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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영감 받은 선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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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1-28 17:26 조회6,3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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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31일 (안) (일몰: 오후 5시 55분)

제5과 영감(靈感)받은 선지자(先知者)들

(記憶節)
“모든 성경(聖經)은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된 것으로 교훈(敎訓)과 책망(責望)과 바르게 함과 의(義)로 교육(敎育)하기에 유익(有益)하니.”(딤후 3:16)

(깨닫기):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말하고 기록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신다.
(느끼기):선지자들과 그들의 신성한 글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다.
(행하기):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다.

<확대경(擴大鏡)>
◉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들에게 계시(啓示)와 영감(靈感)(감동)을 주시어 사람을 통하여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게 하셨다. 그러나 언어영감(言語靈感)을 주장하는 부류(部類)들도 있지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거룩한 영감(靈感)이 단어(單語)가 아닌 사상영감(思想靈感)을 믿는다.

◉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의 선지자들은 신체적인·특별한 현상(現像)이 나타났으나 아무리 신체적인 특별한 현상이 나타난다할지라도 현상에만 의존해서는 안되며 모든 은사(恩賜)는 하나님의 말씀에 검증(檢證)되여야 한다.
또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필촉(筆觸)이 아니라, 필자(筆者)들이었고, 직접계시를 기록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要點):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계시와 영감을 주신 과정은 역동적이다. 그분은 단지 그들에게 능력을 부여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그들을 감싸셨다.

(日) (1월 25일)
<계시(啓示)와 영감(靈感) (딤후 3:16)>

◉ ① "계시(啓示)"는 =
성령(聖靈)께서 이상(異像)과 꿈을 통해 보여주신 진리(眞理) 그 지체를 계시(啓示)라 하며,
② "영감(靈感)"은 =
선지자(先知者)가 받은 계시(啓示)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내용과 조화(調和)이루도록 역사(役事)하신 것을 영감(靈感)이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성(靈感性)>
하나님께서는 성령(聖靈)으로 사람들과 교통(交通)하게 되셨고, 하늘의 빛은 하나님의 택(擇)함 받은 종들에게 주어진 계시(啓示)를 통(通)하여 이 세상에 전달(傳達)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그 저작자(著作者)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아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각 권(各券)의 같지 않은 문체(文體)는 그 각 기자(記者)들의 같지 않은 특성(特性)을 보여 주고 있다.

무한(無限)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의 정신과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분께서는 꿈과 이상(異像)과 표상(表像)과 상징(象徵)을 주셨고 진리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그 사상(思想)을 각각 인간의 말로 나타내었다.
십계명(十誡命)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쓰셨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성문화(成文化)하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사람의 말로 표현한 성경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연합을 나타낸다.

성경은 신분(身分)과 직업(職業)이나 지적(知的)·영적(靈的)소양(素養)이 크게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각기 다른 시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 다루어진 주제(主題)의 성격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그 문체(文體)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다.
성경을 기록한 기자(記者)에 따라서 그 표현 방법이 각각 다르며 때로는 같은 진리(眞理)라도 어떤 기자는 다른 기자보다 그것을 더욱 예리(銳利)하게 표현한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몇 사람의 기자가 어떤 문제를 각기 다른 관점과 관계에서 소개하는 경우에, 피상적(皮相的)이고 주의성이 없거나 편견(偏見)을 가진 독자(讀者)들에게 서로 모순되거나 일치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될지 모르나 밝은 통찰력(洞察力)을 가진 사려(思慮)깊고 경건(敬虔)한 연구자는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조화(調和)를 발견하게 된다.
진리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제시되었으므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개되었다.
어떤 기자는 한 주제의 어떤 면에 더욱 강(强)한 감동을 받고 자기의 체험(體驗)과 이해력(理解力)과 인식력(認識力) 등에 부합(附合)시켜서 그 문제를 이해(理解)하고 있다.

또 어떤 기자는 그와는 다른 면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각각 성령의 지도(指導)아래 자기의 마음에 가장 깊이 감명(感銘)된 바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각자의 견해(見解)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이와 같이 계시(啓示)된 진리는 결합(結合)하여 하나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게 되어 생애의 온갖 환경과 경험에 있어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에 적합(適合)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대리자(代理者)들을 통하여 진리를 세상에 전달(傳達)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친히 성령으로 사람들에게 자격을 주셔서 그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분께서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지도하셨다. 보물(寶物)은 비록 질그릇(인간)에 위탁(委託)되었을지라도 그것은 하늘로부터 온 보물임에 틀림없다. 그 증언(證言)은 불완전한 인간의 말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온순하고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그 증언 가운데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능력의 영광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권위(權威)있고 확실한 계시로 받아 들여야 한다.
성경은 품성(稟性)의 표준(標準)이요, 교리(敎理)의 계시자(啓示者)요, 체험(體驗)의 시금석(試金石)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신 사실이 성령의 끊임없는 임재(臨在)와 지도를 불필요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 구주(救主)께서 성령을 허락하신 것은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을 바로 이해시켜 주고, 그 교훈을 밝히 알고 실행하게 해주기 위(爲)함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성령의 교훈이 성경의 교훈과 반대될 수는 없다.
성령은 성경을 대신하기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으며, 또 주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교훈과 경험을 시험하기 위한 표준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빛을 받았노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를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오류(誤謬)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役事)에 큰 비난이 돌아갔다.
그들은 심령(心靈)속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느껴지는 여러 가지 인상(印象)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지배하는 그 영(靈)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다. 성경을 무시하고 인상만을 맹종(盲從)하는 일은 혼란과 기만과 파멸로 이끌어 줄 뿐이다. 그것은 오직 악마(惡魔)의 계획을 조장(助長)시켜 줄 뿐이다.

성령의 봉사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극(極)히 중요하므로 사단은 극단론자(極端論者)와 광신자(狂信者)들의 오류(誤謬)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役事)를 모독(冒瀆)하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우리 주께서 친히 제공해 주신 이 능력의 근원을 등한히 여기게 한다. 이것이 사단의 계책(計策)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어 복음시대 동안에 계속하여 일을 하셔야 하였다. 구약(舊約)과 신약성경(新約聖經)이 기록되는 각 시대 동안에 성령은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계시 외에도 각 개인의 마음에 빛을 전하여 주는 일을 그치지 않으셨다.
성경을 주시는 일 이외에도 각 개인의 마음에 빛을 전하여 주는 일을 그치지 않으셨다.
성경을 주시는 일 이외에도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경고와 책망과 권면과 교훈을 받게 되었는지 성경 자체가 말하고 있다.
또한 여러 시대에 걸쳐서 선지자들에 대한 말은 있으나 그들이 말한 내용은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정전(正典)이 완성된 후에도 성령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계몽(啓蒙)시키고, 경고(警告)하고, 위로(慰勞)하기 위하여 그 사업을 계속하셔야만 하였다.

선(善)과 악(惡)의 대쟁투(大爭鬪)는 세상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날로 치열(熾熱)해질 것이다.
사단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분노(忿怒)를 나타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악마(惡魔)의 세력에 대항하여 설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백성을 강화(强化)시키고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을 부어 주셨다.
그리스도의 사도(使徒)들이 그분의 복음을 세상에 전(傳)하고 또한 장차 올 모든 시대를 위하여 그 복음을 기록할 때, 특별히 성령의 교훈을 받았다.
그러나 교회가 최후의 구원(救援)에 가까이 이를수록 사단은 더욱 큰 능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忿)내어”(계 12:12)내려온다. 그는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奇蹟)”(살후 2:9)으로 일할 것이다. 한 때 하나님의 천사 중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던 그 주모자(主謀者)는 육천년 동안 기만(欺瞞)과 파멸(破滅)의 사업에 온 정력을 기울여 왔다. 이와 같이 각 시대에 걸쳐 투쟁하는 동안에 얻은 악마적인 숙련과 교활과 그 동안에 닦은 모든 잔학성(殘虐性)이 최후의 투쟁(鬪爭)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對抗)하는 데 활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再臨)의 경고(警告)를 세상에 전(傳)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단의 적개심(敵愾心)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적개심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에 대한 똑같은 증오심과 오류를 진리처럼 보이게 하고, 사람의 율법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경배하기보다는 오히려 피조물을 경배하게 하는 그 동일한 기만의 술책은 과거의 모든 역사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품성을 그릇되게 나타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가지게 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도리어 무서워하고 미워하게 하고자 애를 썼고,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사람들이 율법의 요구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하게 하려고 노력하였고, 각 시대를 통하여 그의 기만(欺瞞)에 항거(抗拒)하려는 사람들을 시종 일관 핍박(逼迫)해 왔다.
그런 사실들은 부조(父祖)들과 선지자(先知者)들과 사도(使徒)들의 역사에서, 그리고 순교자(殉敎者)들과 개혁자(改革者)들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 대 쟁투(大 爭鬪)에서 사단은 지나간 여러 시대에 행하였던 것과 똑같은 술책(術策)을 쓰고, 똑같은 정신을 나타내고, 똑같은 목적을 위하여 일할 것이다.
지금까지 있어 온 일은 앞으로도 있을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투쟁(鬪爭)은 세상 사람들이 이전에 보지 못한 무섭고 치열(熾熱)한 것으로 특색을 이룰 것이다.
사단의 속임수는 더욱 교활해지고, 그의 공격은 더욱 맹렬해질 것이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택(擇)하신 자라도 미혹하려고 할 것이다 (막 13:22).”(대쟁투 상 7-11p)

◉ <우리 길에 비취는 빛, 예언서(豫言書) 저자(著者)들의 영감(靈感)>
성경을 해석(解釋)함에 있어서 회의주의(懷疑主義)와 불신사상(不信思想)을 나타내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성경의 참된 사실과 진리를 의심(疑心)하는 자들이 너무나 지나치게 많다.

이 거룩한 책은 거룩한 특성에 속한 모든 것들을 어두운 구름과 짙은 흑암(黑暗)으로 덮어씌우려고 악인(惡人)들과 연합한 사단의 습격(襲擊)을 이겨내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기적적(奇蹟的)인 능력으로 이 거룩한 책을 오늘날의 형태로 보존(保存)하셨는 바, 이 책은 인간 가족들에게 천국(天國)으로 인도하는 길을 보여 주기 위하여 주신 하나의 도표(圖表)이며 안내서(案內書)이다.

저들은 성경의 탁월(卓越)한 진리(眞理)들이 마치 땅을 파서 발견하는 귀중한 보석(寶石)들처럼 숨은 보화(寶貨)들을 계속적으로 밝혀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혹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는 등의 제의(題意)로써 성경을 개선(改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중(愼重)한 표정(表情)으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성경을 베끼는 자나 번역(飜譯)한 사람들이 어떤 실수(失手)를 저지를 가능성(可能性)들이 있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준비하는 일을 유한한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신구약성경(新舊約聖經)으로 꾸며진 이 말씀은 타락(墮落)한 세계의 거민(居民)들에게 주신 안내서(案內書)이며 후세(後世)에 남기도록 주신 것이며 지시(指示)하신 말씀들을 연구하고 순종할 때에 단 한 영혼(靈魂)도 천국(天國)으로 인도(引導)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부분과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인간의 한정(限定)된 표준으로 측정(測定)하므로 명백한 성경의 말씀을 가상적(假想的)인 난해(難解)거리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마치 엘리야가 세미(細微)한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天使)들의 목전(目前)에서 얼굴을 가리워야 할 것이다(왕상 19:12).
각 시대(時代)를 통해서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은 인간에게 빛과 지식(知識)을 전해 주어 저들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일러주며 저들에게 흥미진진(興味津津)한 장면들을 전개(展開)시켜 주고 상징(象徵)과 징조(徵兆)및 예화(例話)로써 곳곳에 이정표(里程標)를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집중하고 있는 위기(危機)들을 증거(證據)하셨으나 어떤 유한(有限)한 인간을 지정(指定)하여 숨은 신비(神秘)들을 해명(解明)시키거나 한 사람 혹은 어떤 분야(分野)의 사람들에게 영감으로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자격을 아무에게도 주시지 않으셨다.
인간이 저들의 한정된 판단력으로 영감(靈感)으로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기 위하여 성경을 시험(試驗)해 보는 단계에 이를 필요가 있다면 저들은 이미 예수님보다 앞장서서 과거(過去)에 예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신 것보다 더 훌륭한 길을 예수님께 보여 주는 격이 되는 것이다.
저들은 다른 사람들도 저들과 같은 견해(見解)를 갖도록 영향(影向)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단이 본래 계획했던 것처럼 이런 일들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되어 마침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형제들이여 우리들의 정신과 손이 성경을 비판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라. 이 일은 바로 그대들이 하기를 사단이 바라는 것이며 주님께서 수행하라고 지적하신 사업이 아니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 곧 거룩한 성경을 과거에 각 시대를 통해서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책을 친히 돌보시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계시로 기록된 어떤 부분들을 의심(疑心)하기 시작하며 이 성경절(聖經節) 저 성경절의 뚜렷하게 일치(一致)되지 않는 듯 한 내용에서 약점(弱點)들을 찾아낸다.
형제들이여, 말씀을 읽는 대로 그대들의 성경에 애착을 가지라. 그리고 성경 그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관한 그대들의 비판을 중단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에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린바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연구력은 저들의 유한(有限)한 정신과 제한(制限)된 이해력(理解力)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려보려고 각 시대를 통하여 노력해왔다.
살아계신 말씀의 근본(根本)이 되시는 주님께서 휘장(揮帳)을 제치시고 저들 앞에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을 밝히 나타내 보이신다면 저들은 무가치(無價値)한 존재로 움츠러들 것이며 마치 이사야처럼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사 6:5)고 있다고 외칠 것이다.

성경의 단순성과 명백한 표현은 비단 완전히 성숙한 사람이나, 지적으로 비범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학자(無學者), 농사(農事)꾼, 어린아이까지라도 이해(理解)할 수 있다.
사람이 정신력에 따르는 큰 재능을 소유하였다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진리의 보화들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진리의 보화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사람은 또한 깨닫기 힘든 것들, 비밀에 속한 것들, 일생 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함으로 가장 고상한 만족을 누리게 될 기이한 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인데 아직도 이런 영원히 미치지 못할 무한한 연구 분야가 펼쳐져 있다.
학식(學識)이 없고 능력과 기회(期會)의 제약(制約)을 받아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살아 계신 말씀 가운데서 마치 햇살처럼 분명하게 위안(慰安)과 지도(指導)와 권고(眷顧)와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이 고의적(故意的)으로 배우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아무도 지식의 결핍(缺乏) 때문에 구원(救援)을 상실(喪失)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학식(學識)이 있는 사람을 위(爲)해서 뿐만 아니라 가련(可憐)한 사람을 위해서도 성경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긴다.
성경은 모든 시대(時代)와 모든 계급(階級)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원고 16,)(가려뽑은기별1권13-17p)

◉ <성경에 대한 반대이론(反對理論)들>
인간의 정신은 다양(多樣)하다. 교육과 사상의 배경이 서로 다른 정신은 같은 글에서도 서로 다른 감명(感銘)을 받게 되며 한 사람이 기질과 교육과 사고방식(思考方式)이 다른 사람에게 언어를 통해서 자기 마음속에 있는 꼭 같은 생각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정직(正直)하고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든 실제적(實際的)인 목적을 위해서 자기의 뜻을 전달할 때에 단순하고 명백하게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교통하려는 상대자가 정직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모든 면에 자기 말을 자신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왜곡되게 사용할 것이다.
그는 자기 말의 뜻을 잘못 해석할 것이며 자신의 상상력(想像力)을 악용(惡用)하고 말의 참 뜻을 왜곡(歪曲)하며 불신의 정신으로 자신을 단단히 감싸고 말의 취지(趣旨)가 전부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다.

성경 가운데서 항상 완전한 질서나 뚜렷한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적들이 어떤 정밀한 차례를 따라 행하여진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신령한 계시가 요구되는 환경과 처지를 따라서 이적들을 행하신 것이었다.
성경의 진리들은 감춰진 보석(寶石)과 같은 것이다.
진리는 샅샅이 살펴보아야 하며 참담한 노력으로 캐내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하여 피상적인 견해만을 가진 자들은 저희 생각에는 깊은 지식을 가진 듯하다 실제로는 얕은 지식을 가진 자들로서 성경에 반대되는 점들을 말하며 성경의 권위(權威)를 무시한다.
그러나 진리와 의무에 일치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거룩한 감명을 받을 수 있는 마음 준비를 갖추고 성경을 연구할 것이다. 빛을 받은 영혼은 영적(靈的)통일성(統一性)을 발견할 것이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굵은 황금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배로운 황금실을 찾아 나가는 데는 인내(忍耐)와 사색(思索)과 기도(祈禱)가 요구된다. 성경에 관한 날카로운 논쟁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탐구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진리의 귀중한 보석(寶石)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으며 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상달되므로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었다.

성경은 어떤 장엄한 초인간적인 언어로 꾸며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처하여 있는 그 위치에 이르시기 위하여 인성을 쓰셨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야만 하였다.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같은 말로써 뜻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표현을 할 수 있다. 각기 뚜렷한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한마디 말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특징이 다른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사상의 표현들과 문장의 내용을 똑같이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이 저들 자신의 특수한 정신과 경우에 적합하게 이해한다. 선입관념(先入觀念), 편견(偏見)및 감정(感情)등은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에 이해력(理解力)을 어둡게 하고 정신을 혼란(混亂)케 하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감동을 입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성경 자체가 하나님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표현 양식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사상과 표현에 있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로서 대표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어떤 표현은 하나님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논리(論理)와 수사(修辭) 가운데 당신 자신을 두어 성경상 시련의 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필자(筆者)들이었으며 하나님의 필촉(筆觸)이 아니었다. 여러 다른 저자들을 관찰해 보라. 성경의 말씀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영감은 인간의 언어나 표현 방법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자신에게 작용하는 것이며 그는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이 그 감화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개인적인 정신의 감명을 받게 된다. 거룩한 정신으로 물들여진다. 거룩한 정신과 의지가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혼합하게 되어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 원고24, (가려뽑은 기별1권17-20p)

◉ 다양성 가운데 나타난 통일성
우리들은, ‘성경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 및 요한이 복음서를 왜 다 같이 기록할 필요가 있었을까, 왜 사도행전이 필요하며, 여러 종류의 편지(便紙)서들이 왜 동일한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저들은 동일한 문장의 형식을 따라 사물들을 증거(證據)하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독특(獨特)한 체험(體驗)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이 지식을 광범위하게 하고 심화(深化)시킴으로써 여러 종류의 정신들, 곧 각계각층(各界各層) 사람들의 필요성을 충족(充足)시킬 수 있었다.
성경 가운데 표현된 사상들은 마치 쇳물을 녹여 주물에 붓는 것처럼 어떤 틀에 박힌 일률성(一律性)으로 표현하여 단조롭게 들리도록 하지 않으셨다.
만약 틀에 박힌 일률적으로 성경이 꾸며졌다면 은혜(恩惠)와 특수(特殊)한 아름다움이 상실(喪失)되었을 것이다.
.각자는 자기의 소질과 교육의 배경을 따라 깨닫기 편한 특수한 문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태양 광선은 여러 다른 사물들을 비추고 있으나 그 빛을 받는 사물들은 각기 다른 색깔들을 나타낸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당신의 사도들에게 진리를 주셨으며 성령께서 저희 정신을 계발시키는 분량에 따라 진리를 표현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인간의 정신이 억지로 어떤 틀에 끼이도록 바짝 죄어진 것이 아니다(서신 53, 1900년).

◉ 주님께서는 불완전한 언어로 말씀하심
주님께서는 퇴폐(頹廢)한 감각(感覺)과 둔(鈍)하고 세속적인 식별력을 가진 인간들로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완전한 언어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겸비하심이 나타난 것이다.
주님께서는 타락(墮落)한 인류들이 현재 처(處)하여 있는 위치에서 만나셨다.
성경은 말씀의 단순성에 나타난 완전성을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상에 대하여 답변할 수 없는데 그 까닭은 무한대(無限大)에 속하는 사상이 유한(有限)한 인간의 사상전달의 수단으로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想像)하듯이 성경의 표현들이 과장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엄한 사상 앞에 인간의 강한 표현들이 압도당하였으며 필자(筆者)들이 하는 진리를 전달한다 할지라도 도저히 인간의 표현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죄인들은 다만 하늘 영광의 광채의 그늘만을 간신히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가려뽑은기별1권20-22p)

◉ 인간은 성경에 대하여 판단(判斷)할 수 없음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영감적인 것으로 선택하고 또 다른 부분은 영감 되지 않은 것처럼 불신하는 태도로서 성경에 대한 판단을 내리도록 어떤 인간도 세우지 않으셨다.
증언들에 대하여도 같은 방법으로 취급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함께 하지 않으신다. (서신 22, 1889년).”(가려뽑은 기별1권22p)

◉ <하나님의 뜻의 계시(啓示)인 성경(聖經)>
“성경, 곧 신약과 구약은 신적 영감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말하고 기록한 것이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주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 무오류(絶對蕪誤謬)의 계시이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체험의 시금석이며, 교리들에 대한 권위 있는 계시자요, 역사 속에서 활약하시는 하나님의 행동들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다.”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7)

◉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시는 것을 잘 드러내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으로 어떤 이들은 글로써 이중 기록된 것이 성경이다.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거룩한 영감을 받았다고 여기는 것들과 단지 인간의 작품이라고 추정(推定)하는 것을 구별하려고 시도할 권한을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다.
성경은 인간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생각이다.
성경의 생명력은 하나님이 그 속에 불어넣은 생명에 기인(基因)한다.
성경의 지속적인 매력(魅力)과 각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힘은 그것이 하나님의 저작(著作)이라는 사실을 증거(證據)한다. (성경주석(한글) 13권 400p)

◉ 성경은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었으며 성경의 기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기록 하기도하고 당시 풍습과 전통을 기록하기도하고 몇몇 시편과 잠언은 주변 나라들의 문학과 문화를 반영하기도 했다.
성경은 영감(靈感)의 책(冊)이지만 또한 기록한 사람의 개성(個性)이 반영하기도 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계시를 보여주시고 그것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영감을 불어넣으셨다.

(月) (1월 26일)
<언어영감(言語靈感)과 사상영감(思想靈感) (고전 7:10-12, 39-40)>

◉ 영감(靈感)에 관한 두 가지 주요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언어영감(言語靈感) :
언어영감(言語靈感)은 기록한 사람보다는 성경의 단어(單語)들에 초점을 둔다.
이 견해(見解)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기록하는 사람의 교육적(敎育的) 배경(背景)이나 어휘(語彙)능력에 따라 모든 단어를 선택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감(靈感)은 오직 원본(原本) 성경에만 해당하고, 사본(寫本)에는 해당하지 않으므로 사본에는 실수(失手)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성경의 모든 단어가 기자(記者)의 어휘력이나 교육적 배경과 관계없이 성령에 의해 지시되었다는 축자(逐字)영감설과는 구별된다.

2. 사상영감(思想靈感) :
여기서는 단어(單語)가 아닌 기록(紀錄)한 사람에 초점(焦點)이 있다.
단어(單語)보다는 기록한 사람이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고전 7:10-12, 39-40, 살전 2:13).
때때로 하나님이나 천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引用)하거나(렘 29:30-31, 계 19:9), 하나님께서 선지자(先知者)를 통해 직접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경우도 있지만 (민 22:35, 23:1-12, 26), 근본적(根本的)으로 성경 기자가 이상(異像)이나 꿈, 혹은 사상(思想)을 받아 자신의 말로 기록(記錄)하였다는 것이다(사 2:1-2, 계 4:1).
그리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가 바르게 전달되도록 그 기록되는 과정(過程)에 역사(役事)하셨다는 것이다.

◉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과 "엘렌 화잇"의 글에 대해 사상영감설(思想靈感)을 믿는다.

◉ 성경의 단어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영감(靈感)은 인간의 언어나 표현방법(表現方法)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신에게 작용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가 그 사람의 사상(思想)에 깃드는 것이다.
거룩한 영감(靈感)으로 물들여진 사상에 의해 언어는 영향(影向)을 받는다.
하나님의 정신과 의지(意志)가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혼합(混合)됨으로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1)

◉ <영감(靈感)받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記錄)된 성경(聖經)>
“성경은 감동을 입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성경 자체가 하나님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표현 양식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사상과 표현에 있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로서 대표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어떤 표현은 하나님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논리와 수사(修辭) 가운데 당신 자신을 두어 성경 상 시련의 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필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필촉이 아니었다. 여러 다른 저자들을 관찰해 보라.”(가려 뽑은 기별, 1권, 21)
◉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필촉(筆觸)이 아니라 필자(筆者)들이었다.
선지자들이 영감을 받은 방법에 관한 두 가지 견해(언어영감(言語靈感)과 사상영감(思想靈感))가운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거룩한 영감(靈感)이 단어(單語)가 아닌 사상(思想)에 임(臨)하였다는 사상영감(思想靈感)을 받아들인다.

(火) (1월 27일)
<이상(異像)을 받을 때의 신체적(身體的) 현상(現像)(단 10:7-9, 17-18)>

◉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듯이 즉 화(禍)가 난 사람의 안면(顔面)을 보면 그가 화(禍)가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기분이 좋은 사람의 안면(顔面)은 상기(上氣)되어있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설교(說敎)를 듣고 은혜를 충만케 받은 성도(聖徒)님들도 얼굴에 나타나는데, 하물며 죄인들이 감히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뵌다는 것은 당연히 혼절(昏絶)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다니엘, 사도바울, 요한"등은 하늘의 이상(異像)이 임(臨)할 때에 다음과 같은 신체적(身體的)인 현상들이 나타났다. (단 10:7-10, 17-18, 행 9:1-5, 계 1:17)
☞ 이상(異像)을 본 선지자들은 심히 두렵고 떨리며 온 몸의 힘이 빠지고 죽은 자 같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 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단 10:8-9)

◉ "엘렌 G 화잇"의 목격자인 "제임스 화잇(James White)"은 1868년에 그녀(엘렌 G 화잇)의 이상(異像)중에 나타난 신체적 현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描寫)하고 있다,
① 주변 사물에 완전히 무의식(無意識)상태였고.
② 숨을 쉬지 않았고,
③ 이상(異像)에 들어가는 즉시 근육은 딱딱해졌고 관절은 고정되었으며, 어떤 외부의 힘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④ 이상(異像)에서 돌아왔을 때 에는 대낮이든 조명(照明)이 있을 때에도 사물(事物)을 어둡게 느꼈다.
◉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상(異像)을 볼 때에 나타났던 신체적인 현상이 "엘렌 G 화잇"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여러 사람들이 그 목격한 바를 증언(證言)하였다.

◉ 아무리 신체적인 현상(現像)이 아무리 인상이 깊다하더라도 현상에서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모든 영적인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검증(檢證)되어야 하듯이 "엘렌 지 화잇"의 글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검증되어야 한다. 감사하게도 "엘렌 지 화잇"의 모든 글은 성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水) (1월 28일)
<영감(靈感)과 편집보조자(編輯補助者)들 (렘 36:1-4)>

◉ 1960년대의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문맹률(文盲率)이 무척 높았다.
그러므로 자식(子息)들이 군대(軍隊)에 가 있거나 타지(他地)생활을 하면 편지를 대필(代筆)해주는 경향이 무척 흔하고 많이 있었으며, 지금도 외국인과의 국제결혼이나 사업(事業)등으로 외국어를 못하는 경우에는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본인들의 의사를 대필(代筆)하는 경우가 있고, 특히 법률적인 면에서는 변호사(辯護士)를 통해서 본의 억울한 의사(意思)를 전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필촉(筆觸)이 아니라, 필자(筆者)들이었다. 그들은 이상(異像)이나 꿈에서 본 것을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였다. 우리는 성경의 선지자들이 서기(書記)를 두었던 사례(事例)들을 알고 있는데, 이 서기(書記)들이 하나님의 기별(寄別)을 기록한 것이다.

◉ (렘 36:1-4, 롬 16:22, 고전 16:21, 골 4:15-18, 살후 3:17)등에서 대필(代筆)자 혹은 보조자(補助者)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바룩"으로 하여금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게 하였고, 사도 바울도 자신의 편지를 "더디오"가 대서(代書)하게 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그 편지 마지막에 자신의 친필(親筆)로 문안함으로써 그 편지가 자신의 것이라는 흔적(痕迹)을 남겼다.

성경 기자들 중에는 편집 보조자나 서기를 통해 하나님의 기별을 기록하게 한 이들도 있다. 신약 시대에 서기들은 필자가 말하려는 내용을 밀랍(蜜蠟)판에 요약한 다음 그것을 편지에 옮겨 적었다. 편지를 보내기 전에 필자는 내용이 바르게 적혔는지 검토하였다.

◉ "엘렌 지 화잇"도 편집 도우미를 활용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녀는 9살의 나이에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에 저자로서의 한계를 인식하였다.
“나는 문법 학자가 아니지만 시도해 볼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도우시면 마흔다섯의 나이에도 그 분야의 학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리라”(가려 뽑은 기별, 3권, 90).
그래서 편집 도우미가 원고를 정리하는 일을 도왔던 것이다.

2. 그녀는 문학적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를 강력히 느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충실한 조력자들이 나를 도와주었으며 저들은 증언들을 베껴 쓰는 일과 출판에 넘길 원고들을 준비하는 일에 불굴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가려 뽑은 기별, 1권, 50)

3. 그녀의 책은 대부분 처음부터 책으로 쓰이지 않았고, 이미 쓴 글들을 한 데 모아 책으로 엮었기 때문에 그 작업을 특별히 도울 사람들이 필요했다.
메리언 데이비스(Marian Davis)는 엘렌 화잇의 편집 도우미였다.
“그녀는 인쇄물들에 출판된 내 기사들을 취하여 백지로 된 책에 풀로 붙인다.
또한 내가 기록한 모든 편지 사본도 가지고 있다.
책의 한 장(章)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그녀는 내가 기록한 특별한 내용을 기억하여 그 문제를 더욱 보강해 준다. 그럼에도 그 책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3권, 91)
◉ 예레미야의 조력자인 "바룩"
“예레미야는 이 명령에 순종하여 충실한 친구인 그의 조력자 서기관 바룩을 불러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받아쓰게 하였다. 이것은 양피지 두루마리에 조심스럽게 기록되었고, 죄에 대한 엄숙한 책망과 계속적인 배도의 분명한 결과에 대한 경고와 모든 죄악을 버리라는 열렬한 호소로 구성되었다.

기록이 완성되었을 때에 아직 죄수로 있던 예레미야는 바룩을 보내어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오년 구월에’ 국가적인 금식일 을 당하여 성전에 모여 있던 군중들에게 그 두루마리를 읽게 하였다.”(선지자와 왕, 432-433)

◉ 선지자가 대필(代筆)자나 보조자(補助者)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기록하는 경우가 있었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도 편집 보조자들을 두었다.
그들이 책의 제작과정에 도움을 주었으나 그 책은 여전히 저자(著者)의 것이다.

목(木) (1월 29일)
<영감(靈感)과 누가의 책(冊) (눅 1:1-4)>

◉ 누가복음 1:2 에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目擊者) 되고." 라는 말씀은 ?
즉 예수님의 공중 봉사가 시작될 때부터로 상황을 보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목격자(目擊者)"라는 말은 헬라어 "아우톱타이(autoptai).로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 요한은 자신을 목격자로 언급했다.(요 1:14; 21:24; 요일 1:1-2)
12사도, 70명의 제자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 다니며 섬기던 모든 여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처음부터" 목격자(eyewitness)였다. 반면에 "누가", "바울", "디모데"는 "귀로들은 증인(證人)" (ear-witness)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수의 생애와 봉사에 관한 그들의 지식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함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들은 지식의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거룩한 계시의 가르침을 통해 받았기 때문에(고전 15:3-7; 갈 1:11-12) 그들의 증거의 가치를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는다.
여기서 누가가 보여준 겸손은 그의 이름이 붙은 복음서의 신빙성과 타당성을 뒷받침해주는 탁월한 증거이다.
누가는 정확한 증거를 진술하기 위해 조심하면서 날조자들이 늘 그렇게 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사실 누가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봉사에 관한 자신의 이해가 본래 목격자들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음을 분명하게 진술한다. 그러므로 누가의 경우 영감의 역할은 본래의 지식을 "나누어 주는"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자신이 기록한 것의 정확성을 "보증하는"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원자료(原資料)를 접했던 역사가인 것은 사실이나 그 이상으로 그는 영감 받은 역사가(歷史家)였다.
누가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영감은 정신기능의 자연적인 활동과 일치하게 작용하고 그것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 여기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 입수할 수 있는 구전과 기록된 자료를 부지런히 연구 한 후 그렇게 모은 정보를 일관된 이야기로 엮어낸 영감 받은 기자가 있다.
현존하는 역사문서를 사용할 때 영감이 인간 도구를 인도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보려면 (F. D. Nichol, Ellen G. White and Her Critics, 413-422)을 참조하라. (본교 성경주석(한) 10권178-179p 참고)

◉ 누가복음 1:2 에 "전하여 준"이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디도미(paradidomi) "넘겨주다", "배달하다" 혹은 "위탁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단순히 한 세대 혹은 한 집단이 다른 세대나 집단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참조 고전 11:23; 15:3; 딤후 2:2)
진리를 "받은"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과 누가는 제2세대 그리스도인이었으며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한 것은 "받은"것이었다.

◉ 누가복음 1:3 에 "근원부터" 라는 말은 예수님의 생애의 "근원부터"마치 탐험가(探險家)처럼 누가는 사건의 흐름을 그 발단(發端)까지 추적해 올라가 그 흐름의 과정을 철저하게 따라 내려갔다.
따라서 누가는 다른 복음서의 기자들보다 훨씬 상세하게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의 배경을 제시한다.
복음서에 언급된 예수님의 탄생이전에 있었던 여섯 개의 사건(事件)중 다섯 개를 누가가 기록하고 있다.

◉ 누가복음 1:3 에 "자세히 미루어 살핀"이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뒤를 따라가다."라는 의미이다.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자신의 깊은 연구에서 얻은 유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누가는 근원부터 시작했으며 모든 것을 조사하였다. 누가는 자기의 복음서 기록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정확하고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진지한 학자들의 특징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마가는 예수님의 봉사에 나타난 사건들을 강조하는 반면, 누가는 어느 누구보다 이두가지 요소를 더욱 완전하고 체계적으로 결합시킨다.
"그 모든 일을 …….자세히 미루어 살핀"다는 누가의 주장은 근거 없는 자랑이 아니다.
공관복음 이야기179가지 중 43가지가 누가복음에만 나타난다. (본교 성경주석(한) 10권178-179p 참고)

◉. 누가는 누가복음 1:1-4에서 복음서가 존재하게 된 이유와 영감에 대한 사실을 알도록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집필(執筆)하였다고 말한다.
누가는 그것들을 살펴서 성령의 인도로 근원(根源)부터 잘 미루어 살펴서 바르게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영감(靈感)은 이렇게 이미 기록한 글들 중에 합당한 것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도록 기록하게도 하시는 것이다.

◉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쓸 때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참고로 기초하였고, 바울 사도(使徒)도 이교(異敎)의 글들을 인용(引用)하였다. 성경의 기자들이 때때로 영감(靈感)받지 않은 저자의 글을 인용하여 진리를 설명한 경우가 있다. 엘렌 G. 화잇도 "각 시대의 대쟁투" 등의 책에서 역사가(歷史家)들이나 일반 저자들의 글을 인용(引用)한 경우가 있다.

◉ 내가 쓰는 편지들과 내가 증거(證據)하는 증언들을 통해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면(紙面)에 단 한 가지의 기사(記事)도 단순히 내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표현하기 위하여 쓰지 않는다.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나에게 보여주신 것으로서 이 계시는 보좌(寶座)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高貴)한 광선(光線)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7)

<초점(焦點)>
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계시(啓示)와 영감(靈感)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기자(記者)들과 편집(編輯)자들로 기록하게 하셨다.

2.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도 선지자들에게 허락하신 똑같은 감동과 영감(靈感)으로 남은 무리에게 기록된 말씀과 증언의 말씀들을 성취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다.





♡ 기-ㄴ 문장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번의 교과를 통하여 살아계시어 항상 눈동자처럼 보살펴주시는
축복의 주님을 통하여 평강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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