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 계시(啓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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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4-26 12:08 조회5,57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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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5월02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23분)
제5과 계시(啓示)
기억절(記憶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깨닫기: 하나님께서는 듣기를 원하는 모든 자에게 말씀하심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통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을 인식한다.
행하기: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 성령의 음성에 더욱 민감하게 된다.
<확대경(擴大鏡)>
◉ 인간은 유한(有限)하고 하나님은 무한(無限)하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면,
그 지식(知識)은 하나님자신이 인간에게 나타낸 일반계시(一般啓示)와 특별계시(特別啓示)로 로부터 일 수밖에 없다.
계시(啓示)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와 교제(交際)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方法)이다.
요점(要點)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와 함께 대화(對話)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여러 방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되,
특히 예수님을 통하여 가장 힘 있게 말씀하신다.
일(日) (4월 26일)
<천연계(天然界)를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시 19:1-4)>
◉. 오늘날 우리가 쳐다보는 천연계의 만물은 다만 에덴동산의 영광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데 불과하다.
죄는 지상(地上)의 아름다움을 훼손(毁損)시켜 버렸다.
천연계는 능력이 무한(無限)하시고 은혜와 자비와 사랑이 많으신 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비록 훼손된 상태에 있을지라도, 만물은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솜씨를 보여 준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자비의 증거를 볼 수 있다. (치료봉사 409-410p)
◉ 천연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우리는 천연계를 통해 그분의 놀라운 창조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말았다.(참조 롬 1:19-23)
◉ 마음이 산만(散漫)하고 마음이 불안(不安)하고 우울할 때라도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접하다 보면 마음이 가라않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장엄하심에 대해 알 수 있지만, 그분의 자애로운 품성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이러한 직관은 성경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한 이러한 일반계시(一般啓示)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수많은 고전적(古典的)인 이성적(理性的) 논증(論證)들을 불러일으켰다.*”(교리, 24)
“일반계시(一般啓示). 역사, 인간의 행동, 양심, 천연계 등이 제시해 주는 하나님의 품성에 관한 통찰(通察)은 흔히 "일반 계시"라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사람이 관찰할 수 있고 이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교리, 1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흥미를 일으키기 위하여 우리 주위에 천연(天然)의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 놓으셨다. 우리로 하여금 천연계의 영광을 그분의 품성과 연결시켜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우리가 신실히 천연계의 책을 연구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무한(無限)하신 사랑과 능력을 명상(冥想)하는 데 있어 풍성한 근원이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144)
◉ 하나님께서는 천연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비록 죄로 인해 손상(損傷)되었을지라도 천연계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크게 말해 준다.
월(月) (4월 27일)
<우리의 양심(良心)을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창 42:18-23)>
◉ 종교생활(宗敎生活)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악(惡)한 것을 보면 악하다고 생각도하고 또한 악하다고 말도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이란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도록 도와주는 내적(內的)인 원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무엇이 도덕적(道德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 거절(拒絶)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력(判斷力)을 가지고 있다(롬 2:14-15).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양심은 깨끗하나, 그것이 나를 결백(潔白)하게 하지는 않으리라. 나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主任)이시니라”(고전 4:4, NIV).
사도는 또한 우리가 양심의 호소를 거절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상 그 양심이 화인(火印) 맞거나(딤전 4:2), 더럽혀진(딛 1:15) 자(者)들도 있다.
◉ <변(變)할 수 있는 인간의 양심>
☞ 인간의 양심은 변(變)한다.
“어떤 양심들은 '약(弱)하'고, 다른 양심들은 '더럽'고 '악(惡)하'며 '화인(火印) 맞' 았다.
(고전 8:7, 12; 딛 1:15; 히 10:22; 딤전 4:2).
시계처럼 그것들이 아무리 잘 작동(作動)할지라도,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확한 표준에 '맞추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양심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위대한 표준인 그분의 율법에 맞추어져 있는 양심만이 우리를 죄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다.”(한국어판, 2007년, 329)
◉ 요셉의 형제들은 아우 요셉을 노예로 판 것에 대하여 양심에 찔림을 받았고,(창 42:18-23)
바벨론의 벨사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거룩한 기명으로 술잔치를 벌이다가 분벽에 쓰인 글자를 보고 양심에 자극(刺戟)을 받았다. (단5장)
가룟 유다는 무죄(無罪)하신 예수님을 판 후에 양심의 가책(呵責)을 받아 자살하였고, (마 27:3-5)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온 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땅에 쓰실 때에 양심의 가책(呵責)을 받아 그곳을 떠나갔다. (요 8:1-9)
그러나 우리의 양심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항상 신뢰(信賴)할 만한 것은 아니다.
선(善)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양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 <우리의 양심(良心)을 예민(銳敏)하게 만드는 방법>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詳考)하고, 기도(祈禱)로써 그분과 자주 교통(交通)함으로 그분과 조화(調和)를 이룰 때, 우리는 우리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님(聖靈任)의 음성(音聲)에 보다 민감(敏感)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또 하나의 통로(通路)는 우리의 양심(良心)이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써 둔감(鈍感)해진 양심을 예민(銳敏)하게 간직할 수 있다.
“우상숭배(偶像崇拜)는 하나님의 사업과 그분의 거룩한 품성(稟性)에 대한 모든 분별력을 다 잃어버렸고, 비열(卑劣)한 정욕의 제단(祭壇)에 명예(名譽)와 양심, 그리고 모든 가치(價値)있는 권익(權益)들을 다 희생(犧牲)시키고 말았다(사인즈 1903. 7. 1).”(화잇주석, 삿 16:15-20)
“ 인간의 행동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아테네 사람들의 경배 가운데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증거를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 바울은 또한 비(非)그리스도교인의 행동이 "그(들의) 양심"의 증거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롬 2:14, 15)겨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교리 24)
“사람이 회개(悔改)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며 단체적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중생(重生)의 사업은 회의의 명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마음과 양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쟁투, 233)
화요일(4월 28일)
<선지자(先知者)들을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출 7:1-6)>
◉ 선지자들은 신구약시대(新舊約時代) 모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성서시대(聖書時代)의 예언적(豫言的) 선물(膳物)>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간격(間隔)없는 교신(交信)은 끝났지만(사 59:2) 하나님은 인류와의 친밀한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대신해 하나님께서는 다른 교신의 방법을 개발하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격려(激勵)와 경고(警告)와 견책(譴責)의 말씀을 보내기 시작 하셨다.
성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별을 받아 그 내용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선지자들은 자진하여 예언 하지는 않았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기본교리27 - 205-214p 참고)
◉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백성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경고와 위로, 교훈과 예언의 그릇에 담아 전달하였다.
◉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다. 그 메시지가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그 말에는 권위가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이 표현할 단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교통하시기 위해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셨다. 아모스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기별을 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에도 선지자를 보내셨다.
◉ 선지자의 역할과 사명
“구약에서 선지자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나비(nabi)를 번역한 것이다. 그 의미는 출애굽기 7:1-2에 표현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나비)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게 하라. 바로와 모세와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아론이 모세의 말을 바로에게 전달했듯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임명하신 대변자를 가리킨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06-307)
▶ 선지자는 대언자(代言者)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만을 전달(傳達)하는 자이다.
▶ 예수께서 초림(初臨)하신 이후에도 선지자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에 예언의 은사(恩賜)를 허락(許諾)하셨으며, 특히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에는 대언의 영(靈)이 주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수(水) (4월 29일)
<성경(聖經)을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딤후 3:14-16)>
◉ 하나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시대와 인물을 택하셔서 특별히 하나님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으로 이러한 계시(啓示)나 현현(顯現)의 내용을 아는 것은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를 특별계시(特別啓示)라고 한다.
☞ 특별계시의 정의(定義)
하나님자신을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계시(啓示)하셔서 계시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로 인도(引導)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말하며
☞ 특별계시의 필요성(必要性)
인간의 타락(墮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斷絶)되었기 때문에 관계회복(關係恢復)을 위해서 하나님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타락(墮落)후에 필요한 것이었고 인격적(人格的)이며 동시에 명제적(命題的)(사실적(事實的), 객관적(客觀的))이다.
☞ 특별계시의 방법으로는
① 인격적(人格的)인 만남
②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서 인간의 언어(言語)로 나타난다.
③ 비유적(比喩的)인 형태로 나타난다.
피조물(被造物)이지만 하나님의 형상(形象)으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을 알수가 잇다.
☞ 특별계시의 3가지 양태(樣態)
①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歷史的)인 사건들,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②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렘 18:1 / 겔 12:1, 8, 17, 21 / 호 1:1 / 욜 1:1 / 암 3:1 / 히 1:1-2)
③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 (히 1:2 / 요일 1:1 / 요 4:9)
☞ 일반계시는 모든 인류에게 어느 시대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일반계시라 한다.
◉ 성경에 대한 사단의 공격(攻擊)
“오늘날 그리스도의 권위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는 대쟁투는 그분의 율법(律法)뿐 아니라 그분의 말씀 곧 성경을 두고 벌어지고 있다. 신적계시(神的啓示)를 거의 용인(容認)하지 않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는 성경해석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성경은 여느 고대문서(古代文書)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책인 양 그렇게 취급되었고, 동일한 비평적(批評的) 방법론(方法論)으로 분석(分析)되고 있다. 신학자들을 포함하여 점점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뜻에 대한 절대 무오류의 계시로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성경적 견해에 의문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분의 본성과 동정녀 탄생, 그리고 기적들은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43)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통로 중 하나인 성경은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기록되었으며, 또한 그것이 잘 보존되도록 성령께서 역사(役事)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부분들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깊고 넓은 지식의 샘을 보게 된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고, 한계가 없는 지식의 바다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말씀 연구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마음과 생각은 새로운 힘과 생명을 얻는다. 이러한 체험은 성경이 하나님의 저작이라는 놀라운 확증을 준다. 우리가 몸의 건강을 위해 밥을 먹듯이, 영혼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오늘의 나의 생애, 26)
과거에 비해 오늘날에는 훨씬 더 많은 성경책들이 팔린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번역본들이 나오고, 초보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쉬운 번역들도 등장한다. 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더 많이 읽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것은 영원한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펼칠 때에 거기에는 언제나 우리를 새롭게 하는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
◉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救援)에 이르게 하는 지식을 제공해 준다.
규칙적(規則的)으로 말씀을 연구함으로 영혼(靈魂)의 양식을 충분히 섭취(攝取)하자.
◉ <성경을 읽는 자의 태도(態度)>
“성경을 피상적(皮相的)으로 읽는 사람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읽으면 성경은 이야기, 설교(說敎), 역사(歷史)로 뒤범벅이 된 책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靈)의 조명(照明)하심을 받는 이들, 인내와 수많은 기도로 숨겨진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救援)의 원리들 속에 깔려 있는 통일성의 증거(證據)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단조롭고 획일적(劃一的)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다양하고 풍부한 색조를 띤 증언들이 조화를 이루며 보기 드물게 뛰어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29)
▶ “ 성경은 능(能)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목(木) (4월 30일)
<그리스도를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요 1:1-2)>
◉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말씀>
구약성경(舊約聖經)은 "하나님으로 시작(始作)(창 1:1)해서, 한 국가(國家) 히브리에 대하여,
신약성경(新約聖經)은 "예수그리스도로 시작(始作)(마 1:1)하여 인자(人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국가(國家)는 인자를 세상에 오게 하기위해 하나님에 의하여 건립되었고 양육(養育)되었다. (창 12:1-3)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간이 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셨다. (요 1:14; 14:9)
세상에서의 그분의 출현(出現)은 전 인류역사의 중심사건이며 구약성경은 이것을 위한 바탕이 되는 무대(舞臺)이고, 신약성경(新約聖經)은 이것을 묘사(描寫)한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가장 완전한 생활을 하셨다.
그분은 인간을 사랑했고, 친절(親切)하고 온유(溫柔)하였으며 너그러웠고 동정(同情)에 찬 분이였다.
그분은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놀라운 이적(異蹟)을 행하여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고,
지친사람들, 고통(苦痛)받는 사람들 그리고 상심(傷心)한 사람들의 무리가 그에게 왔을 때 그들을 편히 쉬게 하셨다. (마 11:28-30)
만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낱낱이 기록 한다면 세상에는 그 많은 책을 담아둘 곳이 없을 것이다. (요 21:25)
그 후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罪)를 씻기 위하여, 인간의 구주(救主)가 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 후 그분은 죽음에서 살아나셨고 오늘도 살아 계신다.
그분은 단지 역사적(歷史的)인 인물(人物)이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살아계신 분이시며 오늘날도 세상에서 가장 원동력(原動力)이 되는 분이시다.
그리고 또한 그분은 그에게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永遠)한 생명을 약속(約束)하셨다.
성경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
◉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히지 않고 만져질 수도,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奇蹟)중에 기적(奇迹)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연의 계시(啓示)로만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특별계시(特別啓示)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태초(太初)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그분이 육신(肉身)이 되신 것처럼,
이제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서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만지고 보고 듣고, 하여서,
성경말씀이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육신(肉身)이 되도록 하여 우리들의 존재가 이 세상에 계시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실제로 탁월한 성경학자들 중에도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성경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님을 알기 위해 애쓰지 않고, 단지 읽기만 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 조리법을 읽는 것만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이시다. 성경이 우리를 구원(救援)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구원(救援)하실 수 있는 한 분, 나사렛 예수를 소개(紹介)해 준다.
◉ 하나님에 관한 가장 명확한 계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졌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本體)시요, 그분과 동등(同等)하시기 때문이다.
◉ <성경은 그리스도를 나타냄 >
“말씀 속에는 구주께서 매우 아름답게, 아주 매력적으로 나타나 있다. 모든 영혼들은 성경 가운데서 안위와 위로를 발견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와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하실 일에 관한 약속들로 가득차 있다. 특별히 병든 자들은 그 말씀을 들음으로써 위로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인류에게 주실 때에 그분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는 생명나무 잎사귀를 주신 것이다. 성경을 읽거나 들어본 그 어떤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하는 세상 것들이나 오락들에서 기쁨을 찾고 하늘의 사물에 흥미를 잃어버릴 수가 있겠는가?”(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4)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과 더불어 교통하게 하시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천연계는 끊임없이 우리의 감각에 말한다. 열린 마음은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만물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과 영광에 감복(感服)될 것이다. 기울여 듣는 귀는 천연계의 만물을 통하여 오는 하나님의 기별을 들을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다. 푸른 들, 울창한 수목, 새싹과 꽃, 흘러가는 구름, 내리는 비, 졸졸 흐르는 시내, 하늘의 광명들은 우리의 마음에 말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지으신 분과 친숙하여지기를 요청하고 있다.”(정로의 계단, 85)
◉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개성(個性)
하나님께서는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신 예수님은 개성을 가진 구주(救主)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개성(個性)을 가진 구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다. 개성을 가진 구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의 법정에서 중보하고 계신다. “인자 같은 이가”(계 1:13)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봉사하고 계신다.
세상의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神性)의 빛나는 광채를 감추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사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죽지 않고 그들의 창조주와 친숙해질 수 있게 하셨다. 죄가 사람과 창조주 사이를 분리시켜 놓은 이후부터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것 이 외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고 선언하셨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하늘에서, 땅에서, 넓은 대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를 본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그러나 별들이나 대양(大洋)이나 폭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것과 같은 하나님의 개성을 배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개성과 품성을 다 같이 묘사하기 위하여 천연계보다 더욱 분명한 계시가 필요함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끔 나타내셨다. (치료봉사 418p)
◉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의 항해(航海)하는 선장(船長)이 나침반이 없으면 어떻게 목적지를 정확히 찾아갈까?
(요즘에는 더 좋은 GPS가 있지만)
인생살이의 나침반은 무엇일까?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탁월한 계시인 예수님께로 안내해 준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명확히 계시해 주셨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참조 요 14:9)
◉ 우리의 구속자(救贖者)되시는 예수님의 강림(降臨)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의 빛줄기를 비추어 주었다.
◉ 예수님은 아버지를 나타내심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 인간의 육체를 취하시고 오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을 가장 심오하게 나타내 보이셨다(요 1:1, 14).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 독생하신 하나님(어떤 사본에는 독생자)이 나타 내셨느니라.’(요 1:18)고 기술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으며(요 6:38),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기본교리, 2007년, 51)
◉ 하나님께서는 아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알게 하신다.
천연계를 통한 일반계시에 비하면 성경이 훨씬 더 탁월(卓越)한 특별계시(特別啓示)이지만,
성경(聖經)도 예수님을 통한 직접적(直接的)인 계시(啓示)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요약(要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통하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천연계(天然界)와 양심(良心)을 통해 우리와 교통(交通)하신다.
그분께서는 여러 세기(世紀)에 걸쳐 선지자(先知者)들을 통해 교통하셨으며, 오늘날 당신의 교회에도 예언(豫言)의 은사(恩賜)를 허락(許諾)하셨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의 순례(巡禮)를 위한 거룩한 안내서(案內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行)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특히 그분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신 사실을 장엄(莊嚴)하게 묘사(描寫)하고 있다.
<초점(焦點)>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어 계시(啓示)의 필요성을 아시고,
우주(宇宙)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창조세계(創造世界)와, 우리의 양심(良心)을 통한 일반계시(一般啓示)로, 또한 선지자(先知者)들과 성경과 예수님을 통한 특별계시(特別啓示)로 하나님자신의 뜻을 나타내주셨다
2.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보다도 예수님을 통한 직접적인 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점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신앙으로 반응하자.
제5과 계시(啓示)
기억절(記憶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깨닫기: 하나님께서는 듣기를 원하는 모든 자에게 말씀하심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통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을 인식한다.
행하기: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 성령의 음성에 더욱 민감하게 된다.
<확대경(擴大鏡)>
◉ 인간은 유한(有限)하고 하나님은 무한(無限)하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면,
그 지식(知識)은 하나님자신이 인간에게 나타낸 일반계시(一般啓示)와 특별계시(特別啓示)로 로부터 일 수밖에 없다.
계시(啓示)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와 교제(交際)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方法)이다.
요점(要點)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와 함께 대화(對話)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여러 방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되,
특히 예수님을 통하여 가장 힘 있게 말씀하신다.
일(日) (4월 26일)
<천연계(天然界)를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시 19:1-4)>
◉. 오늘날 우리가 쳐다보는 천연계의 만물은 다만 에덴동산의 영광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데 불과하다.
죄는 지상(地上)의 아름다움을 훼손(毁損)시켜 버렸다.
천연계는 능력이 무한(無限)하시고 은혜와 자비와 사랑이 많으신 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비록 훼손된 상태에 있을지라도, 만물은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솜씨를 보여 준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자비의 증거를 볼 수 있다. (치료봉사 409-410p)
◉ 천연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우리는 천연계를 통해 그분의 놀라운 창조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말았다.(참조 롬 1:19-23)
◉ 마음이 산만(散漫)하고 마음이 불안(不安)하고 우울할 때라도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접하다 보면 마음이 가라않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장엄하심에 대해 알 수 있지만, 그분의 자애로운 품성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이러한 직관은 성경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한 이러한 일반계시(一般啓示)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수많은 고전적(古典的)인 이성적(理性的) 논증(論證)들을 불러일으켰다.*”(교리, 24)
“일반계시(一般啓示). 역사, 인간의 행동, 양심, 천연계 등이 제시해 주는 하나님의 품성에 관한 통찰(通察)은 흔히 "일반 계시"라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사람이 관찰할 수 있고 이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교리, 1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흥미를 일으키기 위하여 우리 주위에 천연(天然)의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 놓으셨다. 우리로 하여금 천연계의 영광을 그분의 품성과 연결시켜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우리가 신실히 천연계의 책을 연구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무한(無限)하신 사랑과 능력을 명상(冥想)하는 데 있어 풍성한 근원이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재림신도의 가정, 144)
◉ 하나님께서는 천연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비록 죄로 인해 손상(損傷)되었을지라도 천연계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크게 말해 준다.
월(月) (4월 27일)
<우리의 양심(良心)을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창 42:18-23)>
◉ 종교생활(宗敎生活)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악(惡)한 것을 보면 악하다고 생각도하고 또한 악하다고 말도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이란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도록 도와주는 내적(內的)인 원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무엇이 도덕적(道德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 거절(拒絶)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력(判斷力)을 가지고 있다(롬 2:14-15).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양심은 깨끗하나, 그것이 나를 결백(潔白)하게 하지는 않으리라. 나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主任)이시니라”(고전 4:4, NIV).
사도는 또한 우리가 양심의 호소를 거절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상 그 양심이 화인(火印) 맞거나(딤전 4:2), 더럽혀진(딛 1:15) 자(者)들도 있다.
◉ <변(變)할 수 있는 인간의 양심>
☞ 인간의 양심은 변(變)한다.
“어떤 양심들은 '약(弱)하'고, 다른 양심들은 '더럽'고 '악(惡)하'며 '화인(火印) 맞' 았다.
(고전 8:7, 12; 딛 1:15; 히 10:22; 딤전 4:2).
시계처럼 그것들이 아무리 잘 작동(作動)할지라도,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확한 표준에 '맞추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양심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위대한 표준인 그분의 율법에 맞추어져 있는 양심만이 우리를 죄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다.”(한국어판, 2007년, 329)
◉ 요셉의 형제들은 아우 요셉을 노예로 판 것에 대하여 양심에 찔림을 받았고,(창 42:18-23)
바벨론의 벨사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거룩한 기명으로 술잔치를 벌이다가 분벽에 쓰인 글자를 보고 양심에 자극(刺戟)을 받았다. (단5장)
가룟 유다는 무죄(無罪)하신 예수님을 판 후에 양심의 가책(呵責)을 받아 자살하였고, (마 27:3-5)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온 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땅에 쓰실 때에 양심의 가책(呵責)을 받아 그곳을 떠나갔다. (요 8:1-9)
그러나 우리의 양심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항상 신뢰(信賴)할 만한 것은 아니다.
선(善)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양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 <우리의 양심(良心)을 예민(銳敏)하게 만드는 방법>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詳考)하고, 기도(祈禱)로써 그분과 자주 교통(交通)함으로 그분과 조화(調和)를 이룰 때, 우리는 우리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님(聖靈任)의 음성(音聲)에 보다 민감(敏感)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또 하나의 통로(通路)는 우리의 양심(良心)이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써 둔감(鈍感)해진 양심을 예민(銳敏)하게 간직할 수 있다.
“우상숭배(偶像崇拜)는 하나님의 사업과 그분의 거룩한 품성(稟性)에 대한 모든 분별력을 다 잃어버렸고, 비열(卑劣)한 정욕의 제단(祭壇)에 명예(名譽)와 양심, 그리고 모든 가치(價値)있는 권익(權益)들을 다 희생(犧牲)시키고 말았다(사인즈 1903. 7. 1).”(화잇주석, 삿 16:15-20)
“ 인간의 행동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다.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아테네 사람들의 경배 가운데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증거를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 바울은 또한 비(非)그리스도교인의 행동이 "그(들의) 양심"의 증거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롬 2:14, 15)겨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교리 24)
“사람이 회개(悔改)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며 단체적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중생(重生)의 사업은 회의의 명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마음과 양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쟁투, 233)
화요일(4월 28일)
<선지자(先知者)들을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출 7:1-6)>
◉ 선지자들은 신구약시대(新舊約時代) 모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성서시대(聖書時代)의 예언적(豫言的) 선물(膳物)>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간격(間隔)없는 교신(交信)은 끝났지만(사 59:2) 하나님은 인류와의 친밀한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대신해 하나님께서는 다른 교신의 방법을 개발하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격려(激勵)와 경고(警告)와 견책(譴責)의 말씀을 보내기 시작 하셨다.
성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별을 받아 그 내용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선지자들은 자진하여 예언 하지는 않았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기본교리27 - 205-214p 참고)
◉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백성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경고와 위로, 교훈과 예언의 그릇에 담아 전달하였다.
◉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다. 그 메시지가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그 말에는 권위가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이 표현할 단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교통하시기 위해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셨다. 아모스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기별을 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에도 선지자를 보내셨다.
◉ 선지자의 역할과 사명
“구약에서 선지자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나비(nabi)를 번역한 것이다. 그 의미는 출애굽기 7:1-2에 표현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나비)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게 하라. 바로와 모세와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아론이 모세의 말을 바로에게 전달했듯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자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임명하신 대변자를 가리킨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306-307)
▶ 선지자는 대언자(代言者)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만을 전달(傳達)하는 자이다.
▶ 예수께서 초림(初臨)하신 이후에도 선지자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에 예언의 은사(恩賜)를 허락(許諾)하셨으며, 특히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에는 대언의 영(靈)이 주어질 것을 말씀하셨다.
수(水) (4월 29일)
<성경(聖經)을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딤후 3:14-16)>
◉ 하나님께서는 어느 특정한 시대와 인물을 택하셔서 특별히 하나님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으로 이러한 계시(啓示)나 현현(顯現)의 내용을 아는 것은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를 특별계시(特別啓示)라고 한다.
☞ 특별계시의 정의(定義)
하나님자신을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계시(啓示)하셔서 계시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로 인도(引導)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말하며
☞ 특별계시의 필요성(必要性)
인간의 타락(墮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斷絶)되었기 때문에 관계회복(關係恢復)을 위해서 하나님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타락(墮落)후에 필요한 것이었고 인격적(人格的)이며 동시에 명제적(命題的)(사실적(事實的), 객관적(客觀的))이다.
☞ 특별계시의 방법으로는
① 인격적(人格的)인 만남
②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서 인간의 언어(言語)로 나타난다.
③ 비유적(比喩的)인 형태로 나타난다.
피조물(被造物)이지만 하나님의 형상(形象)으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을 알수가 잇다.
☞ 특별계시의 3가지 양태(樣態)
①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歷史的)인 사건들,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②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렘 18:1 / 겔 12:1, 8, 17, 21 / 호 1:1 / 욜 1:1 / 암 3:1 / 히 1:1-2)
③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 (히 1:2 / 요일 1:1 / 요 4:9)
☞ 일반계시는 모든 인류에게 어느 시대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일반계시라 한다.
◉ 성경에 대한 사단의 공격(攻擊)
“오늘날 그리스도의 권위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는 대쟁투는 그분의 율법(律法)뿐 아니라 그분의 말씀 곧 성경을 두고 벌어지고 있다. 신적계시(神的啓示)를 거의 용인(容認)하지 않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는 성경해석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성경은 여느 고대문서(古代文書)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책인 양 그렇게 취급되었고, 동일한 비평적(批評的) 방법론(方法論)으로 분석(分析)되고 있다. 신학자들을 포함하여 점점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뜻에 대한 절대 무오류의 계시로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성경적 견해에 의문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분의 본성과 동정녀 탄생, 그리고 기적들은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43)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통로 중 하나인 성경은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기록되었으며, 또한 그것이 잘 보존되도록 성령께서 역사(役事)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부분들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깊고 넓은 지식의 샘을 보게 된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고, 한계가 없는 지식의 바다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말씀 연구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마음과 생각은 새로운 힘과 생명을 얻는다. 이러한 체험은 성경이 하나님의 저작이라는 놀라운 확증을 준다. 우리가 몸의 건강을 위해 밥을 먹듯이, 영혼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오늘의 나의 생애, 26)
과거에 비해 오늘날에는 훨씬 더 많은 성경책들이 팔린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번역본들이 나오고, 초보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쉬운 번역들도 등장한다. 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더 많이 읽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것은 영원한 위험을 무릅쓰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펼칠 때에 거기에는 언제나 우리를 새롭게 하는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
◉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救援)에 이르게 하는 지식을 제공해 준다.
규칙적(規則的)으로 말씀을 연구함으로 영혼(靈魂)의 양식을 충분히 섭취(攝取)하자.
◉ <성경을 읽는 자의 태도(態度)>
“성경을 피상적(皮相的)으로 읽는 사람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읽으면 성경은 이야기, 설교(說敎), 역사(歷史)로 뒤범벅이 된 책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靈)의 조명(照明)하심을 받는 이들, 인내와 수많은 기도로 숨겨진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救援)의 원리들 속에 깔려 있는 통일성의 증거(證據)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단조롭고 획일적(劃一的)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다양하고 풍부한 색조를 띤 증언들이 조화를 이루며 보기 드물게 뛰어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29)
▶ “ 성경은 능(能)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목(木) (4월 30일)
<그리스도를 통(通)한 하나님의 계시(啓示) (요 1:1-2)>
◉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말씀>
구약성경(舊約聖經)은 "하나님으로 시작(始作)(창 1:1)해서, 한 국가(國家) 히브리에 대하여,
신약성경(新約聖經)은 "예수그리스도로 시작(始作)(마 1:1)하여 인자(人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국가(國家)는 인자를 세상에 오게 하기위해 하나님에 의하여 건립되었고 양육(養育)되었다. (창 12:1-3)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간이 되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셨다. (요 1:14; 14:9)
세상에서의 그분의 출현(出現)은 전 인류역사의 중심사건이며 구약성경은 이것을 위한 바탕이 되는 무대(舞臺)이고, 신약성경(新約聖經)은 이것을 묘사(描寫)한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가장 완전한 생활을 하셨다.
그분은 인간을 사랑했고, 친절(親切)하고 온유(溫柔)하였으며 너그러웠고 동정(同情)에 찬 분이였다.
그분은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놀라운 이적(異蹟)을 행하여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고,
지친사람들, 고통(苦痛)받는 사람들 그리고 상심(傷心)한 사람들의 무리가 그에게 왔을 때 그들을 편히 쉬게 하셨다. (마 11:28-30)
만일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낱낱이 기록 한다면 세상에는 그 많은 책을 담아둘 곳이 없을 것이다. (요 21:25)
그 후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罪)를 씻기 위하여, 인간의 구주(救主)가 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 후 그분은 죽음에서 살아나셨고 오늘도 살아 계신다.
그분은 단지 역사적(歷史的)인 인물(人物)이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살아계신 분이시며 오늘날도 세상에서 가장 원동력(原動力)이 되는 분이시다.
그리고 또한 그분은 그에게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永遠)한 생명을 약속(約束)하셨다.
성경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와 인간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되어 있다.
◉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히지 않고 만져질 수도,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奇蹟)중에 기적(奇迹)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연의 계시(啓示)로만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특별계시(特別啓示)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태초(太初)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그분이 육신(肉身)이 되신 것처럼,
이제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서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만지고 보고 듣고, 하여서,
성경말씀이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육신(肉身)이 되도록 하여 우리들의 존재가 이 세상에 계시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실제로 탁월한 성경학자들 중에도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성경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님을 알기 위해 애쓰지 않고, 단지 읽기만 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 조리법을 읽는 것만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이시다. 성경이 우리를 구원(救援)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구원(救援)하실 수 있는 한 분, 나사렛 예수를 소개(紹介)해 준다.
◉ 하나님에 관한 가장 명확한 계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졌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本體)시요, 그분과 동등(同等)하시기 때문이다.
◉ <성경은 그리스도를 나타냄 >
“말씀 속에는 구주께서 매우 아름답게, 아주 매력적으로 나타나 있다. 모든 영혼들은 성경 가운데서 안위와 위로를 발견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와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하실 일에 관한 약속들로 가득차 있다. 특별히 병든 자들은 그 말씀을 들음으로써 위로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인류에게 주실 때에 그분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는 생명나무 잎사귀를 주신 것이다. 성경을 읽거나 들어본 그 어떤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하는 세상 것들이나 오락들에서 기쁨을 찾고 하늘의 사물에 흥미를 잃어버릴 수가 있겠는가?”(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4)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과 더불어 교통하게 하시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천연계는 끊임없이 우리의 감각에 말한다. 열린 마음은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만물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과 영광에 감복(感服)될 것이다. 기울여 듣는 귀는 천연계의 만물을 통하여 오는 하나님의 기별을 들을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다. 푸른 들, 울창한 수목, 새싹과 꽃, 흘러가는 구름, 내리는 비, 졸졸 흐르는 시내, 하늘의 광명들은 우리의 마음에 말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지으신 분과 친숙하여지기를 요청하고 있다.”(정로의 계단, 85)
◉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개성(個性)
하나님께서는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이신 예수님은 개성을 가진 구주(救主)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개성(個性)을 가진 구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다. 개성을 가진 구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의 법정에서 중보하고 계신다. “인자 같은 이가”(계 1:13)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봉사하고 계신다.
세상의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神性)의 빛나는 광채를 감추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사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죽지 않고 그들의 창조주와 친숙해질 수 있게 하셨다. 죄가 사람과 창조주 사이를 분리시켜 놓은 이후부터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것 이 외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고 선언하셨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하늘에서, 땅에서, 넓은 대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솜씨를 본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그러나 별들이나 대양(大洋)이나 폭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것과 같은 하나님의 개성을 배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개성과 품성을 다 같이 묘사하기 위하여 천연계보다 더욱 분명한 계시가 필요함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끔 나타내셨다. (치료봉사 418p)
◉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의 항해(航海)하는 선장(船長)이 나침반이 없으면 어떻게 목적지를 정확히 찾아갈까?
(요즘에는 더 좋은 GPS가 있지만)
인생살이의 나침반은 무엇일까?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탁월한 계시인 예수님께로 안내해 준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명확히 계시해 주셨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참조 요 14:9)
◉ 우리의 구속자(救贖者)되시는 예수님의 강림(降臨)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의 빛줄기를 비추어 주었다.
◉ 예수님은 아버지를 나타내심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 인간의 육체를 취하시고 오셨을 때 아버지 하나님을 가장 심오하게 나타내 보이셨다(요 1:1, 14).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 독생하신 하나님(어떤 사본에는 독생자)이 나타 내셨느니라.’(요 1:18)고 기술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으며(요 6:38),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기본교리, 2007년, 51)
◉ 하나님께서는 아는 것으로 새로운 것을 알게 하신다.
천연계를 통한 일반계시에 비하면 성경이 훨씬 더 탁월(卓越)한 특별계시(特別啓示)이지만,
성경(聖經)도 예수님을 통한 직접적(直接的)인 계시(啓示)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요약(要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통하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천연계(天然界)와 양심(良心)을 통해 우리와 교통(交通)하신다.
그분께서는 여러 세기(世紀)에 걸쳐 선지자(先知者)들을 통해 교통하셨으며, 오늘날 당신의 교회에도 예언(豫言)의 은사(恩賜)를 허락(許諾)하셨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의 순례(巡禮)를 위한 거룩한 안내서(案內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行)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특히 그분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신 사실을 장엄(莊嚴)하게 묘사(描寫)하고 있다.
<초점(焦點)>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어 계시(啓示)의 필요성을 아시고,
우주(宇宙)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창조세계(創造世界)와, 우리의 양심(良心)을 통한 일반계시(一般啓示)로, 또한 선지자(先知者)들과 성경과 예수님을 통한 특별계시(特別啓示)로 하나님자신의 뜻을 나타내주셨다
2.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보다도 예수님을 통한 직접적인 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점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신앙으로 반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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