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에스더와 모르드개(질문, 대답, 설명) 1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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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12-15 13:32 조회3,849회 댓글0건본문
제12과 에스더와 모르드개
(12월 2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8분)
연구 범위: 단 1:1~12, 단 6:1~9, 에 2:1~10, 20, 에 3:1~15, 에 4:1~14, 에 9:1~12
기억절: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성경에서 "타문화 사역"에 대한 가장 고무적인 이야기는 에스더서에 기록되어 있다. 수천 년 동안 이 책에 대해 많은 글이 쓰여졌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유대인들은 에스더 9:26~31절에 근거하여 부림절을 지킨다.
에스더와 그녀의 사촌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사에 살던 유대인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유다로 귀환한 유대인들과 달리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 온 땅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섭리를 통해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다.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에스더 2:17)았다.
마지못해 맡은 자리였는지 모르지만 에스더가 성경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자리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방의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진리를 위해 증거할 수 있는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학습 목표
깨닫기: 이방 문화 속에서도 신실한 백성을 통해 하나님은 구원의 기별을 전하신다.
느끼기: 이방 문화 속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
행하기: 어려운 환경에도 변함없이 충실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세상에 증거한다.
TMI 위로
2. 사람의 신실함과 그 환경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미칩니까?(단 1:8)
*답: 뜻을 정해야 할 환경이 생길 수 있다.
3. 민족을 밝히지 말라는 모르드개의 당부는 그 상황이 어떤 것을 말해줍니까?(에 2:10)
*답: 다른 민족으로 살아가기 나쁜 환경인 것을 말해준다.
4. 민족을 밝히지 말라고 하던 모르드개가 자기 민족을 밝힌 이유는 무엇입니까?(에 3:4)
*답: 밝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을 구원하려고 했다.
5. 이방 땅에서 위기 앞에 에스더가 대응한 방법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에 4:16)
*답: 그의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6.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합니까?
*답: 전도할 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것을 시사하고 마지막 때를 암시한다.
7. 에스더가 받았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에 4:14)
*답: 말세의 우리도 이때를 위하여 존재하도록 하셨음을 암시한다.
결론: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이 충실하다. 이방 문화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은 지혜가 필요하며 믿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 이방 문화 속에서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지만 기도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위기 중에서도 신실한 종의 믿음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며 그 증거를 통해 하나님은 이방 문화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기별을 전하신다.
12월 17일(일) 이방 문화의 포로로 잡힘
이방 문화권의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바벨론에 이어 페르시아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직면했던 상황을 오늘날의 우리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의 신앙원칙이 어느 정도라도 국법에 반영되어있는 국가에 사는 사람은 우리 중 아무도 없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신앙의 원칙이 법으로 제정되어 있던 자기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나라에 산다면 하나님께 충실하기가 얼마나 쉬웠을지 생각해 보라.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쉬웠겠는가?
그와 달리 성경의 역사는 그 땅의 법령이 무엇이든 또 그것이 신앙에 유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신실함은 마음과 내면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죄와 배교와 파멸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반대로 신실하게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불리한 환경도 그들의 충성심을 꺾을 수 없다.
다니엘 1:1~12, 3:1~12, 6:1~9을 읽어 보라. 각각의 상황은 다르지만 이 기록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문화에서 살면서 직면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단1:1~12]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3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단3:1~12]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2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3 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4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6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9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단6:1~9]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답: 그 나라의 문화와 제도와 법률을 따르도록 강요받게 된다.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법률, 문화, 또는 둘 다에 의해 어느 정도는 자신의 믿음과 증인으로서의 삶에 큰 도전을 받을 수 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역사하시지만 다니엘서의 이러한 기록들은 시련 가운데에서도 사람이 하나님께 충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기록들이 성경 기사와는 다르게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여전히 옳은 일을 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교훈> 우호적 환경이거나 아니면 이교 문화 가운데 있어도 신실함은 마음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은 어떤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충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가설명>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외국이다. 히브리서는 그렇게 계시했다(히11:13). 말하지 않아도 이방 문화가 우리의 삶을 강박한다. 생활 방식이 서로 다르다. 먹는 것이 다르고 언어생활도 다르다. 이것들이 달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8장에서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8:2~5). 애굽 문화도 따르지 말고, 가나안 문화도 따르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문화를 널리 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살면서 애굽 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을 때까지 몸에 지니고 있는 패물 우상을 버리지 못했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말했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수24:23). 그들은 끈질기게 우상과 함께 살았다. 이런 우상은 오늘날 문화라는 이름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붙는다. 지식, 예능, 학문 등등에 숨어 있는 아주 많은 우상이 있다. 성도는 이것을 잘 분별해서 정말 생각과 언어와 삶에 이런 우상을 말끔이 없애주시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다. 정말 우리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방 문화와 다를 바 없는 오늘날의 문화는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신이 속한 문화에서는 신앙에 대한 어떤 도전이 있습니까?”
12월 18일(월) 이방 궁궐에서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 페르시아가 세워진 이후 유대인들은 조상의 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두가 귀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중 일부는 그들이 한 세대 이상 살았던 이방 땅에 남았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면 에스더 이야기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자신의 왕국의 왕좌에 앉았고"(에 1:2).
성경의 기록이 진행되는 장소는 바로 아하수에로가 통치하던 페르시아 제국이다.
왕비 와스디는 왕의 총애를 잃었고, 왕은 탐탁잖은 와스디를 대신할 다른 왕비를 찾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에스더와 그녀의 친척 모르드개가 처음 등장한다.
에스더 2:1~9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에2:1~9]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2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3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4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8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9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답: 그들의 처지와 관계를 알려준다. 그들은 유대인 포로요, 수산 성에 살았고 에스더는 부모를 잃고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딸처럼 기른 아가씨이다.
모르드개는 왕실 관리로서 궁궐 문에 앉아 있었고, 그의 사촌이자 수양딸로 입양한 에스더와 함께 수산 성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지위와 거주지 때문에 그들은 페르시아 문화와 영향력 가운데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에게 이끌려가서 선택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에 2:8).
에스더 2:10, 20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모르드개는 왜 에스더에게 그런 명령을 하였는가?
[에2:10,2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20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답: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명대로 자기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않았다.
이유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 가운데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적대적인 환경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가족과 민족에 대해서 침묵을 지킨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교훈>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전혀 다른 페르시아의 문화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과 문화를 드러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7:6)라고 경고하셨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대상을 잘 생각하라는 뜻이다. 내쪽의 비밀을 간첩에게 말하면 비밀 누설죄가 된다. 사탄은 광명한 천사처럼 접근하여 비밀을 들은 후에 그것으로 공격의 무기를 삼는다. 개와 돼지가 거룩한 것과 진주를 발로 밟고 그것으로 준 사람을 공격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때때로 복음을 전할 때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해야 할 경우에 내 신분을 쉽게 노출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이런 경우 신앙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때가 될 것이다. 예수님도 자기 뜻이 무르익어 그 때가 되기 전에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다른데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을 단속하셨다. 미리 드러나면 구원 사업을 이룰 수 없도록 사탄이 엄청난 방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가 중요하다. 우리는 때를 따라 양식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마24:45). 적대적인 상황에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가장 현명하게 활동해야 한다. 예수님이 나타내셨던 방법은 충분히 참고할 방법이 아니겠는가?
12월 19일(화) 신실한 증인 모르드개
이국땅에 살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유지하려다 보면 언제든 곤란한 일을 마주칠 수 있다. 바로 그런 일이 모르드개에게 일어났다.
에스더 3:1~15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에3:1~15]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10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12 첫째 달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령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리와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14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15 역졸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답: 왕이 하만을 높인 것과 그에게 절하라는 명을 내렸어나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이 다 죽임 당하게 되었다.
에스더 3장에서 우리는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에게 넘치는 권력과 높은 지위를 준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사람은 하만 앞에 절해야만 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에스더 3:2)였다. 성경은 모르드개가 하만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신실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을 알고 있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에 3:3)고 물었다. 모르드개의 대답이 다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자기가 유다인임을 알"(에 3:4)린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모르드개는 출애굽 이래 유대인의 적이었던 아말렉 사람(신 25:19) 아각의 후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지 않았다. 신실한 유대인이 어떻게 아말렉인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으며 또 주님 외에 그 누구를 경배할 수 있겠는가? 이 대답을 통해 모르드개는 자신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으로서 죄인인 인간을 숭배하거나 절할 수 없다고 설명했을 것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모르드개를 통해 바벨론 왕궁의 도덕적 어둠 가운데 밝은 빛이 비쳐졌다"(엘렌 G. 화잇, 리뷰 앤 헤럴드, 1884. 5. 13.).
모르드개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굳건히 지킨 믿음은 모르드개만 아니라 그의 민족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하만은 유대 민족을 멸망시키려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에 3:8)한다고 고발했다.
관습이 다르고 왕의 법을 따르지 않는 백성이라는 명분은 핍박을 하기에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교훈> 이국에서 그 땅의 관습과 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핍박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방 땅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신다.
<부가설명> 모르드개에게 하만에게 절하라는 명령은 안중근에게 이등박문에게 절하라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가 핍박의 대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은 핍박하라고 자청하는 꼴이 된다. 이것은 지혜가 아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려면 지혜롭고 조심스럽게 나타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 유대인에게는 그 고침 받은 것을 소문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출교할 것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요9:22). 그러나 이방인을 고치시고는 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을 알리라고 하셨다(막5:19,20).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기에 더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라는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 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전도하러 왔다고 하면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한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지혜롭게 하는 것과 그냥 숨기려고 하는 것은 다른 상황이다.
12월 20일(수)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에스더 4:1~14을 읽어 보라. 이 시기에 에스더가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밝히는 것이 적절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에4:1~14]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답: 그때가 유대인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였기 때문이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와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난 때였다. 그렇지만 페르시아에는 왕의 초청이 없이는 누구도 왕좌 앞에 나올 수 없다는 법이 있었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에 처할 수 있었다. 에스더는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초청 없이 왕 앞으로 갔다.
신실한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믿음을 일깨우기를 원했다. 에스더서의 핵심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 속에 들어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3, 14).
모르드개가 동족에 대한 사랑을 호소할 때 에스더의 믿음은 시험에 들었다. 모르드개 외에는 아무도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왕 앞에 나가기로 결심한 이후로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목숨을 걸었다.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굳건했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르드개에게 한 그녀의 대답은 그녀의 믿음을 나타낸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6). 모르드개는 이 기별을 수산에 있는 유대인 전체에 보냈고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 동안 에스더는 위험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했다.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에 5:1, 2).
<교훈> 위기 앞에서도 에스더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함께 기도하도록 요청했다.
<부가설명> 천하 만사는 가장 합당한 때가 있다. 솔로몬은 전도서 3장에서 이것을 잘 기록하였다. 에스더가 자기를 유대인이라고 드러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것을 드러낼 때는 죽음이 닥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때가 유일한 때이기에 그는 목숨을 걸고 모험을 했다. 하나님도 그때가 가장 합당한 때였기에 왕의 마음을 감동해서 에스더의 요청을 수락하도록 감동하셨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와 어미닭이 알의 안과 밖에서 부리를 모아 동시에 껍질을 깨는 것을 뜻한다. 병아리가 나오려고 알 껍질 안에서 꿈틀대며 부리로 톡톡 치면, 초조하게 예쁜 새끼가 나오기를 기다린 어미 닭은 그 소리를 듣고 병아리가 잘 깨고 나올 수 있도록 껍질을 조금 쪼아주는 것이다. 같은 시각에 이 일이 행해진다. 하나님의 때에 사람이 기도하고 그것이 응답받는 것이 줄탁동시와 같지 않은가?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갔고 왕이 에스더의 청을 들어서 유대인을 구한 것은 줄탁동시의 은혜였다. 우리의 기도도 전도도 이렇게 줄탁동시가 되면 백번 구하여 백번 응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를 잘 모른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할 그 때가 될 때 응답하신다. 전도는 내가 하지만 결과는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12월 21일(목) 부림절의 기적
성경 주석가들은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고 연구했다. 성경에서 에스더서 외에는 이런 경우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페르시아의 유대인들을 위해 행하셨던 위대한 구원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 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성경의 정경에 포함되었다.
우리도 일상생활의 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종종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들처럼 보일 수 있으며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에스더 9:1~12을 읽어 보라. 에스더의 노력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에9:1~12]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답: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했고 그들을 죽이려던 원수들이 죽게 되었다. 이것을 기념하여 부림절을 제정하고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다.
부림절의 기적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나타났다. 기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건처럼 숨겨져 있다. 유대인을 멸망시키는 법은 뒤집히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법이 공포되었다.
또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들을 통해 어떻게 일하실 수 있었는지를 주목하라. 페르시아인들은 유대인들을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그 일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이것은 주님께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해 어떻게 일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했다.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성공했을 때 그날을 절기로 삼아 부림절로 정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승리를 기념하고 축하했다.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전통을 따라 이날을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
<교훈>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은 종종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주의 깊게 살필 때 그 역사를 알 수 있으며 그 일로 열방과 함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부가설명>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란 말도 여호와란 말고 나타나지 않는다. 꼭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은 자리에도 없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할 때 이때 네가 잠잠하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데로 말미암아’라고 말했다. 생각하면 철저하게 하나님이라는 칭호나 여호와라는 이름이 배제되었다. 그래서 이것이 정경이 되는지 논란이 격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님 역사로 정경에 편입되었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는 성경으로 ‘아가’도 있다. 그러나 8:6에 ‘여호와의 불’이라는 말이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샬헤베티야’인데 마지막 ‘야’가 여호와의 단축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불로 번역하고 이것이 최상급을 나타내는 관용구라고 보는 사람들은 ‘맹렬한 불’이라고 번역한다. 옛 한글 성경에는 ‘번갯불’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면 아가서에도 하나님의 칭호가 없다. 아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을 노래하면 연인 사이의 사연이기 때문에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두 사람 사이의 지극한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스더서에 하나님이란 말이나 여호와라는 말이 없는 것은 율법이 투쟁의 문제가 되는 때인 야곱의 환난을 표상하는 사건으로 이해하면 그때는 중보자가 성소에서 나온 후 중보가 끝난 때의 사건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보다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에3:8). 이것은 마지막 환난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향한 세상의 고소를 암시하는 말이다.
12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이스라엘 역사의 중대한 위기에서 왕후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라는 질문은 오늘날 이 중대한 시기에 복음의 빛을 받은 모든 가족, 학교, 부모, 교사 그리고 모든 어린이에게도 던져졌다"(교육, 263).
에스더는 아름다운 유대인 소녀로 모르드개의 사촌이었으며, 부모가 죽은 후 모르드개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친딸처럼 사랑으로 돌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사용하여 페르시아 땅의 유대 민족을 구원하셨다.
"고대에 주님은 그분의 대표자로 서도록 선택하신 남자들과 함께 그분의 사업에 헌신한 여인들을 통해 놀라운 방식으로 일하셨다. 주님은 여성들을 사용하여 위대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셨다. 그분은 위급한 상황에서 여러 번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우셨고 그들을 통해 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셨다. 주님은 왕후 에스더를 통해 그분의 백성을 위한 강력한 구원을 이루셨다. 어떤 힘으로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을 것 같던 때에 에스더와 그와 함께한 여성들은 금식과 기도와 신속한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었다 …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한 여성들의 사역을 연구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역의 긴급한 필요에 대처할 수 있는 교훈을 가르쳐 줄 것이다. 에스더 시대의 하나님의 여인처럼 중요하고 눈에 띄는 자리에 서지 못할지라도 거듭난 여성들은 더 겸손한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엘렌 G. 화잇, Daughters of God[하나님의 딸들], 45, 46).
토의를 위한 질문
1. 에스더서는 에스더가 왕궁에서, 특히 왕후가 된 후 어떤 역할을 감당했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점을 남긴다. 왕궁에서의 일들과 에스더의 신앙은 조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대는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답: 아마도 자기의 최선을 다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순복했을 것이다.
2.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는 에스더의 유명한 말은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는 신실함의 본보기로 수천 년 동안 울려 전해지고 있다. 에스더의 말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쟁점이 현실이 되는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면하게 될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답: 그때도 하나님의 계명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것이고 에스더의 태도로 서야 할 것이다.
3. 월&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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