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 생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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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4-17 11:04 조회5,937회 댓글0건첨부파일
- 2009년4월25일(안) 이봉주 (제4과) 생명.hwp (33.0K) 120회 다운로드 DATE : 2009-04-17 11: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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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4월25일(안) (일몰: 오후 7시 16분) (李奉周)
제4과 생명(生命)
<기억절(記憶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깨닫기) : 생명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에 들어오실 때 일어나는 변화를 체험한다.
(행하기) : 그분의 임재하심이 우리 매일의 선택을 결정하도록 허락한다.
<확대경(擴大鏡)>
생명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물(膳物)이다.
그러나 죄인(罪人)인 인간은 구원자(救援者)되시는 예수님에게 접(椄)붙임을 갖일 때 중생(거듭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육체적(肉體的)으로나 영적(靈的)인 삶을 거룩하게 돌볼 의무(義務)로 자각(自覺)하게 되며 이로 중생한 자들만이 그리스도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일요일(4월 19일)
<육체적(肉體的) 생명(生命)의 선물(膳物)(시 139:13-14)>
◉ <생명의 존엄(尊嚴)을 일깨우는 탄생(誕生)의 신비(神秘)>
☞ 유치원생 정도만 되어도 『'엄마 난 어떻게 났어.』라는 질문을 해서 부모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이러한 경험들을 흔히 경험(經驗)하였으리라.
이러한 질문은 바로 자기 탄생에 대한 호기심(好奇心)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그저 『배꼽으로 나왔단다.』아니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고 대부분은 얼버무리기 일쑤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런 『배꼽학설』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아직 몰라도 돼! 나중에 크면 알게 돼』라고 대답하고는 끝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터득하도록 하든지 눈치 채도록 내버려두는 게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명탄생에 대하여 터부시한 결과 이성에 관하여 올바르지 못한 결과들이 속출(續出)하게 되며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根源)도 어쩌면 내 자신이 어떤 신비한 과정과 사명으로 이 땅에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해서, 즉 생명탄생의 신비(神秘)를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겪는데,
현대과학이 그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하다.
어쩌면 엄마의 뱃속에서의 10개월 동안의 과정과 기간이, 태어난 후 60년 아니 1백년 인생보다 더 파란 만장한 인생경로를 겪는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이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생명의 탄생과정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奧妙)하고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는 표현밖에 다른 적합한 용어(用語)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과학자들이 다 동원된 각종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 해도 그 베일을 다 벗길 수는 없는 정말 신비스러운 과정이다.
이렇게 신묘막측(神妙莫測)하며 완벽한 설계에 의해 우리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그에 생명과 그에 일생의 삶이 헛되이 허비(虛費)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 생명의 탄생은 한 마리의 정자(精子)와 한 개의 난자(卵子)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한 번에 나오는 정자(精子)의 수는 약 3억 마리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결국 이중에서 최종 한 마리만이 생명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정자가 만들어 지는가,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아직 이에 대학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만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음에 이번 교과를 통해서 다시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시편139:16에서
기자(記者)는 "내 형질(形質)이 이루기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인간의 탄생은 결코 우연일수 없는 일이며, 또한 예정된 선택 과학으론 모방(模倣)못할 완벽한 설계인 것이다.
자신의 창조주를 알고 그분에게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고 생애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인 것이다.
그러한 기초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수직(垂直)관계가 형성될 것이며,
그 다음으로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 관계와
나와 나의 이웃과의 수평(垂平)관계를 합치면 십자가(十字架)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인생의 본분이 것이다.
◉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생명(生命)의 주인(主人)은 누구인가?
생명(生命)의 기원(基源)은 누구인가?
이 모든 문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논쟁(論爭)의 대상으로 여전히 남아있으며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생명에 관한한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이는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進化論)으로 교육(敎育)과 세뇌(洗腦)를 받으므로
창조론(創造論)을 믿지 않는 연유(緣由)에서 그와 같은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정자(精子)와 난자(卵子)가 만나서 형성된 수정란(受精卵)이 자라면서
눈도 되고 코도 되고 장부(臟腑)가 되는 것이 과연 우연이나 진화란 말입니까?
원숭이나 아메바가 진화되어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람 되게 하는 모든 정정보가 이미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이미 생명과학이 밝혀낸 증거(證據)가 아닙니까.
정보(情報)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常識)이지 않습니까?
◉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시 100:3)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 (시139:14)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바 되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분은 인간과 모든 생물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요 1:1-3)
◉ 하나님의 장엄(莊嚴)하고 창조의 최고의 걸작(傑作)인 인간의 창조에 대하여 시인 다윗은 시편 139:13-18절에 마음과 가슴에 새길 귀한 글로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생식(生殖)이나 생명에 관한 지식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거의 3천년전에쓰여진 이 시편(詩篇)에 드러난 생명과학은 참으로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건축가(建築家)가 아무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구상(構想)한 건축설계를 도면(圖面)위에 옮긴 후 공사현장에서 건축물로 표현하듯 인간을 깊은 의중(意中)에서 구상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숨겨진 모태(母胎)에서 조립(組立), 생성(生成)하신 후 마침내 세상에 공개 출품하시는 것이다.
1838년, "모든 생물은 세포(細胞)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슐라이든(M.J. Schleiden)에 의해 밝혀지고, 1848년에는 세포핵(細胞核)속에 들어있는 염색체가 호프마이스터(W. Hofmeister)에 의해 기록된 후, 1926년에 이르러 염색체속의 유전자(遺傳子)의 존재가 모르간(T. Morgan)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생명과 유전의 신비를 간직한 염색체가 핵산(核酸)과 몇 성분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음도 밝혀졌다.
스위스의 생물학자 미셔르(F. Miescher)가 찾아낸 이 신비한 물질 핵산은 유전자의 본체인 디옥시리보 핵산(DNA - Deoxyribonucleic Acid)과 단백질 합성에 관련된 리보 핵산(RNA - Ribonucleic Acid)으로 나뉘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유전과 생명체의 본질인 단백질 합성의 열쇠를 지닌 신비한 물질 핵산은 세포분열시 생명체의 청사진의 원본인 DNA는 RNA라는 등본을 떼어 주는데, 이 유전자의 암호문이 단백질 합성계인 리보솜(Ribosomes)에 전달되어(mRNA) 번역을 거친 후 단백질의 구성 물질인 아미노산(Amino Acid)의서열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단백질이 합성됨으로써 고유한 특성을 지닌 생명의 개체가 생성되는 것이다.
각 생명체의 구성과 특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지닌 이 DNA는 각 개체에 따라 서로 다른데, 대장균의 DNA속에는 500쪽 분량의 책 한권에 해당되는 정보가 단백질의 암호로 표시되어 1,000만 쌍의 뉴클레오티드에 기록 보존되어 있고 사람의 DNA는 500쪽으로 된 책 1,000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60억 쌍의 뉴클레오티드에 기록 보존되어 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움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움을 받을 때에 나의 형체(形體)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 하였다"는 다윗의 진술은 얼마나 놀라운가?
내 형질(形質)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이루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다"고 진술하게 하신 시인(詩人)의 하나님이 곧 핵산을 만드시고 DNA의 암호책에 생명과 유전의 정보를 미리 기록하신 그 하나님이 아니신가?
죽은 사람을 부활(復活)시키실 때 생명과 유전의 정보를 지닌"알갱이" 곧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신다는(고린도전서 15장35-39) 설명은 생명과학이 입증한 놀라운 진실이 아닌가?
아, 참으로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고"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셀수 없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신가 ! (신계훈 목사 저(著) "참으로 행복하려거든"350-352p)
◉ 다윗은 인간생명의 신비와 기막히게 설계된 인체에 관해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母胎)에서 나를 조직(組織)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感謝)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 주의 행사(行事)가 기이(奇異)함을 내 영혼(靈魂)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라고 묘사(描寫)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간증입니다.
◉ 우리에게 주어진 육체의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膳物)로서, 그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설계된 인체의 신비를 생각할 때 그분의 창조의 능력(能力)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4월 20일)
<우리 몸의 건강(健康) (막 6:30-32)>
◉ 모든 제품(製品)에는 메이커(Maker)가 있고 그 제품에는 사용설명서가 있다.
그 제품을 정상적으로 성능을 유지하기위해서는 사용설명서가 요구하는 대로 하여야 최대한의 수명이 보장된다.
◉ <건강(健康)은 하나님의 뜻이다>
치료와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을 내포하는 건강사역은 훌륭한 건강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본 신념위에 세워져야할 필요가 있다.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논쟁이 있을 수 있는 한(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선택의 자유로 생명의 법칙을 범하기로 선택한 선택의 자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죄(罪)와 그 결과 또한 그분의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慈悲)하신 뜻에 위배(違背)된다는 논쟁(論爭)도 있을 수 있다.
고통을 격감시키고 죄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생명의 법칙에 조화되는 순종으로 우주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노력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아주 드물게는 예외가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변덕스러운 폭풍과, 지진과, 사고와, 질병과 조숙(早熟)한 죽음을 통한 생명의 손실(損失)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대쟁투 589-590 참조)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원히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질병과 사망이 생겨났다.
▶ 수명이 단축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죄 된 생명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홍수이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먹도록 허락하신 육식(肉食)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에게 주신 식물(창 1:29)에 기초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의 건강 법칙을 순종함으로 이러한 경향(傾向)을 반전(反轉)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長壽)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平康)을 더하게 하리라" (잠 3:1-2)고 약속(約束)해 주셨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殿)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居)하시기를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쾌락(快樂)주의에 빠진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 몸이 성령을 위한 영적인 전(殿)이 되도록 고안(考案)하셨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다. (고전 3:15 ; 6:1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최초의 창조 행위로 이들 "전(殿)"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셨으며 (엡 2:10)
그 이후에는 갈바리에서 구속(救贖)의 대가(代價)를 지불하심으로 그렇게 사셨다. (고전 6:20)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하셨으므로 우리가 그분의 "소유권자의 지침(指針)"인 성경에 따라 우리 몸을 관리하기를 원하신다.
◉ "원인이 없는 질병(疾病)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처음의 질병의 원인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건강의 법칙을 무시하면 질병이 생긴다." (가려 뽑은 기별2권 469)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속량(贖良)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 우리는 선(善)을 행하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창조물(創造物)이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 우리는 이들의"거처(居處)"로 최고의 신체조건을 유지하게 해야 할 신성하고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祭祀)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으며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경의(敬意)와 영광(榮光)을 돌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들을 "더럽히지"말아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는 재림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몸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촉구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靈)과 혼(魂)과 몸(體)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保全)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육신적(肉身的)안녕(安寧)에 대해 다음의 구절(句節)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치 유(治癒) (막 5장) → 예수께서는 병든 자에게 치유를 베푸시는 분이심
휴 식(休息) (막 6:30-32) → 예수님은 육신의 회복을 위해 쉼을 권장하셨음
식 사(食事) (막 6:33-43, 특히 34절) → 예수께서 굶주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먹이심
안식일(安息日) (눅 4:16) → 예수께서는 정규적인 휴식의 날인 안식일을 지키심
◉ 우리가 우리 몸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하는 것은 청지기 직분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가진 물질, 시간, 달란트 그리고 몸은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이 선물들을 신실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몸을 건강하게 돌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성경의 견해와 직결되어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죽을 몸과, 죽지 않을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육(肉)과 영(靈)과 혼(魂)의 결합체(結合體)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전인적 건강에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러한 사상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 <영양분이 있는 음식의 축복 >
“오늘날 건강 문제는 퇴행성 질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것들은 음식 및 생활 방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곡식과 과일과 견과와 채소로 이루어지는 음식은 최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올바른 영양소를 공급해 준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91)
◉ 성경은 마지막 때에는 택하신 자들까지도 기만(欺瞞)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 하신다.
밝은 생각과 영적인 식별력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고 우리 몸으로 봉사하도록 명령하신다.
만약 우리의 몸이 지나치게 과로하여 우리의 생각을 둔하게 한다면 주께서는 우리의 동기를 유발시키시는데 어려움을 겪으실 것이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로 하여금 멸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는 "화재경보 장치"그 이상의 분으로 생각할 때가 아닌가?
지금은 우리에게 성령의 전(殿)을 돌보도록 가르쳐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바칠 때가 아닌가?
우리의 건강과 활력은 잃어버린바 되고 물질 만능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진정한 내적(內的)인 기쁨과 평화의 길을 지시해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건강 기별을 위한 이유인 것이다. (건강과 치료봉사10)
◉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셨으며, 우리의 안녕을 위해 힘쓰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몸을 잘 돌볼 책임을 지고 있다.
화요일(4월 21일)
<영적(靈的)인 생명(生命) (고후 5:17)>
◉ 과일(果實)중에 품종이 좋은 감(柿)은 감나무로 애초부터 자라난 것이 아니요, 고욤나무에다 감(柿)나무 접(椄)을 붙인 것이다. 또한 좋은 사과 열매도 능금나무에 사과나무를 접(椄)붙인 것이다. 식물의 많은 품종들이 접(椄)붙임을 통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서 상품을 극상품(極上品)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 우리 인간은 범죄로 인하여 죄인(罪人)으로 태어났고 죄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피조물(被造物)로 거듭나는 방법과 기회를 주셨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시다.
그러므로 죄 된 우리의 몸을 죄가 없으신 예수님으로 접(椄)을 붙이면 우리는 영적(靈的)인 새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원리를 성경 로마서6장1절-11절에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애로 부활하는 오묘를 설명해주고 있으며,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접(椄)붙임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①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 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椄)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17)
②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椄)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롬 11:19)
③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椄)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롬 11:23)
④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椄)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롬 11:24)
※ 아무리 좋은 나무에 접(椄)븉여졌다 해도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죽고 만다.
예수님과 접붙여 있어도 "영적(靈的)인 음식(飮食)"(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지 아니하면 영양실조(營養失調)로 죽게 된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는 순간, 영생의 선물을 받게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 이 지상에 사는 모든 거민들은, 그들이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누리는 생명은 매우 일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죄는 인류뿐 아니라 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 쇠퇴와 죽음을 가져왔다.
죄로 인한 파멸적 황폐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전부로 하든지 아니면 놀라운 영생의 선물을 받아들이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생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회심이 요구된다. 성경은 이 중요한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몇 가지 은유를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 가장 생생한 것은 '새로운 탄생'의 은유이다. 이 말을 거듭남으로 표현 할 수 있다.
이 은유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전환점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일이 일어날 때에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탄생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 : 5-7)
◉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곧 자기 자신을 섬기는 삶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헌신하는 삶으로 돌이킨 사람들의 새로운 생명은 계속해서 자라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은 올바른 영적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있으며, 점점 성숙해야만 한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면한다.
◉ <은혜(恩惠)는 상속(相續)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님 (요 1:12, 13; 3:5-8)>
“혈(血)과 육(肉)으로 난 옛 본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遺業)으로 받을 수 없다.
옛 방법(方法)들, 타고난 경향성(傾向性)들, 그리고 그 전(前)의 습관(習慣)들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은혜(恩惠)는 상속(相續)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重生)(거듭남)은 새로운 동기(動機)와 새로운 취미(趣味)와 새로운 경향성을 갖는 데에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신(神)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고,
그들의 모든 기질과 습관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증거(證據)해 보여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품성과 기질의 선천적인 결함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 그들의 자리가 세속적인 사람들의 것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그들은 진리를 성화케 하는 자, 정결케 하는 자로 바르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 (리뷰 1892. 4. 12).
◉ <순수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임(요일 2:6; 계 3:14-17)>
순수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자신을 믿는 마음과 이기심 위에 세워진 신앙은 아무 가치가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다.
그를 따른다는 것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지 못하도록 마음을 닫아두는 한, 마음속에는 항구적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햇빛이 안개와 구름을 꿰뚫고 영혼의 성전에 있는 방 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수가 없다.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으신다.
순수한 회심은 잘못을 저지르는 유전(遺傳)되고 배양(培養)된 경향성들을 바꾸어 놓는다.
하나님의 종교는 셀 수 없이 많은 실을 가지고 솜씨와 기술로 짠 질긴 직물(織物)과 같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라야만 이 직물을 완전하게 만들 수가 있다.
시련이라는 시험이 닥치면 품성의 씨와 날이 견디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이루고 있는 재료들은 무가치하게 된다.
새 헝겊으로 낡은 천을 기우려는 노력은 일의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한다.
이는 옛 것의 낡은 재료가 새것 때문에 찢어지고 깁기 전보다 더 크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기워서 될 일이 아니다.
단 하나 방법이 있다면 낡은 옷을 아주 없애 버리고 전혀 새로운 것을 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계획은 하나 밖에 없는 안전한 계획이다.
그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신다.
◉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경험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끊임없이 자라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수요일(4월 22일)
<사회적(社會的) 존재(存在)로서의 삶. (빌 2:1-5)>
◉ 한자(漢字)로 사람을 인간(人間)으로 쓴다.
그 인간의 인(人)자(字)는 홀로 서있지 못하고 서로가 기대어 있어야 서있을 수가 있다.
서 있는 사람들에겐 사이가 좋아야 함께 서 있을 수 있는데 그 것이 곳 관계(關係)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 2:18)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配匹)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존재는 서로 돕는 자로 살 때에 비로소 평강(平康)과 행복이 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전해오는 속담(俗談)에 일(事)도 여러 명이 함께하고, 밥(食)도 여러 명이 함께 먹어야 좋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인 존재이다. 물론 우리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기도와 명상을 위해 개인적인 시간도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개인적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항상 혼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엾은 생각이 들고, 특히 우정을 쌓아가는 사교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든다.
성경은 다양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가족과 우정, 인종과 공동체, 그리고 교회에 관해 주로 다루고 있다. 성경은 예수님의 아버지를 우리 모든 인류의 아버지로 가리키면서, 우리는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형제요 자매라고 말한다(행 17:26).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자마자 곧 그의 반려자를 지으셨다. 그분께서는 가족의 삶을 인간 행복의 모델로 설계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진정한 우정의 가치와, 더 큰 공동체에 소속되는 축복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 <사교적이고 관대한 마음 >
“사랑의 표현을 연약함의 증거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와 같은 정신은 동정의 물결이 흘러오지 못하게 한다. 사교적이고 관대한 마음의 충동이 억제될 때 마음은 시들어지고, 황폐하고, 냉랭해진다. 우리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랑은 표현되지 않으면 오래 존속하지 못한다. 그대들과 관련된 사람의 마음이 친절과 사랑의 결핍으로 굶주리지 않게 하라.”(치료봉사, 360)
◉ 인간은 본래 사회적인 존재로서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로부터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람들이 될 필요가 있다.
목요일(4월 23일)
<풍성(豊盛)한 생명(生命)(요 10:10)>
◉ 풍성(豊盛)하다는 말은 풍족(豊足)하게 담든지 채우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즉 사람의 욕심(慾心)은 한(限)도 없고 끝도 없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가난한 사람을 부자(富者)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꺼꾸로 가난한 자들이 富者들에게 더 많이 베푸는 제도 속에서 살고 있다. 돈을 빌려줘도 이자(利子)를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높게 받는다는 사실이다.
▶ 어느 분이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한 주간동안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주머니로 옮기느라 수고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라는 말씀을 해서 쉽게 이해가 안 되었는데 ?
그 말씀은 한 주간 동안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거짓말을 많이 해서 남의 주머니의 돈을 내주머니로 많이 옴겼 다는 뜻으로 말씀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풍성하다는 것 참으로 마음이 흡족(洽足)한 말씀이지요.
그러나 돈이 많은 분도 자살을 하고, 재물이 많은 사람도 더 많이 재물을 축적(蓄積)하고자 탈법(脫法)과 불법(不法)과 위법(違法)을 하면서 재산을 모으지만 그들의 末路는 아름답지 못하게 끝을 마감하고 역사(歷史)속으로 사라짐을 반복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졸부(猝富)들은 거의가 행복하게 여생을 마감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증거(證據)하지 않습니까?
그 일예로 액수가 많은 복권(福券)에 당첨된 분들이 거의 90%이상이 종말에 비참하게 되었다는 통계를 보더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 5:3)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떠난 자들은 靈的인 풍족이 아니라 잠간 동안의 청지기 직분에 옳지 못한 판단 때문에 오는 결과 이다, 또한 말씀은 "그 청년이 재물(財物)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2)라는 말씀을 보면서 그 청년이 바로 우리들이지 않는 가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것은 '충만한 삶' (풍성한 생명)을 주셨는데 어떠한 것이 풍성한 생명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의 제목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가능성이 충만한 삶
2) 목적이 충만한 삶
3) 내적 평안이 충만한 삶
4) 사명이 충만한 삶
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쁨이 충만한 삶,' '소망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 각 사람은 나름대로 인생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 육신의 건강을 잃거나, 인간관계가 깨어지거나, 물질적 손실을 당하는 등 차라리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이런 일들의 원인으로는 스스로 자초한 일도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연단의 과정인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내적인 평안을 잃지 않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충만한 삶'이란 단지 우리가 좋은 건강과 외모, 훌륭한 교육과 넉넉한 수입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친밀하고 사랑스런 관계가 분명히 '충만한 삶'의 일부이긴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충만한 삶'이란 의미 있는 삶이다. 내면의 평안이 샘솟는 그런 삶이다. 그러한 행복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과 연결됨으로써 영원히 지속되는 그런 삶이다.
◉ <풍성한 삶의 비결 >
“예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도록 당신께서 오셨다고 강조하셨다. 우리를 충만한 생애로 인도하는 원칙들은 무엇인가? 성령께서 개인의 생애 가운데 들어오실 때,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요 3:8). 성령께서는 생애에 최초의 변화를 일으키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영향은 계속적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다(갈 5:22, 23). 그리스도교의 정당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95)
◉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삶, 곧 충만한 삶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참된 행복은 생명의 근원이신 분과 연결될 때에 이르러 온다.
<요약(要約)>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충만하고 풍성한 삶'에 관하여 배웠다. 그것은 책임을 다하는 삶이요, 육신의 생명을 돌보는 삶이며, 관계 속에서 사는 삶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동료 인간들과 교제하며 살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제4과 생명(生命)
<기억절(記憶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깨닫기) : 생명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에 들어오실 때 일어나는 변화를 체험한다.
(행하기) : 그분의 임재하심이 우리 매일의 선택을 결정하도록 허락한다.
<확대경(擴大鏡)>
생명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물(膳物)이다.
그러나 죄인(罪人)인 인간은 구원자(救援者)되시는 예수님에게 접(椄)붙임을 갖일 때 중생(거듭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육체적(肉體的)으로나 영적(靈的)인 삶을 거룩하게 돌볼 의무(義務)로 자각(自覺)하게 되며 이로 중생한 자들만이 그리스도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일요일(4월 19일)
<육체적(肉體的) 생명(生命)의 선물(膳物)(시 139:13-14)>
◉ <생명의 존엄(尊嚴)을 일깨우는 탄생(誕生)의 신비(神秘)>
☞ 유치원생 정도만 되어도 『'엄마 난 어떻게 났어.』라는 질문을 해서 부모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이러한 경험들을 흔히 경험(經驗)하였으리라.
이러한 질문은 바로 자기 탄생에 대한 호기심(好奇心)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그저 『배꼽으로 나왔단다.』아니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고 대부분은 얼버무리기 일쑤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런 『배꼽학설』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아직 몰라도 돼! 나중에 크면 알게 돼』라고 대답하고는 끝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터득하도록 하든지 눈치 채도록 내버려두는 게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명탄생에 대하여 터부시한 결과 이성에 관하여 올바르지 못한 결과들이 속출(續出)하게 되며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根源)도 어쩌면 내 자신이 어떤 신비한 과정과 사명으로 이 땅에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해서, 즉 생명탄생의 신비(神秘)를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겪는데,
현대과학이 그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만큼 복잡하다.
어쩌면 엄마의 뱃속에서의 10개월 동안의 과정과 기간이, 태어난 후 60년 아니 1백년 인생보다 더 파란 만장한 인생경로를 겪는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 이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생명의 탄생과정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奧妙)하고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는 표현밖에 다른 적합한 용어(用語)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과학자들이 다 동원된 각종 슈퍼컴퓨터를 사용한다 해도 그 베일을 다 벗길 수는 없는 정말 신비스러운 과정이다.
이렇게 신묘막측(神妙莫測)하며 완벽한 설계에 의해 우리가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그에 생명과 그에 일생의 삶이 헛되이 허비(虛費)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 생명의 탄생은 한 마리의 정자(精子)와 한 개의 난자(卵子)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한 번에 나오는 정자(精子)의 수는 약 3억 마리 정도가 된다고 한다.
결국 이중에서 최종 한 마리만이 생명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정자가 만들어 지는가,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아직 이에 대학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만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음에 이번 교과를 통해서 다시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시편139:16에서
기자(記者)는 "내 형질(形質)이 이루기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인간의 탄생은 결코 우연일수 없는 일이며, 또한 예정된 선택 과학으론 모방(模倣)못할 완벽한 설계인 것이다.
자신의 창조주를 알고 그분에게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고 생애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인 것이다.
그러한 기초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수직(垂直)관계가 형성될 것이며,
그 다음으로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 관계와
나와 나의 이웃과의 수평(垂平)관계를 합치면 십자가(十字架)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인생의 본분이 것이다.
◉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생명(生命)의 주인(主人)은 누구인가?
생명(生命)의 기원(基源)은 누구인가?
이 모든 문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논쟁(論爭)의 대상으로 여전히 남아있으며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생명에 관한한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이는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進化論)으로 교육(敎育)과 세뇌(洗腦)를 받으므로
창조론(創造論)을 믿지 않는 연유(緣由)에서 그와 같은 논쟁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정자(精子)와 난자(卵子)가 만나서 형성된 수정란(受精卵)이 자라면서
눈도 되고 코도 되고 장부(臟腑)가 되는 것이 과연 우연이나 진화란 말입니까?
원숭이나 아메바가 진화되어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람 되게 하는 모든 정정보가 이미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이미 생명과학이 밝혀낸 증거(證據)가 아닙니까.
정보(情報)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常識)이지 않습니까?
◉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시 100:3)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 (시139:14)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바 되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분은 인간과 모든 생물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요 1:1-3)
◉ 하나님의 장엄(莊嚴)하고 창조의 최고의 걸작(傑作)인 인간의 창조에 대하여 시인 다윗은 시편 139:13-18절에 마음과 가슴에 새길 귀한 글로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생식(生殖)이나 생명에 관한 지식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거의 3천년전에쓰여진 이 시편(詩篇)에 드러난 생명과학은 참으로 놀랍고 놀라울 뿐이다.
건축가(建築家)가 아무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구상(構想)한 건축설계를 도면(圖面)위에 옮긴 후 공사현장에서 건축물로 표현하듯 인간을 깊은 의중(意中)에서 구상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숨겨진 모태(母胎)에서 조립(組立), 생성(生成)하신 후 마침내 세상에 공개 출품하시는 것이다.
1838년, "모든 생물은 세포(細胞)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슐라이든(M.J. Schleiden)에 의해 밝혀지고, 1848년에는 세포핵(細胞核)속에 들어있는 염색체가 호프마이스터(W. Hofmeister)에 의해 기록된 후, 1926년에 이르러 염색체속의 유전자(遺傳子)의 존재가 모르간(T. Morgan)에 의하여 보고되었다.
생명과 유전의 신비를 간직한 염색체가 핵산(核酸)과 몇 성분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음도 밝혀졌다.
스위스의 생물학자 미셔르(F. Miescher)가 찾아낸 이 신비한 물질 핵산은 유전자의 본체인 디옥시리보 핵산(DNA - Deoxyribonucleic Acid)과 단백질 합성에 관련된 리보 핵산(RNA - Ribonucleic Acid)으로 나뉘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유전과 생명체의 본질인 단백질 합성의 열쇠를 지닌 신비한 물질 핵산은 세포분열시 생명체의 청사진의 원본인 DNA는 RNA라는 등본을 떼어 주는데, 이 유전자의 암호문이 단백질 합성계인 리보솜(Ribosomes)에 전달되어(mRNA) 번역을 거친 후 단백질의 구성 물질인 아미노산(Amino Acid)의서열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단백질이 합성됨으로써 고유한 특성을 지닌 생명의 개체가 생성되는 것이다.
각 생명체의 구성과 특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지닌 이 DNA는 각 개체에 따라 서로 다른데, 대장균의 DNA속에는 500쪽 분량의 책 한권에 해당되는 정보가 단백질의 암호로 표시되어 1,000만 쌍의 뉴클레오티드에 기록 보존되어 있고 사람의 DNA는 500쪽으로 된 책 1,000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60억 쌍의 뉴클레오티드에 기록 보존되어 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움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움을 받을 때에 나의 형체(形體)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 하였다"는 다윗의 진술은 얼마나 놀라운가?
내 형질(形質)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이루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다"고 진술하게 하신 시인(詩人)의 하나님이 곧 핵산을 만드시고 DNA의 암호책에 생명과 유전의 정보를 미리 기록하신 그 하나님이 아니신가?
죽은 사람을 부활(復活)시키실 때 생명과 유전의 정보를 지닌"알갱이" 곧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신다는(고린도전서 15장35-39) 설명은 생명과학이 입증한 놀라운 진실이 아닌가?
아, 참으로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고"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셀수 없는 "신묘막측(神妙莫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신가 ! (신계훈 목사 저(著) "참으로 행복하려거든"350-352p)
◉ 다윗은 인간생명의 신비와 기막히게 설계된 인체에 관해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母胎)에서 나를 조직(組織)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感謝)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 주의 행사(行事)가 기이(奇異)함을 내 영혼(靈魂)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라고 묘사(描寫)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간증입니다.
◉ 우리에게 주어진 육체의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膳物)로서, 그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설계된 인체의 신비를 생각할 때 그분의 창조의 능력(能力)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월요일(4월 20일)
<우리 몸의 건강(健康) (막 6:30-32)>
◉ 모든 제품(製品)에는 메이커(Maker)가 있고 그 제품에는 사용설명서가 있다.
그 제품을 정상적으로 성능을 유지하기위해서는 사용설명서가 요구하는 대로 하여야 최대한의 수명이 보장된다.
◉ <건강(健康)은 하나님의 뜻이다>
치료와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을 내포하는 건강사역은 훌륭한 건강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본 신념위에 세워져야할 필요가 있다.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논쟁이 있을 수 있는 한(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선택의 자유로 생명의 법칙을 범하기로 선택한 선택의 자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죄(罪)와 그 결과 또한 그분의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慈悲)하신 뜻에 위배(違背)된다는 논쟁(論爭)도 있을 수 있다.
고통을 격감시키고 죄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생명의 법칙에 조화되는 순종으로 우주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노력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아주 드물게는 예외가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변덕스러운 폭풍과, 지진과, 사고와, 질병과 조숙(早熟)한 죽음을 통한 생명의 손실(損失)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대쟁투 589-590 참조)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원히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질병과 사망이 생겨났다.
▶ 수명이 단축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죄 된 생명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홍수이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먹도록 허락하신 육식(肉食)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에게 주신 식물(창 1:29)에 기초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의 건강 법칙을 순종함으로 이러한 경향(傾向)을 반전(反轉)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長壽)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平康)을 더하게 하리라" (잠 3:1-2)고 약속(約束)해 주셨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殿)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居)하시기를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쾌락(快樂)주의에 빠진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 몸이 성령을 위한 영적인 전(殿)이 되도록 고안(考案)하셨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다. (고전 3:15 ; 6:1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최초의 창조 행위로 이들 "전(殿)"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셨으며 (엡 2:10)
그 이후에는 갈바리에서 구속(救贖)의 대가(代價)를 지불하심으로 그렇게 사셨다. (고전 6:20)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하셨으므로 우리가 그분의 "소유권자의 지침(指針)"인 성경에 따라 우리 몸을 관리하기를 원하신다.
◉ "원인이 없는 질병(疾病)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처음의 질병의 원인이 자리를 잡고 있을 때 건강의 법칙을 무시하면 질병이 생긴다." (가려 뽑은 기별2권 469)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속량(贖良)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 우리는 선(善)을 행하도록 창조된 하나님의 창조물(創造物)이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 우리는 이들의"거처(居處)"로 최고의 신체조건을 유지하게 해야 할 신성하고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祭祀)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으며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경의(敬意)와 영광(榮光)을 돌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것들을 "더럽히지"말아야 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는 재림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몸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촉구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靈)과 혼(魂)과 몸(體)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保全)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육신적(肉身的)안녕(安寧)에 대해 다음의 구절(句節)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치 유(治癒) (막 5장) → 예수께서는 병든 자에게 치유를 베푸시는 분이심
휴 식(休息) (막 6:30-32) → 예수님은 육신의 회복을 위해 쉼을 권장하셨음
식 사(食事) (막 6:33-43, 특히 34절) → 예수께서 굶주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먹이심
안식일(安息日) (눅 4:16) → 예수께서는 정규적인 휴식의 날인 안식일을 지키심
◉ 우리가 우리 몸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하는 것은 청지기 직분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가진 물질, 시간, 달란트 그리고 몸은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이 선물들을 신실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몸을 건강하게 돌보는 것은 인간에 대한 성경의 견해와 직결되어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죽을 몸과, 죽지 않을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육(肉)과 영(靈)과 혼(魂)의 결합체(結合體)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전인적 건강에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러한 사상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 <영양분이 있는 음식의 축복 >
“오늘날 건강 문제는 퇴행성 질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것들은 음식 및 생활 방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곡식과 과일과 견과와 채소로 이루어지는 음식은 최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올바른 영양소를 공급해 준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91)
◉ 성경은 마지막 때에는 택하신 자들까지도 기만(欺瞞)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 하신다.
밝은 생각과 영적인 식별력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말씀하시고 우리 몸으로 봉사하도록 명령하신다.
만약 우리의 몸이 지나치게 과로하여 우리의 생각을 둔하게 한다면 주께서는 우리의 동기를 유발시키시는데 어려움을 겪으실 것이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로 하여금 멸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는 "화재경보 장치"그 이상의 분으로 생각할 때가 아닌가?
지금은 우리에게 성령의 전(殿)을 돌보도록 가르쳐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바칠 때가 아닌가?
우리의 건강과 활력은 잃어버린바 되고 물질 만능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진정한 내적(內的)인 기쁨과 평화의 길을 지시해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건강 기별을 위한 이유인 것이다. (건강과 치료봉사10)
◉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셨으며, 우리의 안녕을 위해 힘쓰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몸을 잘 돌볼 책임을 지고 있다.
화요일(4월 21일)
<영적(靈的)인 생명(生命) (고후 5:17)>
◉ 과일(果實)중에 품종이 좋은 감(柿)은 감나무로 애초부터 자라난 것이 아니요, 고욤나무에다 감(柿)나무 접(椄)을 붙인 것이다. 또한 좋은 사과 열매도 능금나무에 사과나무를 접(椄)붙인 것이다. 식물의 많은 품종들이 접(椄)붙임을 통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서 상품을 극상품(極上品)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 우리 인간은 범죄로 인하여 죄인(罪人)으로 태어났고 죄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피조물(被造物)로 거듭나는 방법과 기회를 주셨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시다.
그러므로 죄 된 우리의 몸을 죄가 없으신 예수님으로 접(椄)을 붙이면 우리는 영적(靈的)인 새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원리를 성경 로마서6장1절-11절에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애로 부활하는 오묘를 설명해주고 있으며,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접(椄)붙임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①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 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椄)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17)
②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椄)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리니"(롬 11:19)
③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椄)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롬 11:23)
④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椄)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롬 11:24)
※ 아무리 좋은 나무에 접(椄)븉여졌다 해도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죽고 만다.
예수님과 접붙여 있어도 "영적(靈的)인 음식(飮食)"(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지 아니하면 영양실조(營養失調)로 죽게 된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는 순간, 영생의 선물을 받게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 이 지상에 사는 모든 거민들은, 그들이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누리는 생명은 매우 일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죄는 인류뿐 아니라 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 쇠퇴와 죽음을 가져왔다.
죄로 인한 파멸적 황폐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전부로 하든지 아니면 놀라운 영생의 선물을 받아들이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생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회심이 요구된다. 성경은 이 중요한 경험을 묘사하기 위해 몇 가지 은유를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 가장 생생한 것은 '새로운 탄생'의 은유이다. 이 말을 거듭남으로 표현 할 수 있다.
이 은유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전환점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일이 일어날 때에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탄생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 : 5-7)
◉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곧 자기 자신을 섬기는 삶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헌신하는 삶으로 돌이킨 사람들의 새로운 생명은 계속해서 자라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은 올바른 영적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있으며, 점점 성숙해야만 한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면한다.
◉ <은혜(恩惠)는 상속(相續)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님 (요 1:12, 13; 3:5-8)>
“혈(血)과 육(肉)으로 난 옛 본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遺業)으로 받을 수 없다.
옛 방법(方法)들, 타고난 경향성(傾向性)들, 그리고 그 전(前)의 습관(習慣)들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은혜(恩惠)는 상속(相續)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重生)(거듭남)은 새로운 동기(動機)와 새로운 취미(趣味)와 새로운 경향성을 갖는 데에 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신(神)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고,
그들의 모든 기질과 습관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증거(證據)해 보여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품성과 기질의 선천적인 결함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 그들의 자리가 세속적인 사람들의 것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그들은 진리를 성화케 하는 자, 정결케 하는 자로 바르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 (리뷰 1892. 4. 12).
◉ <순수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임(요일 2:6; 계 3:14-17)>
순수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자신을 믿는 마음과 이기심 위에 세워진 신앙은 아무 가치가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다.
그를 따른다는 것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지 못하도록 마음을 닫아두는 한, 마음속에는 항구적 평화가 있을 수 없다.
햇빛이 안개와 구름을 꿰뚫고 영혼의 성전에 있는 방 속으로 쏟아져 들어올 수가 없다.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으신다.
순수한 회심은 잘못을 저지르는 유전(遺傳)되고 배양(培養)된 경향성들을 바꾸어 놓는다.
하나님의 종교는 셀 수 없이 많은 실을 가지고 솜씨와 기술로 짠 질긴 직물(織物)과 같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라야만 이 직물을 완전하게 만들 수가 있다.
시련이라는 시험이 닥치면 품성의 씨와 날이 견디지 못할 것이며, 그것을 이루고 있는 재료들은 무가치하게 된다.
새 헝겊으로 낡은 천을 기우려는 노력은 일의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한다.
이는 옛 것의 낡은 재료가 새것 때문에 찢어지고 깁기 전보다 더 크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기워서 될 일이 아니다.
단 하나 방법이 있다면 낡은 옷을 아주 없애 버리고 전혀 새로운 것을 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계획은 하나 밖에 없는 안전한 계획이다.
그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신다.
◉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경험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끊임없이 자라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수요일(4월 22일)
<사회적(社會的) 존재(存在)로서의 삶. (빌 2:1-5)>
◉ 한자(漢字)로 사람을 인간(人間)으로 쓴다.
그 인간의 인(人)자(字)는 홀로 서있지 못하고 서로가 기대어 있어야 서있을 수가 있다.
서 있는 사람들에겐 사이가 좋아야 함께 서 있을 수 있는데 그 것이 곳 관계(關係)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 2:18)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配匹)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존재는 서로 돕는 자로 살 때에 비로소 평강(平康)과 행복이 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전해오는 속담(俗談)에 일(事)도 여러 명이 함께하고, 밥(食)도 여러 명이 함께 먹어야 좋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인 존재이다. 물론 우리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기도와 명상을 위해 개인적인 시간도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개인적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항상 혼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엾은 생각이 들고, 특히 우정을 쌓아가는 사교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든다.
성경은 다양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가족과 우정, 인종과 공동체, 그리고 교회에 관해 주로 다루고 있다. 성경은 예수님의 아버지를 우리 모든 인류의 아버지로 가리키면서, 우리는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형제요 자매라고 말한다(행 17:26).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자마자 곧 그의 반려자를 지으셨다. 그분께서는 가족의 삶을 인간 행복의 모델로 설계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진정한 우정의 가치와, 더 큰 공동체에 소속되는 축복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 <사교적이고 관대한 마음 >
“사랑의 표현을 연약함의 증거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와 같은 정신은 동정의 물결이 흘러오지 못하게 한다. 사교적이고 관대한 마음의 충동이 억제될 때 마음은 시들어지고, 황폐하고, 냉랭해진다. 우리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랑은 표현되지 않으면 오래 존속하지 못한다. 그대들과 관련된 사람의 마음이 친절과 사랑의 결핍으로 굶주리지 않게 하라.”(치료봉사, 360)
◉ 인간은 본래 사회적인 존재로서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로부터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람들이 될 필요가 있다.
목요일(4월 23일)
<풍성(豊盛)한 생명(生命)(요 10:10)>
◉ 풍성(豊盛)하다는 말은 풍족(豊足)하게 담든지 채우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즉 사람의 욕심(慾心)은 한(限)도 없고 끝도 없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가난한 사람을 부자(富者)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꺼꾸로 가난한 자들이 富者들에게 더 많이 베푸는 제도 속에서 살고 있다. 돈을 빌려줘도 이자(利子)를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높게 받는다는 사실이다.
▶ 어느 분이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한 주간동안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주머니로 옮기느라 수고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라는 말씀을 해서 쉽게 이해가 안 되었는데 ?
그 말씀은 한 주간 동안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거짓말을 많이 해서 남의 주머니의 돈을 내주머니로 많이 옴겼 다는 뜻으로 말씀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풍성하다는 것 참으로 마음이 흡족(洽足)한 말씀이지요.
그러나 돈이 많은 분도 자살을 하고, 재물이 많은 사람도 더 많이 재물을 축적(蓄積)하고자 탈법(脫法)과 불법(不法)과 위법(違法)을 하면서 재산을 모으지만 그들의 末路는 아름답지 못하게 끝을 마감하고 역사(歷史)속으로 사라짐을 반복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졸부(猝富)들은 거의가 행복하게 여생을 마감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증거(證據)하지 않습니까?
그 일예로 액수가 많은 복권(福券)에 당첨된 분들이 거의 90%이상이 종말에 비참하게 되었다는 통계를 보더라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 5:3) 심령(心靈)이 가난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떠난 자들은 靈的인 풍족이 아니라 잠간 동안의 청지기 직분에 옳지 못한 판단 때문에 오는 결과 이다, 또한 말씀은 "그 청년이 재물(財物)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2)라는 말씀을 보면서 그 청년이 바로 우리들이지 않는 가 생각해봅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것은 '충만한 삶' (풍성한 생명)을 주셨는데 어떠한 것이 풍성한 생명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의 제목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가능성이 충만한 삶
2) 목적이 충만한 삶
3) 내적 평안이 충만한 삶
4) 사명이 충만한 삶
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쁨이 충만한 삶,' '소망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 각 사람은 나름대로 인생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 육신의 건강을 잃거나, 인간관계가 깨어지거나, 물질적 손실을 당하는 등 차라리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이런 일들의 원인으로는 스스로 자초한 일도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연단의 과정인 경우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내적인 평안을 잃지 않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충만한 삶'이란 단지 우리가 좋은 건강과 외모, 훌륭한 교육과 넉넉한 수입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친밀하고 사랑스런 관계가 분명히 '충만한 삶'의 일부이긴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충만한 삶'이란 의미 있는 삶이다. 내면의 평안이 샘솟는 그런 삶이다. 그러한 행복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과 연결됨으로써 영원히 지속되는 그런 삶이다.
◉ <풍성한 삶의 비결 >
“예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도록 당신께서 오셨다고 강조하셨다. 우리를 충만한 생애로 인도하는 원칙들은 무엇인가? 성령께서 개인의 생애 가운데 들어오실 때,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분명하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요 3:8). 성령께서는 생애에 최초의 변화를 일으키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영향은 계속적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다(갈 5:22, 23). 그리스도교의 정당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증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95)
◉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삶, 곧 충만한 삶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참된 행복은 생명의 근원이신 분과 연결될 때에 이르러 온다.
<요약(要約)>
이번 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충만하고 풍성한 삶'에 관하여 배웠다. 그것은 책임을 다하는 삶이요, 육신의 생명을 돌보는 삶이며, 관계 속에서 사는 삶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동료 인간들과 교제하며 살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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