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증거와 봉사 : 부흥의 열매(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7/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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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3-07-18 07:12 조회8,145회 댓글0건본문
7월 27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45분
연구 범위
마 28:19~20, 요 20:21, 행 2장, 행 22:1~14, 요 6:1~11, 행 8:26~38.
기억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부흥의 목적은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주를 향한 사랑을 나누고자 열망하는 그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 심령을 채우는 것이다. 참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용서와 능력에 눈을 뜬다. 그분의 사랑에 매료되고 그분의 자비로 말미암아 변화를 경험한 결과 우리는 잠잠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오로지 영적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부흥은 핵심을 놓치고 만다. 또는 부흥이 개인적인 경건의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태도를 키운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흥이 마음의 변화보다 단지 외적인 행위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마음이 변하면 행동도 변한다. 자기중심, 자기만족, 자기찬양은 절대 진정한 부흥의 결과일 수 없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무아적인 관심이야말로 부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고 축복하고자 열망하게 된다. 진정으로 참된 부흥에는 선교와 봉사를 새롭게 강조하는 정신이 따른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분을 열심히 전하는 것과의 관계를 분석한다.
➋ 느끼기 : 회개한 심령으로 복음을 증언하려는 자연스러운 소망을 간직한다.
➌ 행하기 : 복음 증거의 특권을 활용하기로 다짐하고 매주 일정 시간 이타적인 봉사와 전도를 위해 시간을 구별하기로 결심한다.
A.
❷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신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전했다고 생각합니까?
※ 구원에 대한 확신과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했다.
❸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자기 생활에 얽매이고 또 절박한 심정도 약해서 그렇지 않을까?
❹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합니까?
※ 결심은 소용없고 하나님께 굴복해야 한다. 말씀에 굴복해야 한다.
B.
❷ 복음을 전할 때, 교리보다 개인의 신앙 경험이 더 효과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확신하도록 한 경험이기 때문에 공감을 일으킨다.
❸ 살아 있는 신앙과 전도 그리고 부흥은 서로 어떤 관계라고 생각합니까?
※ 살아 있는 믿음은 전도하게 하고 결과로 심령의 부흥과 교회의 부흥이 온다.
결론 :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이타적인 삶과 증거는 예수님과 나누는 친밀한 경험의 결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을 구원하려는 미약한 시도보다 훨씬 포괄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삶을 변화시킨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구원하는 은혜의 대사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날(일) 그리스도의 마지막 분부와 약속
7월 21일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자기들만 돌보라고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고별사는 교회의 사명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의도는 자기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의 빛과 구원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1. 다음의 성경절을 읽고 요약하라. 각 성경절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핵심 소망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마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모든 민족을 제자 삼고, 침례주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온 세상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
[눅24:45~49]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
[요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사명을 주어 보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표징이 되어야 했다. 제자들은 사명이 있었고, 전해야 할 기별이 있었으며,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시작한 사업을 계속해야 했다.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되었으므로,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충만과 풍족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의 보고(寶庫)이므로 종국에는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위자들에게’(엡 3:10, 새번역)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사도행적, 9).
인류의 구원은 예수님의 마음의 짐이다. 사도 바울은 젊은 동료 디모데에게 구주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딤전 2:4)하신다고 편지했다. 베드로도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벧후 3:9)신다고 덧붙였다.
<부가설명>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이 사망의 세상에 증거하여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하는 사명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기관이다. 마16:18에 의하면 예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였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된 사람들을 땅에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일을 감당하고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머리이시고 교회는 몸이고 모든 교인들은 교회의 지체들이다.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몸과 지체들은 움직이게 된다. 몸이 병들지 않았으면 당연히 그렇게 움직인다. 머리이신 예수께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건강한 지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활하게 될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교회를 세우셨다.
둘째날(월) 약속을 받음
7월 22일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라는 사명은 분명 이 작은 무리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장애는 많고 임무는 막중하였다. 제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명을 완수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인구는 최대 6~7천만으로 추산된다. 사도행전 1장에 따르면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인 제자의 수는 120명에 불과하다.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인 비율은 인구 50~58만 명당 한 명꼴이었다.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막연한 일이었다.
1. 사도행전 2장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의 선교 사명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답: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제자들을 복음 전도에 임하게 했을 때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증거함으로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다. 사람의 수단이나 능력이 아니었다.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교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천 명이 회심하였다.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기별이 제국의 벽지까지 전파되었다.
서기 110년경 오늘날 터키 북쪽 해안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역의 총독이었던 작은 플리니우스(Plinius the Younger)는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고 처형하기 위한 재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재판에 회부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회부될 전망입니다. 도시뿐 아니라 지방 촌락까지 이 미신(기독교)에 감염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위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불과 몇 세대 만에 외딴 지역의 모든 계층에 기독교가 침투했음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90년이 흐른 서기 200년경,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법률가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 로마 재판장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서 “모든 도시의 대다수의 시민이 기독교인이다.”라고 자랑하였다.
사도행전은 주를 위해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부흥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영적 부흥은 항상 열정적인 증거로 이어진다. 복음 전파는 변화된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우리가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를수록 그분의 관심은 우리의 관심이 된다. 만약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멀리서 따르고 있으며 개인적인 영적 부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침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생명, 부활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런 생명이 없으면 생명의 활동인 증거의 삶을 살 수 없다. 증거를 들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일이다. 사람은 그냥 분부대로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하고 자기가 전도를 잘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자랑할 것이 없다. 역사의 종말에 오류가 없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도 그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체들이기 때문에 지체된 상태에서 건강한 지체노릇을 수행하면 머리 되신 예수께서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이루시고 마치실 것이다. 우리 각 성도는 과연 건강한 지체가 되어 있는가?
교훈 : 영적으로 부흥된 백성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 교회의 역사는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셋째날(화) 개인 간증의 힘
7월 23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종교 의식은 삶을 바꾸는 힘이 거의 없다. 종교적 형식주의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메마르게 한다. 교리만으로는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신약 교회의 힘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생애의 진실성에 기초해 있었다. 제자들의 삶은 연극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자인 것처럼 시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성은 가공된 영성이 아니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그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잠잠할 수 없었다.
1. 바울과 요한이 그토록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공통적인 맥락이 흐르고 있는가?(행 22:1~14, 빌 3:1~7, 요일 1:1~4)
[행22:1~14]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2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빌3:1~7]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요일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답: 바울이나 요한은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이 있다. 그 체험과 함께 말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증거가 능력이 있었다.
오순절에 제자들은 변화되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기에 성령께서는 그들을 통해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성령이 그들을 위해 중요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또한 그들과 함께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그들의 삶에서 성령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의 삶을 새롭게 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현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여기서 ‘믿다.’라는 말은 그리스어 ‘피스티스’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표면적인 믿음 또는 지적 동의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확고한 믿음 또는 확신에 찬 신뢰를 뜻한다. ‘피스티스’는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역동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을 말한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소하면 그 사랑은 우리 마음에서 넘쳐 주위 사람에게 흐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 어떤 것도 예수의 사랑에 잠긴 마음에서 샘솟는 간증을 대신하지 못한다.
<부가설명> 위에 말한 교과 저저의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체험적 간증을 하는가! 그들의 간증은 힘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예수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체험한 신앙적 영적 체험이 진리에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진리에 일치하지 않는 신앙체험이 너무 많은 시대이다. 우리의 체험이 철저히 성경진리와 일치하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바울이나 요한의 체험은 당시에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였고, 예수님을 직접 따르며 배운 그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체험이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사8:20) 아무리 간증이 힘이 있고 체험적이라고 율법과 증거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사단의 속임 수에 넘어간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교과 저자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것 같다.
교훈 :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전파에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과 변화된 삶을 증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넷째날(수) 증언하는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
7월 24일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인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모든 신체 기관과 근육과 조직은 운동을 통해 강화되고 활력을 얻는다. 운동을 게을리하면 면역성이 떨어져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우리가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증언을 게을리할 때, 영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기 원하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믿음은 나누면서 더욱 강화된다.
1. 오병이어의 기적은 믿음을 나누는 삶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주는가?(요
6:1~11)
[요6:1~1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답: 한 아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 장정만 5천명이 먹고도 남았다. 이것은 생명의 떡을 나눌 때 일어나는 결과를 보여준다.
우리가 믿음을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욱 배가된다. 배가의 법칙은 거룩한 영적 생명의 법칙이다. 주면 커지고, 움켜쥐면 작아진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작을지라도 그것을 다른 이에게 나눌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신다. 우리가 주위에 영적으로 굶주린 자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나누면, 그것은 우리 손에서 배가되어 결국 처음보다 훨씬 많게 된다.
예수님도 처음에는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처음보다 훨씬 많은 양이 남아 열두 바구니에 찼다. 신약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지시는 오해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증언은 부흥의 불씨를 오순절 불길로 일으키는 산들바람과 같다. 기도의 부흥과 말씀 연구가 전도와 봉사를 수반하지 않으면 부흥의 불길은 꺼지며, 숯은 식어 버릴 것이다.
<부가설명> 생명은 불어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불어나거나 성장하지 않으면 죽어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요10:10) 전도는 예수 생명이 불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으면 그 생명은 생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이다. 전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것이고,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각각 자기가 받은 은사에 충실하면 합동하여 새로운 영혼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해산의 수고라고 바울이 말했다.(갈4:19) 생명이 불어나는 경험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으면 더 풍성하게 생명을 불어나게 하는 경험을 할 것이다.
교훈 : 오병이어가 나눌 때 더욱 풍성해졌던 것처럼 믿음은 사용할수록 더욱 강화되고 전할 때 더욱 성장한다.
다섯째날(목) 부흥, 증언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
7월 25일
사도행전에서 급성장한 신약 교회의 이야기는 부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했던 교회의 이야기이며, 때마다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증언은 초기 신자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오히려 박해는 복음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예루살렘 교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행 8:4)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빌립과 에티오피아 관리와의 만남이었다.
1.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무엇을 권했고, 그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행 8:26~38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부흥과 증언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행8:26~38]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답: 내시가 읽고 있던 이사야의 예언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내시는 즉각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았다. 부흥은 말씀의 증거를 확실하게 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 천사가 빛을 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빌립을 인도한 것처럼, 오늘날도 천사들은 성령께서 저희 혀를 성화시키고 그 마음을 정련하고 고상하게 하도록 허락하는 일꾼들의 발걸음을 인도할 것이다. 빌립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천사 자신이 에티오피아 사람을 위해 일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인간들이 동료 인간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다”(사도행적, 109).
부흥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기도, 말씀 연구 그리고 증언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열렬하게 그분을 찾고, 진심으로 중보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정신을 가득 채우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전할 때에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진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예기치 않은 문을 열어 주신다.
<부가설명> 구스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은 복음 전도에 성령께서 친히 일하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빌립은 구스 내시를 전혀 몰랐지만 성령께서는 다 아신다. 성령께서 빌립을 구스 내시에게로 이끌어가셨다. 내시는 절기를 당하여 예루살렘에 왔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의 실상을 몰랐다.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는데,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종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깨닫기를 원하는 갈망을 갖고 있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빌립을 보내셨다. 마치 수가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 바쁘게 걸으신 예수님처럼 성령께서는 빌립을 그렇게 보내셨고, 그 일을 통하여 구스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속히 전파될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지금도 내시처럼 복음을 바르게 깨닫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께서 우리들을 그들에게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준비된 증인으로 이끄심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부흥을 경험하고 열렬하고 진지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파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전도의 길을 열어 주신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7월 26일
“주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이미 진리를 아는 이와 접촉하게 하신다. 빛을 받은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지혜의 큰 근원으로부터 그 능력을 얻는 인간이 일하는 대리인, 즉 통로가 된 그를 통해서 복음이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사도행적, 134).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죄인을 구원하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은 품성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사업을 분담해야 한다. 그의 기쁨, 곧 그의 희생을 통하여 속량 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들의 속량을 위한 그분의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시대의 소망, 14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이번 주 핵심 사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대에게 요구하는 변화가 있습니까? 그대의 우선순위는 어떤 식으로든지 재조정될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대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요구하십니까?
※ 이번 주 핵심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삶이 증거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
➋ 우리가 믿음을 증언하면 할수록 우리 믿음이 더욱 성장한다는 영적 진리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대는 이것이 왜 진리라고 생각합니까? 어떻게 이 원리가 이치에 맞을까요?
※ 예수를 믿는 믿음은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➌ 그대는 얼마나 자주 예수님을 증언합니까? 자주 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부당할까 봐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얼마나 자주 거부당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절이 그분을 막지 못했다면 우리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증언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주님과 더 깊이 동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를 증거해야 한다. 말씀을 더 깊이 깨닫도록 기도하고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➍ 한 주 동안 우리는 종교적 의식이 어떻게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과 교회 생활에서 의식과 전통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의식과 전통은 어떤 방식으로 부흥과 개혁에 쓸모가 있을까요?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때 큰 만족을 얻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의식과 전통은 우리의 믿음을 담는 그릇 노릇을 한다. 이 그릇이 잘못 되면 담기는 내용이 그릇을 따라 잘못 형성될 수 있다. 올바를 사상은 올바른 형식을 만든다. 생명을 낳는 수고가 있겠지만 생명이 태어났을 때 느끼는 기쁨이다.
일몰:오후 7시 45분
연구 범위
마 28:19~20, 요 20:21, 행 2장, 행 22:1~14, 요 6:1~11, 행 8:26~38.
기억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부흥의 목적은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주를 향한 사랑을 나누고자 열망하는 그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 심령을 채우는 것이다. 참 부흥이 일어나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용서와 능력에 눈을 뜬다. 그분의 사랑에 매료되고 그분의 자비로 말미암아 변화를 경험한 결과 우리는 잠잠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오로지 영적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부흥은 핵심을 놓치고 만다. 또는 부흥이 개인적인 경건의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태도를 키운다면 그것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흥이 마음의 변화보다 단지 외적인 행위의 변화만을 강조한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마음이 변하면 행동도 변한다. 자기중심, 자기만족, 자기찬양은 절대 진정한 부흥의 결과일 수 없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무아적인 관심이야말로 부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돕고 축복하고자 열망하게 된다. 진정으로 참된 부흥에는 선교와 봉사를 새롭게 강조하는 정신이 따른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분을 열심히 전하는 것과의 관계를 분석한다.
➋ 느끼기 : 회개한 심령으로 복음을 증언하려는 자연스러운 소망을 간직한다.
➌ 행하기 : 복음 증거의 특권을 활용하기로 다짐하고 매주 일정 시간 이타적인 봉사와 전도를 위해 시간을 구별하기로 결심한다.
A.
❷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신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전했다고 생각합니까?
※ 구원에 대한 확신과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했다.
❸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자기 생활에 얽매이고 또 절박한 심정도 약해서 그렇지 않을까?
❹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합니까?
※ 결심은 소용없고 하나님께 굴복해야 한다. 말씀에 굴복해야 한다.
B.
❷ 복음을 전할 때, 교리보다 개인의 신앙 경험이 더 효과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확신하도록 한 경험이기 때문에 공감을 일으킨다.
❸ 살아 있는 신앙과 전도 그리고 부흥은 서로 어떤 관계라고 생각합니까?
※ 살아 있는 믿음은 전도하게 하고 결과로 심령의 부흥과 교회의 부흥이 온다.
결론 :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이타적인 삶과 증거는 예수님과 나누는 친밀한 경험의 결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을 구원하려는 미약한 시도보다 훨씬 포괄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삶을 변화시킨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구원하는 은혜의 대사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날(일) 그리스도의 마지막 분부와 약속
7월 21일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자기들만 돌보라고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고별사는 교회의 사명에 초점을 맞췄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의도는 자기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의 빛과 구원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
1. 다음의 성경절을 읽고 요약하라. 각 성경절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핵심 소망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마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모든 민족을 제자 삼고, 침례주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온 세상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
[눅24:45~49]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
[요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사명을 주어 보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표징이 되어야 했다. 제자들은 사명이 있었고, 전해야 할 기별이 있었으며,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시작한 사업을 계속해야 했다.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되었으므로,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충만과 풍족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의 보고(寶庫)이므로 종국에는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위자들에게’(엡 3:10, 새번역)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사도행적, 9).
인류의 구원은 예수님의 마음의 짐이다. 사도 바울은 젊은 동료 디모데에게 구주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딤전 2:4)하신다고 편지했다. 베드로도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벧후 3:9)신다고 덧붙였다.
<부가설명>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이 사망의 세상에 증거하여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하는 사명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기관이다. 마16:18에 의하면 예수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였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일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된 사람들을 땅에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일을 감당하고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머리이시고 교회는 몸이고 모든 교인들은 교회의 지체들이다. 머리가 지시하는 대로 몸과 지체들은 움직이게 된다. 몸이 병들지 않았으면 당연히 그렇게 움직인다. 머리이신 예수께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건강한 지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활하게 될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교회를 세우셨다.
둘째날(월) 약속을 받음
7월 22일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하라는 사명은 분명 이 작은 무리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장애는 많고 임무는 막중하였다. 제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사명을 완수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인구는 최대 6~7천만으로 추산된다. 사도행전 1장에 따르면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인 제자의 수는 120명에 불과하다.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인 비율은 인구 50~58만 명당 한 명꼴이었다. 사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막연한 일이었다.
1. 사도행전 2장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의 선교 사명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답: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제자들을 복음 전도에 임하게 했을 때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증거함으로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다. 사람의 수단이나 능력이 아니었다.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교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천 명이 회심하였다.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기별이 제국의 벽지까지 전파되었다.
서기 110년경 오늘날 터키 북쪽 해안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역의 총독이었던 작은 플리니우스(Plinius the Younger)는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고 처형하기 위한 재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재판에 회부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회부될 전망입니다. 도시뿐 아니라 지방 촌락까지 이 미신(기독교)에 감염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위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불과 몇 세대 만에 외딴 지역의 모든 계층에 기독교가 침투했음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90년이 흐른 서기 200년경,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법률가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를 변호하기 위해 로마 재판장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서 “모든 도시의 대다수의 시민이 기독교인이다.”라고 자랑하였다.
사도행전은 주를 위해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부흥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영적 부흥은 항상 열정적인 증거로 이어진다. 복음 전파는 변화된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우리가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를수록 그분의 관심은 우리의 관심이 된다. 만약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멀리서 따르고 있으며 개인적인 영적 부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침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생명, 부활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런 생명이 없으면 생명의 활동인 증거의 삶을 살 수 없다. 증거를 들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일이다. 사람은 그냥 분부대로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하고 자기가 전도를 잘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자랑할 것이 없다. 역사의 종말에 오류가 없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도 그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체들이기 때문에 지체된 상태에서 건강한 지체노릇을 수행하면 머리 되신 예수께서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이루시고 마치실 것이다. 우리 각 성도는 과연 건강한 지체가 되어 있는가?
교훈 : 영적으로 부흥된 백성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 교회의 역사는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셋째날(화) 개인 간증의 힘
7월 23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종교 의식은 삶을 바꾸는 힘이 거의 없다. 종교적 형식주의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메마르게 한다. 교리만으로는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신약 교회의 힘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생애의 진실성에 기초해 있었다. 제자들의 삶은 연극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자인 것처럼 시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성은 가공된 영성이 아니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그들을 변화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잠잠할 수 없었다.
1. 바울과 요한이 그토록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공통적인 맥락이 흐르고 있는가?(행 22:1~14, 빌 3:1~7, 요일 1:1~4)
[행22:1~14]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2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빌3:1~7]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요일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답: 바울이나 요한은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이 있다. 그 체험과 함께 말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증거가 능력이 있었다.
오순절에 제자들은 변화되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기에 성령께서는 그들을 통해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성령이 그들을 위해 중요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또한 그들과 함께 중요한 일을 행하실 수 있었다. 그들의 삶에서 성령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의 삶을 새롭게 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현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 여기서 ‘믿다.’라는 말은 그리스어 ‘피스티스’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표면적인 믿음 또는 지적 동의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확고한 믿음 또는 확신에 찬 신뢰를 뜻한다. ‘피스티스’는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역동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믿음을 말한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해소하면 그 사랑은 우리 마음에서 넘쳐 주위 사람에게 흐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 어떤 것도 예수의 사랑에 잠긴 마음에서 샘솟는 간증을 대신하지 못한다.
<부가설명> 위에 말한 교과 저저의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체험적 간증을 하는가! 그들의 간증은 힘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예수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체험한 신앙적 영적 체험이 진리에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진리에 일치하지 않는 신앙체험이 너무 많은 시대이다. 우리의 체험이 철저히 성경진리와 일치하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바울이나 요한의 체험은 당시에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였고, 예수님을 직접 따르며 배운 그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체험이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사8:20) 아무리 간증이 힘이 있고 체험적이라고 율법과 증거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사단의 속임 수에 넘어간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교과 저자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것 같다.
교훈 :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전파에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과 변화된 삶을 증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넷째날(수) 증언하는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
7월 24일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인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모든 신체 기관과 근육과 조직은 운동을 통해 강화되고 활력을 얻는다. 운동을 게을리하면 면역성이 떨어져서 질병에 걸리기 쉽다.
우리가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증언을 게을리할 때, 영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기 원하게 된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믿음은 나누면서 더욱 강화된다.
1. 오병이어의 기적은 믿음을 나누는 삶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주는가?(요
6:1~11)
[요6:1~1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답: 한 아이가 보리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 장정만 5천명이 먹고도 남았다. 이것은 생명의 떡을 나눌 때 일어나는 결과를 보여준다.
우리가 믿음을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욱 배가된다. 배가의 법칙은 거룩한 영적 생명의 법칙이다. 주면 커지고, 움켜쥐면 작아진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작을지라도 그것을 다른 이에게 나눌 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신다. 우리가 주위에 영적으로 굶주린 자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나누면, 그것은 우리 손에서 배가되어 결국 처음보다 훨씬 많게 된다.
예수님도 처음에는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처음보다 훨씬 많은 양이 남아 열두 바구니에 찼다. 신약 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지시는 오해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증언은 부흥의 불씨를 오순절 불길로 일으키는 산들바람과 같다. 기도의 부흥과 말씀 연구가 전도와 봉사를 수반하지 않으면 부흥의 불길은 꺼지며, 숯은 식어 버릴 것이다.
<부가설명> 생명은 불어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불어나거나 성장하지 않으면 죽어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요10:10) 전도는 예수 생명이 불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으면 그 생명은 생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전도이다. 전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것이고,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각각 자기가 받은 은사에 충실하면 합동하여 새로운 영혼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해산의 수고라고 바울이 말했다.(갈4:19) 생명이 불어나는 경험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으면 더 풍성하게 생명을 불어나게 하는 경험을 할 것이다.
교훈 : 오병이어가 나눌 때 더욱 풍성해졌던 것처럼 믿음은 사용할수록 더욱 강화되고 전할 때 더욱 성장한다.
다섯째날(목) 부흥, 증언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
7월 25일
사도행전에서 급성장한 신약 교회의 이야기는 부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했던 교회의 이야기이며, 때마다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한 교회의 이야기이다. 증언은 초기 신자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오히려 박해는 복음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예루살렘 교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행 8:4)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빌립과 에티오피아 관리와의 만남이었다.
1.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무엇을 권했고, 그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행 8:26~38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부흥과 증언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행8:26~38]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답: 내시가 읽고 있던 이사야의 예언에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내시는 즉각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았다. 부흥은 말씀의 증거를 확실하게 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여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 천사가 빛을 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빌립을 인도한 것처럼, 오늘날도 천사들은 성령께서 저희 혀를 성화시키고 그 마음을 정련하고 고상하게 하도록 허락하는 일꾼들의 발걸음을 인도할 것이다. 빌립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천사 자신이 에티오피아 사람을 위해 일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인간들이 동료 인간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다”(사도행적, 109).
부흥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기도, 말씀 연구 그리고 증언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열렬하게 그분을 찾고, 진심으로 중보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정신을 가득 채우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전할 때에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진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예기치 않은 문을 열어 주신다.
<부가설명> 구스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은 복음 전도에 성령께서 친히 일하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빌립은 구스 내시를 전혀 몰랐지만 성령께서는 다 아신다. 성령께서 빌립을 구스 내시에게로 이끌어가셨다. 내시는 절기를 당하여 예루살렘에 왔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의 실상을 몰랐다.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는데,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종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깨닫기를 원하는 갈망을 갖고 있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빌립을 보내셨다. 마치 수가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자를 찾아 바쁘게 걸으신 예수님처럼 성령께서는 빌립을 그렇게 보내셨고, 그 일을 통하여 구스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속히 전파될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지금도 내시처럼 복음을 바르게 깨닫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께서 우리들을 그들에게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준비된 증인으로 이끄심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부흥을 경험하고 열렬하고 진지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파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전도의 길을 열어 주신다.
여섯째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7월 26일
“주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이미 진리를 아는 이와 접촉하게 하신다. 빛을 받은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지혜의 큰 근원으로부터 그 능력을 얻는 인간이 일하는 대리인, 즉 통로가 된 그를 통해서 복음이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사도행적, 134).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죄인을 구원하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은 품성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의 사업을 분담해야 한다. 그의 기쁨, 곧 그의 희생을 통하여 속량 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들의 속량을 위한 그분의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시대의 소망, 14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이번 주 핵심 사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대에게 요구하는 변화가 있습니까? 그대의 우선순위는 어떤 식으로든지 재조정될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대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요구하십니까?
※ 이번 주 핵심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삶이 증거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
➋ 우리가 믿음을 증언하면 할수록 우리 믿음이 더욱 성장한다는 영적 진리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대는 이것이 왜 진리라고 생각합니까? 어떻게 이 원리가 이치에 맞을까요?
※ 예수를 믿는 믿음은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➌ 그대는 얼마나 자주 예수님을 증언합니까? 자주 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부당할까 봐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얼마나 자주 거부당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절이 그분을 막지 못했다면 우리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증언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주님과 더 깊이 동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를 증거해야 한다. 말씀을 더 깊이 깨닫도록 기도하고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➍ 한 주 동안 우리는 종교적 의식이 어떻게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과 교회 생활에서 의식과 전통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의식과 전통은 어떤 방식으로 부흥과 개혁에 쓸모가 있을까요?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때 큰 만족을 얻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의식과 전통은 우리의 믿음을 담는 그릇 노릇을 한다. 이 그릇이 잘못 되면 담기는 내용이 그릇을 따라 잘못 형성될 수 있다. 올바를 사상은 올바른 형식을 만든다. 생명을 낳는 수고가 있겠지만 생명이 태어났을 때 느끼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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