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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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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4-10 17:45 조회5,6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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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4월18일 안식일 일몰 오후7시10분

제3과 소망(所望)

<기억절(記憶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벧전 3:15)

깨닫기: 우리는 비록 죄로 망가진 세상에 살지만 예수님 안에 영생의 소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확신한다.
행하기: 영생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소망을 나누어주면서 소망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확대경(擴大鏡)>

◉ 희망(希望)이나 소망(所望)의 공통점은 앞일(미래(未來))을 바라는 것을 뜻하지만,
희망은 막연히 바라는 것이고,
소망은 목숨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하며 바라는 것을 소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망의 근원(根源)은 예수님의 부활(復活)에 기초(基礎)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영생(永生)의 약속이 유일한 소망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영생의 소망은 미래(未來)에 속(屬)한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약속을 소망에 초점을 맞추고 삶의 방식을 영위하는 자가 진정한 성도(聖徒)요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요점(要點)>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믿음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가련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
우리의 소망이 참으로 우리 삶의 모습에 영향을 행사하게 하자.

일(日) (4월 12일)
<이 세상(世上)에서의 소망(所望)(눅 21:25-26)>

◉ 삼위(三位)의 하나님(아버지, 아들(예수님),성령님)이 계신 것처럼,
사랑과 믿음과 소망(所望)의 세 가지 또한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 한 가지라도 빼 놓을 수 없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13장의 사랑장(章)을 마치면서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라는 말씀으로 13장을 끝내고 있다.
소망(所望)은 과거(過去)와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중에 미래(未來)에 해당되지만,
과거(過去)를 통하여 현재의 신앙을 적용하여 미래를 붙잡는 것이다.

◉ 현세(現世)의 고난과 핍박과 고통과 역경을 당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당한 기록을 성경의 저자는 가감(加減)없이 그대로 기록해 놓았다. 이는 혼란과 공포와 탐욕과 부패와 박해(迫害)가 현세(現世)에서는 두려운 존재이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은 곧 만국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대쟁투(大爭鬪)가 끝나고 죄와 죄인들이 없어지는 대쟁투의 종결로 영원한 천국에서의 보장된 삶을 인함이다. 이에 사도 바울은 편지서 여러 부분에 소망을 이야기 했다 사도 바울자신은 물론이며 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들어갔던 다니엘의 세친구들로부터 사자굴속에 들어갔던 다니엘도, 100세에 낳은 독자(獨子)를 모리아 산에서 바친 아브라함도, 소망이 있기에 두려움 없이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들이 용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신앙의 원천은 바로 예표(豫表)된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였다.
지금 우리도 믿음의 노독들처럼 살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는가?
나(우리) 때문에 죽으셨고 그것을 믿고 구원(救援)받은 우리(나)는 살아있고 영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 <만국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이 세상의 우물에서 그 갈증을 풀려고 하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을 마실 뿐이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영혼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는 무엇을 갈망한다. 오직 한 분만이 그 필요를 채우실 수 있다. 세상의 필요 곧 만국의 소망은 그리스도이다. 그분만이 나누어 주실 수 있는 하늘의 은혜는 생수와 같아서 영혼을 순결하게 하며, 소성시키며 활력을 준다.”(시대의 소망, 187)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두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소망을 안겨주셨으므로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월요일(4월 13일)
<소망(所望)은 지금 여기에(요 5:24) >

◉ 소망(所望)이라는 말은 미래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구원(救援)은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분리되어있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2:12)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변화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을 때(13절)만 가능하다.

◉ <현세(現世)에서도 받는 보상(報償)>
“최후의 큰 상급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주실 것이나, 하나님을 위해서 진심으로 행하는 봉사에는 현세에서도 그 보상이 따른다. 교역자는 여러 가지 장애와 반대 또는 가슴이 찢어질 듯 한 쓰라린 실망을 당하며, 또 그의 수고의 결과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는 그의 수고에서 복된 보상을 발견한다. …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및 거룩한 천사들과의 교제로, 그들은 신체의 건강과 두뇌의 활력과 영혼의 기쁨을 가져 오는 하늘의 분위기 속에 휩싸이게 된다.”(복음교역자, 513)

‘생명’은 요한복음의 핵심 단어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생명은 근본적으로 영생을 가리킨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의 생명은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그분께서 베푸시는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두 가지 열쇠가 있는데, 첫째는 그 생명의 근원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요 6:33-58, 14:6, 요일 5:11-12). 예수께서 계시는 곳이면 어디나 생명이 있다(요 11:25-26). 생명을 얻는 두 번째 열쇠는 믿는 것이다(요 1:4, 12). 우리가 예수님 안에 항상 있는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비결은 그분과 계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요 3:16, 36).”(존 폴린, 풍요한 삶을 위한 성경 확대경: 요한복음, 퍼시픽 프레스, 1995년, 189)

◉ 우리는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영생의 축복을 지금 이곳에서도 누릴 수 있다.

화(火) (4월 14일)
<무덤 너머의 소망(所望)(살전 4:14)>

◉ 소망(所望)은 마치 감자의 씨눈과 같은 것이다. 씨눈 감자는 땅에 묻고 흙으로 덮어 놓으면 마치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농부가 감자의 씨눈을 땅에 심는 것은 마치 수확을 많이 거둘 수 있다는 확신으로 땅에 씨눈 감자를 묻는다. 이것이 바로 소망인 것이다. 이는 확실히 믿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代贖)제물(祭物)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도 믿는다. 또한 3일 만에 부활 하셨고 승천(昇天)하셨다는 것도 믿는다. 그러므로 예언의 기록으로 성취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머지않아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 분 안에 있는 생명을 소유할 수가 있다. 우리는 영생의 축복을 지금이곳에서도 누릴 수 있다.

◉ 우리의 소망은 죽음 그 너머에까지 미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의뢰하자.

◉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소망의 힘 >
“사단과 그의 부하들이 겁 많은 영혼들을 위협하여 그들로 하여금 죽음이 무서워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한 일도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 심지어 아주 겁이 많았던 자들 중에서도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두려움과 공포심을 즉시 떨쳐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자기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중에서 그들의 확고함과 인내를 바라보았으며 그들이 고통을 견디어 내도록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이 도와준 것을 깨닫고 더욱 더 담대함을 얻게 되었다. …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당했지만 그들의 꿋꿋함과 밝은 소망이 오히려 연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여 그들도 두려움 없이 고문대와 화형(火刑)주에 나아갈 수 있게 하였다.”(초기문집, 226)

▶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는 특권을 누릴 것이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4-55)

수(水) (4월 15일)
영원(永遠)한 소망(所望)(고전 15:42-43, 52)

◉ 소망(所望)은 영원하여야 소망이 되는 것이다.
희망과 소망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에 생각하기를 나는 장성(長成)하여 훌륭한 선생님이나, 목사님이나, 군인(軍人)이나, 정치가(政治家)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희망이라고 한다.
즉 바라기는 했지만 시간과 세월이 가면서 그 바람이 바뀌는 것을 희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창시절에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이 땅에 다시 오심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소망인 것이다.

◉ <순간적인 쾌락(快樂)과 영원한 영광>
“만일 그들이 기꺼이 그리고 반가이 구원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강요를 당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들이 하늘의 혜택을 거절하고 죄의 쾌락과 유혹을 택한다면, 그들 나름대로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멸망의 삯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분리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희생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행복한 삶을 상실할 것이며 순간적인 죄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영광을 희생하고 말 것이다.”(교회증언, 2권, 210)

◉ 그리스도께서 성도(聖徒)들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은 그분의 부활을 통해 확증(確證)되었으며, 성령님의 임재(臨在)를 통해 보증(保證)되었다.


목(木) (4월 16일)
<우리의 소망(所望)이신 그리스도 (딛 2:13)>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벌써 오래 전에 그분의 오심이 예고되었었다. 참으로 그분은 약속대로 오셨다. 그분의 재림의 약속은 더욱 다양하게 주어졌다. 그분께서는 "내가 다시 오리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성경 마지막 페이지에도 이 약속은 반복되어 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딛 2:13)

◉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분의 재림의 약속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계 22:7, 10-12, 20)
그리스도의 재림은 구속의 계획에 있어서 절정이요 결말이다.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말씀하신다.

◉ 베드로후서 3:8-9는 재림과 관련하여 사용된 '속히'라는 단어의 의미는 (벧후 3:8-9)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봅시다.

◉ 죄의 문제와 죄로 인해 야기된 모든 불행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인간이 고안한 어떤 것에 있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우리의 소망은 인간의 과학 기술이나 똑똑한 정치가나, 사회적 및 도덕적 진보에 있지 않다.
이것들은 결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물론 주님의 오심을 전후하여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대하는 그분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곧 오실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 사실을 변경할 수 없다. 어떤 힘 있는 사람도 세상을 그분의 통제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손에 단단히 그리고 영원히 붙들리게 되었다. 우리는 십자가의 승리로 충만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는 먼 훗날의 막연한 소망을 향해 무작정 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소망으로부터 의기양양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노먼 걸리,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98년, 540)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죄에 빠진 인류의 모든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최후의 소망(所望)이다. 그분은 분명히, 그리고 속히 오실 것이다.
◉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면… >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천국에 관한 것이 아니고 세속적인 사물들에 관한 것이다. … 그들은 마땅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벧후 3:12).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그러나 재림신도라는 이름을 지닌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배우고 그분의 인정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몸치장을 하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게 되는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하고 있다.”(초기문집, 108)

<요약(要約)>

소망은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지금 이 땅에서의 삶과도 연결된다. 왜냐하면 장차 올 왕국은 원칙적으로 신자들 가운데 이미 임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스러운 소망의 완전한 실현은 미래에 있다. 세상은 여전히 사단의 반역의 결과로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 결과는 보증되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그분의 영원한 왕국은 영광스럽게 곧 실현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히 그 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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