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 예언의 은사의 신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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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2-26 20:21 조회5,992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09년02월28일(안) 李奉周 (제9과).hwp (24.5K) 108회 다운로드 DATE : 2009-02-26 20:21:25
본문
2009년 2월 28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25분)
제9과 예언(豫言)의 은사(恩賜)의 신빙성(信憑性)
<기억절>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대하 18:13)
(깨닫기) : 선지자들도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다.
(느끼기) : 선지자들의 결함과 실패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다.
(행하기) : 엘렌 G. 화잇의 인간적인 면을 감안하여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그녀의 글들을 읽어본다.
(요점(要點))
선지자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같이 엘렌 G. 화잇도 지식과 품성의 자라남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그릇된 권면(勸勉)을 언제든지 교정(矯正)하실 수 있으시다.
일(日) (2월 22일)
<선지자(先知者)의 신빙성(信憑性) (왕상 22:10-18)>
◉ 신빙성(信憑性)이란?
“믿어서 근거(根據)나 증거(證據)로 삼을 수 있는 정도나 성질(性質)을 신빙성이라 한다.”
신뢰성(信賴性)은 “굳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성질을” 신뢰성이라고 하며,
신뢰성(信賴性)이 있을 때 비로소 신뢰심(信賴心)이 생기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대하여 비평과 비평(批評)서의 글들을 쓰고 있다.
즉 1. 역사적(歷史的) 비평적 방법
1) 본문비평
2) 자료비평
3) 양식비평
4) 편집비평
2. 공시적(公示的) 해석방법
1) 정경비평
2) 사회학적 비평
3) 구조주의적 비평
4) 문학비평
이상의 제목으로 볼 때에는 그럴듯한 감을 주지만 ?,
이는 하나님을 사람들이 비평하고 분석하고 하나님을 평가하다는 근본적인 취지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제작(製作)이나 제조(製造)는 설계와 도면과 비평(批評)들을 할 수가 있지만,
이 말은 무엇인가 재료나 원료가 있는 상태에서 제조나 제작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창조(創造)는 이론이나 설명을 유한(有限)한 인간들이 감히 속단할 수없는 범위가 창조인 것이다.
즉 창조란 무(無)에서 유(有)를 지향하는 것이 창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경륜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유한한 인간들이 짧은 지식과 식견(識見)으로 판단한다는 그 자체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통탄스러운 일이라 사료된다.
◉ 그러므로 성경속의 인물 가운데에서도 당대(當代)에 정권(政權)중에서(예(例): 아합 왕 등등) 실세(實勢)들과 지식인층들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거역하고 오히려 선지자들을 박해(迫害)하고 죽이기까지 한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 왕의 신하는 왕이 듣기 좋은 말을 하라고 권했으나,
미가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 이외의 말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대답하고,
선지자답게 하나님의 기별을 증거 하였다.
미가야의 기별이 그 왕을 기쁘게 하지 못하자,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왕상 22:27).
아합 왕은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장으로 나갔다가 죽임을 당했고,
무력한 순간에 아합 왕을 도우려 했던 여호사밧 왕도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 선지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연약한 순간이 있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미가야 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기로 결심하였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의 증언을 바꾸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 “엘렌 G. 화잇”의 생전에 비평가들은 그녀의 사역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그녀의 사후에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사기, 허위진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비난이 생긴 이유는, 선지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선지자의 예언은 변경될 수 없고, 그 글에는 전혀 오류와 모순과 실수가 없어야 하며, 영감 받지 않은 자료가 포함되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선지자는 결코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허버트 E. 더글러스, 주님의 기별자, 퍼시픽 프레스, 1998년, 468).
성경의 선지자들에 대한 연구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주장은 언어 영감설로서 재림교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사상이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엘렌 G. 화잇”에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 <오늘날 인기 없는 진리를 전할 때.>
“오늘날 인기가 없는 진리를 가르치는 이들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비록 그들이 바울과 그의 동료들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는다 할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를 전하는 기별자들은 깨어 기도함으로 자신들을 무장하여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며, 믿음과 용기로 전진해야 한다.”(사도행적, 230)
◉ 선지자들은 때때로 인기 없는 기별을 전함으로 고난(苦難)을 당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아울러 선지자들의 글은 모든 오류(誤謬)에서 벗어난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난번의 교과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월(月) (2월 23일)
<기별(寄別)의 신빙성(信憑性)(렘 43:2-4)>
기별(寄別)이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소식(消息)을 전함”을 기별이라 한다.
우리는 늘 뉴스 속에 살고 있다.
그 뉴스(news)란 올바르지 않는 기별도 있고, 올바른 기별도 있다.
그 뉴스나 기별(寄別)이 신빙성(信憑性)이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事實)이냐 허구(虛構)냐의 차이로 눈으로 귀로 손이나 피부로 즉 오감을 통해서 직접보거나 듣거나 만진 사람이 정확한 것이지, 전하여 또는 추측(推測)등을 통하여 전달 받은 것들은 오류(誤謬)이거나 허구(虛構)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기별을 거부하는 자들의 특성은 전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을 자신의 생각 안에만 묶어둘 때 신빙성이 결렬(決裂)된다는 것을 교훈(敎訓)하자.
◉ 선지자 예레미야는 애굽에 거(居)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렘 43:3)고 예레미야를 비난(非難)하였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지시를 싫어하여 예레미야의 기별이 하나님이 아닌 그의 서기관 바룩에게서 왔다고 주장했다.
◉ 흥미롭게도 수천 년 후에 “엘렌 G. 화잇”도 예레미야처럼 조력자를 사용한 것과 그녀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한 것에 대해 표절(剽竊)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각 시대의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 서문에서 다른 사람의 책을 인용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어떤 역사가(歷史家)가 주제의 총괄적 견해를 간단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사건들을 분류하거나 편의상 세부(細部)들을 요약했을 경우에 그 역사가의 말을 인용하였다.
… 또한 우리 시대에 종교 개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견해를 기술함에 있어서도 그들이 출판한 저서에 대하여 그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12)
◉ 1981년에 대총회는 비재림교인인 저작권 전문 변호사에게 이 문제를 연구하도록 의뢰하였다. 3,000시간 이상의 조사가 실시된 후에 이런 결론이 내려졌다. “엘렌 화잇은 표절을 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저작은 저작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애드벤티스트 리뷰, 1981년 9월 17일자). 그 이유는
(첫째), 엘렌 화잇이 사용한 책들은 저작권이 걸린 책들이 아니며;
(둘째), 설령 저작권의 제한이 있는 경우라도 그녀는 단 하나의 문장도 저작권에 위배되게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예레미야의 권고(勸告)가 무시됨
“바벨론 관원들에 의해 옥에서 풀려난 예레미야는 갈대아 사람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라고 남겨둔 빈천한 백성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다랴를 세워 그들을 다스릴 총독을 삼았다. 그러나 몇 달이 되지 아니하여 새로 임명된 총독은 백성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가난한 백성은 많은 시련을 겪은 후 마침내 애굽 땅에서 피난처를 찾자는 저희 지도자들의 권유를 받았다. 예레미야는 이 움직임에 대하여 음성을 높여,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영감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고 ‘유다의 남은 자 … 남자와 여자와 유아’가 모두 애굽으로 도망하였다.” (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렘 43:5-7)
◉ 하나님의 기별을 거부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기별의 기원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
“엘렌 G. 화잇”은 정당한 방법으로 자료들을 인용하였다.
화(火) (2월 24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렘 1:4)>
◉ 오늘날처럼 물질문명(物質文明)이 그리 발달하지 못했던 1960-70년대의 시절에 시골집에 가보면 펌프질하는 우물이 있었다. 그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려면 먼저 “마중물”을 붇고 펌프질을 해야 물이 올라온다.
즉 땅속 깊은 곳의 물을 많이 퍼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중물”이 필요하듯이 적은 물이지만 시작하는 물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을 아는 일에도 천연계(天然界)나 성경(聖經)등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심오(深奧)한 하나님을 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方法)중에 하나가 성경으로 쉽게 인도(引導)하는 역할로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 선지자들의 기별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렘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겔 7: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호 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렘 1:4)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는 그들이 전하는 기별이 그들 자신의 기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감적인 기별임을 시사했다.
◉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시사했다.
그들의 역할은 지상 통치자에 의해 보냄을 받은 대사(大使)나, 개인이나 기관의 대변자로 위임된 사람과 흡사하다 하겠다.
그러한 자격을 가지고 그들은 주어진 지시를 철저히 따라야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는 표현은
(a)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다는 것과,
(b)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았다는 것과,
(c) 그 기별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으며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여호와께서 사라사대”라는 표현은 구약에만 400번 이상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력히 증언해 준다.
선지자의 임무는 그 기별을 백성에게로 가져가서 그 백성이 처한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 엘렌 화잇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아주 많이 강조했다.
“나는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7).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거룩한 영감을 주장하였다.
“내가 쓰는 편지들과 증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나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으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9)
◉ 엘렌 화잇은 자신의 글을 가리켜, 남녀들을 더 큰 빛인 성경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이라고 불렀다.
둘 다 빛이지만 그 역할은 다르다.
(1) 성경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별이다.
“엘렌 G. 화잇”의 글은 특정한 시대 곧 마지막 시대의 특정한 백성 곧 남은 교회를 위한 기별이다.
(2) 그녀의 글은 교리에 새롭게 추가된 표준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교회를 돕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녀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성경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며, 결코 성경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큰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
“주님께서는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많은 교훈을 보내셨다.
남녀들이 성경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보다 작은 빛을 주셔서 보다 큰 빛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셨다.
만일 그 속에 있는 원칙을 실행하고자 하는 결심을 가지고 이 빛이 담긴 책들을 읽었다면 오, 얼마나 많은 선을 이루었겠는가?
천 배 이상의 각성이 있었을 것이요 천 배 이상의 자기 부정과 확고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영혼들이 오늘날 현대 진리의 빛 가운데서 기뻐하게 되었을 것이다.”(문서전도봉사, 125-126)
◉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별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했듯이,
“엘렌 G. 화잇”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별을 여러 매체를 통해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수(水) (2월 25일)
<지식(知識) 안에서 자라감 (단 8:27)>
◉ “자라감”이란 말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 있으면 분명히 자라가기 마련이다.
즉 성장이 멈춰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라가는 것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씨앗이 발아(發芽)하면 싹이 나고, 싹이 나면 움이 돋고 그다움은 가지와 열매를 맺는 것처럼,
☞ 선지자들도 자기의 앞길에 주어진 빛을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이해할만한 방법으로 전한다.
◉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도 깨닫지 못한 이상을 깨닫기 위해 다른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진 계시를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선지자들은 이미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라가는 사람들이었다.
◉ 성경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소유했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나 다른 문제에 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증가된 빛을 받아 그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다니엘의 경우처럼(단 9:2), 선지자들은 또한 성경을 연구해야만 했다.
다니엘 8:27에는,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고 하였다.
약 10년 후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와서 전체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단 9:20-23)
◉ 선지자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만 알 수 있었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하도록 허락받았다.
대개 한 선지자에게 주어진 기별은 다른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기별을 보완해 주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온 기별에 대해 균형지고 포괄적인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시를 연구하고 비교할 필요가 있었다.
◉ <“엘렌 G. 화잇”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60년 동안 나는 하늘 사자들과 교제해 왔으며 계속하여 거룩한 사물에 대하여 배워 왔고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그들의 잘못된 길에서부터 하나님의 빛 안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배워 왔다.”(가려 뽑은 기별, 3권, 71)
◉ “엘렌 G. 화잇”의 초기 기록과 후기 저술들을 비교해 보면 수정되거나 확대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기별 안에서 더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녀는 조직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별자(寄別者)였다.
그녀의 신학적 이해는 성경에 기초했을 뿐 아니라, 수년에 걸쳐 성경 외의 글들을 함께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자라나게 된 것이다.
◉ <약점(弱點)과 실수(失手)가 있는 부조들과 선지자들>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 역사의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유능한 사람들을 두시고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고 하셨다. 어느 시대든지 경건한 사람들이 있어서, 자기의 앞길에 주어진 빛을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였다. 에녹, 노아, 모세, 다니엘, 그 외의 많은 부조들과 선지자들은 의의 사도들이었다. 그들은 잘못이 전연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약점과 실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럴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봉사 사업에 자신들을 드릴 때에 그들을 통하여 일하셨다.”(복음 교역자, 13)
◉ 선지자들은 모든 빛을 한꺼번에 받지 아니하고 점진적으로 받았다.
“엘렌 G. 화잇” 또한 영적 및 신학적으로 점차 장성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목(木) (2월 26일)
<선지자(先知者)들이 과오(過誤)를 범(犯)할 때 (삼하 7:1-7)>
◉ 선지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이다.
인간은 과오(過誤)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과오(過誤)를 범(犯)하고 난 후(後)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 범한 과오(過誤)를 깨닫고 나서 어떻게 처신하는 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例))
선지자 나단은 사려(思慮)깊고 지혜로우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때 다윗의 잘못된 계획을 찬성한 것이 있는데 그때에는 왕의 친구로서 한 말이지,
선지자의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밤의 이상(異像) 가운데(삼하 7:4-17)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한 말이 잘못되었으므로 가서 올바르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 “엘렌 G. 화잇”은 과오(過誤)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자신도 그렇게 과오(過誤)가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더 많은 빛을 받기 위해 마음을 열어 놓았었다.
“엘렌 G. 화잇”은 어떤 문제에 관해 생각이 바뀐 경우도 있었다.
(예) 한 예를 들면,
남부에 있는 출판소가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엘렌 화잇은 그 출판소를 리뷰 앤드 헤럴드에 귀속시키는 것을 지지하고 “그렇게 하라”(미간행 원고, 17권, 270)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24시간이 못되어 정반대의 이상을 받았다.
“남부 지역에도 책을 발행할 수 있는 건물이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대총회에 말하였다.
(아서 L. 화잇, 엘렌 G. 화잇: 엠스헤이븐에서의 초기의 생애, 193)
◉ 우리는 선지자들이 항상 근무 중이 아니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언하는 상황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적인 것들을 진술해야 할 때가 있다.
일반적인 생각들에 마음을 써야만 하며 일반적인 편지들이 쓰여져야 하고 일꾼들 중 이 사람으로부터 저 사람에게 전달된 정보들이 주어져야만 한다.
그러한 말과 그러한 정보는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영감 아래 주어진 것이 아니다.”(가려 뽑은 기별, 3권, 58)
◉ 그러나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왕에게 전할 기별을 주셨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건축할 특권을 받지 못할 것이나 그와 그의 후손과 이스라엘 나라에 내리실 하나님의 은총의 보증을 다음과 같이 허락하여 말씀하셨다.”(부조와 선지자, 711)
◉ 선지자들도 때때로 일반적(一般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생각을 표현(表現)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인적이나 일반적으로 잘못했을 경우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는 즉시 바로 잡고 시정을 하다는 것이 선지자들의 특징이며,
또한 선지자가 잘못된 조언을 준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교정(矯正)해 주신다.
# 먼저 늦게 글을 오려서 무지무지 죄송하옵고요.^^
특히 금번의 제1기 교과는 무척 어려운 교과입니다.
그러므로 "교과책의 저자의 뜻"을 훼손치 않고자
교과책의 말씀을 그대로 많이 인용 하였음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제9과 예언(豫言)의 은사(恩賜)의 신빙성(信憑性)
<기억절>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대하 18:13)
(깨닫기) : 선지자들도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다.
(느끼기) : 선지자들의 결함과 실패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다.
(행하기) : 엘렌 G. 화잇의 인간적인 면을 감안하여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그녀의 글들을 읽어본다.
(요점(要點))
선지자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같이 엘렌 G. 화잇도 지식과 품성의 자라남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그릇된 권면(勸勉)을 언제든지 교정(矯正)하실 수 있으시다.
일(日) (2월 22일)
<선지자(先知者)의 신빙성(信憑性) (왕상 22:10-18)>
◉ 신빙성(信憑性)이란?
“믿어서 근거(根據)나 증거(證據)로 삼을 수 있는 정도나 성질(性質)을 신빙성이라 한다.”
신뢰성(信賴性)은 “굳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성질을” 신뢰성이라고 하며,
신뢰성(信賴性)이 있을 때 비로소 신뢰심(信賴心)이 생기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대하여 비평과 비평(批評)서의 글들을 쓰고 있다.
즉 1. 역사적(歷史的) 비평적 방법
1) 본문비평
2) 자료비평
3) 양식비평
4) 편집비평
2. 공시적(公示的) 해석방법
1) 정경비평
2) 사회학적 비평
3) 구조주의적 비평
4) 문학비평
이상의 제목으로 볼 때에는 그럴듯한 감을 주지만 ?,
이는 하나님을 사람들이 비평하고 분석하고 하나님을 평가하다는 근본적인 취지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제작(製作)이나 제조(製造)는 설계와 도면과 비평(批評)들을 할 수가 있지만,
이 말은 무엇인가 재료나 원료가 있는 상태에서 제조나 제작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창조(創造)는 이론이나 설명을 유한(有限)한 인간들이 감히 속단할 수없는 범위가 창조인 것이다.
즉 창조란 무(無)에서 유(有)를 지향하는 것이 창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경륜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유한한 인간들이 짧은 지식과 식견(識見)으로 판단한다는 그 자체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통탄스러운 일이라 사료된다.
◉ 그러므로 성경속의 인물 가운데에서도 당대(當代)에 정권(政權)중에서(예(例): 아합 왕 등등) 실세(實勢)들과 지식인층들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거역하고 오히려 선지자들을 박해(迫害)하고 죽이기까지 한 사실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 왕의 신하는 왕이 듣기 좋은 말을 하라고 권했으나,
미가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 이외의 말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대답하고,
선지자답게 하나님의 기별을 증거 하였다.
미가야의 기별이 그 왕을 기쁘게 하지 못하자,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왕상 22:27).
아합 왕은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장으로 나갔다가 죽임을 당했고,
무력한 순간에 아합 왕을 도우려 했던 여호사밧 왕도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 선지자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연약한 순간이 있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미가야 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기로 결심하였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의 증언을 바꾸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 “엘렌 G. 화잇”의 생전에 비평가들은 그녀의 사역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그녀의 사후에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사기, 허위진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비난이 생긴 이유는, 선지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비평가들은, 선지자의 예언은 변경될 수 없고, 그 글에는 전혀 오류와 모순과 실수가 없어야 하며, 영감 받지 않은 자료가 포함되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선지자는 결코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허버트 E. 더글러스, 주님의 기별자, 퍼시픽 프레스, 1998년, 468).
성경의 선지자들에 대한 연구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주장은 언어 영감설로서 재림교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사상이다.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엘렌 G. 화잇”에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 <오늘날 인기 없는 진리를 전할 때.>
“오늘날 인기가 없는 진리를 가르치는 이들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비록 그들이 바울과 그의 동료들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는다 할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를 전하는 기별자들은 깨어 기도함으로 자신들을 무장하여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며, 믿음과 용기로 전진해야 한다.”(사도행적, 230)
◉ 선지자들은 때때로 인기 없는 기별을 전함으로 고난(苦難)을 당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아울러 선지자들의 글은 모든 오류(誤謬)에서 벗어난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난번의 교과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월(月) (2월 23일)
<기별(寄別)의 신빙성(信憑性)(렘 43:2-4)>
기별(寄別)이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소식(消息)을 전함”을 기별이라 한다.
우리는 늘 뉴스 속에 살고 있다.
그 뉴스(news)란 올바르지 않는 기별도 있고, 올바른 기별도 있다.
그 뉴스나 기별(寄別)이 신빙성(信憑性)이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事實)이냐 허구(虛構)냐의 차이로 눈으로 귀로 손이나 피부로 즉 오감을 통해서 직접보거나 듣거나 만진 사람이 정확한 것이지, 전하여 또는 추측(推測)등을 통하여 전달 받은 것들은 오류(誤謬)이거나 허구(虛構)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기별을 거부하는 자들의 특성은 전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을 자신의 생각 안에만 묶어둘 때 신빙성이 결렬(決裂)된다는 것을 교훈(敎訓)하자.
◉ 선지자 예레미야는 애굽에 거(居)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렘 43:3)고 예레미야를 비난(非難)하였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지시를 싫어하여 예레미야의 기별이 하나님이 아닌 그의 서기관 바룩에게서 왔다고 주장했다.
◉ 흥미롭게도 수천 년 후에 “엘렌 G. 화잇”도 예레미야처럼 조력자를 사용한 것과 그녀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한 것에 대해 표절(剽竊)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각 시대의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 서문에서 다른 사람의 책을 인용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어떤 역사가(歷史家)가 주제의 총괄적 견해를 간단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사건들을 분류하거나 편의상 세부(細部)들을 요약했을 경우에 그 역사가의 말을 인용하였다.
… 또한 우리 시대에 종교 개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견해를 기술함에 있어서도 그들이 출판한 저서에 대하여 그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12)
◉ 1981년에 대총회는 비재림교인인 저작권 전문 변호사에게 이 문제를 연구하도록 의뢰하였다. 3,000시간 이상의 조사가 실시된 후에 이런 결론이 내려졌다. “엘렌 화잇은 표절을 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저작은 저작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애드벤티스트 리뷰, 1981년 9월 17일자). 그 이유는
(첫째), 엘렌 화잇이 사용한 책들은 저작권이 걸린 책들이 아니며;
(둘째), 설령 저작권의 제한이 있는 경우라도 그녀는 단 하나의 문장도 저작권에 위배되게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예레미야의 권고(勸告)가 무시됨
“바벨론 관원들에 의해 옥에서 풀려난 예레미야는 갈대아 사람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라고 남겨둔 빈천한 백성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다랴를 세워 그들을 다스릴 총독을 삼았다. 그러나 몇 달이 되지 아니하여 새로 임명된 총독은 백성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가난한 백성은 많은 시련을 겪은 후 마침내 애굽 땅에서 피난처를 찾자는 저희 지도자들의 권유를 받았다. 예레미야는 이 움직임에 대하여 음성을 높여,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영감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고 ‘유다의 남은 자 … 남자와 여자와 유아’가 모두 애굽으로 도망하였다.” (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렘 43:5-7)
◉ 하나님의 기별을 거부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기별의 기원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
“엘렌 G. 화잇”은 정당한 방법으로 자료들을 인용하였다.
화(火) (2월 24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렘 1:4)>
◉ 오늘날처럼 물질문명(物質文明)이 그리 발달하지 못했던 1960-70년대의 시절에 시골집에 가보면 펌프질하는 우물이 있었다. 그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려면 먼저 “마중물”을 붇고 펌프질을 해야 물이 올라온다.
즉 땅속 깊은 곳의 물을 많이 퍼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중물”이 필요하듯이 적은 물이지만 시작하는 물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을 아는 일에도 천연계(天然界)나 성경(聖經)등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심오(深奧)한 하나님을 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方法)중에 하나가 성경으로 쉽게 인도(引導)하는 역할로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 선지자들의 기별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렘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겔 7: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호 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렘 1:4)와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는 그들이 전하는 기별이 그들 자신의 기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감적인 기별임을 시사했다.
◉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시사했다.
그들의 역할은 지상 통치자에 의해 보냄을 받은 대사(大使)나, 개인이나 기관의 대변자로 위임된 사람과 흡사하다 하겠다.
그러한 자격을 가지고 그들은 주어진 지시를 철저히 따라야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는 표현은
(a) 그들의 기별이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다는 것과,
(b)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았다는 것과,
(c) 그 기별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으며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여호와께서 사라사대”라는 표현은 구약에만 400번 이상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력히 증언해 준다.
선지자의 임무는 그 기별을 백성에게로 가져가서 그 백성이 처한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 엘렌 화잇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아주 많이 강조했다.
“나는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받아들인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7).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거룩한 영감을 주장하였다.
“내가 쓰는 편지들과 증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나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으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9)
◉ 엘렌 화잇은 자신의 글을 가리켜, 남녀들을 더 큰 빛인 성경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이라고 불렀다.
둘 다 빛이지만 그 역할은 다르다.
(1) 성경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별이다.
“엘렌 G. 화잇”의 글은 특정한 시대 곧 마지막 시대의 특정한 백성 곧 남은 교회를 위한 기별이다.
(2) 그녀의 글은 교리에 새롭게 추가된 표준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교회를 돕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녀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성경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며, 결코 성경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큰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
“주님께서는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많은 교훈을 보내셨다.
남녀들이 성경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보다 작은 빛을 주셔서 보다 큰 빛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셨다.
만일 그 속에 있는 원칙을 실행하고자 하는 결심을 가지고 이 빛이 담긴 책들을 읽었다면 오, 얼마나 많은 선을 이루었겠는가?
천 배 이상의 각성이 있었을 것이요 천 배 이상의 자기 부정과 확고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영혼들이 오늘날 현대 진리의 빛 가운데서 기뻐하게 되었을 것이다.”(문서전도봉사, 125-126)
◉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별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했듯이,
“엘렌 G. 화잇”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별을 여러 매체를 통해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수(水) (2월 25일)
<지식(知識) 안에서 자라감 (단 8:27)>
◉ “자라감”이란 말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 있으면 분명히 자라가기 마련이다.
즉 성장이 멈춰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라가는 것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씨앗이 발아(發芽)하면 싹이 나고, 싹이 나면 움이 돋고 그다움은 가지와 열매를 맺는 것처럼,
☞ 선지자들도 자기의 앞길에 주어진 빛을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이해할만한 방법으로 전한다.
◉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도 깨닫지 못한 이상을 깨닫기 위해 다른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진 계시를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선지자들은 이미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라가는 사람들이었다.
◉ 성경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소유했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나 다른 문제에 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증가된 빛을 받아 그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다니엘의 경우처럼(단 9:2), 선지자들은 또한 성경을 연구해야만 했다.
다니엘 8:27에는,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라.”고 하였다.
약 10년 후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와서 전체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단 9:20-23)
◉ 선지자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만 알 수 있었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하도록 허락받았다.
대개 한 선지자에게 주어진 기별은 다른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기별을 보완해 주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온 기별에 대해 균형지고 포괄적인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계시를 연구하고 비교할 필요가 있었다.
◉ <“엘렌 G. 화잇”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60년 동안 나는 하늘 사자들과 교제해 왔으며 계속하여 거룩한 사물에 대하여 배워 왔고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그들의 잘못된 길에서부터 하나님의 빛 안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배워 왔다.”(가려 뽑은 기별, 3권, 71)
◉ “엘렌 G. 화잇”의 초기 기록과 후기 저술들을 비교해 보면 수정되거나 확대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기별 안에서 더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녀는 조직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별자(寄別者)였다.
그녀의 신학적 이해는 성경에 기초했을 뿐 아니라, 수년에 걸쳐 성경 외의 글들을 함께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자라나게 된 것이다.
◉ <약점(弱點)과 실수(失手)가 있는 부조들과 선지자들>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 역사의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유능한 사람들을 두시고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고 하셨다. 어느 시대든지 경건한 사람들이 있어서, 자기의 앞길에 주어진 빛을 모아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였다. 에녹, 노아, 모세, 다니엘, 그 외의 많은 부조들과 선지자들은 의의 사도들이었다. 그들은 잘못이 전연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약점과 실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럴지라도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봉사 사업에 자신들을 드릴 때에 그들을 통하여 일하셨다.”(복음 교역자, 13)
◉ 선지자들은 모든 빛을 한꺼번에 받지 아니하고 점진적으로 받았다.
“엘렌 G. 화잇” 또한 영적 및 신학적으로 점차 장성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목(木) (2월 26일)
<선지자(先知者)들이 과오(過誤)를 범(犯)할 때 (삼하 7:1-7)>
◉ 선지자는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이다.
인간은 과오(過誤)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과오(過誤)를 범(犯)하고 난 후(後)에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 범한 과오(過誤)를 깨닫고 나서 어떻게 처신하는 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例))
선지자 나단은 사려(思慮)깊고 지혜로우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때 다윗의 잘못된 계획을 찬성한 것이 있는데 그때에는 왕의 친구로서 한 말이지,
선지자의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밤의 이상(異像) 가운데(삼하 7:4-17)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한 말이 잘못되었으므로 가서 올바르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 “엘렌 G. 화잇”은 과오(過誤)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자신도 그렇게 과오(過誤)가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는 끊임없이 더 많은 빛을 받기 위해 마음을 열어 놓았었다.
“엘렌 G. 화잇”은 어떤 문제에 관해 생각이 바뀐 경우도 있었다.
(예) 한 예를 들면,
남부에 있는 출판소가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엘렌 화잇은 그 출판소를 리뷰 앤드 헤럴드에 귀속시키는 것을 지지하고 “그렇게 하라”(미간행 원고, 17권, 270)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24시간이 못되어 정반대의 이상을 받았다.
“남부 지역에도 책을 발행할 수 있는 건물이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대총회에 말하였다.
(아서 L. 화잇, 엘렌 G. 화잇: 엠스헤이븐에서의 초기의 생애, 193)
◉ 우리는 선지자들이 항상 근무 중이 아니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대언하는 상황에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적인 것들을 진술해야 할 때가 있다.
일반적인 생각들에 마음을 써야만 하며 일반적인 편지들이 쓰여져야 하고 일꾼들 중 이 사람으로부터 저 사람에게 전달된 정보들이 주어져야만 한다.
그러한 말과 그러한 정보는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영감 아래 주어진 것이 아니다.”(가려 뽑은 기별, 3권, 58)
◉ 그러나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왕에게 전할 기별을 주셨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건축할 특권을 받지 못할 것이나 그와 그의 후손과 이스라엘 나라에 내리실 하나님의 은총의 보증을 다음과 같이 허락하여 말씀하셨다.”(부조와 선지자, 711)
◉ 선지자들도 때때로 일반적(一般的)이고 개인적(個人的)인 생각을 표현(表現)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인적이나 일반적으로 잘못했을 경우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는 즉시 바로 잡고 시정을 하다는 것이 선지자들의 특징이며,
또한 선지자가 잘못된 조언을 준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교정(矯正)해 주신다.
# 먼저 늦게 글을 오려서 무지무지 죄송하옵고요.^^
특히 금번의 제1기 교과는 무척 어려운 교과입니다.
그러므로 "교과책의 저자의 뜻"을 훼손치 않고자
교과책의 말씀을 그대로 많이 인용 하였음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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