들어내시는 한편 자기를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의 간섭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그런 처지에 자기 자신을 두지 않으실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지의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그 말씀을 성취시킬 것이기 때문에 간구해야 한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간구해야 한다. (소망, 125)
지극히 높은 산이란 예수님 당시에 성전 꼭대기를 말함인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될 당시에는 “미드라”신(神)이 제일로 추앙을 받고 있을 때로 사단에게 경배(敬拜)를 하면 미드라신이 있는 성전 꼭대기에 설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는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다 떠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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